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9. 창조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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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03 07:34 조회7,8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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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처음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처음에"라는 용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은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사건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절대성 속에서 미리 설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물의 시간은 빛의 생성과 함께, 그리고 낮과 밤의 리듬의 생성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 하나님이 나누셨다."라는 용어가 가리키듯이, 창조주의 창조 활동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난다. 오직 창조 자체만은 이런 전제를 가질 수 없다. 창조는 언제나 일회적이다. 처음은 아무런 전제가 없이 설정되었다.
그러므로 창조가 무(無)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후대의 신학적 해석이 성서가 말하는 창조의 의미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디서, 그리고 무엇을 창조하시든, 하나님은 아무런 전제가 없이 창조하신다. 하나님의 창조를 야기하는 외적인 필연성은 없으며, 하나님의 창조를 결정하는 내적인 강요도 없다. 하나님의 창조 이전에 잠재적으로 주어진,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를 물질적으로 제한하는 원재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이미 주어져 있는 물질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창조된 것도 아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다. 만약 세계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로부터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창조 활동은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의지의 결단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세계의 창조주가 되기로 결정하신다. 창조가 최고 존재의 유출(流出)이라고 생각될 수 없듯이,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제멋대로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데미우르그(영지주의자들이 믿었던 창조자)를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한 가지 선택을 하셨는가?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셨는가?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질문했다. 만약 그렇다면, 세계의 합리성과 세계에 대한 그의 신뢰가 의심스러워진다고 아인슈타인은 보았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신에 대한 이런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자유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즉각 "사랑으로부터"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유는 모든 것이 가능한 "전능"이 아니라 사랑, 곧 선한 존재의 자기 분여(分與)이다. 만약 하나님이 "자유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다면, 하나님은 사랑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다. 창조는 하나님의 무한한 전능의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제 없는 사랑의 전달이다. "만물은 창조주의 사랑으로부터 장엄하게 등장했다." (단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 속에서 선택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자신의 본질적인 선하심에 상응하는 것만을 선택하심으로써 자신이 창조하신 사랑을 전달하시며, 자신의 선하심 속에서 사랑을 전달하신다.
하나님의 전능은 오직 그 모든 결과가 그의 영원한 본질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통해서만 입증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자신에게 당연한 것, 자신의 본성에 합당한 것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완전히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신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우시다. 이것은 모든 강요를 배제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제멋대로 행동하신다는 그럴듯한 모든 견해도 몰아낸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로운 사랑 속에서 자신의 선하심을 나눠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로운 사랑으로부터 자신의 선하심을 전달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보존의 활동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문자 그대로 "황홀한 사랑"이다.
이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은 자신 밖으로 나오시며, 그 자신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상응하는 것을 창조하신다. 창조주가 창조의 축제, 곧 안식일을 기쁘게 거행하신다는 것은 창조 세계가 ㅡ 영원한 하나님 자신이신 ㅡ 은밀한 사랑으로부터 생겨났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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