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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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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1-21 22:49 조회2,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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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아우구스부르그 신조의 배경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루터파 교회의 신앙고백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가지고 있다. 1529년 여름 (7월26일- 9월 14일)에 이미 쉬바바흐 신조 (Schwabacher Artikel)라고 알려진 교리 해설문이 루터와 멜랑히톤 등에 의해 준비되어 그해 10월에 제출된 일이 있었다.  그후 추가로 비텐베르그 신학자들인 루터, 멜랑히톤, 요나스, 부겐하겐에 의해 1530년 3월 27일 톨가우 신조(Tolgau Artikel)가 작센의 선제후 요한에게 제출하여 인준을 받게되었다. 그기에다 말부르크의 15개 조문이 참조되었다. 그후 모든 루터교회를 위한 공동신조가 될 수 있는 신앙고백문을 작성하가로 작정하였는데 이에 앞서 로마 교회 신학자 요한 엑크의 "404조 논제"라는 것이 공개되어 개혁자들의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멜랑히톤은 개혁자들의 변증으로서 28개 조항의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를 만들게 되었다. 

 

이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그 내용상으로 보아 쉬바바흐 신조가 그 첫 부분의 골자가 되었고 톨가우 신조가 둘째 부분의 중요 내용이 되었다. 루터는  당시 파문을 받은 중이었으므로 의회에 참석할 수 없었고 코부르그 (Coburg)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신으로 멜랑히톤의 자문에 응하였다. 비록 루터 자신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또 직접 쓰지는 않았으나 루터 자신의 입장과 신학을 잘 말해주는 글이다. 멜랑히톤은 1530년 6월 25일 칼 5세 황제에게 이 신앙고백서를 정식으로 봉정하기 바로 직전까지 교정과 수정을 가하였다. 일곱 명의 제후들과 자유도시 대표들에 의한 서명으로 비로서 이 고백서는 하나의 공적인 신앙고백서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다. 첫째, 루터의 강조점이 되었던 신앙에 의한 의인 (義認)으로서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강조, 자유의 소중성, 초대 기독교 정신의 계승이다.

둘째, 내용상으로 보아 결코 어떤 새로운 교리는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여러 세기를 걸쳐 교회가 가르쳐 온 기독교 신앙의 중심,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에 의한 의인 (義認)의 가르침과 성서의 기본적 교의 (敎義)를 재강조한 것이다.

셋째, 모든 항목의 시작은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es wird gelehret)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92)

 

아우구스부르그 신조의 내용

서문 (생략)

 

제1조 하나님에 관하여 ( Von Gott)

우리 교회는 일치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른바 하나님의 본질의 통일과 세 위(位)에 관하여 니케야 회의에서 정한 신조는 참된 것이므로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 즉 영원하시며, 형체가 없으시고, 분리되지 않으시고, 무한한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가지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자와  보존자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신적 본질이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본질과 능력을 가지시고, 아울러 함께 영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서령이신 세 위가 있다. 이러한 조항에 반대하는 마니교, 발렌티누스파, 아리우스파, 유노미어스파 그리고 마호멧교도들을 정죄하여야 한다.

 

제2조 원죄에 관하여  (原罪, Von der Erbsunde)

우리 교회는 또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아담이 타락한 이래 자연적인 방법으로 출생한 모든 인간은 다 죄를 지니고 태어난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신뢰하지 않으며, 정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죄가 세례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하며 영원한 죽음을 가져오게 한다. 우리 교회는 펠라기우스파를 정죄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생래 (生來)의 악이 죄라는 것을 부인하며 자기의 힘과 이성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192 Hans Lietzmann, Die Bekenntnisschriften der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s. 56-137

 

제3조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Von dem Sohne Gottes)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은 축복받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 났으며 한 위격 안에 분리될 수 없는 두 본성인 신성 (神性)과 인성 (人性)을 가지고 계신다. 이 한 분 그리스도께서는 참 신이시고 참 인간이시다. 그는 성부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을 화해시키시고 원죄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모든 실제적인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삼 일만에 확실히 부활하셨다. 그 후에 그는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영원히 통치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을 보내어 악마와 죄의 힘에 대항하여 그들을 지키게 하셨다. 사도신조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제4조 의인에 관하여 (義認, Von der Rechtfertigung)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인간의 업적과 공로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서 가능하고 우리의 죄를 죽음으로서 대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제5조 교직에 관하여 (Vom Predigtamt)

우리가 믿음을 얻기 위해서 복음을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해야 하는 교직이 제정되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기구를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장소와 시간 가운데 임하시게 되며,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앙을 일으켜 의로움을 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재세례파 (Wiedertaufer)를 정죄하는데 이들은 성령이 외적인 말씀없이 인간 자신의 준비와 공적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6조 새로운 복종에 관하여 (Vom neuen Gehorsam)

이 믿음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선(善)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결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죄의 용서와 의인(義認)이 믿음에 의하여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부 중 암부로시우스는 "우리의 공적없이 믿음으로서만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다"라고 말한다.

 

제7조 교회에 관하여 (Von der Kirche)

유일하고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복음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례전을 올바로 집행하는 성도의 회중이 교회이다. 교회의 참된 통일을 위해서는 복음의 가르침과 성례전의 집행에 관하여 일치하는 것으로 족하다. 인간의 전통, 곧 인간에 의하여 제정된 의식과 예식이 어디서나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제8조 교회란 무엇인가? (Was die Kirche sei)

교회가 원래 성도들과 참된 신자들의 회중이기는 하지만 현세에 있어서 많은 위선자들과 악한 사람들이 신자들 가운데 섞여 있게 되므로 악한 사람이 집행하는 성례전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 2)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대로다. 성례전과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악한 사람들에 의하여 주어진다 할지라도 효과는 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므로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의 가치에 따라서 효과있게 될 수는 없다. 우리 교회는 도나투스(Donatus)파와 이런 유(類)의 사람들을 정죄한다. 이들은 교회에서 악한 사람들의 교직을 허용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악한 사람들의 교직은 무익하고 전혀 무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9조 세례에 관하여 (Von der Taufe)

세례는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며,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아이들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참여하게 된다. 우리 교회는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유아들은 세례 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재세례파 사람들을 배격한다.

 

제10조 성만찬에 관하여 (Vom heiligen Abendmahl)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참으로 임재하며 성만찬을 받는 사람들에게 분배된다고 가르친다. 아우러 우리 교회는 이와 달리 가르치는 사람들의 주장을 거부한다.

 

제11조 죄의 고백에관하여 (Von der Beichte)

고백할 때에 모든 죄를 낱낱이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개인적인 사면(赦免, absolutioprivata)은 교회에서 보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시편 19: 12)라고 시편에 기록되어 있듯이 모든 죄를 열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제12조 회개에 관하여 (Von der Busse)

세례를 받은 후에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서 언제든지 그들이 회개할 때 죄의 용서가 있다. 그리고 교회는 이와 같이 회개하는 사람에게 사면해야 한다. 회개는 원래 다음의 두 가지 부분으로 성립된다. 하나는 통회인데 죄를 알게 되어 양심에 찔림을 느끼는 공포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복음이나 죄의 용서에서 유래하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는 것을 믿고 양심을 위로하며 공포로부터 양심을 해방시킨다. 이리하여 회개의 열매인 선행이 반드시 따라 오게된다.

 

우리 교회는 한 번 의롭게 된 사람이 성령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재세례파를 배격하며, 아울러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생에서 죄를 범할 수 없을만치 아주 완전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배격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후에 타락한 사람들이 비록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사면하지 않는다고 하는 노바티우스 (Novatiut)파도 정죄한다.

 

제13조 성례전 사용에 관하여 (Vom Gebrauch der Sakrament)

성례전은 사람들 가운데서 단순히 신앙고백의 표시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표시와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또한 성례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일깨우고 굳게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전을 통하여 주어지고 선언되는 약속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더해지도록 역시 성례전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성례전이 그의 외적인 행위 (ex opere operato)로써 의롭게 한다고 가르치며 성례전을 사용할 때 죄의 용서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을 배격한다.

 

제14조 교회의 직제에 관하여 (Von Kirchenregiment)

우리교회는 누구나 정식으로 부름을 받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교회에서 공적으로 가르치거나 성례전을 집행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제15조 교회의 규정들에 관하여 (Von Kirchenordnungen)

특별한 성일과 축일 같은 것은 죄와는 관계 없이 지킬 수 있으며, 또한 교회내의 평화와 좋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익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지키는 것이 마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처럼 여겨져 양심을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달래며 그의 은총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고 또한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인간의  전통은 모두 복음과 믿음의 교리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역시 경고한다. 그러므로 은총을 자력(自力)으로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나,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식물이나 특정일 같은 것에 관한 서약과 전통은 무용하며 복음에 배치되는 것이다.

 

제16조 사법 (司法)과 세속 직무에 관하여 (Von der Polizei und weltichem Regiment)

공민 생활에 대한 합법적인 규정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업적이다. 크리스챤이 공직을 가지고 재판장이 되거나, 국법이나 다른 현행 법령에 따라 사건을 판결하고, 정당한 벌을 주고, 정당한 전쟁에 종군하고, 군인으로서 봉사하고 법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소유하고 재판관이 요구할 때 서약하고 또한 자녀들을 혼인하게 하는 일 등을 모두 다 정당한 일이다. 우리 교회는 크리스챤에게 이러한 공직을 금하는 재세례파를 배격한다.

 

제17조 심판을 위해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Von der Wiederkunft Christizum Gericht)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에 심판하시기 위하여 나타나셔서 모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는 경건하고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실것이지만 불경건한 자들과 악마들에게는 끝없는 고통을 받도록 정죄하실 것이다.

 

우리 교회는 정죄받은 자들과 악마에 주어지는 징벌에 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재세례파 사람들을 배격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전에 경건한 자들이 세상나라를 점유하고, 불경건한 자들은 어디서나 억압당하리라고 하는 유대교적인 견해를 유포시키는 사람들도 역시 정죄한다.

 

제18조 자유의지에 관하여 (Von freien Willen) 

인간의 의지는 사회 정의를 택하고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일들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어느정도 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성령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의(義), 곧 영적인 의를 행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받을 때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모든 사람은 이성의 판단 기능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이 세상에 관계된 일이지 하나님에 관계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펠라기우스파 및 그와 유사한 파들을 정죄한다. 그들은 성령 없이 자연적인 능력만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또한 행위의 본질에 미칠 수 있는 정도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행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제19조 죄의 원인에 관하여 (Von Ursache der Sunde)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지만, 죄의 원인은 악한 자 곧 악마와 불경건한 자들에 의하여 된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악인의 의지는 하나님을 배척한다.

 

제20조 믿음과 선행에 관하여 (Vom Glauben und  guten Werken)

우리의 행위는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거나 죄의 용서, 은총 및 의를 얻도록 하지 못한다. 이런 것은 홀로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기 위하여 중보자와 화해자가 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은총 가운데 받아진다는 것을 믿을 때 그 믿음에 의해서만 얻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행위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 된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공적과 은총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선행으로 은총을 얻는다는 기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선(善)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다만 믿음 뿐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성령이 믿음을 통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지고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의향을 가지게 된다. 암부로시우스는 "믿음은 선한 의지와 바른 행위의 어머니이다"라고 말한다.

 

제21조 성자 숭배에 관하여 (Vom Dienst Heiligen)

성자들의 유물은 우리가 각기 맡은 직책에 따라 그들의 믿음과 선행을 본받도록 우리 가운데 기념으로 둘 수 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 앞에 중보자, 화해자, 대제사장 및 중재자로서 그리스도 한 분만을 두며, 성자에게 기도드리거나 성자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기도드려야 한다. 그는 우리의 기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제22조 성만찬의 두 형태에 관하여 (Von beider Gestalt des Sakrament)

성만찬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 두 가지를 다 평신도에게 주도록 되어 있다. 이런 관습을 따르는 것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26: 27)는 주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이 말씀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마셔야 할 잔에 대하여 분명히 명령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사제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라고 누구든지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0절 이하에서 모든 회중이 두 가지를 다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한 예를 들어주고 있다. 이 관습이 교회에서 오랜 동안 존속해 왔으나 어느 때에 또는 누구에 의하여 변화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제23조 사제의 결혼에 관하여 (Vom Ehestand der Priester)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사제들에 관하여 공통적인 불평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교황 피우스2세 (Pius Ⅱ, 1458-1464년)가 사제들에게 결혼을 금한 어떤 이유가 있었으리라 보겠다. 그러나 플라티나 (Platina, 이탈리아의)는 이런 취지로 기록해 준다. 우리 사제들은 이러한 공공연한 추문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아내를 얻었으며, 결혼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합당한 일이라고 가르쳤다. 첫째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 2절과 9절에서 말하기를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라"고 하며 또한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한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9장 1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한다"고 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독신 생활로 지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번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창 1: 28).

더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와 역사 (役事)가 없이 인간의 힘으로 그 자신의 피조성 (被造性)을 변경시킬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적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을 해야 한다. 인간의 어떤 법이나 서약도 하나님의 계명과 제돌를 무(無)로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사제들은 아내를 얻는 것이 그들을 위하여 합당한 일이라 가르친다.

 

고대의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결혼한 남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전서 3장 2절에서 말하기를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 도며"라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불과 400년전에서부터 비로서 사제는 독신생홀로 지내야 한다고 무리하게 강요받았다.

 

제24조 미사에 관하여 (Von der Messe)

우리들의 교회는 미사를 폐기했다고 그릇되게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은 미사가 우리 가운데서 보존되고 있으며 최고의 존경을 받으면서 거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관습적인 의식들도 보존되고 있으며, 다만 라틴어로 된 노래 부분들만이 여기 저기 독일어로 옮겨졌을 뿐이다. 그것은 민중을 가르치기 위하여 첨부한 것이다.

 

미사가 부끄러울 정도로 속화했고 또한 돈벌이를 위하여 이용되어 왔다는 것이 오랜 동안 선량한 사람들의 공공연하고 매우 슬픈 불평이 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런 악폐 (惡弊)가 모든 교회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고, 어떠한 사람들에 의하여 미사가 단순히 수입과 급료만을 위하여 거행되며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법규에 어긋나게 미사를 행하는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성만찬을 적합하지 않게 취급하는 사람들을 엄히 경고하여 말하기를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 11: 27)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제들이 이러한 죄에 대하여 경고했을 때 보통미사(missa privata, 사제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매일 행해지는 미사)는 어느 것이나 돈벌이를 위해서 밖에 거행되지 않음으로 우리 가운데서는 폐기되고 말았다.

 

제25조 죄의 고백에 관하여 (Von der Beichte)

우리들의 교회는 죄의 고백에 관하여 죄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고, 또한 모든 죄를 세심하게 열거하는 번뇌로써 양심을 무겁게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모든 죄를 세밀히 서술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세밀히 서술된 죄에는 아무 죄도 용서받지 못한다면 양심은 전혀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다. 많은 죄들은 볼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고대 저술가도 죄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고 증언한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네 죄는 기도로써 참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라. 네 과오는 혀로 하지 말고, 네 양심의 기억으로 고백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 법규 주석서 난외의 주(註)에도 (참회에 관하여: De Poenitentia, Dist. V.chap. "Consideret")죄의 고백은 성서에 의하여 명령된 것이 아니고 교회에 의하여 제정된 인간의 권리에  속한 것으로 되어있다.

 

제26조 음식물의 구분에 과하여 (Von Unterschied der Speise)

 

음식물의 구별이나 그와 비슷한 전통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데 유익한 업적이고 또한 죄를 보상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종교제도와 새로운 축일과 새로운 금식이 제정되었고 교회의 교사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필요한 예배로서 이러한 행위를 엄격히 시행하였다.

 

여러 가지 전통에 대한 이런 견해로 인해 교회 안에 많은 해로운 일들이 생겨났다.

첫째는 은총의 교리와 믿음에 의에 관한 교리가 이것으로 불분명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러한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흐리게 하였다. 왜냐 하면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훨씬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전통은 양심에 더 큰 휘험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모든 전통을 다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전통의 준수가 필요한 예배 행위 가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사들은 우리가 인간의 전통의 준수로 인하여 은총을 얻거나 의롭게 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준수가 필요한 예배 행위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27조 수도사의 서약에 관하여 (Von Klostergelubden)

 

수도사의 서약에 대해서 말하자면 원래 어거스틴 당시 수도원은 자발적인 공동 집단체였다. 후세에 이르러 규율이 퇴폐 (頹廢)해 졌을 때 그 규율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서약이 첨가되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수도원이 짜임새 있게 설계된 감옥처럼 되어 버렸다. 그 후 점차로 서약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지켜야 할 종교상의 의식들이 가하여 졌다. 이런 속박의 조건들이 교회의 법규에 반하여 많은 미성년자들에게도 굴레를 씌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불행과 부덕스러운 추문이 생기게 되었다. 지난날에는 수도원들이 성서 연구의 학원이었고  기타 유익한 학문의 전당이었다. 그리고 목사와 감독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배우기 위하여 수도원에 모여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도원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얻기 위하여 설정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우리들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결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즉 독신생활을 하기에 합당치 못하는 사람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것은 어떤 서약도 하나님의 명령과 제도를 무효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아내를 두고...." (고전 7: 2)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단순한 명령일 분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제도이다.

 

둘째로 청년 남녀들은 그들의 판단력이 성장하기 전에 이미 서약하도록 설득을 당하며, 때로는 강제로 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자발적으로 심사숙고하여 서약하는 것이 아닐진대, 그 서약의 의무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서약의 본질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는 만인에게 허락되어 있다.

 

교회의 많은 법규들은 15세 이전에 행한 서약을 무효로 돌리고 있다. 수년을 더 추가하여 18세 전에 행하는 서약을 금하고 있다. 대다수의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본래 그들의 대부분은 적령기에 도달하기 전에 서약을 했기 때문이다.

 

제28조 교권 (敎權)에 관하여 (Von der Bischofen Gewalt)

감독의 권한에 관하여 과에 큰 논쟁이 벌어졌었고 감독 가운데서 더러는 교회의 힘과 무력 (武力)을 부당하게 혼동하기도 하였다. 이런 혼동으로 인하여 큰 전쟁과 소동이 일어났다. 다른 한편 교황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진 이른바 열쇠의 힘에 의지하여 예배의 새로운 형태를 제정하고, 사면 선언의 보류와 포학 (暴虐)한 파문에 의하여 양심을 괴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세상의 왕국을 마음대로 이양하며 제왕의 주권을 탈취하려고까지 시도하였다.  오래 전부터 경건한 학자들에의해 이런 비행들이 규탄받아 왔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력과 세속정부의 권력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권력은 복음을 증거하고 성례를 집행할 사명을 위임받고 있다. 교권이 다른 분야의 직무를  침범하거나, 이 세상 나라를 변혁시키거나 위정자의 법률을 폐지하거나, 합법저인 복종을 폐기시키거나, 어떤 행정 규정이나 제약에 관계된 판결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어떤 형태의 국가가 세워져야 할 것이라는 점에 관한 법률을 위정자에게 지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국가 행정권은 교회의 통치권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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