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하나님의 나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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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15 21:06 조회6,9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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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24)
마가복음 4장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부터 나온 비유를 볼 수 있다. 씨 뿌리는 자, 저절로 자라는 씨와 겨자씨의 비유가 그것이다. 이것은 시작의 모형들, 희망의 생명과정이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땅에 뿌리는 것은 그것이 자라서 열매를 맺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우리는 생명 속에 뿌려진다. 시작은 미미하나,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결과는 창대하고 놀라운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씨앗도 겨자씨처럼 "우리 중에서 제일 작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면, 하늘의 새들이 그 안에서 쉴 곳을 찾는다. 씨는 자동적으로, 제 힘으로 주야로 자란다. 그 내면적 힘은 가지와 이삭 그리고 밀밭으로 뻗어 나간다. 단지 이차적 의미만이 아니라 원래의 의미도 살펴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자연의 재생과 같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13장 28절 이하)은 하나님의 나라를 "여름"과 비교한다. 자연 자체가 비유가 된다. 봄에는 나무가 푸르게 되고 꽃들이 피어나며 밭에서 씨들이 자라나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창조의 완연한 봄이다. 새 생명이 시작되고, 모든 만물이 소생하며 열매를 맺는다. 비유들이 가을과 겨울이 아닌 봄과 여름에서 취해진 것은 진기하다. "나고 죽는" 자연의 순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비유의 시작만이 취해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만물의 새 창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으로부터 취해 온 비유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매우 감각적으로 만들어준다. 나는 장미의 향기를 맡고,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를 맡는다. 나는 빵과 포도주를 맛보고,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본다. 나는 꽃이 만발하게 핀 들판을 거닐고, 나는 모든 것이 자라나서 활짝 필 하나님의 나라를 느낀다. 이 나라는 모두에게 넉넉한 것이 되는 나라이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우리는 다른 비유를 접한다. 잃어버리고 찾은 비유 ㅡ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은전, 잃어버린 아들, 목자가 그의 양 아흔 아홉 마리를 세워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다시 찾았을 때 기뻐하듯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 (15:7)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두 번째로 여인의 비유 즉 잃어버린 은전을 찾다가 발견한 여인의 비유가 나오는 것이 아름답다. 다시금 같은 말이 나온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이어서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아버지의 기쁨이 하도 커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15:24) 예수의 복음의 요약도 언제나 다시금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 왔다 ㅡ 회개하라."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라는 단어는 우리의 언어사에서 그 의미가 너무나 많이 변해 버렸기 때문에, 예수가 말한 내용을 번역하기에 아주 쓸모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회개"를 일종의 처벌이나 보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원래 무엇을 의미하는가? 잃은 양을 찾게 되자, 찾은 자는 그의 노력이 허사가 아니었음을 기뻐한다. 잃은 은전은 잃어버린 일에나 찾은 일에 하등의 그 무엇도 행할 수 없었다. 기쁨은 전적으로 오로지 여인에게만 있었다. 끝으로 잃은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 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잃었던 자신의 피조물을 다시 찾은 일로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들이 행하는 회개"가 무언가? 그것은 바로 "발견됨"과 멀리 떠난 상태에서 "집으로 되돌아옴", "다시 살아남"과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함이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 우리가 봄의 꽃들과 나무들처럼 번창하고 푸르러질 때, 그리고 우리가 온갖 생명을 낳는 크고 무진장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경험된다.
우리가 우리들을 향해 기뻐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희구를 경험하고, 우리의 생명의 영들이 다시금 자라날 때, 바로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낯선 통치가 아니라 생명의 샘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아무런 억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경험한다면, 생명의 가능성이 충만해지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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