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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의 신앙운동에서 본 한국교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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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09-07 13:05 조회1,8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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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및 논찬자 소개

 

□  1 강연

 

    ▶ 사  회 : 정희수 박사

 

감리교신학대학(B.Th)

동국대학교 대학원(M.A.)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 and Graduate Theological Union(M.A.)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Ph.D.)

 현 강남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종교철학)

 

    ▶ 논  찬 : 김영일 교수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강남대학교 신학과

한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Th.M.)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M.ed.)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수료(한국사상)

미국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1년간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중

현 강남대학교 신학과 교수(기독교윤리)

 

□  2 강연

 

    ▶ 사   회 : 김흡영 박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B.S.E.)

미국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M.Div., Th.M.)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Ph.D.)

현 강남대학교 신학과 교수(조직신학)

  

    ▶ 논   찬 : 박종수 박사

 

감리교신학대학 (B.Th)

 Drew University Theological School (M.T.S., M.Ph., Ph.D.)

 현 강남대학교 신학과 교수(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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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이용도 신학연구 발표회

 

 

성령론적 관점에서 본 이용도의 신앙 운동

 

 

정지련 박사

 

 

    이용도는 여느 신학자나 사상가와는 달리 획기적이거나 체계적인 저서를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우리에게 남겨 준 글들은 거의 모두 단편적이다. 그러나 이용도 만큼 그토록 짧은 사역 기간 내에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 사상가도 드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아마도 그의 삶과 글에 나타나는 ‘인식과 실천의 통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사람들 조차도 이러한 사실 만큼은 인정할 것이다. 그는 항상 성서적 사고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려는 모험을 감행했으며, 이러한 삶의 모험 속에서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곤 하였다. 그는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진리에 기꺼이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말과 글은 삶과 유리된 공허한 이론과는 달리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와 다시금 이러한 삶을 조명해 주기 때문에 커다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신학적 통찰력 보다는 그의 삶 속에 나타나는 ‘인식과 실천의 통일’,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진실성을 더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삶과 글은 단지 이용도라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체험으로 축소되기에는 너무나 깊은 통찰력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글들은 사실 논리적인 체계나 정교함을 갖추진 못했지만 성서와 삶을 연결시켜 주고 이로써 성서의 깊이를 조명해 주는 깊은 통찰력들을 내포하고 있다.

    독일의 저명한 해석학자 가다머(H.G.Gadamer)에 의하면, 해석은 저자가 제기한 물음이나 통찰력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1) 물론 해석의 의미를 저자의 주장이나 텍스트의 의미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결국 저자의 주장이나 텍스트의 의미를 한 상황에서 다른 한 상황으로 옮겨 놓는 번역에 그치고 말며, 때에 따라서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저자의 물음이나 통찰력을 은폐시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가다머와 같이 해석의 의미를 저자가 던져 놓은 물음을 오늘의 상황에서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해석의 과정이 저자의 물음이나 통찰력을 보다 심화시키는 창조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1) 참조. H.G.Gadamer, Wahrheit und Methode (Tuebingen 1960),375-384.

 

본 소고는 후자의 해석학적 방식을 따르면서 이용도의 해석학적 범주를 ‘성령’으로 설정하려 한다. 이를 위해 본 소고는 첫째, 이용도의 주제를 신비주의로 설정한 기존의 해석학적 범주를 비판하고, 둘째, 이용도의 주제로 설정된 성령론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오늘날의 성령 이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서방 교회의 필리오께(Filioque) 교리와 열광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뒤, 셋째, 이러한 성령론의 빛에서 이용도를 평가하고 그의 주제인 성령론에 대한 몇 가지 전망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학적 선택은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심오한 통찰력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호를 ‘시무언’(是無言)으로 지었으며, 이러한 통찰력을 계속 발전시키라고 동료들에게 유언했던 이용도 자신이 이러한 해석학적 방식을 요청한다.

 

 

 

이용도는 종종 신비주의자로 묘사된다. 특히 이용도 해석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민경배 교수는 이용도의 사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 계시를 위협하는 신비주의로 단정하고 있다.2) 즉 이용도의 삶과 신앙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합일의 빛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이용도의 글을 살펴보자.3)

 

“우리의 배울 바는 예수의 생활 그것이다. 예수는 神子라고만 하여 죄인인 인간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하여 내려온 현 기독교 신학의 일류는 분명히 기독자로 하여금 기독에게서 무한히 멀게 만들었다...예수의 생활을 알려면 그의 외적 표현으로만은 그를 알기에 부족하니라. 그의 내적 움직임, 그의 영의 약동-거기를 한곳이라도 만져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영과 나의 영과의 접촉으로부터 일어나는 애의 전광 또 그 애의 뇌성이 나의 생명 전체를 영향주게 하여야 한다. 곧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의 전체가 움직여지고 나는 나의 존재조차 찾지 못할 지경에 들어가야 한다.”(편지. 1932.4.12)

 

2) 참조. 민경배,“이용도의 신비주의에 대한 형태론적 연구’’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이용도 목사 전집 제 9 권) pp. 11-38; “이용도의 신비주의”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 pp.39-70; “이용도의 신비주의”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 pp. 93-140; “한국 기독교회 내의 신비주의-이용도의 고난받으시는 그리스도 신비주의"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 pp. 261-267. 변선환 또한 다른 관점이긴 하지 만 이용도를 그리스도 신비주의로 해석하고 있다. 참조. “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 pp. 141-192.

3)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p.263.

 

    사실상 이 글에는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자신의 평생 과제로 삼았던 아용도 목사의 중심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이 글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란 단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신앙은 오히려 나의 전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 닮아가기 위해선 그를 내적으로 지배하며 그와 하나가 되었던 성령과 접촉해야 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닮아 가자는 것이다. 이용도는 성령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러한 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이 하늘의 사랑을 실행하여야겠읍니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신이요 그리스도의 신은 곧 사랑의 신이올시다. 그러면 성령은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또한 사랑의 신이심으로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천적애(天的愛)를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오직 그리스도의 신이 내 속에 오셔서만 사람이 참된 사랑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신앙 생활 1932 년 11월호) 이와 같이 그는 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랑의 삶을, 내적으로는 성령에 의한 거듭남을 신앙의 본연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따라가자. 그러나 이러한 이용도의 외침은 단지 개인적 경건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신생적 회개 운동의 이면에는 오히려 세속화되고 형식화되어 신앙의 근원에서 멀어진 당시의 기성 교회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고 있다. “머리 속에 교리와 신조만이 남아 생명없는 姑木같이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저이들의 심령은 생명을 잃어 化石이 되었으니 저의 교리가 어찌 저들을 救하며, 저들의 몸이 교회에 출입한다고 하여 그 영이 어찌 무슨 힘과 기쁨을 얻을 수 있사옵니까? 교회의 표면에 쳐놓은 신성의 막, 평화의 포장을 걷어 치우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쟁, 시기, 냉정...이 횡행하오니 어찌 그 속에서 천국을 찾아보며 또 신성을 보겠나이까? 어서 주의 신령한 손이 임하여 주시고, 진리와 사랑의 성신이 임하여 주옵소서, 아멘.”(편지 1932년 12월) 사실상 그가 회심 운동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교회 비판 및 교회 개혁 사상이 나타난다. “신조에, 조직에, 언론에, 그 무엇의 선구자보다 회개운동의 선구자가 조선에는 필요하다. 갱생을 초래하는 회개, 신생적 회개 운동 없이 다른 모든 운동은 의미가 없다….교계의 선구자는 완전한 신생자라야 한다. 죄에서 죽고 의에서 난 자라야 한다. 성신으로 거듭난 자라야 한다.”(일기 1928년 11월 10일) 이와 같이 그에게는 신생 운동과 교회 개혁 사상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그는 결코 은둔적인 신비가가 아니었다. 그의 신생 운동은 오히려 교회에 대한 사랑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용도 목사만이 이러한 운동을 주창했던 것은 아니다.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 신앙이 형식화되고 교회가 세속화될 때면 언제나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회심 운동이 대두되곤 하였다. 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하고 견제했던 고대 교회의 수도원 운동, 신앙을 공적이 아니라 내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묘사했던 중세의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교리에 대한 지적 승인을 신앙으로 간주했던 정통주의를 비판하면서 성화를 칭의와 함께 신앙의 본질로 삼았던 경건주의 운동, 그리고 최근에는 루터를 재해석하면서 은혜에 의해 거듭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주장했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등이 이러한 회심 운동의 맥을 이어 나갔다. 특히 본회퍼는 39년에 발간된 <그리스도를 따름>(Nachfolge Christi)이란 책에서 루터 이후의 루터교가 ‘오직 은혜로만’이라는 구호에만 집착하고 이러한 종교 개혁적 원리의 전제가 되었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의 행위’를 간과함으로써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4)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 이러한 신앙 운동을 신비주의 운동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윤성범 교수가 지적했듯이, 토마스 아 캠피스, 본회퍼 등을 위시한 신학의 고전들은 물론 바울과 요한마저도 신비주의자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5) 물론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는 신비주의로 규정되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신과의 만남을 존재론적 일치로 주장하는 것을 신비주의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신성화, 엑스타시 등의 현상을 수반하는 신비주의에서 신처럼 되려는 인간의 교만을 읽어낸 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비주의 비판은 정당하다.6) 물론 이용도의 몇몇 글에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주는 구절들이 나타나기는 한다.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바 되고,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 바 되는 이 합일의 원리여, 오 나의 눈아, 주를 바라보라.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라. 잠시라도 딴 눈 팔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 보세. 나의 시선에 잡힌 바 주님은 나의 속에 안주하시리라”(일기 P.140) 

 

4) 참조. D.Bonhoeffer, Nachfolge Christi (Muenchen 1937) 13ff.

5) 참조. 윤성범,“이용도와 십자가 신비주의”,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  pp.236-260. 그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용도는 기독교신 비주의자로 규정하고 싶다. 그것은 바울이 기독교신비주의자였던 것 같다. 이용도를 단순히 신비주의자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결론이다. 그렇다면 바울도 그렇게 생각하여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p.245.

6) 참조. K.Barth, Kichliche Dogmatik Bd.I/2, S.348.

 

이 글에는 물론 ‘신비적 합일’ 등의 정적인 개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주만 바라보고 주만 따라가자는 역동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실제로는 합일이 아니라 교통, 또는 교제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성령과의 만남을 이용도는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 다. 때로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관조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귀절도 몇 몇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다림과 따름의 상태로 묘사된다. 그는 결코 자신이 성령을 소유했다거나 그리스도와 하나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삶은 오히려 끝없는 자기 비판과 순종, 그리고 기다림 그 자체였다. “아 내가 주를 따라가는 증거가 어디 있나이까. 내가 예수를 나의 주로 하여 30 년! 아, 적지 않은 세월! 그 동안에 나는 얼마나 나의 주를 본받았는고!...오, 주여! 당신을 따라가노라 하면서도 갈수록 당신에게서 먼 것만이 나타나오니 나는 어느 때에나 당신의 옷자락을 만져 보며 당신의 신들메에나마 접하여 보리이까?”(편지. 1932년 7월 29일) 이용도는 이와 같이 주를 닮아감으로써 ‘하나님 앞에 선 참된 인간’이 되려 했지만,동시에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항상 잊지 않았다.7)

    물론 신비주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된다. 특히 종교의 본질을 교리나 신조에서 찾아왔던 근대 이전의 종교학을 비판하면서 거룩의 현존에 대한 느낌, 피조물 감정 등의 종교 체험을 종교의 본질로 간주 했던 오토(Rudolf Otto) 이후의 종교학에서는 종교의 이러한 보편적 현상을 신비주의로 명명하고, 동양과 서양의 신비주의를 각각 unio mystica와 communio mystica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학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이용도를 신비주의자로 규정한 변선환 교수가 민경배 교수와는 정 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리 놀란만한 일이 못된다.8) 

 

7) 사실상 성령에 의해 거듭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신처럼 되려는 교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신 앞에서 참된 피조물이 되려는 겸손의 소치일 뿐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으로만 고백하는 민경배 교수에게 예수를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 구원자이며 모범자로 고백했던 기독교 전통이 간과되고 있다. 그리고 민경배 교수가 이용도 비판의 척도로 삼고 있는 계시의 궁극성 또한 예수 안에서 일어난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거듭남의 기준과 한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자는 말이다.

8) 참조. 변선환,“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이용도 목사 관계 문헌집,pp. 141-192.

 

물론 변선환 교수처럼 종교학적 해석 지평 속에서 이용도를 그리스도 신비주의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학적 해석 범주를 이용도에게 적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무리가 있다. 특히 이용도에게 나타나는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를 닮아가지만, 하나님 앞에 선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삼위일체적 사고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를 분리될 수 없지만 혼합되지 않는 것으로 고백하는’ 인격주의적 사고가 이러한 해석 범주로 말미암아 자칫 은폐될 수도 있다. 게다가 성서를 종교 체험의 상징적 표현으로 간주하는 종교학과는 달리 성서를 모든 종교 체험의 기준으로 삼는 이용도의 신학적 방법이 간과될 수도 있다.

 

 

 

    기독교 교의학에서 성령이란 개념은 최근까지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성령은 기독론이나 신론처럼 자신의 독자적인 장을 갖지 못한 채 은총론이나 구원론에서 보충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정도였다. 게다가 성령은 종종 은사와 혼동되고, 심지어는 열광주의의 대명사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이용도의 성령 운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도 신학이나 신앙의 중심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령론이 경시 내지는 왜곡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필리오께 교리를 내세우면서 성령의 자유를 제한시킨 서방 교회의 전통과 성령에 의한 ‘새 계시’를 주장했던 열광주의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따라서 이용도의 주제인 성령론을 현재의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필리오께 교리와 열광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요청된다.

    필리오께 교리 논쟁9)을 이해하기 위해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25,381)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방 교회의 주도 하에 제정된 이 신조 제 3 항(성령론)은 다음과 같다. “주님이시며 살리시는 자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발원하신 분...성령을 믿습니다.” 그러나 라틴의 서방 교회는 희랍어로 되어 있는 원문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가운데 filioque(또한 아들로부터도)란 단어를 삽입하였다. “주님이시며 살리시는 자이시며 아버지와 아들로부터도 발원하신 분...성령을 믿습니다.” 동방 교회는 곧 이러한 필리오께 성령론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로써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9) 이 논쟁에 대해선 특히 다음의 문헌들을 참조하시오. L.Vischer(Hg.), Geist Gottes-Geist Christi. Oekumenische Ueberlegungen  zur Filioque Kontroverse(1981), 25-42; 이성희,성령론(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출판국 1992),187-194.

 

 

서방 교회가 점차 교회 정치와 신학 등에서 주도권을 잡아감에 따라, 필리오께 교리도 서방 교회 전체에 확산되었고, 드디어 11세기에는 교황의 인가를 받게 되었다. 서방 교회는 한 걸 음 더 나아가 동방 교회에게도 그들의 희랍어 신조에 필리오께를 삽입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드디어는 1054년 동방 교 회와 서방 교회가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이 논쟁은 물론 복합적인 동기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맥락에서는 이 논쟁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성령을 받은 분이냐, 아니면 성령을 주시는 분이냐? 성령의 근원을 성부로 보며 예수를 성령에 의해 성령과 하나되었던 존재로 보는 동방 교회는 성령에 의해 거듭나 성령과 하나 되셨던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구원의 삶으로 강조한다. 이에 반해서 성령의 근원을 성부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찾는 서방 교회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모든 성령 체험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에서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자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방 교회가 예수의 생애를 성령이 주체가 되는 삶으로 묘사하는 공관 복음서에 더 의존하고 있다면, 서방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강조하고 성령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 또는 사랑에서 찾는 바울 서신에 더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나타난다. 동방 교회가 성령과 성화 중심의 교회로 발전해 나갔다면, 서방 교회는 성령의 기준을 강조함으로써 점차 성령의 자유를 제한시키는 길을 걷는다. 특히 중세 이후의 가톨릭 교회는 교회 밖의 성령 체험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개신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현존을 설교와 성례전에 한정시키고 말았다. 이로써 개신교회에서는 오직 설교를 통해서만 신앙이 주어지며, 성례전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케 된다는 사상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고 말았다. 이로써 성령의 자유는 철저하게 제한되었으며, 성령은 형식적으로만 언급될 뿐 점차 낯선 존재로 간주되거나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된 부차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열광주의10)는 기독교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열광주의를 단지 무지에서 비롯된 이단으로 간단히 정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열광주의의 역사와 근본 관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에만, 열광주의의 신학적 공헌과 더불어 오류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10) 열광주의에 대해선 다음의 자료들을 참조하시오. K.G.Steck. Luther und die Schwaenner(Muenchen 1955); Hans Kueng, Die Kirche(Freiburg 1967), 230-243.

 

    고대 교회의 몬타누스(Montanus) 운동은 열광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시사해 주는 기독교 최초의 열광주의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 자신이 이 운동에 붙여준 ‘새 예언’이란 이름이다. 그들은 요한복음 16, 12-13-“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에 근거해 성령의 가장 큰 은사를 ‘새 계시’로 보았다. 즉 성령은 성서를 넘어서거나 보완해 주는 새로운 계시를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서가 체험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성서 해석의 기준이 되고, 때로는 성서를 넘어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열광주의의 특색 가운데 하나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성령 체험이 제 아무리 깊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능가할 수는 없으며, 체험이 성서 해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성령 체험의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몬타누스 운동은 이러한 새 계시에 근거해 임박한 세계의 종말을 선포하고 엄격한 회개 운동을 펼쳐 나갔다. 중세에는 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von Fiore. -1202)이 영에 의한 교회 개혁을 주장하면서 열광주의 운동을 펼쳐 나갔다. 요아킴은 유형론적 성서 해석에 기초하면서 역사를 묵시 사상적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역사 해석이 바로 그 유명한 ‘세 세대론’(Dreizeitalterlehre)이다. 즉 회당을 중심으로 한 구약 성서적 성부의 시대에 이어 성직자 중심의 신약 성서적 성자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 시대 이후에는-1260 년 이후-수도사 중심의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이해는 몬타누스의 ‘새 계시’와 맥을 같이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사 이해에서는 성자가 성령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성자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몬타누스와 마찬가지로 종말의 임박성을 강조하고, 당시의 제도적 교회를 영적으로 개혁할 것을 촉구했다.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에서는 토미스 뮌처(Thomas Muentzer. -1525)가 열광주의의 대부로 불리운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지성을 겸비한 수도승이었으며 감동적인 설교자였던 뮌처는 루터의 추천을 얻어 1520 년 쯔비카우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쯔비카우의 예언자들'에게 깊이 빠져 버렸다. 쯔비카우의 예언자들은 성서 말씀 대신에 성령의 직접적인 조명을, 신앙에 의한 칭의 대신에 십자가 경험 및 영혼의 고통 등을 강조했다. 뮌처도 이들 예언자들을 따르면서 루터의 성서 해석을 거부하고 영의 신앙(하나님의 말씀을 내적이며 초자연적인 깨달음, 환상, 꿈 등으로 해석하며, 모든 것을 환상적인 성서 해석과 결부시키는 신앙)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1521년 면직되었고, 보헤미아로 도피해야 했다. 1523년 독일로 돌아온 뮌처는 루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뮌처는 외적 세례가 아니라, 성령에 의한 내적 세례를 강조했다. 그는 세계사의 마지막 시기, 즉 성령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임박한 세계 종말에 대한 기대를 신국 건설의 기대와 결합시켰다. 그는 영주들에게 자신의 이러한 계획을 호소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현존하는 세속의 질서를 신국 건설을 가로막는 악으로 보게 된 그는 사회 혁명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독일 농부들과 손잡고 무력으로 영에 의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는 설교를 통해 농부를 부추겨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자신도 예언자적 지도자로 자처하면서 군대의 선봉에 나섰다. 그는 곧 사로잡혀 고문을 받고 처형되었다. 뮌처는 이와 같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해지만, 열광주의 운동은 오히려 루터를 뛰어넘어 유럽 일대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 이후의 열광주의 운동을 여기서 다 소개할 수 없지만, 금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 운동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운동은 1906 년 로스엔젤레스의 한 집회에서 ‘성령의 불’이 떨어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방언과 신비한 현 상들을 동반한 은사 체험들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은사 체험에 관심을 집중시킨 오순절 운동은 곧 성령 세례를 칭의와 성화 다음에 나타나는 세 번째 성령 체험, 즉 궁극적인 성령의 역사로 간주했다. 이로써 오순절 교회는 성령의 열매와 기준은 사랑이지, 특수한 은사 체험이 아니라는 바울 사상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교회의 성령 운동은 북미와 남미,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에서 수 많은 열성 신자들에 의해 그 맥을 지켜가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열광주의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 봄으로써 열광주의의 특성들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열광주의는 성령 체험에 근거해 성서를 넘어서거나 보완하려는 시도다. 물론 객관적인 성서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전 이해나 선입견을 가지고 성서를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성령 체험의 빛에서 성서를 해석하는 것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서의 빛에서 자신의 체험을 반성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는 성서 해석학의 일반 법칙이 열광주의에서는 간과되어 있다. 즉 상호적인 순한 운동을 무시한 일방적인 주관적 운동이 문제된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열광주의는 성령 체험에 근거해 세계 내의 상대적 질서를-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간에-거부하려는 시도다. 물론 이러한 열광주의의 특징들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새 계시’는 그것이 참된 계시라 할지라도 예수가 선포하며 행하셨던 것과 초대 교회가 증언하고 실천에 옮겼던 것을 능가하지 못하며, 기껏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증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 세계 내의 상대적 질서들(상식, 자연 법, 전통 등등)을 무시하는 열광주의의 태도도 문제다. 물론 성서는 이러한 상대적 질서들을 불변하는 신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항상 복음의 빛에서 이러한 질서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이 이러한 상대적 질서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뛰어 넘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마지막 날까지 이 세계 속에 살아야 하며, 바로 이 세계 속에서 복음의 빛에 의거해 이러한 상대적인 질서를 개혁해 나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과 예수의 종말론적 선포를 부각 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신앙, 거듭나는 신앙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세속화 경직화를 비판한 것은 정당하다. 사실상 열광주의 운동은 교회 생활과 질서가 너무 경직되고 세속화될 때 일어났다. 따라서 열광주의 운동이 가져 온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에 성령운동 그 자체를 위축시키거나 정죄하는 것은 복음에 어긋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형성함을 인식하고 올바른 성령론 확립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서방 교회의 성령론과 열광주의를 고찰하면서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는 이용도의 신앙 운동이 성서의 신앙을 왜곡시키거나 성서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해 왔다. 사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자’는 이용도의 외침은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말하려 했던 성서 전통을 조명해 주는 예언자적 목소리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올바르게 이해되지 못한 것은 그에게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와 성령을 분리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고, 성령을 구원과 무관한 일종의 부차적인 것으로 밖에 보지 않았던 서방 교회의 잘못된 발전 과정 속에 사로잡혀 복음에 대한 균형있는 시각을 상실했던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 사실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 전통에서도 성령을 구원의 주체로 간주했다. 루터는 은총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신앙을 통해서 (gratis, 

propter Christus, per fidem)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으며, 그 이후의 루터교 정통주의에서도 구원의 원인을 하나님의 은총(내적 원인),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외적 원인),신앙(중재적 원인)으로 설명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졌으며 이러한 성령을 신뢰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의 길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론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그와 하나된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종말의 영이며 구원의 영인 성령이 선사되었다는 신약 성서의 사상과 일치한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교회의 성례전, 특히 설교에 한정시키고, 심지어는 일치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성령의 자유하심을 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설교 그 자체를 도덕이나 지식을 전달해 주는 공허한 구원의 매개로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사실상 성령을 구원의 길에서 배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지적으로 인정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다소 애매한 교리를 창출해 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즉 성서 신앙의 왜곡과 이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이용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는 왜곡된 발전에 사로잡혀 구원의 주체로서의 성령을 간과하고 이로써 구원을 상실하고만 당시 한국 교회에게 성령과 성령에 의한 거듭남이 신앙과 구원의 핵심임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성서를 뛰어넘는 새 계시를 주장하는 열광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성령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 그는 또한 자신이 완전에 이르렀다거나 성령과의 하나됨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겸손과 끝없는 자기 비관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직 순종과 기다림, 그리고 따름 만이 현재를 규정할 뿐이었다. 그는 ‘구원이 이미 지금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초대 교회 종말론의 대전제를 항상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기준과 동시에 한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그로 하여금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은사에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 안에 있는 한, 모든 은사를 포용했다. 즉 사랑 안에서 은사의 다양성과 성령의 자유함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개방성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래는 선생의 마음을 가졌었는 고로 나의 배우고 깨달은 것이 극히 적었노라. 동시에 나는 교만에 빠졌었노라. 이는 큰 마귀였도다. 나는 이제 깨달았노라. 저 어린애, 걸인, 천녀, 곤충, 금수, 초목! 이는 다 나의 선생임을 깨달았노라. 귀인과 지식은 물론이고! 나는 이제부터 교만한 선생이 아 니로라. 다만 겸비한 학생이로다. 이제부터 배우는 마음으로 모든 것에 대하여 무릎을 꿇리라. 그리고 절하며 배우리라.”(일기 1929.12.19) 이러한 그의 포용성은 분명 성령의 자유를 위축시킨 개신교 전통에는 위배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를 이단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협소화된 전통이나 교리가 상이한 은사를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의 자유함을 대치할 수는 없었다. 굳이 그를 이단으로 말해야 한다면, 신앙의 근원을 비쳐주는 창조적 이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우리가 이미 열광주의의 두 번째 특징을 고찰하면서 암시했듯이, 그에게는 세계 내의 상대적 질서가 ‘성령에 의해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상대적 질서들은 신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서도 안되지만, 신앙과 무관한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용도와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본 본회퍼가 후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궁극 이전의 세계 속에 살면서 궁극적인 것을 바라는 것이지 궁극 이전의 세계를 뛰어넘어 궁극적인 세계 속에 안주할 수 만은 없다.11) 달리 말하면, 이성과 상식, 그리고 기존의 질서들은 결코 복음의 영역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복음의 빛에서 수정되고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즉 “성령에 의해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자”는 궁극적인 목적과 이 세계의 상대적 질서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긴장이 이용도에게는 간과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이 절망적이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이용도가 새로운 세계에서 보다 오래 살았더라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사실 이용도는 그의 동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음! 이것만이 나의 수단이요 방법이요 원리라고 할까! 그리하여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하게 돌진하려는 것 뿐이다. 어느 날이든지 나의 빛없는 죽음! 그것이 나의 완성일 것이다. 형아,나는 理없이 光없이 죽으려 한다. 뒤에 理있이 光있이 싸울 사자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無 理하게 죽을께 형은 有 理하게 살아주지 않으려나! 나는 법 없이 조리 없는 운동에 제물이 되거든 형은 법적으로 조리있게 일하여 다구! 이를 위하여 나는 먼저 떨어져 죽은 적은 밀알 한 알갱이가 되려 하노라”(편지 1932.4.12)

 

11) 참조. D.Bonhoeffer, Ethik, 75-93.

 

 

 

    우리는 성령론의 빛에서 이용도을 보고, 이용도의 빛에서 성령론을 보다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드러난 몇 가지 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겠다.

 

1.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부각되어야 한다. 성령을 은사에 한정시킨 적도 있었지만, 성령은 본래 개인의 거듭남과 교회 및 역사의 창조적 주체다. 성서가 증언하는 성령은 구약의 창조와 출애굽에서는 생명과 해방의 주체로, 예수의 생애에서는 예수의 선포와 구속사적 행위의 주체로, 그리고 예수의 부활 이후에는 마지막 때까지 인간과 함께 하며 인간을 구원과 신앙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성령은 기독교 신앙의 주 체로 부각되어야 한다. 성령 없는 교회는 세속화에 빠지고 만다.

 

2. 성령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그와 하나된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우 리에게 선사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성령 체험의 기준과 한계가 된다.

 

3. 성령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성령은 임의적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성령은 오히려 불고 싶은 곳에서 불고 불고 싶을 때 부시는 자유의 영이시다. 이러한 성령의 자유를 인정할 때에만,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랑 안에서 달리 믿거나 달리 생각하는 사 람에게 개방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4. 성령에 의해 거듭나는 삶은 그러나 이 세계 내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삶이다. 따라서 성령과 이 세계 내의 상대적 질서들의 긴장 관계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기독교적 실존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령에 의한 거듭남이다. 그러나 개인의 거듭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계 내의 상대적 질서들이 동시에 복음의 빛에서 비쳐지고 교정되지 않으면 개인의 거듭남 또한 피상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과제

- 이용도목사의 신학의 새로운 조명 -

 

 

 

이재정 박사

 

 

Ⅰ. 새로운 시대의 변화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 3000년에 접어드는 이 시대는 20세기 역사를 형성해 왔던 구조, 이념, 전통 그리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예견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에 따라 술도 새로워 져야 하고 부대도 새로워 져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변화의 징조를 도처에서 읽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완전히 열려진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복합다양한 문화현상 (Complexity)과 국제화 현상을 들 수 있다. 20세기 의 특징이 정치적이던, 경제적이던, 이념적이던, 또는 종교적이던 어떤 기성 (Established)의 틀 속에 집어넣으려 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화현상은 단순한 다양성과 국지적인 관계를 넘어 국제적으로 상호 연관 아래 변화를 일으키는 복합다양성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화보다는 충돌 현상을, 단일화보다는 복합화가 특징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과거에는 흔히 교단 - 교회로 연결되어 교회는 교단의 신학이나 전통 또는 행정적 통제를 벗어나 각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의 새로운 변화를 여러 면에서 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형태의 교단 또는 이에 준하는 형태의 교회집단이 형성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이단 시되어 오거나 신흥종교로 분류되어 오던 것이 차츰 그 기반을 사회적으로 잡아가고 있어서 기성 교단에게 새로운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이제까지 서구신학을 그대로 도입한 수입신학 또는 전통신학을 벗어나 한국의 신학, 한국교회나 한국종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예배 양식에 있어서도 과거의 획일적이며 천편일률적인 예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음악의 대명사처럼 되어 온 찬송가나 오르간 반주도 차츰 한국의 전통 음악을 바탕으로 작곡된 우리의 찬송가와 우리 악기가 상당히 선호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국내외의 교회일치운동의 정신이나 방법, 구조와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에큐메 니칼 운동이나 에큐메니칼 정신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운동”이라는 형태로 이어져 왔던 흐름 자체가 바뀌어져서 보다 총체적인 삶의 표현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해 왔던 “외향적”인 교회의 일치, 대화, 교류 또는 연대로부터 “내면적”인 세계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폭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위로부터”의 정치적인 연대관계가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신앙적인 연대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보수화의 경향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특징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선 문화 현상적으로 다원화, 복합화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것은 20세기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이념적인 분할이나 대결, 인종적인 차별이나 대립, 국가간의 무력에 의한 경쟁과 위협의 시대가 가고 상호간에 존중과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다원화의 질서시대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미 우리는 산업이나 문화 또는 삶의 양식 등 여러 면에서 다양성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획일적이며 자기 중심의 시대는 지나간 옛것이 되어버렸다. 이와 함께 새 시대는 개방성을 그 특징으로 할 것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정보통신혁명 시대에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제까지 우리가 정보를 위하여 활용해 온 활자매체 또는 전파매체로부터 새로운 정보전달 수단이 뉴 미디어로서 컴퓨터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제2의 혁명으로 정보 통신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1) 그래서 이제는 정보의 독점도 불가능하고 자신의 정보만 가지고 사물을 분석하거나 판단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볼 때 긍정적으로는 속도의 개념이나 공간의 관계가 사 라지고 엄청나게 편리하고 용이한 사회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부정적인 시각으로는 포스트 모던 사회로 전이하면서 과거의 모든 전통과 구조, 그리고 지식까지도 해체하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 일어나 면서 탈 신성화와 개인화가 심화된다는 것이다.2) 

 

1) 이러한 정보 통신 혁명은 매체의 혁신 즉 광통신이나 광섬유, 그리고 인공위성의 통신수단을 보편화시키면서 산업구조와 유통 및 서비스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 박 문수,“정보사회의 윤리문제와 신앙생활양식,” 신학사상,95/가을, pp. 35-37.

 

 

종합적으로 볼 때 개방화는 과거로부터 새로운 현상으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변화이다. 또 하나의 관점에서 새 시대는 통합화 (Integrity)의 현상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현상이 상호 연관 속에서 발생하고 또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합리성과 효율성과 생산성이 새로운 차원에서 추구되고 또 인간관계도 새로운 차원에서 변화될 수밖에 없다. 즉 모든 사람들이 과거와 같은 차별이나 구별로부터 벗어나 동등하게 참여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따른 새로운 교회형태는 이미 케이블 텔레비전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전자교회(Electronic Church)가 출현하였고 이것이 기성교회에 도전하면서 파급되어 갔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것보다 더 발전하여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 (Internet) 망을 이용한 통신교회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최근 영국성공회는 인터넷을 통한 신앙적 자료의 공개와 함께 이러한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자우편으로 고 해성사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곧 보편화될 기세에 있다. 이것은 교파주의로 대립하고 갈라져 있었던 교회가 차츰 국제적으로 열린 교회의 현상이 이루면서 지역교회 중심의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 나가게 될 것이며,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다만 평신도와 성직자의 역할이 구별되는 정도로 통합되어 갈 것이고, 남성 중심의 교회에서 여성과 함께 나누는 교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교회는 다양화, 개방화, 그리고 통합화의 과정을 가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Ⅱ. 새로운 시대의 교회의 과제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난 세기 동안에 한국의 교회는 성장 일로를 걸어 왔다. 복음화라는 말이 교회의 목적이었고 교회의 내용이었으며 교회의 활동의 중심이 되어 왔다. 한국의 교회는 복음화라는 이름 아래 철저하게 몇 가지 중요한 성격을 변함없는 전통으로 삼아왔다. 첫째는, 서구적 전통의 교회라는 점이다. 한국의 교회는 정통주의 또는 신정통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서구교회의 연장에 서 왔다. 따라서 한국의 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가져 올 수 있었던 반면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적 상황에서 기독교가 재해석되고 기독교의 과제를 찾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경향은 서구화를 지지하여 왔고 이러한 서구화를 바탕으로 한 여러 요소들이 그대로 교회의 구성 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교회는 토착화를 지향하지 못하고 서구교회의 오류까지도 그대로 전승하였다. 둘째는, 기독교가 자본주의의 이념과 반공이념으로 극단적인 길을 걸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예언자적인 길을 가기보다는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언제나 지배자와 가진 자의 편에 서 왔다는 것을 반증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분단의 사고를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국의 교회는 반공과 친미주의를 바탕으로 일정한 정도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하면서도 보수주의적인 입장에 서왔다. 셋째로, 한국의 교회는 교권 중심적 교파주의가 그 특색을 이루어 왔다. 이것은 선교=교회라는 도식을 바꾸어서 교회=권위=성장이라는 도식 아래 교회를 권위주의에 입각한 “위로부터”의 교회를 만들어 왔고 이러한 교권주의가 강한 교회일수록 크게 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한국의 교회는 교파를 불문하고 성장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고 성장을 하는 카리스마적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하나의 모델이 되어 왔다. 그것은 철저하게 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교회의 형태를 만들어 왔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국의 교회는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자기 변혁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이것은 곧 위에 언급한 과거의 잘못된 전통을 벗어나 한국의 교회를 갱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탈 서구화, 탈 이념화, 탈 교권화를 통하여 새로운 교회의 형태를 갖추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는 교회가 어떻게 사회 변혁에 기여하여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느냐라는 것이다. 사실 이 과제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사명으로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오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에는 아주 미흡하였다. 때로는 교조적인 교리와 법을 내세워 문제 자체가 호도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신비주의에 의하여 왜곡되기도 하였으며,때로는 복음화라는 이름 아래 묻혀서 성장 그 자체가 문제의 해결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시대의 교회는 어떻게 변화하여야 하는가. 우선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시대적인 변화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과제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다양한 교회의 신학, 다양한 교회의 구성과 다양한 예배의 형태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시대와 그 지역과 그 상황의 표현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것을 표출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지역신학(Local Theology)에 의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 둘째, 새로운 교회는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다양한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성(Comprehensiveness)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가능해진다. 이것은 극단적인 상황을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단의 상황을 포용하는 공동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4) 셋째, 신학은 부분적인 편린이 아니라 통전적인 통합성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것은 성서의 해석으로부터 선교적 과제의 발굴에 이르기까지 역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을 총체적인 도구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성서의 사건을 신비적 사건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사회경제적 분석의 틀로 재해석하지 않으면 성서의 통전적인 이해는 어려워지며 “인간”의 문제에 접근 자체가 불가 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민족의 과제를 교회의 과제로 풀어 가며 어떻게 분열된 교회를 하나의 목적 즉 하나님의 선교로 이끌어 가고 또 확실한 구원의 역사를 선포해 갈 수 있느냐라는 것이 과제가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과거의 역사, 즉 이용도 목사의 신학 (信學) 에서 하나의 물길로 이어져 온 경험을 분석하여 미래를 위한 지혜로 삼고자 한다.5) 그의 신학은 비록 1930년대를 전후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한번도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한 채 역사에 묻혀 왔기 때문이며 그의 선각적인 신학은 역시 21세기에도 한국의 교회가 수용해야 할 유효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용도 목사의 신학과 교회 운동은 당시의 교회 상 황에서 하나의 역류 (逆流)와 같은 것이었지만 그의 사상을 다시 재해 석하여 한국 교회의 오류를 바로 잡고 새로운 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한 이론을 밝힌다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3) 서구의 신학이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의 신학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의 신학이 발전해 온 것처럼 우리는 이제 우리의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믿음과 경험의 성찰에 의한 언어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4) 이 주장은 종교개혁 당시 영국의 Richard Hooker가 주장한 Via Media 신학에서 잘 읽을 수 있으며 이것은 성공회의 기본 정신으로 이어져 왔고 마침내 William Temple에 의하여 세계교회일치 운동의 정신으로 발전되어 왔다. Hooker에 의하면 이성에 의한 Consensus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교회이며 교회 신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변종호 목사는 이용도목사의 神學을 信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표현하고 있다. 이용도목사전집 제6권 “용도신학”, 장안문화사,1975, 서문.

 

 

 

Ⅲ. 이용도 신학의 실체와 신학적 교훈

 

    흔히 이용도 목사의 신학을 신비주의 또는 열광주의 신학으로 규정하면서, 민경배 교수는 그의 신앙과 삶을 “영과 육의 변증법적 이원론” 이라고 말하고 있다.6) 그러나 우리는 먼저 이용도의 신학을 이렇게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7) 그가 “영혼생활과 사상생활과 육신생활의 3층집의 완전한 건설”을 외친 것이나, 절대적으로 주님에게 의지하는 “신비적” 신앙을 통하여 그의 신학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에서 이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그의 신앙과 선포는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역사 한 가운데에서 벌린 ‘새로운’ 신앙과 교회 운동으로서 그것은 일종의 참여의 신학이나 해방의 신학이라고 규정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과 신앙운동은 철저하게 민족적 과제로부터 출발하여 민족교회 운동으로 발전하였고 그의 열광주의는 예수의 카리스마에 기초한 신앙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 의 신학의 출발은 고난의 예수, 역사적 예수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 에서 그의 기독론은 “아래로부터”의 예수를 말하고 있다.

 

    “현대의 교회는『괴이한 예수』를 요구하매 현대 목사는 괴이 한 예수를 전한다.

    참 예수가 오시면 피살될 수밖에 없다. 참 예수는 저희들이 죽여버리고 말았구나, 그리고 죄의 요구대로 마귀를 예수와 같이 가장하여 가지고 선전하는구나.

    화 있을진저 현대 교회여! 저희의 요구하는 예수는 육의 예수, 榮의 예수, 富의 예수, 高의 예수였고, 예수의 예수는 靈의 예수, 賤의 예수, 貧의 예수, 卑의 예수였나이다. 예수를 요구하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찾으라. 사람의 예수 - 너희가 만들어 세운 예수 말고! 예수를 갖다가 너희 마음에 맞게 할 것이 아니라 너를 갖다가 예수에게 맞게 할 것이었느니라."8)

 

6) 변종호 편,季龍道牧師硏究 40年,서울 신생관,1973, pp. 13-41,민경배,“季龍道神學이 聖靈運動에 미친 影響,” p.61.

7) 이러한 비판은 정희수의 논문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민족교회이 며 토착교회인 예수교회를 신비주의라는 단편적인 해석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용도가 전한 예수교회의 전통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희수, “목자 없는 양떼,혹은 줏대 없는 양떼,” 예수,1995/여름 (복간 13호),p. 17.

8) 변 종호 편저,龍道信學,서울,장안문화사, 1993, p. 21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용도의 출발은 서구교회가 전승해 준 기성의 기독교나 기성의 서구 신학에서 출발하지 않고 전적으로 이 땅에서 경험한 신앙적 바탕에서 초교파로서의 “개방된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기성교회에 대한 부정이거나 배타적으로 배척하려는 것이기보다는 교회의 혁신을 통하여 참다운 예수의 정신을 실현해 보자 는 탈 조직 (Non-institutional Church)의 교회이며 행위 (Praxis)의 교회를 주장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이상은 1933년 6월 3일에 발표된 “예수교회 창립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교회의 내적인 개혁’’ 을 위하여 교회 설립을 한다는 정신을 말하고 있다.

 

“만유가 혁신되리라는 것이 인생의 공통된 이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워지고, 사회가 새로워지고, 개성이 새로워지기를 어제도 오늘도 간단없이 바라고 기다린다. 예수로써 만유가 혁신 되리라는 것은 예수인의 이상이다. 그래서 예수로써 선차교회가 새로워지는 일을 누구가 간절히 바라지 않을고? 그러나 이상하다. 교회는 그 내용이 새로워지지 않고 도리어 새롭기를 바라는 분자를 험기하여 혹은 구박하여 혹은 파문하니,마침내 분리를 면치 못하여 결국 면목 다른 새 교회의 성립을 피치 못하게 되었나니,예수교회의 설립의 의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9) 

 

    이러한 교회 설립 정신은 이미 선교사들에 의하여 전승되어 “서구교회”로서 이식된 한국의 교회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이며 교파주의를 떠나 민족교회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이 민족 교회론이 흔히 일컬어 온 바있는 ‘토착화'라는 개념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10) 우리가 토착화를 말할 때 탈 선교사(Indigenisation)의 선교라던가, 문화적 융합 (In-

cultumtion)의 과정이라던가, 나아가 종교적 혼합 형성 (Religious Syncretism)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지만 이용도의 토착화는 민족교회의 형성론이 오늘의 상황적 교회의 변화

(Contextualization)를 도모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것을 유동식은 “한국적인 신앙운동과 서구적인 전통주의에 젖은 기성교회와의 충돌 속에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본다면 이용도는 한국인의 영성으로부터 예수의 해방의 선교운동을 접목시켜 민족적인 해방 (그것이 비록 영적인 주장이었다 하더라도)과 함께 예수의 삶의 형태를 따라 민족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 가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11)

 

  9) 예수교회 중앙선도원,예수,1934/제1호,p. 27.

10) 토착화란 본래 식민통치의 하나의 방법으로서 식민정부가 직접 통치를 피하고 현지인을 대리 통치인으로 세우는 정치적 토착론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11) 유동식,한국감리교사상사,서울,전망사,1993, pp, 232-3

 

 

    민경배는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고난받는 예수 - 신비주의”로 설명하고 있다.12) 이용도가 “고난의 예수”를 그의 신비주의의 근거를 삼고 있는 것은 곧 그가 고난의 참여를 기본 신앙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용도는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신앙의 길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비통하게 십자가의 벌거벗은 몸으로 최후를 마치신 그 예수를 따라갈 뿐이다. 하여간 우리의 피 한 방울이 떨어지는 날이라야 우리의 일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자신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날에 우리의 완성은 있는 것이다.”13) 

 

    여기에서 우리는 이용도의 신비주의가 “신비” 그 자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가 곧 “완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목표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참여”의 의미를 넘어 서서 예수와의 “일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예수의 완성’’을 내다보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적 종말론이 아니라 고난의 종말론으로서 역사의 변혁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십자가의 고난”만이 길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이러한 강조는 결국 신앙 자체를 교조화하고 교회를 조직화함으로 함으로써 고난의 역사 현장에서 고난을 외면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그의 저항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머릿속에 교리와 신조만이 생명 없는 고목같이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저희들의 심령은 생명을 잃어 화석이 되었으니 저희의 교리가 어찌 저희를 구하며, 저희의 몸이 교회에 출입한다고 하여 그 영에 어찌 무슨 힘과 기쁨을 얻을 수 있사옵니까.” 따라서 그의 신비주의는 교조적인 신앙이 아니라 철저하게 오늘의 고난의 현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기쁨과 힘의 신앙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12) 민경배,“이 용도의 신비주의 연구,’’ 이 용도목사관계문헌집,서울,장 안문화사,1993, p. 49

13) 이용도서간집,pp. 63-4.

 

 

이러한 배경에는 그가 3.1 운동 당시에 투옥되면서 겪은 고난의 경험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따라서 그의 신비주의는 민족적인 고난과 자신의 고난의 경험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감상적 신비주의”나 “범신론적 신비주의’’로 이해하거나 중세기적 신비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14) 그에게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 캠피스가 신학적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예수의 고난을 이 역사의 한가운데서 보려 했고 그것을 진솔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변선환이 하나의 도식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이용도는 “신앙 - 기도 - 사랑”의 동적인 Praxis의 信學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용도가 이끌어 간 부흥운동은 열광적 신앙운동이라기보다는 교회 개혁 내지는 화석화된 개인적 신앙을 실천적 신앙으로 바꾸려는 노력이었으며, 교회의 양적 성장이라던가 체계화가 아니라,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일이었다. 특히 교회 부흥운동에 있어서 그의 관점은 교회의 역사화에 있다고 보아야 옳다.

 

    교회가 革命 文 復興 運動에 의하여 前進 文 成長한 것은 역사의 過程이다. 생명체인 교회가 衰期에 들면 부흥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고 基한 腐敗에 墮落하되 革命의 깃발이 일지 아니하면 病이거나 死이다. 금일의 교회는 亡하는 靈魂을 향하여 곡하지도 아니하고 生命의 기쁨을 어디 춤추지도 아니하니 我朝 鮮敎會는 자느냐? 病들었느냐? 불러도 대답이 없고 외쳐도 일어나지 아니하니 我朝鮮敎會는 자는 것이다. 병든 것이다. 建設의 初代에서 날뛰어야 할 朝鮮敎會는 어느새 벌써 잠이 드는가.

어린아이 같이 充溢한 生命方에 時時刻刻으로 成長할 朝鮮敎會는 어찌 그리도 死를 향한 老人처럼 無氣方한가. 愛我朝鮮敎會 는 이 病的狀態에서 革命의 手術을 받으려는가 復興의 治療를 받으려는가. 15) 

 

    그에게 있어서 회개나 부흥은 곧 고난의 현장에서 고난의 예수를 발견하고 그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 즉 고난의 감당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끊임없는 선포는 회개 즉 역사의 고난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며 다른 말로 표현해서 혁명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4) 변선환,“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이용도목사관계문헌집,서 울,장안문화사,1993, pp. 153-4.

15) 신앙생활,3/4, 1934, p.3.

 

    이용도에게 있어서는 이런 관점에서 고난받는 “朝鮮敎會"  만이 참 교회인 것이며 역사의 고난을 회피하는 “영적’’인 기성교회는 결코 참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것은 그가 기성교회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사랑”하면서 새로운 교회로의 변혁과 부흥을 기대한 것이다. 기성의 교회들은 그를 버렸지만 이용도는 끝까지 교회를 향하여 그의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용도의 신학은 고난의 신앙, 역사 참여의 신학, 민족의 교회, 그리고 교파와 종파를 초월한 예수의 십자가에 일치하려는 화해의 실천이 중심이었다. 그는 한국의 정치, 사회, 종교 상황 속에서 역사적 예수를 고백하려 했고 또 그 역사적 예수와의 일치를 호소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한국의 교회가 실천해야 할 미완의 信學을 보여 준 것이다.

 

 

Ⅳ. 결  론

 

    21세기의 변화를 내다보면서 과연 이용도의 신학이 무슨 단서를 줄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이용도의 신학이 1930년대를 전후한 상황에서 형성된 것이고 기성교회에 의하여 매도되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그의 신학에서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예수의 십자가 즉, 사랑과 화해와 일치의 새 역사를 내다볼 수 있다. 21세기의 고도의 정보화 시대에 특징이 될 다양성 - 개방성 - 통합성이란 결국 예수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 - 화해 - 일치의 도식에서만이 “완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교회답게 변혁시키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용도의 신학을 새로운 틀에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직도 민족 분단과 대결, 그리고 정치적 갈등의 상황에서 교회가 교회중심주의와 교권주의로 빠져 버리고 성서의 이해가 성서 문자주의로 왜곡되어 역사와 유리되어 있는 신앙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용도의 시대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고 교회가 무엇을 해 왔는가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교회는 특히 한국의 교회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 교회는 다시 이용도 목사의 예언적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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