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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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3-31 23:52 조회7,8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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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5:28)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아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5, 7~10)
하나님이 자신의 편재(偏在)를 통해 인간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공간" (시 31:9)처럼 인간을 둘러싸고, 그래서 인간이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편재하시는 하나님이 "당신"(한글개역 성서에서는 "주")이라고 불리는 좀도 특이하다. 편재는 신적인 본질의 속성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피조물에게 임재하기를 원하는 신적인 주체의 속성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자연과 동일하게 여기는 범신론(汎神論)이 아니다.
이 점은 20세기의 신비주의를 대변한 에디트 슈타인과 시몬느 베이유에게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은 충격적인 시대의 집단적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고, "영혼의 어두운 밤"을 내면적으로 견디어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신비한 경험이다. 요하네스 밥티스트 메츠가 말했듯이, 평안한 하나님 신뢰 대신에 비통한 "하나님 상실"이 등장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찍부터 "겟세마네 기도"의 전통 안에 서 있었다. 그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이다. "너희는 잠시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더냐?" 왜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과 함께 깨어 있어야 했는가? 스승이 심각한 시련에 빠졌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4)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막 14:33~34; 마 26:38) 이것은 어떤 시련이었는가? 이것은 예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이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것은 어떤 잔인가? 이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죽어가는 것이다. 예수는 골고다에서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 겟세마네 기도는 참으로 기도가 아니라 시련에 빠진, 세상 구원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죽음에 던져진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부재와 영혼의 어두운 밤의 경험 속에서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유일한 위로가 된다. "겟세마네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요한 바오로 2세는 명령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종말까지 예수의 고뇌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잠들어서는 안 된다."(파스칼)
그리스도가 하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한 이후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 하나님은 임재하시지 않는가? 만약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가져온 권력자들 안에 계시지 않는다. 바울에 따르면 그들은 "권세와 정사"이다. 부활하여 하나님에게 높이 들린 그리스도는 죽음의 세력과 함께 이 세력 위에서 지배권을 쌓아올리는 자들을 제거할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희망한다.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 15:25~26)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 (골 2:15)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 (골 2:10)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돈의 세력들이고, 창조를 부정하고 인간을 멸시하는 권력자들이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파괴 세력들이다. 하나님은 죄의 세력 안에 계시지 않듯이, 그들 안에도 계시지 않는다. (롬 7장)
바을에 따르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편재로 인해 "제거될"것이며,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따르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머리 아래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의 힘과 죽음의 세력은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에서 배제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높이 들림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골고다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고난 이후에 하나님의 편재는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와 생명 창조로 확장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부재의 지옥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가 임재하지 않는 지옥은 사라졌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시 139:12)
그리스도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는 "천사들이나 권세자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신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이 만물 안의 그 어디나, 그리고 모든 시간에 동일하게 계신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편재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공간과 상황이 존재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 공간과 상황에 친히 임재하신다. 그리고 부활하고 높이 들린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력들은 그들의 힘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편재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고전 15:28)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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