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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하나님의 나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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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18 07:19 조회7,7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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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2)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본강령"은 예수의 산상설교이고, 그 봉우리는 가난한 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한 것이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에게서 "죄인의 칭의"라고 불린 것이 예수에게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한 것이다. 복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들에게 먼저 선포된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라는 총괄 개념은 주린 자, 실업자, 노예가 된 자, 낙담한 자 그리고 슬퍼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것은 억눌린 백성 자체, 그리스어로는 "오클로스"이고, 한국말로는 "민중"이다. "가난한 자들"이란 사회적으로 "얼굴이 없는 자들", "노동력", "인간자본"이다. 그리고 대개 "가난한 자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고들 말해지는 나이든 여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사회의 다른 한편에는 단순히 "부자들"이 있는 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그들의 희생 위에 배불리거나 약한 자들을 쉽게 억누르는 "폭력가들"이 있다. 다시금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와 행동으로써 부자를 더 부하게 만들고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사회 내의 사회적 갈등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이 갈등 안에서 편을 든다. 그것은 부자들도 구원하고 그들의 자기 만족에서 구해 내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의 편을 든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가져오는가?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자선을 행치 않으며, 그들을 다른 사람들처럼 부자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존엄성을 가져오며, 강한 충격을 준다. 가난한 자들은 더 이상 억압과 비하의 고통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첫 자녀들의 존엄성을 갖는 주체이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파괴될 수 없는 존엄성의 확신을 준다. 이런 확신을 갖고서 가난한 자들, 노예들 그리고 매매의 대상이 된 여성들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 자립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에게 매일 "너희들은 실패자야! 너희는 이런 일을 하지 못했어! 너희는 아무 데도 쓸모없어!"라고 설득시키는 사회의 가치체계를 거부한다. 그들은 머리를 들고 살기 시작하며, 곧바로 걷기 시작한다. 유용한 사회의 그런 가치체계를 수용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항상 가장 무거운 거침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멸시를 낳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런 자기 증오를 걷어치우고, 굴복당한 자들을 일으켜 세운다. "하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잠잠히 행동하게끔 만드는 위로가 아니라, 일어서서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로서 이 폭력적인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라는 격려이다. 예수가 가난한 자들을 사회적 봉기로 이끌어서 그들도 남들처럼 잘살게 하진 않는다. 그는,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이 보여 주듯이, 나눔의 문화가 통용되는 공동사회의 길로 그들을 인도한다.

   예수와 그의 남녀 제자들은 당대의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선포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이미 가난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 5:3)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했다. 가난한 자들은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었다. 어린이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니,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어린이들의 것"임을 선포했다 (마 19:14).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함을 그들에게서 발견했다. 그러기에 실제로 가난한 자들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무언의 초대가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가난한 자들을 통한 복음화"라고 부르든 아니면 "가난한 자들의 메시아니즘"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는 매우 단순하고도 말없는 초대도 있다.

   우리로부터 예수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듣는 자는 다시금 가난한 자들, 여자들과 아이들과의 사귐에서 똑같은 그 나라를 발견한다. 하나님에게서는 이런 꼴찌가 첫째이며, 이런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강한 자들이다. 누구에게 행동해야 할지를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까이 가져온 자는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과 어린이들도 가까이 데려왔다. 이들은 그의 가족이요, 그의 백성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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