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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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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09-07 13:44 조회2,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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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    림 ​



1. 바쁘신 중에도 오늘 제7회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에 참석하여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

    립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모임을 사랑해 주시고 관심가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 발표하여주신 김광원 박사님과 논찬하여 주신 김흡영 박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3. 내년이 시무언 이용도 목사 탄신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서 본 연구회와 예수교회 공의회에서

    공동으로 기념 행사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협조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4. 그동안 이용도 신앙과 사상 심포지움을 통해서 발표되었던 글들과 1930년대 한국에 미국 선교 

    사 자격으로 오셔서 이용도 목사와 함께 생활했고, 선교활동을 했던 피도스목사(Peters. Victor

    Wellington) The Korea Mission Field 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Simeon a Korean Christian

    Mystic"의 완역을 해서(박종수 번역, 강남대 신학과 교수) “이용도의 영성과 예수운동” 이라는

   책자를 성서연구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아직 구입하지 못하신 분들은 접수대에 가셔서 구입하

   여 주시기 바랍니다.

 

5. 오늘 우리가 보고있는 이용도 목사님 초상화는 미국에 계시는 피도스목사님(Peters. Victor

    Wellington)께서 직접 그려주신 것입니다. 피도스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용도와 미학

 

 

김 광 원 박사

(남서울대학교 교수)

 

 

 

서론:들어가는 말

 

    이용도는 근대 한국의 기독교가 낳은 종교적 천재요, 천부적인 예술적 감성을 가지고 예수의 십자가를 사랑한 신앙의 거목이다. 본래 큰 인물은 한 마디로 단언해서 이렇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바로 이용도야말로 어떻게 하나로 정식화해서 논하기 어려운 삶, 그래서 짧으나 거목의 인생을 살아온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발표된 연구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용도의 사상을 엿보는 시각도 매우 다양하다. 최근 발표된 연구 논문들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민경배 교수와 변선환 교수의 신비주의적 접근이 있다. 둘째로, 이용도를 대중 종교운동가로 이해하려는 차성환 교수의 사회적인 접근이 있어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셋째로, 성령론적 입장에서 이용도를 읽어보려는 노력을 한 정지련 박사의 글도 있다. 정 박사는 극구 이용도를 신비주의자로 보려는 시각을 거부하고 있어서 이채롭다.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이용도 연구는 동양적 시각 특히 노자 사상으로 이용도를 해석한 이세형 교수의 모험적인 글이다. 그러나 보다 신학적인 조명을 가지고 이용도 연구에 다가선 신학자는 최인식 교수다. 그는 천애적(天愛的) 사랑의 신학으로 종교개혁적 칭의론의 범주를 과감히 넘어선 이용도를 가리켜 포스트프로테스탄트 사상가라고 칭찬한다. 마지막으로 예수교회라는 특수한 현장을 놓고 교회 운동가로서의 이용도를 읽어내려는 김영일 교수와 정희수 교수의 노력도 있다. 그 외에도 성백걸 박사의 논문은 이용도 연구를 위해서 포괄적이고도 체계적인 자료를 역사신학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며, 일일이 거명하지는 못했지만 이용도를 이해하는데 공헌한 탁월한 연구 논문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바람직하다.

    그런데 필자는 이용도 해석의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미력하나마 미학적 틀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이미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본고는 일종의 미학적 관점으로 이용도를 논해 보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어쩌면 미학이야말로 다른 어떤 시각보다도 미적 감성이 남달리 뛰어났던 종교적 천재인 이용도를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는 해석의 틀이 되지 않을까 사려되며, 더 나아가서는 미학이 가지고 있는 사회 변혁적 담론을 논구해 봄으로써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사로서의 이용도 연구의 의의도 밝혀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제를 풀어내기에는 필자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함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단지 그 변죽만을 타진해 보는 것으로 필자의 몫을 적절히 제한하겠다. 본고의 구상은 이러하다. 본론에서는 두 장에 걸쳐서 미학적 관점으로 이용도의 삶과 사상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결론에서는 현재와 미래 사회를 위한 현대 미학의 담론의 쟁점과 그 의의를 논하여 보는 것으로 부족한 졸고를 마감하고자 한다.

 

 

본론: 이용도의 미학


제1장 미학과 종교


    이용도의 미학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미학의 뜻과 미학이 종교와 맺는 관계를 간략히 적어 보기로 하자. 용어상으로 미학(aesthetics)은 희랍어 aisthesis(sensation)에서 나온 말로서 소위 '느낄 수 있는‘ 전 영역을 의미하기보다는 '아름다움'에 해당하는영역에 국한된 말이다.1)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미학은 예술 철학(philosophy of art)으로도 불리는 철학의 한 분파로써 예술의 본성, 가치, 경험 그리고 이것들과 관계된 문제들을 분석하는데 관심한다.2)

    이제 우리의 주제인 미학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소위 미적인 것과 종교 체험은 많은 요소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미적 인식과 종교적 통찰은 모두가 실재(實在)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비개념적인 파악을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양자 모두가 영감과 천재적 내지 천부적 소질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3) 양자는 모두 형식, 대상, 그리고 활동 속에 실재에 대한 특수한 비전을 의미심장하게 주제화한다. 양자의 영역 속에서 발생하는 진리에 대한 질문과 판단의 척도는 보편성에 대한 특수성 그리고 형상에 대한 질료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더 나아가서 예술과 종교는 실재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들을 때로는 예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스르기도 한다. 양자는 각 영역에서 자기 권위에 대한 척도나 양식에 대한 조례를 일반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내적 체험을 위한 훈련을 강조하기도 한다.4) 이에 따라서 우리는 심미적 특성의 탐구와 더불어 종교적 진리에 대한 미학적 통찰의 가능적 관계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볼 때 심미적인 것과 종교체험을 연결시켜서 논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J. Edwards)에게서 미학과 종교에 관한 괄목할 만한 통찰을 얻게 된다. 그는 마치도 ‘세계의 아름다움은 은혜이며 은총이다’고 말한 플로티누스처럼 ‘지각이론’을 신적인 은총과 통합시켜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이른바 뉴톤주의 과학을 칼빈의 신적 주권에 관한 교리와 연결시켜서 종교 생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종교적 감동’에로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워즈는 Images or Shadows of Divine Things」에서 신적 지식의 매개와 기초를 자연과학 자료의 하나인 감각에서 찾았는데 이것을 그는 ‘감성’(sensibility)이라고 했으며,이것이 표현된 절정적인 형식을 ‘미’라고 불렀다.5) 존재에 대한 올바르고 충성된 존재 일치로서의 미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곧 하나님의 은총이 된다.


1) William L. Reese, Dictionary of Philosophy and Religion. Eastern and Western Thought. (New Jersey Humanities

     Press, 1996), p. 7.

2)  A. R. Lacey, A Dictionary of Philosophy.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86), p. 3.

3) James A. Martin Jr., "Aesthetics" in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Ed. by Mircea Eliade, Vol. I. (New York: Macmillan

    Publisching Company, 1987)p. 39.

4) Ibid.

5) Ibid., p. 44.


이것은 단지 정적이거나 실체론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영역의 창조적 질서 속에 선포되어 있는 그래서 끝내는 우리에게 복락을 가져다 줄 ‘아름답게 함’이라는 동적인 다이나믹스인 것이 다. 이러한 일련의 심미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이것을 에드워즈는 내적으로 본다면 바로 사랑스러운 삼위의 일체이고, 외적으로 볼 때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불리는 완전한 사회(완전한 아름다움)에로 인도하는 은총의 역사라고 말한다. 소위 하나님의 주권은 초월적으로 볼 때 ‘아름다움’으로 이해된 하나님의 사랑이며, 내재적으로 본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과 즉각적으로 관계되는 하나님의 현존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발견되거나 사회 속에 간직될 일체의 ‘이차적인 미’도 전적으로 조화를 본질로 하고 있으며, 이는 감동과 일치하는 ‘자연적 감수성’을 통해서 식별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즈는 자연적 감수성만으로는 본래적 미인 하나님께 참여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바로 ‘영적인 감수성’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6)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영원히 그를 기뻐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인 것이다.

    심미주의자 쉴라이엘마허(F. Schleiermacher)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소위 감동이나 느낌이 종교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높이 찬미되기 시작하였다. “종교는 사유(헤겔)나 행위(칸트)가 아니라, 우주에 대한 직관이며 감정”7)이라고 말하는 쉴라이엘마허의 종교는 다름 아닌 '절대의존의 감정'이며, '무한자에 대한 감각이요 맛 봄'인 것이다.8) 그의 종교적 세계는 미적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웅장함이요 승고함이다. 칸트에게서 발견되는 숭고함은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칭했지만, 쉴라이 엘마허는 하나님의 체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쉴라이엘마허에 의하면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고자 하며, 우주 자신의 표현과 행위 속에 있어서 경건한 마음으로 우주에 귀 기울이려 한다는 것이다. 소위 우주에 대한 직관이야말로 보편적인 것이며, 이것이 바로 극치를 이루는 종교적 양식이 된다.9) 쉴라이엘마허의 종교 체험은 아가서 만큼이나 달콤하다. “양자(감정과 직관)는 본래 하나이며 ... 이것을 포착하여 한층 높은 신적 종교적 심정의 활동 ... 그 순간은 신속하게 지나가며 아침 이슬이 잠을 깬 꽃에 뿌리는 최초의 향기와 같고, 수줍고 부드럽기가 처녀와의 키스 같으며, 신성하고 풍만하기가 신부의 포옹과 같다”10)고 그는 서술하고 있 다. 이 점에서 종교에 관한 쉴라이엘마허의 접근은 전적으로 미학적이다.

    쉴라이엘마허와 칸트의 영향을 함께 받고 등장한 루돌프 옷토(R. Otto)는 종교 체험의 영역을 보다 신학적으로 규명한 학자이다. 그는 쉴라이엘머허가 너무 감정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즉 쉴라에엘마허에게서는 경건한 의존감정과 여타의 다른 감정이 구별되는 듯 하면서도 양자의 구별이 뚜렷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옷토는 이것을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도리어 “피조물 감정“11)으로 부르고자 했다. 미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옷토의 정의는 쉴라아엘마허에서 극치를 이루었던 미학과 종교의 적극적인 관계가 한걸음 퇴보한 것처럼 보이나, 옷토의 의도가 보다 신학적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해야 옳다.

 

6) Ibid.

7) F. Schleiermacher, Uber die Religion, Reden an die Gebildeten unter ihren Verachtern"Hamburg 1958p. 50.

8) Ibid., p. 53.

9) Ibid., p. 55.

10) Ibid., p. 75.

11) R. Otto, Das Heilige. Uber das Irrationale in der Idee des gottlichen und Sein Verhaltnis zum Rationolen. Gotha, 1925

      p. 15.


 사실에 있어서 옷토는 절대자와 거룩에 대한 일련의 합리적 이해는 표피적 이해일 수밖에 없고, 도리어 불합리하고 비개념적인 파악만이 그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은 실재에 대한 심미적 접근임에 틀림이 없다. 옷토도 이른바 심미적 접근이야말로 ‘누미노제’(numinouse)로 불리는 절대와 거룩의 차원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극명한 양식으로 본 것이다.12) 옷토의 이러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우리는 미학적 해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른바 에드워즈에게서 시작되고, 쉴레이엘마허에게서 꽃피웠으며, 옷토에 이르러 신학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종교체험에 관한 미학적 해석은 오늘 이용도의 삶과 그의 사상 세계를 이해하는 더 없이 소중한 학문적 전거가 아닐 수 없다. 33년이라는 짧은 세월이지만 파란만장한 20세기 초를 살면서 초기 한국 기독교의 반성과 개혁을 부르짖으며 활동한 꿈 많고 가슴 뜨거웠던 청년 목사 이용도의 메시지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이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개혁의 삶을 살려는 모든 한국의 신앙인들에게 오늘도 진정한 지표가 되었으면 한다.

 

 

제2장 미적 감성과 종교적 천재성


    실로 장황한 설교대신 눈물의 메시지를 전언하고,13) 교리적 인식보다 사랑의 직접성을 강조하며,14) 십자가의 고난을 온 몸으로 탐미하면서 죽음의 예찬15)까지 불사했던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종교적 천재 이용도야말로 미학적 신학자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용도 자신이 시와 가극, 음악과 문학 등 다양한 예술적 장르에 깊은 관심과 글을 남김으로써 또 다른 면에서 필자의 논지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16) 그의 예술적 감성이 종교적 진리를 감싸 안는 순간 이용도에게는 “기도는 곧 시”17)요,“신앙이 깊으면 모든 말이 다 시”18)가 되었다. 사실 이용도에게는 심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결코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

 

12) Ibid., p. 28,41,43.

13) 그는 부흥회를 인도할 때 수차에 걸쳐서 눈물과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유명한 이용도의 따발총 같은 설교는 이러한 그의

      무언의 눈물을 모르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전 (서울: 장안문화사,1993) p. 29.

14)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서울: 장안문화사,1993) p. 177f.

15)  “세상 사람은 살아서 일하지 만은 예수의 일은 죽어서 하는 일이었고, 세상 사람의 일은 살아서 시작해서 살아서 계속하고 살아

      서 끝맺는 것이지만은 예수님은 죽어서 시작하고 죽어서 계속하고 죽어서 끝맺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예수의 생의 방식이요 이

      것이 즉 살아서 영생하는 도인 것이다”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저술집 (서울: 장안문화사,1993) p. 241f.

16) 이미 성백걸 박사는 이용도에 대한 예술신학적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성박사의 견해는 예술 장르

      에 제한된 이용도의 관심에만 환기를 주었을 뿐이용도 자체를 미학적 관점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필자와 다르다. 성백

      걸,“사랑과 정의의 사도, 이용도의 삶과 사상” 이용도와 한국교회의 개혁운동 이용도목사 연구논문집 제1권,(서울: 장안

      문화사,1995),p. 156ff를 참고할 것.

17)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저술집 p. 89.

18) Ibid., p. 233.

 

    이용도는 감(感)과 지(知)라는 두 범주를 가지고 자신의 미학을 멋지게 설명하고 있다. 1931년 일기 중에서 그는 “생명의 공부: 영원한 생명은 곧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이다. 생명은 곧 진리라. 이 知는 연구 탐색의 知가 아니라 感하여 知하는 것이다"19)라고 갈파했다. 특히 다음은 미학에 관해 이용도가 얼마나 해박한 섭렵을 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感하여 知하는 일이 가장 만물을 잘 아는 법이다. 그림을 가장 잘 아는 일은 그 작가의 영감과 같은 영감에 취하여서 보는 일이다. 즉 그림을 感하여서만 그 그림을 참으로 아는 것이 된다. 가장 깊은, 또 가장 眞한 知는 感이니라”20) 이용도의 미학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용도 미학의 창세기요, 마그나 카르타와 같다. 즉 그는 “感은 생명의 일이니 생명이 있어서 感이 있고, 感이 있어서 생명이 있는 것이다”21)라고 선포한다. 이용도 미학의 선언은 태초에 생명과 함께 感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쉴라이엘마허를 능가하는 상당한 미적 감성과 종교적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종교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게 마련이다. 도리어 그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신의 마음 속에 반사함으로써 온 몸의 감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미학에 있어서 ‘감정 이입’은 예술적 감정을 함께 나누는 정도를 넘어서서 마음 속에 뚫고 들어가 그 속에 녹아들고, 그것을 표현하며, 그것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까지를 의미한다.22)

 

 

(1)십자가와 실천의 미학

 

    이용도가 십자가를 단지 인식론적인 칭의론에만 묶어둘 수가 없었던 것도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적 감성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예민한 미적 감성 속에서 십자가는 도리어 함께 살고 함께 죽어야 하는 자기 자신의 내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 예수의 십자가는 더 이상 대상이 아니고, 도리어 생사의 주체가 된다. 신학적으로도 예수의 십자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십자가는 모범적인 신앙의 모델은 될 수 있으나, 신앙의 대상일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대상화된 기독교의 십자가는 종교놀이에 불과하거나, 저급한 민간 신앙을 벗어 나지 못하는 종교적 타락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조금은 배경이 다른데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다끼자와(K. Takizawa)나 야기 (S. Yagi)와 같은 일본의 신학자들은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도 곧 우상숭배라고까지 경고한다.23)

    그런데 이용도의 신앙적 급진성은 단지 신학적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그의 미적 감성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예수의 십자가에 목을 걸고 생사를 결단한 것은 신학적 확신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미학에서 비롯된 종교적 천재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19)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p. 121.

20) Ibid.

21) Ibid.

22) H. Read, The Meaning of Art (New York, Woshington: Praeger Publischers, 1968), p. 38f.

23) K. Takizawa, Das Heil im Heute. Ein Japanischen Theologie. Hrsg. von Theo Sundermeier, Gottingen 1987p. 25f.

 


최인식 교수의 말대로 이용도의 예수는 살아있는 나사렛 사람 예수이지 신학화된 기독론의 예수가 아니다. 따라서 이용도에게는 십자가를 진 나사렛 예수와의 살아있는 만남과 그를 따름이 중요했지 기독론적 진술이나 신학적 체계화가 그에게 중요할 리 없었다.24) 실로 이용도의 십자가 래디칼리즘은 예수 추종의 급진성이지,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려고만 하는 비의(秘儀)가 결코 아니다. 즉 이용도는 높이 들리우신 예배와 찬양의 대상으로서의 예수에 몰입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따라 살아야 할 신앙의 원형으로서의 인간 예수에게 심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철저히 따라가자,' 25) 즉 예수님이 밟으신 길을 그대로 따르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용도는 자신의 말대로 예수적 삶을 그대로 따라 살려고 실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26)그런 의미에서 이용도의 미학은 결코 역사의식 없이 잠들어 있는 정체된 단절이 아니라, 적어도 그에게 십자가에의 참여와 실천의 보금자리를 제공한 셈이다.

    이용도의 종교적 천재성은 쉴라이엘마허의 황홀한 키스나 아가서적 사랑의 로멘티시즘27)과 같은 천적애(天的愛)를 신앙의 종국으로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쉴라에엘마허나 아가서 기자처럼 환희나 영광을 모티브로하는 밝은 영성으로 피워나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가 말하는 사랑의 낭만주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십자가’와 ‘자기 내어 줌’이라는 자기 부정의 동기가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용도는 십자가와 고난, 가난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영성에서 자기의 천재적 종교성을 더욱 꽃피웠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른바 자기 부정이라는 케노시스 (kenosis)가 이용도의 미적 감성과 종교적 천재성을 자극하고 또 그렇게도 깊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소위 고난이 없는 영광은 영광이 아니며, 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sine dolore non vivitur in amore).28) 때문에 이용도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고, 하나님의 케노시스 속에서 환희와 영광을 내다 본 것이다.

    소위 이용도의 케노시스적 영성은 당시 그가 살던 암울했던 한국적 시대 상황이나 자신의 삶의 비극적 조건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렇듯 그의 미적 감성과 종교적 천재성은 부활보다는 십자가에서, 기쁨보다는 고난 속에서, 부귀보다는 가난 속에서, 그리고 창조보다는 종말 속에서 예수를 만나게 했고, 그 속에서 만난 예수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으로 아니 자기 자신의 주체로 받아들인 것이다.

 

24) 최인식, “시무언 이용도 목사의 예수론 - 논평과 제안” 이용도 신앙과 사상 연구회편,「이용도 목사의 영성과 예수 운동」(서울:

      성서연구사,1998), p. 222.

25)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p. 94.

26) 박종천,“시무언 이용도의 삶을 통해 본 한국의 예수” 이용도와 한국교회의 개혁운동 p. 26-57을 참조할 것.

27)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p. 118; 특히 그의 아가서에 대한 관심은 이상윤, “이용도 목사,그 인간과 역정(2)

      용도와 한국교회의 개혁운동 p. 62ff를 참고할 것.

28)   F. Sontag, Love Beyond Pain. Mysticism within Christianity (New York, Ramsey, N.J., Toronto: Paulist Press, 1977)

       p. 123.

 

 

(2) 가난과 해방의 미학


    이용도가 자란 환경은 안 밖으로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주는 집단적이고 민족적인 가난뿐 아니라, 그의 가정을 통해서 겪게 되는 가난 또한 심각했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얽힌 가난은 그가 생을 다할 때까지 함께 따라 다녔으나, 이용도는 그의 가난을 미적 감성과 종교적 천재성으로 승화시킨다. 즉 “빈(貧)은 나의 애처. 가난함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같이 나를 떠나지 않나니 나는 건방진 부보다 착한 가난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29) 라고 노래 한다. 물론 이러한 이용도에게도 가난에 대한 사회적 항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그는 가난 때문에 고학을 해야했고, 또한 그 가난의 원인이 일제의 침탈에 있다는 현실에 눈을 떠서 독립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용도는 3.1 운동 거리 시위에 참여한 죄로 유치장 생활까지 하게 된다. 무려 다섯 번의 투옥과 3년여의 감옥살이를 겪은 그는 가난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왜 가난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그의 항일 투쟁이 단지 사회-정치적 정의감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이것 역시 이용도의 기독자로서의 신앙 고백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30)그러나 그는 33년이라는 짧은 삶을 단지 투사의 모습으로 살지는 않았다. 도리어 미적 감성과 종교적 천재성으로 자신을 불태우면서 살았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자의 모습을 그는 가난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이란 극복해야할 적인 동시에 선택해야할 옵션이 된 것이다. 이용도는 그 역설적 모델의 원형을 바로 예수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일기 속에서 바울을 따라서 예수의 삶을 옵션으로서의 가난으로 집약시킨다. “저는 본래 부요하시더니, 귀하시더니, 편하시더니, 영광스러우시더니, 든든하시더니,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천하셨고, 불편하셨고, 수치를 받으셨고, 약하시었고(고후13:4)”31)라고 노래했는가 하면, “나는 천동으로 태어나 빈궁의 사람, 무식의 노동자 무명의 종교가, 무의무가한 고아로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자리 삼아 남들의 반생을 겨우 일생으로 살고 마침내 외의 내의조차 빼앗기도 참행으로 종신한 내가 아니냐!”32)라고 자기 입을 빌려 예수를 고백하고 있다. 그는 가난 속에서 가난을 선택함으로 가난을 극복하는 해방의 미학을 천재적 종교성을 가지고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가난 속에 앉아서 가난을 지극히 사랑한다. 왜냐하면 가난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케노시스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용도는 “겸비는 나의 궁전. 나는 높은데 처하여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 데 처하여 있어야 됩니다. 그런고로 비천은 내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됩니다. 고와 빈과 비를 좋아하게 되면 다 되는 때입니다”33)라고 말한다.


29) 변종호 편저, 「이용도 목사 일기 p. 71.

30) 이 문제를 성백걸 박사는 그의 논문 “사랑과 정의의 사도, 이용도의 삶과 사상” 84쪽 이후에서 의문 부호를 붙여 말하고 있으나,

      차성환 교수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교회 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진단에 근거해서 이용도는 고난 받는 한국 민중

      에게 ‘고난당하는 그리 스도를 따르라’는 그 특유의 구원의 길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1920-30년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의 사회

      학적 의의 - 이용도의 대중 종교운동을 중심으로” 이용도와 한국교회의 개혁운동 , p. 174를 참고할 것.

31)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p. 138f.

32)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서간집 (서울: 장안문화사,1993) p. 135.

33) Ibid., p. 77.


     이용도는 가난 속에서 신의 사랑을, 그리고 겸비 속에서 신의 은총을 발견한 종교적 천재다. 이는 풍요로운 미적 감성이 제공하는 역동성이 없이는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신앙의 비밀에 대한 예술적 감응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용도의 미적 감성은 케노시스의 가난을 학문적 개념이나 신학적 인식의 기반 위에서 파악하게 하지 않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반응하며, 반드시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야 할 해방의 실천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3) 시무언과 저항의 미학

 

    또 하나 이용도의 미적 감성을 대변하는 대목은 시무언(是無言)이다. 그는 예수에 심취한 사람이 된 이후 자기 아호를 특이하게도 ‘시무언’으로 지었다. 이른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메시아가 오시기만을 말없이 기다리던 누가복음의 시므온을 본 딴 말이다. 시무언이란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34) 는 뜻이다. 소위 이용도는 부흥회 설교시 말이 하도 빨라서 알아듣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했는데, 이런 이용도가 시무언을 선택한 데는 아무래도 저항의 미학이 그 밑바닥에 숨겨있는 듯하다. 모두가 말만 많고 도무지 실천이 없는 데 대한 탄식, 아마도 이것이 이용도로 하여금 시무언을 선택하게 한 것 같다.35)

    그가 내다 본 시무언의 모델 중에는 시므온 외에 주님의 용기를 따라서 용자로 살아간 세례 요한이 있다. 1928년 11월 10일에 쓴 그의 일기에 보면 “오! 광야에 외치는 소리여, 말 없이 벌리고 있는 그 입을 통하여 나오는 무성(無聲)의 대호(大呼) 대즐(大 )! 저희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다”36)고 말한다. 이용도는 발언과 말 없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시므온과 세례 요한을 대비시켜 놓음으로써 웅변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말이 없다고 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참 말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말 없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 말 없음을 거치지 않은 말은 참 말일 수가 없다. 그러나 참 말을 해야 하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것 역시 시무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용도는 시므온의 무언으로 그치지 않고 세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를 무성의 대호로 갈한 것이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용도의 시무언 깊은 저변에는 어김없이 예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1931년 2월 28일 일기에 보면 “보라, 말이 없는 예수를! 그러나 그 말없는 위대한 설교를 들으라”37) 고 크게 외친다. 바로 이 예수의 시무언 때문에 그의 저항의 미학은 빛나 보이는 것이다.

    시무언의 저항의 미학은 그의 교회 개혁을 행한 질책으로 연결된다. 이용도는 현대 교회가 "괴이한 예수"를 요구하고 또 전하고 있다고 야단친다. 그래서 "참 예수가 오신다면 피살될 수 밖에 없다"38)고 한탄하고 있다. 1930년 4월 5일 일기 중에 "예수는 죽이고 그 옷만 나누는 현대교회야! 예수의 피도 버리고 살도 버리고 그 형식만 의식만 취하고 양양자득하는 현대교회의 무리여 예수를 믿는 본의가 어디 있었나요“39)라고 통곡한다.


34) 빅토 웰링턴 피터스,“시무언(是無言),한국 기독교 신비주의자” 박종수역, 이용도 목사의 영성과 예수운동 p. 15.

35) 예수교회 엮음,是無言 (서울: 다산글방, 1993),머리말 참조.

36)  Ibid., p. 45.

37) 변종호 편저, 이용도 목사 일기 p. 123.

38) 변종호 편저,「龍道信學」(서울: 장안문화사,1993) p. 21.

39)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p. 91.


    이호빈 목사에게 보낸 서신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악한 교회가 강단에서 교리와 신조를 설명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되 그리스도의 마음은 잊어버리었구나! 믿음이란 교리의 승인이나 신조의 묵인에 있지 않고 예배 의식을 거행함에도 있지 않고 연설이나 기도에도 있지 않고 할렐루야 아멘 하며 노래하는 데도 있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 신이 나의 신이 되어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므로 죽음에서 나오는 것이거늘 어느 교만한 교회가 알맹이는 빼어 버리고 무엇을 운하며 사랑이라 하는고!“40) 당시 교회는 필히 개혁을 요구 당하고 있었다. 교회 개혁을 향한 이용도의 저항 의식은 정당했다. 그의 눈에 비친 현대 교회는 ‘암흑시대의 대변자요',‘세상에 패한 실패자’였다. 41)

    동시에 이용도의 냉엄한 비판은 당시의 선교사들에게도 어김없이 떨어졌다. 1931년 일기에서 그는 “아! 선교사들의 교만함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겸비하여 배울 줄을 모르고 남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자로만 자처하였으니 너희의 눈을 막아 의인을 보지 못하게 하였도다. 예수를 잡아죽인 유대교의 대제사장과 장로와 영수들이 곧 너희들이었느니라”42)고 쓰고 있다. 39일 일기에서는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불의와 더불어 싸우는 의의 자식이요 진리의 아들이다 이 땅에 마귀는 꽉 찾다. 어두움의 권세요 밤의 권세의 때로다. 미원하고 시기하고 음란하고 패역하며 교만한 이 악마의 세계!”43)때 물론 교회 개혁을 향한 이용도의 저항은 레지스땅스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아니했다. 소위 부흥회 인도가 고작이요, 일기와 편지를 쓰는 일이 고작이었지만 그의 이러한 저항의 미학은 예나 지금이나 말만 앞세우고 실천이 없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교회 개혁의 뿌리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종말과 죽음의 미학

 

    이용도의 죽음의 미학은 어찌 보면 데카당스해 보인다. 왜냐하면 193351일 편지에서 “형아! 나는 나의 일에 대하여 아무 수단도 방법도 없는 것을 알아다오. 무슨 깊은 철학적 원리를 나에게 묻지 말아다오. 죽음! 이것만이 나의 수단이요 방법이요 원리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스럽게 돌진하려는 것뿐이다. 어느 날이든지 빛 없는 죽음! 그것이 나의 완성일 것이다. 형아 나는 理없이 光없이 죽으려 한다”44)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용도는 죽음을 한없이 동경하고 있다. 아니 죽음이 이용도를 재촉하며 부르고 있 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죽음의 미학은 결코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와 산물이 아니다. 본래가 미적 감성은 센티멘탈니즘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양자는 모두 감정을 이완시켜준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것으로 보이나, 미적 감성의 경우에는 단순한 감정의 이완을 넘어서서 감정의


40)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서간집 p. 67.

41)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p. 1081

42) Ibid., p. 125f.

43)  Ibid., p. 127.

44) Ibid., p. 200; 예수교회 엮음,是無言 p. 107.


     고양, 긴장 그리고 승화라는 높은 단계까지 다다르게 한다는 면에서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45)이용도의 죽음의 미학은 맥이 풀려 서 새어 나온 센티멘탈니즘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용도의 죽음의 미학 뒤에는 올곧게 살다 가신 예수의 정신이 물씬 물씬 묻어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이를 위하여 나는 먼저 떨어져 죽는 작은 밀알 한 알갱이가 되려 하노라”46)고 십자가의 신앙을 결연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용도에게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너무나 빨리 물리적인 죽음이 찾아왔다. 1901년에 태어난 그는 25세 때 폐결핵 3기라는 치명적인 진단을 받았다. 그는 하루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살아있는 한 의미 있는 시간을 소유하고 싶어했다. 그러다가 30세 되던 해 겨울부터는 더욱 심각한 생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용도는 이른바 종말론적 삶을 단지 관념에서가 아니라, 실재의 세계에서 온 몸으로 견디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소위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님(not yet) 사이에서 종말을 선취하며 오늘을 살자는 신학적 관념의 세계를 살아가신 분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이용도는 죽음을 그냥 진짜 죽음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자리가 이용도의 죽음의 미학이 서 있는 자리인 것이다.

    이용도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을 거부하는 몸짓을 아니했을 리 없다. 1933년 10월 2일 그는 조용히 생을 마감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에게 3년만 더 주소서. 그러면 저는 저의 모든 힘을 거지들에게 설교하는데 쏟겠습니다. 저는 그들과 같이 굶고 잔치를 벌일 것입 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울 것입니다. 오 주님, 저 거지들을 위해서 저에게 삼 년만 더 주소서!” 47) 그러나 이용도의 죽음에 대한 거부는 그냥 목숨의 연명을 의미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거기에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고자하는 사명감으로 꽉 차 있었다. 그가 죽음을 원하든 거부하든 이용도의 죽음의 미학 뒤에는 언제나 예수의 십자가가 이렇게 버팀목처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미학과 사회 변혁의 담론


    우리는 이제까지 이용도의 미학을 4가지 종교적 범주를 통하여 거칠게나마 살펴보았다. 이제 결론적으로 현대 미학의 쟁점이 되어있는 사회변혁의 담론을 통해서 이용도 미학의 미래적 전망을 논해보기로 하자. 즉 이용도는 20세기 초반의 혼탁하고 어지러운 한국 사회 속에 기독교의 복음을 가지고 변화와 개혁에 대한 촉구를 하지 못한 채 몰-역사적이고 무-시간적인 종교인으로 살아왔는가 아니면, 나름대로 변화와 개혁의 역할을 다해 왔는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용도의 미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이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미학적 관점으로 답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현대 미학의 쟁점 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45) H. Read, The Meaing of Art. p. 39.

46)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일기 p. 200.

47) 빅토 웰링톤 피터스,“시무언(是無言),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자” p. 103.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한 사람으로써 신마르크시즘을 수용하여 현대 미학의 새로운 장르를 연 사람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이다. 그는 개념적 형식들은 우리를 왜곡시키고 실재에 실천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면서 예술이야말로 학문적 이론이나 정치적 행위가 보증하지 못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유지시켜 준다고 미학을 극찬한다. 예술은 억압된 사회 구조에 대하여 상대적인 자율을 지니고 있어서 자유의 요구와 사회 비판을 대변한다는 것이다.48)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예술의 기술이나 형식은 단지 예술 작업 안에 머무는 가장 중요한 방도라면, 반대로 예술의 의미와 정신은 예술 작업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가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따라서 예술의 기술과 예술의 정신 사이의 중개야말로 미학의 불가사의한 진수를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49) 아도르노는 이 불가사의한 진수를 enigma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예술 속에 담긴 진리라고 한다. 아도르노는 이른바 미학의 정치적 차원을 다음의 3가지 차원에서 긍정하고 있다.50) 첫째는, 자연이란 단지 이성이 콘트론 할 수 있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예술은 인간과 자연의 이성화 되어진 관계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소위 현대 과학이 고도의 기술을 주물숭배하고 있는 반면에, 예술은 도리어 부조리 없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요구와 목적을 상기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예술이야말로 사회 • 조직의 사이비 성을 폭로한다는 것이다. 즉 통제된 사회는 일련의 제도들을 만들어 내서 그것을 불변의 진리인양 보수하려고 하지만, 예술은 그러한 허울 속에 숨겨진 모순들을 폭로한다고 말한다. 셋째로, 소위 진보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예술은 유토피아적 충동을 삭제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예술이야말로 “사회의 사회적 안티테제”51) 라고 부른다. 소위 예술은 이렇게 하여 ‘계몽의 변증법’52)에 동참한다고 말한다. 즉 아도르노는 진보된 자본주의는 오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지만, 예술은 계몽의 변증법에 참여하는데, 이러한 참여는 두 가지 차원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즉 첫째로 예술은 자본주의의 긴 과정에서 상실하거나 놓쳐버린 '비 판적 표현'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이제까지 자본주의가 성취한 또는 성취할 것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변혁하게 만드는 '부정의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53)

    비판철학자 아도르노가 논한 미학은 한참이나 잘못 나가 끝내 병들어 버리고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부분적 수정이 아니라, 근본에 있어서 고쳐 나아갈 사회 변경을 위한 필연적 담론이 된다. 그런 점에서 아도르노의 사회 변경의 담론은 당시 사회와 교회의 각성을 나름대로 강하게 촉구했던 이용도의 미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 다. 즉 이용도야말로 누구보다도 철저히 자기 시대의 안티테제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48)  T. Honderich (ed.)The Oxford Companion to Philosophy. (Oxfor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5)p. 8f.

49)  Theodor W. Adorno, Aesthetic Theory. Trans, by Lenhardt.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84)p. 479.

50)  L. Zuidervaart, Adorno's Aesthetic Theory. The Redemption of Illusion. (Cambridge, London: The MIT Press,31994),

      p. 251f.

51) Ibid.

52) M. Horkheimer Theodor W. Adorno, Dialektik der Aufklarung. Philosophische Fragmente. Frankfurt am Main 1969

     참고.

53)  L. Zuidervaart, Adorno's Aesthetic Theory, p. 252.


그는 자신이 안티테제로 산 것 때문에 철저히 고난과 소외를 당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용도의 안티테제에는 언제나 예수와 그의 십자가가 숨쉬고 있었다. 그래서 아도르노가 말하는 사회 변경의 힘으로서의 안티테제와 이용도의 안티테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즉 이용도의 뒤에는 예수가 있으나, 아도르노의 뒤에는 마르크스가 있다. 또한 이용도 미학의 사회 변경의 담론에는 종교 체험이 있는 반면에, 아도르노의 담론에는 이데올로기 비판이 있다. 아도르노가 ‘사회의 사회적 안티테제’를 말했다면, 이용도에게는 ‘종교의 사회적 안티테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아도르노가 이론적으로 빚지고 있는 사상의 진원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파헤친 칼 마르크스(K. Marx)라는 점에서 이용도와는 배경이 너무 다르다. 동시에 이용도 미학이 가진 정서가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심한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아도르노의 미학을 논하면서 우리가 또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동 · 서가 이데올로기로 대립되어 있던 냉전의 시대도 아니며, 계급 갈등으로 격돌하던 20세기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부르짖으며 시작된 21세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하면 신-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발전된 아도르노 미학의 사회 변경의 담론을 마르크스의 입김이 사르러든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과연 수정 없이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21세기 자본주의를 20세기 자본주의와 구별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미학에 도입한 프레드릭 제임슨(F. Jameson)의 입장은 우리에게 좋은 통찰을 제공해 준다.

    소위 자본주의의 발달을 시장 자본주의에서 독점 자본주의로, 다시 독점 자본주의에서 후기 소비자 자본주의로 전이되었다고 보는 제임슨은 이제 아도르노의 미학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권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미학과 정치의 연결을 새롭게 구상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포스트모던적 축제를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스토리 텔링에 새로운 안무를 제공하기를 원한다.54) 제임슨은 소위 헤겔적-마르크스적 주제-객체의 변증법을 해체시키기 위해서 앤더스 스테판슨(A. Stephanson)의 ‘초공간 이론’ 55)을 차용한다. 즉 객체의 극점에 있는 궁극성과 주체의 극점에 있는 궁극성은 곧 양자의 해체를 위한 ‘초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면서 소위 모더니즘의 근간이 되어있는 주 · 객을 뛰어넘는 포스트모던적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 낸다. 동시에 제임슨은 쟈크 데리다(J: Derrida), 미셀 퓨코(M. Foucault), 쟈크 라캉(J. Lacan), 질 들레쥬(J. Deleuze) 그리고 쟝-프랑슈아 료타(Jean-Francois Lyotard) 둥과 같은 이른바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있다.56)

   

54) Ibid., p. 249.

55) A. Stephanson, "Rereding Postmodernism - A Conversation with Fredric Jameson,: Social Text 17 (Fall 1987) p. 32.

      터뷰 논문은 다시 Postmodernism/Jameson /Critique, ed.Douglas Kellner (Washington, DC.: Maisonneuve, 1989), pp. 43-74

      에 실렸다.

56)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p. 40ff 62ff 225ff.


    제임슨이 내다보는 21세기 포스트모던적 미학은 이러하다. 그는 우리 사회 속에 생동감 있는 ‘정치적 문화’의 부재를 탄식하면서 아직 탄생하지 않은 바로 이 미래의 문화적 산물을 위해 ‘빈 의자’ 를 구상한다. 그는 아도르노의 미학이 지닌 모더니즘적 구상을 현재를 위한 것이었다면, 자신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위한 정치적 문화를 구상한다. 바로 이 미래적인 정치적 문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을 따라서 탈-중심주의적이다.57) 이러한 제임슨 미학의 담론 속에는 ‘상징적 행위’가 자리잡고 있다. 이 상징적 행위는 일종의 혁명적인 사회 변혁의 담론을 말한다. 이른바 사회 변혁의 담론인 이 상징적 행위와 사회가 맺는 관계를 제임슨은 본문(text) 과 하위본문(subtext)의 관계로 설명한다. 즉 본문은 사회적 실재를 표현하지만, 하위본문은 개혁을 담아 내고 있다는 것이다.58)마치도 꿈이 무의식을 감추고 있듯이 텍스트 본문은 자기의 하위 본문을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때까지 감추고 있다고 한다.59) 만일 이러한 상징적 행위의 행위자가 누구냐하고 묻는다면 그는 바로 행위 그 자체가 행위자라고 답하겠다고 한다. 이는 마치도 텍스트 본문과 저자의 관계가 결절(node)의 상호 작용과 같은 것으로 유비 시킨다.60)결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인 료타에게 잠시 귀를 기울여 보자. 소위 근대적 자아관의 중심적 자아를 비판하면서 그는 기상천외의 발상인 결절로서의 자아를 말한다. 료타가 말하는 결절이란 복잡한 인포메이션의 조직망의 매듭점과 같은 것으로써 이른바 관계주의적인 인격 이미지를 의미하며, 이는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적 자아를 대폭 수정하는 비실체론적이고 유기적인 포스트모던적 발상의 전환을 말하고 있다.61)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방향은 독단적 이성과 주어 중심의 주관성을 극복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임슨은 조각나고 다차원적으로 보이는 사회도 사실은 “매듭 없는 그물망”62)과 같은 유기체와 같다고 설명한다. 상징적 행위와 사회의 관계를 본문과 하위 본문으로, 그리고 상징적 행위와 행위자 사이의 유기적 상호성을 본문과 저자 사이에 발생하는 결절의 상호성으로 보려는 제임슨의 일 련의 노력은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의 특성을 그대로 잘 담아내고 있다.

    이용도 미학의 담론을 아도르노의 눈으로만 읽어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이용도야말로 자기 시대를 철저히 문제삼으면서 온 몸으로 예수적 삶을 실천하려고 했던 ‘안티테제’였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아도르노에게 불소시게 역할을 마르크스가 했다면, 이용도의 가슴을 불태운 분은 분명히 예수와 그의 십자가였다.


57) 포스트모더니즘은 철저히 중심주의(centrism)를 거부하고 나온다. 이른바 데리다는 서구 사상의 중심이 되어 온 ‘로고스 중심주

      의’(logocentrism)를 비판하면서 자기 철학의 과제를 중심주의를 부수어 내는 철거정신(deconstruction)에 있다고 말한다. 김광

      원,열린 기독교를 향하여 -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서울: 한들,1997) p. 50f를 볼 것. 일련의 중심주의에 대한 반

      전으로 질 들레쥬는 ‘탈-영역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Ibid., p. 44를 참고할 것.

58)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p.81.

59)  William C. Dowling, Jameson, Althusser, Marx An Introduction to The Political Unconciou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4), p. 123 참조.

60) L. Zuidervaart, Adorno’s Aesthetic Theory, p. 258.

61) 김광원「말이 없다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서울: 선학사1999)p. 62.

62) L. Zuidervaart, Adorno’s Aesthetic Theory, p. 258. 제임슨 자신은 ‘결절의 상호성’ 뿐 아니라이데올로기의 교차(criss-

      crossing of ideology) 그리고욕망과 역사의 비타협성(desire and the intransigence of history) 대한 발상을 모한티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 Cf. S. P. Mohanty, "History at the Edge of Discourse," in Diacritics 12 (Fall, 1982) 3: 45를 참고할 것.

 

동시에 이용도는 끝내 그의 현재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래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예수를 온 몸에 담아 표현한 ‘상징적 행위’였음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천의 미학, 해방의 미학, 저항의 미학 그리고 죽음의 미학이라는 이용도의 사회 변혁의 담론을 실로 자기 시대의 종교적 ‘안티테제’요, 더 나아가서 다가올 시대를 위한 ‘상징적 행위’라고 말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에 있어서 이용도와 그 추종자들은 결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서는 안되며, 평양 시내의 심령들과 동반하고 곁에 있어 준 이른바 ‘세상 한 가운데’ 뿌리를 내린 교회 개혁의 공동체였다고 정희수 교수는 평가한다.63)이에 필자는 이용도 미학의 담론을 여기서 마감하면서 그는 분명히 예수를 사랑하고 그 예수를 참으로 추종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열정적인 항거의 진리’와 ‘억압된 일-차원성을 해방하게 하는 새로 운 가능성’ 64)을 찾도록 지속적으로 초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3) 정희수,“예수 교회 전통에서 본 평신도의 영성“ 「이용도와 한국 교회의 개혁운동 p. 293.

64) H. Kiing, Art and the Question of Meaning. (New York Crossroad, 1981) p. 64ff.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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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

Dowling William C., Jameson, Althusser, Marx: An Introduction to "The Poli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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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kfurt am. Main 1969.

Jameson F, The Political Uncon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Kung H., Art and the Question of Meaning. New York: Crossroad, 1981.

Lacey A. R., A Dictionary of Philosophy.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86.

Martin James A. Jr., "Aesthetics" in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Ed. by Mircea Eliade,

    Vol. I. New York: Macmillan Publisching Company,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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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um Rationalen. Gotha,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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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tag F., Love Beyond Pain. Mysticism within Christianity. New York, Ramsey, N.J.,

    Toronto: Paulist Press, 1977.

Takizawa K, Das Heil im Heute. Ein Japanischen Theologie. Hrsg. von Theo Sundermeier,

    Gottinge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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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IT Press, 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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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 「말이 없다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서울: 선학사,1999.

변종호 편저, 이용도 목사」서울: 장안문화사,1993.

변종호 편저, 이용도 목사 일기 서울: 장안문화사, 1993.

변종호 편저, 이용도 목사 저술집 서울: 장안문화사, 1993.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서간집 서울: 장안문화사,1993.

변종호 편저,龍道信學(서울: 장안문화사,1993)

예수교회 엮음, 「是無言」서울: 다산글방, 1993.

예수교회공의회편,용도와 한국교회의 개혁운동 이용도목사 연구논문집 제1권,서울:

    장안문화사, 1995.

이용도 신앙과 사상 연구회편, 이용도 목사의 영성과수 운동서울: 성서연구사,1998.

 

 

 

김광원 교수의 글, “이용도와 미학”을 읽고나서


김 흡 영 박사

(강남대학교 신학대학장)

 

 

    김교수는 이 논문에서 이용도 목사의 미학 사상을 십자가와 실천의 미학, 가난과 해방의 미학, 시무언과 저항의 미학, 그리고 종말과 죽음의 미학 네 가지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테오도르 아도르노, 프레드릭 제임슨 둥의 현대 미학 사상과 비교하면서 조명하여 보았다. 이러한 김교수의 시도는 이용도 사상에 있어서 꼭 필요했던 미학적 측면을 살펴본 것으로 이용도 연구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글에 관한 논의와 앞으로 이용도 연구에 발전을 위하여 이 논평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


1. 이용도의 미학 사상과 포스트 모던 미학과의 연결은 좋은 시도이나, 비교를 위한 비교로서 지나친 점이 없지 않다. 이용도의 미학사상이 포스트-모던적 감각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은 외에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지 이 글은 그 쟁점이 불분명하다. 현대 미학과 이용도의 미학과의 비교 및 대화를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해석학적 전개가 필요하다. 서로 간의 래디칼한 맥락의 상이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유사성만을 절충적으로(eclectic), 다소 무리하게, 끄집어 낸 경향이 있다. 예컨대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주요 관심은 이념과 모더니즘이지만, 이용도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의 주 관심은, 말하자면, 오히려 영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드르노와 제임스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해체보다는 울트라 모더니즘적인 입장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미학은 근본적으로 유(有)의 미학인 것이다. 그러나 신토불이의 한국인 시무언의 미학은 도가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야말로 무(無)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의 서양적 미학과 무의 동양적 미학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용도의 고유한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하여 다른 사상적 패러다임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다른 사상적 틀에 이용도를 끌어 맞추는 환원주의적 태도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이 점은 앞으로 이용도 연구 방법론에 있어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2. 이용도의 신학을 좀 더 냉철하게 교회사를 통하여 조명하여 보았으면 한다. “종교적 천재성”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둥 이 글의 전체적인 논조는 이용도에 대한 극찬(eulogy)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국 교회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사에 있어서도 이용도의 중요성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그의 사상이 과연 얼마나 독창(“천재”)적인가? 하는 것을 기독교 사상사 전반에 걸쳐 냉정하게 평가해 보아야 한다.

     김교수의 글에는 이러한 비판적 시각과 맥락적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김교수의 입장은 전반적으로 너무 현대적 담론에 치우쳐 있어서, 기독교의 역사적 통찰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시무언(是無言)의 미학”은 이용도만의 독창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어거스틴도 말했듯이, 본래부터 무언, 침묵(silence)이 신학의 시작이었다. 인간의 말은 신의 계시를 담기에는 부족하다. 신학은 오늘날처럼 말을 위한 말을 했던 것(phonocentric)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이 세상에서 왜곡되게 이해될 때에 그것을 고치기 위해(corrective) 어쩔 수 없이 말을 했던 것이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잃어 버렸지만, 침묵의 미학 그것이 바로 신학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3. 사실상 이용도의 천재성은 근본주의적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조성된 말중심적인(kataphatic) 개신교의 영성적 풍토 속에서, 기독교 영성사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독창적이고 한국적인 무(apophatic)의 영성을 발견한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성은 자연적으로 미학을 포함한다. 영성은 한 인간 주체가 총체적 합일을 이루는 완전한 순간을 지시하고, 이 순간은 예술적 표현을 유발한다. 시무언의 미학적 영성은 기독교 영성사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조명되고 접목될 때 그 찬란한 빛을 발하리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우리는 가톨릭 부정신학의 전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꾸띠에레쯔 등에 의해 표출된 해방신학의 가난한 자의 영성과도 비교해 보면 큰 수확이 있을 것이다.

    내가 즐겨 애송하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다음 구절에서 시무언의 영성을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쉬운 것보다는 가장 어려운 것으로,

 

가장 감미로운 것보다는 가장 가혹한 것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것보다는 가장 불편한 것으로,

가장 평안한 방법보다는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위안이 되는 것보다는 위안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가장 큰 것보다는 가장 작은 것으로,

 

가장 높고 고귀한 것보다는 가장 낮고 경멸스러운 것으로,

 

무엇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세속적인 것에서 가장 좋은 것보다는 가장 나쁜 것을 구하며,

 

세상에 모든 것에 대하여 완전히 벌거승이가 되어서,

 

완전한 비움과 완전한 가난으로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기를 원하노라.

 

    (John of the Cross, The Ascent of Mount Carmel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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