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날에는 경의선을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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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18 15:18 조회5,8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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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고 답답한 일
물밀 듯이 몰려올 때
난 아내와 함께
경의선 기차를 탄다
창가에 자리잡고 앉으면
어지러운 생각이 비어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여기는 인간시장
세상의 온갖 괴로운 사람들
여기 다 모여 있구나
부침개를 정신없이 떼어먹는
배고픈 아낙네
춤추며 노래하는 티없는 어린 아이들
구릿빛 얼굴 깊이 패인 주름살 노인들
피곤에 지쳐 잠들어 버린 젊은이들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세상의 온갖 괴로운 사람들
여기 다 어느새 모여들었구나
나도 이들과 함께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하늘보고 한 시름 토하고
구름보고 두 시름 뱉아 버리고
산을 보고 세 시름 쏟아내고
들녘 보고 네 시름 던져버리고
이러는 사이에
괴로움이 기차를 타고
다 지나가 버렸네
수색에서 탈 때에는
수색이 가득하더니
대곡에 이르러
괴로움이 크게 곡하고
파주에서 파죽지세가 되더니
문산에서 괴로움이 문밖으로 산산이
흩어져 도망가 버렸구나
내가 기차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괴로움이 기차를 타고
다 도망가 버렸구나
이제 난 괴로움을 타고 가고 있구나
우리들 괴로운 날에는
경의선 기차를 타라
그리고 괴로움이
도망가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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