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뒤따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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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23 08:36 조회7,5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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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뒤따른다는 것은 믿는다는 뜻이고, 믿는다는 것은 뒤따른다는 뜻이다.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부인한다는 뜻이고, 부인한다는 것은 뒤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는 영원을 위한 결과를 낳고, 영원은 여기서 우리의 말과 침묵을 위한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믿음의 주체라는 사실에 나는 만족을 느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믿는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심판 날에 우리의 증인이다. 우리가 부끄러워 침묵할 수밖에 없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변한다. 우리가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변호한다. 온전히, 말과 행동으로, 신실하게 죽기까지 우리를 변호한다.
믿는 자들의 증언과 뒤따름은 그리스도의 증언과 희생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의 증언이 공개적이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증언도 공개적인 것이며,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일, 곧 진리와 정의는 현대 종교처럼 결코 "사적인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증언이 온전한 것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증언도 온전한 것이다. 내면의 영역이나 종교적 영역에 증언을 제한하는 것, 정치적 영역인 것을 늘 배제한 것은 그리스도를 쪼개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결과를 낳으며,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하게 증언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증언은 항상 "정치적인 실천"이라는 짐을 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은 단지 말로만 이루어지는 증언이 아니라, 뒤따르는 생활로 이루어지는 증언이다. 현실적으로 뒤따르지 않고서는 믿음을 고백할 수 없다. 분명하게 고백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뒤따를 수 없다. 무엇 떄문에, 누구에게 나는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다. 그리스도는 오늘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는 1. 복음 안에서, 2. 교회 안에서, 3.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 안에서 현존하며, 바로 여기서 우리가 그에게 믿음을 고백하기를 기대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그리스도의 해방의 소식을 듣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의 교회를 부끄러워한다면, 이것은 그를 외면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굶주린 자들, 목마른 자들, 벌거벗은 자들, 감옥에 갇힌 자들을 외면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인자(人子)가 마지막 세계 심판에서 말하듯이, "나의 가장 작은 형제들 중의 한 사람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다."
심판하고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40년 전에 굶주리고 목마르고 벌거벗고 감옥에 갇혔던 유대인들 가운데 있지 않았는가? 오늘날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이른바 제3세계의 굶주리고 목마르고 벌거벗고 감옥에 갇힌 자들 가운데 있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는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인정하는 자를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 나를 부인하는 자를 나도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부인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용기 있게 그 무엇을 행하라! 어떻게 따르든, 뒤따름의 희망을 선택하라! 뒤따르지 않는 따름을 거부하라! 뒤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오직 절망만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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