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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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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10-27 20:29 조회2,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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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자세를

새롭게 하는 한 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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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丁亥年 아침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섬기시는 교회의 부흥과 가정에 주님의 의와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시편 90장 12절 모세의 기도에“ 우리에게 우리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구절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짧은지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신약성경 엡5:15-18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성령의 충만을 받으라”하고 종말의 때를 사는 우리들에게 영적인 메시지를 주고있습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벧전4:7-11 에서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귀중한 영적 삶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

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

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하고 누가 봉사하려

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만물의마지막때,이것은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앙 사건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의 신앙자세를 새롭게 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첫째로,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차리라, 근신하라, 기도하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단어입니다. 핵심은 기도하라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정신차리고 근신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의식과 마음과 몸을 깨워 하나님 앞에(CoramDeo) 세워야 합니다. 금년에는 맑은 정신으로 교회와 나라와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로, 무엇보다 열심히사랑하라.

 

 딤후 3장에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의 시대상과 인간상을 예리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이 식어지고 사랑이 메말라가는 냉정하고 비정한 사람의 심령상태를 묘사했습니다. 금년에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회복하여 열심히 성도들을 사랑하므로 용서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로,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

 

 나그네와 손을 대접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자자손손에게 계계승승하여 가르치는 가장 귀한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물질로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해 이웃을 대접하고 특히 어려운 이웃을 대접하는 것과 나누는 것, 섬기는 것은 우리 주님이 명령하신것 중 최고의 가치요 덕목입니다. 금년에는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만나 모든 환란과 심판에서 구원 받은 아브라함과 같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넷째로,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선한 청지기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청지기가 아니라 주인의 것을 소중하게 여겨 주인의 명예와 이익을 창줄해내는 일에 지혜를 짜내고 중성을 다하는 선한 일군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봉사해서 더 많은 시너지(Synergy) 효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복주심이 우리 모두의 사역과 교회위에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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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수 목사님이 보내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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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목사 내외와 김길송목사님께

 

 이 부족한 사람이 너무 넘치도록 사랑해주신 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주신 책 두 권을 잘 보았지요. 이호빈 목사님의 말씀이“ 그(이용도)는 양같이 순한 사람이지만 강단에서면 성난 사자와 같았습니다.” 과연 이용도 목사가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름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지만 혹 어떤 사람을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셨을 때는 사자와 같았습니다.

이용도목사가 미지근한 것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한복음 2장 17절) 이용도 목사는 그 말씀을 가끔 기억하셨습니다.

 나는 1933년 별안간 선교사 가족을 모시고 미국에 돌아오라는 선교부의 지시에 따라야 했기에 부득이 고생하시는 이용도 목사를 계속 도와 드릴 수 없게 된 것을 지금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목사의 형편을 말할 것 같으면 누가복음 9장 50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심정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 요한이 반대할 때, 예수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셨다. 이용도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하는 자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배척하지 못합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형님 용도... 오늘 주 예수의 품에 안겨 계시는 용도여!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오. 용도 형님이 이땅에서 고생하셨을 때에 이 부족한 동생은 완전한 사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나의 부족한 것을 다 용납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속히 천당에서 서로 반갑게 만나서 면대(面對)하여 말할 기회가 있을 터이니하여 말할 기회가 있을 터이니 형님을 본받아서 주님의 명하시는 대로 날마다 행하려고 결심합니다.

 

1996년 9월 12일

피도수드림

 

 

 

  

이용도 목사의 영성(빌 2:5-11)

 

 

 김흥기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들어가는 말

 

 

 나는 몇 년 전 이용도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이용도의 글들을 읽으면서 울었다. 눈물이 아니고는 읽을 수 없는 대목이 너무 많았다. 굳이 그렇게 눈물과 울음으로 그 논문을 쓰게된 이유를 밝힌다면 두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당한 그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는 면에서 많이 울었고,둘째는 그의 글들이 너무나 내 가슴과 영혼과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영적 절규였기 때문이다. 땀과 눈물과 피를 쏟으면서 온몸과 마음과 영으로써 외치는 일기와 서간문과시의 메시지들은 나의 영혼 깊은 곳에 많은 은혜와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치 그의 영이 다시 살아서 나의 영혼속에 지금도 말씀 하시는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 나는 오늘 설교에서 그의 영성을 눈물의 영성으로, 십자가 눈물의 영성, 사랑의 눈물의 영성으로 설명하고 싶다.

 

 A. 십자가 눈물의 영성

 

 이용도의 메시지가 힘있고 사람들을 변화시킨 중요한 원인은 루터처럼 십자가의 복음을 외침에 있었다. 그의 설교 대부분이 십자가의 고난을 묘사하는 드라마틱한 설교를 하였을 때 일제치하의 민족 수난속에서 아파하던 한국인의 심성을 위로하고 변화시켰던 것이다. 십자가를 통한 구속과 의롭다 하심의 케류그마가 1930년대의 한국교회를 뒤집어 놓았다. 3년간의 짧은 부흥운동기간 동안 수백명이 넘는 수많은 감리교와 장로교의 목사들을 만드는 역사가 일어났다. 1928년 11월10일 일기에 보면 다음과 같이 십자가를 묘사하고 있다.

 

예수의 모든 아름다운 성격은 그의 십자가에 모두 집중 되었습니다. 그 피에 모였습니다. 그것을 바라볼 때에, 그 신의 성품을 바라볼때에,우리는내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 죄의 성품과 정욕으로 짓는 죄를 끊어 버리게 됩니다. 그 후에는 성신이 늘 우리의 마음에 계십니다.1)

 

 십자가는 우리를 속죄시키고 거듭나게하고 성령이 내주하게 되는 구원의 중심임을 강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그 당시의 교회와 그 당시의 목사들은 십자가의 예수가 아니고 괴상한 예수,  육체적 영광과 부귀를 좋아하는 예수를 설교한다고 이용도는 비판한다. 참예수 곧 고난 받으시는 예수를 죽여버렸고, 참 예수가 오면 피살될 수 밖에 없다고 탄식한다. 

 

저희의 요구는 예수는 육의 예수,영(祭)의 예수,부의 예수,고(高)의 예수였고 예수의 예수는 영(靈)의 예수,천의 예수, 빈의 예수,비의 예수였나이다. 예수를 요구하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찾으라. 인의 예수, 너희가 세운 예수 말고. (1930. 1.20) 2)

 

 우리를 위해 그 살과 피를 모두 내어주신 십자가가 우리를 살리는 생명임을 이용도는 강하게 주장하였다.

 

저희들이 나의 살을 찢고 나의 피를 흘린 후가 아니면 안될 것이었음에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는당신의 살이요 당신의 피시오니 이 살을 찢어 저희에게 먹여 주시고 이 피를 흘려 저희들에게 마시게 하옵소서” 하셨던 것이다.……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우시고 피를 흘리우신 후에야 오순절 다락방에서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의 사람들이 되었다. 이제 저희는 예수의 피요 살이 되었느니라. 3) (예수 30호,1931년 6월 18일)

 

 이러한 십자가 신학에 근거하여 신앙 의인화(信仰義認化)를 강조한 루터의 구원론을 이용도 목사는  4단계의 신앙시대 중 제 3단계인 신앙 시대에 대해서 설명한다. 도를 닦고 선행을 실천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바울적, 루터적 진리를 이용도 목사는 따른다. 다음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루터적 해석을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 (롬1:17). 의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선생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학생이 배울 수 있고, 부부간에도 믿음이 있어야 가정을 이룬다. 의인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인 바 하나님을 믿음은 다른 모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하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또한 나를 믿게 되나니 내가 나를 믿지 않고 어찌살 수가 있겠는가!4)

 

 그리고 십자가 신학을 설교만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예수를 친히따르는 평생 고난과 가난의 삶을 몸소 실천하였다. 마치 십자가 신학만 외치고 십자가 신학적 고난과 형극의 길을 걸었던 루터와 같았다.  이용도는 제2의 루터였다. 이용도는 감리교단으로부터 목사직을 박탈 당하였을 때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불렀다: “ 이 땅에 마귀 꽉 차서 성도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싸워라 진리가 이기리로다.” 이러한 루터의 값비싼 은혜의 개념은 이용도에게도 살아나고 있다. 이용도도 찾은 인생의 길은 오직 예수에 미치는 것이요 예수가 가신 고난의 길을 따르는 것임을 그는 발견하였다. 자신의 신앙적 영적 완성은 오직 예수를 본받아 골고다의 언덕에 오르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이용도는 이해하였다.

 

 

1) 이용도,[시무언](이용도 목사 글 모음), (서울:다산글방, 1993), 47

2) 이용도,[시무언], 72.

3) 이용도,[시무언], 72.

4) 『일기』, 1927년 2월1일, 20

 

 

아! 나의 골고다는 가까웠는데 

그래도 아직 보이지 않누나

제사장의 무리여 나를 차거라

빌라도의 무리여 내게 채찍을 얹으라

그리하여 어서 속히 나로 하여금

나의 완성을 선언케 하라 <예수 22호>5)

 

B. 성화(聖化) 추구의 눈물의 영성

 

 이용도는 또한 너무나 웨슬리와 유사하다. 이용도는 웨슬리적 완전성화를 추구하며 산 사람이다. 명관조 목사가 보았듯이 완전성화를 이룬 성자라고까지 여겨진다. : “그는 참으로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꼭 그대로 걸어 나가신 분임을 분명히 믿는 나를 그를 불러 우리의 성자라고 명언 단언하는 바이다 “ 한국교회사에서 완전 성화를 이룬 사람은 주기철, 손양원, 그리고 이용도가 아니겠는가?” 웨슬리의 성화가 예수의 사랑가운데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처럼, 이용도에게 있어서도 영적 성장인 성화는 예수의 사랑으로 이루어짐을 말한다: “더욱 더 예수의 사랑을 아는 가운데 영의 성장이 있기를 바라노라” 웨슬리나 이용도는 영환의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한 사랑은 신앙의 단계를 넘어선다. 웨슬리는 회개는 종교의 현관(porch)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porch)이요, 성화 곡 사랑은 종교 자체(religion itself)라고 본다. 신앙의인화는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사랑의 행함이 있어야 한다.

 이용도도 제1단계는 베드로의 교회시대, 제2단계는 야곱의 수도시대, 제3단계는 바울의 신앙시대, 제4단계는 예수와 요한의 사랑시대라고 해석한다. 기독교의 진수는 믿음보다는 사랑이라는 확신의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요한복음적이라고 볼 수 있고 또한 웨슬리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웨슬리에게서도 믿음은 종교의 문이지만, 사랑은 종교자체이다. 루터를 넘어서려는 이용도 목사의 영성은 바로 웨슬리적인 것으로 발전한다. 웨슬리나 이용도에게서는 신앙이 영성의 출발이요 구원의 출발이요 필수조건이되 사랑이 영성과 구원의 완성에 충분조건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웨슬리처럼 이용도도 선행과 사랑의 교리를 강조하는 산상수훈을 기독교의 핵심진리로 주장하고 이 산상수훈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실천강령이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거듭난 성도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강조한다. 

 

마태 5, 6, 7장은 불신자나 초신자에게 이른 말씀이 아니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믿음의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다. 믿음에서 사랑에 속할 자에게 주신 말씀이다. 믿음이 사랑에서야 완전을 이루나니 사랑이 없이는 믿음을 완성할 수  없느니라. 사랑은 믿음의 생명이라. 믿음이 사랑에 속한 후에야 비로소 결실하나니, 결실이 없는 믿음은 아직 미완성품이다.6)

 

5) 이용도, [시무언],38.

6) [일기],82-83. 1930년1월23일(수)

 

 웨슬리처럼 사랑의 실천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믿음보다 사랑을 더욱 강조한 점에서 두 사람의 사상이 일치한다. 이용도에게도 웨슬리처럼 믿음은 종교의 문이요(door), 사랑은 종교자체(religionitself)이다. 사랑없는 신앙은 불꺼진 등과 같고, 맹인이 안경 쓴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7) 그리고 웨슬리가 성결을 강조하는데 사용하는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요 이 구절 설교 때문에 영국성공회로부터 설교를 금지당한 본문 히12:14을 이용도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별한 생활을 할 것이니라. (고후6:14) 성결의 경험이 없으면 예수를 뵈올 수 없느니라. (히12:14)”

원래의 본문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뵈올 수 없느니라”이다. 이 본문에서 웨슬리는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주장하였다.

이용도는 웨슬리처럼 사랑은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 가는 가장 강한 원동력임을 주장한다. 자기애와 세속애는 지옥에 속한 사랑이요, 사람 속에 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은 천국에 속한 사랑이요 그 주님 사랑이고 상한 인격을 만들어 준다고 강조한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천국에 속한 사랑이라. 천국에서는 역시 최대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이니, 실로 사람의 가운데 천국국을 이루는 것은 이 사랑이었느니라. 사랑은 사람의 생명이라. 고로,  사랑은 곧 사람 그것이었니라….

고로 그 지(智)가 아무리 고상하다고 해도 애가 저열하면 그는 비열한 

인격이었느니라.8)

 

 오늘의 한국교회 부흥 운동은 능력의 성령을 체험할 뿐 아니라 이용도와 웨슬리에게서 사랑으로 무르익는 인격적 성령도 체험해야 한다. 물질적축복을많이받는것만을강조하지말고받은축복을철저히나누어주는사랑의실천을강조해야한다. 이용도는 자기 집을 팔아 송창근 박사의 유학비를 지원하고 늘 항상 현저동 자기 집에 식객들을 묵게하고 식사 대접을 하던 나눔과 상생의 실천자였다. IMF시대를 살면서 한국교회는 웨슬리와 이용도처럼 실직자와 노숙자들을 위해서 ‘할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나누어주라”(giveallyoucan!)는 말씀을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또한 굶어 죽어가는 북한 백성들을 위해 나눔과 분배 운동을 실천해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

 

나오는말

 

 그러므로 그의 영성에서는 한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한 웨슬리적 성화의 눈물의 요소가 근원을 이루고 있고, 개신교 신학의 중심인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눈물의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용도는 한국의 경건주의 부흥운동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한국 신학의 아버지이다. 그에게서 한국교회의 영성과 신학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의 한국교회의 영성운동과 신학운동은 그가 만들어 놓은 영성과 신학의 재해석일 뿐이다. 여기서 그의 신앙과 사상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크기를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이용도의 영성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요약한 시, 감동적인 시를 결론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굶는 자들과 함께 굶어 당신의 몸은 항상 주렸었지요.

헐벗은 자들을 입혀 주시노라고

당신의 입은옷은 

언제나 남루하였었지요 

믿음에 조는 자들을 깨우시려고 

 당신은 밤잠을 못 주무셨었지요

 

외로운 자들을 위로하시려고 

당신의 눈은 언제나 눈물 

받은바 사명을 다하시려고 

동지섣달에 땀으로 목욕 

주님의 사업에 충성을 다하시더니 

그는 필경 피를 토하고 가시였습니다

내가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만사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여전히 지금도 완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존귀케 하려함이라

 〈빌 1장 20절〉

 

 

7) [일기],177-78. 1932년 7월 12일.

8) 이용도. [시무언],82. 1932년 1월 5일.

  

 

 

바른 성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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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설교나 교육프로그램에서 이상하리만큼 성서가 침묵을 지킨다.”고제임스스마트(JamesD. Smart)는그의 저서 The  Strange Silence of the Bible in the Church(교회안에서 성서의 침묵)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가 성서/책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교회공동체 생활 속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손에서 성서가 멀어져 가고 있다는 불행한 현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또한“성서가 우리에게 가장 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라고 월터 부르그만(Walter Bmeggemann)은 그의 저서  The Bible Makes Sense(상식이통하는성서) 에서 말합니다. 이 말은 성서와 기독교 신앙과 실제의 괴리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읽고, 공부한다는 말은 무성한데 그 열매가 없다는 서글픈 현실을 말합니다. 즉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서가 주려는 메세지와 전혀 다른  것을 성서 속에서 구하거나 성서가 줄 수 없는 것을 기대하며 성서에 접근해 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멀리하거나 또는 성서의 진정한 메세지와 전혀 다른 기대 속에서 성서를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서와 관계된 오늘 우리의 신앙 풍속도입니다.

 종교개혁 (사실은 “개혁” 앞의 “종교”란 단어보다는 “기독교/교회”란 단어가 올바른 표현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16세기 서구 기독교는 오늘 같은 다원 종교적 인식이 없었기에“ 종교”하면“기독교”로만 생각했습니다.)의 원칙(Principles)들 가운데 “오직성서”(SolaScriptura)란 표현이있습니다. 그 뜻은 기독교 신앙과 구원에 관한 근본적 자료(Primary Source)는 성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이유로 마틴 루터(MartinLuther)는 1500년동안성직자의전유물로갇혀있던성서를해방시켰습니다. 즉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누구든 성서를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성서해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의 손에 갇혀 있던 성서가 세상의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내 모든 평신도들이 스스로 성서에 접근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으로 “성서해방”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성서 속에서 복 음/구원의 메세지를 자유롭게 듣고,또 해석하여 자신의 신앙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성서와 무관한 기독교 신앙/실천이 얼마든지 가능한 풍토가 교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는 성서가 계시/지시하는 메세지를 왜곡한 해석이 난무합니다. 성서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할텐데, 실상은 우리의 기대와 욕구로 각색된 아전인수격 성서 해석이 성직자에 의해 또는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서는 중세때보다 더욱더 심하게 침묵. 억압당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서해방”의 기회를 “성서침묵” 내지 “성서억압”으로 바꾼채 새천년, 새세기의 벽두를 기독교는 맞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21세기에도 계속 살아남기 위하여 아니 그 역사적 사명을 감당키 위하여 “성서적 기독교 ”(Scriptural Christianity,  이 말은Wesley의 용어입니다.)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한 우리의 우선적 과제는 바른 성서관(A Realisticand Authentic Doctrine of  the Bible)의 정립입니다.

“바른성서관”정립을위한단견을함께나누려합니다. 때때로 말을 풀어가는데 긍정문보다는 부정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서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위해“ 우리가 성서에서 기대할수 없는 것”을 나열 해답을 구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첫째. 성서가 과학적 진리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년 전 중학교 3학년의 딸아이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와 학교에서 배운 과학 창조이론과의 서로 다른 주장을 놓고 근심 어린 눈으로 어느 것이 옳은가를 물어왔습니다. 아마 많은 어른들이 자녀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성서는 과학 이전의 시기에 비과학적인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현대 과학의 눈으로 보는 것은 성서에 대한 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다”(Since the  Bible was written in prescien tifictimes by unscientific people,  it is unreasonable to  expect it to take account of modern science.)라고 응답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과학적지식의차원에서성서를본다면 우리의 어떤 기대감도 충족 시켜줄 수 없습니다. 둘째. 성서가 역사적 차원에서 진리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서속에도 유대인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기독교 초기 운동의 기록들을 전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을 현대적 의미의 역사 서술자료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큰 전쟁이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은 단 한두줄로 요약한 반면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많은 지면과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서술들이 있습니다. 셋째. 성서가 종교철학 차원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의 존재 증명이나,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변이나, 정신과 물질의 관계 등 수세대에 걸친 종교 철학적 주제에 대한 답을 성서 속에서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허탈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서 기자들은 철학적 고전을 남기려는 의도를 갖고 성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성서 속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말했습니다. 이제는 성서 속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을 물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성서는 신앙의 책입니다. 다른 말로 성서는 깊은 사색을 통해 얻어진 조직신학의 명제들을 나열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서는 성서의 사람 (The People of the Bible)들이 원초적 하나님 경험에서 얻어진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물론 성서도 우주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말하는 우주관은 아닙니다. 만약 과학이 우주의 생성과정(How)을 말한다면 성서는 우주의 존재이유(Why)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서도 역사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역사는열왕 또는 전쟁자체보다는 인간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성서도 철학처럼 삶의 의미와 목적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성서는 “인생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는가?” 라는 철학적 물음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우주 속에서 일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전제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인격적 하나님속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그들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한마디로 성서는 하나님, 세계,그리고 우리 자신들에 관한 책입니다. 성서는 과학자들, 고고학자들,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줄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포괄적이고 근본적 인생의 물음에 답을 줍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되는 신비를 성서는 드러내 보여줍니다. 성서는 “우리가‘왜’(Why) 여기에 있는지,” “우리가‘어디로’(Where) 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How) 이르는지”를 보여줍니다. 성서는 이 세상에서의 기쁨과 슬픔으로, 성공과 실패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아울러 성서는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 너머에 지금보다는 훨씬 풍요로운 세계가 있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그 즉시 풀어주는 준비된 답안지도 아니고, 세상의 온갖 지식을 담은 백과사전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서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성서는 뭍인생이 가야할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는 길의 선택을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맡기는 자유를 성서는 우리로부터 빼앗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서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책이라 하겠습니다. 이 런귀한 책이 “침묵”을 지켜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귀한 책이 “억압”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성서가 우리에게 자유롭게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성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말씀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의 가정가정마다 어른과 아이들이 성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하나님 말씀”의 ‘나눔의 場”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교회교육의 프로그램마다 성서가PrimaryText로 자리를 굳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존적 질문/문제를 갖고 성서에 접근은 하지만 우리가 임의로 성서가 주는 말씀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문제에대해하나님께서하실말씀을기다리는“침묵”을훈련해야하겠습니다.

 루터의 “성서해방” 운동은 “종교개혁”의 원칙 중의 하나요 “종교개혁”을 가능케 하였던 원동력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성서해방”을 통한 “성서적 기독교”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운동을 가르쳐 나는 21세기의 “기독교개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운동만이 21세기의 기독교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바울의성서관이지적하듯, 우리의 신앙과 실천에“성서해방운동/“하나님 말씀운동”이 일어나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에 이르는 기쁨이 날마다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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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 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 회원가입을

환영합니다



 본회는 2004년  7월  7일 창립이래 이용도 목사의 숭고한 신앙과 사상의 삶을 본받아 참 예수를 바라보고 영접하여 한국 교회의 올바른 목회와 영성을 개발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와 사회에 건전한 갱신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동안 여러 뜻있는 분들의 따뜻한 후원과 동참에 힘입어 본회 사업을 잘 추진해 왔습니다. 금년에도 여러분의 끊임없는 격려와 동참으로 성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본회의 설립 목적과 취지에 함께 동참해 주실 분들의 회원가입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새해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평강과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1월  1일 아침

 

 

시무언 이용도 목사 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순

 

 

 

♦ 본회 회원가입 문의 및 회비 송금은 구좌는 아래와 같습니다 ♦

 

사무실 전화 : 2232-1276     상임부회장 김길송 목사 핸드폰 : 016-709-3786

사무실 팩스 : 2232-2800     상 임 이 사 이규석 장로 핸드폰 : 019-339-1277

예치구좌 번호 – 우체국 : 011809 - 01 - 011431 이용도 기념 사업회

신한은행 : 100-020-437700   김종순

 

 

 

 

 

  

시무언 이용도목사 연구논문상 공모


 

시무언 이용도목사기념사업회는 시무언의 고귀한 신앙사상과 애국정신을 주제로한 연구논문상을 아래와 같이 공모하여 시상코저 하오니 많은 응모를 부탁드립니다.

 

 

1. 응모기간: 2007년 2월 1 일 - 6월 30일

2. 응모대상 : 신학생 및 일반인

3. 논문계획서 제출 : 2007년 4월 30일

4. 논문제출 마감  : 2007년 6월 30일

5. 선정 인원 : 2명

6. 상금 총액 : 3,000,000원

7. 논문제출 및 문의처  : 시무언 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103-19 베델하우스 20호

   전화 : 2232-1276, Fax:2232-2800

 

 

 

 이용도 목사 기념사업회 2007년 임원 조직표

 

  

 

고    문 : 김진호, 명관조, 민경배, 박대선, 박명수, 박용규, 유동식,

           윤춘병, 이윤구, 전덕일,  조향록, 주재용 (12명)  (가나다순)

자문위원 : 김영철, 김옥수,  김희방, 민영진, 박봉배, 박정규, 박태희,

           선우남, 성백걸, 이성삼, 이호문, 조두행, 채의숭,  한승호,

           황인순 (15명) (가나다순)

 

 

 

이   사   회

 

 

대표이사 : 김종순

이    사 : 고수철, 권영화, 김기택, 김길송,  김성철, 김종훈, 백 철, 성 철,

           신문구, 양총재,  유승훈, 이규석,  전용범, 전용호,  황문찬

           (15명)(가나다순)

감    사  : 정의선, 김준형(2명)

 

 

 

 

 

 

 

운  영  위  원

 

 

권영화, 김기택, 김길송, 김종순, 김준형, 박명석, , 안동호, 양총재, 우순덕,

유승훈, 유인섭, 이규석, 이승호, 이재수, 이혜자, 이홍기, 전용호, 정의선, 조이제, 

최진화 (21)(가나다순)

 

 

 

운영위원회

 

 

회    장 : 김종순

부 회 장 : 김길송

총    무 : 유승훈

서    기 : 박명석

회    계 : 이재수

기획분과위원장 : 권영화

사회복지분과위원장 : 황문찬

여성분과위원장 : 우순덕

장학분과위원장 : 정의선

학 술분과위원장 : 백   철

홍보분과위원장 : 김준형

차장 : 박명석

차장 : 유인섭

차장 : 이혜자

차장 : 최진화

차장 : 조이제

차장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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