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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 2008. 8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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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10-27 20:32 조회3,9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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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是無言)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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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이용도 목사가 생각나는 때도 없다. 오죽하면 이용도 목사가 당신의 호를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라는 의미의 ‘是無言 이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이용도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감리교인이,  이런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돌들이 소리를 칠 것이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 의 소리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보지만, 가만히 듣고 나면,  그것도 역시 공허한 소리이구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리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치고, 공의로우신 분의 뜻이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들을 때마다 두려운 마음을 가졌지만, 거짓 늑대 소식을 여러 번 들었던 사람처럼,  이제는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누군가가 언급을 해도,  마음이 미동하지도 않을 만큼, 죄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담대하고, 교만한 심령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증거하고, 모든 외식함과 거짓과 가증한 행위의 가면과 탈을 벗기는데, 담대한 믿음생활이 필요한 때이다. 부패한 교권과 거짓된 목회자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자가 참으로 필요한 때이다.

    ‘세미한 소리’ 앞에서 자신의 허물이 생각나서 자신의 겉옷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심령이 필요하다. 참 주인인 예수를 만나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데만 천착한 바울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참 주인 예수를 만나서 자신의 생명보다도 귀했던 전 재산을 절반이나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희사한 삭개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예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하는데,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목소리를 죽 여야만 하고,  예수처럼 살려면 먼저 나 중심으로 살던 자세를 온전히 버려야만 하고, 나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살았던 이용도를 생각해본다. 입으로만 용도를 찾지 말고,  생활 속에서 용도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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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동정

1. 본회 총무이신 유인섭 목사가 섬기고 있는 금촌제일교회에서 지난 4월13일, 오후 4:00에 이석봉

    장로 은퇴 찬하 및 신성균, 신기원 장로의 취임예배와 황성순, 안명수, 이응창, 성숙이, 고재숙,

    김경애 권사의 임명 예배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은혜롭게 거행되었습니다. 예배는 표용은 감독

    의 설교와 파주지방 평신도 지도자들의 참여로 금촌제일교회의 행사가 아니라 파주지방의 행사

    가 되었고,  지방회원들과 금촌제일교회 교인들 300여명 이상이 참여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

    니다.

2. 본회 회계이신 이재수 목사가 섬기고 있는 하얀교회에서 지난 7월 7일(월) 오전 10:30부터 노원

    지방 교역자 회의가 있었는데, 지방 내 모든 교역자가 다 참석하여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고, 하

    얀교회 또한 주 안에서 손님을 대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3. 본회 자문위원이신 재미 김영철 목사가 지난달 “미국에서 펼친 한국민주화 운동”이란 자서전을

    출판하였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 애국애족의 고귀한 신앙과 사상이 우리 인생의 좋은 양

    식이 되리라 믿고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 본회에 가입하신 회원에게는 이 책을 증정해 드립니다. 본회 부회장 김길송 목사에게 핸드폰

     010-2709-3786 으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알    림


1. 지난 5월 19일 11시에 임시총회가 마포중앙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임기를 마친 김종순 회장의 후

    임으로 유승훈 총무를 신임 회장으로 선택하기로 참석자의 만장일치로 가결하였습니다. 이어서

    후임 총무로 유인섭 목사가 선출 되었습니다.

2. 2008년 10월 2일 오전 10시에 시무언 이용도 목사 75주기 기념 추모행사 및 논문발표회가 대전

    목원대학교와 본회가 공동으로 개최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차후에 회원

    여러분에게는 상세한 스케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3. “시무언 이용도목사 기념사업회는 여러분의 회원가입을 환영합니다”

    본회는 2004년 7월7일에 창립하여 이용도목사의 고귀한 신앙과 사상을 이어 받아 한국교회의

    올바른 신앙의 영성을 정립하고 건전한 신앙의 갱신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4년간 뜻있는

    분들의 정성과 후원에 힘입어 본회 사업을 잘 추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회원님들의 가입과 동참을 힘입어 더 정성을 다해 본회 사업을 추진해 갈수 있도록 여러분

    께서 적극적으로 성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본회 회원가입은 본인의 연락처와 년회비 6만원을 후원해 주시면 본회의 회원으로서 본회의 각

    종 집회와 발간되는 소식지와 자료들을 제공 받을 수가 있습니다.

 

본회 회원가입 문의 및 회비 송금 구좌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무실 전화 : 716-0202 / 3272-3352 유승훈 회장 (핸드폰 011-752-1102)

사무실 팩스 : 712-3694  김길송 부회장 (핸드폰 010-2709-3786)

예치 구좌 - 우체국 : 011809-01-011431 이용도 기념사업회


참 주인을 만나자

(고린도후서 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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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고후 5: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 5: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이용도 목사의 일기 1930년 1월 2일자에 보면, 聖火 四大作用이라는 짧은 글이 있다. 이용도가 성령의 역사와 효용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알려 주는 글이고, 성령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글 같아서 소개한다.  이용도 목사는 聖火 四大作用 대하여 일기에 기록하기를,  ‘⑴ 밝히 비치어 심중에 있는 죄를 드러낸다. ⑵ 드러내는 죄를 (통회의 눈물과 함께) 태워 버린다. ⑶ 가슴에 열을 일으킨다. ⑷ 주님을 증거하게 된다.’ 라고 하고는, 기도하기를, 주여 나로 하여금 예수 선전자니 기독교 주문 도리(취집자)만 되지 않게 해주소서. 미친 듯이 부르짖는 광야의 소리,  곧 회개의 소리가 되게 하시고, 새 술이 취한 듯이 덤벼드는 사랑의 시도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했다. 저는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인이 이용도처럼 성령 안에서 변화되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영국의 어떤 대학교에서 시험을 실시하는데, 시험문제가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에 대하여 설명하라.’ 는 것이었답니다. 시험시간은 두 시간이었는데, 그 동안 학생들은 답안을 작성하느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감독관이 보니까, 한 학생이 두 시간 내내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학생의 시험을 보는 자세가 이상해서,  다가가 학생이 작성한 답안지를 살펴보니까,  그 학생은 답안을 딱 한 줄로 짤막하게 기록했는데,  그 내용은 [물이 그를 창조한 주인을 만나매, 얼굴이 붉어졌더라!] 라고 기록을 했더랍니다. 바로 그 학생이 훗날에 유명한 시인이 된 바이런이라고 합니다. 바이런의 답안처럼, 세상의 만물은 주인인 하나님을 만나면, 반드시 아름답게 변화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합니다. 폭풍의 바다가 고요해집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은 음식을 열 두 광주리나 거두게 합니다.

    누구나 참 주인인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변화됩니다. 성경을 보세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여리고의 세관장인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변하자,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아낌없이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내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직 율법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율법의 실행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자 했던,  바리새인 사울이 예수당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는, 의협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예수당을 찾아서 핍박하다가, 유대만이 아니라 다마스커스로 피난한 예수당을 발본색원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공한을 가지고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참 주인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는, 에수당을 핍박하는 핍박자에서 변하여 예수를 그리스도 라고 증거하는 증거자가 되어, 생명을 걸고, 온 세상을 여행하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즐거움에 눈이 어두워 이웃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마리아의 여인을 보세요. 진정한 사랑이 없이 애인을 다섯이나 바꾸면서 산, 당시로 말하면 실로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도 우물가에서 참 주인을 만났습니다. 참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변하였습니다. 물동이를 우물가에 버려두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이끌어 와,  믿음을 갖도록 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제 몸을 학대하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도록 난폭하고, 옷을 벗고 있고,  무덤 사이에 거하던 청년도 예수님을 만나자, 그를 사로잡고 있던, 군대 귀신에게서 해방을 받았고, 귀신이 떠나자, 바른 정신이 돌아와 옷을 입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온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이란 소설을 쓴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서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만물이 참 주인을 만나면 변화 되고, 역사에도 보면 수많은 사람이 예수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지금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 있고, 변화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이, 세상 사람처럼 여전히 욕심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이기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옛사람의 모습을 고집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명목상으로만 교인이지, 인생의 참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로 변한 물처럼, 사람은 변화되지 않으면 무가치합니다. 그리고 아름답지도 못합니다. 아무런 맛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웃에게 감동을 주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믿음 여정에서 만난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진짜 주인을 만났습니까? 주인을 만난 후에 어떤 아름다운 변화가 여러분에게 임했습니까? 이웃이 여러분을 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에서, 여러분 때문에 일하는 맛이 난다고 간증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화학적 변화 못지않은 영적인 변화가 나타나, 여러분과 주위 사람이 그런 변화를 감지하고, 인정하고 있는지, 한번 여러분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브로드웨이의 극작가 패디 차이에프스키는 한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한 때, 하나님에 대해서 불편해 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과거에 나는 마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자와 술과 극심한 이기주의와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삶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거기 어디엔가 계신다면, 나의 삶은 지옥을 향하여 곧바로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차이에프스키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술 마시던 버릇을 끊고,  신실한 남편과 좋은 아버지가 되었고,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간증하며,  다른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1987년 그는 평온하게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면,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에는, 항상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건에 사람들을 참여시켰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당신의 이들로 대하지 않고, 문제의 해결자로 믿고,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문제를 상의하신 어머니 마리아가 참여자이고, 다음으로는 잔치를 치루면서, 힘이 몹시 들었지만, 그리고 귀찮은 지시라고 생각이 들었어도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의 엉뚱한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 일꾼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여러분의 삶의 한복판에서 경험하려면, 예수님께 왜? 나에겐 그런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지 않느냐? 고, 항변을 먼저 하지 말고, 내가 정말 예수님을 나의 참 주인으로 믿고 의뢰해왔는지, 그래서 전적으로 예수님의 뜻에 순종했는지를, 먼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지금도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혼자 하기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변화의 역사를 감당하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당신의 삶이 달라진 것을 이웃에게 보여주고 계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 전적인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변화될 것입니다.


    참 주인을 만난 사람의 변화는 다양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눈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보험 외판원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비결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고객으로 여긴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교인을 교인으로 보지 않고 고객으로 보았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 나서는, 그의 사람 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보게 됐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을 영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되면, 변화된 눈으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눈을 통하여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 고후 5:17절에서 고린도 교인 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큰 위협으로, 그리고 예수의 제자를 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흉폭하게 탄압하고,  체포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의 바울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참 주인으로 믿고 의지하게 되었습니 다. 곧 나사렛 사람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세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전에는 예수님 을 육체의 눈을 통해 봤지만,  후에는 회복된 영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여기서 참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영적인 안목이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전 생활을 청산하고 경건하고, 사랑이 넘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친구가 하루는 그에게 “어이, 친구. 자네는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재미를 다 포기했다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 안에서 변화된 사람이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자네가 보기에, 내가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이 된 줄 아는가?. 아닐세,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시각일세. 나는 말이지, 이제까지 내가 해온 모든 어리석은 일을 포기했고, 진정한 즐거움을 찾았을 뿐이네. 이것이 진짜 재미 아니겠나?”라고 했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령상 형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새 마음을 품고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 된 것을 스스로 간증하고, 여러분의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증거할 수가 있습니까? 참 주인은 여러분의 삶의 목표까지도 바꾸어 놓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정치인 조지 랜즈베리가 인도 선교사인 미국의 스탠리 존스를 만났을 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여든 살, 내 인생은 그렇게 실패한 것 같지 않소. 그러나 만일 다시 인생이 주어진다면, 전 생애를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바치겠소.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사람이 변하지 않고는, 그 어느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오.”라고 했답니다.

 

    여러분을 창조하신 주님을 정말 만났습니까?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분이 여러분에게 오셔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여러분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먼저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무엇보다도 주님은 여러분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일에 온 힘을 쏟으십니다. 그런 주님의 바람을 무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분이 가져다 줄, 변화를 믿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더 크게, 그리고 많은 변화의 기적을 이루시도록,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손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고,  온전히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주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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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2~14) 이 약속의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거짓말처럼 믿기 어려운 약속이다. 이 세상에서 누가 이런 약속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의 주인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의 말씀이다. 더군다나 이 약속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 수난 당하시고 운명하시기 전날 밤에 주신 것이다. 이보다 더 위대하고 감격적인 약속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당시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믿는 자들을 위한 말씀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이 약속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잠시 후에 다시 반복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 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7~8)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이 약속은 매우 중대하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구하라’ 는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셨고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친구임을 나타내는 징표라고 말씀하셨다. (요 15:14) 그런 다음 또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이처럼 주님은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은 다시 동일한 화제로 돌아와 말씀하신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약속을 무시하고 있다. 너무 크고 너무 엄청나서 믿기지 않는가? 결박을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기 전,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시기 전에 마지막 권면을 하셨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6~27)

    주님은 우리의 충만한 기쁨이 기도의 응답에 있다고 상기시키시고,  우리의 ‘강건함’과 ‘열매’ 역시 기도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16:24) 그러나 우리는 사단이 우리를 설득하여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아예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사단은 우리가 기도하기보다 스스로 노력함으로서, 하나님께 간청하기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서 어떻게, 감히 그리스도를 위해 일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추운 겨울날 인왕산 바위 위에서 밤새 내리는 눈을 이불 삼아 새벽까지 기도하셨던 시무언 이용도 목사님을 기리면서...



 指導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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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들림을 받는 사람이 참 지도자라 생각한다.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따르게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권력으로, 어떤 사람은 폭력으로, 어떤 사람은 물질로 사람을 부리는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와 평화를 누리도록 인도하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이다.

 

 

 

 

 

     세상은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강자는 약자를, 부한 자는 가난한 자를, 유식한 자는 무식한 자를 하시 하는 풍조가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갈등, 불평, 불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잘 아우를 줄 아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 지도자이다.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본받을 것이 있다는 것이며 본을 보여주는 자체가 지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따라주기를 요구한다. 더러는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지도자도 있는 실정이다. 교회 구성인원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음으로 다양한 소리가 나오게 된다. 전문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경험자들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지도자라 생각된다.


    물질문화가 발달 될수록 생존경쟁에서 오는 영적인 갈증은 더 심화되고 있다. 갈급한 심령들은 생명수를 얻기 위해 좋은 지도자를 찾아 다닌다. 세상은 물질, 권력, 명예 등을 축복의 기준으로 삼아온 것이 오늘날에 영적으로 많은 갈등과 사회적인 가치관의 모순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도자들이 강단에서 때로는 설교, 강연, 간증 등을 통해 위협, 강요, 호소를 하면서 따라주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때로는 농담 같은 웃기는 얘기는 진리에 목마른 심령들에게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영적지도자는 시류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기 보다 공인된 좋은 전통을 발전시키며 유지해 나가는 것이 조직체의 생명력이라 생각한다.


    당시에 이용도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려고 수백리 밖에서도 밤새도록 걸으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날이 밝았을 때에 집회에 참석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개천에 빠진다는 말씀은 지도자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함을 깨우치는 말씀이 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는 것을 삼가라 하셨다.


    이용도 목사님은 고통에서 깨우침을 배우며 빈궁에서 사랑을 나누며 낮은 데서 얻게 되는 부요함을 몸소 체험하며 말없이 본을 보여주신 영적인 참 지도자이시다.

예수님은 참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시며 구세주가 되셨다. 이용도 목사님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사셨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도 목사님의 신앙과 사상을 흠모하고 있다.


이세종 · 이현필 선생 유적지 순례

이것이다 바로 이 길이다! -

최 흥 욱 (서부동산교회 담임목사)  

 

이세종 · 이현필 선생 유적지 순례를 시작하면서 실천신학자 박근원은 언젠가 「기독교 사상」지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 개신교 영성의 뿌리, 어느 면으로 보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앙생활의 표출은 이세종, 이현필로 이어지는 신앙생활의 운동이었다. … 이 분들은 전형적인 한국 사람으로서 외부의 신학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다만 성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체험한 신앙적 영성의 소유자들이었고, 그들의 영성이 그리스도교 전통의 영성 대가들의 신앙생활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이세종과 이현필은 한국교회 영성사의 큰 맥을 이루어 놓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 개신교회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성을 전해준 한국적 토착적 영성인이다. 그들은 신학자도, 목회자도, 장로도 아닌 평신도였으나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따르며, 복음을 말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고 증언한 한국적 영성의 뿌리와 같은 존재였다. 이세종과 이현필은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특이한 존재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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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결코 그들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1930년대의 조직신학자 정경옥은 이세종을 가리켜 도암의 숨은 성자라고 하였다.한국 기독교 백년사에 이세종과 이현필 선생 같은 독특한 인물은 없었다. 청빈의 길, 사랑의 길,  순결의 길, 초월의 길, 고난의 길 등 그것을 생명처럼 강조하며 몸소 그렇게 산 사람도 없었고, 철저한 자기 비움을 통해 자기완성에 이르려 애쓴 인물도 드물다. 

 

 

 

 

 

우리는 이세종과 이현필을 통해 고난의 예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가 간 비천한 예수, 청빈의 예수를 본다. “주여, 나는 당신 밖에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Domine, ego non ha-bes nec volo nisi te) 라고 기도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이세종과 이현필은 요란한 대로변 가시밭에 한 송이 백합화, 고요히 이름 없이 지나갈 고독한 들꽃으로서의 짧으나 굵은 삶을 마쳤다. 절대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이현필 선생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6.25동란에 허덕이던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동광원이 시작되었다. 고아, 걸인, 나그네 하룻밤 재워주기 운동, 십시일반 운동을 펼쳤다. 동광원은 여순 반란 사건 이후 급증한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세워졌던 고아원의 이름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부녀자, 청년 할 것 없이 가족을 버린 채 그를 따랐고, 그들 일행은 탁발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면서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현재 전북 남원의 동광원 본원을 비롯해 화순, 함평, 광주, 진도, 벽제 등 전국 각지에 동광원의 분원들이 세워졌고, 제자들이 순결, 청빈, 순명을 원칙으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동광원은 귀일원의 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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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종과 이현필은 향기나는 참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은 다른 것은 알지 않기로 결심하고 오직 한 줄기 길, 골고다의 길, 나사렛 예수의 길, 좁은 길, 님의 자취 따르는 한 가닥 오솔길을 걸어간 참 예수 꾼이었다.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과 가정, 학문과 소유, 친구 일체를 버리고 ‘내 주여, 나의 전부여!’ 감격하며 걸어간 한 줄기 길을 그들도 걸어갔던 것이다. 이세종은 예수를 믿되 물에 퐁당 빠지듯 믿었다. 하루 종일 성경과 하나님만 생각했다.  

 

 

 

그리고 울면서 다녔다. 하나님 속에 완전 빠져 들어가 믿었다. 이현필은 거지가 오장치를 짊어지고 나서듯이 믿으라고 하였다. 그의 제자 오복희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빌어 먹으라.’고 대답하였다. 거지가 되라는 말이다. 삼박자 축복을 받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일체 세상만사를 버리고 머리도 빗지 못하고 옷도 빨아 입을 생각을 못하고 맨발로 체면이고 부끄럼이고 전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취해서 찢어진 바지 가랑이도 기워 입지도 않고 움켜쥐고 다녔다니 이현필이야 말로 거지 중의 거지였다. 이세종도 쑥범벅을 먹고 일체 소유를 버리고 바보가 되고 거지가 되어 예수의 길을 걸어갔다. 개신교 최초의 토착 수도 공동체인 동광원은 맨발의 성자요,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로 불리우는 이현필과 그를 따랐던 제자들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였다. 이현필을 이야기하자면 그의 스승 이 세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세종은 호세아를 닮은 성자라고 불리어지는데, 그가 복음을 접한 후 성경 말씀에 따라 순결을 지키기 위해 남매 사이로 지낼 것을 요구하였으나 부인이 이를 거부하고 두 번씩이나 개가하였고, 

그때마다 지게로 직접 살림을 져다 주었으며, 부인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는 아무 말 없이 받아준 것에서 비롯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세종은 한때 화순 도암 동광리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으나 복음을 접한 후 성경 말씀에 따라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평생 청빈과 순결, 곤충과 미물까지도 존중하는 생명 경외 사상을 가지고 살았다. 이런 이세종의 삶 속에 승화된 토착 수도원적 모습은 그의 제자들 중 하나인 이현필을 통해 전수되었으며 이때부터 하나의 공동체의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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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종과 이현필을 통해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참 믿음은 예수의 길을 찾아 우리도 그 길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다. 필자는 이세종, 이현필 선생을 얼굴로는 만나지 못했으나 글로서 또는 제자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는데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세종과 이현필, 그들은 필자의 믿음과 인격 그리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분들이다. 필자는 프란치스코의 길, 이세종의 길,  이현필의 길, 이 길이야말로 참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이다, 바로 이 길이다! 예수를 바로 믿는 길은 이것이다, 바로 이 길이다!”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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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평생 소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세종, 이현필 선생 유적지를 순례하는 일이었다. 이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지난 2001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들과 함께 순례 길에 올랐다. 한은우 목사님,  최대용 목사님, 유상범 목사님, 박용배 목사님, 조동희 목사님이 동행해 주었고, 동광원 계명산 분원 박공순 원장님이 우리를 안내하였다. 승합차를 타고 꼬박 2박 3일 동안 한국의 숨은 성자 이세종, 이현필 선생의 옛 터전인 전남 화순 도암, 광주 귀일원, 남원 동광원, 서리내, 갈보리, 벽제 계명산등을 돌아보았다.

 

성인이 걸어간 자취를 밟아보고 몸으로 익혀온 그 제자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만져보면서 잔잔한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이 거룩한 땅들을 밟으면서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고난받고, 주님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거룩하고, 순결하고, 청빈하며 예수가 그들의 전부였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 말하는 이 없어도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서로 다르고 이름은 서로 같지 않아도 주님 그토록 사랑하기에 목숨을 아낄 수 없었고 내 것을 가질 수 없었던 이들. ‘이것이다, 바로 이 길이다!’ 를 부르짖으며 예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던 참 그리스도인들. 기도가 노동이요, 노동이 기도인 자연에 파묻혀 깊이 묵상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간 진짜 예수꾼들을 만나보고는 이러한 거룩한 사랑 앞에서 가슴 벅찬 감동이 영혼에 밀려와 우린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돌아왔다. 우리 일행을 태운 승합차가 화순으로 내려가는 동안 박공순 원장님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다. 하나는 이세종 선생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현필 선생에 얽혀진 이야기였다. 박 원장님은 이현필 선생을 만난 뒤 벽제 계명산에 와서 마흔 일곱 해 동안 수도생활하며 청춘을 묻어버린 수녀이다. 필자와는 20여년 동안 교제가 있어왔기에 이런 분을 우리들의 순례여행에 안내자로 모시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은총이었다. 그가 입을 열어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해인가 광주 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다고 해요. 이 소식을 들은 이공(이세종) 어른은 사경회 한 주간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하여 광주로 갔어요. 광주에 가서 보니 시가지 한 복판으로 흐르는 개울가에 많은 거지들이 움막을 치고 살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본 이공은 걸인들이 살고 있는 천막에 들어가 가져온 모든 음식을 나눠주었어요. 그래서 사경회 기간 동안 자기는 내내 금식하면서 말씀을 들어야만 했어요. 사경회를 마치고 광주에서 도암 동광리의 집을 향해 약 80리 길을 걸어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오다가 너무 지쳐서 길가에 그만 누워버리고 만 것이었죠. 한참 동안 쓰러져 있는데 갑자기 뱃속에서 뜨거운 성령의 불기운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그 후 몸이 가벼워져 자기 몸이 바람에 날아갈 듯하여 집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한참 이야기하던 박 원장님은 이야기를 멈추고 무언가 회상에 젖어 생각에 잠기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탄 승합차는 어언 광주를 지나 전라남도 화순을 질러 두 영인들의 고향인 도암 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 하나만 들어도 이세종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이 갔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이세종 선생에게 하나님이 성령의 불을 내려주신 것이리라. 하루는 이세종 선생이 구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참다운 구제란 자기가 쓸 몫에서 떼어 내어 하는 것 이다. 자기가 먹을 것 안 먹고 해야지, 먹고, 입고, 쓸 것을 다 쓰고 남은 것으로 구제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 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 한 벌 주더라도 자기가 입은 옷이 다 해어져 누더기가 되기까지 입으면서 주어야 참 동정이 된다.” 도암의 성자 이세종 선생, 그는 우리에게 자기 비움을 통한 이웃 사랑의 길을 보여주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비울 때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리라. 

    침묵하던 박 원장님은 다시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동광원 화순 분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현필 선생 이야기 하나 더할게요. 우리 이 선생님이 서리내 우거진 갈밭 사이에 종일 움직이지 않고 엎드려 있으면 까마귀들이 날아와 죽은 송장인줄 알고 부리로 쿡쿡 찍어보았다고 해요. 밤새 산에 엎드렸다가 새벽에 산에서 내려온 그의 잔등에는 서리가 하얗게 덮여 있는 것이었어요. 이런 그가 한번 남원 마을로 지나가면 집집에선 가정 주부들, 처녀들이 가출해서 그를 따라다녔고, 교회에선 집사들이 그를 따라 나섰고, 목공소에선 목수가 일을 집어치우고 그를 따라 나섰으며, 사진관 부인이 집을 버리고 따라 나서는 게 아닙니까 큰일났지요.” 사실은 박 원장님 자신도 이때 집을 나와 이현필 선생을 따라 나선 가출 여인이었던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집에서 뛰쳐나와 그를 따르게 하였을까 겉으로 보기엔 상거지 꼴인 이현필 인데 그에게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이 미쳐서 그를 따르게 하였을까 이번 순례에서 이 문제 하나만 풀고 돌아가도 하나도 후회스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이현필. 그는 분명 숨은 기도자였다. 숨은 기도자를 세상은 모른다. 그러나 기도하는 이가 엎드려 두 무릎을 꿇은 자리에서는 영의 진동이 일어나고, 영파가 일어난다. 낙타 무릎이 세상을 환하게 하고, 나라를 살리고, 회를 살리고 자신을 살리는 것이다. 기도의 밀실로 들어간 사람이 그 밀실에서 나올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오는 법이다. 이현필 선생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세상일에 너무 바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사람들아! 이제 한번 엎드려 보자. 열광한 군중들 속에 있지 말고 고요한 밀실에 홀로 물러가 보라. 그리고 영음을 듣고 영감을 받아보아라.” 해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어둠이 덮여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인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고장에 우리가 도착했다. 얼마나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곳이었던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필자의 제의로 우리 모두는 이현필 선생이 즐겨 부르던 ‘주님 가신 길이라면’ 이란 찬송을 다함께 감격스럽게 불렀다.


      1. 주님 가신 길이라면 태산 준령 험치 않소 방울방울 땀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후렴) 오 주 예수 주님이여 천한 맘에 오시 오며 밝히 갈쳐 주옵시기 꿇어 엎뎌 비나이다 

      2. 주님 가신 길이라면 가시밭도 싫지 않소 방울방울 핏방울만 보고 따라 가오리다 

      3. 주님 계신 곳이라면 바다 끝도 멀지 않소 물결 물결 헤엄쳐서 건너가서 뵈오리다 

      4. 주님 계신 곳이라면 하늘 끝도 높지 않소 믿음 날개 훨훨 쳐서 올라가서 뵈오리다

 

    이렇게 해서 순례는 시작되었다. 우린 길 찾아 나선 순례자가 된 것이다.

 

무릎 꿇고 눈을 감아 보아라 / 눈앞에 한 가닥 오솔길이 보인다 / 꼬불꼬불한 길 / 찔레와 잡초 / 억새풀에 덮여있는 길 / 자갈과 돌들 널려있는 험한 길 / 가는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기 힘든 / 무척 외로운 길이다 / 우리도 ‘주님 가신 길이라면’을 노래하며 / 이 한줄기 길을 가자 / 주위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 머뭇거리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 엎드린 그 자리에서 / 주님과 십자가만 갈망하고 사모하자 / 우리 마음에 감격이 오고 / 통곡이 올 때까지 밤을 새우자 / 이제 그만 밀실로 들어가서 / 주님과 사랑을 속삭여 보자 / 예수를 바로 믿는 길은 이것이다 이 길이. 

 

 아침고요수목원 방문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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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월),  “시무언 이용도 목사 기념 사업회” 가족들이 오랜만에 친목을 도모하고,  기념사업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하루 여행을 다녀 왔다. 새로 본회 회장으로 선임된 유승훈 목사(마포중앙교회)를 위시하여 임원들이 동부인 해, 회장님이 제공한 차량(25인승)을 이용하여, 모두들 간단한 나들이 차림을 하고 출발지인 공덕감리교회 앞에 모였다. 출발시간에 맞주어 모두들 조등학교 시절 소풍가듯 함께 손을 마주 잡고 9시 30분 서울을 출발, 경기도 가평에 있는 수목원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유승훈 회장님이 미리 준비한 간식 봉지를 한 개씩, 그리고 생수 한 병씩을 받아들고, 둘씩 자리를 같이하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떠났다. 차를 운전하는 마포중앙교회 문봉후권사님은 차 안에 타고 있는 우리 식구들보다 더 상기된 얼굴로 차를 몰고, 어느덧 도시를 벗어나 순환도로를 이용, 가평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모두들 연세에 비해 잠이라도 청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랜만에 나들이 여행이라 그랬는지 이날따라 재미있게 조용조용히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난날의 묵혀둔 생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지루한 줄 모르고, 두 시간이 넘는 긴 여행길을 단숨에 달려 경기도 가평군 현리 가까이까지 달려왔다. 때가 때였던지 6월 중순의 이 나라의 산천과 가로수 들은 푸르다 못해 검은 초록색깔로 전형적인 한국의 아름다운 색깔에다 날씨까지 청명해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했다. 12시가 가까워 목적지에 우리들을 태운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일행 중, 이미 이곳을 다녀간 경험이 있는 K목사님으로부터 “아침고요수목원”에 얽힌 뜻 깊은 신앙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곳 수목원의 주인은 안식교 재단인 삼육대학교 소속인데, 이 수목원의 체계적인 나무와 꽃 들은 삼육대학교 임학과 교수들의 전문적인 손길에 의해 오래전부터 가꾸어져 오고 있는데,  올 때마다 수목원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어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더 필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것은 수목원의 단지 배치와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꽃이 아니라,  일제 때 일본당국의 신사참배 강요로 한국교회 각 교파(장로/감리/성결/구세군)가 모두 일제에 굴복, 신사참배를 수용, 한국교회의 지조가 땅에 떨어져 큰 신앙의 오점을 남긴 역사 속에서도 유독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교회 교단만은 끝까지 이에 항거하며, 불복했는데 당시 안식교회 평신도들이 이 곳 깊은 산 속에 숨어들어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비밀 결사단처럼 초근목피로 생명을 부지해가다가 결국엔 먹을 것이 모자라 모두들 굶어 죽은 곳이란다. 이른바 한국 안식교회의 순교성지가 수목원의 기초가 되었다는 이야기엔 우리 모두를 숙연케 하였다. 여기저기 팬션형의 휴식시설도 시설이었으나, 이런 유서 깊은 역사현장이 이렇게 깨끗하게 보존되어 만인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휴식처로 개발 관리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 안식교단 당국자들의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역사현장이요, 순교현장이어서, 휴식을 취하며 관람하러 온 우리 “이용도 목사 기념 사업회” 회원들에게는 더욱 뜻 깊은 방문이 되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역사학 교수로서가 아니라 고 이용도 목사님의 영성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온 것이 아니었나 유추해보았다. 수목원을 관람한 후, 수목원 입구에 있는 방갈로식으로 지은 한식식당으로 안내되어 오랜만에 산중별장에서 산채비빔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모두들 절로 입가에 기쁘고, 즐거운 표정들로 생기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그날 보고, 듣고, 느낀 신앙의 다짐들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 “이용도 목사 기념 사업회”가 새로운 전진의 토대가 되었으리라 기대해본다.  

강북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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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지하철 4호선 미아역과 신일고교 앞에 있는 강북 제일교회에서 예배했다. 수려한 예배당과 10층 건물의 교육관, 그리고 넓고 잘 조경이 있는 교회마당과 시설들이 지역사회를 담아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주일예배는 4부로 진행되는데 오전7:30,  10:00,  12:00,  오후2:00에 본당에서 있다. 기존 11시 예배가 10시와 12시로 나누어서 예배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대게는 11시 예배를 오후1시예배로 나누어한다면 이점도 독특하면서도 아침예배의 의미를 살린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10시와 12시 예배를 두 번 함께 했다.

 

     예배의 진행은 사회자가 있지만 사실은 오르간반주자의 빠른 선도로 진행된다. 스크린에 예배 5분전과 1분전을 알리는 자막이 계속 서비스 되어진다. 정각이 되면 회중석에 앉아 있던 사회자가 강단으로 올라오고 개회송영으로 예배를 시작한다. 처음 찾아간 새신자는 그 시작을 몰라 경건하게 예배를 시작하지 못함이 아쉬웠다. 차임벨이나 종소리로 그 시작을 알렸으면 좋겠다.

    이때에 회중은 모두 일어선다. 찬송 1장을 함께 부른 후 성가대의 묵도송이 답송으로 울려 펴진다. 참 독특한 순서였다. 처음 해 본 순서였지만 12시 예배 때에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이 교회 교우들은 편하게 순서에 임하는 것을 보았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찬송을 26장과 32장을 연속해서 불렸다. 이 또한 처음 해보는 순서였다. 사실 송영이 조금 짧다는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2곡을 연속해서 부르며 예배의 거룩함에 집중하게 되었다.

    목회기도가 이어졌고 성가대의 기도송이 있을 때에 회중석에 앉아 있던 설교자가 강단에 올라와 강단 보좌에 앉는다. 박수를 치며 찬송 442장을 부르는데 마지막 절에 담임목사가 나와 그 다음 순서인 성도의 교제순서를 맞이한다. 매끄럽게 흐르듯 순서를 받는다. 사회자의 빠른 찬송가 템포를 자연스럽게 조금 늦추며 회중을 집중시킨다. 미리 준비된 어린 유아의 축복기도를 시작으로, 말 그대로의 성도의 교제가 시작된다. 백일이 넘는 유아를 부모가 강단으로 안고 나온다. 온 교우에게 새로 태어난 유아와 부모를 소개하며 유머스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아이를 안고 강단을 내려와 회중석 가운데를 지나가며 얼굴도 보여주고 축복기도를 시작한다. 간결하면서도 축복어린 짧은 기도가 회중들로 하여금 자녀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기도하게 만든다. 이 교회는 출석교인이 6-7천여 명이 되는 교회라서 백일 된 유아가 매주 나온다면 중, 소형교회는 기존에 어린 교회학교 학생들 중에 축하해야 할 일이 있는 아이들을 불러서 부모와 함께 기도하고 축하한다면 참 좋은 성도의 교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새로 부임한 교육전도사를 소개하며 짧은 기도를 했다. 보통은 인사만 시킨다면 소개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 또한 참 좋았다. 새신자들을 호명하고 박수로 환영한다. 광고를 간단하게 전한다.

    그 후 모두 일어나 전후좌우에 있는 교우들과 손을 잡으며 인사한다.

    흐트러진 마음을 12월의 복음성가를 2곡 연속해서 부르며 다시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한다. 이때에 복음성가는 교우들이 투표하여 제일 많이 나온 2곡을 부른다. 복음성가는 시대에 맞는 감성적인 찬양이다. 매달 그 때에 맞는 복음성가를 부른다면 성도의 교제로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모으며 예배를 좀 더 밝게 분위기 잡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예배의 줄기를 잡는 찬송은 찬송가로 이어가고, 순서를 잇는 찬송은 복음성가로 밝게 이어갔다. 복음성가가 끝나고 회중은 앉는다. 성가대의 찬양이 시작된다. 100여 명의 성가대의 웅장한 성가가 듣기 좋았다. 잘 훈련된 모습이었다. 예배 시간 내내 흐트러짐이 별로 없는, 시선을 빼앗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담임목사인 황형택 목사가 나와 ‘시련을 극복하는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대언하기 시작하였다. 성경봉독도 설교자가 함께 회중과 교독하였다. 30분 정도의 말씀이 전해졌다. 깊이 있는 말씀의 해석과 호소력 있는 전달력이 돋보였다.

    설교 후 찬송 446장을 부르며 헌금을 하였다. 헌금위원들이 수고하는 동안 찬송은 끝이 나고 솔리스트의 독창이 이어졌다. 헌금위원들이 강단 왼편에 있는 재무위원에게 헌금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이에 사회자가 헌금기도를 했다. 조금 아쉬운 순서였다. 예전이 조금 더 강조되었으면 하는 순서였다. 예를 들자면 10여 명의 헌금위원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반달 모양으로 서고 회중은 모두 일어나고 담임목사가 헌금기도를 함께 한다면 어떨까?

    아무튼 사회자의 기도가 있은 후 모두 일어나 찬송 424장을 부른 후 담임목사의 축도가 이어졌다. 독특한 점은 축복송을 성가대가 하지 않고 회중이 모두 다함께 한다는 것이다. 담임목사도 퇴장하지 않고 함께 복음 성가 ‘주만 바라볼지라’ 를 불렀다. 대부분의 회중은 오늘 받은 은혜를 되새기며 함께 찬양하였다. 찬양이 끝난 후 움직이는 회중을 보며 손을 흔들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퇴장하여 일일이 악수하지 않고 축복송을 함께 부르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참 신선해 보였다. 회중은 목사님과 인사도 하고 눈도 마주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한번에 3천여 명이 함께 예배하기 때문에 악수하기를 대신하는 모양으로 생각되어진다. 대부분의 중, 소형 교회에서는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보기에 참 좋은 모습이었다. 

 

    모두 가고 없는 예배당에서 담임목사는 성가대 석으로 와서 그들의 수고를 칭찬하고, 성가대이름을 부르며 “주영광”하고 선창한다. 성가대원은 웃으며 “화이팅!” 똑같이 2번 외친다.

    예배를 돕는 성가대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칭찬하며 외치는 구호는 성가대원들에게 행복한 외침의 고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제일교회의 예배순서의 핵심은 역시 예배가 회중에게 어떻게 하면 은혜를 더 끼칠 수 있을까 하는 세심한 배려이다.

    자칫 가벼운 예배순서가 될 수 있는 것을 담임목사의 진지한 영성이 담긴 짧은 기도로 분위기를 잡아갔으며 개회찬송과 성가대의 응답송, 2곡 연속 송영과 성도의 교제, 그리고 축복송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독특하고 세련된 순서라 생각한다. 다만 중,  소형교회에서는 어떻게 고쳐 쓸 수 있을까 행복한 고민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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