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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목사 107회 탄신기념 연구논문 발표회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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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10-13 11:30 조회4,5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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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無言이용도목사 107회 생일기념 연구논문 발표회



주 제 : 이용도 목사의 영성


 

“대상관계 정신분석으로 본 이용도목사의 십자가 신비주의”

 

 

    

                                   일 시 : 2008년 4월 10일(목) 14:30-17:30


                      장 소 : 협성대학교 웨슬리관 설봉채플


                      주 최 : 협성대학교 신학대학교

                                시무언 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


                      후 원 : 기독교 타임즈



 

개 회 식

 14:30 ~

      14:50 (20분)

사     회

이홍기 목사

이용도목사기념사업회

학술분과 위원장

개회기도

유승훈 목사

이용도 기념사업회 총무

인사말씀

김종순 회장

이용도 기념사업회 회장

주제강연

 

사      회

서영석 교수

협성대 신학대학 학장

1주

이용도목사의 생애와 고난의 영성

 15:00 ~

      15:40 (40분)

발      제

함은규 원우

협성대학교 대학원생

 15:40 ~

      15:50 (10분)

논      찬

김범수 원우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생

 

2주제

대상관계 정신분석으로 본

이용도목사의 십자가 신비주의

 16:00 ~

      16:50 (50분)

발       제

박성만 박사

경찰대학교 경목 실장

 16:50 ~

      17:00 (10분)

논       찬

이상윤 박사

한국기독교 사회봉사회 총무

종합토론

 17:00 ~

      17:20 (20분)

사  회  자

서영석 교수

협성대 신학대학 학장

친교시간

 17:20 ~

               17:30

 

 

 

 

 

 

 

 

시무언 이용도 목사 107회

탄신기념 연구논문 발표회 순서



 

1부 기 도 회


 

사회자: 이홍기목사

(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 학술분과 위원장)


찬          송------------------------  543장  --------------------다    같    이


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2.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3.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4.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5.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후렴)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기          도----------------------------------------------------유승훈 목사

인 사 말 씀----------------------------------------------------김종순 회장 

특          송----------------------------------------------------김옥수 목사 

광          고----------------------------------------------------김길송 목사 

축          도----------------------------------------------------나형석 목사 

 


2부 강 연 회


사회자: 서영석 교수

(신학대학장)


강  사  소  개----------------------------------------------------사    회    자

 

제1강연주제------"이용도 목사의 생애와 고난의 영성"-----함은규 원우(MA 3학기)

논             찬-------------------------------------------김범수 원우(Th.M 4학기) 

강  사  소  개---------------------------------------------------사    회    자 

 

제2강연주제----"대상관계 정신분석으로 본 이용도 목사의 십자가 신비주의"----박성만 박사

                                                                                                                          (경찰대학교 경목실장)

 논             찬-------------------------------이상윤 박사(한국기독교 사회봉사회 총무)

종  합  토  의---------------------------------------------------사    회    자

 

 

 

3부 간식과 친교시간

 

 

< 목       차 >


머   리   말------------------------------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 회장

시무언 이용도목사 연보-------------------------------------------5

 

 

 

 

            ◈ 제 1 주제        사회자 : 서영석 교수(협성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이용도목사의고난의영성”

              -----------------------------------------------------------------------7


 

 

                                            주제발표 : 함은규 전도사 (M.A 3/4학기 협성대 대학원생)


             ◈ 논       찬

 

                  논       찬 : 김범수 전도사 (TH.M 4/4학기협성대 대학원생)


             ◈ 제 2 주제

             “대상관계 정신분석으로 본 이용도목사의 십자가 신비주의” 

              -----------------------------------------------------------------------19


                                                    주제발표 : 박성만박사(경찰대학교 경목 실장)


              ◈ 논       찬

         ---------------------------------------------------------------------------------------------------59 


                                                    논찬자:이상윤박사(한국기독교 사회봉사회 총무)


              ◈ 종합토론

             -------------------------------------------------------------------------

                                                     사회자 : 서영석 교수 (협성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시무언 이용도목사 107회 생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서 2008년 4월 10일 이곳 협성대학교에서 시무언 이용도목사 107회 생일기념 연구논문 발표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의 큰 목자이신 시무언 이용도목사의 107회 생일을 맞이하여 그의 생애와 사상과 신앙의 영성을 본받고저 갈망하는 믿음의 후배들이 이곳에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용도목사가 비록 예수님처럼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사셨으나 그는 오직 예수님만을 닮기 위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라의 주권을 잃고 슬픔과 설움으로 통곡하고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주권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동시에 한국교회의 교권주의와 선교사들의 대한 지나친 의존적인 한국교회의 체질을 과감히 바로 잡는 새 교회 토착화운동에 투신함으로 많은 교권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의 신앙을 돌이켜 볼 때, 그의 신앙사상은 단순이 한 개인의 것으로 국한하기에는 매우 고귀한 큰 뜻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그가 실천한 신앙과 사상 그리고 목회사역을 현대적 신앙가치관으로 올바로 정립하여 오늘의 영적각성운동에 새터전을 마련하고 새롭고 다이나믹한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믿음의 동지들이 합심하여 오늘의 이 모임을 위해 준비하고 수고해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은 비록 빈손으로 왔으나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산다는 것은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업적과 유산을 반드시 남기고 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줄 압니다.

     아무쪼록 이번 모임을 기하여 우리도 이용도목사를 본받아 우리의 신앙을 Upgrade시킬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롭게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자리에 함께 모인 목적이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지상명령임을 명심하고 우리의 생애가 끝날 때, 내 생명의 바구니 속에 무엇을 담아가지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인가? 란 물음을 늘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인생을 올바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로 협성대학교가 이용도목사를 본받아 신앙의 영성을 회복하는 운동이 불붙듯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젊은 여러분들이 이용도 목사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주도적인 Leadership을 발휘하여 침체된 오늘의 한국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고 부흥 발전시키는데 앞장서는 애국애족운동의 요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이 협성대학교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시무언 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순

 

 

 

 

 

시무언 이용도 목사 연보


 

 

1901. 4. 6.    황해도 금천군 서천면 시변리 178번지에서 아버지 이덕홍씨 어머니

                  양마리아씨 사이에서 사남 일녀 중 세째로 출생.

1910. 1. 15.   세례 받음.

1914.           시변리 공립보통학교 졸업.

1915.           송도 한영서원 고등부 입학.

1919. 3.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잡혀 2개월간 유치장 생활.

         6. 4.   송봉애(宋鳳愛)와 결혼.

1920. 2.        기원절 사건으로 체포.

        9.        시변리 신영학교 교원.

       10. 20.  아들 영철 출생.

       12. 18.  조선독립주비단 사건으로 신계경찰서에 검거됨.

1921. 3.       송도고등보통학교(=한영서원) 삼학년에 재입학.

       11. 11.  태평양회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옥고를 치름.

1922. 8.       석방.

1923.           송도고등보통학교에 세 번째로 입학.

1924. 2.       감리교 협성신학교 영문과 입학.

                  이호빈, 이환신을 만나다.

1925.           (봄) 현저동에 자취방을 얻어 삼이형제가 동거하다.

        11.      폐병 삼기로 진단.

                  이환신의 공향 평안남도 강동에 휴양차 갔다가 그곳 교회에서 울음으로

                  집회를 인도한 이른바 강동 체험을 하다.

1927. 3. 17.  딸 영숙 사망.

        4.       가극 “춘풍” 발표(“아이생활”, 19274년 4월호).

     5-6.       가극 “공주와 꽃팔이” 발표(“아이생활”, 1927년 5~6월호).

        9. 13.  강원도 통천 파송.

       12.       협성신학교에서 연극 “십자가를 지는 이들” 각본을 쓰고 주연함.

1928. 1. 28.  협성신학교 14회 졸업.

        1. 29.  파송지인 강원도 통천 교회에 부임.

        9.       연회허입.

       11.       성극 “애굽의이스라엘” 발표(“아이생활”, 1928년 11월호).

       12.       성극 “믿음으로 사는 화공” 발표(“아이생활”, 1928년 12월호).

       12. 24.  승마체험.

       12. 29.  온정리 교회 집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함.

1929. 1.  4.  성화로 죄인을 소살하는 성몽을 꿈. 이 꿈을 계기로 자신을 온전히 주께 바쳐

                  말씀을 전하다가 죽기로 새롭게 각오하다.

                  연초 2개월 동안 통천 부근 20여개 교회 부흥집회 인도.

 

 

1929.12. 30  (새해 1월 5일까지) 덕적도에서 부흥집회 인도. 이 집회에서 김광우와 만남.

1930. 1.  1.  고(苦), 빈(貧), 비(卑)를 생활훈으로 삼다.

        2. 26.  (3월 9일까지) 평양 중앙감리교회 부흥집회 인도.

                  이 집회에 참석했던 장로교 청년 7인이 서문밖교회 지하실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함(후일 “평양기도단”으로 지칭).

        4. 3.   평양 중앙감리교회 청빙(연봉 1,200원) 거절.

        9. 28.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 받음.

       10.16.  전국주일학교연합회 간사로 발령 받음.

       11.25.  남북감리교 감독, 명년 도미유학 주선을 약속.

1931. 1. 9.   (16일까지) 경북 영동 집회. 걸아 최억성을 만남.

        2. 3.   (6일까지) 청년회 기독교 강좌 인도.

        2. 15.  (18일까지) 기도단 요청으로 평양 방문.

        2. 16.  (28일경까지) 재령 집회 인도.

        3.  5.  (13일까지) 거창 집회 인도.

        5.       감리교 경성지방 순회목사로 파송.

        7. 20.  김교신에게 연락, 처음으로 만남.

        7. 26.  이용도 목사 초청으로 김교신 광화문교회에서 강도하다.

        7.       (하순) 이용도 이호빈 원산 방문. 한준명 등 만남.

        9.       삼방약수터에서 요양 중 원산 수도자들과 집회를 가짐.

       10. 2.   아현성결교회 집회 인도 중 쫓겨남.

1932.           장년 만국통일주일공과 출판.

        3. 16.  경성지방회에서 타교단 초빙시 허락을 받도록 조치.

        4.       평양노회, 평양기도단 활동제한 조치.

       10. 7.   평양노회, 이용도 금족령 가결.

       11.       (초순) 평양 입류 사건 (소위 "한준명 사건”)

       11. 28.  평양노회 임시노회 소집, 한준명 백남주 처리 결의. 이용도 감리교에

                  조회하도록 조치.

1933. 1.  3.   원산 예수교회 개천예배 참석.

         3.       감리교 목사 사임 청원.

         6. 3.   예수교회 창립선언 발기인 대표.

         6. 6.   예수교회 창립공의회에서 선도감으로 피선.

         7.       감리교 목사 사임 수리.

        10. 2.   원산 광석동에서 운명.

1995. 8. 15.  정부,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 추서.

1998.10.      감리교 제23회 총회에서 김종순 목사 외 13명이 이용도 목사 복권에

                  대한 청원을 총회에 제출하여 만장일치로 복권하기로 합의하다.

1999.3.        상기 이용도 목사에 대한 복권 청원에 대한 결의가 서울 연회에서 통과되다.

 



시무언 이용도 목사의 생애와 고난의 영성



협성대학교 M.A  3/4학기 역사신학 함은규

 

 

 

 

 


시무언(是無言) - 말하지 않는 것은 좋다.

“이 세상은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 않아도 좋을 말, 남을 해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자기의 아름다운 뜻을 남에게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을 가지고 얼마나 남을 해하고 세상을 망치는 것입니까. 이 인류

사회의 모든 악, 모든 싸움 모든 화근은 다 이 말에서 되는 것임에 나는 말이

없기를 바라며 또 벙어리가 되어지기 위하여 염원 하는 바이올시다”1)

 

 

 

 

 

1. 들어가는 말


 

     시무언 이용도 목사가 한국 기독교에  끼친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33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리교 역사 안에 또 기독교 역사 안에 많은 흔적들을 남겼으며 오늘날 교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가르침을 그에게서 배울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이용도 목사의 삶의  핵심을감히 고난(苦難)의 영성이라 칭하여 본다. 이용도 목사 그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고난의 길을 따라 걷기 원하였으며, 고난 가운데 기쁨을 진정으로 아는 이였다. 이제 그의 생애를 통하여 나타난 그의 고난(苦難)의 영성을 조명하며 오늘날의 교회에 그리고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이용도 목사의 영성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2. 시대적상황2)


 

   1) 정치적 상황

    1901〜1933년 동안의 짧았던 그의 생애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정치적으로는 1910년 8월 29일 조선은 국가를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었고 일본은 한일합방 후 민족말살정책을 시도하였다. 1919년 이에 반하여 민족의 독립과 주권회복을 염원하며 3.1운동이 일어났으나 이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그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민족적 비극의 상황은 더욱 더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민족말살정책은 이 운동을 계기로 문화정치로 변하였다. 일제의 지배하에서 고통을 받으며 일제의 지배를 극복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한국인들은 1926년 6.10만세 사건, 학생들의 동맹휴교(1926-1928),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1년 만주사변과 같은 일본 저항사건을 일으켰다. 사회는 날로 어지러워져갔고 경제적으로는 봉건주의의 착취와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하여 농민들은 땅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가는 이농현상을 초래했다 일본의 탄압은 농민과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정치, 경제적 수탈을 하여, 국민의 자포자기의 성향을 가지게 했고, 민족적 좌절감과 허탈감 등으로 자신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도피적 현상이 현저히 발생하게 되었다.

1) 변종호저,『이용도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77~78

2) 최문기, 『이용도와 웨슬레 신학의 재발견』, 서울:선교타임즈, p7~10

   박찬희, 『시무언 이용도, 민족 고난의 담지자』

 

 

    2) 종교적 상황

    일본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합방을 시작하자마자 교회의 바탕을 제거하고 한국 민족의 정신 깊이 자리잡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근절을 꾀하려고 노력하였다. 1920년대까지 개신교를 이끌어 나간 선교사들과 개신교 지도자들은 민족 비극의 역사 속에서 근본주의적 영적 심령 대부흥회를 통해 민족의 아픈 현실을 치유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면서 한국교회 역시 그 성격 자체가 탈사회적,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20년대 30년대 들어서 교회 공동체가 민중의 삶에 새 힘을 불어 넣어주지 못하자 일반 지식층은 교회 공동체의 무기력과 기성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교회는 점차 영적인 세계만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일제의 압제에 대항한 3.1 운동 이후 사회운동, 민족운동,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은 망명, 변절, 순교, 활동 정지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민중들은 지도력과 구심점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으며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종말론 지향적, 신비주의적, 내세 지향적 색채가 강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교회 안에서 교파 신학에 근거한 교파 중심주의와 교권 의식으로 말미암아 교파간의 갈등과 마찰, 선교사의 우월주의와 한국인 사이의 갈등, 사회주의와 진보 계열의 교회 비판, 지방색이 가미된 교권 분열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점차로 외적인 제도와 조직에 매달려 내적 생명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과 함께 기독교는 지식인층에 번지고 있는 사회주의 운동에 의한 강렬한 도전을 받아야만 하였다. 이 사회주의 운동은 기독교가 초기 선교에서 지향한 교육과 계몽운동, 사회개혁 운동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민중을 동원하여 세속적 사회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혁하여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서 교회가 아니라 민중이 주도하는 교회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용도는 민중들의 아픔과 함께 하며 고난의 길을 걸어나갔다. 그는 영적 부흥운동을 이끌었으며 그의 부흥운동은 당시의 제도권 교회에서 배척을 받으면서도 새로운 차원의 소망을 제시하여 주는 민중적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용도의 생애

 

 

    그의 생애는 그가 고난(苦難)의 영성을 가질 수 밖에 없도록 그 뿌리를 형성하였다. 이제 그의 영성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그의 생애로 들어가보자.


    1) 소년시대3)

 

 

 

    이용도는 1901년 4월 6일 황해도 금천군 서천면 시변리 아버지 이덕흥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특별히 뛰어난 사실이 없었고 그의 어린시절 또한 특별히 기록할 만한 사실이 없다.

3)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18~21

   유동식,『풍류도와 한국인의 종교사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7, p292


그의 아버지는 장터의 거간꾼으로 난폭한 성격에 대주가였고, 어머니는 시변리 교회의 전도부인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들은 몹시 가난하였으며, 부친으로 인해 언제나 불안하고 불화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용도에게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을 하게 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삶을 이어갔다. 그는 훗날 그의 일기에서 “나의 오늘의 있음은 오로지 나의 어머니의 기도에 인함이로다” (일기1930.05.17)라고 했다. 이용도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어려서 잔병을 많이 앓고 신경이 과민한 편이었고 울기 잘하는 점으로 보아 보통 이하의 변변치 않은 아이였다. 그래서 부형들은 그를 초저녁에 죽을 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니며 몸도 건강하여지고 두뇌도 발달하여 선생님의 총애를 받고 여러 친구들을 거느리고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가 신앙의 어머니를 항상 박해하고 압제하는 가운데 용도는 어려서부터 기도생활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부형들의 말과 용도의 간증에 의하면 13세 때부터 예배당 종각에 올라 여러 시간 혹은 밤새도록 기도를 올린일이 있었다고 한다. 늘 기도로 살았던 용도는 한밤중 백부님 심부름을 하다가 처음으로 환상을 보는 경험도 하게 된다. 14,5세가 되자 그의 재질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는 말재주가 비상하여 15,6세 때 이미 윤치호, 이상재, 양주삼씨 등에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2)중학시대4)

    1915년 개성 한영서원(후에 송도고등 보통학교가 됨)에 입학한 그는 남들이 4년이면 다닐 학교를 9년동 안이나 다녔다. 가난했던 이용도는 학교 부설 직조공장에서 일하는 등 고학을 하였으며 1919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만세시위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는 이로 인해 2개월간 유치장 생활을 하였고 그 후 12월에는 조선 수비단 사건으로 신계경찰서에 검거되었으며 다음해 2월 11일 기원절 사건으로 들어가 6개월간 투옥되었다. 1921년 성탄절에는 불온문서 사건으로 또다시 6개월간 투옥되었고 1922년 가을에는 태평양회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징역을 선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1923년 8월에 석방되었다. 5번의 투옥과 3년여의 감옥살이를 겪으면서도 이용도는 굴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1923년 8월에 출옥한 이용도는 송도고등보통학교에 복교를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고 교장이었던 왓슨은 비공식적으로 졸업의 자격을 주어 1924년 2월 협성신학교 영문과에 입학하도록 돕는다.

 

    3) 신학시대5)

   신학교에 입학한 이용도는 아직도 민족독립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신학공부보다는 정치, 사회, 신문, 잡지, 문학, 소설, 법률 등에 관한 책을 탐독하여 이론싸움이나 논쟁을 즐겼고, 강의 시간에는 괴상한 질문으로 교수들에게는 이론가, 논쟁가, 말썽꾼, 경우꾼, 싸움꾼, 과격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시, 노래, 연극 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가극과 동화와 동요와 아동설교에 취미를 붙여 주일학교사업에 열중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이호빈과 이환신을 만나게 되었고 1926년 그는 폐병 3기로 판명이 되어 이환신의 고향인 평남 강동에 휴양을 가게 되었다. 강동에서 함께 간 이환신과 부흥회 인도를 부탁받게 되었고 첫날 사회를 보던 그는 찬송149장(오늘날163장)을 부르며 울기 시작하였다. 둘째 날 그는 감격과 감동의 울음바다를 이루는 설교를 하였고 계속된 부흥회로 한 달간을 지내며 몸의 원기도 회복되고 기분도 상쾌하게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강동을 다녀온 이후 그는 “바치라, 그저 완전히 바치라. 주님께 완전치 바치기만 하면 내 모든 문제는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내 몸 전체도 주님께서 뜻대로 잘 맡아 사용하신다.”라고 하며 주님이 모든 문제를 주관하심에 확신을 얻고 중생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4)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21~25

5)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25~31

    김인수, 『한국교회의 역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p427

    김진환,『한국교회 부흥운동사』, 서울서적, 1993, p143-144

 

 

 

    4) 목회시대6)

    신학교 4학년 2학기, 그는 강원도 통천으로 파송되었다. 1928년 1월 28일 졸업을 한 그는 부임초기 약 반년동안 인본주의 신앙에로 전락하여 중심(重心)을 잃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0간의 금식 산 기도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신앙혁명을 이루어 냈다.

    1928. 12. 24 새벽에 마귀들과의 싸움 후 그는 엄청난 영적 능력과 권세를 갖게 되었으며, 1929년 20여 곳의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가 이르는 곳마다 불이 떨어지고 그가 나서기만 하면 교회가 통회하고 갱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부흥회가 계속되었으나 교단에서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교역자의 이동시기도 아닌 1930년 10월 6일에 주일 학교 연합회 간사로 그를 파송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되고 인기가 높아지자 교단은 그에게 1931년 가을, 유학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그는 미국 사람들의 인본주의적 사고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으 로유학을 준비하였으나 교단은 다른 마음으로 그를 내쫒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성사되지 않았고 1931년 그는 지방순회 목사로 파송되었다. 이무렵 그는 주님의 섭리를 말로 다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주님과만 연락하면서 그 지시에 의해서 주님의 역사에 복종만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용도 목사는 자신의 호를 시무언(是無言)이라고 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많은 이들을 눈물로 회개하도록 인도하였다. 이러한 이용도 목사의 부흥사역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가 인도한 집회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다음의 몇 몇 집회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사역에 대해 쉽사리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평양 중앙교회 부흥회(1931년 2월 14일부터 3일간)7)

    첫 날밤의 설교는「예수의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이날 밤의 모든 광경과 상황은 벌써 땅의 것이나 땅에서의 것은 아니었다. 부르는 찬송소리도 사람의 노래가 아니요, 천군천사의 것이었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음성 모두가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설명은 사람의 벨을 갈래갈래 끊어내는 것이었다.「빌라도의 심판」을 설명하실 때 내 곁에 앉은 변호사가 너무도 울고 있으매 내 가슴이 아픔을 느꼈다. 천 여명의 군중은 그저 울음이다. 수천 개의 눈은 그저 눈물이다. 목석도 이 자리에서는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목사님의 설교는 그저 말이 기관총에서 쏟아져, 막 쏟아져 나와 가지고 사람의 귀에 와서 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중을 콕콕드리 쏘아,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갈라 놓는 고로 그 설교 앞에서는 죄를 두고는 참을 수 없고 흐린 마음은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6) 변종호저『이용도목사전』이용도목사전집제권장안문화사P34-35

7) 변종호저,『이용도목사전』, 이용도목사전집제권장안문화사p192-196


    마지막 날에는 회당이 정말 터지도록 사람이 모였다. 그 예배당이 오백명 수용하는 집인데 천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안에 사람이 어찌나 모여들어 복작거렸는지 담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회당이 무너진다는 소동까지 있었다. 사람이 겹겹이 드리 몰리어 무릎도 사람에게 눌리우고 잔등도 또한 사람에게 꽉 눌리어 무릎을 움직여 볼 수도 없고 등을 펴 볼 수도 없다. 요렇게 전신에 고랑을 채워 놓고는 몇분 동안도 참기 어려울텐데 그래도 괴로움을 모르고 오륵 쏘는 줄도 모르고 그의 말에 취하고 열정에 녹아지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설교를 한 시간이나 두 시간만은 안하신다. 대개 세 시간 네 시간이요 어떤 때는 선 자리에서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일곱 시간까지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을 그렇게 쭈그리고 있어도 졸음이 오거나 아픔을 느끼는 자가 없고 죄를 회개하고 주를 만나는 기쁨에 그저 찬송이 요, 그저 춤이 나올 뿐이었다.


     (2) 산정현교회 집회 (1931년 12월 중순 5일간)8)

    산정현의 5일간 더욱 더욱 열변이었고 더욱 더욱 신적(新的)인 활동이었다. 그 넓은 예배당이 빽빽 들어차고 마당까지 가득 가득 들어찬 것을 보아도 알 것이다. 산정현교회 집회 중 가장 힘있게 외치고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충격과 감동을 준 때는 마지막 날 저녁일 것이다. 예수께서 일생동안 조소, 멸시, 구박을 받으며 살던 정경의 묘사를 두 시간 동안이나 하시고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는 광경을 눈물로 설명하시더니 운명하실 때에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그 바짝 마른몸 그 반쯤 쉬여 힘드는 목소리, 땀에 번쩍이는 얼굴을 하늘로 향하더니 두 손을 하늘로 향하여 휘 두루며 울음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심장을 꿰뚫고 사람의 뼈속에 깊이 박히고, 사람의 두뇌에 깊이 뿌리박고 잠겨진 이 천성 천경에 모인 무리 수천 명은 너무 기가 막히고 너무 끔찍하여 참아 볼 수 없이 머리를 숙이거나 얼굴을 뒤로 돌리고 흐득, 흐득 느껴우는 것이었다. 이때의 이 충격과 음성이 길이, 길이 산정현 교회원 일동의 신앙지침이 되고 생활원리가 된 것이라고 믿는다. 이때에 이렇게 산정현 교회에 뿌린 이용도목사의 피땀의 씨가 옥토에 떨어져 잘 자라난 것을 알 수 있으니 그 후로 산정현 교회는 평양에서 가장 은혜스럽고 건실하고 굳센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3) 간도 용정촌 교회 집회(1931년 4월 18일부터 보름간)9)

    그 설교가 어찌도 열렬하고 권위가 있으며 생명의 불길이 뿜어 나왔는지 구경꾼이나 불신자까지도 사람의 말이 아니라고 놀랬었거니와 실로 성령에 끌리어 불타는 애곡의 간증이었으며, 천군(天軍)이 호령하는 뇌성과도 같았다. 청중은 울다가 무서워서 떨었고 무서워 떨다가 다시 울면서도 남이 알지 못하는 시원한 맛을 가슴에 맛보게 되어 폐회를 선언하나 헤어질 줄을 몰랐고 언제든지 집회 정각 전에 만원으로 문밖까지 메워지는 것이었다.


     (4) 안주읍 교회 집회(1932년 10월 3일부터 8일간)10)

    안주에서의 집회 광경에는 누구나 다 놀랐다. 밤 7시부터 예배를 시작하여 설교를 3~4시간씩 하고, 그리고는 밤이 깊도록 수백 명의 신자에게 안수기도를 하고 그리고 나서는 강대상 아래 엎드려서, 기도로서 밤을 완전히 세우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오전 공부, 또 계속하여 오후 공부 이리하여 안주집회 8일간은 문자그대로의 불면, 불휴이었다. 그렇게 약해보이는 몸이 그렇게 철석보다 더 강하고 단단함에는 누구나 다 놀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에는 요한복음 5장에서 끝장까지 성경낭독만 하였는데 그 성경낭독이 어찌도 사람을 감동시키고 울리는지 참 그런 역사는 처음 보았다.

8)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8권, 장안문화사, 1993, p214~215

9)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8권, 장안문화사, 1993, p219

10)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8권, 장안문화사, 1993, p227

 

     5) 핍박과 박해의 시대11)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3:12


    이처럼 영적으로 풍성했던 이용도 목사의 사역의 이면에는 메마른 현실이 있었다. 그는 위의 말씀처럼 수많은 영적싸움과 또 많은 반대세력들과도 부딪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에게 어떤 핍박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1931년도 황해노회에서는 이용도매장 결의가 가결되었다.

    지난 봄 재령 교회의 집회에서 너무도 굉장한 역사가 일어나고 은혜가 크게 내릴 때 일각에서는 시기의 눈으로 보았었다. 그들은 교회에 충실치 못한 무능한 교직자들이었다. 이어서 그들은 이용도 매장 결의를 가결하였으며 그 결의 사항은 6개 조항이었다.


 이용도는 재령교회를 훼방한다.

 ② 여신도들과 서신 거래를 자주한다.

 ③ 불을 끄고 기도를 한다.

 ④ 교역자를 공격한다.

 ⑤ 성서조선12)이라는 잡지를 선전한다.

 ⑥ 그는 무교회주의자요, 교회를 혼란케 하는 자이니 황해노회지경 안에서는 그를 청하지 말자.

 

 

      (2) 평양노회 또한 이용도에 관하여 금족령을 통과시켰다.

    이용도목사의 집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평양의 신도들이 신앙의 내용과 생활태도에 변동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가 무능한 교역자들에게는 공포와 위협으로 나타났으며 자기의 지위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평양노회에서는 한 개의 법안을 통과 시켰는데, 그 결의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용도는 거짓말쟁이다.

 ② 이용도는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③ 이용도는 파괴주의자다.

 ④ 이용도는 질서를 혼란케 하는 자다.


11)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101~102,128,157-158

     김인수,『한국교회의 역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p431~434

     이용도신앙과 사상연구회,『이용도목사의 영성과 예수운동』, 1998, p85~86

12) 1927년 7월에 발간되 기독교 계간지로 조선 성서연구회의 중심인물인 김교신, 함석헌 등의 노력으로 창간된 무교회주의 계열의

     신앙잡지이다. 일본의무 교회주의 신앙과 우찌무라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은 학국 유학생 정상운, 김교신, 함석헌, 양인성, 유석동,

     송두용 등은 일본에서부터 별도의 성서연구모임을 가진 바 있고 귀국 후에 동인지로서의 신앙 잡지를 발간하기로 합의하여

     만든 것이다.

 

 ⑤ 이용도를 세우면 본 교회 담당목사가 푸대접을 받아 살 길이 막연해진다. 그러므로 이용도를

 우리 노회지경 안에 들이지 말자.13)


     (3) 1932년 10월 말 HCM 사건으로 이용도 목사는 많은 욕을먹게 된다.

    1932년 10월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든지 말들을 것이 없고 흠 잡힐 것이 없었다. 황해노회, 평양노회 등에서 하는 말들은 시기, 질투가 아니면 말이 되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10월 말에 한 사건이 생겨서 이용도 목사에게 욕을 뒤집어 씌우게 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원산에서 기도생활을 하던 HCM이라는 사람이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평양에 와서도 예언을 하게 되었는데, 맞는 것도 있지만 안 맞는 것도 많았다. 그러자 문제를 일으켜 HCM을 거짓 예언자 사기꾼 요술쟁이라고 공박을 하게 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라고 때려 죽인다고 나서기도 하였다. 그런데 HCM이 이용도의 파당이라고 하며 사람들은 이용도를 몰아세우고 또 치는 것이었다. 이에 관하여 이용도 목사는 “나는 도적이나 음부나 살인강도라도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다가 죽기를 원하고 힘쓰는 자입니다”라고 말함으로 커다란 문제를 가져 온 것이다.

 

 

     (4)그에게 결정적인 사건은 접신극 사건이었다.

    이는 1927년경 원산 감리교회의 여신자 유명화가 입신을 체험했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예수가 자기에게 임재 했다고 하면서 영동교회 부흥회 때 예수 같은 모양을 하고 다른 여자들에게 강신극을 벌이기도 하였다. 1932년 이용도는 이 집단과 적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자주 함께 기도를 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그중 한 사람에게 신이 내려와 그룹이나 한 개인에게 말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이용도가 이런 모임에 참가하고 있을 때 성령이 내린 한 여성이 그를 꾸짖었으며 그들은 매우 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용도는 이를 성령의 행위라고 확신했으며 유명화에게 엎드려 ‘주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는 교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사설에 빠지고 말았다.


     6)임종14)

    1933년 10월 2일 그는 가족이 둘러앉은 가운데 환하게 얼굴에 광채를 띠며 하나님의 나라로 입성하였다. 그는 33세의 나이로 그가 그토록 흠모하고 열애하던 예수님이 운명하시던 때와 같은 나이에 열정적이었던 그의 복음의 꽃은 시들었던 것이다. 비록 그의 육적 꽃은 눈에서 멀어져 갔으나 그의 열정적 복음 선포는 많은 이들의 영혼 가운데 활짝 핀 꽃으로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13)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128

14)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204

 

 

 

 


4. 이용도의 고난(苦難)의 영성



    이용도의 생애의 핵심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고난(苦難)의 영성이라 이름 할 것이다.

 

 

신비주의자, 부흥운동가 등 이용도에게 이름 붙여진 많은 신앙들이 있으나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은 온전히 예수의 삶을 따라 살고자 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가 추구했던 고난의 영성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을 살펴보자.

 

 

    1) 고(苦)와 빈(貧)과 비(卑)의 추구

이용도는 이태순 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苦)는 나의 선생, 고통이 올 때 그것에서 배우는 것이 평안 할 때보다 더 배우는 것이 많

        며 또 참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빈(貧)은 나의 애처, 가난함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 같

        이 나를 떠나지 않나니 나는 건방진 부보다 착한 가난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卑)는

        나의 궁전, 나는 높은데 처하여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데 처하여 있

        어야 니다. 그런고로 비천은 늘 내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됩니다. 고(苦)와 빈(貧)과 비(卑)

        를 좋아하게 되면 다 되는 때입니다”15)

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그의 인생관은

       “세상과 멀어질수록 주님과 가까워지나니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는 일이 오히려 복되다”

는 신앙에 입각한다. 그의 신앙, 그의 삶의 목표는 온전히 영에 사는 것이었다.

       “육(肉)을 버리고 영(靈)에 삽시다. 명(名)을 버리고 실(實)에 삽시다. 언(言)을 버리고 행(行)

        에 삽시다. 먹고 입고 쓰고 또 명예 영광 자고 등 속에서 진인(眞人)을 찾지 못하고 캄캄한 중

        에서 방황하는 인간, 오 가련한 인간입니다. 살으십시다.  온전히 영(靈)에 살으십시다.”16)

       그는 이렇듯 고, 빈, 비를 추구하며 온전히 육적인 것을 세우기보다 영적인 삶을 살 것을 가르쳤으며 또한 그의 삶이 그러하였다. 이용도는 많은 부흥회를 다녔지만 결코 돈을 갖고 집으로 들어간 법이 없었으며 받은 것을 전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또한 인상깊게 남은 이야기는 그가 집회를 위해 서울에 가 있는 동안 억성이라는 거지아이를 데려다가 귀하게 보살피며 자기 자식과도 같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이용도가 집회를 마치고 떠나온 후 얼마지나 세상을 떠났지만 이용도가 베푼 아름다운 사랑은 그 아이에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17) 그는 온전히 예수를 닮고자 하는 삶을 살며 예수 십자가의 고난과도 같이 고의 삶을 살기 원하였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낮추기 원하였다. 그의 외모에 관하여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검은 무명주의에 중절모자를 눌러 쓰고 손에 성경과 찬송가가 든 책가방을 들고 있는 이용

        도는 배가 나오지 않고 좋은 양복을 안 입었고 예상보다 나이가 어렸고 걸음도 위풍있게 걷

        지 않고 얼굴을 좀 장하게 들지 않고서 학생같이 죄인같이 어린애같이 가슴을 웅크리고 두

        손을 모으고 나오는 것이 목사 같아 보이지 않고 유명해 보이지 않고 위엄있어 보이지 않고

        당당해 보이지 못했던 까닭에 누구도 그를 목사로 알아보지 못했다”18)

고 한다. 이러한 그의 외모는 그가 얼마만큼 겸손한 차림으로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사는지에 대하여 잘 나타내 주고 있다.

15)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일기』,이용도 목사전집 제3권, 장안문화사, 1993, p14

16) 박찬희,『시무언 이용도, 민족 고난의 담지자

17)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일기』, 이용도 목사전집 제3권, 장안문화사, 1993, p101~106

18)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204

 

 

    예수의 십자가 신학을 따라 고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삶은 내가 언젠가 읽었던 ‘오늘날목회자의 모습은 고난을 통하여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예언자와 같아야 한다. 고통하는 사람만이 새 노래를 부르리라' 19) 는 책의 진술의 표본이 되고 있었다.

 

    2) 천적애(天的愛)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합일(合一)

    이용도는 일제 식민지의 억압과 고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십자가 고난을 통해 예수와의 신비적 합일에 이르러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합일의 신비주의를 통해 고난 극복을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주님은 나에게 끌리시고 나는 주님에 끌리어,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

        님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어, 결국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

        운 바 되어 결국 나는 주의 사랑 안에 있고 주는 나의 사랑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아 오묘사

        도소이다. 합일의 원리여, 오 나의 눈아, 주를 바라보자.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자. 잠시라

        도 딴눈 팔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세. 나의 시선에 잡힌 바 주님은 나의 속에 안주 하시리

        라. 오 나의 눈아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자. 주께서 피하시랴? 피치 못하게 그만 바라보자.”20)

        이용도는 민중수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의 합일을 통해 민족의 고난을 극복하고 민중들의 희망을 회복시키려 했다. 이용도의 신앙관의 핵심은 그가 말한 천적애에서 잘 드러내고 있는데,이 천적애(天的愛)는 생명신앙을 간직한 사람의 가장 큰 덕목이며 이용도가 짧은 생애 동안이지만 그의 삶에서 실제로 실천하고 염원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간절함 그대로 드려졌고,민중들에게는 쉼 없이 베풀어졌던사상이다. 그는 천적애에 대하여 말하기를,

     “의 아닌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라, 이것이 천적애(天的愛)의 일이니

      라. 지적에는 덮어놓고 시제 선대하여 저희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지만 천적애(天的愛)는

      성질이 다르다. 물론 불의를 행하는 자까지 긍흘히 여기고 사랑하나 이는 저희가 감당키 어

      워서 물리치고 가는 것이었느니라.”21)

      그는 이러하듯 무차별의 사랑을 주장하였고 또한 그러한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의 무차별의 사랑이 그를 곤란과 비난 속으로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천적애(天的愛)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3)무언, 겸비, 기도

        이용도는 그의 삶 가운데 무언과 겸비, 기도를 삶의 가르침으로 삼고 지키며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세가지에 대하여 이르기를

 

       “무언, 이 세상은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 않아도 좋을 말, 남을 해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 세

         상입니까. 자기의 아름다운 뜻을 남에게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을 가지고 얼마나

         남을 해하고 세상을 망치는 것입니까. 이 인류 사회의 모든 악, 모든 싸움 모든 화근은 다 이

         말에서 되는 것임에 나는 말이 없기를 바라며 또 벙어리가 되어지기 위하여 염원 하는 바이

         올시다.

19) 브루지만/김쾌상,『예언자적 상상력』,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p122

20)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일기』, 이용도 목사전집 제3권, 장안문화사, 1993, p118

21) 박찬희, 『시무언 이용도, 민족 고난의 담지자』

 

 

 

 

       겸비, 세상은 또 얼마나 교만한 세상인지요,못되고도 된 척하는 바람에, 또 좀 되면 되었노

       라고 남을 멸시하고 남을 천대, 구박하는 바람에, 싸움이 생기고 야단이 나는 것인가 합니다.

       또 한편으로 내가 장한 척 그까짓 것이야 무얼 해 하는 교만 때문에 인류는 배울 바를 배우지

       못하고 깨달을 바를 깨닫지 못하고 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낮은 가장 미욱한

       자 가장 천하고 불쌍한 자가 되어서 더 배우고 더 얻고 더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

       니다.

        기도, 기도의 필요야 여러 말 할 것이 없지요. 내 모든 부족과 고통과 설움을 주님께 내맡기

        는 길이 이 기도에 있고 아버지에게서 그 큰사랑과 위안과 힘과 빛을 얻어오는 길이 또한 이

        기도를 함에 있는 것이니 신앙생활은 오직 기도가 있을 뿐이어서 족합니다. 기도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잠잠할 수도 없으니 주를 믿는 자는 그저 기도 하

        나가 생활의 전부가 되어야겠습니다.”22)

        라고 하였다. 그의 삶은 이것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그는 그의 호를 시무언(是無言) 이라 하여 이 좌우명을 삼아 잊지 않고 살기를 힘썼다. 무언과 겸비, 기도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는 고난의 생애를 무언으로 감당하여 이겨내었으며, 겸손과 기도를 통하여 고난(苦難의 삶을 영광의 삶처럼 살아갔다.

 


 

5. 나오는 말

 

 

    시무언 이용도. 그를 연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은혜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생애를 읽어나가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가슴 벅차오름 이었음을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계셨더라면 꼭 한번 만나 뵙고 그의 설교를 듣고 싶은 바램은 오늘날의 메마른 교회현실 속에서 생수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나 홀로 이용도목사님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 나 홀로 그의 삶에 동참하고 그의 삶을 지켜보고 홀로 은혜를 받았으나, 그것은 그가 살아있어 내게 던져 준 한 마디 한 마디 설교와도 같았음을 나는 느꼈다. 오늘날 신비주의자로 불리우며, 많은 이들에게 연구되고 있는 이용도목사님은 참으로 고난 가운데 예수님을 닮고자 노력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살았던 사람이라 생각되어진다.

        그는 온전히 십자가 중심,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고

        생을 다 당해보게 하소서. 육에서 고하고 영에서 길이 편하게 하소서. 육에 죽고 영에 살자.

        지에서 천하고 천에서 귀하자. 주여 나를 천케 하시고 나를 죽이소서. 그리하온전히 주를

        영광스럽게만 하옵소서.”23)

        그렇다. 그는 주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고난의 삶을 자처하였다. 물론 그의 고난(苦難)의 영성은 그의 생애가 낳은 결과 일수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 인한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고난을 겪어 왔으며 또한 빈곤으로 인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고학을 하며, 독립운동을 하며 그의 삶에 끊임없이 존재했던 것은 바로 고(苦)였던 것이다.

22)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77~78

23) 변종호저,『이용도 목사전』, 이용도 목사전집 제2권, 장안문화사, 1993, p167

 

 

 

 

 

    때문에 나는 그의 영성을 고난(苦難)의 영성이라 이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철저하게 교훈으로 남는다. 오늘날 어느 교회가 또 어느 목회자가 고난의 삶을 자처하고 빈곤을 자처하며 산단 말인가! 얼마 전에 경기연회의 한 지방 모임에서 중년의 목사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사역을 나갈 자리가 없다고 하면서 수도권에서 먼 지방이나 섬 지역에는 가지를 않아 목회자가 부족하다는 말씀이었다. 오늘날의 목회자와 교회는 스스로 부하기를 힘쓰며 편한 삶을 구하고, 개인의 신앙만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사회에 너무나 무관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게 있어 이용도는 사회를 향해 온 몸을 던져가며 또한 자신은 굶주리고 아파했으나, 다른 이들의 안식과 평안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준 그야말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그리고 오늘날의 목회자는 이러한 그의 고난(苦難)의 영성을 그들의 목회 가운데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용도 목사에게도 문제점은 존재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다른 것을 모두 사탄이라 불렀음에 달콤한 칭찬들 가운데 비수 같은 비판을 받고 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무교회주의나 접신 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이용도의 모습보다도 나는 그의 계시를 향한 폐쇄적 태도가 그의 신학사상의 한계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짧은 생애 가운데 뜨거운 열정! 그 열정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일깨우고 회개의 영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이용도... 그는 이제 우리의 교회 현실 가운데 다시금 일어나 오늘날 목회자는 많으나 진정 깨어 있는 지도자가 없는 현실에 새로운 영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시무언 이용도의 고난(苦難)의 영성을 끊임없이 재조명하고 그의 삶을 따라 살면서, 이 시대에 다시금, 살아 숨쉬는 성령의 역사가 바람과 같이 임하도록 불을 지펴야 하겠다.


 

 

 

이용도의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과정에 대한 대상관계 정신분석

  Psychoanalysis in terms of Object Relations Theory on the Formation Process of

  Lee Yong Do's Cross-Mysticism

 

 

박  성  만  (경찰대학 경목실장)


 

 

   1.  서   론

  2. 정신분석과 종교

  3. 페어베언의 정신 구조 이론

  4. 이용도 신비주의의 특징

  5. 이용도의 생애와 심리학적 관점              

  6.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과정

  7. 결   론

 

 

 

 

1. 서     론

 

    1930년대 이용도 목사가 한국교회 신비주의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일제 치하라는 고난의 상황과 맞물려서 그가 추구하는 십자가 신비주의는 교회의 영적 쇄신과 부흥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 장로교와 감리교에서는 그의 극단성과 부흥회 이후 무질서로 인하여 일련의 조치들을 취함으로서 부흥사로서 그의 사역에 치명적 손상을 입힌다. 때를 같이 하여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면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같은 나이인 33세에 서거하였다. 이후 한국교회가 영성과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비주의는 신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최초로 이용도를 신비주의 입장에서 연구한 학자는 교회 사가인 민경배이다. 이어 유동식도 열광주의의 관점에서 이용도를 연구하였는데, 신비주의와 열광주의의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이용도의 신앙 형태를 설명하는 데는 본질적인 차이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이후 1978년 감리교신학대학 학술지인『신학과 세계』에 윤성범, 박봉배, 변선환, 송길섭의 이용도 연구논문이 실리면서 이용도 연구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학적 연구들의 특징은 이용도 신앙의 형태에 신학적인 기준을 가늠하는 것이다. 그의 신비주의의 특징은 2천 년 전 역사적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에게 고난만이 지나치게 부각됨으로 그 이외의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주제들은 뒤로 밀려난 느낌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유비되는 소외된 자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투사하려 하고, 세상의 권력자나 교회 제도와 지도자에 대해서는 공격성이 투사된다. 죄의 통회와 회개가 부흥회의 주된 주제라면 기쁨과 감사, 부활의 영광에 대해서는 교리적으로 다룬다하더라도 그의 정서에 녹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신학적 연구 결과들을 집약하면 이용도를 이상화함으로 한국 신비주의의 초석을 형성한 인물로 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일부는 당시 시대상을 언급하면서 이용도의 공과 과를 객관적 입장에서 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연구자는 이용도 부흥회 시비의 원인을 극단성, 이원론, 열광성으로 본다. 이것이 그 당시 교회에 순기능을 했던 역기능을 했건, 신학적 연구로는 그와 같은 신앙을 형성한 원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심리학적 연구

주제이다.

    본 연구는 이용도의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과정을 페어베언의 대상관계 정신분석이론에 따라 분석한 것이다. 페어베언은 분열성 성격에 대한 이론과 임상에 공헌한 정신분석가로서, 리비도가 어느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모아지고 있는 이용도의 분열성 심리역동을 이해하는데 매우 적합한 이론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그가 다양한 그리스도 케리그마 중 왜 고난과 정서적 애착을 하였는지 밝혀질 수 있다. 또한 그는 감성적 부흥사로 그 시대 교회 부흥에 기여했는데, 감성이 정신 구조에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건강한 신앙과 교회의 영적 쇄신에 기여할 수 있는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심앙인의 심리생애사 연구를 통하여 기독교 심리치료 임상에서 영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어떻게 얽혀 있고 치료될 수 있는지 분석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2. 정신분석과 종교


    프로이트가 종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정리한 논문으로서는 “토템과 터부”,  “인간 모세와 유일 신교”,  “환상과 미래” 등이 있다. 이러한 저서에 의하면 종교는 유아기로의 퇴행, 오이디푸스 갈등의 산물, 현실의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환상이다. 즉 기독교의 하나님을 무의식의 한 측면으로 대치한 것이다. 그는 종교 행위를 자아가 합리적으로 현실과 관계 맺는 것을 피하여 본능(Id)과 초자아(Super Ego)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가 이해한 종교는 유아기의 쾌락 욕구가 투사되거나 오이디푸스 갈등의 아버지 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본능(id)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게 하라’는 그의 명제는 본능을 억압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숙한 시대에 성숙한 사람은 종교를 필요치 않는 것으로 보았다.

    프로이트가 이처럼 종교를 신경증적인 산물로 보는 이유는 그의 환자 중 대다수를 차지했던 신경증 환자의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종교의 진실보다는 신경증적인 종교의 실체를 분석한 공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앤 베리 율라노프(Ann & Barry Ulanov)는 심층심리학자의 무의식적 동기를 탐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프로이트가 의식적으로는 종교를 제거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의식적 동기는 사람들이 종교라고 부르는 것을 제거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24) 그가 생에 말년까지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의 저작에 몰두했던 일, 죽음의 순간에 악마에 관한 책인 빌자크의『죽음의 피부』를 꺼내든 일은 그가 신의 존재를 인정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 보는 프로이트의 욕동 심리학은 관계를 지향하는 기독교 신학과 대화할 수 있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종교를 심리학으로 대체하려했다는 환원론자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이후 정신분석은 리비도가 욕동에서 관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모델을 지향한다. 그러한 이론 전반을 대상관계이론이라고 한다. 비록 프로이트가 자아가 대상과 가지는 관계에 대하여 처음 언급을 했지만, 대상관계이론가들은 그의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24) Ann & Barry Ulanov, Religion & unconsious,, 이재훈 역,『종교와 무의식』(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7). pp.52-53.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애초기부터 관계를 지향한다. 종교적인 표상도 오이디푸스 시기에 아버지 상보다는 전 오이디푸스 시기에 어머니의 상에 최초 영향을 받는다. 리비도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대상인 엄마나 돌보는 사람을추 구하는 것으로 본다. 삼위 하나님과 그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진술하는 기독교 신학과 유비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개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관계모델로 전환된 정신분석학은 기독교 신학과 대화의 장을 열기 시작했다.

    위니캇은 유아가 절대적 의존기에서 상대적 의존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안을 담아주는 기능으로 중간대상(Transtional Object)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발견해 낸다. 중간대상은 환상의 영역에 있지만 주관도 객관도 아니다. 종교 경험은 환상 안에 있지만 내재와 초월을 동시에 포함하기에 중간 영역에 속한 것을 본다. 종교 심리학자 마이스너(W. W. Meissner)는 "종교 경험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주관과 객관이 상호 침투하는 영역이다."25)라고 중간대상으로서의 종교의 창조성을 언급한다.

    코헛(Heinz Kouhut)에 의하면 심리적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아동이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대상을 자기 대상(Self Object)이라고 한다. 아동은 자기의 응집력이 형성되기 위해서 자기대상과 융합이 필요하며, 자기대상이 되어준 부모와의 관계의 질에 따라 변형과 성숙으로 나간다. 코헛은 하나님은 자기대상과 연대하는 하나의 축으로서 기능 할 수 있다고 한다. 외부 실재에 자기대상이 결여되었을 때 대체적 역할을 하는 자기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퇴행이 아닌 능력으로 본다. 코헛은 “예술과 종교의역할과 중요성에 대하여 고전적 정신분석과는 다르게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26)을 인정한다.

     본 논문의 분석 도구로 사용하려는 페어베언(W. W. D. Fairbairn 1889-1964)은 1941년 “정신병과 정신 신경증에 관한 새로운 병리학”을 발표하면서 고전적 리비도 이론과 결별한다. 그의 정신분석 이론은 '리비도는 대상을 추구한다'라의로부터 출발함으로 프로이트의 욕동이론이 들어설 자리를 차단한다. 페어베언은 인간이 하나님과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정수로 보았다. 존스(James W. Jones)에 의하면 정신분석으로 종교를 보는 페어베언의 관점은 목사가 되기 위한 그의 신학적 훈련과 더불어 평생 기독교인으로 남아있었던 종교적 배경에 있었다고한다.27)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석가들은 프로이트의 고전적 이론보다는 대상관계이론이 종교에 대하여 보다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론을 정교화 시켜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8) 그러나 대상관계 정신분석가들은 종교 심리학자가 아니다. 종교의 대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지도 않는다. 페어베언도 마귀 들림과 내적 나쁜 대상과의 연관을 분석하면서 환원론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여 신학적인 언어를 절제하고 있다. 주관심사는 종교인이 타인과 삼위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이 전이를 통해서 어떻게 전개되고 특정짓는지 탐구하는 작업이다. 존스는 그의 저서『현대정신분석과 종교: 전이와 초월』에서 정신분석으로 종교를 분석하는 범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25) W. W. Meissner, Psychoanalysis and religious experience(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84),pp.178.

26) James W. Jones, Contemporary Psychoanalysisand Religion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1),p.64

    재인용

27) James W. Jones, Religion and Psychology in Transition: Psychoanalysis, Feminism, and Theology(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1996). p.28.

28) Ibid., pp.28-29.


    전이를 이해하는 모델은 종교의 정신분석적 연구의 초점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러한 모델과 관련해서 종교는 본능이나 내면화된 대상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방어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신성한 것, 우주, 공간과 시간의 현상적 세계를 뛰어넘는 실재와의 관계로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의 정신분석적인 연구는 개인의 종교적인 신념, 경험, 그리고 실천이 자신의 경험에 대한 해석과 내면화된 깊은 관계 구조 안에서 역동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다.29) 

 

    종교와 심리학은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독립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 종교를 심리학으로 환원시키거나 심리학을 종교로 환원시키려는 작업30)은 각각의 고유한 전통을 왜곡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의 공헌은 한 개인의 초기 대상관계 경험과 질이 어떤 방식으로 초월적인 대상에게 전이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중간대상으로서의 종교경험을 인정하는 리주토는(A. M. Rizzuto)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나님 표상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 개념이 아닌 하나님 표상은 초기대상(주로 엄마)에 결정적 영향을 받고 후기 오이디푸스기를 거치면서 아버지 경험으로 수정된다고 한다. 지적 수준에서 신앙 교육이 정서적으로 각인된 하나님 표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이해는 하나의 결정론으로 볼 수는 없다. 이후 정서적으로 좋은 대상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 표상은 또 다시 수정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상표상과 하나님 표상 중 어느 것이 먼저 수정되어야 좋은 하나님 상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심리학이 먼저인가 신학이 먼저인가 하는 해묵은 물음으로서 양자의 관계를 명료하게 규명하고 싶어 하는 어설픈 욕망이다. 이 작업은 신학적 보수와 진보, 그리고 심리학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이론적 논쟁거리가 되어왔다.31) 새로운 대안으로 신학과 정신분석과의 관계를 칼케톤 모형32)에서 찾은 헌신거(D. Hunsinger)의 논의는 매우 독창적이다. 칼케톤 모형에 의하면 예수에게 있어서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고 섞이지 않듯이, 신학과 정신분석은 분리되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는다. 즉 상호 교류하면서도 각각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칼케톤 기독록 모형이 비논리적이나 영성수련의 실제를 반영하듯이 신학과 정신분석의 칼케톤 모형도 비논리적이나 영성심리치료 임상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29) James W. Jones, Contemporary Psychoanalysisand Religion, p.63.

30) 종교를 심리학으로 환원시킨 학자는 프로이트 이외에도 융의 분석심리학으로 구약의 언어를 분석심리학 어로 대치한 에딘저(E. F. Ed

     inger, 『성서와 정신이재훈 역,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참조)를 들수 있다. 심리학을 종교로 환원 시킨 학자는 제이 아담스(J. E.

     Adams, 목회상담학, 정정숙 역, 총신대학교출판부, 2001 참조)이다.

31) 그동안 한국 기독교 관련 상담학계에서는 이론적 정의로서 영적인 과 신학적인 것은 구분해서 영적인 것은 치료자에게 심리적인

     것은 심리치료자에게 위탁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것은 일종의 절충과 같은 것으로 임상을 고려하지 않은 협상처럼 보여진다.

     러한 배경에는 스캇 펙 박사(M. Scott. Peck)의 영향이 컸다. 그는 영적인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정신 내용들을 심리적인 현상으로

     돌려 놓는다. 한편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음을 언급함으로 복잡한 문제를 단순

     히이론화 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논의로 미루어보아 그는 심층심리학적 배경이 아님을 있다.

32) Deborah van Deusen Hunsinger,Theology and pastoral counseling A new interdisciplinary approach, 이재훈 신현복 , 『신

     학과 목회상담』(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2000), PP.111-176. 참조. 신학은 구원을 위한 담론이라면 정신분석은 치료를 위한 담론이

     다. 구원받았다고 치료되는 것이 아니듯, 치료받았다고 구원받지 않는다. 구원은 치료를 증가시키듯이 치료는 구원을 증가시킨다. 양

     자는 칼케톤 기독론 모형에 따라 분리되지 않고 섞이지 않는다. 이 모형에 따르면 한 개인의 내면을 심리학과 신학으로 각을 자를 수 없

     고 그것은 구원과 치료를 위해서 도움이 안된다. 신학적으로 100%볼 수 있듯이 정신분석적으로 100%볼 수 있다. 그리고 양자는 서로

     교통한다. 헌신거가 칼케톤 모형으로 끌어들이는 심리학은 일반심리학이 아니라 심층심리학을 말한다.

 


따라서 논고에서 이용도의 십자가 신비주의를 철처히 정신분석이론으로 분석해 나가지만, 그러한 분석이 신학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이용도의 대상경험에 따른 그리스도 표상, 전이의 방법이나 특징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이론적 정위라기보다는 영성심리치료 실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3. 페어베언의 정신 구조 이론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 1889-1964)은 인간 본성을 관계모델로 규정함으로 종교에 대한 정신분석의 관점을 전환시킨 이론가이다. 그는 1911년 에딘버러 대학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목회자가 되기 위해 런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 참전 후 의대에 진학해 정신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와 정신분석가가 된다. 그가 욕동정신분석학을 순수 대상관계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리적 이유이다. 그는 정신분석의 본거지가 아닌 에딘버러 대학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프로이트 학파의 저항에서  비켜갈 수 있었다. 둘째, 그가 경험한 철학과 신학의 학문적 다양성은 기존 정신분석의 틀을 재검토할 수 있는 안목이 되었다.33) 셋째, 그는 평생을 적극적인 기독교인으로 남아있던 정신분석가로서프 로이트의 인간 이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관계를 지향하는 신학적 주제를 자신의 심리학으로 끌어들여 정신분석 이론을 새롭게 재구성 했을 것이다. 즉, 신학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듯이 그의 정신분석학에서 자아(Ego)는 본래부터 완전한 상태로 존재한다. 신학에서 하나님과 이상적 관계에서 실패함으로 인간이 원죄의 굴레를 쓰듯이 그의 심리학에서 돌보는 부모와의 이상적 관계에서 실패한 유아의 정신 구조는 불가피하게 분열(Schizoid) 된다. 신학에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구원을 받듯이 그의 심리학에서는 좋은 대상의 내면화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간다. 신학에서 사탄이 악의 세력으로 구원을 훼방하듯이 그의 심리학에서는 내면화된 나쁜 대상은 분열을 촉진한다. 그는 말하기를 참된 미사가 성전의 성단에서 거행된다면

 암흙의 미사(a Black Mass)는 납골당에서 거행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심리치료사는 참된 귀신축출자의 후계자이며, 죄를 용서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사탄을 쫓아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34)여기서 납골당에서의 미사는 사탄을 쫓아내는 것으로 성직자와 심리치료사를 기능적으로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1)리비도이론

    비도(Libido)는 심리적 에너지로서 정신구조에 투자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리비도의 원천은 본능(Id)으로서 자아와 초자아의 구조와는 떨어져 있는 에너지이고, 리비도가 정신구조에 투자되는 것은 에너지집중(Cathexis)이라고 한다. 정신분석에서 리비도의 이해는 그것과 관계 맺는 정신구조, 즉 자아와 초자아의 역할을 규정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리비도는 욕동과 동일시되어있다. 모든 생명체는 리비도 본능으로 종족을 번식시키는 것

처럼,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 보는 프로이트에게 리비도 방출은 곧 긴장해소와 족 보존의 방편이 된다.

33) Jay R. Greenberg& StephenA. Mitchell, Object relations in psychoanalytic theory(Cambridge : Harvard University Press,

     1983)pp.151-152.

34) W. Ronald D. Fairbairn,"The repression and the return of bad object(with special referecce to the 'war neuroses')

     (1943)", p.70.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해는 초기 정신분석의 정설로 자리매김하였다. 욕동 심리학을 대상관계 심리학으로 전환시킨 클라인(M. Klein)35)도 리비도 이론을 프로이트의 입장에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는 이를 반영해 준다.

    이에 반해 페어베언은 정통 정신분석학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새로운 리비도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였다.


    고전적 리비도 이론은 본질적으로 대상관계에 기초한 발달 이론으로 변형되어져야 한다. 현 리비도 이론의 커다란 한계는 그것이 단자아의 대상관계를 조절하기위한 기술들로 증명된 다양한 표현들에 대하여 리비도적 태도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사실에 있다. 물 리비도 이론은 성감대 개념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성감대는 단순히 리비도가 흐르는 경로라는 것과 리비도가 그 경로 따라 흐름으로서 그 경로가 성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리비도의 궁극적 목표는 대상이다.36) 

 

 

    '리비도의 궁극적 목표는 대상이라는 정의는 프로이트와의 결별이며 성적인 인간관에서 대상관계를 지향하는 인간관으로의 전환이다. 그러면 왜 리비도는 구강, 항믄, 남근을 경로를 사용하는가? 페어베언에 의하면 이러한 지대는 저항이 가장 적은 곳으로 유아가 대상과 관계를 맺기에 가장 적절한 통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37) 가령 유아가 손가락을 빤다고 하자. 그것은 성적 쾌락의 추구로 생물학적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젖가슴과의 대상관계 실패의 산물이거나 젖가슴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행위이다. 젖가슴은 전체대상으로서 엄마로 건너가기 위한 부분 대상으로서의 위치를 가진다. 즉 손가락이란 스스로 만들어낸 대체물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충분히 좋은 돌봄을 받은 유아는 손가락을 빨 필요가 없다. 대상으로 향하는 리비도 실패는 후에 대상관계의 실패나 좌절을 가지고 오며 분열성 성격을 유발하는 근본원인이 된다.

    페어베언의 성격발달 이론은 리비도가 대상에 투여되는 정도에 따라 세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유아적 의존 단계가 있다. 이 단계는 함입(incorporating), 빨기(sucking) 또는 거절하기(rejecting)를 특징으로 하는 초기 구강기와 함입(incorporating), 빨기(sucking) 또는 깨물기(bitting)를 특징으로 하는 후기 구강기를 포함한다.38) 이 시기는 젖가슴은 부분대상에서 전체대상으로의 발달을 추구한다. 이 시기에 주체와 대상이 융합되어 있는 상태를 일차적 동일시(primary identification)라고 한다. “유아적 의존의 현저한 특징은 무조건적이다. 유아는 그의 존재와 신체적 안전감뿐만아니라 심리적 욕구의 만족을 전적으로 그의 대상에게 의존한다."39) 성인이라 하더라도 환경의 손상으로 유아적 의존기의 고착이나 퇴행이 일어나면 대상관계의 범위가 줄어들고 내면화된 특정대상에게 무조건적으로 리비도 집중이 일어난다.

35) 클라인의 이론에서 욕동은 자체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관계 맺는다. 내용적으로는 관계심리학으로 전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인은 자신의 이론을 프로이트의 욕동 개념에 위치하려는 애매함을 보이고 있다.

36) W. Ronald D. Fairbaim,"A Revised psychopathology of the psychoses and psychoneuroses(1941)", studies of the personality (London: Internat

     ional UniversitiesPress, 1992),p.31.

37) Ibid., pp.31-32.

38) Ibid., p.39.

39) Ibid., p.47.

 

 

    둘째, 과도기적 단계가 있다. 유아적 의존과 성숙한 의존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는 단계로서 대상과 동일시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퇴행 욕구와 분리를 통해 발달을 이루려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는 자리이다." 이 시기의 주 특징은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와 집으로 돌아가려는 필사적인 시도"40)볼 수 있다. 유아는 일차적 동일시에서 벗어나 이차적 동일시41)로 나아가는데, 이때에 주체와 융합된 대상이 외부대상임을 발견하게 되고 유아의 리비도는 현실의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로서 대상관계의 질에 따라 발달여하가 결정된다. 프랭크 섬머즈(Frank L. Summers)는 페어베언의 과도기적 단계를 말러의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 견해와 가까운 것으로 본다. 독립을 위해서 고립이라는 모험을 감수하고 내적 대상을 축출할 것인지, 혹은 분리를 못해내더라도 안정을 위해서 내적 대상을 보유할 것인지의 갈등이 따르는데, 성공적인 해결은 내적 대상을 보유하고 의존하면서도 분화를 유지해내는 일42)로 본다.

    셋째, 성숙한 의존의 단계가 있다. 이 시기는 자기와 대상을 분리하고 성기를 가지는 전체대상과 관계를 가지며 주는 것(giving)을 주 특징으로 한다. 유아는 수용된 대상과 거절된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대상이 좋을 수도있고 나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리비도를 외부 대상으로 향하는 능력을 가진다. 퇴행이란 리비도가 향하는 대상이 좋고 나쁨으로 분리되고, 내적 대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통합이란 대상으로 향하는 리비도가 좋고 나쁨을 둘이 아닌 하나로 인식하는 것으로 억압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또한 리비도는 주로 현실의 대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페어베언은 분열성 성격의 기초가 이 시기 이전에 있다고 보았기에 성숙한 의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이론에서 성숙이란 완전한 성숙이 아니라 실패한 성숙만 있을 뿐이다. 그의 리비도 이론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리비도가 개입될 여지를 남겨두지 않음으로 순수 대상관계이론에 기초한 정신분석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욕동이론을 배제시킴으로 생물학적 젖을 주는 엄마가 또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리비도 해석의 다양성을 차단시키고 있다.


    2) 내적 대상

   '리비도는 대상을 추구한다'는 페어베언 이론의 출발이다. 초기 아동의 자아 기능인 리비도는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쾌락이 아닌 대상을 추구한다. 그러나 아동에게 완전한 대상관계란 불가능한 것으로, 모든 아동은 돌보는 어머니로부터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혹은 상상 속에서 거절로 인한 절망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좌절로 인해 아동에게 내적 대상이 형성됨으로 다음과 같은 심리적 왜곡을 가져오게 한다.

 

     첫째, 좌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동은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나쁜  것으로 믿고 어머니를 나쁜 대상으로 간주한다. 둘째, 아동은 자신의 사랑이 나쁜 것으로 믿기에, 그 사랑을 좋은 것으로 보존하기 위해서 외부로 투사하지 않고 내면에 간직한다. 셋째, 실패한 대상의 이미지가 내면화된아동은 외부대상이나쁘고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43)

 

 

 

 

 

 

    부모에게 심리적, 생물학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아동에게 부모가 나쁜 것 은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아동은 자신을 돌보는 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니 나쁜 대상이라도 내면화함으로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나쁜 대상의 내면화는 아동과 성인, 정신병 환자에서부터 정상인에게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40) Ibid., P.43.

41) 2차적 동일시는 주체와 대상의 분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의 동일시이다.

42) Frank L. Summers, Object relations theories andpsychopathology A comprehensive text,재훈 , 『대상관계이론과 정신병

     리학』(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4), pp.50-51.

43) W. Ronald D. Fairbaim,"Schizoid factors in the personality(1940)", Psychoanalytic studies of thepersonalityi(London: Internati

       onal UniversitiesPress, 1992), pp. 17-18.

 

 

 

 

 

 

 

 

 

 

 

 

 

그렇다면 정신병자로, 신경증 환자로, 정상인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페어베언에 따르면 다음의 세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첫째, 나쁜 대상이 무의식에 얼마나 쌓여있으며, 그리고 나쁜 대상의 나쁨이 성격화 되어 있는 정도. 둘째, 자아가 내면화된 나쁜 대상과 동일시되어 있는 정도. 셋째, 이러한 대상들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방어의 성질과 강도의 정도."44)이다.

     한편 내적 대상은 반드시 분열되는데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심리구조는 분열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고, 분열성은 또한 기본적으로 내향적이다. 그것은 외적인 대상관계의 실패를 내적인 대상관계의 보존으로 대체한 것이다. 페어베언은 분열성 성격의 특성을 세 가지로설명한다.45)

    첫째, 특정 영역에 대한 전능적인 태도를 취함으로 외부 대상에 우월감을 가지는데, 그 내면에는 과도한 보상작용과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

    둘째, 고립되거나 정서적으로 거리두기의 표현으로 지적 추구에 몰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함으로 감추어질 수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내적 대상에 대한 몰두이다. 그 내적 실재는 유사한 정서를 가진 외적 대상과 동일시를 함으로 그것에 몰두하기도 한다.

    한편 좋은 대상은 나쁜 대상의 나쁨을 상대화 시킨다. 내면화된 나쁜 대상이 정신병리를 설명하는 개념이라면, 내면화된 좋은 대상은 정리병리를 막거나 치료한다. 내면화된 좋은 대상은 또한 초자아의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거절하는 대상과 짝을 이루는 초자아를 완화시킴으로 발달의 수준을 지향한다.46)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은 내면화되고, 그 대상과 짝을 이루는 자아도 내면화된다. 페어베언의 이론에서 내면화는 필연적인 실패의 산물이다. 내면화된 대상/자아의 통제에서 벗어나 외부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만이 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페어베언의 심리치료 이론은 내면화된 나쁜 대상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며, 분열된 자아에서 중심자아의 기능이 확대되는 것이다. 치료는 이상적 대상의 기능을 수행하는 치료자와 질적으로 좋은 관계, 그리고 전이관계와 공감적 해석을 통해서 성취된다. 환자는 치료실 안에서 치료자의 공감으로 지지받고, 나쁜 내적 대상과의 동일시로 야기된 죄책감에 대하여 초자아 수준의 해석을 제공받음으로 환자의무의식을 압도하고 있는 나쁜 내적 대상으로부터 풀려 나 된다.

    페어베언은 내적 대상을 대상관계 실패의 부산물로 봄으로 내적 대상의 나쁨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 창조성, 문화와 예술의 능력등 순기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약점을 가진다.

 

 

 

 

     3) 대상/자아의 분열

    페어베언은 정신분석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국제정신분석학회에 발표했는데,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자아는 "출생 시부터 존재한다. 리비도는 자아의 기능이다. 죽음본능이란 없다.

공격성이란 좌절이나 박탈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원본능과 같은 것은 없다. 자아는 근본적으로 대상을 추구한다.

 

 

44) Ibid., p.65.

45) W. Ronald D. Fairbairn, "Schizoidfactors in the personality(1940)", pp.6-7.

46) W. Ronald D. Fairbairn, "Therepression and the return of bad object(withspecial referecce to the 'war neuroses')

     (1943)''p.66.

 

그러므로 리비도 또한 근본적으로 대상을 추구한다."47)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대상추구는 자아가 만족스러운 대상과 최적의 일시를 이루었을 때이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하다. 외부 현실을 지향하는 자아가 자신의 사랑이 거절당했을 때 고통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나쁜 대상을 분열/억압한다.

    에너지와 구조를 둘이 아닌 하나로 보는 페어베언의 이론에서 자아와 충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자아는 초자아의 압력으로 충동을 억압한다면 페어베언의 이론에서 충동과 연결된 자아는 억압의 주체이며 대상이기도 한다. 즉 자아는 내면화된 대상을 억압하고 이런 대상들과 관계 맺는 또 다른 자아를 억압한다.48) 따라서 대상/자아의 다중성이 발생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살펴 본대로 유아가 최초로 직면한 견딜 수 없는 외적인 상황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그가 사용하는 기술은 모성적 대상을 두 개의 대상 (a) '좋은'대상 (b) '나쁜' 대상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그 후 나쁜 대상을 내면화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발생된 견딜 수 없는 내적 상황을 다루는 방식으로, 그는 서로 다르지 않은 기술을 사용한다. 그는 내적 나쁜 대상을 두 개의 대상, (a)필요하거나 흥분시키는 대상 (b)좌절시키거나 거절하는 대상으로 분리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대상을 억압한다.(물론 억압의 힘으로 공격성을사용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나누어지지 않았던 대상에게 향했던 그의 리비도적 집중이 분열로 인해 생긴 대상들에게 다른 비율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분열로 인해 생긴 대상들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자아는 소위 위족(Pseudopodia 부차적자아: 역주)을 발달시킨다. 그리고 위족은 억압하는 대상들에 대한 리비도적 애착을 여전히 유지한다. 위족의 발달은 자아 분열의 첫 단계이다. 대상의 억압이 진행됨에  따라 초기 자아의 분열은 공고화된다. 두 위족은 그것들이 거절하는 대상(역주: 반리비도적 자아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측면이 아닌, 중심 자아의 입장에서 볼 때의 두 위족을 말함)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심자아의 부분에 의하여 거절되어진다;

그리고 그 위족과 연관된 대상과 함께 억압된다. 이런 방식으로 두 개의 부차적 자아들, 리비도적 자아와 내적 파괴자는 중심자아로부터 분열되고 자아의 다중성이 일어난다.49)

 

    페어베언의 대상-자아 분열은 대상이 분열되고, 분열된 대상에 리비도가 분급되면서 자아도 나누어지는 논리적 순서를 가진다. 페어베언은 분열을 클라인처럼 발달과정으로 본 것이 아니라 대상관계의 실패에 따른 부산물로 정신분석 이론을 전개시킨 특징을 가신다.

    위 인용에 따르면, ‘흥분시키는 대상’(exciting object)에 집중된 리비도는 중심 자아로부터 떨어져 나가 거절되고 억압됨으로 ‘리비도적 자아’가 된다. 흥분시키는 대상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기대를 남발한다. ‘거절하는 대상’(rejecting object)에 집중된 리비도는 중심 자아로부터 떨어져나가 거절되고 억압됨으로 ‘반리비도적자아’가 된다. 거절하는 대상은 기대 자체를 차단하고 공격한다.

 

    페어베언은 히스테리성 해리 현상을 가진 기혼 여성의 꿈을 분석50)함으로 자아의 다중성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꿈 분석 관찰 결과에 따르면 세 개의 독립된 자아-중심적 자아(Central ego

), 그리고 중심적 자아에서 떨어져 나온 부차적 자아인 리비도적 자아(Libidinal ego),

47) Otto F. Kernberg, Internal world and externalreality Object relationstheoryapplied, 이재훈 역,『내면세계와 외부현실』(서울:

     국심리치료연구소, 2001), p.93. 재인용.

48) W. Ronald D. Fairbairn,"Endopsychic structure considered in terms of object—relationships(1944)"Psychoanalytic studi

     es of thepersonality(Lomdon: International UniversitiesPress, 1992)pp.88-90.

49) Ibid., pp.111-112.

50) Ibid., pp.94-101.

 

 

 

공격하고 박해하는 자아-가 억압되고 분열된다.51) 페어베언은 공격하고 박해하는 자아를 내적 파괴자(Interal saboteur)로부 르다가, 후에 반리비도적 자아(Antibidinal ego)로 재정의 한다. 그 특성은 다음과 같다.52)

    ① 중심 자아 : 분리되지 않는 자아의 잔재로서 무의식, 전의식, 의식에 걸쳐 있지만 많은 부분이 전의식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을 지향하는 기능을 하고 비현실적인 리비도적 자아의 갈망과 반리비도적 자아의 공격성을 억압한다. 페어베언은 이것을 프로이트의 자아(Ego)와 기능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보고 나(I)라고 했다. 만족을 주는 이상화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대상관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② 리비도적 자아 : 중심자아로부터 분열되고 억압된 부분이다. 리비도적 자아는 만족을 줄 것 같은 대상을 향한 채워지지 않은 갈망과 기대로 채워져 있다. 페어베언은 이것은 프로이트의 원본능 맥락에서 이해하였다.

    ③ 반리비도적 자아 : 중심자아로부터 분열되고 억압된 부분이다. 공격하는 부모와 짝을 이루고 있고 자신과 대상을 향한 박해 구조를 가자고 있다. 반리비도적 자아는 리비도적 자아의 갈망과 기대를 억압한다. 페어베언에 의하면 이것은 초자아에 견줄만한 것이지만, 죄책감 없는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면에서 다르다.

    중심 자아의 일부는 내면화된 이상적 대상과 관계 맺고, 나머지는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이와 같이 세 개의 대상과, 세 개의 자아로 나누어지는 기본적인 심리구조는 최초로 젖을 물리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고 그 방식이 아버지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아동은 각각의 대상에게서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 둘 다를 내면화한다. 특히 동성의 성에서는 거절하는 대상이, 이성의 성에서 흥분시키는 대상이 주 표상으로 내면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내면화를 통한 성격 형성 과정에서 부모 사이의 관계는 양가감정을 처리하는 능력과 이상적 대상을 취하는 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어베언은 분열성 정신구조가 각 개인에게 자리잡고 있는 정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우선 가장 높은 수준에서 완전한 통합을 이룬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하다. 그 반대편에 완전히 미통합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으로 이론적으로나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는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심리 구조가 심각히 손상된 정신분열증(schizoid phrenia)이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중간 지점에 치료 가능한 왜곡된 성격정도로 인식되는 분열성성격(schizoid personalities)이 위치한다. 그 위에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널리 펴져있는 분열성성향(schizoid characters)이 위치한다.

    페어베언의 분열성 정신구조 원리에 따라서 통합 및 심리치료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진술할 수 있다.54)

    이론적측면에서,

    첫째, 중심 자아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에게 향한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중심 자아에게도 돌려주는 것이다.

51) Ibid., p.101.

52) Jay R. Greenberg& StephenA. Mitchell, op. cit., pp.163-169 The American psychoanalyticassociation, Psychoanalytic te

     rm & concepts, 이재훈 역, 『정신분석 용어사전』(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2002)p.551.

53) W. Ronald D. Fairbaim,"Schizoid factors in the personality(1940)"p.9.

54) W. Ronald D. Fairbairn,"Endopsychic structure considered in terms of object-relationships(1944)"pp. 129-130.

 

 

 

     둘째, 중심자아가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둔다.

    임상적 측면에서,

    첫째, 부차적 자아와 연결되어 있는 흥분시키고 거절하는 대상에 대한 애착을 줄인다.

    둘째, 중심 자아는 부차적 자아와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대상들에 대한 공격을 줄인다.

    셋째, 반리비도적 자아는 리비도적 자아와 흥분시키는 대상에 대한 공격성을 줄인다.

    페어베언의 이론에서 분열의 통합을 가져다주는 주요인은 중심 자아가 내적 대상으로 투여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현실 외부 대상과의 관계 능력 확대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 구조를 분열성이라는 단일 구조에서 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의 이론은 발달 과정으로서의 분열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정신 병리를 분열이라는 단일구조로만 보려는 약점을 가진다.


    4) 도덕적 보상

    페어베언은 부모의 알콜 중독, 무감각, 정서적인 침범, 저학력으로 인한 무지, 가정 폭력 등으로 수치감에 빠진아 동을 치료하면서 놀랍게도 그들이 부모의 나쁨을 나쁨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나쁨을 돌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모에게 의존되어 있는 아동으로서 부모가 나쁜 것은 아동에게 환경을 개선할 수 없는 절망이다. 반면, 부모를 좋다고 여기고 그 나쁨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면 말 잘 듣는 아동이 되는 환경 조정을 통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페어베언은 이것을 초자아 방어, 죄책감 방어, 도덕적 방어라고 했다. 이러한 방어의 형성 과정은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나쁜 대상이 내면화됨으로 자아는 억압의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둘째, 자아가 억압된 대상을 적절히 다루지 못할 때, 그 대상은 무조건적인 나쁨이 된다. 그리고 이 대상과 동일시된 자아도 무조건적으로 나쁘다. 셋째, 아동이 환경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나쁜 대상은 조건적으로 좋음의 위치에 두고, 자신은 조건적으로 나쁨의 위치에 둔다. 아동은 자신의 조건적 나쁨을 스스로 조절함으로 부의 안전을 얻는다.55) 그렇게 함으로 대상이 가져야할 죄책감을 아동이 가지게 된다. 페어베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종교의 언어로 설명했다.


    악마에 의해 통치되는 세상에 의인으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는 세상에 죄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는 세상에서 죄인은 나쁘다. 그러나 주변의 세상이 선하기에 항상 안전감이 있다.… 악마에 의하여 통치되는 세상에서 개인은 죄인된 나쁨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계가 나쁘기에 그는 나쁘다.56) 

 


 

    일단 형성된 도덕적 방어는 아동이 부모의 학대를 정당화시키고 자신의 방어가 규칙대로 잘 지켜질 것이라는 환상과 함께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방어는 성인이 되어도 거절당하는 경험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지속하는 피학증(masochism)에 대한 대상관계론적 이해이다.

55) W. Ronald D. Fairbairn,"The repression and the return of bad object(with special referecce to the 'war neuroses') (194

     3)", pp.65-67. 조건적이라 함은 아동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대상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의미이며, 또 자기가 조건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나쁘지 않기에 대상에 대한 여하에 따라 좋은 자기로 인정받을 있다는 것을 뜻함.

56) Ibid., pp.66-67.


    방어로 작용된 도덕률은 끊임없이 유사한 대상관계나 환경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재현된다. 가학적 권위자를 합리화하는 방식이 되어 왔고,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권위에 복종함으로 안정감을 얻는 방식이 되어왔다. 또한 강박 신경증에 자리 잡고 있는 죄책감과 종교 안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피학적 죄책감에 대한 대상관계 정신분석적 설명이다. 종교와 연관된 정신 병리에서는 나쁜 대상인 사탄과의 동맹으로 자신이 사탄이 되거나 그의 하수인이 되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4. 이용도 신비주의의 특징


    기독교 신비주의의 전통은 구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신비주의가 신학화되는 시기는 중세로 본다. 중세 신비주의 신학은 새로운 것을 체계화시켰다기보다는 성서와 교회역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전의 체험과 자료들을 이론화 및수련의 도구화한 것이다.

    보나벤추라(Bonaventura, 1221-1274)는 "삼중의 길"이란 저서에서 초대교회의 신비주의자 위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의 개념을 받아들여 영성 생활의 여정을 정화, 조명, 일치로 나누었다.57) 정화는 인간의 욕정과 악습을 억제하고 죄를 회개하는 부정의 길이다. 조명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피조세계 안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긍정의 길이다. 일치는 삼위 하나님과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수동적이고 신비적인 길이다. 이것들은 상호 분리된 발달 단계가 아니라 일생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진보과정에서 한 개인은 각 시기마다 어떤한 부분이 우세하게 혹은 열세하게 나타날 뿐이다.

    “삼중의길”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게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중세 신비주의의 신학자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아빌라의 테레사도 위 개념 위에 자신의 신비주의를 설명한다.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신적 활동이 주체가 된 수동적 체험을 낳고 초자연적 양식에 작용하는 성령의 은사'58)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비주의의 여정은 일반인이 이해를 넘어선 영역에 존재한다. 십자가 신비주의라 함은 그리스도의 많은 사역 중 십자가와 동일시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 신비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 St. John of the Cross)은 갈멜의 산길과 어둔밤의 상징에서 죄의 회개와 고난을 추구하고 피조세계의 헛됨을 부각시킨다. 영육 이원론의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 신비주의자이다. 그러나 고난 추구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으로 가는 유일한 길로 시한다. 그의 시인 “영혼의 노래”와 “사랑의 산불꽃”, 그리고 해설서는 고난과 죄의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 일치된 사랑과 기쁨을 신비적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 십자가의 요한의 고난 추구는 예수의 고난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과 관상의 대상으로 본다. 그리고 신비주의자로서의 길은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오르고 내림의 반복임을 받아들인다. 신비주의의 정점에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의 통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진 십자가 신비주의와 비교해서 이용도의 십자가 신비주의는 다음과 같은 다른 점이있음을 밝힌다. 첫째, 그는 역사를 뛰어넘어 예수의 고난에 문자적으로 참여하려는 입장 가진다. 둘째, 그는 십자가 고난 이외의 개념이나 대상- 부활, 영광, 승천,

57) Jordan Aumann, Christian spirituality catholictradition. 이홍근. 이영희 . 『가톨릭 전통 그리스도교 영성』(서울: 분도출판사,1

     991)p.205.

58) Jordan Aumann, Spiritual theology. 이홍근 역. 『영성신학』(서울: 분도줄관사, 1987),p.143.

 

구속, 권위자, 현실교회, 교회 지도자 등- 에 대해서는 정서적으로 거리감을 두거나 분노를 표출한다. 셋째, 그는 사랑의 신비주의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예수의 이상적인 사랑에 주인공으로 참여하기를 원했고, 그 반대의 것은 지나치게 비하하였다. 요약하면, 이용도 신비주의의 특징은 좋으면 좋은 것의 극단을 추구하고, 그 반대의 것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냉소적이었다는 점이다.

 

 

 

 

5. 이용도의 생애와 심리학적 관점

 

 

    1) 생    애

    이용도의 자서전으로는 변종호59)와 피터스60) 것이 있다. 변종호는 1931년 이용도의 재령 집회에서 회심하여, 이후 이용도의 신앙지도를 받으며 형제의 친분을 맺었다. 이용도 사후 그의 신앙을 바로 알리고 이단 시비를 근절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쓴 이용도 관련자료는 이용도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 주고 받은 서간, 이용도의 일기와 저작물, 주변의 이야기 등을 망라함으로 한국 교회사 인물 중 그 누구 못지않은 풍성한 자료를 남겼다.

    그러나 변종호는 심리학적으로 이용도와 동일시하고 이상화한 인물로서 그의 글은 다소 주관적인 관점을 가진다. 이 점이 변종호가 이용도의 전기를 재구성할 때 객관적 사실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문제점이 될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투사와 내사의 기제를 사용하여 그 누구보다도 이용도를 잘 이해한 인물로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인 선교사 피터스는 변종호 만큼 세부적인 생애 진술은 없지만, 이용도 신비주의의가 한국 교회에 끼친 공헌과 더불어 문제점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두 자서전을 중심으로, 이용도를 심리학적으로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전거가 될 만한 생애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용도는 1901년 4월 6일 황해도 금천군 서천면 시변리에서 아버지 이덕흥과 어머니 양마리아 사이에서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 거간꾼(동사무소의 허락을 받아 소 매매를 중개하는 사람)으로서 집을 자주 비웠고, 대주가(酒家)이고 주벽 이있었고, 아내와 자식을 박해했고, 심한 경우는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시변리 교회 전도부인으로 남편의 핍박으로 양잿물을 수차례 추켜든 적도 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살던 어머니는 신앙에 더욱 깊이 몰입했고, 자녀를 위한 눈물의 기도를 자주 드렸다고 한다. 어머니 신앙의 영향을 받은 이용도는 십대 초반부터 기도에 몰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16년 1월 15일에 환상 중에 승마(勝魔)체험을 했고, 그의 일기에 1916년 10월 중생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15년 개성의 송도 한영서원(송도고등보통학교 전신)에 입학했다. 4년의 학제를 9년에 걸쳐 수학 했을 만큼 경제적인 궁핍, 정서적인 불안정, 일제의 압제 등으로 고통스러워했다.

59) 변종호편저,『이용도 목사 전』, (서울: 장안 문화사,1993), pp.18-19. 이하『전기』라고 표기함.

60) Victor Wellington Peters, "Simeon, a Christian Korean mystic", 박종수역,"시무언(是無言),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자", 이용도 사

       상과 신앙 연구회 편, 『이용도 목사의 영성과 예수 운동』(서울: 성서연구사,  1988), pp.17-22.

     피터스는 1935년에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간된 “한국 기독교 문학회”라는 잡지에 12회에 걸쳐 연재했다. 변종호와 더불어 피터스도 이

     용도와 동시대 인물이며 절친한 친구로서,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이용도의 삶과 신앙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될 수 있다.

 

내면적인고 뇌와는 달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가적인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를 부르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2개월간 유치장 생활, 1920년 2월 11일 기원절 사건으로 6개월간 개성 소년 형무소에 수감, 1921년 성탄절에 불온 문서 사건으로 6개월 간 형무소에 수감, 1922년 가을에 태평양회의 사건에 관련되어 재판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2년 수감으로, 5년에 걸쳐 3년 2개월 이상을 투옥됨으로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송도고등보통학교장인 왓슨(Wasson)의 권유로 1924년 협성신학교(감리교신학대학교 전신) 영문과에 입학했다. 신학교 초기에는 항일 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공격적 성향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의 별칭이 이론가, 논쟁가, 말썽군, 경우꾼, 싸움패, 과격파로 불려질 정도로 예리한 이성의 소유자처럼 보여졌다. 한편 동화와 동요를 창작하는 등 교회학교 어린이를 위한 교육에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살을 하기 위해 몇 번이나 한강변으로 나갈 정도로 우울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삼이형제로 알려진 이호빈과 이환신을 만나면서 논쟁하고 마음을 달래며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며 신학교 생활에 다소간 활력을 찾았다.

    1925년 겨울, 폐병 3기로 정양을 하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이환신의 고향인 강동으로 가나, 거기서 뜻하지 않은 부흥회를 인도하게 된다. 이 곳에서 이용도 삶의 전환점인 '강동체험'을 하게 되는데, 체험의 특징은 찬송을 불러도 설교를 해도 청중과 함께 눈물바다를 이루는 것이었다. 눈물의 체험은 1927년 12월 신학교에서 이용도 원작, 주연으로 공연된 "십자가를 지는 이들"에서도 또다시 눈물의 바다를 만든다.

    1928년 1월 28일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통천으로 파송을 받았다. 목회초기는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바뀌는 시대적 사조로 고민하다가 기도의 동역자 박재봉을 만나 기도에 전념하게 된다. 그해 12월 기도 중에 또 다시 승마체험을 통한 일련의 영적 변화를 통하여 스스로 방황을 끝내고 길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그 길이란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신앙이다. 이후 전국적인 부흥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가 인도하는 부흥회마다 교회가 부흥하고 회개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성에 의지하고, 회개와 십자가 고난을 강조함으로 청중들을 열광으로 몰아가는 부흥회 방식에 저항하는 집단이 생겨나고 문제점들이 노출된다.

    수습을 위해서 감리교단은 1930년 10월 16일 이용도를 전국주일학교 연합회 간사로 발령한다. 하지만 부흥회 식의강습회와 교파를 초월한 열광적 부흥회의 속개 절제되지 않는 눈물과 기존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직설적인 공격의 설교, 부흥회 후에 교회에 남긴 무질서는 또다시 저지를 받게 된다. 1931년 5월 감리교 경성지방 순례목사로 파송, 1931년 8월 12일 장로교 황해 노회의 이용도 매장 결의가 그 것이다. 이 당시 이용도는 오직 주님의 음성에 따라 행한다는 자세를 취하며, 가장 왕성하게 부흥사로 활동한다.

    1932년 2월 이용도가 이단 시비에 연루되는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원산에서 기도 생활에 전념하던 소위 '원산 신령파'와 어떤 교류를 하게 되고, 자칭 입신녀인 유명화에게 "오 주여"라고 무릎을 꿇었다는 설, 평양에서 예언을 하는 원산 신령파 한준명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그를 정죄하려는 집단으로부터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용도는 그들의 견해가 옳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소외당하는 자에 대한 무차별 사랑의 동기라고 하지만, 교회는 그에게 가혹한 조치를 취한다.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목사직 휴직 처분과 감리교 목사 사임 청원과 수리, 장로교 22회 총회에서 이용도 이단 정죄가 결정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무차별 사랑을 선언하다가 1933년 10월 2일 원산에서 33세로 서거 한다.

 

    2) 이용도 생애에 대한 심리학적 관점

    이용도를 심리학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오규훈과 장덕환이다. 오규훈은 이용도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논 문에서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 그의 성장 배경을 중심으로 한 심리학적 분석”을 기재했다. 이 글은 그의 글 서두에서 밝혔듯이 분석이라기보다는 분석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도이다. 그는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오이디푸스 삼각관계나 보올비의 애착으로 볼 수 있음을 언급함으로 이용도의 신비주의를 치료를 위한 퇴행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목회 신학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경향을 보임으로 순수심리학적인 연구로 볼 수는 없다.

    장덕환은 박사학위 논문 “이용도의 꿈과 환상체험에 대한 융 심리학적 관점”에서 융의 개성화 과정으로 이용도의 발달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그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를 이용도의 자기 원형 표상으로 보고 있다. 투쟁적 페르조나를 인격 안으로 통합하고 집단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자기 원형으로서 예수와 동일시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즉 발달로 보고 있다. 그는 6개의 꿈과 환상을 점진적인 발달과정으로 봄으로 그 이외의 목회와 생활에서 드러난 통합되지 않은 대극의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일제하라는 암울한 시기에 30대 초반의 감성적 부흥사를 개성화라는 개념에 끼워 맞추려는 논리적 비약을 가진다.

    이용도의 십자가 신비주의는 그의 초기 대상관계 경험을 떼어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대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부모사이에서 어린 이용도가 감당해야 할 심리학적 과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제를 성취하는 식과 미해결된 과제를 다루는 방식이 이용도의 종교적 욕구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바, 퇴행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페어베언의 대상관계이론에 따라 불가피한 분열과 그 분열을 극복해 내려는 이용도의 심리적 역동을 살펴보면, 이용도 방식의 십자가 신비주의가 치료의 과정에 서나타나는 퇴행이라면 사랑의 신비주의로의 전환은 통합의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용도의 십자가 표상은 만족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좋은 대상으로 수용되고 변형되어야 할 나쁜 내적 대상의 파생물이다. 반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머니의 좋은 측면이 전이된 것으로, 이를 분석심리학으로 본다면 집단 무의식의 자기원형이라 할 수 있다. 혹시 이용도의 십자가가 자기 원형이라 할지라도 추구하는 방식은 정신분석에서의 분열성 개념과 유비되는 분석 심리학의 자아 팽창의 개념으로 보아야 옳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본 연구는 이용도의 십자가를 집단 무의식의 자기원형으로 보는 융의 분석 심리학적 접근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밝힌다.

    페어베언은 종교를 대하는 정신분석의 입장은 개인의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종교적 욕구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으로 다음 두 가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첫째, 초기 아동이 부모와 가졌던 대상관계의 방식과 욕구가 초월자에게 어떻게 전치되는가? 둘째, 미해결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욕구가 신앙의 대상에게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쳐 죄책감과 공격성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가"61) 이러한 정신분석적 연구는 결정론이라기 보다는 후기 대상관계 경험을 통하여 수정되고 변화된다. 심리학적으로 이용도의 생애를 특징짓는 중요한 전환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십자가 신비주의의 신앙형태가 결정되는 생애초기부터 유년기까지이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엄마의 주표상이 내면화되는 3세까지를, 프로이트는 삼각관계 갈등을 처리하는 5세 전후를 발달과정의 중요한 지점으로 보았다.

61) W. Ronald D. Fairbaim, "Note on the religious phantasies of a female patient(1927)'',Psychoanalytic studies of the person

     ality (London: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92),pp. 188-189.

 

종교에 대한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도 이 기간의 대상표상이 곧 하나님 표상이 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대한 이용도의 자료는 매우 빈약하지만, 이후 경험들을 분석함으로 초기 대상 경험을 탐구할 수 있다. 연구자는 이 시기를 ‘십자가 신비주의의 형성’이라고 한다.

    둘째, 잠재기라 일컬는 아동기를 지나 생애 초기 경험의 강렬함이 재 투사되는 사춘기부터 강동체험을 거쳐 목회 초기 승마체험까지를 구분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로서 특징을 지닌 이 시기의 심리적 특징은 나쁜 대상에 대한 공격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용도의 진면목이 아니다. 무의식 안에 있는 우울한 정서를 보호하는 방어기제이다. 연구자는 이것을 ‘십자가 신비주의의 내면화'라고 한다.

    셋째, 목회 초기 승마체험 이후 전국적 부흥사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단 시비에 말려들기이 전까지를구 분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고난당하는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리고 그 고난과 아픔과 눈물을 청중들에게 투사적 동일시함으로 열광적, 감정적, 통곡의 바다를 만든다. 연구자는 이것을 ‘십자가 신비주의의 외면화’라고 한다. 무의식에 억압된 핵심 감성이 표출되는 시기로서 발달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넷째, 무차별 사랑을 선언하면서 이단 시비에 말려드는 시기부터 서거까지를 구분할 수 있다. 이 기간에는 나쁜 내적 대상에 대한 리비도 집중이 감소하고 중심 자아의 리비도는 좋은 대상인 그리스도의 이상적인 사랑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확대된 중심자아의 기능은 현실과 관계를 맺음으로 발달로 향한다. 연구자는 이 시기를 ‘십자가 신비주의에서 사랑의 신비주의로 전환’라고정의한다. 이것은 이용도 신비주의가 과정상 미완이었음을 말한다.

 

 

 

6. 십자가 신비주의의 형성 과정


    1) 초기 대상관계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남근기인 3-5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성격과 신경증 발생의 중요한 시기로 보았다.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그 시기를 3세 이전으로 돌리지만, 그것이 아동의 성격 구조와 정신 병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프로이트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기에 들어선아동은 어머니와 성적, 혹은 융합된 대상관계에서 3자 관계로 넓혀나간다. 즉 아버지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 어머니와의 융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심리적 압력을 받게 된다. 어머니와 결합된 상태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사랑의 감정,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제공해 줄 것 같은 어머니의 실패에 대한 실망,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동일시를 통한 사랑 등으로 양가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실재의 경험과 유아가 가지는 환상을 포함하는 것으로 필연적인 발달과정의 일부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 종결되는 것아 아니라 그 잔재는 일생 동안 무의식에 남아 심리적집중(cathexes) 현상을 일으킨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오이디푸스의 성공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아동과 어머니와의 만족스러운 애정관계가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제 3의 대상인 아버지의 발견과 그로인한 분노, 억압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거치면서 발달로 간다. 실패를 하면 특정대상에 대한 의존적인 리비도의 집중, 아버지를 상징하는 권위자에 대한 거부감,  현실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과 분노의 대상으로 분리하는 갈등에 빠진다.

    이용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석함에 있어서 먼저는 어릴 적 경험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릴 적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리비도 집중의 형태를 분석함으로 오이디푸스 갈등의 잔재가 어떻게 남아있는지 탐색할 수 있다.

    이용도의 부모는 극명하게 대립되는 성격 구조를가지고 있었다. 어린 이용도에게 아버지는 가학적인 이미지로, 어머니는 피학적인 이미지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변종호는 “어려서 잔병을 많이 앓고(특히 학질을 언제나 앓았고) 신경이 과민한 편이었고 울기 잘하는 점 등은 보통 이하의 변변치 않은 아이였다. 그래서 부형들은 초저녁에 죽을 아이라고 보았다고 한다.62) 라고 이용도의 초기 정서적인 상태를 진술한다. 피터스에 의하면 "십대 이전에 죽은 용웅(Hero)을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은 어머니의 신앙교육과 아버지의 협박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63)라고 함으로 부모의 양 극단적인 자녀 양육 방식을 전한다. 대상관계 이론의 정서발달이론에 의하면 어머니가 신체적, 정서적으로 안아주는 것을 통하여 자아의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유아의 정서 상태는 그의 융합된 대상인 어머니와 동일시된다.64) 정서적으로 불안한 어머니가 돌보는 아동은 정신과 신체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주 아프거나 예민하고 많이 우는 아이가 된다. 이용도의 초기 정서적 상태를 미루어 보아 그는 어머니와 불안정한 대상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용도의 초기대상관계 방식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들이 그의 글에서 발견된다.

 

 

   나는 주와 같이 있지 못한 증거가 드러났다. 나는 어찌하여 그리 무서워하며 놀랐던고 마치 어린 아이가 으악 하고 놀라 어머니께 달려들 듯이 나는 꼭 그와 같은 상태를 이루었도다.… 나는, 젖먹는 아이, 이제 겨우 앉고 또 겨우 기는 아이라. 두발로 달음질쳐 주님 앞으로 달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왼 다리는 엉덩이 밑에 깔고 바른 다리는 일으켜 세우고 그리고는 주춤주춤하면서 주님 앞으로 향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원수의 몸은 거의 나를 잡을듯하였고 나의 마음은 거의 기절할뻔 하였고, 바로 그 때에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얼른 나를 붙드사 잡아당기었습니다.… 나는 산과 들 험한 골짜기를 어머니와 같이 걷는 기쁨을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가다가 다리 아프고 괴로우면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그냥 혼자 가시지 않을 줄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네가 걸어가야 한다”고 나를 내세우면서 당신은 앞장을 서십니다. 나는 뒤에서 몇 걸음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나를 보살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나는 언젠지 어머니 품에 잠이 들어 편히 쉬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장성한 때는 어떻게 지내는 것이었는가. 오 주여, 나는 다만 어린 아이올습니다. 주님이 없이는 못살 아이올시다. 나를 버리지말아주세요.65)

 

 

 

 

    일반적으로 일기에 가장 진솔한 감정이 표현되는 바. 위의 글은 이용도의 생애 초기 대상관계의 질이 투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으악 하고 놀라는 아이', '젖 먹는 아이', '원수의 몸이 나를 잡을 듯', '기절할 뻔 하였고', '나의 외로움과 쓸쓸함', '어머니가 나를 보살펴 주지 않음' 등은 초기 돌봄의 방식에 있어서 불만족스러운 어머니를 통해 형성된 자기/대상 표상들이다.

62)『전기』P.18.

63) Victor Wellington Peters, op, cit., p.21.

64) Madeleine Davis and David Wallbridge, Boundary and space An introduction to the work of D. W. Winnicott, 이재훈역,『울타

     리와공간』(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1997), pp. 124-128.

65) 변종호편저,『이용도 목사 일기』(서울: 장안문화사, 1993), 1931, 1, 24, pp.110-113. 이하『일기』로 표기.

 

심각한 좌절을 경험할 즈음에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와 동일시를 이루고 있는 신앙의 대상인 주님이 등장한다. 마술처럼 자신의 불안을 제거해 주는 어머니와 주님은 이상화된 대상이다. 즉 불안에 대한 방어로 이상화대상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신앙의 대상이지만, 그 대상이 자기를 버릴 것 같은 불안은 어머니와의 초기 관계 형태를 반영한다. 어머니와 동일시를 이룬 주님은 아버지로부터 박해를 당한 어머니로서 “오- 주여,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주님은 너무나 천한 주님이시었나이다. 너무나 무력한 주님이었고 너무나 비근한 주님”66)일 수 밖에 없고, 그 유약한 사랑은 내면화됨으로 현실에서는 유기불안을 유발한다.

    어머니와 리비도적 애착에서 분리하지 못하고, 가학적이고 집을 자주 비우는 아버지와 동일시를 못하면서 아버지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마귀, 교회 제도, 영광과 명예 등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거절과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마귀는 육욕이 인격화 한 것입니다.…우리 속에 있는 마귀를 멸하여 주옵소서. 그리

고 순전히 그리스도의 보좌만 되게 만들어 주옵소서.67)

 

 

    이러한 고백은 신앙인들에게 일반적인 기도이나 이용도에게 있어서는 영과 육이, 그리스도와 마귀가 팽팽하게 긴장하고 대립한다.


    교회 표면에 쳐 놓은 산성의 막 평화의 포장을 걷어치우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쟁, 시기, 냉정, 탐리의 마(魔)가 횡행하오니 그 속에서 어찌 천국을 쳐다보며 또 무슨 신정을 보겠나이까?68)

 

    이용도를 궁지에 몰아넣는 현실의 교회에 대한 그의 감정은 어머니와 형제들의 신앙생활에 박해를 가한 아버지의 두렵고 증오스러운 내용이 지배적이다.

 

    저 구라파 천지에는 당신이 유하실 곳이라고는 일간두옥(一間斗屋)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여 발길을 돌려 이리로 오시옵소서. 아세아에서 당신의 처소를 잡으십시오.69)

 

    강대국 구라파와 약소국 아세아, 그리고 이용도는 오이디푸스 삼각관계의 갈등을 형성한다.

    이용도의열 광적 신비적 부흥회에 대한 청중의 태도는 호의적인 그룹과 적대적인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이것도 이용도 자신의 오이디푸스 갈등의 파생물로 이해할 수 있다. 1930년 10월 16일 감리교단 본부는 이용도식 부흥회를 절제시키기 위해서 그를 주일학교 앙합회 간사로 내정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흥회식 교사 강습회로 회중은 둘로 나누어지며 시비가 일어난다. 결국 교단에서는 이용도를 미국 유학시키기로 결정한다. 한국에서 자신의 길을 펼 수 없을 때 미국은 차선책으로나마 새로운 시험무대가 될 수있는 곳으로 그는 내심 유학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여 나를 미국에 보내시옵소서. 그 돈 밖에 모르고 물질밖에 모르는 미국 사람들을 깨우쳐 주고 부흥시키려 하오니…"70) 라고 일기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도 거대한 미국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오이디푸스 갈등의 산물이다.

66)『일기』,  1931, 5, 7, p.134.

67)『일기』, 1931, 1, 25, p.116.

68) 변종호 편저,『이용도 목사 서간집』(서울: 장안문화사, 1993), 1932 말 주선행씨에게,p.184. 이하『서간』라고 표기.

69)『일기』,1929, 12, 21, p.67.


    1931년 1월 영동강습회 중 만난 한 고아 소년 최억성, 그의 부모는 싸움을 하고 어머니는 양잿물을 먹고 자살하고 아버지는 미쳐서 집을 나갔다.71) 소년의 이야기는 주일학교 연합회 간사로 내몰린 이용도의 무의식 안에서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고, 이용도는 최억성이에 대하여 지나친 동정으로 감성적 몰두를 한다.

 

    오- 주여 나는 참 목자 노릇 하기 어렵사옵니다. 내가 이 어린 것을 어이 하오리까 주여 나를 도우사 이 어린 것을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얼굴에 微小가 나타나고 그의 입은 평화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기쁨이 가득 하였도다. 저의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고 저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었다. 오- 네가 울어 내가 울었고 네가 웃어 내가 웃었으니 이어인 因緣인고?72)


    예수 믿는 사람이 도처에 많거니와 너를 긍훌히 여길 신자(信者)는 없었구나!!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다만 자기의 욕심만 위하여 믿는 체하는 현대교인아! 너에게 화가 있을지어다.73)

 

 

    최억성과 동일시된 이용도의 어린 시절, 양잿물을 수 차례 추켜든 이용도의 어머니와 동일시된 최억성의 어머니, 두 모자 관계에 대하여 적대적인 아버지를 상징하는 현대교회는 오이디푸스 삼각관계의 갈등에 있다. 어머니와 불안정한 애착관계로 인해, 어머니로부터 분리를 해 내지 못하는 이용도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시되는 현대 교회는 분노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부터 내몰린 어머니와 이용도는 피학적인존재가 된다.

    1930년 선천읍 집회 꿈 내용은 이용도의 오이디푸스 갈등을 더욱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다.

 

    큰 뱀, 부친을 감았던 대사가 달아나는 것을 몇 친구가 추격하더니 논귀 어떤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는지라 돌로 치나 물이 깊어 잘 맞지 않더니 흙으로 메우매 그 중동이 노출한지라 누군가 칼로 그 중동을 갈기니 끔적 못하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다 - 꿈!, 큰 마귀의 세력이 하나 꺼꾸러진 것으로 해석하다.74) 

 

 

 

    프로이트는 꿈을 소망성취로 이해했고 꿈 작업의 메카니즘으로 압축(condensation), 전치

(displacement), 연극화(dramatization), 상징화ion), 이차적 가공(secondary elaboration)을 든다. 그리고 꿈 작업을 위한 재료로서 낮의 잔재와 유아기의 소망을 들었다.75)

    첫째, 낮의 잔재를 살펴보자. 이용도는 집회를 위해서 선천에 도착하였으나 교회에서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이용도의 남루한 옷차림으로 인하여 이용도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쑥한 양복 차림의 구두신고 가방 든 사람을 이용도로 착각한다. 이에 대한 이용도의 일기를 보면 단순히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적대적 감정으로까지 비약함을 볼 수 있다.

70)『전기』p.58.

71)『전기』pp.58-63, 참조

72)『전기』p.61.

73)『전기』p.60.

74)『일기』1931, 8, 21, p.147.

75) Sigmund Freud, Traumdeutung, 김인순역,『꿈의 해석』(서울: 열린책들, 2003), pp.335-401.


"저희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도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는 하나님인 줄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도다"76)

"선천! 그 이름은 이 높은 바 있었다마는 그 실은 어떤고… 아- 굳고 교만한 선천이어 목사로부터 평신도까지 다- 생명이 죽지 않았던가. 내 마음 심히 괴롭구나. 선천의 사람들아 너희가 나의 피와 살을 음식할만 하도다."77) 당시선천78) 은 교세의 부흥뿐만 아니라 민족 사회 계몽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집회 중 그의 일기에 나타난 선천에 대한 감정을 살펴보자.


    기독교 사업자의 무생명, 교육학이나 심리학을 몰라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신앙의 생명이 없는 연고라. 시간이 다 되기까지 몇 명이 안모였다. 8시 반 개회에 25분이 지났는데도 아무 사람도 없었다.… 밤집회- 야고보 4장 6, 마 12장 7, 마 9장 13, 교만한 세대에 너희는 선지자를 버리었도다.79)

 

 

교세, 교육,  민족 운동 등이 활발히 일어난 선천은 고난을 동경하는 이용도의 신앙에 비추어 보면 사치스러운 곳이다. 그가 인도하는 부흥회 참석도 부진하다. "굳고 교만한 곳, 이름 높아 자랑이 가득한 곳"80) , 선천은 꿈속에서 부친을 감았던 대사가 응축된다. 부친과 대사는 동일시된 면으로 성기적 상징을 가진다. 몇 친구가 추격하고 돌로 치고 흙으로 메우고 누군지 칼로 중동을 자르는 일련의 행위들은 선천을 성서와 설교의 언어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이용도 분노 행위의 전치이다. 신음하고 죽어가는 대사는 선천을 살해하고픈 소원 성취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 이용도가 자신의 꿈을 마귀 세력 하나의 패배로 본 것은 이러한 해석을 입증해 준다. 무의식 안에서 목이 곧은 선천은 마귀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것은 유년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상징화된 꿈이다. 적대적인 선천은 이용도의 무의식 안에서 아버지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뱀은 아버지의 성기를 상징한다. 꿈에서 그 대사가 아버지를 감고 있었다면, 그 대사는 아버지의 힘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성기임은 자명하다. 웅덩이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대사가 웅덩이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머니와의 성적결합을 의미한다. 보통의 뱀이 아니라 대사라 함은, 이용도의 유년기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성적결합을  통하여 어머니를 공격한 것으로 심상화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박애당하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그 뱀을 공격하는 일련의 행위는오이디푸스 분노이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는 웅덩이인 어머니를 구출하는 일이다. 이용도의 부친 살해 분노가 누구가로 전치된 것은 꿈속에서 초자아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칼로 대사를 쓰러뜨리는 행위는 오이디푸스 승리의 소원성취이다. 꿈에 깨어나서 큰 마귀 세력 하나의 패배로 보는 해석은 아버지를 공격함으로 어머니를 구하고 싶어 하는 유년기의 소원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이용도는 초기 어머니와 만족스러운 대상관계 경험을 하지 못했고, 또한 아버지와의 동일시도 실패했다. 결국 그의 자아는 아버지를 거부하고 박해당하는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76)『일기』. 1931, 8, 20, p.145.

77)『일기』, 1931, 8, 20, p.146.

78) 그 당시 선천교회라 함은 선천지방 장로교회에 대한 총칭으로서 1930년 신도수가 급증하면서 교회 분립과 많은 지교회가 설립되었다.

     1906년 선천 신성학교, 1907년 보성 여학교가 설립되었다. 1919년에는 선천 기독교 청년회(YMCA)가 만들어져 사회 계몽운동을 펼쳤

     다. 1911년'105인 사건'은 신성학교가 발상지였고, 1919년 3.1운동과 1937년 수양동지회사건 때에도 기독교인들이 적극 동참하는 민족

     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곳이다.

79)『일기』, 1931, 8, 21, pp.146-147.

80)『일기』, 1931, 8, 22, p.14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보는 이용도의 신앙은 아버지를 상징하는 권위,  교회 제도, 신학, 부활의 영광, 명예, 부, 세상의 학문 등을 신앙의 일부로 통합해 내지 못하고 거부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공격당한 어머니에 대한 리비도 집중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로 상징화된다. 리주토(Ana-Maria Rizzuto)에 의하면 개인이 가지는 신형상에 최초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어머니이다. 그 이후는 힘으로 상징되는 아버지와의 오이디푸스 삼각관계를 통해서 신 형상은 수정된다.81) 이용도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형상은 초기 어머니 표상과 동일시를 이루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가 될 수 밖에 없다. 수정의 시기에 그는 아버지를 이상화와 동일시의 대상으로 보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곧 골고다로 향하는 것이다. 어머니외의 1차적 동일시로의 회귀는 고난 당하는예수와 1차적 동일시로 전이된다.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깎아버리고

치례의 옷도 벗어버리고!

그것은 세상의 자랑이요, 호사는 되되 주님께는 거리낌이 되니까요.

 

나는 굴 갓을 씁니다,

먹물 든 장삼을 입고 새끼 띠를 띱니다.

이제 갑니다.

 

홀로 향하여 가는 곳

남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다만 골고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82)

 

    2) 흥분시키는 대상 - 어머니

    페어베언에 의하면 아동은 어머니에게서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 모두를 내면화하고, 그 후 아버지 경험을 통해서도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을 조종하고 내면화 한하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젖가슴이 없는 부모로서 신체적 접촉보다는 정서적 측면이 우세하게 작용한다. 이 후 오이디푸스 시기에는 양부모의 성기적인 욕구가포 함되면서, 나쁜 모성적 성기와 나쁜 부성적 성기를 각각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에 위치시킴으로서 구조가 복잡해진다. 아동은 이러한 복잡성을 주로 한 쪽의 부모에게는 흥분시키는 대상으로, 다른 쪽의 부모는 거절하는대 상으로 집중함으로 단순화시켜 오이디푸스 상황을 구성한다.83)

    이용도에게 있어서 흥분시키는 대상은 부모 모두에게서 비롯되지만, 주로 어머니에게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흥분시키는 대상과 리비도적 자아를 연상할 수 있는 초기자료이다.

81) 반신환, “신형상(Divine Image)에 대한 Rizzuto의 대상관계론적 이해와 그 비판", 『종교연구』(한국종교학회, 1997), pp.221-222.

82) 『서간』,1930 春,박정수씨에게, p.25.

83) W. Ronald D. Fairbairn, "Endopsychic structure considered in terms of object-relationships(1944)",pp.119-125.


 

    어머니가 병 중에 낳은 누이 동생 순례는 젖을 한 방울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이 젖 못 먹는 어린 누이를 용도가 맡았다.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젖을 근처에서 얻어 먹이고 저녁에 일찍 돌아와 또 이 집 저 집으로 젖을 얻어 먹이러 다녔다. 이 어린 누이에게 젖을 얻어다 먹이는 용도는 누이가 울 때 함께 울었고 누이가 배고플 때 함께 굶었다.84)

 

     위 인용문에서 분석할 자료는 사실(fact)이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이다. 어린 누이와 젖동냥을 하러 길가로 나간 이용도에게 병약한 어머니가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어머니를 위하는 착한 소년의 행위였지만, 무의식 안에는 자식에게 줄 것을 주지 않는 불만족스러운 어머니 표상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엄마의 젖을 물어야 할 때 물지 못한 어린 순례와 이용도의 어린 시절이 동일시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젖먹이 누이 동생은 이용도와 동일시됨으로 함께 울고 함께 굶은 것이다. 그들의 눈물은 흥분시키는 대상에 대한 리비도적 자아의 집중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병약하고 집안 살림은 가난하니 용도는 혼자 눈물과 땀을 다 쏟으며 세간 살이를 받들었다. 즉 특히 없는 것을 얻으려 근처 집에 가서 구구한 사정을 하는 일은 그가 혼자 도맡았고 물 길어 주고 절구질하고 힘든 일 하는 것도 혼자 맡아했다.85)

 


 

    이용도는 어머니에게 순응하는 착한 아이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이 심리적 통합과정에서 일어난 것인지, 실패에 따른 방어로 나타난 것인지는 후기 경험을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유아적 의존에 충분히 의존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원시적 방어기제들이 무의식에 강력한 힘으로 잠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극받을 만한 현실의 사건을 만남으로 표출된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순종 잘 하는 아이 이면에는 어떤 역동이 잠재되어 있는지 그의 대인관계 방을 분석함으로 명확해진다. 변종호와 피터스가 이용도의 학창시절을 다룰 때는 깊은 신앙심과 더불어 정서적 불안정과 비창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는 깊은 신앙심 이면에 비창이 있듯이, 말 잘 듣는 이용도의 자기 이면에는 돌봄 받고 싶어 하는 또 다른 공허한 자기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좋은 대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유아에게 기대만 주는 흥분시키는 어머니 측면이다.

     피터스는 흥분시키는 대상으로서의 이용도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학생시절 교내 식당 식비를 내지 못해 끼니를 걸러야 하는 때가 있었다. 그 때 학생들이 교내 식당에 몰려들자 그는 “너희들은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해. 나 역시 그래야 해.”라는 격정이 몰려왔다고 한다. 피터스는 이용도의 심적 상처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거기서 혼자 서 있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창피했다. 모두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돌아서서 그 곳을 나왔다. 용도는 자기를 비웃는 눈길과 뒤통수에서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86)

 

 

84)『전기』, P.20.

85)『전기』, P.20.

86) Victor Wellington Peters, op, cit., pp.23-24.

 

    소외된 감정은 대상에 대한 증오로 바뀐다, "빌어먹을 식당 저주나 받아라!"87) 이것은 불안의 투사이다. 그리고 투사된 불안은 다시 내사되어 피학적 환상을 만들어 낸다.

 

    죽어라! 모든 소리마다 죽음의 선고가 내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어라! 너 가련한 사람아! 밥 먹을 돈마저 마련할 수 없는 너, 이 세상은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다. 돈, 금! 그것이 없으면 너 죽어.88)

 

    당신들이 나를 죽이고 있어. 당신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동안,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지?89)

 

    심리적으로 퇴행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이용도의 환상은 대상을 공격하고, 죄책감으로 그 공격성은 다시 자신에게로 향해진다.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환상은 나쁜 내적의 대상의 출몰이다. 만일 유아적 의존에 실패했다면, 이러한 불안을 극복해내는 방법으로 원시적 이상화, 투사적 동일시, 분열 등의 방어기제를 강력하게 사용한다. 원시적 방어기제가 작용되는 대상은 전체 대상이라기보다는 부분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자아는 부분 대상이 전적으로 좋으면 이상화하고 전적으로 나쁘면 공격한다. 페어베언은 그 공격성에 좋은 대상으로 기능할 대상이 부재하면 우울증으로 간다고 했다. 이용도의 우울한 정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극단적인 분열, 한 대상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 반면 다른 것에 대한 공격성은 생애 초기 방어기제이다. 퇴행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피터스가 전하는 이용도의 연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때 천사들이 내려와  그를 도와주었다. 용도는 거의  먹지 못하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생각이 떠오르자 위안이 되었다. 성녀 같은 그의 어머니는 굶주린 자식들을 모아놓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아버지의 임재와 축복의 말씀에 감사드렸다. “나는 너를 버려진 어린애처럼 홀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너를 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너와 함께 거하리라”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는 종종 이 말씀들을 반복하였다.90)

 

    현실의 어머니는 성녀로 이상화 되었고, 그녀가 해 줄 수 없는 것을 하늘의 아버지께 위임해 드렸다. 성격의 중요한 구조가 형성되는 시기에 이용도에게 성녀와 하늘 아버지는 현실적 만족을 줄 수 없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못해주는 어머니는 나쁜 대상의 측면인 약속을 남발하고 주지 못하는 흥분시키는 대상이 된다. 중심 자아로부터 분열된 리비도적 자아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갈망을 가진다. 이용도의 일기에서 이러한 표상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봄은 왔는가 보니 벌써 꽃이 피어있고 나비가 날고 있구나. 꽃은 언제 피고 나비는 언제 왔는가 그리고 또 언제 없어질 것들인가.91) 

 


 

    봄이 와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지만 기쁨을 주지 못한다. 상실을 걱정하고 있다.

87) Ibid., p.24.

88) Ibid., p.24.

89) Ibid., p.25.

90) Ibid., p.25.

91)『일기, 1927, 3, 20, p.28.


    까마귀! 검고 보기 싫어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까마귀.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새가 귀엽게 뵈고 사랑스러워졌다. 까마귀! 누구에게도 사랑을 못 받고 돌리워, 혼자 띠끌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내 신세 같은 숙명의 새! 92)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리비도적 자아는 돌보는 이 없이 혼자 먹이를 찾는 까마귀와 동일시를 이루고 있다. 그 까마귀는 혼자 티끌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듯이 이용도의 대상을 향한 갈망은 기대로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성탄 전날 밤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쓴 이용도의 일기는 유아기의 경험과 관련지을 수 있다.


 

 

 

 

 

    주여 저 어린 아이에게 울음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 울음 소리가 깊이 잠든 어머니를 깨워 젖을 찾는 소리가 되었으니 만일 그 울음 소리(시끄러운)가 없었더라면 애기는 굶어 죽을 수도 있고 깔려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듣기 싫어도 그 애기에게는 그 생명을 지켜주는 무기입니다. 오- 그 울음소리, 당신의 경륜이 오묘하도소이다.

    경성(警羅)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야! 먹이려거든 깨어 있어 젖꼭지를 바로 물리고 먹이어라.

    젖을 먹인다고 젖꼭지를 물리고서 그냥 잠이 깊이드니 네 잠든 몸의 지향 없는 움직임은  아기를 굶기기도 하고 혹은 네 젖으로 아기를 질식 시키기도 할 것이다.93)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 아기 울음소리, 폐병으로 투병중인 이용도 자신과 그의 어린 시절이 정서적으로 동일시를 이루고 있다. 굶어 죽을 수도 있고 깔려 죽을 수도 있는 불안은 이용도의 초기 불안이고, 문학적인 구조 안에서 젖을 제대로 물리지 못하는 야속한 어머니는 흥분시키는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경험이다.

    1930년 10월 16일 이용도의 부흥회 방식이 문제가 되어 구역 담임에서 파면되고 전국주일학교 연합회 간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 사건을 분깃점으로  이용도는 제도권의 보호로부터 멀어진다. 다음해 1월 24일 장문의 일기를 기록하는데, 그의 어머니 표상과 연결될 수 있는 표현이 발견된다.


    주여 나를 놓지 말아주세요. 나는 안 떨어지겠습니다. 아무런 것으로 달래어도 안 떨어지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유혹하는 놈 그 세상이란 놈은 다시 나를 달랩니다. 나는 주의 품을 떠나서의 괴로운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어라- 하고 안 떨어지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때에 어머니는 당신이 좋은 선물을 집어 주면서 나를 떼여 볼까 하십니다. 이는 하마 당신이 나를 사랑하사 당신의 일터에 같이 나가면 어린 내가 고생할까 염려하사 아끼시느라고 하심이겠죠. 그러나 나는 어머니 없는 집의 장난감, 음식, 다른 사람의 위로 등이 별로 힘이 되지 못할 것과, 어머니 없는 내 신세가 결국 얼마나 가련 할런지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나는 다시 떼를 섰습니다.「안 떨어지겠나이다」고 「나도 갈테야 데리고 가 주셔요 어머니」「가면 춥고 다리 아프고 고생한다」「그래도 난 좋아 그래도 나는 갈테야」하고 울면서 떼를 썼습니다.94)

 

92)『일기』, 1927, 6, 1, p.34.

93)『일기』, 1927, 12, 24, pp.40-41.

94)『일기』, 1931, 1, 24, p.112.

 

    일터에 가시기 위해서 자식을 떼어놓으려고 달래고 대체 장난감을 주는 어머니는 흥분시키는 대상이다. 그 어머니를 붙들어 두려고 울면서 떼를 쓰는 것은 리비도적 자아이다. 기대를 주나 만족할 수 없는 대상관계는 신앙의 대상인 그리스도의 관계로 전이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유기 불안은 신앙안에서 주님으로부터의 유기 불안으로 전이된다. 만족을 주는 충분히 좋은 대상이라기보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갈망만 일으키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이다. “골고다의 길! 이 길이 나의 길이었으나 나는 아직 초학 입덕지문에 있는 자입니다. 어서 의에 돌진하여 욕과 죽음을 받아야겠습니다,"95)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와 1차적 동일시의 추구는 언제나 '초학'이라 할 만큼 이루어질 수 없는 갈망이다.

    초기 흥분시키는 대상과 리비도적 자아는 그의 정신 구조 안에서 과도한 리비도 집중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갈망이 이용도 당시의 시대적 아픔과 짝을 이루었다.


    3) 거절하는 대상 -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내면화된 나쁜 대상의 측면인 거절하는 대상은 오이디푸스 시기에 이르러서는 한 쪽 부모에게 집중된다. 이용도에게 있어서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떠맡는다. 거절하는 대상으로서의 아버지는 전술한 오이디푸스 시기의 아버지 경험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즉 이용도에게 비추어진 아버지는 집을 자주 비우는것과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거절하는 대상으로 내면화 되었다.

    변종호와 피터스가 전하는 이용도의 초기 가족 구조를 보면 공격하는 아버지와, 그 공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머니와 자녀들로 양분되어 있다. 그가 어머니와는 거의 융합에 가까웠다면, 아버지와는 분열성 성격의 특징인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있다. 동생 용구의 장례를 룬 후 아버지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험과 환난이 올 것을 두려워하라고 하고,96)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여서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일을 당하든지 주를 슬프게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97) 라는 책망과 훈계조의 서간문은 거절하는 대상에 대한 반리비도적 태도이다.

     이용도는 생애 중요한 시기마다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데, 최초의 환상은 소년기에 중풍 걸린 백부가 밤중에 진유(眞由)를 사오라고 하여 길을 가다가 보았다. 1931년 7월 26일 그의 일기책 난외에 쓰여진 이력서에 '1916년 1월 15夜 勝魔'라고 했는데, 일기에 이 체험을 표기할 정도로 그 내면에 각인된 것이다. 또한 최초 환상의 이미지들은 후술할 이용도 삶의 중요 전환 시점마다 재현된다.

    캄캄한 한 밤 중에 혼자 길을 가노라니 키가 구 척이나 되는 마귀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아 섰다. 이 때에 용도는 놀라지 않고 마음을 침착히 한 후 찬송가를 큰 소리로 불렀더니 하늘에서 천사의 날개가 내려와 그 마귀를 밀어내고 보호하여 주어서 그 길을 무사히 가서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고 한다.98)

 

 

    환상은 "주체가 등장하는 상상적 각본"99)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환상 안에서는 주체가 마음껏 상상의 대본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95)『서간』1932, 12, 30, 옥어진씨에게,p.179.

96)『서간』1931,이덕흥씨에게pp.58-59.

97)『서간』1932, 2, 28, 이덕흥씨에게,p.108.

98)『전기』p.20.

99) 임진수『환상의 정신분석: 프로이트 · 라캉에서의욕망과 환상』(서울: 대한교과서 주식회사,2005), p.235.

 

 

 

 

 

 

 

의식적인 환상이라도 그 근간은 무의식적이다. 프로이트는 환상을 소원 성취와 욕동의 파생물100)로 봄으로 자아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 환상도 무의식의 일부이기에 해석 방법으로는 프로이트의 꿈 분석 원리를 따른다. 다만 프로이트가 리비도를 욕동으로 분석했다면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자아가 대상과 가지는 관계의 방식으로 분석한다. 특히 페어베언은 꿈속의 모든 대상표상은 자기표상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꿈속의 상징화된 인물은 3중 자아/대상의 분열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후술할 이용도의 꿈과 환상의 분석은 이러한 대상관계 정신분석이 적용될 것임을 밝힌다.

    페어베언은 환상을 중심자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지만 그 발생 원인은 욕동이 아닌 대상관계의 실패로 본다. 중심자아의 확립은 환상을 환상으로 인식함으로 현실로부터 분리한다. 반면 중심자아로부터 분리된 부차적 자아가 내적 대상과 관계를 맺음으로 중심자아의 기능이 극소화된다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 경계에 따라서 분열의 정도를 결정한다. 위 환상의 배경으로 보아 겁에 질린 소년이 마귀 환상으로 두려워할 수 있으나, 구척이나 되는 마귀가 실제로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는 것은, 환상을 현실의 일부로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내면화된 부차적 자아와 분열된 나쁜 대상으로의 리비도 집중, 즉 분열성 성격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로이트는 환상 안에서 마귀와 관계 맺는 종교인 분열증 환자를 최초로 정신분석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논문 "17세기 귀신 들림의 신경증"101)에서 사별한 아버지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 화가  크리스토프 하이쯔만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는 사탄의 아들로서 9년 동안 육체와 영혼을 사탄에게 바칠 것을 맹세한다. 사탄에게 종속되는 계약을 통해서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고문서에 기록된 악마와의 계약을 전적으로 환상으로 보고 그것을 분석한 결과 그에게 나쁜 경험을 주고 수용해 주지 못한 아버지를 악마의 형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악령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거절되고 억압된 욕동의 피생물이라고 재 정의함으로서 이론적인 애매함을 남겼다.

    페어베언은 위 프로이트의 분석 논문을 언급하면서 리비도가 1차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면 어떻게 사탄과 동맹을 맺을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페어어베언은 화가가 사탄과 동맹하려 한 것은 거절된 욕동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자체였다고 분석한다. 유년기에 내면화된 아버지는 나쁜 상이었지만 이 후 실제적인 경험에 의하여 교정되었다.102)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후 화가는 유년기의 아버지로 회귀하는데 대상 상실의 고통보다는 나쁜 대상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즉 화가와 동맹을 맺는 마귀는 리비도 만족을 위한 욕동의 파생물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형성된 나쁜 내적 대상인 것이다.

    이용도의 꿈과 환상에 자주 등장하는 마귀는 무의식 안에 자리 잡은 내면화된나쁜 대상이다. 환상에서 구척이나 되는 마귀는 강력한 힘을 가진 거절하는 대상으로서의 아버지이다. 칼 융의 개성화 과정에서는 마귀조차도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자아와 자기의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정신분석에서도 내 안에서 나쁜 대상으로 상징되는 마귀가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마귀로부터 압도당하지 않고 건강한 인격을 창조할 수 있다.

100) Sigmund Freud, Vorlesungen zur einf uhrung in die psychoanalyse, 임홍빈흥혜경역,『정신분석강의』(서울: 열린책들,2003),

      pp.497-504.참조

101) Sigmund Freud,『예술. 문학. 정신분석』,정장진 역(서울: 열린책들,2003), pp455-506.참조

102) W. Ronald D. Fairbairn, "The repression and the return of bad object(withspecial referecce to the 'war neuroses') (194

      3)", pp.70-72.

 

    한편 구척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은 신앙의 능력이다. 이것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거절하면서 어머니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이다. 즉 이상화된 대상으로 나쁜 대상의 위협으로부터 구출해내는 역할을 한다. 하늘에서 천사의 날개가 내려왔다는 것은 편집 분열적 자리의 부분대상으로서 이상화된 좋은 대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은 전체 대상인 천사로서 인격화된 신앙이라기보다는, 천사의 날개인 부분대상이 됨으로 불완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클라인은 부분대상을 편집 분열적 자리의 주 대상 관계 겸험이라고 진술하면서 발달과정의 일부로 인정한다. 반면 페어베언은 부분 대상을 초기 구강기 이후 무관심하거나 소유적인 어머니에게서 받은 정서적 박탈감에 기원을 둔다. 퇴행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부분 대상과의 관계는 정서적 친밀감을 신체의 일부나 비인격적인 어떤 것으로 대체한다. 페어베언은 이를 "대상의 탈인격화"(depersonalization of the object), 혹은 "대상관계의 탈정서화"(deemotionalization of the object-relationship)라고했다.103) 페어베언에 따르면 이용도에게 천사의 날개로 상징화된 것은 대상의 탈 인격화와 탈 정세화된 부분대상이다. 좋은 대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격과 정서 안으로 통합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후에 이용도가 궁지에 몰려 그리스도의 이상적 사랑에 몰입하면서 현실의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는데, 이것은 부분대상과의 관계인 대상의 탈인격화, 대상관계의 탈정서화라고 할 수 있다.

     천사의 날개가 구 척이나 되는 마귀를 밀어내어 이겼다는 것은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후 경험과 환상과 연결해 보면 내면화된 거절하는 나쁜 대상을 직면하기가 두려워서 억압하고 있는 것을 분석해야 옳다.

    이용도의 학창생활을 살펴보면 아버지를 상징하는 거절하는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노골화된다. 소년기에 시변리 공립 보통학교 교장이 기독교 가정 아이들을 학대하자 퇴학원을 내며 결국에는 교장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받아낸다.104)  어머니 신앙을 지켜 내려는 의도 이면에는 거절하는 아버지를 밀어내는 강력한 역동이 존재한 것이다. 중학 시절  9년동안의 가난과 배고픔, 마음의 고민과 비창, 생활고로 인한 과도한 노동105)은 심리적 재탄생을 창조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1919년 3.1 절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을 하게되는데, 변종호는 그 때 이용도의 애국 열정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오직 애국열정의 불덩어리였다. 이 불덩어리가 자기의 피와 눈물을 항상 끓게 하고 있었고 나타나는 데마다 빛을 던지며, 부딪친 존재들을 모두 태웠다.106)

 

    20세 전후 나이인 이용도가 항일운동을 위한 의노와 강력한 저항 의지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 역동은 그의 내면화된 대상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뜨거운 투쟁의지가 어떻게 고난당하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로 급격하게 전환될 수 있었는지,  왜 뜨거운 애국열이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지 않았는지 주시하여야 한다. 그것은 중심자아의 주 활동이라기보다는 반리비도적 자아가 거절하는 대상에게 향하는 공격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협성신학교 재학 중에서도 나타난다.

103) W. Ronald D. Fairbairn, "Schizoid factors in the personality(1940)",pp.12-14.

104)전기』, p.19.

105)『전기』, p.21.

106)『전기』, p.23.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용도는 학생들끼리 논쟁하거나 수업시간에 괴상한 질문으로 선생님을 골려주고 경건치 못하다 하여 "이론가, 논쟁가, 말썽군, 경우꾼, 싸움패, 과격파"로서알려졌다고 한다.107)  이러한 별칭은 거절하는 대상과 짝을 이루는 공격하고 박해하고 깍아 내리는 내적 파괴자, 즉 반리비도적 자아이다.

    반리비도적 자아는 초자아와는 달리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증오의 대상에게는 무조건 공격해야 한다. 구조화된 나쁜 대상들의 심상은 마귀라는 종교적인 상징으로 나타나고 세상은 마귀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마귀는 격퇴되어야 한다. 비록 신학적인 진술을 포함하고 있다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이원론화 된 것이기에 나쁜 내적 대상의 투사라는 방어기제로 설명될 수 있다.


    이 곳 한국 교회 안에서 장난하고 있는 악마의 계획을 폭파할 폭탄 제조소가 되게 하소서. 온- 한국, 온- 세계에 날아가는 폭탄의 불의 발화지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제1탄이 내가 되게 해주시면 그런 영광은 없겠나이다.108)


   이 땅에 마귀는 꽉 찼다. 어두움의 권세요 방의 권세로다. 미워하고 죽이고 시기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교만한 이 악마의 세계! 아, 이는 싸움의 밤이로다 창이요 칼이요 포탄 연우로다.109)

 

물리쳐야 할 나쁜 대상인 마귀는 현대교회로 전이된다. 1931년 2월  말재령집회의 설교를 들어보자.


    신앙이나 사랑이란 내용은 하나도 없고 껍데기와 기관과 조직만 남아가지고서는 이것이 예수교회라고 전해서 남의 귀한 심령을 해하고 망치고 죽여 버리는 것이 현대의 교회가 아닙니까…

 「벽돌로 담을 쌓고 울긋불긋 장식을 해 놓은 것이 이것이 교회가 아니예요. 이 예배당을 다 - 불질러 버리고 잿더미 위에서라도 몸과 마음을 아주 바쳐 참된 예배를 드려야 그것이 교회올시다…….」고 부패한 교회의 내막 폭로, 주님의 일군의 직업화 공격, 예수와 십자가의 재인식 역설, 한국 기독교계의 재출발을 거창 하는 것이었다.110)

 


 

    현대교회와 교직 공격, 그리스도와의 이상적인 연합을 추구하는 이용도의 부흥회는 영적각성과 더불어 교회에 혼란을 몰고 왔다, 1931년 9월 28일부터 시작하여 10월 3일로 마칠 예정인 아현성결교회의 부흥회 일정이 있었으나, 첫째 날 집회 도중 이용도는 축출 당한다. 여기에 대한 이용도의 반응을 이호빈에게 보내는 서신에 나타나 있다.


     큰 싸움이 시작되었소이다. 영과 육의 싸움이니 이스마엘과 이삭의 싸움이오다. 혈육으로 난 자가 하나님의 허락으로 난 자를 대적하는 싸움이로소이다. 혈육의 자식은 허락의 자녀를 시기하여 꼬집어 뜯고 있나이다.111)

 

 

107)『전기』, P.26.

108)『일기』, 1930, 1, 26, p.83.

109)『일기』, 1931, 3, 9, p.127.

110)『전기』,pp.72-73.

111)『서간』, 이호빈에게,1931, 10월, p.68.


    하나님의 자녀는 영과 이삭과 이용도 자신으로 이상화되고, 혈육의 자녀인 이스마엘은 현대교회와 교직으로 거절하는 대상이 되다. 집회 중 축출이라는 위기에 작용한 내적 대상의 분열을 보여주고 있다. 이용도식 부흥회에 대한 논란으로 1931년 1월 감리교 본부에서 이용도를 지방 순회 목사로 파송, 1931년 여름 장로교 황해 노회의 이용도 매장 결의, 1931년 10월 평양 노회의 이용도 금족령(禁足令)등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사실 이러한 조치들은 신학적인 검증 없는 감정적인 처사들이나 여기에 대한 논의는 심리학적 영역 밖의 문제로 연구자는 논의하지 않겠다. 다만 이용도 자신도 자신의 부흥회 방식에 대하여 객관적인 성찰이 필요했다.

    이용도의 부흥운동이 기존 교회와 교단에 의해 서서히 저지당하게 될 때, 반리비도적 자아는 거절하는 내적 대상의 투사물인 세상, 교회조직, 고위 성직자를 공격한다. 그리고 리비도적 자아는 흥분시키는 대상의 투사물인 가난한자, 고난 받는 자, 약자에 대한 갈망을 가진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분열된 부차적 자아/대상으로 인해 고난의 십자가 신비주의의 이면에 분노와 공격성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5) 이상화 대상- 그리스도의 사랑

    페어베언은 양육자의 실패로 나쁜 대상이 내면화된다고 하였고. 어머니의 만족을 주는 측면인 이상적 대상도 내면화된다고 하였다. 이유는 나쁜 대상을 통제하고 불안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심자아의 일부는 내면화된 이상적 대상, 또 다른 일부는 현실의 대상과 관계 맺는다.

 

어머님

이름 중에 제일은 어머니, 마음 중에 제일은 어머니의 맘, 눈 중에 제일은 어머니의 눈,

나의 오늘이 있음은 오로지 나의 어머니의 기도와 念德에 인함이다.112)

 

 

    이용도에게 있어서 만족을 주는 이상적인 측면으로서의 어머니는 어머니 자체보다는 어머니의 신앙이다. 초기 거절하는 대상으로서의 아버지 경험, 흥분시키는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경험, 즉 나쁜 내적 대상을 조절하기 위해서 어머니인 기독교 신앙을 어린 시절부터 특별하게 내사하였다. 그는 어머니의 신앙적인 양육으로 아버지의 거절을 이겨냈고,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사상의 전환기에 신앙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하나님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13) 13세 때 평범치 않은 신앙생활을 하였고, 기도생활을 실천한 소년으로 교회 종탑에 올라가 여러 시간 혹은 철야기도를 올렸다고 한다.114) 부모로부터 분리하여 또래집단을 형성할 즈음에 내면생활에 그렇게 몰두했다는 것은 내면화된 이상적 대상과 관계이다. 그렇게 형성된 초자아의 핵인 이상화 대상은 이용도에게 조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의 순기능은 그의 심리구조 안에서 나쁜 대상과 부차적 자아의 극단적인 분열에도 불구하고, 후에 이용도가 통합을 지향하게 되고 고난을 사랑으로 수용하는 사랑의 신비주의로 전환하는 심리적 요인이 되었다.

    그에게 내면화된 이상적 대상은 만족을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이것은 결코 만족을 줄 수 없는 흥분시키는 대상으로서의 십자가 고난 추구와, 박해하고 파괴하는 거절하는 대상과는 대조를 이루면서 그것들을 완화시킨다. 중심 자아가 얼마만큼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관계를 맺는지 여부가 신앙의 만족도와 비례한다.

112)『일기』,1930, 5, 17, p.94.

113)  Victor Wellington Peters, op,cit., p.22.

114) 『전기p.19.

 

 

 

하지만 내면화된 이상적 대상으로의 과도한 리비도 집중은 오히려 나쁜 대상을 방어하는 역기능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엄격한 초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나쁜 대상 측면을 양극으로 분리시킨다. 환상 분석을 통해서 이상적 대상의 측면이 어떻게 정신구조에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보자.

 

 

 

    용도 목사가 강단에 나서니 어디서인지 많은 청년들이 몰려들어 회당이 가득 찼다. 용도 목사가 한참 말을 하는데 무섭게 생긴 사람 둘이 손에 큰 검을 들고 들어와서 앉은 청년들을 찌르고 베고 하여 다 쓰러뜨리고서 용도 목사에게 이르러서는 두 명이 함께 칼을 들어 동시에 목사를 치려고 한다. 이때 목사가 입김을 내어 그자들을 훅 부니 둘이 다 당장 쓰러져 죽는 것이었다.115)


 

    환상의 배경은 주일학교 지도자 강습회를 부흥회식으로 하여 문제가 된 후 강습회에 나오지 말라는 주최 측의 권고를 듣고 똑똑한 정신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회당에 가득찬 청년들은 은혜를 받는 사람으로서 좋은 대상의 측면이다. 무섭게 생긴 사람 둘은 그에게 부흥회에 나오지 말라는 거절하는 대상이다. 한편 거절하는 대상은 박해하는 대상이 됨으로 편집분열적 자리로의 퇴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명이 칼을 들고 공격하는 것은 박해 불안이다. 즉 이용도 자신이 거절하고 박해하는 대상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원초적 불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입김을 내어 그들을 죽이는 것은 유아의 전능환상116)이다.

    환상 안에서의 전능성은 불안이 유발되는 상황에서 초기 전능환상으로의 퇴행으로 볼 수 있다. 페어베언의 이론에서 전능성은 거절하는 나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상화된 내적 대상이다. 꿈을 꾼 후 이용도의 연상도 "네 입에 내 능력을 주노니 나가서 외쳐서 마귀들을 쳐서 물리치라"117)이다. 능력을 주는 전능자와 능력을 받는 자기가 융합되어 있다. 그것은 환상 속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기에 마귀를 물리칠 수 있다.

    좋은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가 현실 안에서 만족을 주지 못하고 내적 대상이 되어 이상적으로 몰입하면 또 다른 신비주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용도에게 있어서 오직 주님의 지시만 따르겠노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용도에 대한 평판이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쁜 식의 극단으로 가면서 감리교단에서는 그 시비를 중단시키려고 주일학교 연합회 간사에서 지방순회 목사로 직위를 변경했다.118)

115)『전기』,pp.65-66.

116) Madeleine Davis and David Wallbridge, op, cit., pp.57-60. 참조; 위니캇은 유아 탄생 직후 충분히 좋은 엄마의 만족스러운 돌봄

      을 받으면서 대상으로부터 아기에게 제공되는 모든 돌봄을 유아 자신이 창조한 것으로 여기는 전능 환상의 시기가 있다고 한다. 위니캇

      의 전능 환상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다. 전능 환상은 충분히 좋은 엄마 경험을 통해서 지속되다가, 유아와 엄마가 점차적으로 분리되

      면서 의식에서 밀려나 무의식에 그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퇴행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다시 의식화된다.

      Melanie. Klein, op, cit., pp.262-289. 조울증에 관하여 참조할 것; 클라인에 의하면 편집 분열적 자리의 불안에 대한 방어로서 이상화

      이다. 혹은 우울적 자리에서 대상에 대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기 위하여 우월감과 승리감을 갖는 조적방어(manic defence)로 볼

      수도 있다.

117)『전기』,p.66.

118) 1931년 5월 주일학교연합회 간사에서 경성지방 순례목사로 파송 받은 것을 변종호는 부흥회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교단의 결정으로

      본다. 반면 1931년 7월 1일자 기독신보에 의하면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이용도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서서히 몰락을  가져오는 이 시기에 이용도는 부흥회를 가고 안 가고, 한다면 며칠을 하느냐의 문제를 기도로서 오직 주님의 지시를 받으려 했다고 한다.119)차를 타고 가다가 “용도야! 이번에는 한번 고향 가 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라”120)라는 주님의 지시를 듣고 기차에서 내린 일, 폐병으로 죽음을 얼마 안 남겨 놓고 원산에서 요양 중 주님의 지시에 따라 평양을 간 일121) 등, 그에 관한 기록 전반에 나타나는 주님과의 직접적인 통교는 이용도 신앙에 신비주의를 더해 주고 있다. 이것을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화 대상에로의 리비도 집중이다. 그것이 참 신언이든 아니든 심리학적 논의 주제는 아니지만, 그러한 신앙의 형태를 결정짓는 이용도의 내면화된 이상화 대상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이용도가 내면화한 좋은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사랑이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아버지의 박해로부터 신앙으로 보호하였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은 나쁜 대상으로부터 이용도를 보호한다. 전술한 영동 집회 중 고아 최억성에 대한 감상적인 사랑도 이용도 자신이 이상적인 사랑으로 보호받고 싶어하는 감정이 투사된 것이다. 그 사랑은 분열성의 특징을 따라 추상성을 띤 무차별 사랑이고 현실과는 거리를 둔다.


    눈물과 땀을 쏟으시는 목사님 댁은 마치 과부 살림같이 엉성하고 생활은 늘 구차하다. 목사님이 어떤 곳에 가서 집회를 마치고 그 곳을 떠날 때에 어떤 곳에서는 여비를넉넉히 드리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언제든지 자기 집 대문에 들어서기전 에 그 돈을 반드시 써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은 늘 구차한 것이다.122)

 

 

    정작 관심을 가지고사 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에게는 거리를 둔다. 그리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면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만, 정작 그 사랑은 적대자들에 대한 증오에서 분리된 사랑이다. 페어베언에 따르면 분열성 개인의 성격적인 특징은 "(1) 전능적 태도, (2) 고립 또는 거리감을 유지하기, (3) 내적 실재에 대한 몰두”123) 인데 이용도에게 있어서 전능적 태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적 사랑으로, 고립 또는 거리감 두기는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 내적 실재에 대한 몰두는 신비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변종호에 의하면 이용도는 일련의 비평이 들려오면서 그것과 직면해서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세상을 청산하고 주님으로 가는 편을 선택했다고 한다. 중심 자아가 외부의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내면화된 이상화 대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당연히 이상적인 사랑 저편에는 적대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즉 그가 희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 이면에는 좋은 대상으로 변형되거나 통합해 내지 못한 나쁜 내적 대상을 향한 공격성이 존재한다.


   순수한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사랑은 순수함을 요한다. 그 가운데 조금일지라도 불순한 것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124)


    하나님은 사랑이시매 우리는 사랑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알지니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알지 못하고 저를 신앙키 불능하니라.

 

119)『전기』, P.67.

120)『전기』, P.186.

121)『전기』, p.200.

122)『전기』, pp. 109-110.

123) W. Ronald D. Fairbairn, "Schizoid factors in the personality(1940)", p.6.

124)『서간』, 1932, 7, 12, 이태순씨에게, p.142.

 

 

 

 

    사랑으로 시작하지 않은 신앙은 허위의 신앙이니 이는 사람을 살해할 신앙이니라. 세상에 신앙에 사는 사람이라 하여 쟁투가 많은 것은 사랑에 근거를 두지 않은 신앙, 곧 무애 신앙의 소유자가 많은 까닭이니라.125)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사랑은 믿음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원론을 극복한 통합적 사랑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적응 능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용도의 중심자아는 나쁜 대상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서 현실보다는 지나치게 이상화 대상에게 리비도를 집중한다. 그 결과 지나치게 나쁜 대상은 미통합의 상태로 남아있고, 중심 자아의 사랑 추구는 비현실성을 가졌다. 또한 이상화 대상은 엄격한 초자아로 작용하기에 이용도를 고난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구조는 좋은 대상의 경험이 내면화되기 전까지 현실과 분리된 순수함과 고상함을 추구한다.

    이용도 생애 말년에 부차적 자아로 집중하던 리비도가 중심자아로 옮겨지면서 중심자아의 응집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면면이 포착된다. 응집된 중심자아는 내적 대상으로부터 현실의 대상으로 리비도를 전환한다. 그러면서 십자가 신비주의가 사랑으로 통합해 나가는 단서들이 발견되지만, 지병인 폐병의 악화로 조기에 세상을 떠나는 아쉬움을 남겼다.

 

     4) 도덕적 방어

    십자가신비주의는 죄책감, 회개, 용서를 통하여 마침내 중생, 성화, 영광으로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영성의 길이 있다. 이용도에게도 그런 요소들이 보여지는데 우선적으로 그 형태는 심리적으로 우울한 정서를 동반한다.

    페어베언에 의하면 우울증은 후기 구강기에 깨물기에 대한 대상관계에서 발생한다. 즉, 깨무는 것으로 표현되는 증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엄격한 초자아로 인하여 그 책벌을 자신이 뒤집어쓴다. 이것이 우울증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죄책감이다.126) 이러한 죄책감은 정신분석학관점에 따라 대상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사랑과 분노의 양가감정이 포함된다. 그리고 내사와 투사를 반복하면서 대상을 이상화하고 자신을 평가절하하거나 대상의 나쁨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우울한 정서로 빠져든다.127)

    변종호에 의하면 이용도는 신학교에서 이호빈과이 환신을 만나 우애를 다지면서도 “용도 특유의 고민과 우울이 계속되고 있어 그의 오랜 동안의 심적 불안과 성격의 분열은 몸과 마음을 파괴하여”128)라고 우울증을 유발한 마음의 분열을 언급한다. 또한 "고민하고 몸부림치던 나머지 한강에 투신자살을 하려고 밤중에 나가서 노들강변을 밤새도록 헤매다가 밤이 다 밝아서 돌아온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129)라고 자살충동을 전함으로 이용도의 우울함을 예측 가능하게 한다.

125)『서간』1932, 7, 12, 이태순씨에게, p.143.

126)W. Ronald D. Fairbairn, "A synopsis of the development of author's views regarding the structure of the personality(1951)", Psychoanalytic studies of thepersonality(London: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1941), p.163.

127) KJulia Risteva, Soleil noir:Depression et melancoli, 김인환역,『검은 태양: 우울증과 멜랑콜리』(서울: 동문선, 2004), pp.22-23.

128)『전기』p.27.

129)『전기』p.33. 이용도의 신앙단상 "사랑과 섬김"에도 한 때 극도의 인간고로 인해 자살하려 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용도 "신앙과 섬김",『신앙생활』,1932,11. 참조


    이용도의 우울한 정서는 페어베언의 유아적 의존 단계 중 후기 구강기에 해당한다. 양가감정을 통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공격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상의 나쁨이 자신에게 돌아오면서 주체는 우울해진다. 그리고 그 우울함 저변에는 대상이 아닌 자신이 나쁘다는 죄책감을 형성한다. 이용도의 우울함은 도덕적 방어와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심리적 특성을 가지고 신앙에 몰두하게 되었을 때, 기독교 신학의 많은 주제 중 유독 죄와 회개에 과도한 집중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역동은 이용도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작용하여 회개운동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1926년 이용도가 신학교 3학년 때 요양 차 평안남도 강동으로 갔다가 일어난 소위 '강동체험'130)에서 이용도가 찬양을 하나 기도를 하나 설교를 하나 청중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이용도가 가지고 있는 비통의 감정이 청중에게 투사적 동일시131) 된 것으로 그 근간에는 죄책감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일제치하에 형성된 집단적인 고난의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용서와 감사와 발달을 지향하지 못하면 결국 심리적으로는 분열로, 신학적으로는 영육의 이원론자라는 평가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이용도가 독립 운동하던 당시 형사들에게 문초당해 죄를 혼자 뒤집어 쓰기를 진심으로 원했다던가, 수감 중 죄수들에게 밥을 주어 자신은 기도만 하던 일들이 가끔 있었다고 한다.132) 이것은 고통 받는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능력이면서, 정신분석학적으로는 내가 모든 죄 값을 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보상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졸업을 2-3 개월 앞둔 1927년 이용도가 원작과 주연을 겸한 성극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이 학생회 주최로 공연되었다. 이 때 공연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십자가를 진다는 많은 군상들이 지나간 후 뒤를 이어서 나타난 이용도!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비틀걸음으로 힘들게 힘들게 형장인 갈보리 언덕까지 올라가 쓰러지는 용도의 모습은 이 천 년 전의 그리스도 수난의 광경을 너무도 분명히 눈에 보여 주는 것이어서 회장은 통곡의 골짜기 눈물의 바다로 화하였다.133)

 

    이용도의 신앙심은 십자가를 지는 행위로 표현된다. 여기에는 죄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책벌이 있다. 그것은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청중들의 무의식적 죄책감을 자극한다. 1928년 1월 29일 첫 목회지로 파송 받은 강원도 통천으로 가던 중 많은 눈이 내렸다. 이에 대한 그의 연상은 '교역과 죄악'이었다고 한다.134)

130)『전기』,pp.28-30. 참조

131) 투사적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는 멜라니 클라인의 편집적 분열적 자리방어기제로서 유아가 자신의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다. 유아가 죽음 본능에서 오는 자신의 불안을 대상으로 투사하고, 투사된 자신의 감정을 대상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치료

      자와 내담자 사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간관계에 작용된다. 먼저 자기의 어떤 감정을 대상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투사한 감

      정과 동일한 것으로 만든다. 대상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감정을 일으킴으로 대상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투사적 동일시를 자주 사용하면

      자기/대상의 경계가 불명확해진다. 이것은 대인관계안에서 남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조정하는 강력한 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

      자는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과 유사한 페어베언의 이론적 개념을 1차적 동일시로 본다. 1차적 동일시란 주체와 대상이 융합한 상

      태에서 동일시이다.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거의 없다. 시기적으로도 투사적 동일시가 사용되는 편집분열적 자리와 일치한다. 이용도가

      예수의 고난과 이상적 사랑을 추구한 것은 예수와의 1차적 동일시이다. 이용도의 1차적 동일시의 감정은 그의 회중들을 예수의 고난과

      사랑으로의 1차적 동일시하게 한다. 양자의 차이점을 1차적 동일시는 유아적 의존기의  발달개념이라면, 투사적 동일시는 발달 이후 전
      이를 통해서 재경험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연구자는 이용도의 1차적 동일시가 회중들에게 전이되는 경우에는 투사적 동일시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132)『전기』,pp.24-25.

133)『전기』,p.31.


이 후 이용도의 교역은 곧 죄악의 회개이다. 이를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중생 체험한 성도들이 나타난다. 그의 명성이 평양까지 알려지자, 1930년 2월 26일-3월 9일까지 평양 중앙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된다. 그 집회를 참석한 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빌라도의 심판을 설명하실 때…천여 명 군중은 그저 울음이다. 목석도 이 자리에서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울었다. 그저 울었다.", "이 때 회개하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이요", "사람의 심중을 꼭꼭 쏘아 인심을 찌르고 갈라놓는 고로 그 설교 앞에서는 죄를 두고는 참을 수 없고", "그저 자복과 그저 회개뿐이었다."135)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 영적 부흥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신분석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의 투사적 동일시이다. 그리고 내사적 동일시를 떠나 중심 자아로 돌아온 청중들은 그 때의 감동을 의문시하게 된다.

    이용도의 열광적 부흥회는 많은 영적쇄신을 가져왔지만, 한편 무질서와 극단성의 이유로 저지를 받게 된다. 그 즈음 1931년 1월 7일부터 8일간 영동 강습회를 열게 되는데, 세번째 날 동생 용구가 죽는 꿈을 꾼다. 꿈 재료는 실제로 동생 용구의 건강 염려를 들 수 있으나,  페어베언의 꿈 해석 원리에 따라 그것은 자기표상의 일부일 수도 있다. 즉, 이용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염려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꿈을 꾼 그의 연상은 "강습회도 어찌 한산하고 내 마음도 역시 쓸쓸하구나. 이는 나의 기도가 부족한 연고인가. 아마 이곳에도 기도가 부족하였던가보다”136)이다. 신앙인이 자기의 기도 부족을 탓하는 것은 일반적인 태도이지만, 이용도에게 있어서는 나라는 개념을 무화시키려는 자기비하의 극단을 향한다.

 

 

    나라는 관념을 아주 없애 주소서. 그리고 나의 속에는 오직 주만이 살아계시옵소서. 주가 움직이어 내가 움직이게 하여 주옵소서.137)


    나는 육과 영이 너무 평안하여 주께 죄송하다. 어찌하여 저희들은 나로 하여금 일하게 아니하고 저희는 일하는고. 저희가 다하고 나를 그저 버려둘 진대 왜 나를 불렀는고.138)


    나는 저에게도 많은 죄를 지어 원수가 되었으나… 139)

 

    이용도는 육을 편하게 두려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말기 폐병 환자인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이용도는 자신마저 그리스도의 원수로 보고 스스로를 책벌한다.


 

    남의 포도원을 망치노라고 분주한 오- 가련한 꼴 부흥 목사라는 직업 간판을 붙인 자

화 있을진저.140)


 

    도덕적 방어에 따라오는 엄격한 초자아의 질책이 자신에게 향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 내면화된 나쁜 대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페어베언은 도덕적 방어에 대한 2차적 발달의 산물로 이상화된 대상이 내면화된다고 한다.141) 이용도에게 있어서 이상화된 대상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134)『전기』, p.34.

135)『전기』, pp.40-55.

136)『일기, 1931, 1,9, p.100.

137)『일기』, 1931,1,8, pp.100-101.

138)『일기』, 1931, 3, 7, p.125.

139)『일기, 1931, 8, 17, pl42.

140)『서간』, 1932, 2월초, 이호빈씨에게,p.107.

141) W. Ronald D. Fairbairn, "The repression and the return of bad object(with special referecce to the 'war neuroses') (194

         3)",pp.65~67.

 

 

 

이용도는 요한복음을 즐겨 읽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요한의 영지사상은 대상인 그리스도와 주체인 자신이 일치되는 사랑을 지향한다. 이렇게 내면화된 이상적 대상은 반리비도적 자아와 함께 자신을 책벌하는 엄격한 초자아의 특징을 가진다.

    이로 인해 이용도는 이후 발달하는 그리스도 케리그마 상에 의한 수정이 없이 원시적 그리스도의 고난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수정되지 않은 초자아는 이용도를 십자가의 고난으로 몰고 간다. 이용도 자신은 늘 죄인이어야 하고 통회와 회개를 하여야 한다. 현실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상화는 이용도 자신에게 현실적 만족을 줄 수 없다. 예수의 십자가우리는 문자적으로 결코 동일시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일시하려는 리비도적 갈망은 영광, 편안함, 즐거움, 명예 등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아직은 그것들을 인격과 신앙의 일부로 통합할 좋은 내적 대상이 내면화되지 못했기에 도덕적 방어는 그의 십자가 신비주의를 공고화하고 있다.



7. 결      론


 이용도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이디푸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아버지로부터 박해당하는 엄마로 돌아감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1차적 동일시를 이루었다. 둘째, 흥분시키는 대상이 된 어머니에 대한 리비도적 자아의 리비도 집중현상이 만족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고난 추구 형태로 나타났다. 셋째,  아버지로부터 내면화된 거절하는 대상에 대한 반리비도적 자아의 리비도 집중은 십자가 신비주의 이면에 있는 공격성과 분노의 원인이다. 넷째, 중심자아의 기능 축소로 인한 3중 대상/자아의 지나친 분열은 엄격한 초자아를 형성하여 극단을 추구하는 방식을 택한다. 다섯째, 지나치게 이상화된 그리스도의 사랑은  현실화 과정 성취하지 못했다. 여섯째, 도덕적 보상이란 방어기제는 죄의 회개와 통회의 부흥회를 유발하고 십자가 신비주의를 공고히 하였다.

    전술한 정신구조는 생애 시기마다 리비도의 방향성과 집중 정도를 다르게 한다. 이것 때문에 이용도 신비주의는 각 시기별 다음과 같은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한다. 첫째, 생애 초기부터 사춘기 이전 잠재기 까지를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시기라고 한다. 이때는 징후만 보일 뿐 뚜렷한 신앙의 형태가 표현되지 않는다. 둘째, 사춘기로부터 목회초기 승마체험 이전 단계까지를‘십자기 신비주의의 내면화’라고 한다. 이 시기의 리비도는 주로 거절하는 대상에 대한 공격성으로 투사된다. 독립투사와 이지적이고 논쟁적인 신학생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리고 십자가 신비주의로 대변되는 우울한 정서는 억압된다. 셋째, 목회 초기 승마체험부터 이단 연루설에 휘말리기 이전까지를 ‘십자가 신비주의의 외면화’라고 한다. 이 시기 리비도는 흥분시키는 대상인 십자가 고난에 집중되고 있다. 퇴행을 통한 고통스러운 고난의 행진, 그리고 좋은 대상 경험을 통한 통합의 여정이다. 넷째, 무차별 사랑을 선언하는 시기부터 서거까지를 ‘십자가 신비주의에서 사랑의 신비주의로 전환’이라 한다. 이 시기에 리비도는 이상화 대상에 집중하고 현실에도 투여되는 통합의 단서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임종이라는 특별한 생애 주기로 들어섬으로 다시 이상화의 영역에 머무르려는 징조들이 발견된다.

    결국 이용도 십자가 신비주의 형태의 변화는 내적 대상에 대한 리비도의 방향성과 양으로 설명될 수 있다. 논고는 순수 정신분석적 연구이지만, 그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영적인 측면과 상호 연관성이 있음이 발견됨으로 신학과 심리학의 칼케톤 기독론 모형의 임상적 적용을 반영하고 있다. 영성심리치료사는 두 개의 언어에 익숙해야 내담자에게 구원과 치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한편 본 연구의 단점은 페어베언 이론의 한계를 들 수 있다. 그는 정신구조를 방어적으로 형성된 분열이라는 단일 구조로 봄으로 좋은 내적 대상이 가지는 긍정적 기능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내면화된 대상 세계를 보다 의식화하고 그 성격을 명료화하기 위해서는 내담자의 자유연상이 필수적이지만, 본 연구는 문헌 연구라는 한계를 가진다. 원자료 인용도 주로 변종호 편저 문헌에 의존함으로 편저자의 편집의도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밝힌다. 그러나 시 한편으로도 시도하는 정신분석적 심리생애사 연구의 특징을 감안할 때 이용도의 자료는 방대하다. 정신분석은 주로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으로 편집의도가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정신구조의 형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은 심리생애를 연구하는 정설로 자리매김 해 왔다.142) 그러나 이외에도 생애 발달 단계에 따른 발달 심리학적 관점, 개인 생애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나 행동의 원인을 외부에서 탐구하는 사회 심리학적 관점, 성격 심리학적 연구는 이용도 생애를 이해하는 또 다른 심리학적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용도 부흥회의 절정과  좌절은 폐병 말기라는 그의 질병과 함께 진행 되었기에 생물학적 조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생애말기에 나쁜 내적 대상이 축출되면서 자아는 이상화된 대상으로 회귀하고 현실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조짐은 임종에 따른 정신분석적 변화의 어떤 측면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향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142) William Mckinley Runyan, Life histories and psychobiography(New Yor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pp. 21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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