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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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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09-07 13:37 조회1,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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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회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


 


 

 

 

 누혈(淚血)의 신학과 한국적 영성

-시무언 이용도의 신학적 지평


 

 

 



일 시 : 1999년 10월 25일(월요일) 늦은 7시

장 소 :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4층 제2연수실




 


주  최 / 이용도 신앙과 사상 연구회

  원 / 예  수   교  회   공  의  회 


 



● 알        림  

 

 

1. 바쁘신 중에도 제6회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에 참석하여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

    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모임을 사랑해 주시고 관심가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 원고를 준비해주시고 발표하여주신 정희수 박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3. 2000년은 시무언 이용도 목사 탄신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서 본 연구회와 에수교회

   공의회에서 공동으로 기념 행사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협조 그리고 기도 부탁 드립

   니다.

 

4. 그동안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을 통해서 발표되었던 글들과 1930년대 한국에 미국 선교사

    자격으로 오셔서 이용도 목사와 함께 생활했고, 선교활동을 했던 피도스목사(Peters. Victor

    Wellington) The Korea Mission Field 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Simeon a Korean Christian

    Mystic"의 완역을 “이용도의 영성과 예수운동” (박종수 번역, 강남대 신학과 교수)이라는 책자

    로 성서연구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아직 구입하지 못하신 분들은 접수대에 가셔서 구입하여 주

    시기 바랍니다.

 

5. 오늘 우리가 보고있는 이용도 목사님 초상화는 미국에 계시는 피도스목사님(Peters. Victor

    Wellington)께서 직접 그려주신 것입니다. 피도스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순 서



 사 회 / 박 종 수  박 사

(본 연구회 총무) 

 

 

개     회     사  ------------------------------------------- 사     회     자


 

기              도  ------------------------------------------- 이 경 삼 목사

                                                                                (예수교회 공의회 의장)

 

인     사     말  ------------------------------------------- 유 동 식 박사

                                                                                            (본 연구회 회장)

 

 

강              연  ------------------------------------------- 정 희 수 박사 

                                                                         (강남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누혈(淚血)의 신학과 한국적 영성

                         시무언 이용도의 신학적 지평"

 

 

 

질  의  응  답  ------------------------------------------- 다      같     이

 

 

 

 

알              림   ------------------------------------------ 사     회     자

 

 

폐  회  기  도   ------------------------------------------ 김 영 철 목 사

                                                                                      (본 연구회 고문)

 

 

 

 누혈(淚血)의 신학과 한국적 영성

-시무언 이용도의 신학적 지평


 

        1. 머리글


        2. 생애와 행적 : 상처 입은 이용도


        3. 누혈(淚血)-눈물과 피-의 신학

              1) 누혈(淚血)의 신학:전제와 지평

               2) 영의 신학화로서의 누혈의 신학

               3) 천적애의 실천모형으로서의 누혈(淚血)           

    

        4. 한국적 영성(靈性)과 이용도 신학

              1) 무(無)와 공(空),그리고 십자가

                 2) 여성성의 편만과 신학의 재구성

                 3) 생태학적 조화와 생명 신학

 

 

 

 

 

 

정 희 수 박사

(강남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1. 머리글


                                           "십자가를 지고 말없이 누혈(淚血)을 쏟으시매

                                            못난놈 하여 저희의 하나님을 버리었구나

                                            이적을 행하심은 저희를 사랑 하심이요

                                            설교를 베푸심도 저희를 사랑 하심이요

                                            눈물로 기도 하심은 저희를 사랑 하심이요"1)


    이용도 목사(1901.4. 6 - 1933.10. 2)는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복음(福音)과 시대 정신을 자신의 독특한 성찰과 체험을 통하여 연결시킨 영적인 지도자였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식민시대의 민족적인 문제들과 씨름하였으며, 한국적인 심성(心性)과 기독교 영성 (靈性)의 창조적인 만남 속에서 그의 생애는 진하게 헌신되었다. 짧은 인생의 여정을 살다 가셨지만, 그 행적 속에는 다양한 변화와 고난의 흔적들로 산적되어 있다. 그의 저작과 일기, 그리고 서간문들은 문체에 있어서도 다양하지만, 그의 고백적인 세계와 신학적인 상상력은 체험을 중심으로한 신비적(神秘的)이고 밀의적(密儀的)인 요소들이 있어 사상을 정리하는 임무는 단순치 않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저작들은 깊은 영적인 체험들과 열정적인 증언들로 가득하여 적극적인 면에서 신학화 할 수 있는 전거가 된다. 이는 한 국교회와 신학이 새롭게 우리들의 사명과 책임을 진작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영(靈)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그의 신앙 체험에 대한 증언은 비교적 짧은 기간의 헌신이었으나 교회 현실의 갱신과 부흥을 향한 눈물과 피-누혈(淚血)-의 행적이었다. 식민통치의 억압과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팽창으로 인하여, 유린당하던 민족적인 부정의(不正義)의 현실은 냉철한 지성의 인격, 이용도에게 있어서 아픔이었고 도전과 항거의 대상이었다.

    가족적인 환경과 가난, 그리고 절실하게 닥쳐왔던 병고(病苦)등은 심리적인 내면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갈등하고 씨름해야 했던 어두운 고난의 세계였다. 그는 역사적인 현실과 내면의 상처들을 신앙적인 삶으로써 극복하였다. 예수 신앙을 통하여 자기변혁 (self-transformation)을 도모하고 교육과 부흥운동을 통하여 한국 교회을 위해 헌신하였다. 개인적인 여정을 통합하면 이용도는 상처받은 치유자(a wounded healer)로서의 목자적인 삶을 사셨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상처의 면목들을 정리하고, 그의 신학적인 지평을 한국인의 심성과 깊숙이 밀착되어 성숙한 언어로 표현된 누혈(漏血)의 신학(Theology of tear and blood)으로 이름해 본다. 이용도의 삶과 목회적 여정이 누혈의 삶과 신학으로 풀어지고, 그 속에 한국적인 영성의 언어를 깨알같이 진술하고 있음을 기술하고자 한다.


1) 이용도 <이용도목사 서간집> 이용도목사 전집 제1권, 변종호 편저, 장안출판사, 1993, 62쪽. 이후에 인용되는 이용도목사

    전집 10권은 요약하여 <서간집>, <목사전>, <일기>, <연구40 년>,<저술집>, <신학(信學)>, <관계문헌집>등으로

    표기한다.


    새 천년 시대의 시작을 눈앞에 두고 한국교회는 이 사회로부터 새로운 도전과 기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새 천년 시대의 목전에서 시무언 이용도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다시 평가하여 그분의 복직을 결의한 것은 참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1933년 3 월 15일 목사직 휴직 처분과 그 해 7월 목사직 사면 청원이라는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66년만에 감리교회가 그의 복직 절차를 결의한 것이다.2) 이것은 이단시비로 인하여 가리워졌던 이용도목사의 공적인 신분에 교정을 가한 역사교정 작업의 시작이다. 이용도의 신학사상이 새천년을 맞는 한국교회에게 이정표가 되기를 숙원한다.


“오늘의 교회는 참 부흥을 갈망한다. 부흥이 있을 때 교회가 교회 노릇을 할 수가 있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악마의 참부모가 된다. ....한국교회에는 부흥이 있어야겠다. 왜 부흥이 필

 요한고 하니 한국교회는 점점 무력해간다. 점점 속화해간다.”3)

 

 





 


2. 생애와 행적: 상처입은 이용도


    이용도의 생애 전반은 내면적인 갈등과 자기분리 요인들과의 끝없는 대결이었다. 그것은 성장하면서 내재되었던 고난과 아픔의 무의식 세계와의 대면이었을 것이다. 유년기의 내면적인 갈등과 트라우마는 아버지와 관계에서 기인된다. 근대화의 태동기를 거치면서 가부장 중심적인 문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일어난 것은 무엇보다도 여권의 신장이었다. 유교적 봉건체제의 해체를 가져온 서구문화의 바람은 기독교의 선교로 점진적인 대치 현상이 빚어지는 상황이었다.

    이용도의 생애에 대한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성백걸, 정학진, 그리고 인영남 제씨의 논문이다. 성백걸은 역사신학적인 입장에서 생애의 연표와 전기를 다루었고, 정학진은 갈등과 대립구조를 극복하고 하나됨이라는 측면에서 생애와 그의 문학세계를 다루고 있다. 인영남은 칼 융의 개성화 과정에서 이용도의 생애와 종교체험을 분석하였다.4)

생애에 대한 연구는 전기의 역사적인 연구와 심리 분석등을 통하여 보다 이용도의 내면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였던 점에서 가치있는 작업이다.


2) 기독교대한감리회 23차 총회(1998)에서 이용도목사의 명예복직을 결의함에 따라, 19차 서울연 회에서 복직을 결의.

3) <일기>, 1927.5.2. 32쪽

4) 성백걸,사랑과 정의의 사도, 이용도의 삶과 사상: 역사신학적인 접근,<이용도와 한국교회의 개 혁운동> 장안문화사, 1995,

    76-162

    정학진, <이용도의 삶과 문학세계>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인영남, <칼 융의 개성화과정에서 본 이용도의 종교체험> 강남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6.



    아버지 이덕흥과 어머니 양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이용도는 근대화와 변환기 복판 에서, 기독교가 대변한 타문화와 토착적인 가치 사이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는 토착적인 유교 봉건체계의 가치의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점진적인 개화를 경험했던 여성이었다.

    변종호가 편집한 <이용도목사전>에 의하면 아버지 이덕흥은 성격이 때때로 난폭하고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였으며, 우시장에서 거간꾼 역할을 하면서 가계를 이끌어 갔다. 기독교 신앙에 헌신적인 부인의 삶이 마땅치 않아서 시비를 한 것으로 전한다. 반면 어머니는 신앙이 독실하여 시변리 교회의 전도부인일 정도로 헌신적인 분이었다.

    이런 유년기의 성장 과정에서 이용도는 심리적인 상흔을 안고 성장했다. 부친의 가부장적인 억압은 어머니의 신앙에 대한 핍박이나 취중 폭력과 같은 과격함으로 나타났다. 이용도의 성장과정에는 어머니가 양육과 힘(power)의 형상으로 대두되고 중심적인 이미지로 비쳐진다. 나의 관점은 이용도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어린 시절에 인격형성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는 반면에 깨어진 부성적(父性的) 이미지를 반영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5) 그의 삶과 저작 속에 나타난 모성적 여성성의 편만은 성장 과정에서 연유된 그의 영혼(psyche)이다.

    이용도의 신학적 구조를 연구할 때 하나의 중요한 가설은 바로 유년기와 성장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상처입은 부성적 이미지’ 내면화 기능이 활동과 저작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기존교회의 형식화와 교조화 현상을 강력하게 비판한 패토스 (pathos)는 부패하고 불신의 대상이 된 부성적(父性的)인 교회에 대한 비판이며 이는 하나의 심리적인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용도의 활동 가운데서 하나의 비판 대상이 된 부분은 주변의 여성들과의 관계였다. 이것은 외부적인 비판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적 갈등의 적나라한 고백 에도 나타난다.6) 이것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양육된 여성성과의 심리적인 관계 속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그의 무의식 속에 아니마(anima)적인 것이 강하게 차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교회관이나 성령의 이해,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의 이상에 대한 사상은 지극히 자유롭게 여성성의 원리가 표출되고,7) 예수의 사랑을 생의 모티브로 삼고 열정적으로 자기를 위임하는 헌신의 생애를 살게 한 에너지이다. 그의 성장기의 내면적인 상처는 사랑과 정의의 사도로서 삶 속에서 녹아지고 변형되었다.

    이용도의 생은 공교롭게도 역설적인 면이 많이 있다.

 

5) <이용도목사전>, 18-19

6) 위의 책, 32, 101-102

7) 정학진,<이용도의 삶과 문학세계> 87쪽

   “그가 사용한 많은 시어들은 여성적이다. 즉 모성지향성이 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아버지의 영향보다는

    어머니 쪽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입증한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 상은 채찍을 들고 죄를 질책하시는 엄

    한 아버지 상이라기 보다는 함께 울어주는 모성적 이미지이다.”

 


그의 생은 억측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선 그것은 드러난 면과 봉합된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역설적인 연유에서 기인한다. 이용도는 공적인(public) 인물이었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개인적인 사람(a private man)이었다. 성장기에 그는 침묵과 고독을 탐닉하고 가난한 고학생으로서의 여정을 걸었으나 동시에 일제 식민지의 억압과 부정의 앞에서 분연히 일어서는 용기와 웅변력을 가졌다.8) 어쩌면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동시에 그의 심리적인 여정에서 조화있게 융합된 인격이라고 보겠다. 이는 유연성과 긴급성이 이용도의 생에 끊임없이 교차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그의 생애와 사상은 단세포적인 배타성이 아니고 하나됨을 향한 포괄주의적인 지평을 추구했다.

    이용도의 삶의 자리는 무엇보다도 식민지 사회와 그로 인한 정치적 억압의 트라우마(trauma)였다. 이용도는 1919년 3.1 독립운동 때에 송도거리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약 2개월간의 유치장 생활을 하면서, 이후 5년여에 걸쳐 열렬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1919년 12월 18일에는 조선독립수비단 사건으로 신계 경찰서에 피검되었고, 1920년 2월 11일에는 기원절 사건으로 구속되어 약 6 개월간 투옥되었다. 1921년 성탄절에는 불온문서 사건으로 약 6개월간 옥고, 1922년에는 태평양의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징역언도를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8월에 석방되었다.9) 이러한 민족 독립에 대한 열정은 20초반까지 이용도의 가슴을 불태운 것이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식민정치에 대한 사회-정치적인 저항과 독립운동은 후에 신학적인 여정으로 바뀌고, 다시 그 개혁의 열기는 교회 부흥운동으로 전이된 것처럼 이해된다. 다만 지금까지 이루어진 생애와 신학에 대한 연구는 이용도의 사회 정치적인 혁신의지와 교회부흥운동으로 집약되는 그의 신앙운동 사이의 연속성을 진술하지 못했다.

    이용도의 일기에 적힌 자필이력서는 그의 승마체험(勝魔體驗)을 1916년 1월15일로 기재하고, 중생체험(重生體驗)을 1916년 10월로 적고 있다. 복음에 의한 자기변형의 시점은 자명하게 1916년이고 중생하고 자기변형을 경험한 이용도가 1919년 이후 적극적인 사회 정치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10) 이것은 이용도의 신앙 여정은 복음에의 헌신과 사회정의를 향한 헌신이 분리되지 않는 통전적인 삶이었다는 중요한 전거이다. 이용도의 생애 가운데 식민지 시대의 정치적인 불의는 대체적인 공동의 적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때에 시대적인 외적 여건은 변한 것이 없다. 1919년 이후 일제 식민주의는 문화정책을 표방하였으나 식민탈취와 조작은 감소된 흔적이 없다. 미국 선교사들의 정책은 처음부터 종교의 분리와 유화정책이었고, 그것이 이용도의 내면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선교사들의 정책과 신학적인 해석에 대하여 과격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이용도의 입장은 탈정치적인 선교에 대한 자기비판의 관점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가설은 이용도의 신학적인 여정 속에 혁신(革新)의 모티브는 하나의 연속적인 관심이었으며 사회정치적인 개혁의지는 교회부흥운동을 중심한 혁신운동에 연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사상적인 편력을 단순히 비정치적이며 탈세속적인 신비운동이나 접신체험과 같은 소종파 운동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비 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8) 성백걸, 위의 책.,85 쪽

9) <이용도목사전> 23쪽.

10) <일기>,139140쪽. 1931년 7월 26일 일기에서

 


    박종천 교수는 이 혁신의 모티브를 이용도의 예수운동이 1920-30년대 한국교회 내 부의 기득권을 향한 개혁적인 도전으로 연속되었다고 보면서 이용도의 정치신학적(政治神學的)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분석하면서 첫 번째를 1907년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으로 보고 두 번째 단계를 1930년대 이용도의 기도중심 개혁운동으로 지적한다. 

 

 

 

"19193.1 운동이래 한국교회는 조직화와 교조화의 포로가 되어 그의 영적인 능력을 상실했다. 교회 밖의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적인 지성들은 식민주의 현실을 혁신하는데 있어서 교회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비판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용도는 한국교회의 혁신운동을 이끌었다.”11)

 


 

 

 

 

 

 


     1916년 중생체험에서 1919년 이후의 독립운동과 옥중생활까지의 이용도의 생애는 1924년 협성신학교 입학으로 점철된다. 신학교 생활 속에서도 그의 민족독립과 정의 실현의 여망은 더욱더 심화되어 갔다. 1925년 겨울 폐병 3기의 충격적인 진단과 휴양차 이환신의 고향인 강동에 갔다가 체험하게 된 강동체험은 복음에로의 새로운 헌신의 계기를 준다. 이러한 체험은 인간 이용도에게 있어서 파국적인 종교경험이었다. 폐병 3기의 병고(病苦)는 가난과 옥중에서의 고난에서 초래된 아픔이었지만 식민현실에서의 민족적인 아픔을 체득한 동병상련의 병이었다.

    1927년과 1928년에 이용도가 심혈을 기울인 성극 <춘풍(春風)>과 <애굽의 이스라엘>은 이 동병상련의 아픔 속에서도 민족의 해방을 희망하는 강렬한 기도와 묵시가 잘 표현되어 있다. <춘풍> 중에는 이런 상징적인 시어들이 있다:

 

 

 

“차디찬 엄동에 설한풍아. 잔인한 네 손을 걷어쳐라. 따뜻한 양춘이 재를 넘는다. 따뜻한 양춘이 재를 넘는다. 깨어라 범나비 종달새야. 적막한 강산에 애달픈 꿈. 춘풍은 일어나 꽃향기 날리고. 숨죽은 강산을 불러 깬다.”12)


“한 나라에 춘풍이 불면 화평한 나라가 되고, 한 가정에 춘풍이 불면 안락한 가정이 되고 온 세상에 춘풍이 불면 다 낙원이 되고 말것이다.” 13)

 

 

 

 

 

 

 

 

 

 

 

    <애굽의 이스라엘>중에는 한 구절에서 이용도는 식민현실의 조선 땅에서 수없이 많은 해방자 모세의 출현을 희구한다.

 


11) Jong Chun Park, <Crawl with God, Dance in the Spirit:A Creative Formation of Korean Theology of the Spirit, Abingdon Press,

     Nashville, 1998. PP. 63-65.

12) <저술집>,41

13)  <저술집>,45

 

“오냐 이젠 맘대로 울고 맘대로 웃고 어서 얼른 자라다오. 이제는 네가 잘 자라야 되겠다. 이 죽어가는 동족들을 아가, 네가 구원해 내야 되겠다.”14)

 


 

 


 

    민족 해방과 하나님의 나라는 이용도의 신학적인 꿈과 상상력이었다. 이것은 이용도 생애에 있어서 단 한순간도 단절되지 않았던 지속성이며 사상적인 버팀목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용도의 가난과 병고(病苦)는 겸허와 십자가의 예수를 따르는 은혜의 축복이었다. 비관적인 자아에 대한 고질적인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육체적인 허약과 경제적인 난관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영광의 가시가 된 것처럼 이용도에게 있어서도 오히려 하나님 사랑에로의 침잠과 이웃들을 향한 천적애(天的愛)의 조건없는 사랑의 화신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당한 고난은 눈물과 피로 녹아져서 은혜의 삶으로 가속화한 영광의 가시였다. 김익선에게 보낸 서신(1930. 5. 18)

 

 

 

“형님!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러하면 병도 형님에게 유익함이 되고 가난함도 형님에게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형님에게 심령상으로 무한한 은혜를 주시는 표요, 무한한 교훈이요, 무한한 징계인 줄 압니다. 그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교훈을 찾으십시요. 몸 건강할 때에 찾을 수 없는 은혜는 병 가운데서라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이 세상에는 병도 있어야 마땅하고 가난과 다른 모든 난관이 있어야 마땅하며 죽음도 있어야 마땅합니다.”15) 

 

 

 

 


 


 



   

    <신앙생활> 32년 11월호에 게재한 고백적인 글에서 이용도는 예수의 사랑으로 변화된 자신을 고백한다.


 

 

 

“나는 예수를 믿어 병나음을 얻었고 모든 난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나는 중한 폐병으로 절망의 죽음만 기다리다가 기도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무서운 난치병이 나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한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한(飢寒)의 고 (苦)도 맛보았고 이 시대를 만나 감옥살이도 하여 보는 동안에 갖은 고생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고통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기었습니다.”16)

 

 

 

 

 

 


 

 

 

 


    이용도의 병고(病苦) 경험은 심리적 함축성(psychotic intensity)으로 그의 전인적인 삶에 창조적으로 적용되었다. 병고는 내면적인 치유의 자원이 된 것이다. 그의 비존과 재생, 그리고 변형, 죽음, 그리고 부활의 종교적 체험은 병고(病苦) 속에서의 신성체험(神性體驗)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14) <저술집>  66쪽. <아이생활>1928년 11월호에 기재됨

15) <서간집>,27-28쪽.

16) <서간집>,166쪽.

 


3. 누혈(淚血)-눈물과 피-의 신학


    1) 누혈(淚血)의 신학: 전제와 지평

 

    이용도의 삶은 성례전적(sacramental)인 지평에서 눈물과 피의 고백과 실천이었다. 그의 생애의 전기적인 진술뿐만 아니라 그의 저술, 일기, 서간문, 그리고 설교 노트 등은 알알이 눈물과 피의 모티브들로 가득하다. 개인의 생의 여정 속에서 나타나 있는 저서전적(自書傳的)인 자료는 이용도의 사상적인 지평이 촉촉한 눈물과 선연한 피 자국들이 집적되어 있음을 여실히 나타내 준다. 이것은 이용도 삶의 정서적 매개물로서의 패토스(pathos)였으며 깊은 내면적인 삶의 정체성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용도의 사상과 신학은 식민지 현실의 억압적, 정치적인 상황과 부정의, 교회의 생명부재와 교조화라는 당시의 현실 속에서 주체적으로 고백되어진 눈물과 피의 형상화였다. 예수의 복음에 의하여 변형된 자기 삶의 체험과 민족적인 고난의 현실, 아픔의 현실에서 한 목회자요, 부흥사요, 교육운동가요, 정직한 구도자로서의 이용도의 삶은 누혈(淚血)의 신학(Theology of Tear and Blood)으로 정형 화된다.

    이용도 신학의 장(:topos)은 눈물과 피로서 역사적인 구체성을 현실화한다. 예수를 추상적인 보편자로 대상화하지 아니하고, 식민통치의 억압과 가난과 병고(病苦)의 현실에서 마주한 예수로 고백한다. 예수를 구체적인 역사현실에서 만나고 구상했다는 면에 서 이용도의 장(場)은 눈물과 피의 유비에 관여한다. 그것은 이용도 실존의 근저(根低)이며 자기초월의 자리가 된다.17) 그러기에 이용도의 누혈 모티브는 예수체험이 한국인의 정서와 영성(靈性)속에 통합을 이룬 구성신학(constructive theology)으로 자리가 가능하다. 

    이용도는 눈물과 피로서 나타나신 예수를 만났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하고 울고 부르짖으며, 복을 달라고 사 랑하여 달라고 외치는 것이었지만 목전에 나타날 때에는 마귀 취급 하듯해 버리었구나....십자가를 지고 말없이 누혈(淚血)을쏟으시매 못난 놈하여 저희의 하나님을 버리었구나. ... 눈물로 기도하심은 저희를 사랑하심이요 십자가를 지심도 저희를 사랑하심이었건만.”18) 

 

 

 

 

 

 

 

 

 

    빈곤과 억압의 사슬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조선의 민중들의 현실에서, 하나님은 역사적 공간을 자기 현현의 자리(topos)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은 조선의 현실에 나타나셨고, 가난과 병고, 그리고 옥고의 아픔 가운데서 절규하던 이용도의 가슴에 누혈의 현현으로 마주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되신 것은 눈물과 피를 통하여 억압당하고 눈물 흘리며 고난의 피를 흘리는 민중 속에 자기를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17) 八木誠, <新約聖書 探究>,新敎出版社, 1972, 151쪽을 참조

18) <서간집> , 61-62쪽.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출3:7-8) 


 

 

 

 

 

    “사람들의 부르짖음과 그 우고를 알고”를 알고 역사에 눈물과 피로 개입하신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눈물과 피로 동일시 될 수 있다. 이용도의 하나님 신앙은 민족의 아픔 속에서 절절히 우시고 피땀을 흘리시며, 피로써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끄는 해방자이셨던 것이다. 우리의 고난을 당신의 고난으로 동일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자기초월과 민족적인 자기혁신의 장임을 확신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각성시키시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다른 신들이 단지 자기 민족의 번영만을 약속하는데 대해, 이 유일신의 특이한 성격은 버림받는 자, 유기된 자의 한 가운데 현현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가장 억압받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의해 사람들은 억압으로부터 해방에 해방자적으로 돌진한다.”19)

 

 

 

 

 

 

    누혈(淚血)의 신학 지평은 이용도의 예수에 대한 고백과 이해의 한 측면이다. 이용도의 예수론은 고난(苦難)과 십자가(十字架)를 중심으로 예수의 지상생활에 긴밀한 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탈세계적인 예수의 부활 사건보다는 주님으로서의 예수로서 이 세 상에서 하나님의 직분을 수행하신 분이시다. 이용도는 그의 저술에서 상당히 지상 예수에 관심하고, 지상생활에서 드러난 눈물과 피의 행적에 깊은 애착을 가진다. 그것을 깃점으로 그의 영성과 신앙고백은 예수에게 되돌아가는 예수운동에 촛점을 갖는다.

 

“예수님의 드러낸 행적은 예수님의 중심에 있는 사랑의 만분의 일이나 십만분의 일이나 될까? 매우 적은 표현이었다. 다 드러내지 못하였다.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서 눈물로 축 복하시고 산에서 사람을 떠났을 때 피땀 흘려 기도하시었다. 그러나 죄인들은 그 정지를 이해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도리어 못난이로 여기고 괴상한 자로 여기고 말것이다...  예수를  알라. 저 예수의 사랑의 운동을 알아라. 공연이 무슨 사업을 하려고 분주하지말고 먼저 그의 사랑을 알라. 말도 없고 일도 없는  그 사랑의 활동을 알아라. 그러면 거기에는 눈물이 있으리라. ...창 위에 떨어지는 그 눈물 사랑, 남이 모르게 그윽한 밤중에 새벽에 산에 거리에서 흘려 뿌리는 그 눈물사랑을 좀 이해하라. 이는 곧 영생이니라.”20)

 

 

 

 

 

 

 

 

 

 

 

19) Jean Cardonnel, <L'homme chr'etien et l’homme marxiste>, Paris, LaPalatine, 1964, 81

20) <예수>,제4호,3-4쪽.

 

 

“예수만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소망이 된다. 고로 주가 안계시다면 나는 아주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의 눈물은 주께서라야 씻길 수 있고 나의 호소도 주님이라야 들어주신다. 오-주님은 나의 생명이로소이다. 첫째도 주님, 둘째도 주님, 세째도 주님! 주님은 나의 생활 전부로소이다     주께서 울으셨으매 나도 그 눈물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나의 눈물이 주님의 그것 같이 뜨겁지는 못하여도! 주께서 탄식하셨으매 나도 거리를 내려다보고 탄식합니다. 오-주의 모든 것은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지이다. ...주의 가시는 곳은 자욱자욱 눈물입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고인 것은 눈물이 아니요 단 사랑입니다. 길은 험해도 이 사랑 인연해서 험한 줄 모르고 가는 것입니다. 오-주여!”21) 


 

 

 

 

 

 







    이용도는 예수의 권위를 사랑과 자비에 기인된 눈물에서 보고 있다. 눈물의 예수가 이용도에 게 권위있는 주님으로 고백되는 것은 예수가 배척 받은 예언자였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로 부터 거부를 당하신 분으로서 자신의 실존적인 처지와 친밀히 대비가 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듀꼭(Christian Duquoc)의 권위에 대한 신학적인 진술은 이용도에게 마주하신 주(主)로서의 예수의 권위를 지시하듯 보인다: ‘권위’라는 말은 신앙의 눈으로 본 예수의 인품과 영향의 전신비(全神秘)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그 말은 단순히 ‘역사적’인 차원을 능가한다. 또한 그 말은 역사상의 예수가 아무런 해석도 받기 전부터 본래 지니 고 계셨던 품성을 나타낸다.”22)

    결국 눈물과 피의 모티브로서의 누혈(淚血)의 신학은 이용도의 애린과 예수의 대속적 고난이 동일화되는 자기동일화(自己同一化)의 과정으로 발전된다. 이것은 이용도의 자기초월의 신체험이며, 예수와 하나가 되는 상호 매개적인 사랑의 신비주의라고 보인다. 

이는 장(場)의 통합이며 서정적인 시어(詩語)로의 승화이고, 열광적인 자기완성의 창조성이다. 끊임없이 이용도는 삶의 자기정황을 예수의 노정(路程)에로 이입한다.

 

                            “소란한 사회에서 신지(神智)를 배우고 욕먹는 가운데서 신의 미소와 환대를 받으며 몸 이 병든

                             가운데서 신의 사랑과 그 애무를 바라는 것이외다.”23)

 

    심화된 고난과 핍박의 전야에 이용도는 “주여 나의 날이 가까와 오는 것이었습니까 나의 살과 피가 땅에 떨어지는 그때가 나의 완성의 날일 것을 내가 아옵니다. 성의대로 하옵소서.”24)라고 영혼의 어두움을 고백한다.

    누혈의 신학은 예수와 이용도간의 상호 매개적인 연합과 일치의 접목이다. 이런 지평에서 소석 유동식은 이용도의 삶과 멋을 한국적인 영성인 풍류도의 진수를 사신 분으로 묘사한다. 포월적 ‘한’과 풍류도의 ‘멋’을 삶과 신앙에서 육화했다는 지적은 이용도의 자기통합 과정을 성찰하신 입장이다.

 

21) <서간집>,24-26

22) Christian Duquoc, <예수는 자유의 몸이시다(Jesus, homme libre)>, 문세화,박영식 공역, 분도출판사, 1976, 30쪽

23) <서간집>, 54쪽.

24) <서간집>, 82쪽.

 

 

    “시무언 이용도는 예수 안에서 초월적인 하나님과 자신이 창조적으로 만나는 신앙의 예술가였다. 그곳에서 멋을 창조하고 멋을 살아갔다.”25) 

    “이용도의 예수 신비주의와 사랑의 열광주의로 나타난 그의 예술적 신앙은 실로 한국인의 영성에 뿌리내린 복음이해요, 영적 체험의 극치였다. 거기에서 그는 해방과 평화와 사랑의 기쁨을 얻었다. 그리고 이것을 전할 때에 사람들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그리하여 그는 삽시간에 교파를 막론하고 전국의 교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부흥 목사가 되었던 것이다.26)



    2) 영(soul)의 신학화로서의 누혈(陋血)의 신학


    이용도의 누혈의 신학은 영(靈:soul)을 어루만지는 의식에 깊이 관여한다. 영의 개념화란 쉽게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서신들과 일기, 그리고 저술을 통하여 보여준 다른 사람들과의 감정접목이나 돌봄(care)의 관계는 분명하다. 

    영(soul)이란 강한 느낌을 주는 언어이다. 한 예로 흑인들이 자기들의 인종차별의 비인간적 억압 속에서도 역사의 담지자가 될 수 있었던 흑인들의 자유 정신을 영(soul) 이라고 할 수 있다. 영은 본래 히브리적인 부활 개념으로서 공동체적인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갈망와 기다림으로 표현된다. 영(soul)은 억압당하는 현실에서 깨어난 이들이나 집단의 대망을 형상화한다. 영은 불멸하는 어떤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 개념화되기도 한다.27) 

    이용도의 목회는 당시 사람들과 교회가 직면한 영의 상실을 깨우쳤고 영의 회복은 눈물과 피의 족적 속에서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가난과 정치적 억압, 사회구조적인 차별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사는 민중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과 호소가 바로 누혈의 모티브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우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가볍게 여겨왔고, 그것의 가치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대부분 스스로 설움과 한(恨)의 표현을 눈물로 표출하면서도 그것이 인격적인 부조화나 허약함에서 오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눈물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과 청결케하는 의식적인 매개물이다. 심리적인 장벽들과 그림자를 치유하는 데는 눈물과 한풀이의 과정만큼 효과적인 장은 없다.28) 초대 한국교회는 눈물을 통하여 자기변형과 치유를 가져온 특이한 현장이었다. 한국인의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영이

25) 東植, <流道와 한국의 종교사상〉연세대출판부,1997. 316-317.

26) 위의 , 320.
27) James B. Ashbrook, <Minding the Soul: Pastoral Counseling as Remembering>, Fortress Press, 1996. 166-167 .
28) Peter van Oosterum,Tears: A Key to a Remedy> , U.k.:Ashgrove Press, 1997, 9-11


예수의 복음과 만나면서 회심의 눈물과 은혜의 눈물이 넘쳐흐른 장이 교회부흥의 터였다. 고난과 역경, 가난과 식민제국주의 폭정이 근대화의 물고 앞에선 민중들의 현실이었고, 복음은 이들의 영(soul)을 어루만졌고 그들은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구조의 모순과 억압의 구조 속에서 차별받던 많은 민중들의 한(恨)을 예수의 메시지가 해방의 모티브를 제시해주고 새로운 자기존엄성에로 눈을 뜨게 한다. 봉건적인 모순과 차별구조에서 오랫동안 상처받아왔던 여성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천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는 체험들은 눈물로 표줄된 것이다. 

    복음으로 개종한 김종섭(1862-1940)은 눈물의 사도라는 별명이 붙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또 눈물이 많았다. 길가다 구걸하는 노파를 보면 울고, 심지어 외국 여자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고향이 그리울까 하여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한번은 예수 믿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20리 길을 통곡하며 걸은 적도 있었다. 예수가 진 십자가를 생각하며 울고, 인간 생명의 무상함이 느껴져 울고, 인류의 죄악된 정황을 보고 울고, 사도들의 헌신을 생각하며 울고, 밥먹다가 울고, 잠자다가도 종종 울었다. 우는 것도 그냥 눈물이 흘러 수건으로 닦는 울음이 아니라 소리내어 통곡하며 우는 울음이었다. 그러나 그의 울음은 무의미한 울음이 아니었다. 신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깃든 눈물이었고 울음이었다.”29)  

 











    1925년 신학생이던 이용도는 폐병 3기라는 암울한 진단을 받고 요양차 강동에 갔다가 예기치 않던 부흥회 인도의 부탁을 받고 기도를 준비하면서 격정에 차서 눈물을 흘렸던 강한 체험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찬송을 부르다가 용도는 울기 시작했다. 용도의 울음을 본 회중은 모두 운다. 용도의 울음이 심해짐에 따라 만장은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부흥회 설교를 하기로 맡아 놓은 용도는 떨리는 마음에 밤새도록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도로서 밝히고 새벽에 강단에 나섰다. 나서니 찬송을 불러도 눈물이요, 기도를 울려도 울음이다. 설교도 좀 해 내려 가다가는 그저 울음에 떨려 말소리가 흐리워지는 것이었다. 용도의 심중은 이상한 열이 끓어올랐다.”30)

 



 

 

 

 

 

    이 강동체험은 이용도에게 있어서 누혈(淚血)에로의 이입이었다. 눈물은 그 상실한 영을 되찾고 재생하는 생명의 체험을 매개한 것이다. “나의 영(靈)의 집은 당신이 들어오시기에는 너무나 좁은 것입니다. 원컨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커졌으면 합니다.”31) 라는 어거스틴의 고백적 자기 위임의 계기였을 것이다.


29) 이덕주,<한국 그리스도인들의 改宗이야기>,전망사, 1990. 59-60쪽.

30) <이용도 목사전>, 29쪽.
31) 이용도역,“성어구스틴 참회록”,<예수> 3호, 11쪽

 

“나는 죄인 중에 하나요 또 미련하고 천한 종입니다. 나에게는 참 사랑과 긍휼이 적습니다. 주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신 것 같이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32)








    이용도는 누혈의 예수를 통하여 구속함을 받았고 그것이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준 것이었으며 영의 새로운 존재의 집이 된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눈물이 다 말랐습니다. 눈물 없는 곳에 되지 못한 것들만 무성하여 있 습니다. 눈물은 살균력이 있습니다. 원망, 불평, 이기 등은 전염병균과 같아서 자신을 죽이 고 또 남의 가슴에 살촉을 받아 죽게 하는 악독한 병균입니다. 이 모든 균들은 눈물로서 죽일 수 있습니다. 동정의 눈물이 쏟아질 때,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쏟아질 때, 남을 원망하는 것이나 시기, 불평, 이기행위 등 모든 불선의 병균은 다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따스하고 온유하고 미쁜 새 마음을 내어줍니다. 우리는 눈물도 말랐거니와 피는 더욱 말랐습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빈혈 병자가 되었습니다. 피가 없을 때 기운이 없고, 맥없고, 힘없고, 담력없고, 의분없고, 화기없고 생기가 없습니다. 그 대신 노랗고, 겁많고, 쓸쓸하고,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주사해 주소서. 그래서 우리는 새 기운을 얻고 화기와 생기있고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당신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서 우리에게 주사해 주옵소서.”33)

 

“지금은 악한 시대요, 교만한 인간이 전횡하는 시대이매 의의 사도, 진리의 사도의 출현을 볼 때가 아닌가?.... 채찍으로 임하사 죄를 책망하시고 그 죄악의 불을 꺼버리신 후에 사랑과 눈물로 나타나시사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사 기쁨과 평안을 주실 것이라.

오 주님이시여 의로 치시며, 진리로 책망하시며, 또 사랑으로 거두시고, 눈물로 위로해 주셔야만 할 현대올시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막대기로 오시고 또 눈물로 오시옵소서.“34)

 

 

 

 

 

 

 

 

 

 

 

 

 













    이용도의 삶은 눈물의 사제, 한(恨)의 사제로서 주변 사랑하는 교우들을 염려하며 대속의 기능을 감당해왔다. 자신의 처지뿐만 아니라 이웃과 동포들의 아픔을 대리하는 목양적인 희생의 길을 간다. “자매여 나를 위하여 우는 자매여. 어서 그 눈물을 걷우려므나. 그리고 너와 나의 동포를 위하여 크게 울어라. 통곡하여라. 오 자매여, 나의 사랑하는 자여. 나 위하여 울기를 고만 그치라. 그리고 너희 성자와 성녀의 울음을 모아, 울고 또 울고 울어 다하여 청산의 고골을 적시어 보려마, 울어라 성자야 울어라 성녀야. 겟세마네는 어디 있어. 나의 피(血) 눈물(淚)을 기다리누.”35)


32) <서간집>,42쪽.

33) <일기>, 1927. 12. 6. 38-39쪽.
34) <일기>, 180쪽.
35) <일기>, 191쪽.


    3) 천적애의 실천모형으로서의 누혈(浪血)


    이용도는 무제약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도리라고 본다. 그는 천적애(天的愛)의 실천은 삼위일체적인 상호연관성에서 영의 사람들, 예수의 사람들이 성취해가야할 관계(relation)의 도리로 본다. 관계의 도리는 무제약적(無制約的) 이고 무주상적(無住相的)인 책임적 윤리의 사랑이다.


“예수를 사랑하려면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을 섬길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치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열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사랑하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사랑하라. 이런 형제의 사랑이야말로 참 봉사, 하늘의 사랑일지니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이 하늘의 사랑을 실행하여야겠습니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신이요 그리스도의 신은 곧 사랑의 신이올시다. 그러면 성령은 진리의 신인 동시에 또한 사랑의 신이심으로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천적애(天的愛)를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36)


“‘의(義) 아닌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라‘ 이것이 곧 천적애(天的愛)의 일이니라. 지적애(地的愛)는 덮어놓고 시제선대(施濟善待)하여 저희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지만 천적애는 그 성질이 다르다.”37) 

 

















    이용도의 개혁정신은 비굴하지 않은 천적애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려는 그의 천적애는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오해를 받았고, 기성교회의 존립을 파괴하는 것처럼 해석되어, 교조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를 이단으로 몰아부친 것이다.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편이길 포기한 형식주의적인 교회를 향하여 이용도는 날카로운 비판의 선포했다. 이용도의 개혁정신은 천적애의 열정과 누혈의 십자가를 따르는 길로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이었다.

 


“자기애(自己愛)와 세속애(世俗愛)는 주님에게 대한 사랑과 동포애(同胞愛)에 대한 사 랑과는 상반되는 사랑이다. 자기애와 세속애는 지옥에 속한 애라. ... 사랑은 사람의 생명 이라. 고로 사랑은 곧, 사람 그것이었느니라. 사람이 사람됨은 곧 그 애 그 의지에 있는 것이오."38)


 

 

 

 

    이용도는 적극적인 수고(受苦)와 수난(受難)에 참여하는 눈물과 피를 통하여 예수의 전기에 가까워지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대신 지는 천적애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의 삶의 자리에서 가능한 한 자진하여 누혈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십자가를 대신한다. 천적애의 실천 모형은 그 밑바닥의 영성이 누혈에 있는 것이다.


36) <是無言>, 예수교회 엮음, 다산글방, 1993. 119쪽.

37) 위의 책, 112쪽
38) <일기>, 162쪽.


“오직 주님의 사랑! 자기가 버림을 당하며 자기편의 불리를 보면서도 그래도 긍휼히 여 기며 사랑할 수 있는 그 천적애(天的愛) 그 무한애(無限愛) 그 성애(聖愛)에 목욕하여서만 가련한 인간의 심령은 생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애를 완전히 체득할 자 저는 속된 인간애의 망(網)에서 벗어져 나온 자 혹은 거기서 버림을 당한 자가 아니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주는 당신의 무한애의 궁전에 안식케 하시려고 눈물(淚)을 흘리시고 혈간(血)을 쏟으신것입니다.”39)










    예수의 제자로서의 불가피한 동고(同苦)는 인간해방을 향한 천적애의 상징이며 자 기변형의 체험의 장(場)이다. 누혈의 신학은 보다 능동적인 세계변혁을 향한 우주적 책임 에로 이행하는 것이다.


“예수의 눈물과 그 피 속에 녹아지는 자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부딪히는 곳에서는 해골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살과 피와 물의 설교는 모든 것을 깨치고 모든 것을 새로 만듭니다. 죄를 밥먹듯 하던자가 눈알이 쏟아지는 책망을 받고, 상하여 쓸어진 심령이 이 설교에서만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40)






 

 

    이용도는 우주적인 생명의 역사와 갱신이 예수의 설교의 요청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가슴-눈물과 피-의 신학화이며 그것을 천적애로 육화해가도록 요청한다. 천적애의 육화(肉化)는 이용도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서 전달된다. 서대문 현저동에서 어려운 생의 한 단계를 이용도와 함께 산 피도수(Victor Peters)목사는 이용도의 사랑의 몰아적인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초월하는 몰아적(沒我的) 사랑은 60여 년을 지난 오늘날에도 피도수에게 생생하다. 헐벗고 굶주린 걸인들을 위해 자기 이불을 주고 옷을 벗어 나누는 사랑의 사건들을 통하여 천적애를 실천했다.41) 소외자들의 얼굴에서 예수의 모습을 뵙고 거리의 창기들에게서 예수의 얼굴을 마주하는 이용도의 삶과 신학은 그의 눈물과 피로 집약되는 것이다. 

    1931년 1월, 그의 일기에서 만나는 최억성군의 이야기는 하나의 천적애를 실천한 모형이다.


39) <서간집>,164-165쪽.
40)  <저술집>,248-249쪽.
41)  Victor Peters목사는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생존하고 있고 세 차례 찾아 뵈우면서 담소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용도에 대한 정과
      그리움을 대했다. 그분은 97세의 고령이지만 눈물로 이용 도형님을 회고한다.

 

“자기만 살려고 눈에 불이 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걸아를 본척이나 하고 지나가랴! 마음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여관으로 데리고 와서 두루마기를 벗어 들러 주고 아랫목으로 인도하여 이불로 둘러 줄때 나의 마음 너무 민망하여 슬픔을 이길 길이 없었다. 오 주여 이 아이를 긍홀히 여겨주시옵소서. ....북한설풍 추운 밤에 거리에서 울며 떨고 있는 아이를 생각치 않고 나만 혼자 이불을 두 개씩, 포대기 깔고 편안히 자고 있었구나. 오 나에게 화가 있으리로다.”42)


“나는 어떤 겨울 날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한 창기한데서 크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승 객 중에 어린 소녀 하나가 옷을 변변히 입지 못해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다 아이를 보았으나 본 척 만척하는데 그 창기가 자기가 입은 외투를 벗어서 그에게 입히고 또 손과 발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창기의 그 참된 사랑에 머리를 숙이고 감격했습니다. 세상이 천하다 하고 세상에게 버림을 받은 이 창녀에게서 나는 다른 누구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감화를 받았습니다. 학박사의 설교보다 오묘한 이론보다 이 시간에 그 창녀에게서 배운 바가 나에게는 더 많았습니다. 하늘의 사실을 외치고 주의 사랑을 부르짖는 오늘날의 교회에 어디 사랑의 사실이 있습니까. 우리는 외모를 버리고 참 사랑으로 강하여야 되겠습니다.”43)


“경상도에 갔을 때 여관의 여주인이 쌀을 일다가 깨달은 것: 검불은 경한 죄요 돌은 중한 죄. 가랑나무도 불탈 때는 눈물을 흘리더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 속에 잠재합니다. 진리의 연석에 들어가면 만사에 개안(開眼)합니다. 신(神)을 찾음은 우주를 전유하는 일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은 예수가 그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의 주사는 만 병을 고칩니다.”44)

 

 

























 

 

    이용도는 천적애를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가진 작은 떡덩어리를 다른 이에게 나누는데서 보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대망이었다. “창기의 그 참된 사랑”을 통하여 세상 변혁의 희망을 본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변혁을 주변 사람들, 변두리 인간들의 대안적인 삶을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이용도는 스스 로 천적애를 불살으며 마치 “가랑나무 불탈 때 흘리는 눈물같이” 살고저 한 것이다. 

    이용도가 거지 소년과 창녀 속에서 하나님 사랑의 현현을 보고, 예수를 천민의 구원자로 보고 있는 것은 천적애를 통하여 민중의 예수, 민중예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갈릴리의 민중과 십자가 속에서 예수를 보았던 초기 복음서 기자들의 입장처럼, 이용도는 역사적으로 억압받아오고 천시받던 걸인과 창녀의 삶 속에 예수가 성육신 하심을 본 것 이다. 인간의 참된 해방은 갈수록 벽이 높아져가는 교회들과 융성한 교회의 잔치상, 그리고 학박사들의 현학적인 설교 속에 있지 아니하고 사회의 밑바닥과 주변에서 그들 민중의 천적애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김지하의 <장일담>에 나오는 민중 예수처럼 세상의 질서를 흔들어서 새로운 질서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42) <일기>, 101쪽.

43) <저술집> 설교문중에서,222쪽.
44) <저술집>,231쪽.


    이것이 이용도가 본 누혈(淚血)의 예수이다. 겟세마네에서 눈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 골고다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부으신 예수, 갈릴리 가난한 민중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핍박을 받던 예수, 그분은 누혈의 예수이시다.



4. 한국적 영성 (靈生)과 이용도 신학


    1) 무(無)와 공(空),그리고 십자가

 

    시무언 이용도의 삶과 신학은 한국적 영성의 넓이와 깊이를 체현하고 있다. 세대적인 아픔과 고난의 여정을 담지해 가면서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목양목민(牧羊牧民) 상을 완성해 갔다. 경제적인 가난은 예수운동의 핵심으로 자리하여 청빈한 구도자의 자리로 변하고, 정치적인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적인 악은 천적애라는 무조건적인 하늘사랑과 정의실현이라는 개혁의 끌로 변하였다. 가족적인 환경의 고통과 병고(病苦)의 가시는 신앙적인 여정에서 겸비와 영광으로 바뀌었다. 이용도는 서구 제국주의 옷을 입고 계몽을 중심한 서구화의 팽창과 함께 한국 땅에 상륙한 기독교 선교의 허(虛)와 실(實)을 주체적으로 직시하면서, 동양적 신학의 구상에 대한 통찰과 창조성을 갖는다.

 

"세계는 지구 정복에 주린 구라파의 욕심 앞에 놀라 떨고 섰습니다. 제국주의는 맘몬의 손에 들어가서 부정한 환희의 춤을 주고 전쟁욕, 권세욕, 소유욕-삼마녀는 구라파의 노변 에서 잔치의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저 구라파 천지에는 당신이 유하실 곳이라고는 일간두옥(一間斗屋)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시옵소서. 그리스도여 발길을 돌려 이리로 오시옵소서. 아세아에서 당신의 처소를 잡으 십시오."45)

 

“서양의 기독교는 동적(動的), 동양의 기독교는 정적(靜的). 西洋=物-現世的-形式!. 東洋= 靈-來世的-神秘-內的. 서양인은 외적의 것을 더 찾았다. 이제 신비적인 것을 동양인이 찾아야겠다. 찬송보다 기도! 기쁨보다 눈물! 예수께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음은 무슨 이유인가 동양에서 서양적 기독교는 실패. 서양인은 공관 복음적, 동양인은 요한복음적. 서양의 미성품인 기독교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매 심령 방면 신비 방면에서 새로 운 것을 발견해야겠다. 동양적이란 것은 요한 발견적인 것이다.”46)

 

 

 

 

 

 

 

 

 

 

 

 

 

 

 

 

 

 

 

 

 

    이용도는 동양적 신비주의가 서구 기독교를 만나 상호변형(mutual transformation)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면적이고 심미적인 심령의 세계에 탐닉하던 동양적 종교의 전이해를 보다 적극 수용해야할 시대적인 당위성을 그는 본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이 동양적인 영성의 축을 통하여 또 다른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경험해야 한다는 신학적 인 상상력을 가진 것이다.

 

45) 〈일기〉,67쪽.

46) 〈저술집〉,209쪽.

 

 

    한국인들의 정서적인 심성의 틀을 직관하여 이용도의 부흥운동과 예수운동은 눈물과 피라는 누혈(淚血)의 모티브를 강하게 매개한다. 그의 언어와 설교는 민중들의 촉촉한 눈물의 언어를 매개로 하여 청중들에게 접맥되고, 스스로 복음의 능력과 천적애의 화신이 되어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을 증언하였다. 그는 “한국에 있는 신앙인의 역사를 기록하기를”47) 소원하였고 한국인의 마음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예수의 고백이 그의 신학적 구상이었다.

“다 버리소서 모두 끊어 버리소서. ...있으나 없는 자와 같이 가지지 못한 자와 같이 되소서. 어리석은 자가 되소서. 예수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예수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빈자, 성령의 지시 외에는 모든 설계와 수단을 베풀 수 없는 백치가 되어지소서.”

48) 

 

 

 





 

    예수로 인하여 바보가 되고, 빈자가 되고, 백치가 되는 철저한 자기방기를 통하여 이용도는 한국적 수행자의 영성을 기초해 간다. 이 자기방기는 무(無)의 절대적인 실천의 장이다. 무는 자기부정의 자리에서 선을 실현하고 존재의 근원적인 바탕과 합일을 이룬다. 존재 의 자리에서 절대무인 하나님을 자기부정의 무를 통하여 체험하게 된다. 신성(神性)의 자리를 무로 보는 동양적인 신체험을 이용도는 자연스럽게 예수의 삶과 예수의 십자가에서 읽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란 전부 부인할 것입니다. 외적 소유나 심적 소유나! 그리고 아주 공허(空虛)하여 무(無)가 될 것이었습니다. 나의 이상 나의 주의 나의 계획  다 집어치우고, 오 주여 나는 무(無)요 공(空)이로소이다. 나의 위에 성령이 움직이여 주의 이상을 세우고 주의 계획을 세우시옵소서 그리고 주께서 움직이옵소서 그리하면 나는 주에게 딸려 움직일 것이로소이 다.”49)

 

 

 

 

 


 

 

 

    이용도 자신의 자기형상화에는 여러 번 자기의 고난과 예수의 십자가를 일치시키고 그것을 통해 자기현실을 초월하는 무의 접점을 본다. 그것은 자기비하(自己卑下)를 통하여 예수를 실현하는 것이다. 무와 십자가는 이런 체험 속에서 구체적인 신체험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47) <일기>,1927. 4. 1. 30쪽.

48) <서간집>, 161쪽.

49) <서간집>, 104쪽.


    “전 육편으로 보면 아주 사나운 팔자를 타고 났습니다. 그러나 영편으로 보면 예수의 팔자와 거진같은 팔자라요. 어쨌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팔자였으면 그만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육이 곤고할 수밖에 있나요. 십자가로서 그 팔자 그 운명을 설명하게 된 것이니까!”50)

 

    “이렇게 주님은 나에게 이끌리시고, 나는 주님에게 끌리어,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一化)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 바 되어 결국 나는 주의 사랑 안에 있고 주는 나의 신앙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 오묘하도소이다. 합일의 원리요.”51)


    “내가 욕을 먹어도 주를 위해서요 아편쟁이 광인의 천대를 받아도 이는 주의 이름을 인 함이오니 축복이올시다. 그러나 주는 의로우사 그러하셨고 나는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 입니다. 골고다의 길! 이 길이 나의 길이었으나 나는 아직 초학입덕지문(初學入德之門)에 있는 자입니다. 어서 의에 돌진하여 욕과 죽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52) 
















    이 합일의 체험은 이용도의 신체험이다. 그 합일의 체험을 위해서 돌진하는 그의 마음은 신비경험으로 삶에 자양분이 된다. 마이스터 엑하르트는 같은 형태의 합일 체험을 이렇게 진술한다.



  “신이 나를 돌파함에 따라서 나도 또한 신을 돌파한다. 신은 나의 정신을 신의 사막과 신 자신의 자기 동일성 속으로 인도한다. 거기에서 신은 순수한 하나이며 스스로 자신 속에서 용솟음쳐온다.”53)


 


 

 

    일아 변선환은 이용도의 신앙경험을 엑하르트와 연결하여 그리스도 신비주의라고 이름한다. 십자가의 무(無)의 장에서 인간과 신이 합일되는 일치를 이용도는 실체화한 것이다.



“이용도의 고난의 신비주의는 예수의 품에 안겼던 요한형의 경건이었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그의 사랑을 한없이 수용한 요한의 종교, 요한의 신비주의였다. 예수의 품안에 안 기므로 그의 신성과 사랑의 무한함에 환희와 황홀을 맛보앗고 어떤 때는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고난을 맛보았다. 신성 밑바닥에서 신의 사랑의 불길을 본 그는 시내산의 석판 저넘어, 신과 인간의 대립 저넘어, 예수 속에서 예수와 함께 있는 것으로, 예수의 품에 안기므로 신과의 합일, 그리스도와의 합일의 신비를 체험했다.”54)

 

 

 

 

 



 

    이용도의 종교체험은 무와 공, 그리고 십자가의 자기동일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체험을 내면화하기 위하여 넓은 지평의 창조적인 세계에 겸허한 문을 열고 영의 세계를 탐닉한다.


50) <서간집>, 144쪽.
51) <일기>, 118쪽.
52)  <서간집>,179쪽.
53) <Meister Eckhart>,  ed. Franz Pfeiffer, DarmstadtScientia Verlag Aalen, 1962, 232

54) 변선환, “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한국적 신학의 모색〉, 한국신학연구소, 1997, 327쪽.

 

 

 그의 영성의 공간은 절대겸허의 학생심(學生心)과 무차별적인 천적애(天的愛)의 아름다운 곡선을 창조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그 속에 한국적 영성의 석가래와 대들보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열린 건축물을 이룬 것이다. 좌우명 속에서 고백된 고(苦)와 빈(貧)은 이용도 영성의 석가래이다. 비(卑)는 케노시스적인 십자가로서 대들보가 된다. 그것이 주님되시는 예수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집을 이루고 그것은 창조의 꽃인 자연 즉 우주의 건축물로서 조화가 된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영의 환희가 있는 것이다.55) 

    이용도의 한국적 영성은 동양적인 냄새와 색깔과 풍경이 짙다.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 유한 물이 강한 돌을 굴러가게 한다. 유한 골짜기 물이 단단하고 굳은 반석을 쪼개고 깨뜨려 모래로 만든다. 강한 것의 힘보다 유한 것의 조화가 실로 묘 하다. 유는 우주의 본성이었나니 유가 강을 주관하였느니라. 우주만유의 본성은 소요 약 이요 유이었나이다.”56)

 

“강하되 교만하지 말고 겸비하되 비굴하지 말것이니라. 핍박을 당하되 기(氣)를 동치말고 암초에 면하되 심을 동치 말 것이오 간고를 겪어도 신(信)을 요(搖)치 말 것이니라.”57) 

 


 

 

 

 

 

 

 

 

 

 

 

    이용도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이 도가적인 지혜와 통한다고 보았고, 그것은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는 무(無)의 노장적인 지혜와 대승불교적인 공(空)이 바탕을 이루는 동양적인 해석학인 것이다. 

    십자가의 삶과 무위적인 도가의 실체관을 자유자재로 접목하였고, 보살행으로 정의되는 중관학적인 공(空)과 케노시스를 창조적으로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영원히 지극히 작고, 미련하고 적은 한 학도일 뿐이로다. 나는 이때까지 보유하려고 애쓰던 나의 선생지대를 떠나노라. 그리고 영 원히 학생의급으로 내려 가노라. ...저 어린애, 걸인, 천녀, 곤충, 금수, 초목, 이는 다 나의 선생임을 깨달았노라. 귀인과 지식은 물론이고,  선악이 皆吾師라.”58)

 

 






    2) 여성성의 편만과 신학의 재구성

 

    하나의 가설처럼 이용도의 생애와 신학을 탐구하고자 할 때 중요한 입지는 여성성 (女性性)의 편만이다. 성장과 활동기 전반의 행적 가운데 아버지로 인해서 부성적인 이미지에 상처를 입었고, 어머니의 신앙과 모성적 양육의 원리가 그의 삶에 크게 영향을 준

 

55) <일기>, 14쪽. 좌우명을 중심으로

56) <일기>, 63쪽.

57)  <서간집>, 106쪽.

58)  <일기>, 65쪽.

 

    식민시대의 민족적 비애를 딛고 해방의 날을 가져올 산파를 찾았던 이용도의 기도는 민족적 독립과 해방의 산파(midwife)로서 여성의 역할을 기대하고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성의 경험을 중요하게 통찰한 것이다.

 

“어머니의 품을 버리고 그 대신 그것을 취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는 안돌아 봅니다. 젖을 먹습니다. 그 품 안에서 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께서 주실 줄 믿고 나는 편히 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여 나를 놓지 말아주세요.... 나는 산과 들, 험한 골짜기를 어머니와 같이 걷는 기쁨을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가다가 다리 아프고 괴로우면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혼자 가시지 않을 줄고 잘 알았습니다....어디로 가든지 얼마나 가든지는 나의 관계할 바 아니었습니다. 나는 다만 등에 업혀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나를 주께 드리나이다. 맡기나이다. 주께서 마음대로 주무르시읍소서. 주무르시는 대로 주물림을 받을 점토와 같습니다.”62)  

 

 

 

 

 

 

 

 

 

 

 

    이용도가 1932년도에 쓴 장년주일 공과에는 성서에 나오는 여성들의 이야기 다루었다. 그것은 하나의 성경공부 교안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여성의 리더쉽을 접맥한 여성신학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7월 24일 공과에서 여선지 드보라에 대한 그의 연구는 여성신학의 맥을 관통한다.

 

“드보라는 비록 연약한 여자이나 저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영이 머물고 있었고 그 입에 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며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모든 죄와 불의를 판단하며 악한 세대를 책망할 선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는 가운데는 남자만 일하는 것이 아니요 여자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토하는 입이 없고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자가 없으매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택하여 진리의 사도를 만드신 것이다. 여자들이여! 무엇을 연약하다고 하는가? 성령을 받고 진리의 말씀을 가질 것이다. 그리하면 곧 선지자요 통치자요 전사(戰士)가 될 수 있는 것이다.”63)

 

 

 

 

 

 

 

 

 

 

 

   그는 이 공과 끝에 묻는 말을 통하여 “어떠한 자가 실상 약한자입니까?”하고 묻는다. 여인들과의 서신교제에 대한 시비나 유명화 입신사건 등이 그의 생애 후기에 이단시비로 발전된 것은 불행한 역사이다. 그가 당한 시비와 핍박에 대하여 변명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계시 중심으로 만인이 평등하고 존엄한 것임을 선언한다.

 

62)  <일기>,112-113쪽.

63)  <저술집>, 100-101쪽.

 

 

“나의 주님은 천에 재하시고 또 나의 심중에 재하셨나이다. 나의 심중에 내재하사 진리가 되고 말씀이 되고 판단이 되고 혹 예언이 되었나이다. 고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내 말로 듣지 않고 주님의 말씀으로 받았나이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은 또 각인의 심중에 계신 주님이었나이다. 남자의 속에도 내재하시고 또 여자의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구름 속에도 당나귀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나는 그때 그 당나귀가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책 망하고 나를 권고한다면 물론 나는 그 앞에 엎드려 ‘오 주여! 나를 가르치옵소서’ 하겠나 이다. 그러한다고 하여 날 보고 저놈은 당나귀 앞에 엎드려 당나귀보고 주님이라고 한다고 욕할 자가 있을 것이나 나의 주님은 곧 그 말씀, 곧 그 진리임을 나는 앎에 나는 그 말씀의 본체를 주님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이 속에서도 주님을 발견하고 혹 도적과 음부의 속에서도 주님을 발견하였으니 주는 그들 중에도 내재하시사 진리를 언표할 수 있었음이외다.”64)

 

 

 

 

 

 

 

 

 

 

 

 

 

 

 

 

 

    누혈의 신학은 강한 페미니스트적인 모티브를 가진 심성적인 세계를 대변한다. 누혈의 언어적인 의미는 일상회화를 넘어서서 한의 표징이요 사회적인 관계 치유라는 지평 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용도의 종교 언어는 심리적인 근원에서 여성적인 원리와 깊이 접맥되어있다. 이것은 낭만적인 언어의 유희가 아니고 사회개혁과 교회 개혁이라는 중요한 시대적인 과제를 안고 씨름한 신학적인 재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성의 경험을 여성적인 원리로 표출하고, 여성들과 사역을 공유하고 파트너쉽을 경주한 그는 오늘 한국교회가 당면한 또 하나의 과제 앞에 마주선다.

 

 

    3) 생태학적 조화와 생명 신학

 

 

    소석 유동식은 이용도의 사상을 조명하면서 그가 자연과의 사귐과 일체를 이룬 것을 주목한 바 있다. 이용도의 삶을 하나의 예술적인 미의식의 실현으로 보면서 그의 삶을 정리한다.

 

                              “실로 시무언의 신앙세계는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풍류의 세계였다. 는 풍류

                               도에 산 풍류객이었다.”65)

 

    이용도의 삶과 저작들은 새천년을 희구하는 묵시문학의 언어와 같이 생태학적인 대망을 하나의 신앙적인 표상으로 삼는다. 성서적인 세계관과 동양적인 영성의 접합이 생태학적인 희망을 진술하면서 강하게 표출된다. 이것은 억압과 편견, 가난과 불평등의 차안에서 피안의 해방을 희구하는 묵시적인 그의 출구였을 것이다. 보다 감화되는 것은 그의 생명에 대한 견해와 신앙은 바닥에 생태학적인 해방을 깔고 있다.

    좌우명에 나타난 자연과의 관계는 그의 수행과 영성의 중요한 대목이다.

 

 

64) <서간집>,198-199쪽.

65) 유동식,<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320쪽.

 

 

“자연은 나의 친구: 믿을 사람도 없고, 사귈 사람도 없을 때, 하늘, 산, 흐르는 물, 공중의 별, 밤의 산과 들, 초목, 곤충, 새들-이는 다 자연에 속한 것으로 나의 친구가 되나니 나는 늘 이 친구를 보기 위해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66) 

 

 

 

 

 

 

 

    자연과의 조화된 관계는 그의 영성에 그루터기이다. 그것은 기도중심의 영성생활을 반영한다.

 

 

“산아, 나무야, 바위야, 나를 가리워 주의 진노의 눈에서 피하게 하여주고, 모든 인간들 에게서 숨기어 수치를 면하게 하여다오. 그러나 내가 일찌기 산에서 범죄하여 산을 더럽 혔다오. 나는 산의 원수가 되었고, 나무와 바위 아래서 내가 부정하였으매 저가 나를 멸 시한지라 어찌 나를 덮어주며 가리워 주랴. 산과 나무가 나를 덮어주지 아니하고 바다가 나를 숨겨주지 아니하며 바람이 나를 듣지 않고 하늘이 나를 동정치 않는도다. 오 나의 가련한 몸. 어디다 피신할고-오직 나의 피신처요 구원의 섬이 하나 있으니 이 곧 나사렛 예수 나의 주 그리스도이시로다.”67)

 

 

 

 

 

 

 

 

 


 

    이용도는 자기구원과 피조물의 구원을 연결하는 생태학적인 상상력이 풍부했다. 창조와 구원의 이원적인 분리가 창세 설화에서부터 기원된 기독교의 전통적인 이해였다면, 그는 창조의 타락된 본성을 넘어서서 인간의 생태학적인 책임으로 획을 바꾸어서 고백했다. 생태학적인 해방에 입각하여 자연신학을 세울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다.

 

 

 

“이름없이 지구의 일각을 밟고 가! 샤론의 들꽃같이! 나는 줄, 지는 줄, 세상이 다 모르되, 다만 하늘만이 빈들에 속삭이는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소문없이 퍼지는 그 향기에 하늘이 웃음웃고, 자취없이 눈 감을 때, 적막한 밤 작은 별의 무리들이 조상을 해! 이것이 값없는 야화의 무상의 영광이다. 평생소원이었던 것이구려. 아 그러나 저를 낸 조물주는 여기에 가공을 하여 옮겨 놓으니, 아 요란한 대로변 가시밭에 한송이 백합화가 되었구려. 고요히 이름없이 지나갈 고독한 야화! 이제는 소문 놓고 노방에 찢길 이름 좋은 그러나 역시 고독한 백합화로구나.”

68)

 

 


 

 

 

 

 

 

 

 

 

 

    기성교단들의 핍박과 병고(病苦)로 인한 자신의 입지를 하나의 “고독한 백합화”로 보면서도 깊은 생명외경과 자연의 생태적인 질서를 통하여 예언자의 길을 보는 이용도의 영성이 아름답다.

    이용도는 <춘풍>이라는 창작 성극에서도 그의 묵시적 생태학적인 대망을 통하여 민족의 독립과 해방의 날을 고대하고 있다.

 

66) <일기>,14쪽.

67) <일기>, 143쪽.

68) <일기>, 182쪽.

“찬 눈 속에 묻히어 있을 때 같아서는 다시 너희에게는 양춘이 올 것 같지도 않았지 또 어느 때에 춘풍이 불어 온대야 그 역시 꿈만하게 생각했더니 그래도 보아라 너희에게도 

이렇게 춘풍이 불어올 때가 있지 않니-. 

보드러운 춘풍 솔솔 불어와서 산과 들의 눈 얼음 다 녹여 버리고, 

파릇파릇 남산이 푸르러 올 때에 자유스런 우리 천지 여기에 열리네. 

벙글벙글 웃는 꽃 만발한 곳에 너풀너풀 나비춤에 노래하는 새

파릇파릇 남산이 푸르러 올 때 자유스런 이 천지 여기 열리네.“69) 

 

"옳다 그래서 양춘은 누구나 다 기다리는 것이다. 

산야에 춘풍이 불면 안락한 가정이 되고 온 세상에 춘풍이 불면 다 낙원이 되고

말 것이다."70) 

 

 

 

 

 

 

 

 

 

 

 

 

 

 

 

    이 <춘풍>은 민족해방의 봄을 불어오는 희망의 바람이며 새 시대를 알리는 새로운 생명의 바람이다. 문학적인 언어로서 표출되었지만 새로운 질서는 우주론적인 지평의 재정리라고 볼 수 있다.

 

"비가 오는 것을 보니 꽃 필 봄이 온 줄 알겠나이다. 

비에 젖은 땅 속에는 새 생명들이 움직이고 있지요. 

오래지 않아, 오래지 않아, 적은 생명들의 기꺼운 노래를 

이 땅 위에서 듣게 되겠지요. 

오-생명이여 생명이여! 없는 듯이 묻히어 있는 작은 생명들이여!"71)

 

“에덴 동산! 서로 믿고 서로 합하고 서로 즐겨하던 그곳이 이렇게 의심, 두려움, 죄악, 어리석음, 살상으로 변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격이 날때 사람사이에 격이 생기고 금수와 사람사이에 또는 만물과 사람사이에 격이 생기었나이다. 하나님과 합하면 사람끼리와 만물 끼리가 다 합할 것입니다. 

오-주여 합하게 하옵소서.“72)

 


 

 

 

 

 

 

 

 

 

 

 

 

 

 

 

 

 

 

    이용도의 생명신학은 만물의 회복과 화해에 기초한다. 관계단절로 인한 간격이 무너지고, 서로의 소외된 관계가 회복될 때 하나로 연합되는 새로운 세계의 질서 재편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 가진 모든 것은 존중되고 예경되어야 하는 것이다. “없는 듯이 묻히어 있는 작은 생명들” 까지도 광채를 발하고 생명의 본질들이 회복되는 것이다. 생태학적인 신학과 생명에 대한 대안적인 책임윤리를 요청하는 오늘의 세기적인 과제 위에 이용도의 고백과 언표된 묵시적 세계관은 무게있는 대화의 창구를 마련해 준다고 믿는다.

 

69) <저술집>, 44 -45쪽.

70) <저술집>, 45쪽.

71)   <일기>, 26쪽.

72)   <일기>, 9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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