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하나님」1. 희망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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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3-26 23:07 조회8,0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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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고통과 죽음의 경험적 현실과 모순되는 약속의 말씀 속에서 신앙은 희망 위에 우뚝 서게 되며, "이 세상을 넘어가려고 서두른다."고 칼뱅은 말하였다. 여기서 그가 말하려고 한 것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이 세상을 도피하지 않고 미래를 열망한다는 사실이다. 믿는다는 것은 실로 한계선을 넘어간다는 것, 그것을 초월한다는 것, 탈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억압적 현실이 무너지거나 전복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엄연한 죽음이고, 부패는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죄악은 여전히 죄악으로 남아 있으며, 신앙인에게도 여전히 고난은 간단한 해결책이 없는 아우성이다.
신앙은 이 현실을 뛰어넘어 하늘나라나 유토피아를 바라보지 않는다. 신앙은 하나의 다른 현실을 꿈꾸지 않는다. 오직 고통과 죄악, 죽음으로 둘러싸여 있는 생명의 한계선이 실제로 무너질 때, 신앙은 그것들을 넘어갈 수 있다. 오직 하나님에게 버림받아 고통을 당하고 죽은 현실과 무덤으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를 뒤따를 때, 신앙은 더 이상 억압이 없는 열린 마당, 자유와 기쁨을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희망을 무너뜨리는 한계선이 십자가에 달린 자의 부활 속에서 깨어질 때, 신앙은 희망을 향해 열려질 수 있고 또 당연히 열려지게 된다. 신앙은 담대한 확신이 되고, 인내가 된다. 신앙의 희망은 "가능한 것을 향한 열정"(키르케고르)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가능하게 된 것을 향한 열정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세기의 속담이 말하듯이, 바로 그 희망 안에서 위대함을 향한 영혼의 팽창이 일어난다.
그리스도 사건 안에서 신앙은 열린 자유의 이 미래가 돌입하는 것을 깨닫는다. 이 희망 때문에 불붙기 시작한 희망은 꽉 막힌 현실을 넘어오는 열린 지평을 인식한다. 신앙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 매어준다. 희망은 이 신앙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위대한 미래를 향해 자신을 열게 한다. 그러므로 희망은 신앙의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이다. "만약 이 희망이 없다면, 비록 우리가 신앙에 관해 제아무리 재치 있고 점잖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희망이란 신앙의 확신에 따라서 하나님이 참으로 약속하신 것들을 기대하는 행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확신다. 그리고 희망은 때가 되면 하나님이 자신의 진리를 드러내실 것을 기대한다. 신앙은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확신한다. 희망은 그분이 우리에게 항상 자신을 아버지로 증명하실 것임을 기대한다. 신앙은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졌음을 확신한다. 희망은 영생이 언젠가 드러날 것을 기대한다. 신앙은 희망을 세우는 기초이고, 희망은 신앙을 키우고 지원한다. 만약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의 연약한 신앙이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참는 가운데서 바라고 기다리는 가운데서 신앙이 용기와 격려를 받아야 한다. 희망은 언제나 신앙을 새롭게 하고 활기차게 하며, 항상 더 힘 있게 일어서게 함으로써 신앙이 끝까지 견디도록 도와준다."(칼뱅)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신앙은 먼저 오지만, 희망은 우월하다. 만약 신앙을 통한 그리스도 인식이 없다면, 희망은 허공에 떠 있는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희망이 없다면, 신앙은 무너지게 되고 작은 신앙이 되며, 결국에는 죽은 신앙이 되고 만다. 신앙을 통해 인간은 참된 생활의 발자취를 따르게 된다. 그러나 오직 희망만이 그로 하여금 이 발자취 위에 머무르게 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희망을 확신으로 만든다. 그리고 희망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넓혀주며, 신앙을 생활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하나님은 희망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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