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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목사 107회 탄신기념 연구논문 발표회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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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10-13 11:34 조회2,2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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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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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과정에 대한

대상관계 정신분석”에 대한 논찬


 

 

 

이상윤 목사(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총무)



    시무언 이용도 목사 탄신 107년을 기념하여 이용도 목사 기념사업회가 논문발표회를 갖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일백년 하고 30년에 육박하는 한국교회에는 1901년생들이 활동력있게 교회와 사회를 섬겼는데 함석헌 선생과 김재준 목사와 더불어 감리교에는 이용도목사가 있습니다. 기대하기는 이용도 목사 기념사업회는 이용도 목사 연구 분야에서 더욱 활발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이용도 목사와 관련된 연구정보를 적절히 제공하고 연구목록을 만들고 관련 학자들을 소개하고 연구발표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신예학자들이 출현하여 이용도 영성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활동의 장을 제공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공동체적인 조직적 연구 활동이 따라오고 연구업적은 공개적으로 전파하고 이용도 목사 기념사업회가 있음을 알리고 교회를 조직하여 기념사업회는 조직적 활동을 지원해주는 일들을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두 번째 발표 논문에 대한 논평을 하는 사람으로 참가하게 되어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주지하시다 시피 이용도 목사연구에는 여러 다양한 배경들이 많습니다. 1960년대 기상에서 편집 일을 보시던 유동식 교수가 이용도 목사의 회상기라는 제목으로 30년대의 묻혀졌던 이야기를 오랜 침묵 끝에 내놓았습니다. 1970년대 초 연세대 신과대의 역사교수인 민경배 선생이 김인서 목사의 ‘신앙생활’ 지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별 내용은 아닌 듯싶은 이 논문에서 감리교 입장에서는 거북한 장로교적인 관점이 강하게 드러나 이용도 목사 행적을 이단에 가깝게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학자들이 직접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이 더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1930년대의 암울했던 일제강점하의 한국교회에서 아주 짧고 굵게 살단 간 이용도목사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이단 사이비 곧 신흥종교적인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감리교의 이용도목사 연구 활동은 돌아가신 분을 욕되게 할 수 없고 그분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고 되묻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한복판에서 기도하고 설교하고 헌신하고 살다간 가난한 영성의 비밀스러운 내면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문제의식은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신학적 성찰이 가해지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1930년대 당시로서는 기성교회에 비판적이고 선교사들의 행적에 공식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설교하고 기성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강한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이용도목사는 마침내 장로교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감리교에서도 교역자회의에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생활비를 끊어버렸습니다. 이단 신흥종교의 거두처럼 내몰려 가면서 주님임재를 체험하고 성령대망을 강조하는 이단세력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이용도목사를 중심으로 예수교회가 창립되고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신흥종교의 교주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예수처럼 머리를 기로고 설교하던 배재 학당 출신의 황국주가 있었고 그리고 예수교회에 주변부에서 어린양 혼인잔치를 한다고 하면서 여성들과 어울려다 니고 주님임재 은사를 주도적으로 행사하던 연전 출신 한준명도 있었습니다. 훗날 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피가름으로 발전하고 통일교의 문선명과 천부교의 박태선 등이 실제로 강력한 활동력을 가지고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문선명 같은 경우는 흑석동 예수교회에 살면서 많은 은혜받으며 살았고 본명이 문용명이었던 그는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가서 평양을 중심으로 삼고 전도하기도 하였는데 결국은 피가름하는 비밀스런 행각이 발각되어 김일성 정부에 체포되어 흥남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흥남철수 작전 때 출옥하여 부산으로 탈출한 일도 있었습니다. 피가름은 원래 삼각산 기도운동을 하던 정득은 여인을 통해서 시발된 것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전후불문하는 생소하고도 괴이한 소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혼음 같은 행위로서 통일교 포교 때 많이 했고 요즘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조직을 확대하고 조직을 공고히 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특이한 의식으로 통일교에서는 믿고 있습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문선명 교주는 그런 면에서 이용도 계보에 들 수도 있습니다. 한때 변종호 목사는 이용도 계에 조용기 목사도 넣어 준적도 있었는데 그 당시 현황으로는 대략 17개 정도의 계보가 활동 중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문선명은 어린 소년 시절 이용도 목사에게서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그러나 감리교는 유면 부흥강사인 박재봉 목사가 계셨습니다. 수표교 조경우 목사도 계셨고 전도국 총무였던 조신일 목사도 활동하였으며 이환신 감독은 이용도 목사의 동생이나 다름 없었던 분이 4.19이후 감리교를 감독으로 섬겼습니다. 김광우 목사도 계십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감리교안에서 이용도 신앙과 감동에 힘입어 기도운동하고 부흥운동하면서 살았는데 예수교회 초대 선도감을 지내신 중앙신학의 이호빈 목사는 이용도 목사 연구와 이해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예수교회는 이용도 목사의 마지막 남겨진 자상의 공동체입니다. 지금은 예수교공의회라 해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목사도 내고 목회도 하는 교파교회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용도 신앙사상에 목숨 걸고 살았습니다. 그중에는 전후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적 사랑의 지극한 희생정신을 생생하게 증언하였던 '순애보'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작가였던 박계주 선생은 예수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초기 예수교회 기관지 ‘예수’지 편집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더랬습니다.

 

     이용도 목사 연구에 감리교가 공적으로 관심을 나타낸 것은 감신대의 학술지인 신학과 세계가 재 창간되면서부터입니다. 1978년에 나온 그해의 특집은 이용도 목사 연구논문으로 채웠습니다. 때는 늦었습니다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감리교 출신 연구자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그해의 특집호 덕분이었습니다. 늦었다고 할 때 시작하라는 명구처럼 그렇게 해서 감리교 연구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참 감사할 일입니다. 그때부터 감리교 뿐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가 이용도 목사 연구에 진입하려면 당시의 연구자료를 개봉하면서 시작하니까요. 저도 1984년 여름에 기상에 이용도 목사 관련 논문을 연재하였습니다. 지금생각해 보면 아주 부끄럽습니다. 습작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런저런 배경에서 감리교에서 석사하려는 많은 이들이 이용도 목사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붐까지는 몰라도 그런 형편이 됐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이제는 박사 학위논문이 나옵니다. 이때부터 이용도 목사에 관심있는 목사들이 이덕주 교수도 만나고 교문사 자료도 열람하고 대화도 합니다. 이용도 전집도 있고 변종호 목사도 알게되고 이용도 관련연구논문도 간간히 나왔습니다. 목회학 분야에서 처음 시작한 연구활동도 점차 확대되어서 Th.D나 Ph.D 학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어냐 하면 아직도 한국교회 일부 세력들은 이용도 목사 문제를 보는 시각이 신비주의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드니까 조금 앞서 나가는 해석을 하든지 하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가만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연구자들은 교회를 의식해서인지 이용도 목사의 최후의 8개월을 다루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특히 아가서 연구 같은 경우도 이호빈 목사 설교문이나 뒤적이고 맙니다. 이 분야 연구에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입니다만 아가서 연구도 그렇고 최후의 8개월도 아주 중요하더군요. 충격적인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 이단아니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내용이 심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심한 것이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오순절 성령운동의 관점에서 다시 성찰하고 목회 임상적으로 철저하게 분석 정리하는 주님임재도 연구해보고 실제 체험도하는 적극적인 접근방식이 도입되어 이를 소화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이비 이단 시비문제를 뛰어넘어 이용도 신비주의의 진 목면이 무엇이고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논구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 영성신학적 측면에서 연구도 진전시키고 글로벌한 선교신학의 범주 안에서 세계화된 여러 영성운동의 흐름도 함께 다루어 보면서 이것을 토대로 하여 이용도 목사가 절실하게 구하고 받아들이려했던 동방정교회의 신비주의 특히 시리아 오소독스 교회의 수도원 영성을 대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정교회의 초기 영성신학도 탐구하고 전체 정교회들의 신앙적 경향과 문제점도 지적하고 하면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신비체험내지는 신적체험은 구약의 나비임들이 경험했던 누미노제 체험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도 목사의 영성에는 동양적 신비주의의 대로가 열릴 수 있고 그것이 단순히 샤마니즘의 아류가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신학과 문화주의가 아닌가 하는 접점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번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디아의 복음전도자로 고행 길 같은 복음전도에 온 목숨을 걸고 살다 갔던 선다 싱의 신비주의 신앙과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고 상회비교연구도 가능하겠다 싶습니다. 아파시미 주교의 선다 싱이라든지 신비주의 연구서들은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주옥과 같은 성찰서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선다 싱 관련 박사학위 논문도 상당히 많고 특히 인디아 방갈룰루에 있는 연합신학대학원(UTC)에는 선다 싱 연구 목록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용도 목사의 영성의 중심에는 전체 지구촌의 그리스도 영성의 핵심들이 통전적으로 합류하고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신학의 꽃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용도 목사 연구가 대중적 영성에 뿌리 둔 기도운동으로서 기독교 신비주의 연구에서 출발하여 성령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층 젊고 유능하고 수준 높은 이들이 참여하는 연구운동도 진일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실제는 신비주의는 아무리해도 교회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정통신앙에서 자꾸 시비를 걸어요. 왜냐하면 주님 임재라는 신비체험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용도목사 운동은 일종의 내재적 신비체험이라고 하는 한계 안에 갇히지 않게 되고 나가서 자연친화적인 생명생태의 우주적 세계로 뻗어나갈 길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은 신앙체험의 한계 안에서 우기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것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것을 마귀 사단이 역사하는 거라고 우기면 집니다. 증명하라고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교리 신학적 입장에서는 이것이 애매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평생 소원이 이단의 멍에를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1982년 처녀부활 소동 때 장로교 통합 측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면서 시작된이단 관련 고난의 행군은 그로 하여금 국민일보 창간도 하고 이영훈 목사를 시켜서 세계신학연구원을 만들어서 삼박자 구원론과 성령신학도 논구하고 빈슨 사이난의 유면한 성령운동사인 ‘세계오순절성결운동의 역사’도 번역해 내고 하면서 기하성 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테두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활동을 벌렸습니다. 감리교신학자들도 여기에 많이 참가했습니다. 그렇게 신학적 지경 터를 넓히고 보니까 경쟁력도 생기고 실력도 무시 못해 결국은 예장 통합 측의 집요한 반대도 뚫고 나가서 타협하여 이단의 멍에를 벗었습니다. 이제는 NCC에도 가입하여 명실상부한 한국교회의 주류교회 행세를 하고 있고 앞으로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를 이끌고 WCC 활동에도 나갈 요량을 합니다. 그동안 감리교는 1970년대부터 통일교의 성청 성목회 등 초교파조직에 가입하여 돈도 지원받고 유착된 활동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다락방전도운동을 주도하였던 유광수 집단에 들어가 활동도 하는 목사들과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안양 수원 일대에서 신천지 산옮기기 작전에 휘말려서 피해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리교는 집안단속도 단속이지만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성령은사를 경험한 지도층이 없고 꿩잡는 게 매라고 여기 저기 뛰어 들면 다 되는 줄 아는 형편입니다. 사실 신비체험운동은 체험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경험한 본인이 스스로 기록물을 남기고 변명할 수 있는 자료나 관련증인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의 이단 사이비 추적에서 견디어 내지를 못합니다. 요즘은 그래도 감리교가 유고아수 다락방에 대한 지침도 내고 신천지 관련 자료도 내면서 이단사이비에 경고음을 발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과거 유럽의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교회내의 마녀사냥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마녀사냥에 대한 각성이 높아져서 여성주의적 관점도 통하고 하지만 과거 유럽사회에서는 마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민중신앙 관련자들이 가톨릭적인 판단에 의하여 토속신앙의 항목에 갇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교황청 이단심문소는 고문으로 유명합니다. 그것은 모두 이단사이비를 얼마나 잔혹하게 다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비체험에는 반드시 정확하고 분명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검증되어야만 하고 그런 토대위에 공교회로부터 공격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비결을 터득하게 됩니다. 종교개혁 후 그토록 많은 자유교파들이 생겨나고 재세례파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간것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용도 목사 영성운동과 관련하여 보면 이 만큼 관련문건이 많고 내용도 충실한 경우는 별로 없어요. 큰 축복이지요. 허나 우리는 변종호 목사의 연구에 치여 살면 안되요. 그게 문제의식이지요. 연구는 그분의 자료를 가지고 하되 아류를 벗어나려면 공부를 그만큼 많이 해서 용맹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른 연구자가 되어서 나중에 딴소리하기 쉬워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신학적 감수성이 뛰어나고 개방적이고 진취적인데 요즘은 생명 생태문제에 감리교가 드세게 등장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리교는 뜨거운 신앙체험과 차가운 이성적 신앙정통을 공동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은 상황화의 신학이고 방법론상으로는 성령충만의 해석학입니다. 그러니까 감리교 신학은 세계선교를 지향하고 글로벌한 시대상황에 맞게 신비체험을 포함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상황신학 안에서 수용하고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어려우니까 꿩잡는 게 매가 되어서 지성을 거부하고 감성에 대고 소리를 치는 겁니다. 두뇌활동을 거부하는 건데 그러니까 자연 교회 안에서는 대형교회 교주들이 난리를 치니까 더 죽이는 거죠. 감리교는 신학 자체가 장로교 같은 교리신조가 강한 집단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까 자연히 각자 성취적인 입장에 서서 포괄주의 다원주의 경향 안에 갇혀 있어요. 그래서 같은 교단 안에서 같은 대학 안에서 더 싸워요. 감리교는 높은 지성의 고뇌보다는 낮은 단계의 전도나 성령충만에 밀리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죠. 홀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내면 두루뭉수리로 만드는 특성이 있어요. 감리교 로지스틱스는 체험을 바탕으로 이성과 성경과 전통이 속속들이 한데 묶여서 정리되어야하는 내재적 배경이 숨어 있습니다. 이게 앞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의 과제입니다. 거기다 리더쉽의 부재입니다. 이게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유독히 많은 게 감리교입니다. 한 예를 들까요. 교단 안에서는 에큐메니칼한데 나가서는 에큐메니칼하지 못해. 그곳은 우선 사상적 좌표가 분명하고 자신감이 있고 에큐메니칼 해석학의 조류에 민감해야 되요. 그런 연후에 언어에도 능하지 못하니까 이것을 에큐메니칼 의제로 연결지어 충분한 설명과 운동으로 펼쳐 보이지 못합니다. 참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학교 때부터 좀 신경을 써서 공부도 하고 인맥도 만들고 소위 말하는 네트워크를 철저하게 짜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해요. 개별화되기만 하고 개인주의만 키우다보니까 모두가 고립되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커서 한다고 하는데 리더쉽이 문제예요. 실력도 그렇고 통제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요. 감리교는 본질적으로 복음주의적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한 집단입니다. 거기에 에큐메니칼해요. 좋지요 그런데 그것이 다원적이고 포괄적 신앙을 지향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교단 안에서나 에큐메니칼 집단 내에서 외향적 리더쉽으로 폭발하지 못해요. 통합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고뇌하는 겁니다. 앞서서도 지적이 되었지만 여러 갈래가 초기 한국감리교회에 내재되어 있었어요. 그중에 이용도 목사줄기도 한 줄기로 자리 잡고 있는데 가만히 보면 탁사 최병헌 목사 다르고 전덕기 목사 다릅니다. 전덕기 목사 같은 인물은 초기 감리교를 민중 민족적인 신앙뿌리에다 두고 신간회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손정도 목사는 이것을 이어 북한의 김일성 주석까지 영향을 주었지요. 그런데 비하여 탁사 최병헌 목사의 기독교 세계주의의 경향성에 포괄적 신학사상을 지녔는데 이것은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정신의 원류쯤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 지성주의적 전통도 옥스포드 캠브리지에서 왔어요. 에모리대학교도 아주 좋지요. 듀크대는 어떻습니다. 벤더빌트대도 좋은 학교지요. 그런데 이런 공부를 해가지고 와서 서울에 오면 다 무너지는 거예요. 그것이 훗날 세월이 가면서 하향 평준화되어서 힘을 잃었어요. 이유는 교회정치이고 인물난 때문이지 뭡니까. 감리교 신학의 전형적인 흐름을 이루었지만 에큐메니칼한 자유주의가 교회와 합류하는데 장애가 많았습니다. 그게 정경옥 목사예요. 훗날 호남에 내려가서 감리교적이기보다는 YMCA에 합류했지요. 독립운동 다음에는 사회주의고 사회주의 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까 공산주의가 왔지요. 감리교에 공산주의가 깊이 침투된 것이 초기 이용도 목사의 강동에서의 중생체험과 관련이 있어요. 중반기에 이용도 목사가 갈등하는 것은 미국유학이었습니다. 장로교 송창근을 미국 보낸 이목사가 미국 못갈 리 없었어요. 하지만 돈도 없고 건강도 여의치 못하고 가정도 있고 해서 포기하게 되지요. 그리고 나서는 폐결핵과 대결하면서 교회부흥운동의 압박을 받으면서 변한 겁니다. 바짝 조여서 기도하면서 산기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전향이 아니라 전환이지요. 1930년대에는 마침내 조선의 두 감리교회가 회동하여 미합중국 감리교보다 먼저 통합하지요. 그때 통합되는 한국감리교회의 양주삼을 내지만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비극 상황에서 감리교는친일과 친미 사이에서 지도부가 무너지지요. 정춘수가 대표적으로 그렇고 양주삼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사이에 반짝하고 지나간 것이 이용도의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입니다. 말만 감리교 목사지 1930년대 세기말적인 시대상황과 조우하는 한국교회의 아들입니다. 시리아의 신비주의 신앙가인 수도자 시메온(Simeon)을 본 따서 기독교 교육에도 적용해보고 우선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보고 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스스로 시무언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용도는 저 유명한 동방기독교의 영성과 지신을 일치시키고 여기에서 기독교 신비주의를 실제 생활에서 오고 거대한 시리아 문명의 흐름 속에서 세계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우주적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아직은 실생활에 육화되자면 시간이 더 걸리지요. 고난으로 가난으로 환난과 신고로 고된 육신을 무너져 내리고 사랑하는 이들은 하나둘 곁을 떠나가고 순전한 사랑 순수한 순애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피터스 선교사도 없었습니다. 10월 초 초겨울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세상을 뜹니다. 한 많은 이 세상을 뜬 거지요. 순진한 교회 개혁적 메시지를 들고 기독교 신비주의에 몸을 의탁하고 선교사들을 맹공하고 기성교회의 영적 어리석음을 괴로워하면서 무지와 무능에서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라고 외치고 주장하고 강조하고 가르치고 하다가 현실이라는 조직 앞에 무너지지요.

    이용도 목사는 감리교에서 전도부인 아들로 태어나서 선교사 학교를 나오고 감옥갔다 와서 협성신학교로 가서 공부했지요. 감리교 사람이지요. 이러한 초기 성장 배경에는 감리교 선교사들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교권주의 체계 아래에서 성장한 이용도 목사였지만 새로운 시대 민족의식을 가지면서부터 사회주의로 공산주의로 사상적 경향성에 도전받으면서 성장하여 마침내 민중 신앙적 십자가 신비주의에 도달하였습니다. 그의 신앙 형태는 산기도에 중심을 둔 영성개발에 있습니다. 교회부흥에 목숨을 걸되 철저히 반식민지주의적 각성과 비전을 가지고 자주적인 민족의식과 거룩한 새교회의 비전이 맞아서 예수교회를 터 닦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용도 목사의 성령운동은 기성교회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된장 기독교가 버터냄새 나는 기독교에 대응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산기도 방언기도 환상 예언기도도 발전하였고 이런 토속적 신비신앙은 오순절 신앙이 오기 전까지는 신비주의 이름으로 존재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못 배우고 힘없는 민중들이 신앙으로 무장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민중적 신앙과 신앙 정신이 깃들어 있는 교회조직과 신앙둥지를 가지고 알을 품고 새끼를 낳아야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민중과 더불어 함께 가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이용도 목사는 다시 태어납니다.

 

    1998년 10월 28일 인천 숭의교회에서 모인 제 23회 감리교 총회에서는 새삼스럽게 이용도 목사의 교리 신학적 문제를 해석하여 그에게 내려졌던 이단의 멍에를 깨버리고 복권하기로 공식적으로 결의했였습니다. 물론 변 홍교수 문제는 미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을해 이번 연회에서 김홍도 목사는 은퇴합니다. 변 홍교수의 복권만이 문제가 아니지요. 이제는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박해받았던 신앙세계가 회복되고 21세기 세계화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감리교회의 다원적 복음주의 신학 세계에도 주님이 흘리셨던 십자가 피를 수혈하고 교회를 새롭게 할 거룩한 희생이 일어날 시기가 도래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용도 목사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일하시는 김종순 목사는 한국기독교신학연구소의 이사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1998년 제 23차 총회에 건의한 문건에 대표 서명자이기도 한 김종순 목사와 13명의 목사들은 이용도 목사 복권을 실현시켰는데 앞으로 새롭게 밝아오는 복음 선포의 새 시대를 맞아 감리교회의 의식을 새롭게 하고 신학적 자유를 회복하는 날이 밝아 올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감리교는 더욱 더 정진하여 오순절 은사운동의 컨텍스트에 맞추어서 글로벌한 상황에서 세계어로 언어를 바꾸어 전하고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조직화해야 하겠습니다. 세계적인 흐름에도 맞는 성령은사와 은혜체험을 시도하여 이단의 족쇄에서 풀려난 신앙정신을 가지고 교회개혁을 이루고 영적 도전에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를 청산하고 디지털 혁명기에 진입하면서 모든 것이 퓨전화하는 전환기에 와 있습니다. 정보의 전산화는 삶의 스타일의 동시성을 구현하였고 자동차다 주택이다 관광이다 재테크다 하면서 엄청난 폭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감리교는 교회의 영적 분위기가 장로교 같기도 하고 순복음 같기도 하고 성결교 같기도 합니다. 딱히 지정하여 배울 장점 대신에 기존의 감리교적 강점을 토대로 삼아 복합적인 새 조합을 이루어 새로운 글로벌 신앙특성을 지녀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감리교의 정체성은 글로벌한 복음주의 세계선교에 맞는 영성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 실용주의와 목회적 실용주의가 결합하여 만드는 봉사자들의 공동체가 감리교입니다. 나눔과 섬김 곧 디아코니아 공동체를 이룩하게 됩니다. 기가 막히지요. 이게 감리교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중간집단이고 에큐메니칼적은 개방성을 내재하고 있는 지성적인 공간에 감리교가 존재합니다.

    에큐메니칼한 엘리트들이 가득 채워지고 기도하는 영성의 공동체가 감리교 명품신앙입니다. 시대와 씨름하고 세기적인 문제의식으로 대결을 벌리고 지성과 영성이 겸비하고 사회적 비전과 리더쉽을 행사하는 존경받는 시대의 이정표가 됩시다. 감리교의 영적 유산을 되찾고 영적 권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리교 정체성이 가장 큰 시련이자 스티그마인 1992년 변 홍 교수 이단정죄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 사태 이후 감리교는 복음적 우파를 자처하는 신학적 신앙적 사이비들이 판을 치게 되었고 신학적 자기정체성의 위기에 노출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합니다. 감리교 신학있어? 정말있어요? 여러분. 교단산하 신학교육 기관은 3개나 있고 신학원도 있지만 제대로 된 신학은 가르치지 못하죠. 그러니까 목회자 양산체제에서 문제의식이 부재한 이들이 나와서 혼란은 더욱 가중시킵니다. 사상적 좌표를 다시 설정하고 제대로 된 기도 한번하고 성경 능통하게 읽고 세계화와 함께 가는 생명 생태 평화의 새파라다임을 입고 선교도 목회도 사회정의도 생태문제도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책조정하고 대안적 세계에 눈을 돌리고 권력지향적인 엘리트답게 명품교단을 만듭시다. 교회를 오늘날 놀랄 만큼 거대해진 교회들을 감동감화 시킬만한 유능한 설교자와 유능한 행정 지도자를 배출하고 글로벌 시대를 대응할만한 새로운 목회자들을 배출하여 가난의 영성으로 교회를 감동시키고 봉사자로 그것도 전문봉사자로 현장에서 꿀리지 않을만큼의 소양을 가진 창조적인 신학과 설교를 행하는 실력있는 교회지도자를 배출합시다.

 

    오늘 박성만 목사님이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정신분석학자이자 의사였던 페어베언(1889-1964)을 중심삼아 분석하는 연구를 한 것입니다. 페어베언은 1941년 정신병과 정신신경증에 관한 새로운 병리학적 접근법을 제안하면서 당시 프로이드 지배 정신분석학의 경향에서 벗어난 분석을 제시합니다. 런던대학교에서 신학공부도 했고 의과대학에서 정신분석 공부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고전적 리비도 이론에서 벗어나 리비도는 대상(Object)을 추구한다 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신분석학에 등장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종교를 정신분석적 방식으로 파악하여 신학적이면서도 병리적인 자유를 가능케 하는 길을 찾아 간 것이지요. 여기 있는 논문도 바로 그러한 페에베언의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자의 한 시도입니다. 종교 심리의 병리적 해석을 시도하면서 전이와 초월의 관계를 해석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판삼아 이용도 목사의 성장과정을 분석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상당히 꼼꼼하고 내용이 있습니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 정도면 아주 좋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실제적 상황을 얼마나 가까이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데 대한 대답을 줄만합니다. 우선 이 논문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먼저 이용도 목사 연구 관련해서 나와 있는 문건에 아주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구체적으로 피터스 목사의 기념비적 작품인 조선의 신비적 신앙가 이용도의 중요 내용에 자료들을 쉽고 정확하게 인용하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숙사에서 남들은 다 밥을 먹고 있는데 깊은 겨울 김장김치를 먹고 깍두기를 먹고 있는 기숙사생들 틈에서 맘고생 죽도록 하는 가난한 신학생이 바로 이용도였습니다. 이러한 참상을 간직하고 성장한 사람이 영성의 인물로 등장합니다. 기적인가요. 아니지요. 애통하고 절박한 삶의 고뇌를 가득안고 있던 이 사람 이용도가 가난의 영성을 깨우치고 구원의 세계를 향해 나섭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게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이용도 목사 문제는 너무 굶은데 있습니다. 그것이 우울증을 유발했고 세기말적인 질병인 폐결핵을 가져오지요. 개인적으로 너무 안 되었어요. 십자가 십자가 하는데 아니예요. 가난이 먼접니다. 거기에서 식민지적 고뇌와 길고 긴 고통이 숨어 있습니다. 우울증도 그런 결과지요. 고독한 가난 그것이 이용도 목사의 인생을 굴곡지게 만든 원인입니다. 이 논문에서 지적하는 가난의 문제는 이용도 목사가 부흥사가 되어 충북 영동을 갔는데 거기서 거지 아이 최억성이를 만납니다. 거기에서 최억성과 이용도 목사와의 관계를 잘 분석했습니다. 칭찬할 만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용도 목사의 신앙적 다이나믹스는 가난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용도 연구경향은 연구방법론에 집착한 나머지 이용도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보다는 이용도 해석학에 매달려서 과장된 분석을 시도한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기하는 문제는 아가서 연구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비주의 연구의 길라잡이 같은 위치에 있는 문제입니다. 예수 신랑께 대한 성도들의 신부가 같는 사랑의 헌신을 다룬 것으로서 신비주의 신앙의 입문서입니다. 이호빈 목사가 용정 집회에서 시작하여 평생 아가 아가 한 것도 다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아가서 연구 자료는 전적으로 이호빈 목사의 문헌에만 있지만 사실은 이명직 성경주석서에 고스란히 있습니다. 우리쪽에서 찾지를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신비주의자들의 내면에는 신부 콤플렉스가 깃들어 있습니다. 전적인 사랑의 헌신이 숨어 있습니다. 아주 흥미롭고 연구해 볼만한 심층심리학 연구의 단초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해도 이용도 목사 자신의 본 얼굴을 복원시킬 수 없다는데서 한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의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이용도 목사의 삶의 상황을 얼마나 깊이있게 본질을 무엇이며 내용을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문제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상황파악과 상상력이 동원될 것인가 하는 점과 이에 맞추어서 어떻게 기준을 설정하여 소화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마치도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젖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연구결과를 의식하면 실상에 근접하기가 어렵지만 실제로 가난하고 깊이 절망하고 좌절해본 연구자라면 능히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이용도 목사를 대하는 동안 이미수차례 내면화의 몰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영웅담에 빠져들면서 인간 이용도와 목사 이용도 사이를 구분짓고 정리하는 한편 우리 시대의 구원을 위한 대안으로서 기독교 영성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저는 이용도 연구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마지막 8개월 해석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자료도 그렇고 스캔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예측불허의 위험지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피터스 선교사의 재정지원이 끊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서대문 현저동에서 사직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사모님은 가난도 가난이지만 소홀한 신랑이 싫어서 자주 가출을 시도했군요. 사람들은 날마다 난리를 치고 이제부터는 감리교 사람들 말고 장로교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식객들도 만만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도 목사는 주님임재를 체험합니다. 원산 광석산 기도원은 그런 피난처지요. 성령이 지시하는대로만 말하고 설교하고 예언하기로 작정합니다. 이용도 목사 자신은 이때 받은 은혜로 목회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을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역은 오늘날도 교회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황께서 귀신축사 사역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것처럼요. 예언기도는 개인적 권면입니다. 나라걱정도 물론 하지만요. 개인적인 강점을 지적하는 것 보다는 약점이나 모자란 점을 가지고 깊이 심령적 수술을 가하는 겁니다. 약간은 위험하겠지요. 그러나 여기에 빠지면 헤어나오지를 못해요. 중독성이 강합니다. 특히 여성들은 한방에 가버려요. 그때에는 유명화보다도 한준명이 셌습니다. 어린양 혼인잔치를 하자는 거였으니까. 개인별 약점도 환하게 알고 그리고는 기도를 통해서 누구는 누구와 결혼하고 누구는 누구와 맞는다고 예언하면서 접근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직의 금기사항인 여성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지요. 이쯤되면 이미 기성교회에서는 손을 드는 것인데 선을 넘어갔습니다. 혼인잔치를 하고 가정이 깨졌습니다. 예언사역이 이렇게 무서웠습니다. 더군다나 예언기도는 개인적인 권면이 세고 대신해서 카리스마에게 복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예언행위는 훗날 데몬스트레이션으로 표출되는데 이것도 행동에는 지령이 내립니다. 합의가 아니예요. 그많은 데몬스트레이션을 합의로 수행할 수 있어요. 어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예민한 사안을 본인합의도 거치지 않은 채 하려니까 부작용이 따릅니다. 외향적인 문제든 내면적인 문제든 강제성이 개입되면 그러면 조직은 깨집니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당시 상황을 잘 모릅니다. 자료도 없구요. 증언할 인물들도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정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정도지요. 사실 복원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미진사항에 관하여는 미루어 짐작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측근들은 돌아가신 목사님이 부활하지 않나 하고 기다리면서 장례도 미루었습니다. 광신이 빚은 결과였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이용도 목사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이렇게 아주 야멸차고 무섭게 그와 그의 동료들을 덮쳤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주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임재가 문제되는 것은 단지 주님임재 현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주도하는 기도자 곧 지도자의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균형잡힌 신앙공동체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여자문제도 그렇고 이것이 조직 내부의 갈등의 원인도 된다는 점입니다. 카리스마 지도자를 통해서 장악된 조직은 결국은 최후를 같이 할 때까지 끝을 보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유명화와 한준명과 황국주를 통하여 주님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말도 듣지 않는 고집스런 성격의 소유자로서 상대를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각자 다 지도자이고 카리스마였기 때문에 협력하고 타협할 줄을 모르는 외골수들로서 결국은 파탄이나고 맙니다.

 

    피터스 목사의 자료에 보면 이 시기에 피터스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 있었습니다. 피터스 목사는 이용도 목사 사건이 마무리 된 후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용도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피터스의 추억속에 남아 있는 살아있는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성탄절을 러시아 교회 식으로 셈하고 있다든지 영국 어빙파들의 방언은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기도원 식구들과 하고 있다든지 하는 사이에 세상교회들은 그를 이단으로 몰았고 현실교회 지도자들은 싸움의 화를 피하여 제 3의 지대로 이미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습니다. 너무나 빨리 찾아온 절망스런 상황이었지요. 주님임재는 오늘날도 여전합니다. 주님이 교회에게 하고 싶은 말씀과 가르침을 직접 내려준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런 실제적 임사체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애절한 삶의 체험이 강하고 자기희생이 있는 증거자가 아니면 실행에 옮길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에고(Ego)가 강하고 이기적인 인물들은 먼저 주님임재 체험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방언 못하는 이들도 잘 보면 의지하는 바탕이 남다릅니다. 강한거죠. 에고가 강하니까 의지를 개방을 못합니다. 차가운 성질의 사람들이지요. 다른 이들과 잘 섞이지를 못하고 외돌고 그러다가 성령은사를 받습니다. 묘하지요.

 

    1992년 10월 말 휴거소동 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 때에도 서울 시내유명목사들은 부화뇌동하여 휴거메시지를 발했습니다. 영적으로 유아적인 인사 3만여명이 흔들려서 교회를 떠나 휴거를 대망했습니다. 물론, 결혼도 깨지고 공동생활도 마침내 깨지고 뿔뿔히 홑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용도 목사의 경우는 다릅니다. 1980년대 이후 고속성장을 시작한 한국교회가 영성의 발전소를 찾다가 이용도 목사를 붙들었습니다. 당시 교회 현실이 강력한 영성적 추진력이었습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교회성장의 선구적 영성으로서 이용도 목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은사의 열기를 고대하면서 이용도 목사 연구에 빠졌습니다.

    대중적 영성으로 이해되는 이용도 목사 발굴 작업에서 기대를 걸었던 것은 정작 이용도 리바이벌이 아니고 심층심리학의 분석적 접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목회심리적 치유 가능성으로서 이용도 목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용도 영성을 체득하는 것 대신 심리 대상으로서의 이용도를 분석하고 이해하자는 것인데 제가 보기는 이용도 목사의 본 모습은 연구보다는 실행 곧 기도를 생활화하고 가난을 함께 하며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조직화하고 하는 일이 우선하는 듯 싶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심화된 단계에서 기도하고 은사받고 정진하는 가운데 연구도 하고 문건도 해석하고 전파도 하는 방식이 더 나은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용도 목사의 영적 줄기는 아직도 다 파먹지를 못합니다. 거대하죠. 애절하고 기가 막힙니다. 고생이 훤하지요. 그러나 그런 고난의 행군을 통해서 얻는 기쁨은 더 큰 것 아닌가요. 왜냐하면 그는 너무 힘겨운 인생의 슬픔을 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의 비전과 꿈과 계시와 능력과 은사와 사랑은 너무나 귀하고 크고 깊어서 그렇습니다. 일전에 피터스 선교사로부터 받은 영문편지를 제가 가지고 강연을 해봤는데 피터스 자신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피력하였습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용도 목사가 지금 여기 말없이 다가오고 있다. 숨결이 느껴지고 조용조용 나누는 말소리가 내 심령에 오고 있다는 표현을 했더군요. 과거 시제로 쓰지 않고 단순과거 시제로 글을 썼습디다. 신기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이용도 영성은 아직도 숨결 치듯 현재화하고 또한 그렇게 현재화 할 수 있는 영신적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성락침례교회의 김기동 목사는 시무언 노릇을 하면서 교회 성장에 엄청난 대기록들을 한국교회에 세웠습니다. 귀신축사도 엄청나게 실행을 했지요. 물론 이단문제로 말미암아 시달릴 대로 시달렸습니다. 마침내 교단을 만들어서 나갔지요. 분란도 겪을만큼 겪었습니다. 김기동 목사의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나온 이들은 김삼환 목사를 포함하여 하용조 목사도 이태웅 목사도 나왔지요.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해요. 우리는 지나치게 감리교적인 것을 의식하다가 알맹이는 빼먹고 은사는 받지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이 그것도 성경본문의 소용돌이치는 살아있는 성령사역의 검이 필요합니다. 황금광맥을 찾는 오스트랄리안 광부처럼 깊이 숨어있는 영성의 광맥을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 눈치나 보다가 적당히 살다가 조용히소 멸당하고 맙니다. 따지고 보면 김기동 목사는 충남 예산에서 오경린 감독이 전도하여 예수 믿고 못 배웠기 때문에 서울로 뛰쳐 올라와 신학교 다니면서 목회하여 그렇게 된 거지. 적당하게 배우고 여유롭게 살았더라면 어림도 없을 인생이었습니다. 이제는 교주가 되었고 심하게 말하면 조직을 지키는 보스가 되어 변했지만 여전히 시무언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용도 목사의 짧은 생애가 우리에게는 걸림돌이지요. 요즘 같은 시대조건에서 가정도 돌보고 돈도 지니고 사람도 키우고 하는 여유가 전혀 없이 고독하게 장삼을 쓰고 고난 길을  가야만 하는 모진 운명에서 깊은 좌절을 경험합니다. 기성교회의 아성을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고 기성교회의 악다구니에 정신이 나가 이들의 거센 비판과 대립을 견디어 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교권구조인 기독교 조선 감리회나 대한 예수교 장로회 같은 주류교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강도권을 거부하고 불끄고 기도하는 집단으로 매도당하면서 쓰러졌던 것입니다. 아주 안타깝고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창열 한국일보 주필의 부친 김인서 목사의 신앙생활이라는 잡지에서도초기는 이용도 목사를 회유하여 함께하자고 할 정도로 문제의식에서 동질적이고 감동감화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장로교가 정죄하고 나서자 상황은 급변하여 결국은 김인서 목사에게 공격당하고 무너져냈지요. 그렇게 잡지는 않았었는데 말입니다. 평양은 당시 장로교 신앙의 한복판이었고 감리교에서는 황해도 출신을 잡아주질않 았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겨우 30세 남짓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찍하고 다녔으니 알 수가 있나 더군다나 교단 내에는 그럴 만한 인사도 없었지요. 그러는 중에 장로교 출신들이 대부분인 평양기도동지회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장로교 안에서 기도운동의 불길을 지피자고 했는데 이용도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교회에서 축출해 내자고 포기한 거죠. 이러한 초기 상황은 감정적이었고 교회의 대응방식도 내용적으로는 조악스러운 공세였는데 문제는 기도하고 주님임재를 체험하면서 접신녀 유명화에게 주님이라 고백하고 나온 이용도 목사를 그냥 놔둘 리 없지요. 여기에 흑마라고 부르던 입신과 영류문제에 깊이 간여되었던 한준명 목사가 있었으니 더욱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교주 황국주도 여기에 간여되었습니다. 그러니 평양시내 장로교들은 발끈했던 것입니다.

 

    이 연구논문 2 페이지에 보면 이용도 십자가 신비주의 형성과정을 페어베언 대상관계 정신분석 이론에 따라 분석한 것임을 밝힙니다. 페에베언이란 분은 분열적 성격에 대한 이론과 임상에 공헌한 정신분석가로서 리비도가 어느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적으로모아지고 있는 분열성 심리를 파악하는데 적합한 이론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그가 다양한 그리스도 케리그마 중 고난과 정서적 애착을 하였는지를 밝혀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감성적 부흥사로서 그 시대 교회부흥에 기여했는데 감성이 정신 구조에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건강한 신앙과 교회의 영적 쇄신에 기여할 수 있는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신앙인의 심리 생애사 연구를 통하여 기독교 심리치료 임상에서 영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어떻게 얽혀 있고 치료될 수 있는지를 분석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아주 좋은 관점이고 그 결실입니다. 정성을 기울인 분석서입니다. 이용도 목사의 임상보고서를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본회퍼 연구가 독일보다 성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와중에 박봉랑 교수의 본회퍼 연구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용도 목사 연구에는 아주 공들인 논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평소에 즐겨 읽은 죠셉 캠벨의 신화의 힘 122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참고가 되실 것 입니다. 예수가 승천했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내포된 의미로서 읽는다면 예수가 사실은 내면화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는 외계가 아닌 내계로 들어간 겁니다. 만물의 근원이 되는 의식 속으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으로 들어간 겁니다. 이미지는 외향적입니다만 그 본 뜻은 내향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역시 내면을 향함으로써 그의 승천을 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알파요 오메가인 우리의 바탕자리로의 되돌아 옴 육신의 껍질을 버리고 육신 자체의 역동적인 바탕자리로 되돌아 옴을 뜻하는 은유인 것입니다. 조금 더 읽어 볼까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혹시 고전적인 기독교 신앙체계의 전통적인 교리를 손상시키는 것이나 아닌지요? 상징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 독법은 산문의 독법이지 운문의 독법은 아니지요. 은유라는 것은 암시적 의미로 읽어야지 명시적 의미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이군요. 현실의 개념을 넘어서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라는 범주도 초월합니다. 신화가 바로 우리를 늘 이 지점에다 데려다놓고는 합니다. 신화는 우리에게 그 신비 그 신비가 바로 우리들 자체입니다. 이것에 이르는 사다리를 마련해줍니다. 세익스피어는 예술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자연은 곧 우리의 본성이고 신화에 등장하는 멋진 시적 이미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반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외부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고 이 이미지를 읽으면서도 이것을 우리들 자신과 관련시키지 못하면 이미지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것이지요. 내면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와 구조와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 외계는 우리가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 외면의 세계와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 노발리스가 말했듯이 영혼의 자리는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접근의 궁극적 목적은 주님처럼 살다 가는 것이겠지요. 그것도 연구대상으로서 말고 삶의 동반자로서 말입니다.

 

    오순절 이야기만 하고 끝을 맺겠습니다. 1907년 미국 아주사거리에서 비롯된 현대적 오순절 성결운동의 결과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주님임재를 대망하는 이들은 4억 8천만이넘습니다. 지난 해 케냐 나이로비 레무르에서 모인 에큐메니칼 운동과 오순절 성령운동 출신자 240명 은세계교회협의회와 글로벌 크리스찬 포럼을 결성하여 4차례 만났고 앞으로도 꾸준히 만나자고 결의한 바 있습니다. 이는 1998년 아프리카 짐바웨에서 모인 제8차 총회의 의제로 개시된 WCC와 오순절 대화 모임위원회가 전후 7년에 걸쳐 연구모임을 갖었는데 이것이 원래부터 WCC가 주장하던 글로벌한 세계 상황에서 기독교 세계화 포럼을 구축하자는 목표를 성취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촌 문제는 정의 평화 생명생태 만큼 영성적 일치를 이루기 위한 전세계적인 기독교 네트워크 구축입니다. 과거 냉전시대 WCC가 주도했던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화만큼중 요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9.11 이후 세계는 지금 무슬림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WCC는 세계에큐메니칼 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대화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여기에서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기독교 파라다임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기독교 과학주의 대화라는 맥락에서 비롯된 대화 정신이 면면히 이어 내려온 WCC가 21세기 기독교에 던지는 신학적 선교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1960년대의 기독교-공산주의와의 대화 기독교 타종교와의 대화 기독교 이슬람 대화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상호이해와 포괄적인 성취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서로 상반된 세계의 고난에 기초하되 지구라는 한 별에서 출발한 문명의 빛을 서로가 이해하고 화해하고 뜨겁게 안아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지구촌 전체의 과제로서 지극히 당연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제 기독교 문명의 이니시어티브는 과거의 식민지 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고 지구촌 전체의 인간 구원과 해방을 향한 기독교적 실천방안과 통합 프로그램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이 묻어 있습니다. 그것이 이제 지구촌 기독교의 영향력이 과거 서구 유럽 중심에 벗어나 제 3세계 기독교로 그 거대한 축이 옮겨가고 있다는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North에서 South로 파라다임이 전환되었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입니다. 이처럼 세계 기독교를 바라보는 파라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사역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사회정치 문화에서 민중중심의 자주적이고 생태 생명적인 파라다임으로 전환을 기대하는 시대적 조류를 수용하자는 의지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용도 목사 연구란 바로 이 점에서 영혼구원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말만 그렇게 하고는 교회 내에서 교주들의 인권유린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일종의 역류현상을 해소하고 교회내부의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고 시대의 징조인 황금만능주의 물신사상이라는 제국주의 패권주의의 뒤편에 숨어있는 제국주의에대 항하는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국의 지배질서에 대항하는 전투적 영성으로서 현재적 지배가치관을 뒤집어 생명 생태 자연친화적 우주사상과 합류하는 생명사상에서 성령의 은사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전파하는 시대상을 반영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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