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골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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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20 23:45 조회7,8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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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15:39)
다른 이야기는 골고다 처형장, 그리스도의 고난의 마지막에 있다. 다시금 이것은 기도,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을 향한 절망적인 외침이다. 여섯 시가 되어 예수는 크게 소리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 15:34) 그는 큰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었다.
세 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린 채, 그는 분명히 침묵 속에서 상처가 준 경련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에게 가장 철저하게 버림받았음을 표현하는 이런 외침을 지르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바로 이 하나님에게 그의 모든 희망을 걸었고,그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는가? 이것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곤혹스러운 골고다의 사건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던 이 외침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결코 익숙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 외침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이를 "더 경건한" 유언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이 죽음의 절규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 외침이 시편 22편의 앞 구절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것이 더욱 더 그럴듯해지는 것도 아니다. 죽어 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시편 22편 전체를 기도문으로 읊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한편으로 시편은 십자가에서는 실로 일어나지 않았던 사망의 곤경으로부터의 구원을 장엄하게 감사드리는 기도로 끝난다. 다른 한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그 당시에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말을 더는 할 수 없었다. 아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자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외침이다. 마가복음의 고대 사본은 이를 더 강하게 말한다.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치욕 속에 내던지셨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저주 하셨나이까?" 훨씬 늦게 기록된 히브리서도 이 기억을 강하게 붙들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채" ㅡ 언어적으로는 하나님이 없이 ㅡ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다." (히 2:9) 오직 여기서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더는 친숙한 말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직책상으로만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그가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듯이 보인다.
그리스도가 두려워한 것, 그가 겟세마네에서 씨름한 것, 그가 아버지에게 간청한 것, 이것은 지나쳐 가지 않고 십자가에서 일어났다. 그리스도는 아무도 더 이상 남을 위해 중재할 수 없고 모두가 혼자이며 아무도 견딜 수 없는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상황을 견딘다. '왜 하나님이 그를 버렸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대답이 있는가? 복음서는 말한다: "우리를 위하여" 그것은 일어났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버린 것은 그가 모든 버림받은 자들의 형제가 되고 그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에는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가 있다. 이 수난의 핵심에는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경험이 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하나님 경험의 마지막인가, 아니면 다시 태어난,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도 더는 흔들 수 없는 하나님 신앙인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 고독한 그리스도, 고문을 당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침묵에 괴로워하는 그리스도는 모두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우리의 형제, 친구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그보다 더한 것도 모두 알고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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