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왜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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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21 23:51 조회7,9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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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친히 감당했는가? 골고다 위의 끔찍한 사건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대답이 있다. 첫째로, 우리가 고통당할 때에 우리 곁에 있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괴로워할 때에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해서다. 이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연대(聯帶)이다. 둘째로,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우리를 위해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죄책을 벗기기 위해서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대리(代理)이다.
그리스도가 가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가고,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면, 그리스도는 그와 같이 비하되고 소외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귐을 가져다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권력 소유자들과 권력 행사자들을 멈추게 하는 수많은 십자가들 사이에, 스파르타쿠스로부터 포로수용소까지,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굶주리는 자들과 "실종된 자들"에게까지 서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배타적으로 그의 고난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우리의 고난이며, 우리 시대의 고난이다. 그의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들 사이에서 형제와 같이 서 있으면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고난에 참여하시며 우리의 고통을 친히 담당하신다는 표시가 된다. 그러므로 그 어떤 고난도 함께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희생자들과 고난을 받는 자들과 연대하시는 하나님이다.
일찍부터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세상의 죄를 대신하는 하나님의 속죄를 보았다. 이사야 53장의 "고난을 받는 하나님의 종"의 모형에 따라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대리적인 고난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속죄는 절대로 필요한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시몬 비젠탈은 그의 책 『해바라기』에서 그가 포로수용소에 갇혔을 때에 죽어 가던 한 나치 친위대원의 침대에 불려간 일을 보고하고 있다. 그 친위대원은 유대인인 그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유대인의 대량학살에 동참했음을 참회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비젠탈은 살인자의 참회를 경청했지만, 그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죽은 희생자의 이름으로 살인자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분명해지는 점은 그러한 죄의 짐을 지고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죄의 용서가 없다면, 죄를 지은 자는 살아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자존심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속죄가 없는 죄의 용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속죄는 결코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불의는 그 어떤 인간적인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에 대한 속죄는 하나님의 가능성인가?
많은 민족의 제의에서 속죄는 인간의 불의로 인해 생겨난 신들의 진노를 달래려는 동물의 희생을 통하여 시도된다. 이스라엘에서는 이와 다르게 나타난다. 구약성서에는 속죄제사도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정한 이른바 "속죄양"이었다. 이 제도는 안수를 통해 백성의 죄를 속죄양에게 전가하고 속죄양으로 하여금 죄를 광야로 가지고 가게 함으로써 백성에게서 죄를 멀리 떼어놓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속죄양"은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려고 그에게 제공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속죄양"을 제정한다. 솔로몬의 성전에도 그러한 속죄제의가 있었다. 이사야의 환상에 따르면 하나님은 백성의 죄를 지고 갈 새로운 "하나님의 종"을 보낼 것이다. 성서에서 백성의 죄를 "지고" 속죄를 이루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그리고 "많은 사람을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는 분이시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지고" 감으로써 인간의 죄를 그의 고난으로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일어난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단지 희생당하는 자들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위해 속죄하는 자가 되기도 한다. "세상 고통을 지고 가는 자여!" 이것은 희생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당신이여!" 이것은 가해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은 단지 세상의 고난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불의의 역사도 지신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은 희생자들 중의 희생자이시다.
가해자들의 속죄는 희생자들을 통해 증언된다. 희생자들은 긴 기억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고난의 흔적은 그들의 영혼 안에, 그리고 종종 그들의 몸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대개 짧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행했는지를 알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해자들이 죽음에서 나와 생명으로 나오려면, 희생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다." (롬 4:25) 예전의 사람들은 이를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치른 희생이나 속전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오늘날 이것을 인격적으로 생각한다. 개인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죄인들을 위해 그리스도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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