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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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04 23:38 조회6,38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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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락적 세상.
먹어야 좋다 하고, 사내 계집이 어울려져야 좋다 하는 세상. 세상은 이러합니다. 이러한 세상이라고 해서 그 가운데 사는 나도 이러하여야만 되겠습니까. 저는 지향(指向) 없는 애와도 같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선 이 몸. 이리도 저리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세상을 향하여 죽겠습니다. 그리하여야 될 줄을 앎이니이다. 세상은 또 나를 향하여 죽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나는 나의 나요, 세상은 세상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세상과 어우러진다면, 이는 '나'라는 나도 못되고 '세상'이라는 세상도 못되어 결국은 나도 아니요 세상도 아닌, 일종의 기형물을 낳아 놓을 것입니다.
1927년 3월 6일 (일)
새로움과 사랑의 내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건짐을 받은 이들의 특징은 세상을 향하여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죽지 않으면, 주님께로부터 받은 영적 생명의 목을 조르고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르는 내 발목을 자를 너, 세상이다.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생활과 방식과 가치 ㅡ 통틀어 '새 문화'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ㅡ 가 부여되니, 새로운 오늘이 개천(開天)하다. 하나님 나라라 하는 새 나라의 백성이 되다.
주님의 핏값으로 얻어진 이 '새로움'은 어떤 면에서는 '사랑의 내기'다. 하나님은 에덴의 아담과 하와에게 순종과 불순종의 '허락'을 주시였었다. 사랑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뱀의 말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움푹 칼로 그었다. 톡톡히 당하셨던 하나님은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 다시 '새로움'을 허락하시었다.
오늘날 성도들을 당장 하늘로 데려가시지 않고 넘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는 유혹과 시험과 환란이 시시각각으로 넘실대는 세상에 그대로 두시는 한 이유는, 불순종의 '가능성'이 없다면 순종의 '의미'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사랑의 배신당하심'의 아픈 가능성을 감내하시고서라도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셔서,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상의 말과 재미와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러나 믿음으로 인하여 날마다 만나고 사귀는 그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언뜻 보아 절대 불리해 보이는 내기이나 사랑은 때로 가장 무모하고 스스로 불리함을 택함에도 종국에는 승리하는 것이런가!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면, 그 마음 괴롭게 해드릴 수 없다. 세상과 쿵짝짝 할 수 없다. 몸이 부서질지언정, 가루 될지언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다 죽는 조용한 굳셈 있어야겠다.
"세상이 주는 물은 마실수록 허무하였나이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탄산이 없고 색소도 없어서 어느 때에는 밋밋하다고 느낄지 모르나 마실수록 맛의 깊이를 알고 몸이 건강해지니 참 좋아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손짓해도 주만 보고 나아가는 장한 모습이 제게도 있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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