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이지 않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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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4-07 23:53 조회6,5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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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에게 편지를 쓰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숙이를 잃고는 네가 퍽도 보고 싶구나"라고 쓰는데 이르러서 눈물이 왈칵 쏟아짐을 깨달았다.
내 딸 어디 가 있노?
오 그리운 내 아기야,
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따뜻한 부모의 품을 떠나
내 딸은 지금 어디 가 있노!
영숙아, 영숙아,
1년밖에 못 살고 갈 게
어째서 태어났더란 말인가!
동그란 머리통,
동그란 눈,
동그란 귀,
동그란 입,
동그란 코.
원(圓) 다섯이면 그려놓을 수 있는 네 형상이
내 눈에는 그대로 살아 있구나.
거위 발같이 꼬물거리는 그 손가락.
지금도 내 가슴에서 꼬물꼬물하고 있구나.
네 혼은 하나님의 따스한 품 안에서
재롱을 부리며 자라리라만은,
그리도 곱던 네 몸뚱이는,
아, 원통하게도
흙 속에서 썩는단 말인가!
***
주여, 글쎄 이를 어찌 하나요.
마음을 결심의 띠로 꽁꽁 묶어
주님의 제단에 바치고
정성스레 들어올리노라면
어느덧 묶였던 띠가 끊어지고
모았던 마음이 산산히 풀어져
이 바람 저 바람에 날리고 마니
글쎄 이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얼마 후에는 또 흩어진 마음을 집어 모으느라고
눈물을 짜면서 애를 박박 쓰곤 하니,
주님의 제단에 한 번도
알뜰한 제물을 바쳐 보지도 못하고
밤낮 이 노릇만 하다가
서산에 해가 떨어져 버리고 말면 어찌합니까.
주님이시여.
1927년 3월 27일 (일)
하나뿐인 딸이 고작 1년을 살고 하늘로 갔다. 이때 아들까지 떨어져 있으니 이용도는 쏟아지는 눈믈을 막지 못했다. 주를 위해 힘껏 살아보고자 하나 세상살이서 오는 격한 슬픔 가운데 생의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슬퍼도 괜찮은가 보다. 이용도는 슬프든지 아니 슬프든지 주를 찾는다. 다음의 고백이 그의 처절한 심경과, 그럼에도 주님을 원망치 않고 오히려 찬송하는 욥과 같은 신앙을 보여주고 있으니, 하나님은 천군천사들에게 "나의 종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하고 자랑하셨을는지도 모르는 일.
내가 죽는다고
낙심할 것은 없나이다.
다만 주를 믿으니
내 몸이 죽으나 사나
주는 나의 구주이시매.
주여, 이제나 저제나
한 번은 죽어 썩을 몸이오니
성하건 병들건
주께 이 몸을 바치오리다.
주여, 달리 무엇에 쓰오리까, 이 한 몸을.
4월 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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