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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버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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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02 07:44 조회7,9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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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편 145:9)

 

 

   하나님은 구약성서에서 8번 "아버지"라고 불리지만, 예수 자신은 하나님을 170번이나 "아버지"라고 부른다. 십자가 죽음의 절규를 제외한다면, ㅡ 시편 22편: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ㅡ 예수는 하나님을 항상 오직 "아바"라고 불렀고, 하나님을 항상 오직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선포한 하나님의 계시된 이름을 가리킨다.

   예수가 이러한 신뢰로 가득한, 친밀하고 부드러운 어린이 말투로 하나님을 불렀다는 사실은 비교적 새로운 사실이며, 그의 복음에 속한다. 이 말은 아람어로서 어린이가 중얼거리는 하나의 언어 형태이다. 이처럼 어린이는 그가 처음부터 신뢰하는 인물을 마마, 파파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존재의 은밀한 근원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다. 원래의 감정 유형에서 볼 때, 여기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만약 우리가 아바 말투 안에서 표현되는 어린이의 근본적인 신뢰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버지보다는 오히려 어머니에게 도달하게 될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을 친히 이런 이름으로 불렀을 때, 강조점은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의 남성됨이나 주의 존엄성에 놓여 있기보다는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그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가까운 관계에 놓여 있다. 아바 이름은 예수와 하나님 간의 관계의 내적인 핵심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아바와 같은 친밀함은 예수의 삶과 행동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가까움을 계시한다.

   예수의 생애에서 아바의 깨달음과 아바에게 드리는 기도는 무슨 기능을 하는가? 우리는 예수가 언제, 그리고 어떤 기회에 그의 계시와 소명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세계를 생각할 수 있다. 여하튼 그의 선포가 증명하듯이(눅 4:18 이하), 그의 소명은 일종의 메시아적 소명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돌입하는 가운데서 메시아 시대, 종말의 희년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가 행하는 표적과 기적은 메시아적 시대 전환의 표적과 기적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하나님 자신이 가까이 오신다.

   예수는 이 가까움으로부터 살고, 그 안에서 기도하며,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아들로 이해한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시 2:7)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 아바의 아들로 이해한다. 이것은 마태복음 11장 27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바"라고 표현되는 하나님 경험은 자신을 이 아버지의 아들로 경험한 예수의 자기 경험을 보여준다. 그의 행동에 나타난 결과는 기록에서 더 분명히 인식될 수 있다. 그는 "그의 제자들", 그의 모친과 가족을 떠나며, 그의 하늘의 아버지, 아바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마가복음 3장 31~35절에서는 그가 그의 모친과 형제들을 냉정하게 물리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막 3:31~35)

 

   그에 대한 그의 가족의 판단은 바리새인들의 판단과 똑같다: "그가 미쳤다." (막 3:21) 그는 단지 그의 모친과 형제들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의 공식적인 결별을 선언한다. 그의 모친을 생각할 때, 이것은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대인의 어머니를 가진 자는 유대인이다. 그의 모친과의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예수는 그의 유대인적 연관성과 약속의 연관성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예수는 가족적 유대와 이 약속사적 계보의 유대감 대신에 무엇을 제시하는가? 그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마 12:50)의 뜻을 행하는 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새로운 공동체를 인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난한 백성(오클로스)이지,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라오스)만은 아니다.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 이후부터 인정되어 온 하나님의 율법의지가 아니라 예수를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메시아적인 뚯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예수의 아바 관계 안으로 수용되는 이 메시아적 공동체는 단지 "형제와 자매"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포함한다. 이 공동체는 단지 형제와 자매와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같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를 뒤따르는 여자들과 남자들은 메시아적 공동체 안에서 그들이 자연적인 가정에서 버렸던 모든 것을 다시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형제들, 자매들 그리고 어머니들이다. 그렇지만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나 특이하기 때문에 종종 간과되어 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29~30)

 

   누구든지 자신이 버린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현세에서 풍성한 배상이 주어질 것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배상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새로운 가족 안에서는 가부장적 지배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오직 아머니, 형제와 자녀의 신분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왜 그러한가?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마 23:9) 하나님의 아바 가까움은 이 새로운 공동체를 분명히 너무나 가득 채우고 침투하기 때문에 이 땅의 아버지의 기능과 권위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가부장적 지배는 하나님의 아버지와 같은 가까움과 명백하게 모순된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가 자신의 주위로 불러 모았던 메시아적 공동체는 실로 하나의 "대조사회" (對照社會)이다. 이 공동체는 그 당대의 가부장적 사회와 모순된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어머니, 아버지, 자매와 형제 개개인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 새로운 메시아적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예수의 어머니도 교회 안에서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자매로서 나타난다.(행 1:14)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의 또 다른 결론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 신앙은 누가복음의 십계명 해석에서와 같이 인간적인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또 이 신앙은 칼뱅의 제5계명 해석에서와 같이 단지 비판적인 것만은 아니다. 제5계명에 대한 예수의 입장은, 그의 행태를 통해 볼 때, 모든 인간적인 아버지의 권위를 폐기한다. 하나님은 유일한 아버지이기 때문에 예수의 사귐은 "아버지들의 종말"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5절과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예수의 아람어 기도문 "아바, 사랑하는 아버지"를 교회의 기도문으로 인용한다. 메시아 예수를 믿는 자는 그의 친밀한 하나님 관계 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예수처럼, 그리고 예수와 함께 그는 아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그 결과는 비슷하다. 많은 형제들과 자매들 중에서 "처음 태어난 자"와의 사귐 안에서 믿는 자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해한다. 예수처럼, 그리고 예수를 뒤따르면서 그들은 가족, 신분과 문화 안에 있는 낡아빠진 출신의 세력들과 결별하고, 메시아 나라의 미래로부터 살아간다. 그러므로 아바 부름은 하나님의 메시아적 백성 안에서 자유의 최상의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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