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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세계를 위한 교회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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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29 23:14 조회8,0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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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사도행전 6:9)

 

   오직 자신 속에 모순을 지니고 있는 자, 실로 자신 속의 모순을 파악하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만이 살아 있는 자이다. 사회적 현실로부터 자신의 주체성을 거두어들이는 반성은 인간에게 그의 가능성과 자유를 되돌려 주지 못한다. 오직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비우게 하고 기대된 미래로부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하게 하는 희망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무릇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바쳐야 한다. 무릇 생명을 계속 누리고 미래를 얻으려는 자는 생명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버리기 위해서는 비움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대의 지평이 필요하다. 실로 이 기대의 지평은 생명을 비우는 활동이 일어나는 분야와 영역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를 가져오고 생명을 창조하면서 세상과 인간에게 오고 있다. 약속된 이 나라의 미래를 기다리는 자는 아무런 망설임과 조건도 없이 사랑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세계의 화해와 하나님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 사회적 기구들과 역할들, 기능들은 이와 같은 헌신을 가능케 하는 매체들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사랑에 의해 창조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은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이고, 더 평화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회적 책임을 덜어주는 것" (A.  겔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생명의 소외나 생명의 경직화를 초래하는 타락 요소로 생각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헌신의 길과 그 역사적 형태로 생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사건과 과정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창조적 희망은 이와 같은 상황을 역사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래서 이 상황을 고착화하려는 내재적 경향에 저항한다. 무엇보다도 생활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없는 느긋한 생활"에 저항한다. 신앙은 사랑의 고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신앙은 자신을 "사물로" 만들 수 있고, 종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앙은 부활 희망의 확신에 의해 지탱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희망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항상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른 사람의 아직 포착되지 못한 가능성을 바라보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에게 자유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미래를 인정하는 가운데서 그에게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부활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그의 존엄성을 인정함으로써 창조적 사랑은 포괄적인 미래를 발견한다. 사랑은 바로 이 미래를 바라본다.

   이처럼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미래를 희망함으로써 이 세계는 여기서 노동을 통한 자기 구원 혹은 자기 생산의 모든 시도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이 세계는 오고 있는 하나님의 의(義)의 빛 안에서 상황의 인간화를 위해, 공의의 실현을 위해 사랑과 섬김 속에서 헌신한다. 이것은 부활의 희망이 필연적으로 새로운 세계 이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세계는 관념주의의 주장처럼 자기실현의 천국이 아니다. 이 세계는 낭만주의적, 실존주의적 문학의 주장처럼 자기 소외의 지옥이 아니다. 이 세계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우리가 미래의 약속된 진리와 정의, 평화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다.

   지금은 온 세계로 흩어질 시대요, 희망의 밭에 씨를 뿌릴 시대요, 헌신과 희생의 시대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새로운 미래의 지평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위해 헌신할 수 있으며, 매일 희망 중에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초월하는 기대의 지평 안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자기 실현의 자랑과 자기 소외의 탄식은 다 같이 지평을 상실한 세계 속에서 희망을 상실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미래의 지평을 이 세계에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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