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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목사_전집_① 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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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5-11-14 23:19 조회43,586회 댓글9건

첨부파일

본문

 

이용도 목사 전집 ①서간집

 

苦 는 나의 先生

 

 

이용도 목사 전집 ① 서간집 苦 는 나의 先生

2 판 1 쇄 발행 : 2004 년 7 월 5 일

지은이 : 이용도 

엮은이 : 변종호 

펴낸이 : 이민수

 

펴낸곳 : 장안문화

등록 제 6-0044 호 (1979 년 4 월 4 일 )

 

주소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03-19 베델하우스 403 호 Tel 2232-1277 / Fax 2232-2800

http://www.jbooks.co.kr jbooks@jbooks.co.kr

 

값은 표지 뒷면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ISBN 89-85137-03-4 (04230) ISBN 89-85137-02-6 ( 세트 )

 

 

이용도 목사 전집 ①서간집

 

苦 는 나의 先生

 

장안문화

 

 

 

발간사

 

『 이용도목사전집 』 2 판을 발간하며

 

한국교회 역사의 수많은 인물 중 가장 독특한 신앙가이며 가장 열렬한 전도자 중의 한 분이었던 이용도 목사는 33 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커다란 신앙의 유산을 남기었습니다 . 일찍이 일제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외쳤으나 정신과 신앙의 독립이 더 시급함을 깨달았던 이용도 목사는 곧 영적인 독립운동을 벌였고 목을 찢고 가슴을 터트려 영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말씀은 그가 남긴 글을 통해서 70 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적인 자유를 갈구하는 교인들에게 동일한 감격과 생명력을 주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변종호 목사의 필생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 변 목사는 이용도 목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34 년 『 이용도목사서간집 』 을 처음 발간했고 이후 일기 , 저술집 , 연구논문 등을 50 여 년에 걸쳐 발간해왔고 1986 년 『 이용도목사전집 』 (10 권 ) 을 내놓았습니다 .

 

이러한 역작인 『 이용도목사전집 』 은 1993 년 장안문화사에서 쇄를 바꾸어 발간되다가 , 이용도 목사 70 주기에 즈음하여 개정판이 기획되어 , 금번 『 이용도목사전집 』 2 판으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

 

『 이용도목사전집 』 2 판은 초판의 글들을 선별하여 , 서간집 , 일기 , 저술집과 전기 , 추모집 등 전 5 권으로 구성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새로운 내용들을 보충시켰습니다 . 우선 서간집의 경우 1934 년판에만 수록되었던 편지들을 찾아서 추가시켰습니다 . 또한 이용도 목사의 친구로서 선교사였던 피터스 (Peters • 皮道秀 ) 목사가 1936 년 발표한 이용도 목사 전기 ‘Simeon, a Christian Korean Mystic’ 을 전기에 포함시켰는데 , 변종호 목사가 저술한 기존의 전기와 보완적인 내용이어서 전기가 새로운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이용도목사전집 』 2 판에서는 내용의 정확성과 친밀성을 제고시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 먼저 원본에 충실키 위해 , 서간집은 1934 년판과 1969 년판 , 일기는 1966 년판 , 저술집은 1975 년판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 본문의 한자어 중 일상적인 현대어가 있는 경우 당시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대치시켰습니다 . 이런 경우 원문과 비교가 필요할 경우에는 한자를 [ ] 안에 병기하였습니다 . 그러나 1930 년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문장의 술부 등은 대부분 그대로 두었습니다 . 또한 서간집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각주로 달았고 초판에서는 익명으로 표기되었으나 자료들을 통하여 내용 확인이 가능한 사항들은 최대한 실명화했습니다 . 또한 변종호 목사가 소장했던 사진들과 피터스 목사가 제공한 새로운 사진들을 본문 내에 배열하였습니다.

 

『 이용도목사전집 』 2 판의 발간이 이용도 목사의 신앙과 사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이용도 목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 이용도목사전집 』 2 판의 발간을 위해서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셨습니다 . 윤춘병 감독님 , 김길송 목사님, 피터스 목사님, 임인철  권사님, 성백걸 교수님, 김형기 교수님 등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2004 년 6 월

장안문화

이민수

 

 

 

머리말

 

시무언 ( 是無言 ), 말하지 않은 것이 좋다 . 고 이용도 목사님 ! 평생 이것을 계명으로 삼으시고 스스로 조심하시며 사람에게 향하여 경계하셨으니 , 내 지금 또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이시여 , 이 책 한 권이 이 강산의 기독신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줌이 있는 책 되게 하옵소서 . 아멘 .

 

처음에 나는 50 여 페이지의 서문을 썼습니다 . 모 선생님에게도 서문을 청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도 저도 다 그만두었습니다 . 그저 아무 소개도, 부가도 하지 않고 고인의 새빨간 심장의 고동과 함께 쓰여진 그 글만을 삼가 세상에 내어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어느덧 가버리신 이용도 목사님을 그리워 애타하시고 눈물 흘리시며 목사님을 한 번만 더 보고 목사님의 음성을 한 번만 더 듣기를 원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이 강산에 적지 않게 많음을 나는 압니다 . 이 책은 그들의 애타는 마음을 시급히 위로 격려하려는 응급적 출판물이올시다.

 

어떠한 저작인들 저자로서의 불만이 없을 수가 있을까마는 이 책 출판에 당하여 나의 불만 , 나의 불급감은 가슴이 아프리 만치 큽니다 . 아직도 본편 이상으로 많을 각처에 산재한 서간을 다 모으지 못한 불만 , 내 생활이 너무 일몰하여 이 끝 저 끝에 오류가 많은 것 등 참으로 안타까움도 많고 아쉬움도 많습니다.

 

1933 년 10 월 4 일 아침에 의외의 부보에 접하고 호곡제읍 하다가 서거하신 원산으로 급히 달려가 흙 냄새 새로운 고인의 유택을 야반 12 시에 찾아가서 애통대곡 하던 그때로부터 나의 심중에는 ‘ 이제는 …… 하여야 하겠구나 !’ 하는 각오와 결심이 생긴 바 있었으니 아마도 그 순간이 고인의 서간을 수집하려는 염원 발동의 최초의 순간이리라고 믿습니다.

 

틈이 있을 때마다 , 방학 때마다 있음직한 지소와 인물을 찾아 사리원, 평양, 안주, 해주, 원산 등지를 수삼차 왕래하면서 이 사람은 직접 방문하고, 저 사람은 간접으로 애원하는 등 별 고심, 별 구걸을 다해가며 수집한 것이 여기에 실린 90 통의 서간입니다 .

 

나는 이 책이 조선내의 기독교 각파 신자에게 다 읽혀지기를 바라고 또한 믿습니다 . 이용도 목사를 구하시려는 이, 조선에서 사랑의 사도를 만나보시려는 이, 이 강산에 성자가 한 분 나기를 기원하는 이, 그리고 또 내 생활이 너무도 물편으로만 기울어짐을 슬퍼하며 영이 천계에 살기를 원하시는 이 등, 적어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동 ( 動 ) 하고 정 ( 靜 ) 하며 생 ( 生 ) 하고 사 ( 死 ) 하려는 이는 한 번만은 이 책을 읽어 주시기를 바라오며 또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 읽으시면 이 책을 읽기 전의 마음과는 달라진 마음을 새로 얻으실 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주강생 1934 년 5 월 22 일

창천리 역사에서

편자 변종호

 

 

 

이용도의 현대적 의미

 

성백걸 박사 ( 한국기독교사상사연구소장 )

 

 

새 『 이용도목사전집 』 이 던져줄 빛

 

  18 세기 말 조선천주교의 설립과 19 세기 말 한국개신교의 형성 이후 지난 2 세기를 통해 이 땅에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전개해 온 한국기독교는 이제 21 세기를 맞아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 여기서 우리는 앞선 시대에 기독교 복음에서 새 비전을 찾고 그 실현을 위해 헌신 (commitment) 했던 신앙 선배들의 자취를 뒤돌아보며, 그들이 던져주는 현대적인 빛을 헤쳐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이번에 장안문화의 수고에 의해 새롭게 정리되어 발행되는 『 이용도목사서간집 』 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1933 년 10 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새 인격 형성을 위한 복음운동에 자기 삶을 투신했던 이용도 목사가 별세한 후, 다음해인 1934 년에 그의 애제 ( 愛弟 ) 변종호는 이용도 목사와 신앙동지들 사이에 오고 갔던 흩어진 서신들을 모아 『 이용도목사서간집 』을 발간하는 열성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 1953 년에는 변종호에 의해 『 이용도목사서간집 』 ( 심우원 ) 재판이 간행되었는데, 이때 초판에 들어 있던 편지들, 특히 이용도 목사가 받은 많이 편지들이 빠지게 되었다 . 그 의도와 기준은 이용도 목사에 대한 세간의 터무니없는 비판 여지를 줄이려고 한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또한 1966 에는 신생관에서 『 이용도목사일기 』 가, 1975 년에는 역시 신생관에서 『 이용도목사저술집 』 이 발행되었다 . 1986 년에는 변종호 편저로 초석출판사에 『 이용도목사전집 』 ( 전 10 권 ) 이 간행 되었고, 1993 년에는 이것이 다시 출판사를 장안문화사로 바뀌어 나왔다.

  이번에 5 권으로 새로 정리되어 발행되는 『 이용도목사전집 』 의 특징은 , 우선 , 그간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보충되었다는 것이다 . 특히 1934 년의 『 이용도목사서간집 』 초판에 들어갔다가 1953 년 재판에서 빠진 편지들이 이번에 모두 수록되었는데 , 그 내용을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이용도 목사의 행적과 신앙동지들의 교류 범위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 또한 이번 판에서는 비록 원래 자료는 아니지만 , 변종호 목사의 편집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춘 재편집의 묘를 살려 일반인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이 새로운 『 이용도목사전집 』 이 앞으로 한국교회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던져줄 빛을 살펴보도록 하자 . 즉 이용도 목사가 비추어주고 있는 현재와 미래적인 빛의 방향을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한국적이고 우주적인 기독교의 한 원형

 

  이용도가 지니고 있는 빛은 , 우선 조선적이고 우주적인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적이고 우주적인 기독교의 새로운 지평을 비추어주고 있다 . 한국교회의 역사가 40-50 년의 연륜을 지니고 , 서구 근대문명과 기독교의 실체에 대해 깊고 넓게 파악하면서 , 근대 가치와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우리의 역사상황에서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지니고 철저하게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 우리 민족의 고유한 종교성과 영성이 근대 가치와 복음의 진리와의 융합과 합일을 통해 제 3 의 새로운 창조적인 지평의 한 원형으로 출현하게 된다 . 이것을 ‘ 한도한기론 ’( 韓道韓器論 ) 으로 부를 수 있는데 , 그 본질적인 특성이 조선적이고 우주적인 기독교의 추구로 나타났다 . 이점에서 이용도가 지니고 있는 조선적이고 우주적인 영성과 , 그에 바탕을 두고 출현한 영적이고 우주적 (Spiritual and Cosmic) 인 기독교의 빛은 현재와 미래에 한 원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복음과 신앙의 ‘ 본말 ( 本末 )’ 을 바로 잡는 빛

 

 현대 한국기독교의 큰 병폐는 신앙의 본과 말 혹은 실체 내용과 외적 형식의 혼동에 걸려 있다는 진단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복음의 본질과 신앙생활의 참된 의미가 흐려져 있는 현대이다 . 이 점에서 벌써부터 무엇이 중요하고 , 무엇이 부차적인지 헷갈리고 있던 1930 년대의 한국교계에 대해 던졌던 이용도의 예언자적인 빛은 오늘날도 여전히 환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 용도는 사람은 살아 있는 생명체요 생명은 사랑을 그 본질로 하고 숨쉬고 있는데 , 이 사랑은 신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본다 . “ 사랑은 사람의 생명이라 . 고로 사랑은 곧 , 사람 그것 ” 인데 ,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신앙을 통해서 온다는 것이다.

 

 

물질문명과 얽힌 서양적 기독교를 넘는 동양적 기독교의 여명

 

 이용도는 동양종교 문화권에서 태어난 신앙인으로서 물질문명과 얽힌 서양기독교의 종말을 내다보며 동양의 풍부한 정신적 유산에 뿌리내린 동양적 기독교의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 성경과 함께 불경과 도덕경도 읽을 수 있었던 그는 “ 서양의 기독교는 동적 ( 動的 ), 동양의 기독교는 정적 ( 靜的 ). 西洋 = 物 - 現世的 - 形式 - 外的 , 東洋 = 靈 - 內的 - 神秘 . 西洋 人 은 外的 의 것을 더 찾았다 . 이제 신비적인 것을 동양인이 찾아야겠다 . 찬송보다 기도 ! 기쁨보다 눈물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음은 무슨 이유인가 . 동양에서 서양적 기독교는 실패 . 서양인은 공관복음적 , 동양인은 요한복음적 . 서양의 미완성품인 기독교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심령방면 신비방면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겠다 . 동양적이란 것은 요한 발견적인 것이다 ” 라고 했다 .

 

 

자연의 위기를 극복하는 생태적 기독교

 

 용도의 신앙체험과 생명력 있는 생활의 힘은 자연 , 그것도 산 속에서 산과 더불어 호흡하며 얻은 것이다 . 그를 결정적으로 교회개혁적 부흥사로 내몬 것도 1928 년 강원도 금강산의 백정봉의 기도체험이었고 , 1931 년 아현성결교회의 집회도중 쫓겨났을 때에도 그를 받아준 것은 인왕산이었으며 , 그 후에도 용도가 지치고 상처를 입었을 때마다 찾아간 곳은 산의 품이었다. 용도는 새에게 설교했던 프란치스코처럼 “ 자연은 나의 친구 . 믿을 사람도 없고 사귈 사람도 없을 때 하늘 , 산 , 흐르는 물 , 공중의 별 , 밤의 산과들 초목 , 곤충 , 새들 , 이는 다 - 자연에 속한 것으로 나의 친구가 되나니 , 나는 늘 이 친구를 보려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 ” 라고  했고 , “ 자연은 나의 애인의 집으로 하고 금년에 나는 거기서 주님으로 더불어 살리로다 ” 라고 다짐했다.

 

 

예술적인 영성과 기독교의 멋진 지평

 

 21 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라고 누구나 말하고 있다 . 실제로 , 우리 시대는 사회정치적 관심보다는 어떤 면에서 예술적인 감성 ,  예술적인 혼 , 예술적인 영성이 새로운 차원의 물결을 생성시키는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 이점에서 예술적 신앙인으로서 이용도가 지니고 있는 세기적인 빛이 있다 . 그는 시 ( 詩 ) 를 그리스도 곧 정의와 사랑의 신에 흠뻑 미쳐서 거기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율동으로 보았다 . 그래서 “ 기도는 곧 시 ( 詩 ) 입니다 ”, “ 신앙이 깊으면 그의 모든 말이 다 시다 ” 라고 인식했다 . 또한 , 협성신학교 때부터 가야금을 즐겨 탔던 이용도는 음악 속에서도 종교적 차원을 발견했으며 , 그 소리의 나래를 타고 하느님의 품속에 들어가서 신비의 나라를 체험했다 . 그 밖에도 그림과 연극과 가극예술에서 역시 종교의 세계를 느끼며 예술과 종교의 일치된 지평을 열고 있던 이용도였다 . 그러면서도 그는 “ 진리는 아무런 둔한 손끝으로라도 잘 표현할 수 있다 . 그러나 미 ( 美 ) 는 아름다운 손에 의해서만 그 형 ( 形 ) 이 정제 ( 整齊 ) 된다 ” 고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는데 , 이런 점에서 용도를 통해 정제되어 나타난 인생과 종교의 아름다운 예술적 세계는 그 현재적 의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새 창조의 기도와 생활의 일치

 

 하지만 , 무엇보다도 이용도에게서 현재 기독교가 배워야 할 것은 그가 터득하고 있는 기도의 깊이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 기도야말로 용도가 가장 강조한 신앙의 필요충분조건이었으며 , 용도야말로 기도의 사람이요 이 땅에 살아있던 기도 그 자체였다 .  용도다운 모든 사상과 활동의 진원지가 기도였는데 , 그는 기도를 자기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다 . 그는 기도를 단지 하느님께 인간의 소원을 올리거나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정도에서 이해하지 않는다 . 용도의 기도는 그것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 그때 기도는 사람의 생명이 새로 태어나는 신비로운 창조적 사건의 장소이다 . 깊은 기도 속에서 세상의 힘든 삶으로 지치고 오염된 사람의 생명이 기쁨과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의 생명을 얻어 새로 태어나게 된다 . 용도는 이것을 ‘ 생명의 역환 ’  과정으로서 신앙생활과 ‘ 생명의 역환소 ( 易換所 )’ 로서 기도로 말한다 .

 이렇게 역사적인 빛을 지니고 있는 이용도 목사를 우리 시대에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이번 『 이용도목사전집 』 출판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 그 노고를 치하한다 . 부디 이 땅에 시무언 ( 是無言 ) 이용도 목사의 새로운 빛에 의해 수많은 생명과 사랑의 꽃들이 만개하기를!

 

2004 년 6 월

 

 

차례

 

발간사 • 4 

머리말 • 6

이용도의 현대적 의미 • 8 

차례 • 12

 

<1 부 : 1930 년 >

제 1 장 冬

김영선 씨에게 1 월 • 17 

박정수 씨에게 1 월 • 17

김광우 씨에게 1 월 17 일 • 18

박정수 씨에게 1 월 • 20 ♧

 

제 2 장 春

이춘화 씨에게 5 월 9 일 • 24 

김익선 씨에게 5 월 18 일 • 24

 

제 3 장 秋

김광우 씨에게 10 월 11 일 • 26 

김광우 씨에게 10 월 21 일 • 28

김광우 씨에게 11 월 7 일 • 28 

김광우 씨에게 12 월 24 일 • 31

 

<2 부 : 1931 년 >

제 1 장 冬

김예진 씨에게 3 월 4 일 • 35 

변종호 씨에게 3 윌 6 일 • 35

변종호 씨에게 3 월 9 일 • 36 

김정일 씨에게 3 월 • 36

김예진 씨에게 3 월 4 일 • 37 ♧ 

이태순 씨에게 3 월 24 일 • 38 

이종규 씨에게 3 월 25 일 • 39

김정일 씨에게 3 월 26 일 • 41

이덕흥 씨에게 3 월 30 일 • 43 ♣ 

김광우 씨에게 3 월 30 일 • 44

 

제 2 장 春

변종호 씨에게 4 월 3 일 • 45

이태순 씨에게 4 월 6 일 • 45 

김유순 씨에게 4 월 6 일 • 46 

이용채 씨에게 4 월 17 일 • 46

이태순 씨에게 4 월 20 일 • 49

이태순 씨에게 6 월 11 일 • 50 ♧ 

이덕흥 씨에게 6 월 27 일 • 51

 

제 3 장 夏

장양옥 씨에게 7 월 10 일 • 52

변종호 씨에게 7 월 18 일 • 52

장양옥 씨에게 7 월 24 일 • 53 ♣ 

이태순 씨에게 8 월 20 일 • 54

이태순 씨에게 9 월 23 일 • 54

 

제 4 장 秋

 

변종호 씨에게 10 월 5 일 • 57 

이덕흥 씨에게 10 월 7 일 • 57 

이호빈 씨에게 10 월 7 일 • 58

이호빈 씨에게 10 월 초 • 58 

이천농 씨에게 10 월 13 일 • 61

이태순 씨에게 10 월 14 일 • 62 ♣

이태순 씨에게 10 월 25 일 • 63 ♧ 

김인서 씨에게 10 월 중 • 64

양마리아 씨에게 10 월 22 일 • 67

이춘화 씨에게 10 월 23 일 • 67 

변종호 씨에게 10 월 28 일 • 68 

변종호 씨에게 11 월 4 일 • 68

이태순 씨에게 11 월 4 일 • 69 ♣ 

이태순 씨에게 11 월 초 • 69 

김교순 씨에게 11 월 14 일 • 70

변종호 씨에게 11 월 중순 • 72 

평양 형제들에게 11 월 30 일 • 74 

이태순 씨에게 11 월 말 • 75

이종현 씨에게 12 월 6 일 • 77

 

<3 부 : 1932 년 >

제 1 장 冬

김예진 씨에게 1 월 5 일 • 83 

부모님께 1 월 11 일 • 83

이순례 씨에게 1 월 25 일 • 84 ♧

평양 형제들에게 2 월 2 일 • 85 ♧ 

이호빈 씨에게 2 월 초 • 87 

변종호 씨에게 2 윌 6 일 • 88

이덕흥 씨에게 2 월 28 일 • 88 

이우원 씨에게 3 월 4 일 • 89 

이덕흥 씨에게 3 월 9 일 • 90

김 순 씨에게 3 월 10 일 • 91 

장양옥 씨에게 3 월 30 일 • 91

 

제 2 장 春

김광우 씨에게 4 월 12 일 • 94 

평양 형제들에게 4 월 19 일 • 96

김예진 씨에게 4 월 20 일 • 98 

김교순 씨에게 4 월 20 일 • 100 

이태순 씨에게 4 월 25 일 • 101 ♣

평양 형제들에게 5 월 • 102

평양 형제들에게 5 월 20 일 • 102 

김정일 씨에게 5 월 26 일 • 106

이호빈 씨에게 5 월 26 일 • 110 

이 ○ 씨에게 6 월 15 일 • 112

 

제 3 장 夏

이태순 씨에게 7 월 12 일 • 114 

송창근 씨에게 7 월 29 일 • 116

『 신앙생활 』 지 ( 誌 ) 7 월호 • 119

이종현 씨에게 7 월 22 일 • 121 

원탄실 씨에게 8 월 7 일 • 124

안성결 씨에게 8 월 21 일 • 125 

이호빈 씨에게 9 월 16 일 • 126 

안성결 씨에게 9 월 24 일 • 127

안성결 씨에게 9 월 25 일 • 128 

김인서 씨에게 9 월 22 일 • 129 

옥어진 씨에게 9 월 23 일 • 129

 

제 4 장 秋

이천농 씨에게 10 월 15 일 • 130

이호빈 씨에게 10 월 • 131

김영선 씨에게 10 월 26 일 • 133 

이종현 씨에게 11 월 11 일 • 134

강정숙 씨에게 11 월 12 일 • 134 

변종호 씨에게 11 월 16 일 • 137 

옥어진 씨에게 11 월 • 137

『 신앙생활 』 지 ( 誌 ) 11 월호 • 139

주선행 씨에게 겨울 • 140

김경숙 씨에게 11 월 24 일 • 143

김인서 씨에게 11 월 23 일 • 144 

김인서 씨에게 11 월 24 일 • 144 

김인서 씨에게 11 월 28 일 • 146

김인서 씨에게 12 월 17 일 • 150 

주선행 씨에게 12 월 • 152

김진영 씨에게 12 월 20 일 • 155

김진영 씨에게 12 월 24 일 • 155 

옥어진 씨에게 12 월 30 일 • 156 

이천농 씨에게 12 월 30 일 • 157

이종현 씨에게 연말 • 157

 

<4 부 : 1933 년 >

제 1 장 冬

이영철 씨에게 1 월 5 일 • 162 

PYH 씨에게 2 월 2 일 • 162

강정숙 씨에게 2 월 18 일 • 162

김희학 씨에게 2 월 20 일 • 163 

이조근 씨에게 2 월 20 일 • 163 

김희학 씨에게 3 월 • 164

이영은 씨에게 3 월 10 일 • 164 

이덕흥 씨에게 3 월 19 일 • 166 

이우원 씨에게 3 월 26 일 • 166

 

제 2 장 春

이종현 씨에게 4 월 4 일 • 168

김영선 씨에게 5 월 1 일 • 169 

변종호 씨에게 5 월 1 일 • 170 

주선행 씨에게 5 월 12 일 • 170

부모님께 7 월 27 일 • 171

 

<5 부 : 받은 편지 >

제 1 장 1929 년

박재봉 씨로부터 1929 년 여름 • 173

 

제 2 장 1930 년

박정수 씨로부터 1930 년 여름 • 175

 

제 3 장 1931 년

김예진 씨로부터 1931 년 1 월 23 일 • 178 

원 서 씨로부터 1931 년 2 월 8 • 179 ♣

한 복 씨로부터 1931 년 6 월 11 일 • 180 ♣ 

김 순 씨로부터 1931 년 7 월 3 일 • 182 ♣ 

김 선 씨로부터 1931 년 7 월 • 182 ♣

이 선 씨로부터 1931 년 7 월 • 184 ♣ 

박 신 씨로부터 1931 년 8 월 20 일 • 186 ♣ 

주선행 씨로부터 1931 년 9 월 23 일 • 187 ♣

변종호 씨로부터 1931 년 10 월 4 일 • 189 ♧ 

OZK 씨로부터 1931 년 11 월 10 일 • 196 ♣ 

김성실 씨로부터 1931 년 11 월 • 197 ♣

김성실 씨로부터 1931 년 11 월 16 일 • 197 

김 ○ 씨로부터 1931 년 12 월 27 일 • 198 ♣

 

제 4 장 1932 년

박 SC 씨로부터 1932 년 1 월 • 200 ♣

장 성녀 씨로부터 1932 년 3 월 • 201 ♣

이호빈 씨로부터 1932 년 4 월 5 일 • 204 

송창근 씨로부터 1932 년 4 월 15 일 • 205 

김인서 씨로부터 1932 년 4 월 17 일 • 205

이호운 씨로부터 1932 년 6 월 25 일 • 206 

원 서 씨로부터 1932 년 7 월 3 일 • 207 ♣ 

김광우 씨로부터 1932 년 8 월 22 일 • 208 ♧

안성결 씨로부터 1932 년 9 월 25 일 • 212 ♣ 

이호빈 씨로부터 1932 년 10 월 6 일 • 213 

송창근 씨로부터 1932 년 10 월 19 일 • 214

PRH 씨로부터 1932 년 10 월 • 215 ♣

PCS 씨로부터 1932 년 10 월 27 일 • 221 ♣ 

박 감 씨로부터 1932 년 11 월 • 222 ♣

주율루 씨로부터 1932 년 12 월 2 일 • 223 

PCS 씨로부터 1932 년 12 월 31 일 • 224 ♣

 

제 5 장 1933 년

PSC 씨로부터 1933 년 1 월 19 일 • 226 ♣ 

백 선 씨로부터 1933 년 3 월 23 일 • 227 ♣

 

참고 ) ♣ : 34 년판으로부터 전문 발췌

♧ : 34 년판으로부터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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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 : 1930 년 >

 

제 1 장

 

 

 김영선 ( 金永善 ) 씨에게 1)

 

범사를 주를 위하여 할 것이니 장사도 나를 위하여 말고 그 가운데서 주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 뭇사람에게 편익을 주기 위하여 할 것이고 , 입는 것도 주를 위하여 , 가는 것 , 앉는 것 , 모두 주를 위하여 할 것이니라 . 주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는 일이거든 먹지도 말고 입지도 말지니라.

우리는 주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이다 . 주를 위하여 수고하고 주를 위하여 가난하고 주를 위하여 굶주리고 잠 못 자고 헐벗고 욕을 먹는 것보다 큰 복은 없느니라.

 

1930 년 1 월

 

1) 김영선 : 상업인 . 신암장로교회 전도인 . 평양기도단원

 

 

 

 박정수 ( 朴晶水 ) 씨에게 2)

 

이제는 집에까지 무사히 왔다는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신비한 계획을 마땅히 찬송하리로다.

내가 어떻게 또 무엇을 하러 동해안에서 서해로 근 1,000 리 길을 갔었던고 . 생각하니 주님의 경륜의 깊은 뜻 [ 奧義 ] 에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누님 , 예수의 이름으로 영 ( 靈 ) 의 평안과 한없는 기쁨을 누리소서 . 영이 평안하자면 육 ( 肉 ) 은 고통스러워야 되는 줄 압니다 . 영의 부 ( 富 ) 는 육의 가난에서 잘 획득할 수 있는 것이지요 . 그러므로 주와 같이 사는 자는 겉으로는 가난하되 속으로는 부하고 겉으로는 슬픈 듯하되 속으로는 편히 쉼을 얻는 것 . 오 , 여기에 신앙생활의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

인천 가서야 누님이 그곳 계심을 알았습니다 . 그리고 내가 가게 된 것도 누님의 사랑의 힘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있던 동안에 무슨 은혜가 하늘로부터 내리었다면 이는 누님의 간절한 기원을 주께서 들으심인 줄 압니다 . 원컨대 나를 보고 나를 들은 모든 사람의 속에서 나의 형상과 음성이 사라지게 하소서.

오 주님이시여 , 그리고 다만 주만 쳐다보고 주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 만일 저들이 나를 본다면 죄인 중의 하나로만 보게 하소서 . 나를 주의 일꾼으로나 , 주의 사자 , 주의 목자로 보게 된다면 이는 저들에게나 나에게나 주님에게 모두 불행이 됨을 면치 못하겠나이다.

나는 주의 종의 백 ( 百 ) 벌 종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죄인입니다 . 영광과 감사가 남아 있으면 다 주님에게만 돌리게 하옵소서 . 이미 받은 영광만 하여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누님 , 세상을 버리십시다 . 그리고 온전히 천국에 사십시다 . 육을 버리고 영에 삽시다 . 명 ( 名 ) 을 버리고 실 ( 實 ) 에 삽시다 . 언 ( 言 ) 을 버리고 행 ( 行 ) 으로 삽시다 . 먹고 , 입고 , 쓰고 , 또 명예 , 영광 , 자고 ( 自高 ) 등 속에서 진인 ( 眞人 ) 을 찾지 못하고 캄캄한 중에서 방황하는 인간 . 오 , 가련한 인간입니다 . 사십시다 . 온전히 영에 사십시다 .

 

1930 년 1 월

 

2) 박정수 : 덕적도 교회 여전도사

 

 

 

 김광우 ( 全光祐 ) 씨에게  3)

 

“ 사람의 모든 생활은 세상에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생활 그것뿐이다 . 그러므로 인간의 목적은 이 썩어질 생활 가운데 있는 행복을 취함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50 세까지 살아왔다 . 그리고 이 행복을 얻어 보려고 몹시 애를 썼다 . 그러나 오래 살면 살수록 그런 행복이 없다는 것과 또는 있을 수 없음을 차츰차츰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 내가 구하고 있는 행복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 또 결국 내가 찾아놓은 그것은 즉시 행복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 게다가 불행은 더욱더욱 많아져 나중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임이 시시각각 명백하여졌다 . 여기서 나는 이 무의미한 비참한 생활의 뒤에는 고통과 질병과 노쇠와 허무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왜 이럴꼬 ? 나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 그러나 답은 없었다 . 그래서 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

 

이는 톨스토이 옹의 『 참회 』 의 일절입니다 . 모든 인간은 다 이와 같은 길을 한 번은 통과합니다 . 그 중에는 다행히 바른 길로 드는 자도 있고 불행히 길을 방황하다가 자기 생활을 영멸 ( 永滅 ) 에 삼키고 마는 이도 많습니다 .

 

“ 나는 인간의 지식이라는 삼림 속에 들어가서 수학적 실험과학이라고 하는 희미함 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 높은 나무에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간의 집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 내려와서 무성한 삼림 속으로 다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내가 쉴 집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결국 거기에는 집이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 또한 철학이라는 암흑 속으로도 들어가 보았다 . 들어 갈수록 우울 속에 빠져 헤맬 뿐이요 , 결국 아무리 들어가도 나갈 구멍이 없었다 . 나는 거기에는 나갈 구멍이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의 절망은 자살하고 싶으리 만치 심하였다 . 그러나 구원의 빛이 오기 시작한 때도 이때였다 . 나의 구원의 서광은 아주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읽던 복음서 가운데는 나의 의문에 대한 대답이 있으리라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 이 교훈 , 이 복음서 가운데는 교회적 교훈으로 전환된 점도 꽤 많지만 하여튼 거기에서 진리의 향내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최후의 시험을 꾀하였다 . 즉 모든 복음서의 기성의 주해 ( 註解 ) 를 내던지고 나 스스로 복음서를 읽고 또 연구하여서 그 의미에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 그리하여 그 의미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새로운 그 무엇이 밝혀지는 것이었다 . 이것은 우리 인생의 의의 ( 疑義 ) 에 대답해 주는 것이었다.

이 대답은 아주 분명하였다 . 분명할 뿐 아니라 , 이 대답은 또 의심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 왜 그러냐 하면 첫째 , 나의 지 ( 智 ) 와 정 ( 情 ) 에 서로 일치함이 있었고 둘째 , 나는 이것을 해득하는 동시에 다음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 즉 , 이 대답은 복음서에 대한 나 한 사람만의 해석이 아니고 또 그리스도 한 사람만의 계시도 아니고 이 인생의 의의에 대한 대답은 다소 선명의 정도를 달리 함은 있을지언정 인류 중 모든 위대한 사람들 - 복음서 이전의 사람이나 이후의 사람 - 이 다 이렇게 토로한 것이라는 것이다 . 고로 복음서에서 내가 진리를 붙잡아 그것을 인식하였다는 것은 나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 단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옛날 혹은 현대의 모든 위인들과 함께 한 것이다 . 여기에 이르러 나는 이 진리에 주저앉아 안심하게 되었다 . 그 후 20 년 동안 나는 즐겁게 생활하고 지금도 환희 속에 천국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고 있다 . 그리하여 나는 이 인생의 의의에 대한 답안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려고 한다. 원만한 안심과 생활에 환희를 나에게 준 이 답안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려고 한다.”

( 톨스토이 『 기독교 』 서문의 일절 )

 

톨스토이는 나의 선생입니다 . 나는 그에게서 인생의 의의에 대해서 다른 누구에게서서보다 많이 받았습니다 . 그를 통해서 예수를 더 잘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 길을 찾으소서 . 

( 요한 14:6~)

1930 년 1 월 17 일

 

3) 김광우 : 사회주의자였으나 덕적도 집회에서 회심 . 협성신학교 졸업 . 

                서울북지방 감리사 . 중부연회장 . 정동제일교회 담임

 

 

 

 박정수 씨에게

 

나는 오늘 종일 단련을 받고 풀이 죽어 돌아왔습니다 . 욕을 당하고 구박을 당하였습니다 . 나의 마음은 상하였고 나의 눈은 젖었습니다 . 들어와 저녁밥을 먹는데 , 많은 편지 중에 누님의 편지와 또 다른 편지 한 장이 나에게 기쁨과 위로와 힘을 주었습니다.

 

내가 종일 욕을 당하매

저녁에는 주께서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사람이 있어 나를 욕하고

또 사람이 있어 나를 칭찬하나이다

 

주여 내가 알았나이다

주를 욕하는 자는 나도 욕하고 

주를 기리는 사람은 나도 기림을

 

이는 내가 주의 자취를 따라가려 하기 때문이외다 . 나의 외로움 , 슬픔은 저녁에 충분히 위로가 되었나이다 . 이는 우리 누님의 편지와 또 다른 자매의 편지를 통하여 주께서 나에게 얼굴을 보이심이로소이다.

오 주여 , 나는 압니다 . 주의 자취를 온전히 따라나가노라면 나에게는 얼마나 욕됨과 수치됨이 많을는지 . 매맞음 , 옥에 갇힘 , 죽음을 당함 .

오 , 이런 선물이 내 앞에는 얼마든지 있겠지요 . 그러나 주께서만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는 이 모든 핍박을 말없이 당하려 하나이다. 주도 당하셨으매 나도 당함이 마땅하나이다.

 

우리 죄를 인하여서 예수께서 상하고

우리 허물 인하여서 매를 맞으셨도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예수께로 맡겼네 

저가 억울함을 받고 낮은 자가 되었네

 

주가 입을 열지 않고 잠잠한 양 같아서

죽을 땅으로 끌리는 양과 털을 깎이는 양 같아

 

그러나 여호와께서 주를 치기 원하고 

예수 몸에 중한 고초 당하게 하셨도다

아멘 ( 찬송가 80 장 )

 

저희들은 잘난 것같이 기고만장 ( 氣高萬丈 ) 하여 야단이나 저희의 불행이 저희의 죄과인 줄 깨닫지 못하는도다 . 그리고 도리어 끝까지 저희의 행복을 위하여 애쓰는 공로도 모르고 그냥 발악으로 대하는도다 . 내가 시비를 가릴진대 저희의 죄과가 들어날 것이요, 따라서 저희의 수치와 거기에 따르는 저희의 고통은 비길 데가 없을 것이라.

그러나 모든 죄과를 다 내가 쓰려 하노라 . 저희를 용서하려 하노라 . 불쌍한 저희들.

잠잠한 양과 같이 , 털 깎이는 양과 같이 저희의 모든 짐을 내가 지게 하옵소서 . 이것이 주의 뜻에 합하나이다 . 저희는 흥하여야겠고 , 나는 망하여야겠나이다 . 오 주여 ,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 아멘 .

 

누님이여 , 주님만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소망이 되나이다 . 주가 안 계시다면 나는 아주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 저는 나의 생명이외다 . 나의 눈물은 주께서라야 씻길 수 있사옵고 나의 호소는 주님이라야 들어주십니다 . 오 , 주님은 나의 생명이외다. 첫째도 주님 , 둘째도 주님 , 셋째도 주님 . 주님은 나의 생활의 전부로소이다 .

 

내가 덕적도를 간 것도 주의 뜻이요 , 떠난 것도 주의 뜻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누님이 깨달으신 그대로입니다 . 이 모든 것은 다 합동하여 우리에게 유익함이 됩니다.

 

기도 , 어찌 기쁜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 늘 기도하여 주세요 . 기도는 생명의 탄생처입니다 . 기도 가운데서 생명이 나오고야 맙니다 . 아 , 언제나 이 기도의 동무들이 모여 주님을 모시고 살아 볼꼬 ! 이 곧 천국입니다 .

나는 오늘 저녁 예배당으로 나가기로 작정했습니다 . 예배당은 나의 판결 골짜기입니다 . 해결처입니다 . 슬퍼도 그리로 가고 기뻐도 그리로 가고 억울해도 그리로 갑니다 . 그곳은 주와 나와의 면회소요 , 상담소입니다 . 주밖에는 나를 참으로 알아주는 이 없습니다 . 주와 나와의 사이같이 가까운 사이가 세상에는 없습니다 . 이 앞으로는 있을지 …… .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 이 앞으로 무슨 사람이 있어도 주님보다 가까운 사이가 될 수는 없겠지요.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깎아버리고 

치례의 옷도 벗어버리고

그것은 세상의 자랑이요 호사는 되나 

주님께는 거리낌이 되니까요

 

나는 굴갓을 씁니다

먹물 든 장삼을 입고 새끼 띠를 띱니다 

이제 갑니다

 

홀로 향하여 가는 곳

남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다만 골고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

 

주께서 우셨으매 나도 그 눈물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나의 눈물이 주님의 그것같이 뜨겁지는 못하여도 

 

주께서 탄식하셨으매 나도 거리를 내려다보고 탄식합니다 

오 주의 모든 것은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지이다

나의 생활은 퍽 외로운 것 같지요 . 아니 종교생활 , 신앙생활이란 것이 그 말보다도 담담고고 ( 淡淡孤孤 ) 한 생활 같지요 . 그러나 이 생활이야말로 꿀이 흐르고 젖이 흐르는 생활이지요 . 오 누님이여 , 같이 가사이다 . 세상 영화 다 버리고 종이 되어 골고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가사이다.

주의 가시는 곳 , 자국자국 눈물입니다 . 그러나 들여다보면 고인 것은 쓴 눈물이 아니요 , 단 사랑입니다 . 길은 험해도 이 사랑 인내해서 험한 줄 모르고 가는 것입니다.

오 주여 , 나는 구역을 맡아 교회정치를 한편으로 보고 전도를 한편으로 하는 이런 것은 나의 사명이 아니라고 느끼어집니다 . 나는 구역 담임을 내놓아야 하겠나이다 .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한 은비 ( 隱秘 ) 한 곳 - 예수님의 40 일 광야 , 바울의 3 년 아라비아 사막 같은 - 을 주어 얼마 동안이든지 주와 더불어 교통할 수 있게 하시겠지요 . 나는 그것을 기다립니다 . 그래서 아주 흠뻑 미쳐 가지고 세상에 나와야지 지금 꼴로는 도무지 주의 도 ( 道 ) 를 전한다고 거리에 나다니기가 부끄럽습니다.

성시무온을 나는 우러러봅니다 . 기독신보 제 723 호부터 728 호까지에 성시무온의 이야기를 아이들을 위하여 쓴 것이 있습니다 .  기회 있는 대로 얻어보아 주세요.

 

내 머리가 좀 아픕니다 . 후일로 미루고 .

 

주여 , 이 누님을 사랑하여 주세요 . 오 주여 .

귀한 선물까지 또 보내주세요 . 나에게는 넘치는 은혜로소이다 . 

오 주여!

 

1930 년 1 월

 

 

 

 

<1 부 : 1930 년 >

 

제 2 장

 

 

 이춘화 씨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하나이다 . 주는 곧 우리의 힘이요 , 부요 , 영화요 , 위로요 , 소망이요 , 생명이매 다른 것을 구할 것이 없습니다 . 힘을 요구할 것도 아니요 , 영화를 바랄 것도 아니요 , 위로 , 소망 , 생명을 탐낼 것도 아닙니다 . 다만 주님만 요구할 것입니다 . 주안에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음으로써 이외다 .

주님은 곧 의 ( 義 ) 올시다 . 주님 외에 다른 의가 없습니다 . 고로 주님만 구하여 얻으면 모든 것은 그 위에 더하시리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 열심으로 주님만 구하소서.

 

1930 년 5 월 9 일

 

 

 

 김익선 ( 金益善 ) 씨에게 4)

 

지금 외촌 ( 外村 ) 으로부터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 김숙희 자매의 편지를 보니 형님께서 입원까지 하셨다고 . 그러나 좀 차도가 있다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날로 더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번에 형님의 편지를 받고 형께서 병석에 계신 줄을 알았습니다 . 그래서 엽서 한 장을 써서 붙였더니 편지 부치러 갔던 아이가 도로 가져왔기에 보니 껍데기만 쓰고 안에 사연은 쓰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또 곧 쓸 시간이 없어 그냥 외촌으로 나갔다가 , 이제 온즉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었다니 마음이 심히 민망하옵니다.

내가 분명 믿기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형님에게 은혜가 될 것이올시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합동하여 유익함이 된다 ” 고 하신 말씀을 로마서 8 장 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형님 ,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십니까 ? 그러하면 병도 형님에게 유익함이 되고 가난함도 형님에게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 그것은 곧 형님의 심령에 무한한 은혜를 주시는 표요 , 무한한 교훈이요 , 무한한 징계인 줄 압니다 . 그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교훈을 찾으십시오 . 몸 건강할 때에 찾을 수 없는 은혜는 병 가운데서라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 고로 어떤 성도는 병석을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 이번 기회는 하나님께서 형님에게 무엇을 보이려고 하시는 것인즉 놓치지 말고 찾아보세요 . 그것만 찾으면 곧 형님은 일어설 것입니다 . 또 그것만 찾으면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병들어도 좋고 건강해도 좋고 다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병도 있어야 마땅하고 가난과 다른 모든 난관이 있어야 마땅하며 죽음도 있어야 마땅합니다 . 그러한 이상 그런 모든 것이 다 인생에게는 큰 은혜요 ,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 자식에게는 아프게 치는 부모의 채찍도 은혜요 , 달콤하게 먹으라고 주는 사탕도 역시 은혜인 것과 같습니다 . 그러한 고로 모든 것을 다 신중한 태도로 감사함으로 받을 것입니다. 

찬송가 143 장 , 175 장

성경 히브리서 12:1~13, 특히 5~7 / 로마서 8:26~39

 

1930 년 5 월 18 일

 

4) 김익선 : 평양기도단원

 

 



 

<1 부 : 1930 년 >

 

제 3 장

 

 

 김광우 씨에게

 

가슴은 감격에 터지려 하니 차례를 따라 말을 할 수가 있을 지부터가 염려됩니다.

친애하는 형님이여 , 나에게 너무 긴 소개를 새삼스럽게 해주시었습니다 .

 “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그 신 외에 누가 알리요 ” 하고 성경은 말씀하였거니와 만일 형님이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수가 있었다면 다시 긴 소개를 하시는 수고를 더실 것을 그랬습니다.

내가 형님에게 첫 번 편지한 것도 나는 무한히 정기 ( 精氣 ) 를 모아 쓴 것이 었습니다 . 글이라든지 다른 점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 것은 없으되 내 딴으로는 그것을 쓰기에 얼마나 간절한 기도와 사념 ( 思念 ) 가운데서 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 그 후 형님의 회신을 받은 것도 무한한 감격과 아울러 큰 탄식과 안타까움 가운데서 읽었던 것입니다 . 그 후에 곧 나의 불같이 일어나는 간절함을 금할 길이 없어 만사를 접어치고 다시 한 번 면회할 기회를 가지려고도 했던 것이고 또 나의 마음의 한편을 적어 보낼까 하다가 기도를 올렸습니다.

“ 오 주님이시여 , 나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 나 따위의 말이나 편지 일절 따위로 이 형제에게 광명한 빛을 줄 수는 없습니다 . 주여 , 

이 형제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께서 성령으로 직접 역사하시사 이 형제를 구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가 지금은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니 , 대중을 위하여 무엇을 하느니 , 저의 민중을 건져야 되느니 하고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저 스스로를 건지지 못하여 애타하니 , 주여 , 저를 사랑의 팔로 건져 주소서 . 아멘.”

그리고 나의 할 바 ( 편지나 면담 등 ) 모든 일을 다 주께 맡기고 오늘까지 왔는데 형님을 생각한 것이 그 동안도 몇 백 번으로 세고도  아마 더 될 줄 아 나이다 . ( 이상 9 월 17 일 작성 )

편지 시작 한지 거진 달포 만에 다시 계속합니다 . 그 동안에 편지를 마저 써서 보내지 못한 동안에 나의 마음의 번거로움이란 형언할 수 없음이 있었습니다 . 형님에게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까 하여 나의 친애하는 내외국 형제와 이야기도 해보았소이다.

아직은 확실한 단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 성경 시편에 이르기를 “ 나는 제사보다 상한 심령을 기뻐하노라 ” 고 . 이제야 하나님은 형님에게 발견되게 되었습니다 . 자기가 얼마나 헛되고 , 얼마나 약하고 , 얼마나 가련한지를 밝히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자연히 나타나는 것이올시다 . 그래서 의지하고 믿고 나가는 것이올시다 . 거기서 새로이 실 ( 實 ) 로 , 강 ( 强 ) 으로 , 환희로 변하여 그야말로 중생의 사람이 되는 것이올시다 . 예수교의 중생의 도리야말로 오묘한 것이었습니다.

오 친애하는 형님이여 , 이제는 흠뻑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아주 못난이로 자처하소서 . 내가 무엇을 아는 줄로 알면 벌써 그것이 무식 ( 無識 ) 이었고 , 된 줄로 알면 벌써 그것은 미완성이며 , 똑똑한 줄로 알면 거기 실상 어리석음이 잉태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인이야 욕을 하든지 , 바보라고 하든지 , 시대에 뒤진 자라고 하든지 , 탓하지 마시고 이제야 찾을 길을 향하여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돌진하소서. 거기서 천국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리이다.

형님의 마음 , 오 , 이제야 지옥이 무엇이며 , 어떤 것인지를 알지 않습니까 . 형님의 지금 가슴이야말로 지옥의 유황불 붓는 그 구렁텅이와 같은 곳이 아닌가 합니다.

아 , 번민과 고통 , 치욕과 분노 , 이 모든 죄악은 불타고 있습니다 . 거기에서 인생의 광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 이제 주님은 형님에게 길 되고 빛 되고 진생 ( 眞生 ) 이 되었습니다 . 예수의 생활을 더듬더듬 찾아 그대로 밟아나갑시다 . 죽든지 , 살든지 , 남이야 아무런 말을 하든지 , 주님의 자취를 밟아나갑시다 . 아직 확실치 않은 것이 있다 해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나가 보시오 . 힘이 되고 위로 되고 기쁨 되고 소망 되어 생명 됨을 체험하시리니 . 형님이여 , 이제는 주님의 발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자복하시오 . 형님의 교만과 죄악을 겸손히 고하시오 . “ 나중에는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나니 사람이 누구라 정죄하리요 ”(롬 8:28~34) 하는 성언이 들리리다 . 그때에 ‘ 아 , 나는 사함을 받았다 ’ 하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리이다 . 그때는 지금까지 부끄러워 머리를 못 들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던 그 상태는 싹 달라져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용기와 담력이 새로 생기어 ‘ 세상이 나를 죄인이라고 하나 하나님은 나를 어여삐 보신다 ’, ‘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나니 누가 나를 정죄 하리오 ’, ‘ 너희의 욕도 잠깐이요 , 비방도 잠깐이요 , 십자가의 고형도 잠깐이나 ,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영원하시니 그 하나님 앞에서만 나는 영생 하리라 ’ 하는 의기충천 ( 意氣衝天 ) 의 큰 용기가 생기리다 . 그때는 의를 위하여 참으로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외다 . 그렇게 되기 전에는 사회를 위하느니 , 나라를 위하느니 ,  대중을 위하여 어쩌느니 해도 다 잠깐 일어 나는 감정적 충동에 불과하며 따라서 자기 변호적 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올시다.

“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 로마서 8 장을 읽어 보십시오 . 『 기독성범 』 ( 基督聖範 ) 이란 책과 『 성자전기 』 등을 읽으시오 . 단편으로 예수교서회에서 만든 것이 있습니다 . 『 기독성범 』 도 예수교서회에 있습니다 . 되었습니다. 총총 ( 悤悤 ) 이만 . 저는 경성 조선주일학교연합회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1930 년 10 월 11 일 

통천읍 ( 通川邑 ) 에서 

교제 ( 敎弟 ) 용도 배상

 

 

 

 김광우 씨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리는 힘과 평화와 소망과 또 생명이 형님에게 풍성하기를 심축 ( 心祝 ) 합니다 . 통천으로 보낸 편지는 이 연합회 사무실에서 받아 읽었습니다.

형님을 생각할 때에 바울과 선다 싱 (Sundar Singh) 을 연상하게 됩니다 . 미치도록 철저히 영과 진리의 나라로 쑥 들어가사이다 . 머지않아 광명이 형님의 앞에 올 것이니 푹 엎드려서 “ 주여 ,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 하며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 명상과 기도는 창조의 발견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올시다 . 들어가십시다 .

 

1930 년 10 월 21 일 

경성 종로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이용도 배상

 

 

 

 김광우 씨에게

 

오 형제여 , 나는 형제를 생각할 때마다 한없는 감격이 복받쳐 올라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기원의 눈을 감고 “ 오 주여 , 나의 주 예수님이시여 , 이 형제를 인 ( 印 ) 치시고 주의 성적 ( 聖蹟 ) 을 따라 가는 충복이 되게 하소서 . 아멘 ” 하곤 하였습니다 . 이는 나의 본심이 아닌 줄 내가 아나이다 . 성신이 나를 이끌어 형제를 생각하게 하고 또 간절하게 함이로소이다.

지금 형제의 글을 받아 읽었나이다 . 끝없는 감격과 눈물로 또 용약 ( 踊躍 ) 하는 희열을 가지고 읽었나이다 . 형제에게 은혜가 있기를 심축하나이다 . 날마다 주 예수를 아는 가운데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 더 들어가고 또 더 들어가 아주 광인 ( 狂人 ) 의 지경까지 들어가서 바울 , 베드로 , 스데반의 뒤를 따라 죽음 , 박해도 달게 받고 모든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주의 빛 , 곧 그의 봉화를 들고 일어서기를 바라나이다.

아 , 나는 곧 지금 남대문 정거장으로 나가서 인천으로 , 거기서 똑딱선을 타고 덕적도 ( 德積島 ) 로 뛰어가고 싶으외다 . 내 마음이 불타듯 함을 형제가 모르지 않기를 원하여 마지 않나이다.

곧 형제의 목을 안고 울고 싶으외다 . 나의 영은 이겼으나 형제의 목에 달려 감격에 넘치는 통곡을 하나이다 . 이는 슬퍼서가 아니요, 너무 기뻐서이겠지요 . 오 , 형제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 형제여 죽으소서 . 죽어야 되리다 . 모든 의식도 버리고 혈기도 버리고 교만도 버리고 수단도 , 방법도 버리소서 . 그리고 예수의 피로 다시 사소서 . ‘ 죽었다가 다시 삶 , 소생 ’, 이는 예수의 주장이었다 . “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 ”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오 형제여 , 나는 죽기를 오래 바랬으나 아직 죽지 못하였나이다 . 나는 아직도 세상 편에 살아 있나이다 . 내가 미쳐야겠고 내가 죽어야겠나이다 . 주만이 나의 힘이요 , 위로요 , 소망이요 , 수단이요 , 방법이요 , 생명이외다 .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 아 , 이리 되기를 원하나이다 . 주를 모르고 사는 것보다 주를 알고 죽기 원하나이다. 주는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올시다 . 이것을 모르는 삶은 저주요 , 이를 알고 죽음은 곧 영생이외다 .

“ 영생은 곧 이것이니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앎이라 ”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과연 주를 안다는 것 , 이는 보배 중의 보배요 , 생명 중의 생명 이외다 . 그러나 주를 다 알기 어렵소이다 . 어찌나 크신지 , 그 사랑 , 그 용기 , 그 권능 , 그 인내성 , 그 관용성 , 그 근면 , 그 철저 , 과연 다 알 수 없나이다 . 그러나 그의 사랑을 이해하여 이 모든 속성을 이해할 수 있나이다 . 그 사랑을 - 원수까지라도 , 기생 , 광인 , 우부 ( 愚夫 ) 까지라도 존경하신 그 사랑을 - 우리가 본받을 수 있다면 인간으로는 최초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

겠나이다 . 우리 마음에는 멸시 , 원망 , 교만 , 자랑 , 잔인 , 나태 , 이러한 모든 악성이 그대로 남아 있나이다 . 아 , 어느 때나 일평생에 다만 한 번만이라도 거짓이 없이 섞인 것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해 볼 수 있겠는지! 그리하여 나의 무엇을 희생시켜 볼 수 있을는지!

원수는 그만두고 우리 의견에 조금만 틀리는 사람이라도 곧 멸시 , 발악 , 원망으로 살상하려는 이 작고 좁은 죄인들이 아니오니까 ! 

오 형제여 , 나를 칭찬하지 마소서 . 작은 마음의 소유자 , 악성 ( 惡性 ) 의 소유자가 교만하여 떨어질까 두렵소이다 . 나는 다만 죄인 중에 하나외다 .

나는 다만 주를 위하여 미치려고 하는 마음 하나밖에는 없는 말석의 종이외다 . 형제여 , 성경과 기도가 신기한 광명을 주며 또 신비한 발견을 주는 것을 차차 경험하시니 만만 감사하나이다 . 형제여 , 조심하사이다 . 불은 꺼질 때가 있나이다 . 지금은 붙고 붙어 온 세상을 다 불살을 것 같이 생명의 불은 타고 있지만 , 그 어느 때에 이르면 그만 꺼져버리고 훅 불면 날아가버릴 꺼먼 재만 남게 될 때가 있는 것이외다 . 형제여 , 이런 때가 반드시 형제의 앞에 닥쳐올 것을 미리 알고 지금 붙어 있음을 자랑말고 그 불이 일생 동안 타도록 준비할 것이외다.

창성 ( 創成 ) 의 도정 ( 道程 ) 에는 반드시 아침이 있고 또 밤이 있음을 창세기 1 장에서 찾을 수 있나이다 . 허나 창조가 있은 후에는 반드시 저녁이 됩니다 . 이는 캄캄한 때외다 . 빛이 없는 때외다 . 앞이 막막한 때외다 . 근심 , 걱정 , 의심 , 두려움 , 모든 암흑에 속한 것이 항상 같이 내려 덮이는 때이외다 . 그러나 늘 밤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니외다 . 지나갑니다 . 아침이 됩니다 . 광명과 신선, 해혹 ( 解惑 ) 과 감사가 있는 때외다 . 활동의 때외다 . 활동합니다 . 새 창성이 생깁니다 . 아 또 저녁은 닥쳐옵니다 . 이리하여 ‘7’ 이라는 완전 수의 밤을 지난 후에야 완성이 생기는 것이었나이다 . 아 , 그러나 완성이 오기 전에 제 1 야에 꺼꾸러지는 자 어찌 많으며 제 2 야 , 제 3 야에 무너지는 자 어찌 많은지 모릅니다.

형제여 , 신앙에는 반드시 밤이 있소이다 . 이를 신앙의 암초라고 나는 이름 하나이다 . 이때는 전날의 모든 믿음을 의심하는 때요 ,  다시 방황하기 쉽고 다시 절망되기 쉽고 타락되기 쉬운 때외다 . 아침이 찬송의 때요 , 활동의 때라면 밤은 기도의 때요 , 참회의 때입니다 . 아침은 돌진할 때요 , 밤은 고요히 명상할 때외다 . 형제는 지금 길고 긴 밤 하나 곧 천지가 혼돈하여 상하를 분별할 수 없던 창조 전 우주와 같은 그 혼돈의 밤에서 아침을 맞는 때 외다 . 고로 빛이 있고 열이 있고 생명의 약동이 있나이다 . 지금 아침을 당하였으니 , 형제여 , 힘써 활동하고 돌진하시오 . 골고다에까지 돌진 . 예수 생명에 접촉하도록 돌진하시오 .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돌진하소서 . 남이야 욕을 하든지 비방을 하든지 , 죽든지 살든지 , 다만 돌진이 형제에게 있을 때외다 . 그러다가 혹 암초를 당할 때가 오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망할 것이 아닌 것을 미리 알아두십시오 . 요한 16 장 끝절에 “ 너희가 세상에 있을 때에 환난을 받으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암초를 지나고 난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나이다 . 꾸준히 견디어 끝까지 나갑시다 . 머지않아 완성이 오겠지요 . 아멘 . 할렐루야 ! 영광과 찬송을 예수께 드리나이다 .

내가 중심으로 가 보기를 원하나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외다. 그곳 모든 동포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에게는 평강이 있어야겠고 나에게는 수고가 있어야겠는데 , 오 주여 !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성경 , 『 기독성범 』 , 『 성자전기 』 , 『 선다 싱 명상록 』 , 산실군평 (山室軍 平 ) 씨의 저서 등은 우리의 길에 큰 빛을 주는 것이외다 .

 

11 월 7 일 오후 4 시 15 분

교제 이용도 배상

 

황필난문 ( 荒筆亂文 ) 을 용서하소서 .

 

 

 

 김광우 씨에게

 

그 동안 두 번이나 편지를 받고 날마다 인형을 위하여 생각은 간절하였으나 집필의 여가가 없었습니다 . 올라오시기를 바랍니다 . 오시면 내가 유하는 집으로 꼭 오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새로운 경험이 인형 ( 仁兄 ) 의 중심에 

베들레헴 더럽고 좁고 험한 구유에 

강림하신 주님이 그렇게 형님의

‘ 마음 구유 ’ 위에 신생 ( 新生 ) 하시어

그 위에 좌처 ( 坐處 ) 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

 

1930 년 12 월 24 일 

경성부 사직동 311 

피도수 ( 皮道秀• Peters) 방 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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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 1931 년 >

 

제 1 장

 

 

 김예진 ( 金禮鎭 ) 씨에게 5)

 

평양 ( 平壤 ) 형제들 어느 하루도 잊은 날 없소이다 . 은혜 가운데 자라소서 . 예수를 아는 가운데 자라소서 . ‘ 사업심 ’, ‘ 전도심 ’ 이라는 신앙의 허영심을 삼가시오 . 재령 ( 載寧 ) 서는 주의 기이하심을 많이 보았나이다 . 전에 경험치 못하던 새로운 오묘를 경험하였나이다 . 각처에서 신도 운집하여 거진 마치는 때에는 2,000 군중이 성은 ( 聖恩 ) 에 목욕하였나이다 . 

4 일부터 거창서 성전에 나서겠는데 , 기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

 

1931 년 3 월 4 일

 

차 중에서 잠상( 暫上 )

개성과차 ( 開城過次 ) 이용도 배상

 

5) 김예진 (1898~1950): 장로교 전도사 . 평양기도단원 . 전국순회 목사 . 6.25 사변 때 순교

 

 

 

 변종호 ( 邊宗浩 ) 씨에게 6)

 

친애하는 형제여,

어제 저녁때 거창 ( 居昌 ) 에 왔소이다 . 호수 1,300~1,400 되는 향색 ( 鄕色 ) 치고는 작지 않은 곳으로 교회는 200~300 명 모이는 장로교회가 하나 있을 따름이외다 . 1 주일 동안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끌림을 받다가 3 월 13 일에는 사리원 ( 沙里院 ) 에 도착할 예정이외다 .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주 ( 海州 ) 에서 보낸 편지는 받아보셨을 줄 압니다 . 1 차 왕방 ( 往訪 ) 하시면 용구 ( 龍九 ) 에게 큰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

 

1931 년 3 윌 6 일

 

6) 변종호 : 연희전문학교 학생 . 이용도목사전집 편저 . 일본 성공회신학교 졸업 .

                궁정동교회 담임 . 감리교신학교 교수 . 순복음신학교 교수

 

 

 

 

 변종호 씨에게

 

‘ 네 명 ( 命 ) 은 더욱더욱 결사적으로 최후까지 분전 ( 奮戰 ) 하는 데 있다 ’ 를 읽고 나의 영 ( 靈 ) 은 작약 ( 雀躍 ) 하며 나의 입술은 “ 아멘 ” 이라고 부르짖노라 . 나는 앞에 죽음밖에 없노라 ! 십자가 !

나는 오직 그 후에 오는 부활을 바라노라 . 이 육에 속한 몸은 완전히 죽어 버리고 영에 속한 몸으로 바꾸려 하노라 . 이것도 성의 ( 聖意 ) 를 기다릴 뿐이로다 . 내 능력으로는 죽을 수도 없고 더구나 순도 ( 殉道 ) 라는 영광을 얻기를 감당치 못하노라 . 오직 성의에 있을 뿐이로라 . 오 성령이시여 , 나를 이끄소서 골고다까지 . 아멘 .

 

1931 년 3 월 9 일 

거창읍 이용도

 

 

 

 김정일 ( 金貞一 ) 씨에게 7)

 

친애하는 자매여,

그대는 예수에게 미쳐 그를 웃고 그를 울며 그를 먹고 그를 마시어 마침내 현세의 사람은 아닐세라 . 미치지 않고는 그대가 견디지 못하리니 그대의 육은 가련 그것이요 , 그대의 영은 영광 그것이기 때문이다 . 그대의 생명은 주에게 미침에 있나니 이 일에 실패하여 그대는 영멸 ( 永滅 ) 일지라 .

미치도록 부르짖으라 . 머리로는 하늘을 치어 받고 발길로는 땅을 걷어차라 . 그리고 끌려서 우주 안에 맴을 돌라 . 그리하여 인간 세상에서는 아주 버린 바 되어라 . 그러나 뛰어나 인간의 위에서 살지니 .

 

그대의 목청이 세차진 못하되

사자후 ( 獅子吼 ) 를 압도할 것이요

그대의 발이 빠르지 못하고 굳세지 못하되 

조선의 천지를 무른 메주 밟듯 하리라 

주께서 그대를 삼키시게 되면 

주께서 그대를 타시게 되면 

그대는 작은 나귀새끼가 되리라 

주님이 타신 나귀새끼

주께서 타서 영광이었으되 주께서 내리어서 외양간에 매인 그대로다 

주께서 타시매 그대는 왕에게 돌아가는 영광을 받을 것이로되

주께서 내리시면 탕자의 채찍에 피 흘릴 그대로다

 

자매여 , 그대는 주를 모시고 다니는 나귀가 되라 . 작은 나귀 . 주가 있어 그대는 만금 ( 萬金 ) 이로되 주가 없어 그대는 비천한 푼이로다 . 그대의 값은 주께서 계심에 있고 그대의 영광은 주께서 타심에 있도다 . 주께서 그대를 타시리다 . 왕위에 오르실 때 그대를 타시리다 . 그러나 그대의 육에 돌아갈 영광은 여전히 마른 풀과 채찍임을 잊지 말아라 . 그대는 원래 풀을 먹게 된 물건이요 , 그대는 채찍이 있어 걸음 걷는 미물임을 기억하라 . ‘ 양마 ( 良馬 ) 는 견편영이주 ( 見鞭影而走 ) 라 .’ 어진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방향을 알아서 잘 달려가나니.

 

엎드려 비오니 , 나의 친애하는 자매는 

주의 어진 말이 되소서 ! 아멘 . 

그대의 갈 바 방향이 어디였던고?

그대는 주의 채찍 그림자를 보았는고?

보라 ! 주는 그대를 향하여 채찍을 드시나니 .

 

남해를 조망하면서

1931 년 3 월

시무언

 

7) 김정일 : 협성신학교 학생

 

 

 

 김예진 씨에게

 

주께서 형님과 같이 계심을 잊지 마소서.

그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심력 ( 心力 ) 을 다하소서 . 깊이 믿는 일에 거하는 것 ,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을 잊지 마소서 . 신앙은 인생의 부업이 아닙니다 . 본업인 동시에 전업입니다 . 그러므로 모험적으로 현명적 ( 懸命的 ) 으로 이를 얻으려 하는 자에게만 부여되는 보배입니다 . 믿음이 있어 천하를 다 소유한 것이 되고 믿음이 없어 천하를 다 잃는 것이 됩니다 . 신앙은 우리의 소유의 총체입니다 . 김익선 형님 , 너무 섭섭하게 다녀가서 내 마음이 흡족하지 못합니다.

원 ( 願 ). 내 동생이 작년 가을부터 급성 폐병에 걸리어 해주요양원에 입원 치료 중인데 거기서도 별차도가 없는 모양입니다 . 평양 어떤 의원 한 분이 폐병 환자를 많이 고친다는 소문이 들리니 그의 처방을 받기를 원하오니, 혹 형이나 형제 중에 누가 틈이 있으면 한번 알아보아 주셨으면 좋을 줄 아는데 …… . 환자는 26 세 . 지금은 극도의 소화불량인 모양입니다 . 소화만 되면 차차 차도가 있겠다 합니다마는 . 그리고 물론 기침을 합니다 .

 

1931 년 3 월 4 일

 

 

 

 이태순 ( 李台順 ) 씨에게 8)

 

이태순 , 이정호 ( 李貞鎬 ), 우성일 ( 禹聖日 ), 오동식 ( 吳東植 ), 배준복 ( 裵俊福 ) 등 제씨 ( 諸氏 ) 에게 드립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하노니 ,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 아멘.

주의 나라에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먹는 것도 없고 입는 것도 없습니다 . 다만 은혜만을 생각하고 주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진리를 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 “ 먹어야 좋다 ” 하고 “ 입어야 좋다 ” 하는 그런 조건은 이미 생각되지 아니하는 것이요 , 남자니 여자니 하는 관념도 그만 없어지는 것입니다 . 물질에 대한 일이나 , 육에 관한 일이나 , 세상 정욕에 속한 문제는 그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있어도 온전히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남녀의 관계도 없어지고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문제도 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이 세상에 있는 동안 천국에서와 같이 그렇게 영원히 모든 문제를 잊어버리고 살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 그래서 육을 쓰고 있을 때 물질 세상에서 살며 종종 은혜의 세계의 일을 맛보면서 살다가 육을 벗어놓는 날에 영원한 천국에 가서 길이 은혜의 생활을 계속할 것입니다 . 그런고로 세상에 있는 동안 이 은혜의 생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늘 준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첫째 할 일이올시다.

 

나는 죄인 중에 하나요 , 또 미련하고 천한 종입니다 . 나에게는 참 사랑과 긍휼이 적습니다 . 주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신 것같이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 그런고로 나는 때때로 “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 하고 주께 부르짖습니다 .

은혜의 생활은 곧 기도의 생활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 기도가 없을 때 신앙도 없는 것이고 신앙이 없을 때 은혜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① 기도의 생활은 용기의 생활입니다.

연약하고 겁 많은 때라도 간절히 외쳐 기도하고 난 때에는 큰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② 기도의 생활은 위로의 생활입니다.

아무리 슬프고 외로운 때에라도 주께 엎드려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난 때에는 마음이 시원하고 큰 위로가 오는 것입니다. 

③ 기도의 생활은 거룩한 생활입니다.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생각이 끓어 오르고 입으로 악하고 더러운 소리가 자꾸 나올 때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모든 불평과 원망도 다 없어지고 거룩하고 깨끗한 생활이 됩니다.

기도의 생활은 한편으로 자기의 죄와 허물을 찾아서 참회하는 동시에 주님의 십자가 공로와 그 사랑을 우러러 보며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 자기의 죄만을 볼 때에는 괴로우나 주님의 십자가를 우러러 볼 때에는 기쁘고 감사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시오 . 신앙에 관한 이야기 외에는 쓸데없는 세상 이야기나 남의 비평은 일절 하지 마시오 . 그리고 늘 침묵 . 입을 열지 말고 마음 속으로 주를 사모하는 가운데서 지낼 것입니다.

4 월 17 일쯤 북간도 ( 北間島 ) 로 갈 터인데 경성서 떠나 원산 ( 元山 ) 으로 해서 가겠습니다 . 그런고로 사리원을 지나지 못합니다 . 나는 주께 몸을 바친다고 하여도 그래도 부족한 것밖에 없습니다 . 몸이 열 개가 있으면 그것을 다 주께 드리어 주님을 기쁘게만 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 하루라도 온전히 주의 뜻대로 살면 그것이 나에게는 큰 복이요 , 영광입니다 . 늘 주 안에서 기도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월 24 일

 

8) 이태순 : 사리원 교회 교인

 

 

 

 이종규 씨에게 9) 

 

사랑하는 종규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하고 은혜와 평강이 온 집안에 항상 같이하기를 축원하노라 . 태순이라는 이름으로 어제 편지를 받고 회답을 보냈는데 , 오늘은 그의 따님의 편지를 또 받으니 나의 마음은 위로와 기쁨으로 가득 찼노라 . 합심하여 주를 사랑하는 경건한 모녀에게 주의 은혜가 더하고 더할지어다 . 아멘 .

네 [ 四 ] 여학생이 찾아 왔던 중 , 내 옆에 제일 가까이 첫째로 앉았던 그가 종규인 줄을 내가 기억하노라 . 그 다음 자꾸 울던 학생이 ○○○, 그 다음이 ○​선 , ○실이었던 것을 내가 잘 아노라 . 나의 기억이 틀림없기를 내가 바라노라.

나는 지금도 너와 너의 동무들의 그 진실한 눈물을 생각하여 잊을 수가 없노라 . 그리고 무엇을 말할 듯 , 할 듯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가던 그 형상을 퍽 외롭게 본 기억이 새로워 짐을 깨닫노라 . 나는 너의 중심에 있는 사정을 이야기함을 듣지 못하였으나 그러나 나는 하나님에게 의탁하고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고 심축하였노라 . 나의 기도는 헛되지 않을 줄을 나는 믿고 있노라.

모든 가련한 영들을 위하여 나의 마음이 이따금 해산의 수고를 당하나 그러나 그 영들이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어 살아나는 것을 볼 때에는 생산의 기쁨이 나에게 오노라 .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서부터 오는 편지는 나를 무한히 기쁘게 하는 것이며 크게 위로하여 새로운 용기를 더하여 주는 것이로다.

이 기쁜 결과를 볼 때 나는 나의 수고도 잊어버리고 또다시 죽을 고생을 달게 받으면서 나서는 것이로다 . 내가 얼마 동안씩 역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누울 때에는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노라 . 맥도 없고 힘도 없어 눈뜰 근력과 걸음걸음 힘이 다 부족하여 짐을 깨닫노라 . 그때에 나는 “ 오 주여 , 나는 이제 죽으면 좋겠습니다 . 어서 나를 당신의 보좌 우편으로 인도하사 영원히 편히 쉬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하는 호소와 간구가 중심에서 일어나노라 . 그러나 주님은 “ 좀더 참아라 . 나의 일은 아직 얼마든지 남아있지 않느냐 . 너는 아직 좀더 나를 위하여 수고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 그러나 네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 내가 너를 도와 같이 하나니 너는 다만 순종만 할 것이니라.”

나는 이 소리를 듣고는 “ 오 주여 , 나를 부려 주소서 . 내 몸이 죽기까지 병들기까지 순종하리다 ” 하고는 또 역사하러 나서면 새로운 힘이 하늘을 뚫을 것 같고 땅을 무너뜨릴 것 같은 것을 깨닫노라.

나는 나의 고생을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자가 아니로다 . 주님께 순종됨을 기뻐하며 죄악 가운데 있는 영들이 새로 삶을 볼 때에 무한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이로다 .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더욱더 기도하여 주기를 바라노라 . 나는 평안하기를 원치 않노라 . 오래 살기를 원치 않노라 . 죽든지 살든지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노라 . 나의 소원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여주기 바라노라.

그대들은 나의 ‘ 기도의 동무 ’ 가 되어지사이다 . 사리원에서도 기도의 동무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노라 . 그리하여 우리는 힘을 합하여 모든 마귀를 물리치고 신음하는 영혼들을 건져낼 것이로다 . 이 글을 어머니와 같이 읽기를 바라고 또 기도의 동무가 있으면 같이 읽기를 바라노라 . 그리고 기도할지어다 . 아멘 .

 

1931 년 3 월 25 일 아침

주의 종 용도

 

9) 이종규 : 이태순 씨의 딸

 

 

 

 김정일 씨에게

 

나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매여,

자매는 복스러워 주님의 성애 ( 聖愛 ) 와 그 신지 ( 神智 ) 를 얻은바 귀한 기회 가운데 있나이다.

 

살림이 가난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세상이 어려워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나라는 망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사회는 소란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배울 길은 막혀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사람들이 욕하고 비웃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몸은 병들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육신은 죽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성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가난한 살림에서 그것을 맛보고 어려운 세상에서 그것을 맛보는 것이외다 . 소란한 사회에서 신지 ( 神智 ) 를 배우고 욕먹는 가운데서 신의 미소와 환대를 받으며 몸이 병든 가운데서 신의 사랑과 그 애무를 바라는 것이외다.

병석에 있을 때 그의 사랑하는 자들의 영은 그 병석에 신음하는 연약한 자를 감시 ( 監視 ) 하며 성령으로 더불어 지켜주는 것이외다 . 인하여 저는 병든 몸을 상 ( 床 ) 에 맡기고 그 영을 주님께 맡기어 놓고 그 성스러운 품에서 편히 쉼을 얻는 것이외다. 자매여 , 그대는 모든 기대와 욕망까지 다 주님께 빼앗긴 자가 되소서 . 그리하여 아무것도 되려 하지 마소서 . 다만 되어지는 대로 되어만 지소서 . 

물론 영과 육 , 생명 전체를 다 주께 바친다고 자매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기도로써 헌제 ( 獻祭 ) 의 사설 ( 詞說 ) 을 올리었던 것이 아니오니까 . 주님은 이미 받으셨으매 당신의 필요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다루시는 것이었으니, 자매는 삼가 자매의 뜻을 이루려고 하여 성의를 거슬리는 불경을 범하지 마소서.

 

나는 어떤 때 기도까지도 없나이다 . 이는 기도까지 주에게 빼앗기고 그냥 되는 것을 그대로 기다린다는 그 엷은 기다림만이 나의 신앙의 전체를 이룰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영의 움직임이 강하여 간절히 부르짖는 그 기도가 나의 신앙 전부로 되기도 하고 주를 그리워하는 눈물이나 나의 죄악을 참회하는 눈물이 나의 신앙의 전부가 되기는 하지만 …… .

하여간 욕망이나 기대가 있든지 없든지 , 기도가 있든지 없든지 , 참회와 눈물이 있든지 없든지 우러러 보라 . 쳐다만 보라 . 이 앙모 ( 仰慕 ). 전부를 다 바치고 다만 우러러만 보는 생활 , 이는 가장 순진한 영교 ( 靈交 ) 의 생활이니라 . 그리하여 거기서 빛을 얻고 환희를 얻을 것이니 이곳이 천국인 것이요 , 그것이 천인 ( 天人 ) 인 것이니라 .

 

오 나의 기도의 동무요 마음의 벗이여

오 주의 사랑하는 신부요 또 그의 열렬한 종자 ( 從者 ) 여

그대는 이제 편히 쉬라 아무것도 되려 하지 말고 다만 주만을 앙모하라 

모든 것을 다 주에게 빼앗긴 자가 되어 아주 가난함을 이루라 

그리고 시시 ( 時時 ) 로 앙모하여 한잔한잔 생명의 물을 마시고 

한 줄기 한 줄기 사랑의 광선에 직면하라

 

주는 그대를 크게 만드시려 하시도다

성스러운 그릇 [ 器皿 ] 을 만드시려 하시도다 

그 잘못된 그릇을 고쳐 만드시려

단야공 ( 鍛冶工 ) 으로서의 손을 드셨으니

먼저 그대를 쳐서 못쓸 옛 그릇을 깨뜨시리로다 

그리고 다시 반죽하여 새 것을 만드시리니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아직도 몇 번의 떡메를 더 맞을 것이요 

풀무에 몇 번이나 타 녹을 것인가

또 찬물에 혹은 모루 위에

아 , 몇 번이나 더 신고 ( 辛苦 ) 를 겪을 것인고 !

 

오 자매여 , 그러나 즐거워하라 

몸은 아파도 즐거워하라

그대의 기성 ( 期成 ) 욕망이 다 풀어져도 즐거워하라 

모든 명예가 다 물거품이 되어도 즐거워하라 

주의 사랑의 손이 그대를 만지시나니

주의 사랑의 입술이 그대를 입맞추시나니 

오 자매여 ,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그대의 고인 ( 古人 ) 은 변하여 신인 ( 新人 ) 이 되리니 

그대의 추 ( 醜 ) 는 변하여 성 ( 聖 ) 이 되리니

오 자매여 , 그대는 이제 제품공장에 들어가 있음을 기억하라 

그대는 이제 주의 사랑의 손에 붙잡히어 있음을 생각하라.

 

오 주여 , 자매의 병든 가슴은 당신의 거룩한 궁전이니이다 . 주께서 임재하시기만 하면 . 아멘 . 

 

3 월 26 일 오후 3 시 

편지를 받자마자 시무언 형

 

 

 

 이덕흥 ( 李德興 ) 씨에게10)

 

토요일 날 어머니의 전보와 또 해주에서 ‘ 용구가 집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니 곧 오라 ’ 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 그러나 경성 광희문 ( 光熙門 ) 교회 부흥회를 맡아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오늘 아침 차로 떠납니다 . 안심하시고 믿고 기도하시옵소서 . 들은즉 아버지께서 아직도 마귀의 종이 되어 계시다니 영혼이 당할 지옥 형벌을 어떻게 하실 터이며 또 그로 말미암아 내리는 집안의 형벌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 이제는 누구의 권면을 들으시지 않고라도 회개하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1931 년 3 월 30 일 

토성 ( 土城 ) 역에서 해주 가는 길에 용도 상서

 

10) 이덕흥 : 이용도 목사의 부친 . 시변리 우시장 거간

 

 

 

 

 김광우 씨에게

 

머지않아 서울 사람 , 아니 신학교의 사람이 되어 올라올 것을 생각하고 퍽 기다려집니다 . 4 년 동안의 ‘ 아라비아 사막 ’ 의 바울과 같이 주로 더불어 친교가 있기를 바랍니다 .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보다 신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될 일입니까.

묻건대 , 일문 ( 日文 ) 『 요한 웨슬레 사적 』 과 『 신지와 신애 』 ( 神智 と 神愛 ) 혹 형이 가져가시지 않았는지 . 여러 사람이 빌어간 가운데 누구에게 빌려주었는지 몰라서 묻는 바이올시다 . 필요한 일이 있어 그러오니 혹 있거든 오실 때에 가지고 오소서.

 

1931 년 3 월 30 일 

경성부 현저동 산 12 의 15 이용도

 

 

 

 

<2 부 : 1931 년 >

 

제 2 장

 

 

 변종호 씨에게

 

3 월 30 일 , 이날은 용구 ( 龍九 ) 군이 승천의 광영을 입은 복스러운 날이외다 . 

오전 9 시에 .

나는 9 시에는 경성역으로 나오는 전차 안에 있었나이다 . 해주에 내가 왔을 때는 오후 4 시경 . 31 일 장례식 . 오전 11 시 하관 시에는 뜻 아니한 봄비가 유정 ( 有情 ) 하게 쏟아졌었나이다 .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 아멘. 

저는 가고 나는 아직 있나이다 . 이 땅 위에 .

 

1931 년 4 월 3 일 

금교 ( 金郊 ) 역전에서 이용도

 

 

 

 이태순 씨에게 

 

이태순 자매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한 자에게 더욱더 은혜가 있을지어다 . 아멘 . 

“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서는 있는 것까지 빼앗으리라 ” 하신 말씀대로 마음 있는 대로 더욱더 받게 되겠습니다 . 악을 사모하며 죄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마귀가 더욱 죄악을 입을 수 있도록 할 것이요 ,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더 주고 더 주실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항상 은혜를 사모하기 바랍니다.

그 동안 서울 광희문교회 부흥회와 또는 제 아우의 별세하는 일로 인하여 여러 곳 편지 쓸 것을 못썼습니다 . 저를 위하여 늘 기도하여 주심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 주의 이름으로 나에게 물 한잔을 주면 주께서 더 크게 갚으실 줄을 나는 믿습니다 .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주를 대접하듯이 하옵소서 그것을 주께서 기뻐하시나이다.

 

1931 년 4 월 6 일

 

 

 

 김유순 ( 金柔順 ) 씨에게 11)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에게 더욱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라노라 . 아멘 .

주의 이름이 하나님과 인간을 친합 ( 親合 ) 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을 친애하게 하였나이다 . 우리가 예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하기에 이르렀나이다 . 그러므로 주님은 평화의 왕이시요 , 사랑의 임금이십니다 . 이런 주님을 심중에 영접하여야 되겠나이다 . 주님은 겸비를 자리로 하시고 그 위에 앉으시며 마귀는 교만을 용상 ( 龍床 ) 으로 하고 거기 오는 것이었습니다 . 고로 항상 겸비하지 않으면 주님은 들어와 계시기 어렵습니다 . 겸비하소서 .

마땅한 일이면 충성을 다하여 수고할 것이외다 . 마귀를 대적하라 . 그리하면 물러갈 것이오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 그리하면 가까이 하시리라고 하심을 기억합니다.

마귀를 대적하시오 . 마귀는 사람을 잘 압니다 . 그래서 그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하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 혹은 슬픔으로 , 괴로움으로 , 기쁨으로 , 세상 재미로 , 두려움으로 , 병으로 , 가난으로 , 부로 , 명예로 , 칭찬으로 , 여러 가지로 유혹하여 어떻게든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지 못하게 하나이다 . 그러므로 주의 도움을 구하여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더욱더 주 앞으로 가까이 나가시기 바라나이다.

 

1931 년 4 월 6 일

 

11) 김유순 : 사리원 교회 집사 . 예수교회 교인

 

 

 

 이용채 ( 李容采 ) 씨에게 12)

 

마음에 늘 염려 중이더니 형님의 편지를 받고 나니 더욱 어려워지는 듯 마음이 자못 불편합니다 .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부지 (不知 ) 로써 그날그날 당면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려고 하는 것뿐이니 , 대개 내가 염려한다 해도 나의 마음을 스스로 상하고 또 하나님의 성의에 어그러짐이 있기 쉬울 뿐이니 , 나의 염려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

물론 돈이 되었으면 벌써 보냈을 터이지요 . 그러나 지난달 봉애 12-1) 가 집에 가노라고 25 원 찾아가지고 갔을 뿐이고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수중에 들어 온 것이 없으니 아무리 걱정한들 무엇 합니까 . 원래 나라는 위인은 돈을 벌 줄 모르는 물건이요 , 또 그 방면에 대하여서는 누가 주기 전에는 어디 가서 변통할 힘도 없는 위인이니깐 그렇습니다 . 나는 나의 궁한 것을 형제에게나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 많이 두고 안 주는 줄 아는 사람에게는 불가불 이런 말이 나갑니다그려.

일전에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내가 주에게 바친 몸이라고 부모도 그러시고 형제들도 그리고 또 나도 그리하였으나 바쳐 놓고도 주님을 기쁘시게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다시 하나님의 사람을 빼앗아다가 사사로이 자기 소용을 위하여 쓰게 되면 하나님께 득죄하게 될진대 차라리 아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나오고 또 부모와 형제는 나를 하나님에게서 빼앗았다가 당신들 마음대로 농사를 시키든지 하시라고 .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같이 노동을 하면서 사는 날까지 살다가 이 생을 마쳐 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위한다는 일에서 떠나서 부모와 형제들을 위한다는 일로 나의 길을 돌린다면 실상 부모와 형제들에게 유익이 되겠는가 ? 복이 되겠는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만일 그리 된다면 운명을 자세히는 모르거니와 나는 1 년을 마치기 전에 육체는 병객 ( 病客 ) 이 되고 따라서 내가 부모 형제를 돕기는커녕 부모 형제가 나와 나의 가족을 돕지 않으면 아니 될 참경 ( 慘景 ) 에 빠질 것입니다 . 왜 그런고 하니 나는 지금도 성한 몸이 아니올시다 . 나의 병세를 집안이 안다면 염려 위에 염려를 더하여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지는 동시에 산 목숨들이 끊어질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습니다 . 나는 지금이라도 전도를 하지 않으면 - 집에 와있으면 - 앓습니다 . 내 몸을 내가 건사할 수 없습니다 . 나의 몸에는 피가 극도로 말라서 극도의 빈혈증인데 의사들은 보는 이마다 놀래는 형편입니다.

“ 그렇게 피가 없고 어떻게 사느냐 ?”

“ 이 목사가 사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 라고 합니다 .

그런즉 내가 부모형제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도 욕이요 , 내게도 저주요 , 집안에도 망조가 되는 것인 줄 깨달았나이다 . 그러나 그래도 부모 형제들이나 임의대로 쓰신다면은 나는 할 수 없이 저들을 위하여 주의 일을 그만 두겠습니다 . 

왜 그런고 하니 주의 일을 한다고 몸바치니까 , 적극적으로 부모형제를 도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지만.

집에서는 내가 쓸데없는 사람들 다 붙여 먹이면서 집안 돌아 보지 않는다고 하시는 듯 하지만 실상은 내가 그만큼 하는 덕으로 오늘 내가 살아있고 하나님은 나를 긍휼이 여기사 밥이라도 굶기지 않고 먹여 주시고 일이라도 하게 하신답니다 . 그것도 내가 아니하면 주의 일이라고 할 것이 무엇입니까 .

강단에서 한 주일에 한 번씩 생명 없는 연설이나 하고 이 집 저 집 억지로 말놀이나 하는 따위의 심방 ( 尋訪 ) 을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것은 도저히 죄악이지 주의 일은 아닐 줄 압니다.

일언이폐지 ( 一言以蔽之 ) 하고 , 사람을 돕고 또 살리는 이가 하나님이었은즉 원컨대 부모와 형제들은 하나님께 구하시옵소서 . 하나님께서 주시리다 . 각 사람은 하나님께 어여삐 보인 후에야 그에게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여서는 원래 실패니까요 . 만일의 말과 같이 자기만이 부모를 맡기 때문에 자기가 못살겠다고 하면 저는 부모를 두고 나가서 혼자 잘 살아보라고 하고 나는 내려가서 그 집에 들어가 부모를 봉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는 그냥 돌아다니면서 전도를 하고 약간의 생기는 것이 있다면 집으로 보내어 살림을 보태고 봉애는 집에서 밥장사도 하고 농사도 일꾼 두고 해서 부모를 봉양할 것입니다 . 나는 이렇게 서울 살림을 차려 놓고 또 대중을 상대로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 매달 빚지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할 것입니다.

 

아 , 쓸데없는 말을 정신 없이 많이 썼습니다 .

어쨌든 부모자식간이나 형제간이나 부부간이나 참된 이해가 없으면 피차에 무한한 고통인 동시에 되는 일이 없이 모든 일이 구겨져서 망조가 되는 것 밖에 없는데 지금 우리 집안의 가련한 형편도 부부가 합치 못하고 동기가 화목하지 못하며 부모자식이 이해가 없고 형제의 사랑이 돈독하지 못함과 몰이해한 데서부터 받는 저주라고도 하겠지요 . 서로 자기를 죽이고 자기의 편리와 이익을 희생시키어 돕고 사랑하고 너그러이 대하는 이해가 있다면 왜 못 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물론 불효막심하고 형제로서도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 그러나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짐짓 돌보지 않습니까 . 형님 , 형님 , 내가 무엇 때문에 , 무엇을 위해서 이리 살고 있는 것입니까 . 나에게는 지금 원수가 점점 많아지는 판이올시다 . 이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탓이겠지요 . 예수님이 그 거룩한 어머니와 형제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버림을 당하여 외롭게 혼자서 사형을 당하시더니 , 아마 내가 그렇게 될까 봅니다 . 전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차차 나의 대적이 되고 전에 나를 신임하던 부모도 차차 나를 불신임하고 나를 이해 동정하던 형제와 처도 나를 이해치 않사오니 장차 나의 영 ( 靈 ) 의 길을 막아 하나님의 성의를 이루지 못할까 두렵소이다.

나는 지금 고독합니다 . 이는 나의 골고다가 점점 가까워오고 천당 영광을 누릴 날이 멀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예수 가라사대 “ 누가 나의 부모요 , 형제요 , 자매냐 ?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나의 부모요 , 형제요 , 자매 ” 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가 저희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예수를 몰이해한 것이지요 . 지금 나 하나를 가운데 두고 마귀는 굉장히 역사를 합니다. 이렇게 여러 방면에 서서 마귀는 나를 공격합니다 . 나는 그 가운데서 꼭 마귀에게 사로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방에서 나를 지켜 주심으로 내가 지금까지 견디었나이다. 할렐루야 . 아멘

어머니도 화병 . 화병은 누구든지 죄병입니다 . 예배당에 매일 가서 기도함으로써만 고칩니다 . 은혜로 .      

 

아 , 불쌍한 가정 죄인의 가정 

불쌍한 자식 죄인의 자식 

불쌍한 사람 죄인의 사람

그리고 믿음이 없는 사람 불쌍한 사람 

기도 못하는 사람 불쌍한 사람

 

아 주여 ,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소서 

저희들에게 기도할 힘을 주소서 

다 망하기 전에 주여 구원하소서

 

이젠 거진 다 망해갑니다 . 오 주여 , 어서 구원해주소서 . 아멘 .

 

1931 년 4 월 17 일

 

12) 이용채 : 이용도 목사의 큰형

12-1) 봉애 ( 宋鳳愛 ): 이용도 목사의 아내

 

 

 

 이태순 씨에게

 

이태순 , XYZ, 안두화 제씨에게 ,

예수님이 늘 모매님들 심중에 거하사 위로와 힘과 기쁨과 용기 되시기를 바라나이다 .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 저는 서울서 떠나 그 이튿날 원산을 거쳐 통천 • 고저 ( 庫底 ) 를 잠깐 들려서 그 다음날 아침 차를 타고 하루 종일 또 밤새껏 또 그 이튿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밤에 불 들어온 후에야 용정 ( 龍井 ) 이라는 곳에 내렸습니다 . 나의 몸은 여전 하오나 나의 영에는 성령의 특별한 운동이 있어야겠습니다 . 물론 어떻게든지 주께서 역사하실 줄을 믿습니다 . 

친애하는 모매님들 중심에는 다만 예수님만이 계셔서 , 사모하는 이도 예수요 , 바라는 이도 예수요 , 의지하는 이도 예수요 ,  다만 예수님만이 심중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 무엇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보다 더 생각하고 더 사모하고 더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는 죄로 나온 것이요 , 따라서 주님께는 합당치 아니합니다.

 

4 월 20 일 아침 

중국 간도 ( 間島 ) 용정촌감리교회 이용도

 

 

 

 이태순 씨에게

 

항상 중심으로 늘 기도하여 예수님으로 더불어 사귀고 육신으로는 부지런히 일하여 가족들을 잘 돌볼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괴롭든지 , 너무 재미있든지 , 이는 다 좋지 않은 일입니다 . 세상은 그렇게 괴로울 것도 없고 또 그렇게 재미날 것도 없을 것입니다 . 진정한 믿음이 있는 자는 괴로워서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생각이나 너무 재미있어 세상에 끌려 사는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올시다 . 세상에는 일을 할래야 일감이 없어서 괴로운 생을 죽지 못해 노는 사람도 많이 있고 또는 일을 할래야 육신이 성치 못해서 탄식하는 사람도 많은데 육신이 든든해 일을 할 수 있고 , 또 일감이 얼마든지 있고 , 소망 없이 괴롭게 그냥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찬송하면서 기쁨으로 일을 하니 그 얼마나 축복 받는 사람의 일입니까 . 감사할 것입니다 .

사리원 정거장에는 6~7 인이 나왔었으나 종규와 원섭 씨 이름 외에는 다 기억할 수 없고 원회서와 그 동무 한 사람이 같이 왔습니다.

OO는 얼굴에 살이 좀 오르는 것 같더구만요 . 짐 안 가져왔느냐고 묻는데 좀 가져왔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피차 섭섭한 일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때 개성 내릴 것입니다.

요한복음 5:40~41, 빌립보서 3:7~21, 빌립보서 4:4~7

 

6 월 11 일 

평양 남문내 교회 용도 배상

 

 

 

 이덕흥 씨에게

 

모든 일이 합동하여 은혜가 될 줄 압니다.

사람이 죽고 집안이 뒤숭숭하고 사람들이 비방한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요 , 근심하며 번민할 것도 아니올시다 . 다만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인즉 회개해야 더욱 진심으로 주를 섬길 뿐입니다 . 앞으로 더욱더 무서운 시험과 환난이 내릴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자기가 잘 믿는 줄 아는 자나 아직 죄의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 , 진실로 회개치 않으면 장차 내릴 진로를 피할 자 어디 있으리오 . 요새는 시급한 직무가 있어 가서 뵈옵지 못하매 심히 죄송하올시다.

부끄럽다는 것은 무엇이고 괴롭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앞으로 더 무서운 진노가 내릴 때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사를 가면 나을 리가 어디 있어요 . 이사를 가면 주의 진노를 피할 수가 있나요 . 거기서도 또 환난이 내리면 어찌할 것입니까 . 산으로 가도 주께서 거기에 계시고 바다로 가도 주께서 거기에 계시나이다 . 나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자매들이여 이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 겸손히 진실히 주의 앞에 회개하고 감사함으로 나아가시기 바라나이다.

 

1931 년 6 월 27 일

소자 상서

 

 

 

 

<2 부 : 1931 년 >

 

제 3 장

 

 

 장양옥 ( 張良玉 ) 씨에게 13)

 

나의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바 양옥이여,

그대는 나의 동생이요 , 또 나의 누이로다 . 내가 나의 살 중에 살이요 , 뼈 중에 뼈인 용구 동생을 생각할 때 , 양옥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양옥을 생각할 때 나의 동생 용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노라 . 나의 주님은 특히 양옥을 긍휼히 여기심이 있기를 비노라.

해주 간다는 엽서를 받고 그 다음날 봉애로 하여금 편지를 써놓았으나 해주 주소를 적은 양옥의 편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음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노라.

무너져 내리는 산비탈 찬 땅 위에 세상이야 이렇든 저렇든 탓하지 않고 고요히 누워있는 나의 동생을 나는 부러워하노라 . 세상이 악한들 상관이 있으며 선한들 상관이 무어냐 . 추운들 어떠며 더운들 어떠리오 . 세상에 있는 아무런 조건이라도 저를 흔들 수 없는 그야말로 하늘의 나라가 아닌가 . 거기에 들어간즉 인간은 퍽이나 너그럽고 대범하여 하등의 불평이나 불안이 없는 곳이로다 . 아 ,  이 하늘의 나라에 살고지고 …… .

 

1931 년 7 월 10 일

형 용도

 

13) 장양옥 : 이용도 목사의 제수 ( 弟嫂 ). 이용구 ( 李龍九 ) 의 아내

 

 

 

 변종호 씨에게

 

“ 어젯밤 밤중에 한잠 자고 깨어서는 공연히 눈물이 나서 울었습니다 .” 이것을 소리 내어 읽다가 목이 메어서 채 못 읽고 그쳤소이다.

왜 밤중에 잠을 못 자고 깨어 울었는고 . 그 정지 ( 情地 ), 그 외로운 모양이 나의 맘을 크게 움직였소이다 . 빼빼 말라서 까맣게 된 몸. 객창 ( 客窓 ) 에서 심회 ( 心懷 ) 가 오죽 외로움이 컸을고 . 게다가 돈 없는 몸이니 한층 더 막막을 느끼게 되었겠지.

형제여 , 그대는 외롭지 않노라 . 하란 광야에서 돌베개 하고 자던 가련한 야곱의 하나님은 형제의 하나님이로다 . 이방에 떠돌던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역시 형제의 하나님이로다.

금강산을 가든지 , 못 가든지 , 돈을 벌든지 , 못 벌든지 , 돌아가는 길에 들려야지 . 그게 무슨 말인가 . 돈 가지고 은혜를 갚겠다는 형제의 어리석음을 나는 웃노라.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심 . 그 사랑의 작은 부분도 돈 [ 萬兩 ] 으로 갚을 바 아닌 줄로 믿노라 . 천하를 다 주고도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랑이었음이라 . 다만 , ‘ 아멘 ’ 이 있어 족하니라 .

기도를 많이 하소서 . 담대히 소리 내어 기도를 많이 해보소서 . 새로운 힘을 얻으리다.

일전 사진은 반가이 보았소이다 . 와이셔츠를 새로 사 입고 , 맥고 ( 麥藁 ) 모자를 새로 사 쓴 모양 , 보기에 한결 좋았습니다 .

그러나 그 외적의 것 , 물적의 것이 힘이 되면 몇 푼어치 되며 , 거기에 위로가 있다면 또 몇 푼어치나 있을 것인가 합니다.

헌 바지 , 헌 모자를 입고 쓰고도 영이 즐거울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는 어떤 하늘의 조건 , 심령의 조건이 생겨야 할 것이외다 .

형제여 , 주의 품에서 영생하소서 . 육의 자기를 온전히 버리고 영의 주에게 끌리어 사소서 . 그 영에게 삼킨 바 되어 물욕의 변 ( 邊 ), 정욕의 변 , 죄악의 변은 아주 없게 하소서 . 그리하여 몸은 땅에 있으되 영은 높이 하늘에 사소서.

석교 김영배 선생에게서 1 원 90 전 받아서 입회금 50 전 내고 1 원 40 전 남아 있는데 보내려고 하나이다 . 받으소서 . 2 원을 받아쓰소서 .

 

1931 년 7 월 18 일

 

 

 

 장양옥 씨에게

 

할머니와 아버지 , 어머니 , 다 안녕하시기를 바라고 형제자매들과 굳게 믿음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 담대히 믿고 주께서 은혜 주시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 마귀는 하나님께 우리를 허락 맡았습니다 . 그리하여 마귀의 능력이 능히 우리를 해할 것이외다 . 그러나 우리의 영을 죽이지 못하나니 이방 사람을 대하여 부끄러울 것이 무엇 있겠소 . 더욱더 담대하여 주를 섬길 것이 아니오이까 . 일전 내가 편지했는데 못 본 모양이구만요 . 일본 유치원에서 오라고 하는데 8 월 그믐께는 가야 하겠으니 속히 올라오든지 가겠다고 허락해 보내든지 . 강습회는 7 월 23 일부터라고 .

 

7 월 24 일

 

 

 

 이태순 씨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 내 부모요 , 형제요 , 자매니라 . 나는 도처에서 믿음의 식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습니다 . 그들을 만나 나의 피곤한 영과 육은 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 그들이 있음은 나의 큰 위로올시다 . 27 일에 사리원을 지나려고 했더니 26 일 오후 4 시에 사리원을 지나겠습니다 . 말세를 당한 이때에 저희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염려가 없지 않사오나 ,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니 떨어지지 않을 줄 믿나이다. 

로마서 8:26~28 을 읽으소서 .

 

1931 년 8 월 20 일 

선천읍 교회 이용도

 

 

 

 이태순 씨에게

 

친애하는 모매님들에게

언제는 펜이 없어 못쓴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동식 씨가 오셔서 내일 가신다고 하시기에 불연 듯이 붓을 들어 주의 이름으로 문안하는 글을 씁니다. 그 동안 세상고초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이 괴로우실 때 많으셨을 줄 압니다.

저는 삼방 ( 三防 ) 가서 특별히 기도로써 날을 보낼까 하였으나 삼방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고 해서 불가불 시작하였다가 한나절 하고 중지했습니다 . 그리고 각각 자유로 혹은 산에 혹은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 어떤 분은 한 이틀 , 혹은 사흘 , 혹은 일주일씩 금식하며 산기도하는 이들이 있어 은혜 많이 받은 모양입니다.

북간도 , 원산 , 평양 또 그 외 다른 곳에서도 온 이가 있어 평소에 사모하던 형제자매들이 다 많이 있었습니다 . 아주머니와 치숙 자매 또 그 외 기도하는 나의 동무들을 늘 생각했습니다 . 특별히 아주머니를 늘 생각했습니다 . 주님께서 아주머니와 종규를 특별히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 세상은 악하고 궤휼 ( 詭譎 ) 하여 성도들을 거꾸러뜨리려 애쓰나 주께서 지키시매 아무 염려없습니다.

주를 따라 살려면 먼저 그와 같이 죽어야 될지니 , 곧 육신의 생각과 정욕과 사욕과 물욕까지 죽어야 할 것이니라 . 예전 생각 , 예전 혈기 , 예전 생활 , 예전 풍속 , 예전 습관 , 예전 인정 , 예전 말씨 , 예전 행동 다 죽어야 할지니라.

그리고 세상과 육신을 대하여는 죽은 자 같이 , 바보와 같이 , 멍텅구리 같이 되고 주님과 진리를 향하여만 나의 영이 새로이 살아서 새 생각 , 새 정신 , 새 관념 , 새 풍속 , 새 습관 , 새 인정 , 새 말씨 , 새 행동이 나타날 것입니다.

곧 주님을 향하여 영으로만 산 자가 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진리로만 살지니 남이야 욕을 하든지 흉을 보든지 가난함이 오든지 병듦이 오든지 교회가 나를 버리든지 목사가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든지 땅 위에서 어떠한 일이 있든지 다만 주만 보고 나갈지니라.

일찍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은 자는 하늘에서 수치와 곤고를 당할 것이요, 세상에서 수치와 곤고를 당한 자는 하늘에서 영광과 평안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지라 누가 이 뜻에서 벗어 나리오 . 너는 하늘에서 영광과 평안을 얻겠는가 ? 네가 육신으로 잘 살고 평안을 누리며 물질의 영광을 받으면 너는 영으로 하늘에서 그와 반대되는 고초를 겪을 것이니 너는 차라리 이 세상에서 곤고와 수치를 즐겨 환영하라 . 이것이 너의 택할 바니라 .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아 깨닫는 바 있는 자는 복된 자로다 . 네가 언제까지든지 땅 위에서 잘 살려고 할진대 너는 벌써 하늘의 복락을 잃고 있는 자니라.

오 주여 ,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육이 너무 평안하고 나의 생활이 아직 수치와 욕을 당하지 아니하였사오매 나의 영이 장차 받을 바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가득하오이다.

오 주여 , 어서 나에게서 이 모든 육의 평안과 생활의 평범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 그리고 주께서 사신 바 육신의 생활과 같은 곤고의 생활 , 그 몸소 받은 고생 다 당해볼 수 있게 해주옵소서 . 그리하여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얻게 하여주옵소서 . 이 세상의 부귀 영화도 풀의 꽃이요 , 육체의 생명도 아침 안개로소이다 . 어찌 오래 바랄 수 있으리요 .

오 주여 , 저희들을 이끌어 육에서 곤하고 영에서 길이 편하게 하여주옵소서 . 육에서 슬프고 영에서 기쁘게 하옵소서 . 육에서 수치를 당하고 영에서 영광을 얻게 하옵소서 . 나는 세상을 위하여 있지 않사옵고 다만 하늘만 위하여 있사옵고 육을 바라고 있지 않사옵고 다만 영만 위하여 있사옵니다. 하늘의 것 , 영의 것을 위하여는 곤고나 빈핍이나 수치나 죽음이나 무엇이든지 달게 받게 해주옵소서.

나의 육신은 죽을 것이옵고 세상은 망할 것이로소이다 . 주여 , 이 죽을 것을 어서 죽여주시고 망할 것을 어서 망하게 해주옵소서 . 

영은 살아야 할 것이옵고 하늘은 흥하여야 할 것이로소이다 . 주여 , 이 살 자를 어서 영원히 살게 하여주시고 흥할 것을 어서 영원히 흥하게 하여주옵소서.

주께서 나의 육을 세상에 용납하시는 동안 이 육은 죽을 수고를 다 할 것이로소이다 . 오 주여 , 내가 참아 살라는 것은 진실로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은 고생이오나 그러나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게 해주옵소서 . 아멘 . 

찬송가 197, 149

고린도후서를 많이 읽으소서 . 먼저 6:1:10, 7:2~4 을 읽으시오 .

 

1931 년 9 월 23 일

이용도 배상

 

 

 

<2 부 : 1931 년 >

 

제 4 장

 

 

 변종호 씨에게

 

잘 가서 좋게 지내신다니 고마운 일이외다 . 나는 아현 ( 阿峴 ) 서 채 마치기 전에 집회를 산회하게 된 것이 그 동안 특별한 일이오 .  또 황국주 ( 黃國柱 ) 일행을 서울서 맞이한 일이 또한 기록할 만한 일 . 그 외 별무타사 (別無他 事 ). 월요일 아침 특급으로 향통영 (  向統營 ). 오늘이 5 일인가 . 그러면 11 일까지 통영읍에 있다가 경남 사천 ( 泗川 ) 으로 가겠소 .

형제는 장가가지 말고 내 집에서 길이 사소서 . 나는 언제 죽을는지 모르니깐 . 형제가 내 집을 맡으소서 . 이번 아현서도 쫓겨난 셈이요 . 내가 이리 되다가는 골고다의 영광이 머지않은 모양이외다 . 나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소서 . 칭찬이나 욕이나 간에 .  형제는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시오 . 그리고 우리끼리만 알고 지냅시다.

 

10 월 5 일 

경부선 차중 시무언

 

 

 

 이덕흥 씨에게

 

소자는 평안남도 안주읍 ( 安州邑 ) 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중이옵고 다음은 평북 운산 ( 雲山 ) 북진 ( 北鎭 ) 으로 가겠습니다 .  늘 성역에 분주하다 하여 부모님 전에 배알치 못하여 죄송만만이로소이다 . 세상은 잠깐이요 , 천국은 영원한 곳이오니 , 아버지 , 잘  준비하셔서 천국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우리 집에서도 기도 많이 하사 천국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 

세상은 끝 날이 가까워왔고 우리의 목숨은 떠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 오 주여 , 우리 집에 긍휼을 베푸소서 .

 

1931 년 10 월 7 일 

안주읍 소자 용도 상서

 

 

 

 이호빈 ( 李浩彬 ) 씨에게 13)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진리로써 우리를 기르시며 또 먹이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9 월 28 일부터 아현성결교회 부흥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 성결교회의 본부이자 , 현대 교회 중에 가장 복음적이요 , 성결한 은혜에 산다 하는 곳이니 만큼 , 나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수양생들과 당 교회 주임전도사의 간청에 못 이겨 사양하다 못하여 부득이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 28 일 곧 월요일 새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그것이 주일 밤까지 마치어질 예정이었는데 그만 금요일 밤 설교를 마친 후 숙소에 돌아오자 전도사의 축출 ( 逐出 ) 선언을 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밤 2 시 좀 지나서 숙소에서 쫓겨나와 산에 가서 종야 ( 終夜 ) 하고 아침에 돌아갔습니다 . 입을 수 없는 광영임에 무척 감사하였습니다 .     <중략>

그 말을 듣고 온 나는 강단에 올라가 엎드리자 참회의 눈물 , 비분의 울음에 들썩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 악한 교회가 강단에서 교리와 신조를 설명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되 그리스도의 마음은 잊어버리었구나 ! 믿음이란 교리의 승인이나 신조의 묵인에 있지 않고 , 예배의식을 집행함에도 있지 않고 연설에나 기도에도 있지 않고 ‘ 할렐루야 아멘 ’ 하며 노래하는 데도 있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 신이 나의 신이 되어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므로 죽음에서 나오는 것이거늘 , 어느 교만한 교회가 알맹이는 빼어버리고 무엇을 말하며 사랑이라 하는고 .    < 중략 >

그 이튿날 새벽부터 성결교회에서는 큰 야단이 났습니다 . 교인들이 통곡하며 옷을 찢고 우리 집이 부흥회 장소가 되어 연달아 남녀가 와서 울며 기도하며 하더니 주일날 오후에는 가 와서 인사도 채 못하고 “ 오 주여 , 죄인의 무리 ( 無理 ) 를 용서해 주옵소서 ” 하고 애통하며 자복하며 성결교회란 단체가 의인을 못박고 자를 멸시하였다고 …… . 그날 오후 성별회를 인도하다가 기도도 채 마치기 전에 없어졌더랍니다 . 그만 우리 집으로 오시었던 것입니다 .    < 중략 >

하여간 내가 강단에서 쫓겨난다는 일은 말할 수 없는 무슨 두 줄기가 왔다 갔다 나의 중심에 금을 그어놓고 있습니다 .    < 중략 >

두도구 ( 頭道溝 ) 에 은혜가 있기를 바라고 또 형님에게 특별히 원하는 것은 많은 대중을 위하여 그만 두고 기도의 동무들을 위하여 더욱더 제 몸이 되어 주소서 함이외다 . 그들의 외로움을 형님밖에 돌 볼이 없습니다 . 주께서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에는 지금 좋은 바람이 막 불어 오는 중입니다 . 피어선 학생 중에 , 신학생 중에 , 성결교회 학생 중에 , 성결교회 교인 중에 …… ​ .

어쨌든 한곳에서 한 사람씩만 일어나도 좋을 것인데 적지 않은 수효가 움직입니다 . 주 안에서 바로 자라기를 축원하여 마지 않습니다 .

통영 13 일까지 , 사천읍 20 일까지 , 충북 진천읍 ( 鎭川邑 ) 교회 20 일부터 27 일까지 있겠고 그 다음은 평북 영변 10 월 29 일 ,인천 11 월 12~19, 개성 11 월 23~29, 화천 ( 華川 ) 12 월 3 일쯤 될 모양이외다 . 경남에 은혜를 사모하는 교역자와 평신도가 많은데 김성실 ( 金誠實 ) 선생이 몇 해 전에 한 번 지나 간 것이 큰 은혜가 되어 지나간 자취마다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 성도의 자취는 그럴 것입니다 . 우리의 일은 말에 있지 않고 사업에 있지 않고 참으로 영에 움직이어지는 신비에 있음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평양 부형들이여 , 더욱더욱 기도로 싸워주소서 . 우리의 전책 ( 戰策 ) 은 기도에 있고 우리의 무기는 무언의 눈물이 있을 따름이외다 . 조선은 지금 여기 저기 아래서부터 위에 끝까지 흔들흔들 움직이려 하고 있음을 우리가 봅니다 . 자꾸 기도해주소서 . 나는 부족하나 형제들의 기도를 주께서 들으실 줄 믿나이다 . 아직은 이만 .

 

10 월 7 일

시무언

 

13) 이호빈 (1898~1989): 이용도 목사의 협성신학교 동기 . 북간도 목회 .

                                     예수교회 제 2 대 선도감 . 중앙신학원 설립 . 서울연합교회 담임

 

형제들은 나의 이 말을 다른데 전파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나이다 . 이런 사실을 형제들께 말함은 ‘ 전파하라 ’ 고 하는 것이 아니요 , ‘ 위하여 기도해 달라 ’ 고 하는 것이외다 . 우리끼리만 알고 주께만 간구합시다 . 고요히 주의 승리가 올 때까지!

 

 

 

 이호빈 씨에게

 

큰 싸움은 시작되었소이다 . 영과 육의 싸움이니 이스마엘과 이삭의 싸움이로소이다 . 혈육으로 난 자가 하나님의 허락으로 난 자를 대적하는 싸움이로소이다 . 혈육의 자식이 허락의 자녀를 시기하여 꼬집어 뜯고 있나이다 . 각처에서 이 싸움은 시작되었으니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오이다 . 하나님의 사람의 운동이요 , 그 자비의 계획적 전책인가 하나이다 .

신학교에서 4 일간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 영의 큰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 

전부터 일하고 있던 성령은 이 기회에 터졌나이다 . 학생들에게는 기도의 불이 붙어 올랐나이다 . 부흥회 시간에 기도의 때가 돌아오면 야단입니다 . 학생들이 기도를 너무 한다고 하므로 기도 조금하고 간단히 하라고 사회자가 부탁을 한답니다 . 그러나 터져 나오는 것은 학생 중의 일이올시다 . 집회를 마친 후마다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학생들은 10 시가 되기만 하면 선생에게 붙들려 침방 ( 寢房 ) 으로 들어가야 된다고요 . 죽을 양같이 울면서 억지로 끌려갑니다 . 물론 그 기도소리가 크고 그 우는 소리가 애연하므로 저들의 잠을 방해한다는 것이 내적 조건이요 , 학생들이 규칙 지키고 학교에 순종하고 몸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외적 조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침방에서도 견딜 수 없어 뒷산으로 나가서 야단을 칩니다 . 불쌍한 선생님들은 그것이 또 학생을 사랑하는 태도를 들어내는 유일한 수단인 듯이 또 나가서 권고하여 데리고 들어갑니다 . 밤마다 문밖에서 일군으로 파수를 보게 하며 문을 잠급니다 . 그러나 들창문을 열고 뛰어나갑니다 . 무악산 높은 꼭대기까지 따라나가서 밤을 새웁니다 . 선생은 방방을 엄중히 조사하다가 또 찾아나갑니다 . 어떤 학생은 길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끌고 나갑니다 . 밤에 산을 뒤집니다 . 찾지 못합니다 . 그 가련한 꼴 목불인견 ( 目不 忍見 ) 입니다 . 점점 문제는 커갑니다 .

신학교 부흥회는 마쳤는데 그 옆 성결교회에서 또 부흥회가 그 다음 날부터 열렸습니다 . ( 지난 주일 신학교 부흥회는 마쳤고 월요일 새벽부터 성결교회 부흥회 시작)

신학생들은 그곳에 와서 밤을 샜습니다 . 물론 가라는 허락도 없는 것을 간다는 글만 사무실에 써놓고 빠져 나와서 밤을 새니 선생들의 애통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 이튿날 아침 선생에게 호출을 받아 최후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 하나씩 불러들입니다 . “ 학교규칙에 복종하든지 , 나가든지 …… .” 에 대한 대답이겠지요 . 가관입니다 . 찬송할 일입니다 . 울 일입니다.

성결교회 학생들도 야단입니다 . 각처에 야단은 났습니다 . 신학생들 , 성결교회 학생들은 기도할 곳을 찾아 내 집에 옵니다 . 아마 선생들이 알면 저희와 나를 교회의 난적 ( 亂敵 ) 으로 몰아세우겠지요 . 위험분자들의 밀회라고 할는지도 모르겠지요.

주께서 오심은 불화를 일으키려 오시었음이 새삼스럽게 기억됩니다 . 신문 ( 信門 ) 안에서도 영육의 싸움은 크게 일어 가판 ( 可判 ) 이 나야 되게 되었소이다.

그곳 여러 형제의 소식이 그립소이다 . 간도 일은 마음에서 늘 일이 되고 있소이다 . 소제 ( 小弟 ) 를 위한 기도가 형제들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 나의 가련한 상태를 도와주소서.

 

1931 년 10 월 초

시무언

 

 

 

 이천농 ( 李天農 ) 씨에게 14)

 

형님의 편지는 나를 또 울렸소이다 . 나의 피는 뛰고 눈물은 쏟아졌나이다 . 감사의 눈물과 비분의 눈물이었소이다 . 그리고 또 주께 저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눈물이었소이다 . 그러다가 피를 토하고 죽는 날이 우리의 완성의 날이겠지요 . 우리의 육신이 저희들 목전에서 저희들 손에 살이 찢기어 지는 그 날에 우리는 장쾌하게 예수님의 최후의 말씀 “ 다 이루었다 ” 를 부르짖고 승천하겠지요 . 

우리는 이제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를 비통하게 부르짖고 십자가 상의 벌거벗은 몸이 최후를 마치신 그 예수를 따라갈 뿐이외다 . 여하간 우리의 피의 한 방울이 떨어지는 그날이라야 우리의 일은 다 이루는 날이니 오늘 와도 좋고 내일 와도 좋을 것이외다.

사업 성취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 인도에 있지 않고 모임에도 있지 않고 설교에도 있지 않고 나 자신이 죽는 날에 우리의 완성은 있으외다.

간도에 성화가 폭탄같이 폭발되어 전 조선을 흔들고 세계를 흔들어 . 그때에야 세계는 새로운 놀라운 눈으로 대지 동쪽 한 구석에 눈을 돌리고 경이의 가슴을 부둥켜 안고 주님의 앞에 새로이 몸을 굽혀 [ 鞠躬 ] 경배할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이 일을 위하여 몇 생명이나 간도 천지에서 장쾌 ( 壯快 ) 한 피를 뿌릴 건가 . 네냐 , 내냐 . 누가 그 진주문 ( 眞珠門 ) 들어갈까 . 훗날에 누가 그 영화를 맛 볼까 . 네냐 , 내냐 . 그것이 우리의 진주문이요 , 우리의 영화로소이다 . 오 주여 , 나는 이 진주문 앞에서 떨고 서있는 자식이 아니오니까 ? 나의 생명을 지키고 두려워함은 이 내가 아니로소이다 . 이 자식은 영생할 자가 못 되옵고 영멸할 자로소이다.

주여 , 어서 나에게 망할 것을 망하게 해주시고 흥할 것을 흥하게 하옵소서 . 이 영은 이 육을 먹어야만 흥할 것이오이다 . 이 육은 이 영을 위하여 있었소이다 . 나의 영은 이 육을 다 먹어 삼킨 후에야 승전고를 울릴 것이로소이다.

오 주여 , 지금 나의 천국 진주문은 가까이 도래하였나이까 ? 나를 그 속에 집어 넣어주옵소서 . 성의대로만 하옵소서 . 아멘 .

사천서 지금 이 편지의 몇 절을 읽고 기도했는데 불이 붙었나이다 . 통영서도 어지간치 않은 모양인데 내가 약하였고 불순종이 많았나이다 . 여기서는 주께서 나를 찢어 저들에게 살과 피를 먹이시려는지 모르겠나이다.

형님 , 일전 편지를 써서 평양으로 원산으로 거쳐서 형님에게 가서 한 그 글에 자세한 말을 썼으니 그 편지가 가면 아시겠지만 , 삼방서 상경하여 아현 성결교회 집회를 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조선서 가장 성스럽고 은혜가 깊다고 자랑하는 그들의 본부 , 아현성결교회 ! 학원 , 선생 , 학생들이 다들 끓은 데가 아닙니까.

월요일 새벽에 시작하여 금요일 밤 12 시에 축출을 당하였답니다 . 밤중에 그 교회 전도사에게 축출을 당하고 책보끼고 무악산 허리를 타고 송림( 松林 ) 으로 나는 들어갔으니 은근한 주의 품이 더욱 그리웠음이었습니다 . 그때 쫓겨날 때 퍽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생전에 처음이지요 . 기한 전에 쫓겨나기는 . 참 굉장하였소이다 .

기도실 하나 지으려면 얼마나 듭니까 ? 나도 좀 연보 해야지 .

나의 입간 ( 入間 ) 문제는 어찌될지 지금 경성지방에서 단단히 굴레를 씌우려는데 . 그러나 성의가 계시면 빼어주겠지요 . 병순 ( 秉順 ) 이 경과가 좋지 않은 모양이라는데 차라리 입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간도의 바리새 교인 ,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한번 성령의 쇠몽둥이가 떨어져야겠습니다 . 머리를 못 들고 존전 ( 尊前 ) 에 꺼꾸러지기를 다메섹 노중 ( 路中 ) 의 사울과 같이.

송죽 모친 만났소이다 .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듣고 감사했소이다 .

 

1931 년 10 월 13 일 석양

 

14) 이천농 : 이호빈 목사의 아호 ( 雅號 )

 

 

 이태순 씨에게

 

서울 성결교회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경상남도 통영을 마치고 지금 사천 읍에 왔소이다 . 그 동안 몇 번이나 아주머니와 종규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 주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

아주머니 편지는 일편 종규의 편지로 알고 봅니다 . 귀여운 일입니다 . 딸의 믿음이 어머니와 같아서 어머니의 마음을 그처럼 대신한다는 것은 어찌 귀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떠나서는 충천북도 진천읍교회로 가겠소이다 . 10 월 25 일까지 거기 있겠고 그 후에는 서울 잠깐 들렸다가 평안북도로 가겠습니다 . 사리원 믿음의 식구들을 위하여 내 기도합니다.

 

10 월 14 일 

경남 사천읍교회 이용도

 

 

 

 이태순 씨에게

 

아주머니의 편지를 볼 때마다 종규의 귀여운 맘씨를 엿볼 수 있게 되어 퍽 기쁩니다.

 

“ 기도로 살다 기도로 죽어 .” 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 기도는 우리의 본업이요 , 그 외의 것은 다 부업입니다 . 본업에 실패한 자 , 부업만을 가지고 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비하므로 순종하며

말없이 늘 주님을 묵상하고 

땀이 흐르도록 노동할 것 

이것이 우리 일입니다

 

① 고 ( 苦 ) 는 나의 선생 . 고통이 올 때 그것에서 배우는 것이 평안할 때보다 더 배우는 것이 많으며 또 참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② 빈 ( 貧 ) 은 나의 애처 ( 愛妻 ). 가난함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같이 나를 떠나지 않나니 , 나는 건방진 부보다 착한 가난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 

③ 비 ( 卑 ) 는 나의 궁전 . 나는 높은데 처하여 있을 것이 아니라 , 나의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데 처하여 있어야 됩니다 . 그런고로 비천은 늘 내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됩니다 . 고와 빈과 비를 좋아하게 되면 다 되는 때입니다.

④ 예수는 나의 구주 . 다른 사람이나 돈이나 학식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다 나를 구원하지 못하되 예수만 나를 구원하시는 구주가 됩니다.

⑤ 자연은 나의 친구 . 믿을 사람도 없고 사귈 사람도 없을 때 하늘 , 산 , 흐르는 물 , 공중의 별 , 밤의 산과 들 , 초목 , 곤충 , 새들 이는 다 자연에 속한 것으로 나의 친구가 되나니 , 나는 늘 이 친구를 보러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

황해노회에서 나를 무교회주의자로 몰아서 어떻게 한다 나요 . 그 조건 중에는 사리원 자매들이 말없이 평양 갔던 일과 내가 편지한 것들을 보아 그렇다는 것이 한가지 조건이랍니다.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편지한 것이 어떻게 들어나서 그렇게 말썽거리가 되었는지 모르지요 . 다섯 가지 조건이나 흠을 잡았다고 . 나를 핍박하니 고마운 일입니다 . 하여간 내 편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또 누구에게든지 내 말하지 말고 기도할 때에라도 내 이름 크게 불러 기도하시는 것 조심하여주소서 . 마귀가 들으면 시기합니다 .

 

10 월 25 일 

진천서 이용도 상

 

 

 

 김인서 ( 金麟瑞 ) 씨에게 15)

 

인형 ( 仁兄 ) 의 편지는 참으로 혜서 ( 惠書 ) 로소이다 .

문서전도 실현을 기뻐하며 이에 주의 축복이 더욱더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란 ( 靈化欄 ) 에 대한 책임은 너무 무거운데요 .

형이여 , 나를 어느 시기까지 용서해 줄 수 없나이까 ? 나는 이 문서전도 운동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면서도 그 방면에 정면 ( 正面 )  진출에 있어서는 나는 문제입니다 . 지명이 맘에 퍽 들고 삼강 ( 三綱 ) 도 잘 되었습니다 .

다음 호는 ① 너무 굉장하기를 기대치 말고 단순에 착안할 것 ② 너무 이론 투쟁에 기울어지지 말 것 ③ 면수도 많지 않음이 좋을 듯 ④ 책값은 10 전 내지 15 전이 가 ( 可 ) 할 줄 아옵니다 .

인형의 수고가 많을 것을 아오매 주께 간구치 않을 수 없나이다.

황해노회 ( 黃海老會 ) 의 나에 대한 처분설 ( 說 ) 은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우습고 또 감사한 일이외다.

나의 무교회주의설에 있어 나는 변호하고 싶지 않습니다 . 변명할 여지조차 없지요 . 교회 안에 있는 자는 벌써 무교회주의자는 아닐 줄 압니다 . 나는 내 교파의 상부에서 파송하는 대로 순종하기로 하고 또 지금도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① “ 재령교회의 불영접 ( 不迎接 ) 을 비방한다 ” 는 것은 흠을 잡으려는 편에 말거리가 된 듯도 합니다 . 나는 그 교회를 비방하는데 본의가 있지 않고 오늘날 온 세상의 교회가 외형으로만 사람을 보는 것과 형식에는 능 ( 能 ) 하되 의 ( 義 ) 와 인 ( 仁 ) 에는 먼 것을 경계하여 거지라도 주님과 같이 , 아이라도 선지자 같이 대접할 겸비에 들어가서 진실로 의와 인에 움직이어 살기를 바래서 일례를 드는데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② 사리원 자매들의 무고 ( 無告 ), 평양 집회와 서신 왕복에 관하여는 잘 알 수 없고.

③ 소등 ( 消燈 ) 기도 . 이는 큰 문제될 것 없지요 . 무교회주의자는 소등 기도 하나요 ? 대개 강설을 마치고 은혜에 대하여 간절성이 없는 자는 다 가게 되고 특별히 열의 있는 이가 남아 있어 개인이 기도할 때에 흔히 그러하였던 것인데 , 그것은 기도 자리에 남아 있는 자 중에는 체면상 돌아갈 수 없어서 앉아서 시간이나 채우려고 하는 자가 있었는바 , 그들은 그냥 꼿꼿이 앉아서 남의 기도하는 모양만 보고 또는 이야기하고 기도하는 태도에 대하여 비평 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 있었음에 그들을 위하여 차라리 그 눈에 아무것도 볼 수 없어지면 혹 눈을 감고 기도를 하게 될까 하는 바람에서 그리하였고, 또는 연약한 자들은 옆에서 사람이 보고 이야기하는데 끌려서 용감스럽게 기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때가 많이 있었음에 , 저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그리하였고 , 또 나는 나의 경험상 어두운 가운데 나가서 늘 기도하는데 , 그 어떠한 기괴한 공포와 싸우다가 이를 이기는 성령의 힘을 얻는 경험이 있었고 , 또 눈감고 기도하는 데서 더욱 주님을 한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 나는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 대개 일반이 그렇습니다 . 소등은 눈뜨고 겉으로만 도는 자로 하여금 눈감고 암실에 들어가게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이 모든 이론도 지금에 와서 이유를 말하라니까 이런 듯하다는 것이지 , 그때는 그저 즉각적 어떤 움직임에 따라서 그리했던 것밖에 아무것도 없으며 무슨 계획적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 그래서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문제가 아니 됩니다 . 그러나 소등 기도 한다고 해서 무교회주의라고 하는 그 미련함에는 일소 ( 一笑 ) 와 일루 ( 一淚 ) 가 없지 못합니다 . 

④ “ 교직 ( 敎職 ) 공격 ” 이라 . 아 , 나는 개인적으로 겸비하여 저희에게 배울 바를 찾고 그들의 수고를 존경합니다 . 그러나 주의 의편 ( 義便 ) 에 있어서는 진리의 칼로 심판치 아니치 못할 것이니 , 이는 나의 일이 아니요 , 주님의 일임으로써외다 . 죄와 회개라는 말까지도 싫어하는 현대이니 책망을 달게 받을 줄 아는 겸비가 어디 있으리요 . 오 , 교만한 시대여 .

⑤ 『 성서조선 』 지 . 글쎄 그것을 선전이라 할까 . 그들이야 흠 잡으려니까 그러겠지 , 그것이 어떻게 되어 내 손에 들어온 것이기에 . 나는 그것에 절대 가치를 인정하여 선전한 것이 아니라 . “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버리라 ” 는 부탁과 함께 2~3 청년에게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 그것도 몰상식하여 또는 편협하여 어떤 새 것이 올 때 그냥 무턱대고 유혹을 받을 그런 자에게가 아니요 , 소화기가 웬만한 자로 인정한 자에게이었으며 조선복음운동에 있어서 한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는 그것을 참고해보라고 한 것이었고 또 김경하 ( 金京河 ) 목사는 이해성이 있을 줄 알고 그에게 한 권 주었습니다 .

인형 , 나는 별것 다 봅니다 . 무교회지도 보고 , 순복음지도 보고 , 장로회지도 보고 , 감리회지도 보고 , 사회주의지도 보고 별것 다 봅니다 .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본다고 그 주의자는 아니올시다 . 나는 어떤 때 형제에게는 불경 좀 보기를 권하고 , 또 어떤 교역자에게는 사회주의지 좀 보기를 권하기도 합니다 . 아마 그런 때 황해노회원 중 어떤 분이 있었던들 나를 불교신자로 , 사회주의자로 인정치 아니치 못했겠지요.

인형 , 나는 이 말도 인형에게 이미 말했고 앞으로는 일절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 세상 임금이 오나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 

다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과 내가 그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어 족하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이제 다시 기억하고 그리 되기를 바랄 뿐이올시다. 나는 누구누구 해야 세상 사람에게서는 그의 전체를 부인 ( 否認 ) 할 것도 찾지 못하는 자이기 원합니다 . 취사 ( 取捨 ) 의 일을 주님께 의탁한 나는 무엇에나 다 접근합니다 . 나를 기를 수 있어 취하고 나를 기를 수 없어 나는 버립니다.

나는 창기에게서도 배움이 있는 자요 , 난봉에게서나 , 아이에게서나 , 무식한 자에게서나 , 불교인에게서나 , 무교회주의자에게서나 , 누구에서든지 다 배울 바를 찾는 자이외다 . 왜 그런고 하니 나는 어떤 때 저희의 어떤 점보다 못한 것을 내속에서 발견하게 될 때 나는 겸손히 저희에게서 이를 배우지 아니치 못합니다 . 나는 남을 가르칠 자가 아니요 , 배울 자이니 , 일생 학생심을 가지고 배워 마땅한 자입니다 . ‘ 선악이 개오사 ( 皆悟師 ) 라 .’ 모든 것이 다 나의 스승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말하지 않고 , 즉 이론하지 않고 그냥 살렵니다 . 말할 자가 아니고 사는 자가 되어 최대의 축복을 느낄 따름입니다 . 진리는 말할 바 아니요 , 살 바 , 장소임을 나는 압니다 . 종교는 설교에 있지 않고 삶에 있지 않습니까 . 인형 , 우리는 삶에 거합니다 . 설교 , 문서 다 좋지만 , 그 뒤에 우리의 삶이 없으면 이는 무익한 것이 될 것이외다 . 우리 삶에서 이 모든 것이 나오게 합시다. 오늘 경상도서 돌아왔소이다 . 내일은 충북 진천에 . 닭이 벌써 울었는데 피곤한 줄 모르고.

 

10 월 중

 

15) 김인서 (1894~1964): 독립운동가 . 기독교 문필가 .『 신앙생활 』 발행 .

                                     부산 대성교회 담임 . 부산신학교 교수

 

 

 

 양마리아 ( 梁瑪利亞 ) 씨에게 16)

 

양력 10 월 21 일에 진천에 왔습니다 . 27 일에는 서울로 가겠습니다 .

그 동안 조합 돈 때문에 염려를 많이 하신 줄 알고 이곳 올 때에 봉애 보고 마저 부칠 수 있도록 하라고 하고 왔습니다 . 기회 더 닿으면 한번 가서 뵈려고 하였으나 그리 되지 못하여 죄송만만이올시다.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기고 주의 명령대로만 순종하면서 사는 날까지 살아가십시다 . 천당의 길만 잘 예비하십시다 . 아무래도 떠날 세상이옵고 버릴 육신이오니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게 깨끗하게 예비하고 시험이 올수록 더욱 주님의 손목을 잡고 늘어져야 하겠습니다.

 

과히 바쁘시지 않으시면 한번 서울 다녀가시면 반가이 뵙겠습니다.

 

10 월 22 일 

진천읍교회 용도 상서

 

16) 양마리아 : 이용도 목사의 모친 . 시변리교회 전도부인

 

 

 

 이춘화 씨에게

 

무슨 일이든지 말이 없이 순종할 것

누구에게나 겸비와 온유한 마음으로 대할 것 

이마에 땀 흐르도록 육신 노동할 것 

항상 열심으로 기도할 것

때때로 성경 보고 찬송할 것.

 

이것은 참된 신자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 주께서 자매와 같이 계시어 주님의 향내를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10 월 23 일 

충북 진천읍교회 이용도

 

 

 

 변종호 씨에게

 

진천 갔다가 27 일 귀경 , 28 일부터 삼청동교회 집회 . 오는 주일까지 . 어디다가 사진관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꼬 . 영변행 중지 .  인천행도 중지 . 본 지방 교역자회에서 시비가 많아서 잡히는 모양이외다.

오 주여 , 내 약한 영혼을 붙들어 주소서 . 나의 원수가 벌떼 일 듯 사방에서 나를 쏘는 소리 요란하오이다.

주여 , 나의 날이 가까워오는 것이었습니까 . 나의 살과 피가 땅에 떨어지는 그때가 나의 완성의 날일 것을 내가 아옵나이다 . 성의대로 하옵소서 .

 

웬만하면 , 서울로 올라오지 . 평양 형제들 그립소이다 .

무언 ( 無言 ), 겸비 ( 謙卑 ), 기도 ( 祈禱 ), 근로 ( 勤勞 ), 순종 ( 順從 ), 이는 우리의 좌우명이 되어야 합니다 . 형제들에게 다시 이 뜻을 한 번 더 부탁하고 싶소이다. 

 

10 월 28 일 

경성 시무언

 

 

 

 변종호 씨에게

 

모든 일이 다 합동하여 은혜 되기 바라오 . 글은 늘 볼 때마다 마음에 크게 부딪침이 있습니다 . 정○ 양도 와서 보았소 . 어제 ‘ 일본순교사 : 일본 26 성인 ’ 이란 활동사진을 보고 울었소이다 , 나는 그런 일 당하라면 달아날 자식 같아서 . 통쾌하였나이다 . 비절장절 ( 悲絶壯絶 ). 설명할 형용사가 없어서 어안이 벙벙.

삼청동 집회를 마치고 지금은 중앙전도관에서 다음 주일까지 약조하고 복역 ( 服役 ) 중 . 가만있으려도 가만있을 수 없는 신세 . 말을 안 하려도 안 할 수 없는 팔자 ! 내가 원하고 안하고에 있지 않고 오로지 주님 임의에 있으니 나는 온전히 포로의 상태.

 

서울로 올라오구려 . 서울밥은 맘놓고 먹을 수 있으니 올라오시오 .

 

11 월 4 일

 

 

 

 이태순 씨에게

 

요새는 서울 삼청동교회 부흥회를 막 마치고 종로 중앙전도관에서 오는 주일까지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평안도 지방 가려던 일은 다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 언제 가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북간도 , 평양 , 원산 , 사리원 , 서울 그 외 각처에 참 믿음의 식구가 점점 늘어가는 것 , 감사한 일이외다 .

세상이 다 욕을 해도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기만 바랄 뿐이올시다 . 더욱더 많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진해 선생이 미국서 편지할 때마다 문안하였습니다 . 그에게 편지할 생각 있으면 써서 이 봉투에 넣어 보내시면 됩니다 . 그리고 아주머니 주소는 편지 안에 쓰시오 . 그리고 우표 딱지는 10 전 붙이고 . 이만 끝이나이다 .

 

11 월 4 일

 

 

 

 이태순 씨에게

 

내가 나의 방에 혼자 있어 나의 가련한 상태를 생각하고 주의 은혜를 기다리더니 홀연히 주의 말씀이 나타나 “!” 하고 부르시기로 내가 귀를 기울였더니 말씀이 있어 가로되,

 

“ 오 내 아들아 , 왜 네 마음이 슬프냐 ? 나는 네가 죄인 되었을 때에 너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된 것이 아니냐 , 그런고로 너는 ‘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 하는 겸비와 신뢰만이 있어 족하니라 . 세상이 너를 버린다 하여 너는 슬퍼하느냐 ? 그러면 너는 세상의 환영을 받아 거기서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하느냐 ? 네가 세상에서 버림을 당할 때에 그것이야 세상이 악하여 그리했던지 , 네가 악하여 그리하였던지 , 나는 너를 찾는 것이 아니냐 . 나는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온 구주임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 ” 하시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로다.

“ 너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 나를 바라고 나를 믿어 담대할 것이 아니냐 . 너는 담대히 내 앞에 나와 너의 가련한 사정을 고할 것이니라 . 나는 나를 찾는 자에게 후히 갚아주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니라 . 너는 너의 생각도 이를 버리고 계획도 이를 물리치라 . 네가 털이 희어지고 얼굴에 주름이 잡히기까지 생각하고 설계하여 얻은 것이 무엇이냐 . 혹 지금 네가 그로 말미암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진실로 영원히 너의 얻은 것인 줄로 생각하느냐 ? 오 나의 소자야 , 너는 너에게서 떠나 내게로 와서 내 생각을 묻고 내 설계를 배울 것이니라 . 나는 너를 위하여 꾀함이 이미 있었고 베풂이 벌써 있었던 것이 아니냐 . 오 나의 소자야 ,  너는 너의 육과 육의 생각의 포로에서 뛰쳐나와 나에게 와서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나는 너의 하나님이요 , 너의 구주로다 ” 하시니 이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로다.

 

11 월 초

 

 

 

 김교순 ( 金敎淳 ) 씨에게 17)

 

생명의 역환( 易換 )

신앙이란 곧 생명의 역환의 일이외다 . 세상에 살던 나의 죄악의 생명은 하늘에 사는 예수의 생명과 바꾸어지고 물 ( 物 ) 을 바라던 나의 생명은 영 ( 靈 ) 을 원하는 그 생명과 바꾸어지고 근심과 걱정과 염려로 애쓰던 나의 생명은 환희와 평화와 용기로 날뛰는 그 생명으로 변하여지고 땅 위에서 물욕과 정욕에 쌓여 오래 잘 살기를 꿈꾸던 나의 생명은 이를 저주하여 버리고 하늘에 살려는 생명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있는 나의 육이 이것의 욕심대로 물 위에서 만족을 찾으려 하여 그 보수로는 번뇌와 고통 , 비애와 탄식 , 마지막으로 사망을 차지하게 되어 있는 그 생명은 예수에게 갔다 주어 십자가상의 제물이 되게 하고 그 대신 하늘 위에 있는 나의 영이 성의 ( 聖意 ) 를 따라 진리에서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그 생명을 예수님에게서 얻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곧 생명과 생명의 바꿈질이었습니다 . 믿는다 하여도 이 생명의 역환이 없어 ! 그는 아직 사망에 거하는 자올시다 .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생명에서 불의를 찾아 가지고는 예수에게로 달려가서 그 생명의 의( 義 ) 와 바꾸어 가지고 나오나니 이것이 곧 우리의 기도 중에서 되는 일이었습니다 . 만일 기도 중에 있었다 할지라도 이 생명의 역환의 일이 되지 않았으면 이는 헛수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들어갈 때마다 반드시 주님의 귀한 생명을 얻어가지고 나오기 위하여 나의 불의 ( 不義 ) 를 찾아 들고 들어가서 이를 값으로 드리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정거장 환전구에서 돈 바꾸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앉아있는 그 사람처럼 주님의 신 , 곧 성령의 신과 천사들은 영계 ( 靈界 ) 의 관문에서 우리를 기다리나니 우리의 손에 불의를 들고 들어갈 때에 곧 저들은 우리를 영접하여 생명의 충만으로써 찾아 주시나니 그때에 우리는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찬송을 올리며 그 다정하게 대접해주시는 바람에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이런 말 저런 말 통사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생명을 볼 때에는 종일 보아도 눈에 참이 없고 종일 들어도 기쁨이 없고 천하를 소유하는 부 ( 富 ) 가 있어도 생의 맛을 몰랐더니 , 이제는 보고 들어 모두 감사의 조건이요 , 손에 든 것 없는 무물빈자 ( 無物貧者 ) 로되 온 천하를 소유한 자보다 더한 부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므로 늘 생명의 역환구 ( 易換口 ) 에 가서 기웃기웃하고 또 무엇을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  이 일을 더하고 더할수록 우리의 영은 부하고 부하여 부족을 느낄 것이 없는 거부 ( 巨富 ) 에 이를지니 , 이는 우주만물의 소유주이신 주님이 우리의 물주 ( 物主 ) 가 되신 까닭입니다 .

 

 

영계 ( 靈界 ) 의 거리

 

지상에서는 공간으로서 거리를 측정하였으나 영계에 있어서는 사모 ( 思慕 ) 의 정도 여하에 따라서 원근이 정하여 집니다 . 고로 육의 원근은 공간에 나타나고 영의 원근은 사모에 나타납니다 . 사모의 정도가 깊을수록 뜨거워지나니 뜨거워질수록 영과 영은 접근하게 됩니다 . 사모의 정도가 작아지매 주님에게서 우리는 그만큼 멀리 있고 깊어지매 그만큼 우리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 그런 고로 주와의 접근은 그 관계가 주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외다.

 

 

영계의 빛과 어둠

 

영계의 태양은 곧 주님 자신입니다 . 주는 곧 빛이라 하심이 그것이외다 . 이 빛은 곧 생명의 원천입니다 . 저 태양이 없으면 빛이 없어 어둠으로 되고 , 아주 태양이 없어진다면 우주 만물의 생명은 순식간에 사멸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이 , 주님이 우리 영에 군림 ( 君臨 ) 함이 없으면 우리의 영에 빛은 물러가고 어둠이 오고 마나니 어둠은 곧 사망의 안식처이니 만치 사망의 노래 , 곧 탄식 신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 그러나 주님 오시어 ! 영은 환하여 신세계에 나옴과 같아야 나의 영은 용약 ( 勇躍 ) 하여 찬송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 영이 어두워졌는가 . 주님의 형상이 숨기어 있음이요 , 영이 밝아 있는가 . 주님이 군림하심이니라 .

주님의 생명이 나의 영위에 크게 일할수록 나는 땅에서 멀어지고 하늘에 가까워지되 그 생명의 일이 약하여 질수록 올라갔던 나의 영은 땅으로 떨어져 내려옵니다 . 그 생명의 일이 아주 없어 진다면 땅에 꺼꾸러져 지옥 속으로 들어가나니 곧 지옥층입니다.

 

나는 그 동안 경상도 통영 , 사천 , 충북 진천을 마치고 상경하여 삼청동 중앙전도관을 근일까지에 막 마쳤습니다 . 의외의 금일봉을 하사하였으니 어인 일인가 . 후보 ( 後報 ) 가 있기를 기다리다가 대강 귀한 뜻을 짐작하고 천주께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 천한 종이 감당할 수 없는 귀한 사랑에 못내 감격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 저번에 모자와 양말 , 이 모든 것은 다 하늘에서 내린 것인 줄 알아 할 수 있는 대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기회마다 쓰곤 합니다 . 권찰님은 천국에 보물을 쌓아두었습니다 . 내 분명히 알기는 다른 것은 다 지상에서 자취가 사라질 것이로되 주님을 위하여 사랑으로 내주신 것은 장차 받을 천국 복락 중에 있을 것입니다.

평양 부형들 육으론 멀되 영으로 가까움은 사모의 도가 식지 않은 까닭인 줄 압니다.

무언 , 겸비 , 기도 , 순종 , 근실 ( 勤實 ), 회집 ( 會集 ), 시제 ( 施濟 ), 십자가 , 이것이 천국 동행자들의 할 바 일이올시다.

 

11 월 14 일

 

17) 김교순 : 평양 교회 장로 . 평양기도단원 . 예수교회 교인

 

 

 

 변종호 씨에게

 

정절 ( 貞節 )! 이는 진리의 종자 ( 從者 ) 로서는 절대 움켜쥐어야 할 신조이외다.

주만 나의 주요 , 그의 진리만이 나의 진리요 , 그의 말만이 나의 말이요 , 그의 운동만이 나의 운동이 될지라 . 여기서 아주 조금이라도 어그러진다면 나는 반역자요 , 변절자라 . 그 이름이 마귀였느니라 . 주에게서만 나의 세계를 찾고 그에게서만 나의 생을 찾는 것이었느니라 . 억지로 그를 움켜쥐려는 야심의 발작이 아니라 , 나의 삶이 오직 그로 말미암았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은 그의 피의 주사 ( 注射 ) 로만 신생 ( 新生 ) 할 길을 밝히 봄이었느니라.

 

나의 노래가 있음은 그를 위함이요

나의 눈물이 있음도 오로지 그를 위함이로다

나의 전체는 그를 위하여 있어 비로소 생명이 있음이외다 

보는 눈 , 듣는 귀 , 말하는 입 , 글 쓰는 손 , 느끼는 맘 , 다 주를 빼놓고는 사각 ( 死殼 ) 이요 화석 ( 化石 ) 이었노라

다만 주를 위하여 움직이어서만 하늘을 흔들고 땅을 주름잡나니 

그 가운데서 인간들도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의 탄생이 있었느니라 모름지기 너는 주님만이 너의 전체가 되게 하라 

너의 이것 , 저것은 주님을 위하여 쓰여져야만 

의미 있었고 생명이 있었느니라

 

시를 지으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주를 섬기고 진리를 사랑함에 미치라 . 그리고 네가 일찍 그 시재 ( 詩才 ) 를 하늘에 바쳤으면 너에게 진리를 주어 시로 짜서 바치라 할 것이었느니라 . 주로부터 받아 주께 드리는 것만이 참된 생명 있는 시이니 , 주는 곧 진리요 , 생명이요 , 인간의 밟을 바 길 [ 道 ] 이었음이라 . 진리와 생명과 정도 ( 正道 ) 를 떠난 시의 무용 ( 無用 ) 아 , 구역질 나는 것이었느니라 .

 

원컨대 너는 시인이라기보다 진리의 파지자 ( 把持者 ), 예수의 숭배자 , 천적광인 ( 天的狂人 ) 만 되라 . 그 후에 너의 너 됨이 시에 나타나든지 사진술에 나타나든지 그것은 문제 삼을 것이 아니었느니라.

 

본래 맑게 미침은 끝내 고침이 없으니 ( 本來淸狂終無改 ) 

달밤에 철창에서 곡하고 또 노래하노라 ( 夜月鐵窓哭且歌 )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 이렇게 나타낸 그 영의 광증 ( 狂症 ) 이 기묘 ( 奇妙 ) 한 것이 아닌가 . 하여간 미치자 . 크게 미치자 .  그 후에 쓰게 되면 쓰고 부르짖게 되면 부르짖고 침묵하게 되면 돌같이 고요할 것이오 . 어쨌든 진리에 미치는 것만이 우리의 급무 ( 急務 ) 였나니 무엇을 나타내려고 함은 허영이었느니라 . 생명은 나타나는 것이지 나타냄을 받는 것이 아니었느니라 .

 

쌓고 쌓고 누르고 누르고 담아두라

때가 이르러 터지게 되면 막을래야 막을 수 없을 터이니

사업욕 , 공명심 , 이는 다 신앙의 부허 ( 浮虛 ) 요 

진리에 있어 이단 ( 異端 ) 이었느니라

 

본지 오래되어 그 마른 얼굴이 보고 싶노라 ! 휘청휘청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그 모습 ! 눈에 배회할 때마다 ‘ 오 주여 ’ 하고 기원의 눈을 감는 것이었으니 , 이는 너의 미성 ( 微誠 ) 의 한 부분이었노라 .

우리는 육에 있어서는 안 ( 安 ) 할 자 아니라고 ( 苦 ) 할 자요 , 복 ( 福 ) 할 자 아니라 화 ( 禍 ) 할 자이니 , 이것이 우리의 취할 바 길이었느니라 . 그리하여 영으로 평안하고 복 ( 福 ) 하여 하늘에서 살고자 하는 자이로다 . 오 형제여 , 육에 죽고 영에 살자 . 땅에서 천 ( 賤 ) 하고 , 하늘에서 귀 ( 貴 ) 하자 . 우리 주님이 밟으신 길이니라 . 내 천 ( 賤 ) 하려 해도 스스로 천할 [ 自賤 ] 수 없고 내 죽으려 해도 스스로 죽을 [ 自殺 ] 수 없으니 , 나의 주여 , 나를 천하게 하시고 나를 죽이소서 . 그리하여 온전히 주를 영광스럽게만 하옵소서.

 

평양 부형들 , 저희들을 위하여 나의 영이 더욱더 움직이나니 , 저들로 인하여 노래도 더하고 , 눈물도 더함을 깨닫노라 . 

내 예수 아는 친구여 쉬 같이 모이세 

내 예수 아는 친구여 쉬 같이 모이세

 

11 월 중순

 

 

 

 평양 형제들에게

 

천미 ( 賤微 ) 한 종 , 이 불초 ( 不肖 ) 는 개성을 마치고 상경하려고 합니다 . 형제와 자매들의 기도가 이만큼이라도 복역하고 가게 되는 데에 큰 힘을 주었던 것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가려고 합니다.

신앙이 나의 본업이라 . 전도도 나의 본업이 아니요 , 기도도 나의 본업이 아니었으며 그 외 전체가 다 나의 본업은 아니었습니다 .  가령 노동 , 상업 , 농업 어떠한 직업이든지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을 위한 일 모두가 나의 본업이 아니올시다 . 나의 본업은 오직 신앙 ,  그것이 있을 따름이올시다. 신앙을 위하여 전도하고 신앙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도를 위하여 신앙하는 것도 아니올시다 . 나의 상업을 위하여 신앙하는 것도 아니요 , 농업을 위하여 신앙하는 것도 아니올시다 . 

다만 신앙을 위한 상업이요 , 신앙을 위한 농업이올시다 . 먹는 것을 위하여 입는 것을 위하여 신앙하는 것이 아니요 , 신앙을 인하여 먹고 신앙을 인하여 입는 것이올시다 . 나의 전체의 일은 다만 신앙을 위함이요 , 신앙을 인함이올시다 . 다른 모든 것은 다 신앙의 비료올시다 . 모든 것은 다 합동하여 죽음을 이루어 신앙의 삶을 북돋아 줄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만일 나의 본업 신앙에 상함이 된다고 하면 상업도 버릴 것이요, 농업도 버릴 것이외다 . 다 잃고 다만 신앙만 붙들고 죽어 좋은 것이었으니 이것이 영생이 되는 까닭이외다 . 전도도 , 기도도 , 이것이 신앙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으면 이는 무익할 뿐더러 유해한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모든 것이 신앙에 기인하지 않으면 이는 죄요 , 신앙을 위하여 하지 않으면 이는 무익한 것이올시다.

길이 바빠서 중단합니다 . 얼마 전 서유 ( 書留 ) 편지를 받아 감격하였습니다 . 형제와 자매들에게 복이 되어지이다.

 

11 월 30 일

 

 

 

 이태순 씨에게

 

나의 시편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시고

어느 때까지 나를 돌아보시지 않겠나이까

 

어느 때까지 나의 원수로 자존케 하며

어느 때까지 나의 맘으로 근심케 하겠나이까

 

여호와여 나의 하나님이여 , 나의 하나님이여 

내 눈을 여시어 죽음의 잠을 자지 말게 하옵시고

내 등에 채찍을 얹으사 음부에 머무르지 말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나의 원수가 나를 이기었다 자랑하지 못하게 하옵시고 

나를 괴롭게 하는 자가 나의 슬픔을 보고 좋아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자랑할 바 승리가 없을 것이요

저희가 좋아할 바 실패가 나에게 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같이 하심으로소이다

 

세상이 혹은 병기 ( 兵器 ) 로 자랑하고 

혹은 말로 자랑하되

오직 우리는 여호와로 자랑하리로다

 

병기를 의지하는 자 넘어지고 

말을 자랑하는 자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일어나 곧게 서리로다 아멘

 

여호와여 , 나의 원수가 많아졌사오니 

모두 나를 치려는 자들이로소이다

 

많은 사람이 나의 영혼을 가리켜 말하되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옵나이다

 

여호와 나를 호위하시니 

주는 나의 방패시오

여호와 내 머리를 들게 하시나니 

주는 나의 영광이로소이다

 

나를 둘러치는 자가 비록 천이요 , 만이라도 

내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다 

주여 내가 불러 알릴 때에 

성산에서 내게 응락하시고

일어나사 원수 중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가 누워 자는 것은 주 나를 재우심이요

내가 다시 일어남은 주 나를 붙드심이로소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불러 아뢸 때에 나에게 응락하시고

자비로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사람들아 너희는 어느 때까지

내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겠느냐 

어느 때까지 너희는

헛된 것을 좋아하며 거짓 것을 구하겠느냐

 

나의 영혼아 나의 영혼아

세상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지 말고 

세상이 구하는 것 구하지 말자

 

나의 영혼아 나의 영혼아

세상에 끌리어 주를 멀리하지 말고 

사람을 두려워하여 주를 섭섭하게 말자 

나의 영혼아 나의 영혼아

세상이 싫어해도 그 기도 그치지 말고 

사람이 욕을 해도 그 눈물 감추지 말자 

주 너를 사랑 하시나니

네 기도 주 앞에 향내와 같고

네 눈물 주의 눈에 진주와 같으리라

 

11 월말

 

 

 

 이종현 ( 李宗鉉 ) 씨에게 18)

 

기도가 없을 때 나의 영이 마르는 때입니다 . 가뭄이 오래면 논과 밭 , 그 바닥은 갈라지고 터지는 것처럼 기도의 가뭄이 오랠수록 나의 마음 밭은 폭삭 폭삭 먼지가 날 뿐 아니라 , 갈라지고 터지어 나의 영은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 왜 그런고 하니 기도로만 나의 영은 윤택하여지고 은혜의 비에 젖게 되는 까닭입니다.

기도가 없을 때 나의 영은 괴로운 때입니다 . 밥이 없어 괴로움이 아니요 , 옷이 없어 괴로움이 아닙니다 . 다만 기도가 없는 그것만이 나의 괴로움입니다 . 왜 그런고 하니 , 기도 그것이 나의 기쁨인 까닭입니다 . 기도 있는 때 나의 영은 생의 기쁨을 맛보는 때입니다 . 그러나 기도 없을 때 나의 영은 죽음의 쓴 잔을 마시는 때입니다.

기도는 곧 나의 기쁨이요 , 나의 의미요 , 나의 생명이요 , 나의 일이외다 . 기도가 없어 나의 기쁨도 없고 나의 존재도 의미도 없고 나의 생명도 없고 나의 일도 없습니다 . 기도는 곧 나의 생명이요 나의 운동이올시다 . 기도보다 더 큰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나는 종종 기도를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 , 기도 못하는 나의 슬픔

아 , 기도 없는 나의 영의 가련함 

밥을 굶는 것보다 더 가련하고

옷을 벗은 꼴보다 더 불쌍한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 나에게 기도를 주시옵소서

기도할 영의 힘을 주시고 기도할 말을 주시옵소서

나의 중심에 기도가 없으매 나의 영은 신랑과 만나는 밀실을 갖지 못하고 쫓겨난 신부와 같습니다 . 오 주여 , 기도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

나의 모든 것은 다만 기도에 있습니다 . 기도를 마귀에게 빼앗기면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자입니다 . 마귀는 나의 기쁨을 빼앗으려 하지 않습니다 . 저는 지혜로운 놈입니다 . 저는 나의 평화와 힘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 나의 신앙과 열심도 저는 빼앗으려고 직접 손을 대지 않습니다 . 저는 자기의 악의 ( 惡意 ) 를 대적하는 나의 모든 선을 빼앗으려고 애를 쓰도록 그렇게 무지한 자가 아니요 , 그런 우맹 ( 愚氓 ) 이 아닙니다 . 저는 무엇보다도 나의 기도 하나만을 빼앗으려고 하는 아주 묘한 자입니다 . 기도만 빼앗

으면 신앙도 , 열심도 , 기쁨도 , 평화도 다 자연히 빼앗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나의 신앙으로 되는 생활의 전체가 모두 기도 위에 건설되어 있으며 기도 속에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저는 나의 기도를 상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습니다 . 오 주여 , 이 마귀의 간계를 타파하고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기도 , 기도 , 아 그리운 기도 . 내 생명이 떠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기도를 주옵소서 . 기도는 나의 알파요 , 오메가가 되어지리다 . 나의 생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게 하여 주옵소서 . 아멘 .

 

나 세상 사는 것 곡절 많아 

내 지는 십자가 어려워도

내 일생 소원은 늘 기도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친애하는 부형과 모매들이여

 

나를 어이 그리 사랑하시나이까 . 나를 위한 한때의 기도도 천금이나 만금에 비길 바 아닌 것을 , 때마다 나를 기억해 주시고 또 기도해주심 . 아 , 이렇듯 큰 일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 그 위에 어려운 주머니를 털어 돈을 모아 주심 . 너무나 감격하여 잠시 나에게 아무 말도 있지 못하였습니다 . 그 신우들 가운데 의식 ( 衣食 ) 에 어려운 형제자매가 많음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데 , 그래도 나는 내가 먹을 때 , 내가 입을 때 저희들을 생각하여 먹지 못하지 않고 , 입지 못하지는 않는 무애무정 ( 無愛無情 ) 한 자식인데 , 어찌 그렇듯 나를 사랑하여 주시나이까.

지극히 작은 자 중에 가장 작은 자 , 나를 주셨으매 주님이 기뻐하셨을 것은 의심 없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 주의 축복과 은혜가 더욱 더 풍성히 그곳에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 오는 수요일까지 화천읍 집회를 마치고 상경하렵니다.

 

12 월 6 일  시무언

 

18) 이종현 : 평양기도단원 . 예수교회 교인 . 조선민주당 간부 . 농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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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 : 1932 년 >

 

제 1 장

 

 김예진 씨에게

 

경성서 5 일간 인도한 후 인천에 와서 지금껏 집회중입니다 . 익선 ( 益善 ) 형과 같이 사리원서 은혜 많이 받고 가신 줄 알고 감사하였습니다 . 10 일경부터는 경성 자교 ( 紫橋 ) 교회 , 그 앞으로도 계속하여 경성 시내에서 집회할 듯 하외다.

 

사랑 [ 愛 ] 에 대하여 스베덴보리 (E. Swedenborg) 씨는 말하였습니다 .

자기애 ( 自己愛 ) 와 세속애 ( 世俗愛 ) 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동포에 대한 사랑과는 상반되는 사랑이라 . 자기애와 세속애는 지옥에 속한 사랑이라 . 이 지옥에서 최대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자이니 실로 사람의 속에 지옥을 만드는 것은 이것이었느니라 .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과 동포에 대한 사랑은 천국에 속한 사랑이라 . 천국에서 역시 최대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이니 실로 사람 가운데 천국을 이루는 것이 이 사랑이었느니라.

사랑은 사람의 생명이라 . 고로 사랑은 곧 사람 그것이었느니라 . 사람이 사람됨은 곧 그 사랑 즉 , 그 의지에 있는 것이요 , 그 지성 ( 智性 ) 에 있는 것이 아니었느니라 . 고로 그 지식이 얼마나 고상하다고 해도 사랑이 저열 ( 低劣 ) 하면 그는 비열 ( 卑劣 ) 한 인격이었느니라 .

 

1932 년 1 월 5 일 

인천 내리 ( 內里 ) 교회 이용도

 

 

 

 부모님께

 

사랑하는 부모님 전상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든지 하나님을 원망치 못하며 사람을 탓하지 못할 것입니다 , 세월은 흐르는 물같이 덧없고 인생은 풀과 같이, 초로 ( 草露 ) 와 같이 하염없는 것인데 , 이 짧은 세상에 있는 동안 아무쪼록 주님을 든든히 의지하고 믿을 것이요 , 일절 죄와 악을 멀리할 것입니다 .

만일 인생이 세상에 있는 동안 무슨 아픔을 받는다면 이는 분명 저들의 죄와 악으로 인함이요 , 천부의 무리한 저주가 아닙니다 . 그런고로 형벌을 당할수록 더욱 겸손하게 회개하며 주의 앞에 자복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욥의 당한 시험을 잊지 마십시다 .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여 하나님을 저주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수단으로 시험합니다 . 그러나 내 생명이 떠나간 대도 나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더욱더 활발한 마음으로 가까이 나가려고 합니다 . 우리 온 집안은 열심으로 기도하며 주의 앞에 가까이 나갑시다 . 마귀가 설혹 우리 육신을 죽여 그 생명을 빼앗아 갈 수는 있다 해도 우리 영혼을 지옥에는 던지지 못할 것입니다 . 너희는 육신도 죽이고 영혼도 지옥에 보낼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 하셨으니 그는 곧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경외할 신이요 , 사랑할 아버지올시다 . 그러므로 어떠한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소홀히 여기거나 사랑치 않고 원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 남은 식구를 사유 ( 赦宥 ) 하시고 그 영혼들을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좀 슬픈 소식을 또 하나 전할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 그것은 성심 ( 聖心 ) 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올시다 . 무엇이 체해서 대엿새 고생하더니 이레 째 되는 오늘 아침에 그런 일을 남겨 놓고 곱게 천당으로 갔답니다. 세상을 떠났다는 일만은 슬플 수밖에 없으나 천당에 올라갔다는 일은 경축할 만한 일입니다 . 너무 슬퍼 마시고 또한 하나님께 욕이 되도록 낙심하셔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후 곧 모든 식구 한곳에 모이여 252 장 찬송가와 243 장을 하신 후 히브리 12 장 1 절로 12 절까지 보시고 특별히 5절로 7 절을 깊이 생각하시고 기도하십시오 . 믿음의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1932 년 1 월 11 일 

소자 용도 상서

 

 

 

 이순례 ( 李順禮 ) 씨에게 19)

 

세월은 바람 같고 인생은 구름 같구나 ! 바람에 흘러 자취 없이 가는 구름과 방불한 인생들아 , 네 무엇을 하였으며 네 갈 곳은 또 어디 메냐 . 만일 영원한 생명이 없을진대 인생은 바람에 날리는 구름보다 더 하염없고 가련한 것이구나.

순례야 , 길지 못한 네 일생은 왜 그리 슬픔과 괴로움이 많고 많으냐 . 어째 너는 감사를 모르고 기쁨을 모르고 청춘의 때를 지옥의 고통으로 보내고 있느냐 . 그 원인이 뉘게 있느냐 ? 너는 네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어 하늘이나 사람을 원망치 말아라 . 너는 속히 너의 죄와 허물을 다 내어 놓고 거룩한 천국을 준비하여라 . 예수만 든든히 붙들어라 . 우리 집안에서 주는 늘 일하신다.

근자에는 꿈도 이상한 꿈이 많다 . 주는 꿈으로서도 사람을 권고하시누나 . 그래도 어리석어 인간들이 못 깨닫누나 . 나는 기침이 심하다 . 원산 와서 쉬고 있다 . 봉애 , 영철 다 와있다 .

양력 1 월 10 일 , 음력 12 월 15 일에 아기를 낳았으니 이름은 ‘ 선 ’ 이다 . 이선녀 ( 李善女 ), 이것이 우리 집에 온 새 사람의 이름이다 . 그렇게 고산 ( 苦産 ) 이던 봉애 , 주의 특은을 입어 아주 순산이요 , 건강하다 . 기도하여 마음을 고쳐라.

 

1932 년 1 월 25 일

 

19) 이순례 : 이용도 목사의 누이동생

 

 

 

 평양 형제들에게

 

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성령이 형제들의 중심에 크게 불을 질러 놓으시기를 바라나이다 . 그리하여 형제들은 온전히 주에게 끌리며 그 영에 몰리어 움직이는 포로의 상태에 이르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의 소유란 전부 부인할 것입니다 . 외적 소유나 심적 소유나 . 그리고 아주 공허하여 무 ( 無 ) 가 될 것이었습니다 . 나의 이상 , 나의 주의 , 나의 계획 다 집어치우고 , 오 주여 , 나는 무요 , 공 ( 空 ) 이로소이다 .

나의 위에 성령이 움직이어 주의 이상을 세우고 주 ( 主 ) 의 주의 ( 主義 ), 주의 계획을 세우시옵소서 . 그리고 주께서 움직이옵소서. 그리하면 나는 주에게 딸려 움직일 것이로소이다.

형제들이여 , 주께서 허락하신 영을 ‘ 아멘 ’ 으로 받으소서 . 오 , 이 영을 받으소서 . 그리고 미치소서 . 세상에서는 미친 사람이 되고 주의 앞에는 똑똑한 사람이 되사이다 . 세상과 우리는 죽음과 죽음의 관계로 지내고 주님과 우리와만 산 관계를 맺읍시다.

아 , 오늘 교회의 고갈함이여 . 어찌 그다지도 심한고 . 교리와 신조는 있으되 , 참된 믿음은 없었구나 . 사각 ( 死殼 ) 된 교리와 고목된 신조에 만족이 없으면서도 그래도 그것으로 억지로 만족하려는 현대 교인들의 무지와 무신에 주는 슬퍼하시리다.

형제들이여 , 참 믿음 , 순영 ( 純靈 ) 을 받으소서 . 기독교는 원래 사업의 종교가 아니요 믿음의 종교이며 , 지적 ( 地的 ) 종교가 아니요 천적 ( 天的 ) 종교이며 , 물적 ( 物的 ) 이 아니요 영적 ( 靈的 ) 이었나이다 .

참으로 믿음으로 영을 받으소서 . 간절히 기도함으로 , 참으로 믿음으로 영을 믿으소서 . 아멘 .

형제들의 많지 않은 수가 모이는 그 모임에 주의 신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형제들이 나를 부름은 인위 ( 人爲 ) 가 아닌 줄 알아 나의 영은 벌써 움직였나이다 . 주께서 나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그러나 주께서 나를 많은 사람에게로 보내시지 않으리다 . 진리는 다중 ( 多衆 ) 의 앞에 함부로 내던질 그런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나이다 . < 중략 >

만일 형제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주를 사모할진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려는 그런 사업심을 버리소서 . 선전이 없고 공개가 없어도 참 빛은 공중의 별과 같이 그 빛이 찬연히 나타날 것이었나이다.

형제들이여 , 다만 한 분이나 두 분이라도 족합니다 . 그런데 이제 여섯 형 제 . 참으로 영과 진리를 사모하는 여섯 형제가 평양에 있어 . 나는 그것만으로도 평양에 만족한 마음으로 갈 것이올시다 . 나는 많은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 여섯만 모이소서 . 나는 한 번 가겠습니다 .

지금이라도 가고 싶소이다 . 고요한 밀실에 믿음의 벗만 모이소서 . 기도의 동무만 모이소서 . 교회강단 그것은 내가 설 곳이 아니오이다 . 상 ( 床 ) 을 쳐 연설이고 소리를 쳐 설교가 아니라 , 기도가 우리의 본무 ( 本務 ) 였으니 기도하기 좋은 곳만 얻으소서 . 그리고 재삼 부탁하오니 기도의 동무만 모이소서 . 형제들이여 , 그리고 조심하여 나의 이름을 사람에게 알리지 마소서 . 형제들은 다 하나님과의 비밀이 있는 것같이 나와도 비밀이 있습니다 . 세상은 이름으로 좋아야 좋은 것인 모양이고 사업가는 이름을 팔아서 무엇을 하는가 합니다 . 형제들은 늘 어데 모이나이까 ? 나에게 가르치소서 . 익선 ( 基善 ), 형제는 황주에 계신 줄 알았는데 , 지금은 평양에 오셨나이까 ? 영선 ( 永善 ), 예진 ( 禮鎭 ), 익선 ( 益善 ), 조근 ( 肇根 ), 지영 ( 志永 ), 용진 ( 龍鎭 ) 여섯 기도의 친구들에게 성령이 임하소서 . 아멘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석 ( 末席 ) 의 종 용도는 성령과 함께 이 글을 친애하는 형제들에게 올리나이다 .

 

2 월 2 일

 

 

 

 이호빈 씨에게

 

개성 , 화천을 지난 후 평양으로 내려가서 명촌 ( 明村 ) 과 산정현 ( 山亭峴 ) 두 교회를 인도하고 인천 내리교회 , 경성 자교 , 연화봉 ( 蓮花峰 ), 도화동 ( 挑花洞 ) 3 처 ( 處 ) 를 인도하고 설쇠러 시변리 ( 市邊里 ) 에 왔습니다 . 2 월 8 일부터 경성 상동교회 집회를 인도하겠습니다 . 죄인의 아들 용도를 위하여는 기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 용도를 위하여는 찬송하여 주소서.

간도의 풍운이 상서롭지 않은 모양인데 ( 주인이 갈려 ) 어떻게 이기어 나갈런가 ? 그러나 주 도우시니 이길 자는 이기고도 남음이 있으리다 .

나는 나의 일에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 그냥 생명강수 넘쳐 흐르는 대로 떠나려 갈 모양 . 그러다가 어디 걸리면 머무르고 또 쏠려가면 가다가 깨어지면 깨어지고 . 나는 방향도 모르고 계획도 모릅니다 . 누구라 나를 끌든지 끄는 대로 갈 모양이올시다 . 구사평 ( 九沙坪 ) 가신 것은 성의인 줄 알고 나는 좋아합니다 . 그곳에서 아무쪼록 깊이 묻히소서 . 좀더 생활이 단순하여 지소서 . 나는 그런 곳을 얼마나 원하건만 부득 ( 不得 ) 이외다 .

순례는 이혼을 당하고 서울 와 있답니다 . 어린아이 성심은 승천하고요 . 나의 가는 길 곡절이 많지요 . 그러나 늘 기도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편입니다 .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 그의 사자 ( 使者 ) 입니다 . 그의 아들로서의 거룩함과 그의 사자로서의 철저와 굳셈을 잃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되 교만하지 말고 겸비하되 비굴하지 말 것이니라 . 핍박을 당하되 기 ( 氣 ) 를 동 ( 動 ) 치 말고 , 암초에 부딪히되 마음을 동치 말 것이요 , 간고 ( 艱苦 ) 를 겪어도 믿음을 요 ( 搖 ) 치 말 것이니라 . 겸비하되 굳세고 용감하되 부드러울 것입니다.

점점 성의가 우리를 통하여 확실히 나타남은 감사할 일이올시다 . 말없이 싸웁시다 . 무언 , 겸비 , 기도 , 순종 이것을 우리의 좌우명같이 잊지 맙시다 . 나의 별명을 시무언 ( 是無言 ) 이라 함은 ‘ 말 없음이 옳다 ’ 는 의미와 메시아 오시기를 기다려 일생을 성전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만나 즐거워하던 시므온을 그리워하여 그리 지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또 한 번 모이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의 생명은 가련한 상태에 있습니다.

남의 포도원을 망치노라고 분주한 오 , 가련한 꼴 . 부흥목사라는 직업 간판을 붙인 자 , 화 ( 禍 ) 있을진저 .

오 주여 , 나를 숨겨 주소서 . 

주는 신랑 , 나는 신부 .

주여 , 침방 ( 寢房 ) 에서 사귀는 사랑의 사귐의 때를 허락하소서 . 지금은 나의 신방에 잡인의 출입이 잦아서 주님과 고요히 사귀었을 사랑과 진리를 얻지 못하였나니 나의 영은 무한히 피로하오이다 . 오 주여 .

 

1932 년 2 월 초

 

 

 

 변종호 씨에게

 

우선 엽서 한 장으로 신년 문안하오 . 객지의 근황이 어떻소 ? 송창근 (宋昌根 ) 박사 우연 상봉하여서 한국의 교계에 대한 피눈물 한 방울도 아끼지 않으려는 형에게 위로가 없지 않았을 줄 아나이다 . 기다리다가 귀성의 길에 올랐은즉 , 어제오늘 간에 착경 ( 着京 )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석화 ( 錫花 ) 군의 장래가 동경 ( 憧憬 ) 되는 바 적지 않은데 . 예수의 혈정주사 ( 血精注射 ) 를 맞아 영육이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구전 ( 口傳 ) 하여 주소서 . 귀한 동지를 또 하나 찾게 된 것은 주의 지시라고 생각하여 , 감사하기 끝이 없고 형매 (兄 妹 ) 들을 낳으신 그 부모에게까지 감사의 뜻이 돌아갑니다 .

 

어쨌든 힘을 모으자 . 남자 , 여자 , 의원 , 목사 , 사진사 , 땜장이 , 필 ( 筆 ), 설 ( 舌 ), 금 ( 金 ) 모두 모으자 . 그리하여 주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만하자 .

 

2 윌 6 일 

시변리 과차 ( 過次 ) 시무언

 

 

 

 이덕흥 씨에게

 

무사히 집에까지 왔습니다 . 집에도 아무 연고 없나이다 . 송창근 형님이 오셨습니다 . 집에서 늘 식구끼리 모여서 기도회 보시기 바랍니다 . 경환이는 오늘 아침 온다고 하였으나 아니왔습니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여서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 어떠한 일을 당하든지 주를 슬프게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2 월 28 일

 

 

 

 이우원 ( 李友園 ) 씨에게 20)

 

우리의 길은 점점 좁아지겠지요.

골고다로만 불가불 나가게 되겠지요 . 의지할 것이나 믿을 것 아무것도 없어지겠지요.

외로운 자식과 같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세상에서 외로운 자식 됨은 주의 특은 ( 特恩 ) 을 입을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습니까 . 주 가라사대 , “ 내가 너희를 외로운 자식과 같이 버리지 않겠노라 ” 고 . 아멘 . 할렐루야 .

세상의 외로운 사람들아 , 너희는 주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이로다 

형매들이여 , 외로워 마옵소서

세상이 다 우리를 몰라주어도 주님이 우리를 알아주시나이다 

세상이 다 우리를 버려도 주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겠나이다 

우리는 흠뻑 외로워집니다 

세상에서 눈물로 외로워지고 

웃음으로 주의 품에 안깁시다

내 육신의 낯으로 간도의 외로운 형매들을 심히 보기 원합니다 . 주께서 우리를 한자리에 모아 놓으실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 금년  연회에 나는 어찌 될는지 모릅니다 . 형님을 조선 교회로 오시게 하고 싶으나 , 간도 형매들이 불쌍해서 어찌할지 . 또 일본으로 갈 계획을 주께서 속히 들어 주신다면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을지.

하여간 경선 ( 慶善 ) 형이 나오기를 기다려 그의 뜻을 청취해 보고요 . 이곳에 목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에요.

내가 한 진리를 깨달았으니 그는 곧 , “ 아무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 다만 순종이 있을 따름이니라.”

성의에 대한 불순종은 종종 사람에게 불순종으로 나타나는 것이올시다 . 오 주여 , 내가 무엇이 되어 마땅할지 모르는 자올시다 . 또 내가 미리 알지 못할 미래의 나를 생각할 때는 어떤 일을 당하며 나가야 되게 되었는지를 전연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 그러하오니 다만 부지 ( 不知 ) 로 순종만 하게 하여주시옵소서 .

아버지는 사랑이시매 나는 나의 전체를 다시 한 번 아버지께 맡기었나이다. 아버지는 마귀보다 강하시니 나를 그 속에서 건지시나이다 . 아멘 .

 

3 월 4 일

시무언

 

20) 이우원 : 이호빈 목사의 아호 ( 雅號 )

 

 

 

 이덕흥 씨에게

 

아버지께 [ 父主前 ] 삼가 드립니다 [ 上白是 ].

강원도 양구 ( 楊口 ) 갔다 돌아왔습니다 . 어제 만수 ( 萬壽 ) 의 편지를 보니 그간 득녀한 모양이고 어머니는 건강치 못하셨던 모양이니 , 일희일비 ( 一喜一 悲 ) 올시다 .

어머니 ,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기십시오 .

육을 생각지 말고 영만을 생각하십시오 . 세상에서 낙과 위로를 얻으려 하여도 얻을 수 없었으니 이제는 이를 아주 단념하는 것이 좋습니다 . 그리고 하늘만 생각하고 영만을 위하여 부지런히 진리를 찾아 먹어 영생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염려는 걱정을 낳고 걱정은 병과 연약을 낳고 연약은 죽음을 낳습니다 . 그런고로 일절 염려를 다 주께 바치십시오.

 

오 , 용구 . 내 동생 용구 .

용구의 추도회에 관하여는 굉장하게 무슨 순서를 만들거나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 물론 재정상으로 여유가 있으면야 그리함도 좋을 것이나 신자는 벌써 쓸데없이 , 죽은 사람을 위하여 허례로써 많은 돈을 허비하는 일을 버린 지 오래였온즉 이제 다시 추도회라고 이름을 변하여 가지고 예전에 제사하던 수고를 다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 그런고로 형편대로 온 집안이 모여서 밥이나 해먹고 . 이것도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올시다 . 다만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며 예배하려고 모이는 것이었으니깐 , 그러한 사람의 친목으로 해먹는 것이지 무슨 특별한 의미로 별 음식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도 시간이 허락되면 물론 가겠습니다 . 그러나 내가 못 가게 된다면 봉애라도 가도록 하겠습니다 . 양옥이는 추도회 때문에 우정 나오랄 필요는 없고 자기가 나올 형편이 되어 나오면 물론 집안이 모일 것이지요 . 그러나 그 일을 위하여 나오라 하지는 못할 것이올시다.

우리가 만일 죽으면 그 영혼이 천당에 가는 줄 믿는다면 눈물 중에도 기도요 , 슬픔 중에도 찬송으로 지낼 것이 아니오니까 . 지옥으로 가서 영 소망 없는 자들처럼 그렇게 낙심 천만하여 애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 또 이 세상보다 저 세상이 더 좋은 줄 믿는다고 하면 도리어 이미 간 사람을 위하여는 감사할 일이지요 . 슬퍼할 것은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이니 믿음으로 살지 못하여 주에게 버림을 당할까 또 이미 간 자를 다시 만나보지 못하게 될까 하는 염려가 있어 마땅한 것이올시다 . 우리는 세상에 있어 죽은 자를 죽은 자로 하여금 일하게 하고 우리가 만일 주의 진리로 살았다면 산 자를 위하여 일할 것이올시다.

좀 변통하여서 돈을 좀 보내려고는 하오나 어찌될지요 . 형편이 되면 무엇이든지 필요한 음식을 좀 간략하게 차리어먹고 교인 중에서도 좀 청하여 다가 예배를 하면 좋을 듯합니다 . 용구의 생전 이야기도 하면서 .

그 아이의 좋았던 언행을 들어 자손들에게 교훈도 하여 주심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날을 혹은 애연한 눈물로 혹은 감사로 찬송으로 앞날의 소망으로 세상의 헛됨을 버리고 주의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려는 간절한 기도로 지낼 것입니다.

저는 요새 동대문 밖 용두리 ( 龍頭里 )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는 중이올시다 . 특히 기도해주시옵소서.

 

3 월 9 일 

소자 용도 상서

 

 

 

 김O순 씨에게

 

전문분실( 前文紛失 )

자매에게 더욱더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나이다 . 여러 소녀들 더욱더 이 은혜를 사모하는 가운데서 자라갈지어다.

주 안에서 은혜를 받은 얼굴들 진실로 보고 싶소이다 . 언제나 영원한 천당 집에서 다같이 즐길런가 . 서로 잘 준비하여 낙원까지 같이 동행하십시다 . 그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으로 같이 모여 영원한 희희낙락 즐길 것을 생각하오면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지 않습니까 . 늘 기도하면서 주 따라갑시다 . 아멘.

 

3 월 10 일

 

 

 

 장양옥 씨에게

 

일생에 잊혀지지 못할 날 (3 월 그믐날 ) 이 돌아오누나 . 이날에 세상을 떠난 내 아우를 위하여 양옥이를 붙들고 같이 슬픈 노래를 부르고 싶구나. 그리고 잘 생긴 내 동생 , 상냥하고 다정다애한 동생 , 그리고도 무엇을 해보려는 굳은 마음과 신념이 뜨겁던 내 동생은 테니스 선수였것다 . 노래를 즐겨 하고 웃는 얼굴은 과연 천사의 얼굴과 같았겠다

어느 잡기장엔가 197 장 찬송을 적어 놓은 것을 보고 내가 비감과 일편 감사를 가졌던 일도 기억에 새롭다 . 특히 그 1 절과 후렴과 3 절을 보고 그가 중 학과 전문학교를 하는 동안 내외지로 돌아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하던 중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였던 것을 볼 때 나는 큰 교훈을 받았어요.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 갈 때에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밝을 때에 노래며 어두울 때에 기도와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이 노래는 그가 늘 혼자 있을 때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부르던 노래로 알아요 . 또 149 장을 참으로 좋아했겠다 . 그리고 다른 노래에도 늘 부르며 좋아하던 게 있겠다 . 박명하다면 우리가 다 박명하지 . 그런 것을 잃고 . 그러나 신의 어떤 섭리에 맡길 때에는 오히려 큰 위로가 생기는 것 사실이지.

어느 해 여름 내가 시변리 가서 꽃같이 어여쁘고 정열에 넘치는 두 젊은 것의 손을 맞잡아 주고 앞날에 올 크고 복된 날을 위하여 만강의 정성과 기쁨으로 달 아래서 기도하던 그 일 . 또 어느 해 , 그도 여름이었겠다 . 금강산으로부터 한 쌍 비둘기 같이 내 집 통천으로 찾아오던 그 자태 . 그러나 그때 비를 맞고 장마를 겪으면서 왔었겠다 . 그때 일을 생각하면 새삼스럽게도 폭풍우에 쫓겨온 가련한 산새의 한 쌍이 아니었던가 한다.

해창 ( 海昌 ) 혼례식 날이 눈 앞에 떠오르누나 . 아 , 배를 끊는듯한 아픔을 가져오는 그날 . 심술대로 하면 크게 저주하고 싶은 그날. 큰 눈물을 준비하여 주러 왔던 그날 . 오 , 그날의 화됨이여 . 평생에 우리를 아프게 하리로다 . 오 , 그러나 하늘의 천사 , 그 영광이 절정에 달하였던 그날 . 한 번만이라도 그 귀한 향냄새를 가까이 맛볼 수 있던 그날 . 하늘과 땅이 키스하는 그날 . 오 , 그날은 영원히 광휘를 발하고 있을 그날이었도다 . 오 나의 누이 , 나의 동무여 , 그대는 영원히 그날에 살라 .

봉애와 순례는 추도회에 시변리로 갔고 나는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그대로 서울에 남아 있어 남몰래 작년의 내일 ( 3 월 30 일 ) 을  슬퍼하며 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노라 . 다만 그의 뜻대로만 하시는 무한대의 그 권위 . 누가 감히 신의 의사를 꺾으며 또 제 고집대로 할 것인가.

오 , 만세에 떨어지지 않을 그 권위 . 인간들은 다 그 권위 아래서 살 수밖에 없도다 . 오 나의 누이 , 나의 동생 , 나의 동무여 , 이제 나의 영은 너와 같이 있어 천당의 영광스러운 그 얼굴을 우러러 보며 부르짖도다 . 내 몸이 여기 있으나 내 영은 너와 같이 있도다.

나의 누이여 , 그대의 슬픔은 노래로 변하고 기도로 바뀔지어다 . 그리하여 주님의 발 앞에 올려 보내어 용구의 심중에 보내시게 하여라 . 주님의 이름을 불러 그 이름 속에 눈물도 담고 웃음도 담아 올리라 . 거기에 영생할 바 생명의 약동이 있을지니라.

용구 있어 저가 너의 남편이더니 , 용구 한번 간 후는 주님만이 너의 신랑이니라 . 잠시의 신랑을 잃어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너의 신랑으로 모시게 되었다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인가 ! 나는 어떤 때는 양옥 ( 良玉 ) 이를 용옥 ( 龍 玉 ) 이라고 내 마음에 부르나니 이는 둘을 늘 같이 생각함이라 .

주가 그대의 눈물을 씻기시고 가까이 임상 ( 臨床 ) 하여 계시기를 축복하노라 . 아멘.

 

3 월 30 일 용구의 1 년 제 ( 祭 ) 전일에

신형서( 信兄書 )

 

 

 

 

<3 부 : 1932 년 >

 

제 2 장

 

 

 김광우 씨에게

 

광우 형,

성실 ( 誠實 ) 형은 늘 “ 고 ( 苦 ) 는 나의 선생 ” 이라고 하셨거니와 진실로 그러하외다 . 인간의 참된 진리는 필히 고를 통하여 오는 것이었으니 고를 경유치 않은 , 곧 그저 흑판 밑에서나 책자의 흑점을 통하여 얻은 바 진리를 흙덩이 같다고 하면 전자는 금덩이 같다고 할 것이외다.

형은 이제 또한 큰 것을 배우셨으니 , 곧 육적 표현의 모순이 그것이외다 . 이는 대철학자라도 깨우치기 어려운 진리인 줄 아나이다 . 

이런 이유로 육을 영으로 살리어야 한다는 예수의 십자가적 진리를 형은 누구보다 더욱 명확히 체득하실 줄 아나이다 . 형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하에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 그리고 그 은총이라는 것은 일종의 시련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형아 , 나는 나의 일에 대하여 아무 수단도 방법도 없는 것을 알아다오 . 무슨 깊은 철학적 원리를 나에게 묻지 말아다오 . 죽음 ! 이것만이 나의 수단이요 , 방법이요 , 원리라고 할까 . 그리하여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스럽게 돌진하려는 것뿐이다 . 어느 날이든지 나의 빛 없는 죽음 ! 그것이 나의 완성일 것이다.

형아 , 나는 이론 [ 理 ] 없이 빛 없이 죽으려 한다 . 뒤에 조리 있고 빛 있게 싸울 사자 ( 使者 ) 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 나는 무리 ( 無理 ) 하게 죽을 테니 형은 유리하게 살아 주지 않으려나 . 나는 법 없이 조리 ( 條理 ) 없는 운동에 제물이 되거든 형은 법적으로 조리 있게 일하여다오 . 이를 위하여 나는 먼저 떨어져 죽는 작은 밀알 한 알갱이가 되려 하노라.

 

오호 , 그러나 내 죽기를 무릅쓰고 나가려 하나 그러나 왜 이리 나의 헌신이 불철저하냐.

저희들 , 의인의 눈물과 땀과 마지막에는 피까지 흘리게 하지 않고는 마지않을 저들의 앞에 나는 나의 피와 살로써 큰 설교를 삼으려 하노라.

형아 , 그대는 아끼라 . 세련을 더하라 . 그리고 후일 나의 값없이 떨어진 눈물 혹 피와 살을 형의 설교의 한 재료로 취하여다오.

아 , 이리 되기를 나는 바란다만 , 오 , 저주할 나의 오늘이여 ! 언제나 이날이 , 나의 완성의 날이 될 것인고 .

형아 , 말없이 기도만 하라 . 그냥 정관 ( 靜觀 ) 하라 . 내성 ( 內省 ) 하라 . 그리고 신명 ( 神明 ) 을 기다리며 천계 ( 天啓 ) 를 바라라 . 

형을 두고 하나님은 크게 하실 일이 계시니라 . 신학교에서 형을 중심으로 하여 기도의 무리의 한 둘레가 생겼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나의 심중에서 머리를 든다.

 

우리의 배울 바는 예수의 생활 그것이다 . 예수는 신자 ( 神子 ) 라고만 하여 죄인인 인간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하여 내려온 현 기독교신학의 한 흐름 [ 流 ] 은 분명히 기독자 ( 基督者 ) 로 하여금 기독에게서 무한히 멀게 만들었다.

예수의 생활은 외적으로 보아 아주 단순하였다 . 복잡한 현대의 사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그러나 그의 내용은 깊고 높았다 . 

그러므로 예수의 생활을 알려면 그의 외적 표현으로만은 그를 알기에 부족하니라 . 그의 내적 움직임 , 그의 영의 약동 , 거기를 한 곳이라도 만져보아야 한다 . 그리하여 그 영과 나의 영과의 접촉으로부터 일어나는 사랑의 전광 ( 電光 ) 또 그 사랑의 뇌성 ( 雷聲 )  이 나의 생활 전체를 영향 주게 하여야 한다 . 곧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의 전체가 움직여지고 나는 나의 존재조차 찾지 못할 지경에 들어가야 한다.

형에게 대하여 할말이 무척 많은 것 같으면서도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있다 . 그는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다만 위로부터의 움직임이 있기를 바랄 뿐이기 때문이올시다.

 

형아 , 모든 것을 예수에게 물으라 . 세상도 예수에게 묻고 기독교도 예수에게 묻고 인생도 예수에게 묻고 너와 나도 예수에게 물으라 . 세상을 어찌 사회학에 물으며 기독교를 어찌 신학에 물으랴 . 인간을 왜 두옹 (杜翁• Tolstoi) 에게 물으며 사옹 ( 沙翁•  Shakespeare) 에게 묻느냐 . 너를 어찌하여 내게 물으며 나를 어찌하여 세상에 묻느냐 . 형아 , 다만 모든 것을 예수에게 물으며 모든 것을 다만 예수에게 배우기 위하여 형은 자주 그와 만나라. 총총불비( 悤悤不備 )

 

4 월 12 일이 시작되는 때

인천 내리교회에서

 

 

 

 평양 형제들에게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으나 ( 德不孤 必有隣 )

진리는 외롭지 않을 수 없으니 이웃도 허락치 않는다 ( 眞理 莫不孤 隣不許 )

 

덕은 시비곡직 ( 是非曲直 ) 을 가리지 않고 다만 시제 ( 施濟 ) 하고 선대 ( 善待 ) 함에 그 생명이 있으나 진리는 선악정사 ( 善惡正 ) 를 가르지 아니치 못하나니 대체로 이른바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운동하여 이를 심판함으로 그 본무를 다하는 것이다 . 이른바 보혜사 곧 진리의 신이 오면 죄와 의와 심판으로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함과 같다.

진리의 일은 시제선대 ( 施濟善待 ) 가 아니라 심판이었느니라 . 고로 진리는 이웃도 이를 허락하지 않고 형제도 이를 용납하지 않으며 친구도 이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예수 . 저는 한 때에는 이웃도 많았고 형제와 친구도 많았음을 네가 아느냐 . 그러나 그 어느 때에는 이웃도 형제도 친구도 다 없어졌던 일도 네가 기억하느냐.

사랑은 덕을 낳고 의는 진리를 내세우는 것이라 . 예수가 사랑에 움직여졌을 때 거기에는 덕이 나타났다 . 그래 많은 무리는 덕을 보려고 이웃이 되어 모여 왔었다 . 그러나 예수가 의에 움직여졌을 때 거기에는 진리가 일하였으며 모든 무리들은 심판과 책망을 싫어하여 흩어지고 말았느니라.

저희의 마음보와 행동은 여하간 그냥 주어 먹이고 칭찬만 하였더면 끝까지 좋아하였을 것을 저희들을 가르쳐 진리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심판을 내리고 책망을 가하였으매 나중에는 저를 미워하고 저버린 것이었다.

 

아 , 이 얻어먹고 망할 백성들아 ,

병고침을 받고도 다시 죽을 무리들아 

연설을 듣고 망하고 

기도를 하여 망하고

찬송을 부르면서도 망할 현대 신자들아,

너희가 어느 때에나 진리의 속에 들어갈 것이냐 . 진리를 앎이 곧 영생임을 알지 못하였구나 . 사랑과 진리의 본체이신 예수를 앎이 곧 영생이라 하심을 너희는 그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였구나.

너희가 성신을 원하기는 하였다만 성신은 실상 죄와 의와 심판으로 책망하는 신이심을 알지 못하였구나.

세상이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그의 일이 악함을 증거함이니라.

오 , 그리스도의 사람들아 , 사람이 좋아함과 나빠함을 좇을게 아니라 다만 진리를 좇아라.

“ 의 아닌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라 .” 이것이 곧 천적애 ( 天的愛 ) 의 일이니라 . 지적애 ( 地的愛 ) 는 덮어놓고 시제선대 ( 施濟善待 ) 하여 저희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지만 천적애는 그 성질이 다르다 . 물론 불의를 행하는 자까지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나 이는 저희가 감당키 어려워서 물리치고 가는 것이었느니라 . “ 내가 여러 번 너희를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아래 품으려 듯이 품으려고 했으나 그러나 너희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고 하신 주님의 당시의 정지를 살필 수 있는가 .

천적애의 불의에 대한 시제는 심판과 책망이 그 최선의 것이었느니라 . 불의한 자가 심판과 책망을 모르는 것보다 더 불행함이 없나니 저를 건지기 위하여는 곧 심판과 책망으로써 죄와 의를 알게 하여 영생에 들도록 함이 최선의 일이었느니라.

 

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너희가 모든 시험을 만나거든 그 가운데서 인내와 소망을 배워 비로소 신앙의 완성을 볼 줄 알고 온전히 기쁘게 여길지니라.

인내는 곧 신앙의 한 면 ( 面 ) 이니 인내가 없는 신앙은 곧 북데기 ( 검불 ) 불과 같아서 한동안은 붙으나 곧 꺼지고 마느니라 . 인내를 완전히 이루므로 그 신앙은 비로소 승리적 신앙이 될지니라 . 소망 , 이도 또한 신앙의 일면이니 소망 ( 기대 . 바람 ) 없이 신앙은 설 수 없느니라 . 소망이 있어 그 신앙은 빛을 발하게 되며 전진 향상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니라.

우리의 신앙은 소망이 확립되고 인내가 완성될 때 비로소 생명 신앙이 되어 우리를 움직이느니라 . 그런고로 생명 신앙은 환난과 시험 중에서 연단을 받아 소망의 확립을 보며 인내의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니라 . 따라서 부족이 없는 완전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 . 

너희가 생명신앙을 원하느냐 ? 그러면 시험이 올 때 온전히 이를 기뻐하라 . 왜 ? 소망과 인내를 그 중에서야 완성할 수 있음으로.

오 형제들아 , 너희에게 신앙이 있느냐 . 그러면 끝까지 참으라 . 끝까지 바라고 또 끝까지 기다리라 . 예수를 향하여 소망하고 예수를 인하여 인내하라 . 네 소망과 인내가 다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움직이라 . 만일 1 초라도 예수에게서 떠나면 이는 어디인지 방향 없이 나가떨어지고 말 신앙이니 곧 아무 소망도 , 아무 인내도 있을 수 없는 형체만의 신앙일지니라 . 이로써 어찌 우리의 영혼이 구원 얻기를 바랄 수 있으랴.

 

예수다!

우리 신앙의 초점은 예수다!

소망에도 예수요 인내에도 예수요 

기도에도 예수요 찬송에도 예수다!

떠들어도 예수요 잠잠해도 그저 예수뿐이다

생시에도 예수 꿈에도 예수 그리고 또 잠꼬대에도 예수다! 

먹어도 예수요 입어도 예수요 

자도 예수요 일하여도 예수다!

그저 우리 생명의 초점은 예수뿐이다

 

오 , 예수는 곧 우리의 모든 것이요 

또 우리의 생명이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이 생명을 잃어버리면

아무 유익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오 ,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여

당신 없이 우리는 살지 못하옵니다 

오 , 우리의 진리이신 예수여

당신 없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 , 우리의 길이신 예수여

당신 없이 우리는 행할 수 없습니다

오 ,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여 

영원히 우리와 같이하여 주옵소서

 

4 월 19 일

 

 

 

 김예진 씨에게

 

예진 형님,

형님의 편지를 읽는 나의 입은 웃음으로 벌어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우리들을 비난하는 어른들에 대한 코웃음인지 , 몰리는 자로써 이도 십자가라 하여 예상하였던 대로 이루어 감을 느끼는 만족의 웃음인지 얼른 설명할 수 없었으나 여하간 웃으면서 그 글을 보았습니다 . 실상은 외계의 공격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주 앞에 가까이 가노라는 소위 기도한다는 우리의 내용이 은혜에 넘치지 못함이 한 ( 恨 ) 될 뿐입니다 .

세상은 이제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하여 핍박할 것입니다 . 이는 저희들이 당연히 할 바입니다 . 우리는 그를 염려할 것이 아니라 다만 신앙하고 다만 소망하며 인내로서 나갈지니 찬송하며 기도하며 더 가까이 나아갈 것입니다.

아주 몰리어서 산에서 집회하고 거리에서 외치게 되는 그날이 오면 주는 크게 영광을 받으시겠지요 . 우리는 입을 봉하고 잠잠할 것입니다 .

시무언 !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 ‘ 말 없는 것이 옳다 .’ 세상이 하는 대로 버려두고는 그냥 우리는 주께 돌진하여 사명만 다합시다 . 기도할 때 기도하고 전도할 때 전도하고 충분히 자유롭게 움직입시다 . 그러나 저희들을 동정합시다.

우리들은 아직도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될 것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 송창근 형의 편지의 일절 .

“ 이곳 와서 기도하시는 형제와 자매들을 많이 보았나이다 . 세상이 저들을 시비하고 누르고 메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도맡아 놓고 받는 저들임을 분명히 믿습니다 . 복이 이르옵소서 . ‘ 어리석다 ’ 하는 , ‘ 약하다 ’ 하는 , ‘ 무식하다 ’ 하는 , 저들에게 복이 오시옵소서 . 아멘 . 아멘 .”

송 형이 평양에 가시게 된 것은 우리를 위하여 복이나 저들을 위하여는 장차 화근이 안될는지 . 나는 송 형이 그곳에 계심으로 퍽 마음이 놓이고 든든 합니다 . 우리는 송 형을 육으로 돕고 영으로 그에게 도움을 입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주의 허락하시는 대로 송 형과도 한번 만나게 될 줄 아오며 만나는 대로 합심하여 성의에 복역할 도움이 생길 줄 믿습니다 . 그러나 사람을 의지하거나 믿는 것은 아니지요 . 송 형의 편지의 다른 일절 .

“ 우리 있는데 와서 몇 날 쉬어 가라고 하고 싶은데 이곳 형제와 자매들이 너무 기다리는 모양이 오기만 하면 나는 구경도 못해볼 것 같아서 내가 한 번 가서 전후사 ( 前後事 ) 를 의논하고 이후부터는 좀더 쓸 데 있는 전도인이 되고 싶으외다.”

아 , 경외하는 형님 . 존경할 선생님이외다 . 아 , 늘 모시고 싶은 선생님 . 어서 가서 뵙고 싶지만 , 언제 기회를 보아서 한번 가겠습니다 .

아 , 인형 ( 仁兄 ), 나의 영의 가련함을 뉘 알리요 . 빈약한 나의 영 . 그러나 주 나를 버리시지 않으실지라 . 그런대로 따라갈까 합니다 ,

아주 미칩시다 . 예수에게 아주 미쳐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성광 ( 聖狂 ) 을 이룹시다.

무언 , 겸비 , 기도 , 노동 , 전도 , 찬송 이런 것이 우리의 일이외다 , 핍박은 점점 더 할 터인데 영들이 연약하니 어이할꼬. 그저 부르짖읍시다 . 매달려 밤이 맞도록 부르짖읍시다 .

 

5 월까지 경성에서 복역 ( 服役 ) 할 일정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

 

4 월 20 일

 

 

 

 김교순 씨에게 

 

김교순 권찰님,

몸이 얼마나 부대끼시며 영이 얼마나 몰리시나이까?

주 안에 점점 깊이 들어 갈수록 핍박은 점점 더할 것임을 깨닫는 동시에 핍박이 더할수록 은혜와 영광도 더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 그런 중에서 예수의 정지를 더욱더 잘 깨달을 수 있는 것이올시다.

허무한 세상이지요 . 잘 믿으라고 하다가 저희들보다 잘 믿게 되면 그때는 잡아 내리느라고 애쓰는 세상 . 기도하라고 권고하여 마지않더니 저희보다 좀더 기도한즉 이제는 기도 그만두라고 깎아 내리는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신앙의 길을 걸어나가시라는 것이 어찌 곤란이 없겠습니까 . 그러나 원래 사람을 따라감이 신앙이 아니요 , 다만 주님만 따라나감 ! 이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신앙이었으니 주님만 보고 그를 따라가는 길에 실족하지 않도록 할 것이올시다.

 

핍박을 받고 멸시를 받아도 저희들을 관용하며 나의 마음이 화평과 안위를 잃지 않는다면 이 과연 주님으로 더불어 같이 있는 증거라 하겠사오나 , 저희들을 원망하거나 또 나의 심중의 화평을 잃고 불안과 수치를 느낀다면 이는 주께서 떠나신 증거니 우리는 힘써 구하여 주를 심중에 영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세상과 멀어질수록 주님과는 가까워지나니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는 일이 오히려 복되지 아니하오리까.

주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하나라도 땅에 떨어뜨리지 못할 것이요 , 머리카락 하나라도 검고 희게 못하는 것이니 든든히 믿고 돌진할 것입니다.

 

4 월 20 일 

이용도 배

 

 

 

 이태순 씨에게

 

마음에 생각하고 또 늘 뵈옵고 싶어하면서도 말도 없고 글도 없으니 무심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아침밥상을 받아놓고 보니 보지 않던 숟가락이 눈에 띄었습니다. 

“ 이거 웬 숟가락이 이렇게 좋은 게 있소 . 우리 집에는 이렇게 좋은 것이 없었는데 ” 하고 봉애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

“ 그거 태순 아주머니가 주고 가셨답니다 . 나 본 듯이 늘 보고 쓰라고요 ” 하고 봉애는 멀리 있는 아주머니를 생각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납디다 . 그리고는 애기를 받아서 입으로 탯줄을 끊으시며 기도를 올리시고 여러 가지로 정성을 드리던 그 장면을 생각하는 듯 하였습니다 . 그리고는 다시 슬픈 빛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도 작년 이맘때 , 아니 이보다 더 일렀지요 . 아주머니랑 유순 누이랑 피 ( 皮道秀 ) 목사네 집으로 나를 찾아오시기 시작한 때부터 서울을 떠나가시기까지 모든 일 , 그리고 그 어느 날 새벽인가 사리원 서부예배당에서 기도하다가 만났던 광경 , 그리고 평양으로부터 오는 길에 여러 모매님들이 정거장에서 기쁨에 넘치는 손으로 영접하려다가 - 떡까지 잔뜩 해놓으시고 - 불가불 나는 서울로 직행할 수밖에 없어서 그냥 섭섭히 돌아가시던 그 정지까지 - 처음부터 끝까지 얼른얼른 돌아가는 활동사진같이 , 그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중에 다 떠올라왔습니다.

 

유순 누이가 얼마나 집에서 수고를 하는 줄을 알매 더욱더 주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 더욱더 합니다 . 이제 그 가운데서 예전 유순이는 충분히 죽어 없어지고 예수와 같은 사람으로 새로 나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때인 줄 압니다 . 이때에 더욱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신의 감동을 입어서 많은 괴로움을 참아 이기면서 그리스도의 향내를 원수에게라도 끼치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육신으로 외롭고 영으로 신앙이 외로웠으니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게만 되지 않습니까.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이 풍파 인연하여서 

더 빨리 나갑니다.

 

오래지 않아서 평양 방면을 한번 갔다가 올까 하는데 물론 그때에는 잠깐이라도 내리어 뵈려고 합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울던 막달라 마리아 .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며 비방을 하는 것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려 그 발을 적시며 또 그 머리털로 그 발을 씻던 마리아 . 저는 주님의 크신 긍휼을 입지 않았습니까.

저는 과연 주님을 사랑하기에 큰 용기로 했습니다 . 저는 과연 주님을 따르던 자 중에서 사랑의 용자라고 할 것입니다.

아주머니 , 주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그렇게 철저히 용감스럽게 사랑해야겠습니다.

남이야 욕을 하든지 흉을 보든지 주님만이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옥합이라도 깨트리어 그 머리에 붓고 눈물로 그 발을 씻겨 드려야 겠습니다.

 

희서가 매우 곤란한 중에 있는 줄 아나 내가 편지도 못하는 것은 매우 민망한 일입니다 . 그러나 마음에는 늘 기억합니다 . 주의 긍휼로만 살아갈 자매였으니 서로 돕고 사랑하고 보호해주소서 . 후일 상급이 있으리이다 .

더욱더 굳세게 나갑시다 . 낙심말고 기도합시다 . 시험을 당할 때에 사람을 원망하거나 헐뜯는 [ 貶論 ] 죄를 범하지 말 것이올시다 . 

고린도전서 13 장 한 번 다시 읽어보십시다 . 시편 2 편 , 3 편

 

4 월 25 일

 

 

 

 평양 형제들에게

 

“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 요 15:22~25 ).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 요 7:7 ).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요 15:18~19 ).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 요 17:1 ).

 

요한복음 13 장부터 17 장까지 정독하소서 . 특히 16 장 , 17 장 .

 

5 월

 

 

 

 평양 형제들에게

 

나는 얼마 전에 조 목사를 만났는데 그가 내게 묻더이다. 

“ 이 목사 , 이것 보았소 ?” 

“ 그게 무엇이요 ?” 

“ 글쎄 좀 보시오 .”

나는 동봉한 별지를 받았소이다 . 그 제목부터가 나의 영의 줄을 크게 울리었습니다 . 종로 번거로운 길을 걸으며 그것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 읽는 가운데 나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감격한 어조로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 아멘 , 아멘 ” 하였습니다 . 그리고 “ 오, 주여 ” 소리를 이따금 부르짖어 감사한 뜻을 표하였습니다.

이 글의 작자는 현 배화여자고보교 교사 [ 敎諭 ] 로 계신 선생님이신데 평소 지면이 있던 분이었기로 더욱이 반가웠습니다 . 나는 얼마 전 어느 지면에선가 중앙전도관에서 일요일 오후 2 시에 이덕봉 ( 李德鳳 ) 선생이 일요강화를 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다시금 새로워졌습니다.

“ 아 , 이 어른이 기도로 , 전도로 , 주님에게 단단히 붙들리셨군 ”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 목사 , “ 그 선생이 일요강화를 한다고 하길래 한번 갔더니 , 청년 한 사람이 와 앉았겠지 . 내가 들어가니깐 합해서 두 사람이었습니다 . 그런데도 이 선생은 두 사람을 앞에 놓고도 열심으로 전도하심에는 참으로 감탄하였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나옴을 깨달았습니다 . 왜 그런고 하니 나는 한두 사람을 놓고서 그렇게 열심을 낼 수 없을 듯해서 나의 용렬에 대한 참회와 그 선생님을 그렇게 쓰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돌아와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 

그의 기도의 힘을 빌고자 하여서요 .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답서가 왔습니다 .

‘ 주님의 은총을 통하여 영서상통 ( 靈犀相通 ) 하는 편지 [ 惠函 ] 를 읽사옵고 감사하도소이다 . 소제의 적은 글이 다만 나와 같이 약한 형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적었던 것이 의외의 방면에서 공명과 격려가 있음은 주님의 섭리인 줄 믿고 더욱 위를 향하여 부르짖고자 하나이다.

불신의 세상에서 구출된 신자들이 힘을 합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곳에 소망이 있을 줄 믿나이다 . 소제 약하고 부족함에도 불구 [ 不顧 ] 하고 주님께 붙들려 감히 독립 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 위하여 기도하여 주심을 간절히 바라오며 소제도 목사님 위하여 기도하려고 하나이다.’

 

5 월 18 일 필운동 290

이덕봉

 

 

주님은 지금 끊임없이 각 방면으로 일하심이 분명합니다 . 열렬히 기도하십시다 . 끊임없이 기도하십시다 . 낙심 말고 . 세상이 다 "아니다"[ 否 ] 하여도 주님만 "옳다"[ 是 ] 하시면 그만이지요 . 별지를 『 신앙생활 』 에 등재하여 여러 형매들에게 전함이 한 힘이 될까 하여 보냅니다.

 

5 월 20 일

시무언

 

 

 

 

기도생활의 실천을 호소함

 

이덕봉( 李德鳳 )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최대의 길이요 , 기도는 성령의 능력을 얻는 최고의 방법이요 , 기도는 영적 생명의 최선의 양식이요 ,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 [ 心髓 ] 입니다 . 만일 신자라하면서 힘 있는 기도가 없으면 그는 이름만의 겉껍데기 신자요 , 참된 신자는 아닌 것이올시다 .

진정한 동정의 눈물이 있는가 ? 거기에는 틀림없이 참된 기도가 있을 것이오 .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신성한 사업이 있는가 ? 거기에는 반드시 간절한 기도가 있을 것이오 . 넘치는 기쁨이 있는가 ? 거기에는 반드시 열렬한 기도가 있을 것이오 . 혁혁한 희망이 있는가 ? 거기에는 반드시 힘 있는 기도가 있을 것이외다.

간절한 소원이 있는가 ? 간절히 기도하시오 . 큰 능력을 얻고자 원하는가 ? 열심으로 기도할 것이외다.

형제자매여 , 당신은 자신의 믿음과 열심과 사랑이 적고 모든 것에 부족함을 깨달으라 . 통회의 기도를 해본 일이 있습니까 ?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 중 믿지 않는 자가 회개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는가 ? 당신은 당신의 관계하는 단체가 잘되기 위하여 구하여 보았는가 ? 당신은 당신의 교회가 거룩하고 힘있게 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는가 ? 당신은 조선이 다 구원되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는가 ? 당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워지이다 ’ 하고 기도하여 보았는가?

기도하는 때가 능력이 이르는 때요 , 기도하는 곳이 능력이 생기는 곳이요 ,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외다 . 기도하는 때에 소망이 생기고 기도하는 곳에 기쁨이 넘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신이 임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족속을 인도하기 위하여는 40 년 동안 미디안에서 양떼와 함께 푸른 하늘 , 반짝이는 별 , 고요한 밤마다 묵상과 기도의 생활이 필요하였던 것이요 , 사무엘이 거룩한 사자가 되어 패망한 이스라엘을 부흥시키기 위하여는 몸을 하나님께 바쳐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는 생활이 필요하였던 것이요 , 사도 바울이 말할 수 없는 곤욕을 당하면서 이방 전도를 하기 위하여는 아라비아 광야의 수년간 기도생활이 필요하였던 것이요 , 주 예수께서 공적 ( 公的 ) 생활을 시작하시기 위하여는 광야에서의 40 일간 금식기도가 필요하였었고 , 십자가의 최후의 승리를 얻기 위하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피땀을 흘리는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곳이요 , 대체로 하나님의 섭리 하에 진행되는 곳이므로 어느 것 하나 가치 없음이 없을 것이로되 , 한편으로 보면 이 세상은 악마가 횡행하는 곳이요 , 패역한 세상이요 , 죄악이 넘치는 말세이외다 . 신자는 이 악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 에베소 6 장에 가르치심과 같이 전장에 나가는 용사처럼 믿음에 굳건히 서서 항상 긴장한 태도와 경건한 마음으로 열렬히 기도하는 생활을 함으로만 우리에게 승리가 이를 것입니다. 형제자매여 , 우리 정성을 합하여 힘써 기도하사이다 . 일상 생활에서 닥치는 일마다 경건한 기도의 태도로 대할 것은 물론이요 , 특별한 시간을 택하여 하나님과 단 둘이서만 대좌하여 깊은 영교 ( 靈交 )  가 있는 곳에 큰 능력이 생깁니다 . 세상 모든 잡된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 새벽 별 반짝이는 고요한 때 , 할 수 있으면 산이나 들로 나아가서 기도할 것입니다 . 때로는 신자가 한곳에 모여 마음을 합하여 열심으로 기도함으로도 큰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 그래서 나는 이 아래 몇 가지를 형제자매에게 호소하나이다.

① 매일 새벽 (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 ) 에 꼭 기도할 것

② 기도하는 곳은 될 수 있으면 산이나 들로 정할 것

③ 기도의 내용은 각각 먼저 자기 자신의 성결을 위하여 , 자기의 가족을 위하여 , 동포의 구속을 위하여 ,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요 , 다음은 각각 자기의 소원을 간구할 것입니다 .” < 하략 >

 

 

 

 김정일 씨에게

 

신의 섭리대로 이루어짐이 우리의 바라는 바였으니 편불간 ( 便不間 ) 간 , 생사 간 , 전체를 주님께 의탁하고 정숙한 생활의 때를 보낼 것입니다 .

인간의 최고 학부라고도 할 만한 곳은 병실인 줄 압니다 . 실로 다른 데서 배울 수 없는 진리 , 이는 인생이 마땅히 가질 바 진리이면서도 잘 소유하기 어려운 그 진리를 병석에서만 얻을 수 있는 까닭에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이여 , 주님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친히 임하셔서 계신 때인즉 그를 붙드소서 . 그리고 그의 품에 깊이 안기소서 . 주님의 형상과 그 음성이 반드시 자매의 영에 큰 활력을 주시리이다.

자매여 , 그대는 그대의 병을 기뻐할 수 있나이까 ? 만일 거기서 감사와 기쁨을 가질 수 있다면 자매는 진실로 구원을 얻은 성녀요 ,  병석에 있어 몸은 불우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매는 영으로 하늘의 [ 天的 ] 생활을 하는 하늘의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야 바야흐로 자매가 신앙하여온 바 모든 교리와 신조가 생명적으로 자매에게 움직이고 있었는지 , 죽은 껍데기 [ 死殼 ] 만 , 공리공론 ( 空理空論 ) 만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믿습니다 . 과연 자매의 소신대로의 영적 구원이 자매에게 있어 온 천하보다 이를 기뻐함이 사실인가 ? 천국의 삶이란 것이 과연 자매의 심령 내에 있어 이를 위하여는 내적, 물적 , 지상적 , 현세적 모든 환난과 번영을 초개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인지?

자매가 일상 기도하고 그대로 되기를 바라던 바와 같이 , ‘ 주를 얻기 위하여 ’, ‘ 주와 같이 있기 [ 同在 ] 위하여 ’, ‘ 죽든지 살든지 병 들든지 성하든지 …… ’ 하던 것은 일상 자매의 영의 솔직한 절규이었던지 ?

또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사업 많이 하려는 욕심도 아니요 , 다만 참되게 주와 같이 있어 하루의 생활을 잘 하려는 것을 의미있게 여긴다던 것은 과연 진정한 소원이었던가 , 일종 부세 ( 浮世 ) 의 허풍이었던가 . 이 모든 점에 있어서 자매의 과거의 부르짖음과 모든 표현의 진실성을 재검할 때는 돌아왔나이다.

만일 자매가 지금 충분히 영으로 진리를 타고 하늘에 살기를 공중의 새와 같이 물속의 고기와 같이 10 분 자유스럽다면 , 무슨 빈궁이나 병고나 칼이나 위험을 당하든지 그리고 또 죽음의 그물로 육의 부자유는 있다고 할지라도, 영의 부자유를 느끼는 일이 없나이다.

오 , 친애하는 자매여 , 그대는 다 이루었나이다 . 그대의 완성의 날은 벌써 왔으니 왜 아니 축하하오리까 . 오 , 친애하는 이여 , 진실된 신앙에 사소서 . 하늘에 사는 영의 사람이 되소서 . 병고나 빈곤이나 그 외 무엇이든지 일절 침범치 못하는 하늘에서 영으로 사소서 . 하늘은 사후에 있을 바 신자의 환경만이 아니요 , 또는 손가락으로 지칭할 수 있는 저 하늘이 아니외다 . 저를 믿는 자가 살아서 맛볼 수 있는 영계의 총칭이요 , 몸 밖의 하늘이 아니외다 . 마음 안의 영대 ( 靈臺 ) 인 것을 잊지 마소서 .

자매여 , 나는 다시 자매에게 한 문제를 시험하니 허물치 마소서 . 자매는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시나요 ? 사랑하신다면 자매가 비난할 수 있던 근대교회 류 ( 流 ) 의 신자들보다 얼마나 더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 아니 , 넓게는 그만두고 일반 신학생들보다 얼마나 더 주님을 사랑했나요?

이는 곧 주께서 자매에게 베푸는 질문이었으니 고요히 주님께 대답하소서. 오 자매여 , 나의 친애하는 천국의 동행자여 , 영의 동무인 신앙의 형제여 , 그대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어떠한 나를 사랑하느냐

어떠한 자가 네가 사랑하던 주였는지 

나는 알고자 하노라

영광의 주 ( 主 )? 부유의 주 ? 권세의 주 ? 장수의 주 ? 화락 ( 和樂 ) 한 가정의 호주로서의 주?

어떠한 주님을 너는 사랑하느냐.

 

나에게는 일찍 영광도 없었으며 

권세도 없었으며 부유도 없었고

처자와 가정도 없었고 건강도 없었던 것 아니냐 

장수 , 그것도 내게는 물론 없었다

너는 나의 무엇을 보고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어떻게 알았느냐 

무엇을 알았느냐

만일 이상의 것을 나의 것으로 알아 그것으로 인하여 

나를 사랑하였다고 하면 너는 나를 충분히 오해하였느니라 

나는 천동 ( 賤童 ) 으로 태어나서 빈궁의 사람 

무식의 노동자 무명의 종교가

무의무가 ( 無依無家 ) 한 고아로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자리 삼아

남들의 반생 ( 半生 ) 을 겨우 일생으로 살고

마침내 겉옷 , 속옷조차 빼앗기고 참형 ( 慘刑 ) 으로 종신 ( 終身 ) 한 내가 아니냐

 

○○아 ,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 이러한 나를 진실로 사랑하느냐 ?

나의 빈천 ( 貧賤 ), 나의 무명 , 나의 수욕 , 나의 고독 , 나의 단생 ( 短生 ), 나의 가진 육고 ( 肉苦 ), 이것을 네가 진실로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빈궁과 고독에 있을 때 이를 슬퍼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환영하리라 . 왜 ? 그 가운데서 나의 형상 , 곧 너의 사랑하는 주님의 형상을 찾아 볼 수 있음으로!

네가 만일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면 너는 모든 불우와 육고에서 찬미하리라. 이는 그 가운데서 나의 승리의 장거 ( 壯擧 ) 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 나는 너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다 당하였노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마시던 잔을 네가 받아 너는 10 분 즐거워할 것이 아니냐 . 네가 만일 나를 사랑할진대 나의 마시던 쓴 잔을 마시어 너는 온전히 기뻐하라 . 나의 사랑하는 자는 마땅히 나의 잔을 마시어 기뻐하는 자가 아니면 아니되느니라.

나를 사랑하노라고 하는 자 , 그 얼마나 많으며 나의 고난을 몸소 맛보는 자 , 그 얼마나 적음이여 . 세상이 다 나를 사랑함이 아니라 나의 영광과 안일 ( 安逸 ) 을 사랑함이었도다 .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고난의 잔을 마시어 충분히 감사하는 자니라.

 

오 나의 가련한 작은 종자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마시던 잔을 마시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잔을 마시어 나의 완성을 부르짖어 찬미하라

 

너의 살과 뼈가 나의 십자가의 고통을 맛보아 너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니라 . 네가 “ 몸소 받는 고생도 알게 하옵소서 ” 하고 노래로 부르짖어 외치나 , 그러나 몸이 나의 고난을 당하지 않고 어찌 나의 몸소 받은 고생을 알 길이 있으랴!

 

오 내 사랑하는 작은 종아

너는 이제 가장 나를 잘 배울 기회에 있음을 기뻐하라 

오 나의 사랑하는 소자야

이는 하늘이 너에게 주신 사랑의 선물임을 기억하라

 

1932 년 5 월 26 일

시무언 형

 

주님이시여 , 당신이 없이는

내 몸 전체가 도무지 있지 못할 것이로소이다. 

당신이 안 계시다는 것은

가상 ( 假想 ) 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 

비록 수천 수만의 인생들이 당신 없이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말이에요.

이 솟아올라 차고 넘치는 느물느물한 감동을 어째서 느끼는 그대로 표언( 表言 ) 할 수 없는고 .

아 , 말로 만들면 벌써 그 심정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도다 .

네가 생각하는 바는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다만 , 오직 네가 느끼는 감격 , 그것만은 너 혼자서만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다.

 

소감이란 언제든지 그에게 있어 독창적의 것임에 우주 안에서 그이만이 전유 ( 專有 ) 할 수 있는 것이다 . 감동은 언제든지 그의 소유였음에 누가 감히 엿보지 못하느니라 . 거듭 말하면 ‘ 소감 ’ 이라 , ‘ 감동 ’ 이라 하는 것은 타인이 엿보지 못하는 전유물인 동시에 그의 영원한 재산이니라 . 많은 재보 ( 財寶 ) 를 얻으소서 .

 

 

 

 이호빈 씨에게

 

< 전략 >

신설리 ( 新設里 ) 를 22 일에 마치고 극도의 피로를 느끼는 작은 몸을 건너 방에 뉘였다 . 혹은 무의식적으로 먼지 속에 경성거리를 타박타박 걷기도 하며 오늘까지 다 지내고 오늘 밤부터 다시 체부동 ( 體府洞 ) 서 시작하겠소이다 . 옳습니다 . 꺼꾸러져 절명할 때까지 무엇이나 사양치 않고 나갈 것이외다 . 아 , 그러나 육체의 약함보다 영의 피로가 더 곤란한 일이지요 . 그저 어디의 영은 목말라 찾건 만도 이 육신이 아직도 번거로운 서울에 혹은 인파 속에 다닙니다그려.

여름을 기약하여 입선 ( 入鮮 ) 하소서 . 혹 지금부터 도보로 떠나 경성까지 와 보시면 꽤 많이 얻을 것이 있을 것이외다 . 나는 도보 여행이 원 ( 願 ) 이외다 . 여름에 오라는 데는 많은데 , 하기 집회로 어디로 끌리어갈지 . 할 수만 있으면 유폐 ( 幽閉 ) 한 곳으로 믿음의 형제가 모여 얼마간 지내보렵니다 . 혹 , 도보로 오시면서 교회마다 찾아 전도하시면서 오시면 어떨까요.

하여간 내가 북행하기는 어려운즉 나오시는 게 좋겠소이다 . 평양 형제들은 그 지경 내 ( 內 ) 어디로 정하자고 하는데 그들은 다 투사들이라 , 현 교회의 불신앙과 어디까지든지 적극적으로 성전 ( 聖戰 ) 을 계속하려는 이들인 고로 교회만은 평양을 내놓아서는 안 되겠다고 합니다 . 되어도 평양에서요 , 안되어도 평양에서일 것이라고.

나도 다소간 그런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 교회부흥 곧 전선적으로의 것은 평양에서부터가 아닐까 하는 점에서 내 생각도 그곳을 유의 ( 留意 ) 합니다 . 그래서 그들은 자꾸 평양으로 오라고 하는군요 . 그러나 나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 아직 그 ( 전투 ) 보다도 정적한 곳에서 주님의 친교가 더 있기를 원하여 마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 기도처니 수도원이니 믿음의 형제들의 집합이니의 문제를 가지고는 혹 한두 번 기도가 있었던가 할 정도이고 그렇게 열중하여 졸라본 적이 없소이다 . 그저 되는대로 끌리려는 심정이었는지 . 하여간 나도 그 방면 ( 기도 , 수양 ) 을 많이 원하면서도 졸라 대지는 못하는 모양이외다 . 어디 되는대로 두고 볼 수밖에.

세상에 제일 기괴한 것이 ‘ 나 ’ 라는 기적적 존재이었으니 나의 운동도 ‘?’ 이었고 나의 생각도 ‘?’ 이었고 나의 내일 나의 장래가 모두 주목거리입니다 . 그저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 일에 대하여는 전혀 나의 설계나 포부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 우주 안에서 ‘ 나 ’ 라는 최대의 재료를 두고 밤낮 큰 배움에서 사는 자로소이다 . 다시 한걸음 더 나가서 나의 한 일을 모른다는 것은 곧 성의를 모른다는 말과 부합 ( 符合 ) 할 것이니 주는 나의 창조주이시요 , 또 통치자이신 까닭이지요 . 이점에까지 와보면 나는 나를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주님 , 모든 설계 다 주께 맡기고 오든 , 가든 , 앉든 , 서든 , 교역을 하든 , 농사를 짓든 , 주님의 생명만이 우리에게 있어 더욱더욱 풍성하여지기를 간구 하는 외에 더 큰 일이 없을 것 같소이다 . 이것저것을 구한다는 것보다 주님만 소유하도록 다만 그 하나를 구할 것입니다.

“ 왜 ?” 그의 안에 하나님의 일절 풍성함이 있는 고로 .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이라고 하면 주님 외에 달리 무엇을 구하오리까 . 주님을 얻은 후에는 그 전체를 맡기고 순종함 . 그것이 오직 우리의 일일 것입니다.

곧 “ 부지 ( 不知 ) 로써 신종 ( 信從 ) 함 “ 이것이 우리의 첫째 되는 일이요 , 또 마지막 되는 일이니 우리는 이로써 우리의 의무를 다할 것이외다.

알고 따름이나 , 이해가 되니깐 기쁨을 느낌이나 , 소원이 성취되니깐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은 신앙의 사람으로서는 한 다리를 잃은 자와 같은 불구적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당면하는 대로 주와 이야기하고 거기서 부지적 신종을 배워나가기에 죽도록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 주 허락하시면 조만간 이루어 주시겠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게 될는지도 모를 것이외다 . 하여간 주가 있어 좋았으니 주님 외에 다시 무엇이오리까 . 오 주님 , 오 주님 , 첫째도 주님 , 둘째도 주님 , 또 셋째도 주님이었으니 주님은 곧 우리의 알파요 , 오메가로소이다. 교권 하에서도 주님 , 단상에서도 주님 , 산중이나 거리 속에서도 주님 , 그저 어디서든지 주님이면 그만이요 , 또 완성이외다 .

형님 , 주님의 분 ( 分 ) 을 더욱 많이 얻는 광영을 이 소제로 하여금 보는 광영을 얻게 하옵소서 . 주님의 내용이 우리에게 더욱더 넘쳐 나오게 되도록 그 와의 혈관적 연락 ( 連絡 ) 을 이루어 족할 것이었습니다 .

호운은 학교나 집안에서나 다 인심을 얻어 모든 사람의 호의 속에서 지나나 그러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옷이야 신발이야 문제가 없지 않으나 아직 양복 한 벌도 사주지 못하였소이다 . 물론 내가 50 원을 받으니 그것쯤이야 할 수가 있겠지만 , 늘 식구가 7~8 명 이상은 보통이고 그 수를 퍽 초과할 때도 많은 , 적은 듯해도 큰 살림 , 또 뜻하지 않는 비용이 매월 적지 않고 장모님의 생활비와 , 저가 졌던 빚 좀 갚노라고 미안한 것을 송죽 ( 松竹 ) 도 옷 한 벌 못해 주었습니다 . 물론 살림을 할 줄 알고 또 간단 축소가 되면 공부하는 이들은 염려 없이 할 것이나 어디 그렇게 되었습니까 . 형님네 위해서도 매월 다만 조금씩이라도 보내드리려고 생각이야 많았지만 늘 뜻대로 안됐습니다 . 눈 앞에 보이는 참담에 접하게 되니까 더욱 그렇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고향집에서도 이제는 살 수 없다고 돈을 보내 주어야 살겠다고 재촉들인데 못 보내고 그저 있으니 집안에서도 버림을 당한 불초 자식이외다 . 그러나 돈으로 어찌 사람이 삽니까 . 나는 그 문제에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늘 애쓰나이다 . 어디 또 앞으로 지내봅시다 . 어찌되는지 . 우리의 일생이란 늘 싸움의 생활이니깐 , 그저 맨손으로 필승을 기약하고 믿음으로 돌진합시다 . 그리하여 죽는 날이 완성의 날인 것이니 어서 죽음이  오소서.

 

5 월 26 일

 

 

 

 이○○ 씨에게

 

주의 사랑으로 문안하는 자들 사이에 복 되소서 . 주님을 참으로 아는 자 , 저를 참으로 아는 자이고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또한 저를 아는 자 올시다 . 누구라 주를 잘 아는 자이겠습니까 . 성경학자나 신학박사라야 하겠습니까 . 아니올시다 . 학식이야 있든지 없든지 어리든지 예수를 참으로 사랑함으로 더욱더 예수를 잘 아는 가운데 자라가기를 바라나이다.

예수를 잘 앎으로 예수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 예수를 증거하는 일은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이니 하늘의 일은 예수를 증거하는 일이요, 증거하려면 예수를 잘 알아야 하고 잘 알려면 예수를 잘 사랑해야 하고 잘 사랑하는 자 , 그는 곧 잘 믿는 자올시다 . 그런고로 하나님의 일은 결국 잘 깊이 믿는 자의 일이올시다.

믿음은 기도에서만 자랍니다 . 기도하는 일 , 믿는 일 , 예수를 사랑하는 일 , 예수를 아는 일이요 , 예수를 증거하는 일이니 , 이런 일은 다 하늘의 일이외다 . 많이 하늘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또 인간은 육을 가지고 땅에 있어 물질을 먹고 사는 동물이었으니 땅의 일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 우리 머리는 하늘을 향하여 움직이며 우리의 발은 땅을 향하여 움직이게 되었으니 영은 하늘을 향하여 움직여야 살고 육은 땅을 향하여 움직여야만 살게 된 것이올시다 . 영은 진리를 먹고 살며 육은 물질을 먹어야 살게 되었으니 모든 인간은 영을 살리기 위하여 신앙하여 진리를 먹어야 되고 육을 살리기 위하여는 노동하여 물질을 먹어야 됩니다.

영을 위한 노동 중에는 성경 보며 땀이 흐르도록 기도하는 것이 상수이고 육을 위한 노동 중에는 땅파며 육을 움직이는 일이 상수일것 입니다. 이형 , 예수를 더욱 아는 가운데서 잘 나가소서 . 달호 군은 아침마다 오는데 어떤 날은 안 옵니다 . 늘 저녁에도 오라 해도 잘 오지 않아 민망합니다 . 사진 한 장 보냅니다. 

 

6 월 15 일 

이용도

 

 

 

<3 부 : 1932 년 >

 

제 3 장

 

 

 이태순 씨에게

 

나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하여 내가 어떻게 하오리까? 

주: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 눅 6:27~29 ). 

바울:

“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롬 12:14 ).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 ( 롬 12:19 ). 

“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 고전 4:12~13 ). 

베드로:

“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벧전 2:23 ).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 벧전 3:9 ). 

“ 사람을 기쁘게 하오리까 , 주님을 기쁘게 하오리까?”

“ 사람에게 버림을 당할 때 하나님에게는 사랑을 받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때 하나님에게는 멸시를 당하느니라.”

 

순수한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 사랑은 순수함을 요한다 . 그 가운데 조금일지라도 불순한 것을 포함해서는 아니된다 . 순수한 사랑은 그 속에 투기가 없다 . 자랑이나 교만도 그 속에는 있을 수 없다 . 순수한 사랑의 소유자는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 . 자기의 이익을 구치 아니하며 어떤 일에든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람의 불선한 것을 기억치 아니하고 의 아닌 것으로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또 범사에 참으며 믿으며 범사에 주의 뜻을 바라느니라.”

선인과 악인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 즐겨 사람의 악을 말하는 자는 악인이다 . 즐겨 사람의 선을 말하는 자는 선인이다 . 즐겨 사람의 악한 일을 듣는 자는 악인이다 .  즐겨 사람의 선한 일을 듣는 자는 선인이다 . 선인은 사람의 악사를 말하되 비통을 느끼지 아니치 못하고 악인은 사람의 선사를 듣되 불쾌를 품지 아니치 못하느니라. 사람의 악사를 들을 때 우리는 먼저 그것을 말하는 자의 악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선은 여성적이요 , 악은 남성적이다 . 선은 약하되 강하고 악은 강하되 약하며 선은 져서 이기고 악은 이겨서 지는 것이니라 . 우리는 이겨서 질 자가 아니요 , 져서 마침내 승리를 얻을 자니라 .”

 

 

선 ( 善 ) 의 존경

 

어떤 사람에게 1 의 선과 99 의 악이 있느냐 . 그러면 나는 한 개의 선을 위하여 저를 사랑하고 존경하겠노라 . 세상에 한 사람의 선인과 99 명의 악인이 있느냐 . 그러면 나는 한 사람의 선인을 위하여 세상을 귀히 알고 중히 여길 지니라 . 나는 나의 모든 선한 것을 그를 위하여 제공하고 세상의 개선과 구제를 위하여 빌지라 . 나는 사람과 세상에 많은 악을 찾아 불평으로 삼지 않고 그 작은 선을 찾아 사랑과 존경으로 살려 하노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매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알지니라 .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저를 신앙하기 불가능하니라.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는 신앙은 허위의 신앙이니 이는 사람을 죽일 신앙이니라 . 세상에 신앙에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쟁투가 많은 것은 사랑에 근거를 두지 않은 신앙 , 곧 무애 ( 無愛 ) 신앙의 소유자가 많은 까닭이니라 . 사랑은 곧 생명이라 . 사랑 없는 신앙은 생명 없는 신앙이니라 . 교리와 신조의 송독 ( 誦讀 ), 교회 출입의 형식 , 이런 신앙의 형식 , 껍질로 신앙의 전부를 삼아 스스로 속는 자 , 그 얼마나 많은 현대인고 !

네가 신앙의 소유자냐 . 그러면 너는 사랑의 소유자가 될지어다 . 사랑이 없는 신앙은 불 꺼진 등이요 , 맹인의 안경이니라 . 더욱더 주님의 사랑을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

 

1932 년 7 월 12 일 

유향산인( 乳香山人 )

 

 

 

 송창근 ( 宋昌根 ) 씨에게 21)

 

형님,

하양 ( 下壤 ) 하신 후 소식 몰라 한편 궁금도 하고 한편 염려도 없지 않구먼요 . 방학은 되었겠지만 몸과 맘은 쉼을 얻기 어려운 형편이라 어찌 억지로 안연히 스스로 평안을 자취 ( 自取 ) 하시겠습니까 . 어느 누구라 붙들어다가 어느 구석에 두어 좀 쉬게 한다면 마지 못해 그렇게나 할 수 있을는지 . 저는 육편 ( 肉便 ) 으로 보면 아주 사나운 팔자를 타고 낳습니다 . 그러나 영편 ( 靈便 ) 으로 보면 예수의 팔자와 거진 같은 팔자라오 . 어쨌든 하나님의 아들로 서의 팔자였으면 그만이지요 .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 육이 곤고할 수밖에 있나요 . 십자가로써 그 팔자 그 운명을 설명하게 된 것이니까 .

형님 , 우리는 쉴새 없는 것을 축복으로 알고 병약함을 은혜로 받읍시다 . 우리는 그것에 주의 보혈을 섞어 요리합시다 . 그리하여 우리의 진미를 만듭시다 . 그러한 모든 곤고가 아니면 어디서 십자가의 진미를 맛볼여지가 있겠습니까 . 주께서 허락하시면 좀 고요한 곳을 찾아 기도와 명상으로 보냈으면 하지만 글쎄 허락이 있을는지요.

우리 집은 여전합니다 . 매우 경과가 양호합니다 . 먹고 마시고 여전히 찬송하고 기도하고 웃음으로 이야기도 하고 그러나 오히려 신앙과 성애 ( 聖愛 ) 의 불의 성세 ( 盛勢 ) 를 보지 못하게 됨이 한갓 안타까운 일이요 , 피땀으로써 봉사하지 못함이 한 될 뿐 . 그 외에는 다 축복 100% 의 생활입니다 .

지금도 식객이 본 식구 외에 6 인이니까 합 12 인이 날마다 이 밥으로만 삽니다 . 아 , 내 어찌하면 이 굶주린 인생들을 끝까지 배골치 않도록 먹일 수 있을지 또 어찌하면 이 부초 ( 浮草 ) 같은 인생들 그 방향잡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참된 진리의 길을 보여 줄 수 있을지 . 이 일에 조력이 있을 수 없는 물건이라면 나는 왜 세상에 있게 되었겠습니까.

아 , 슬프다 . 내 배의 주림이여 . 내 심신의 피곤함이여 . 이는 저이가 곧 나의 지체가 됨이로다 . 저이가 슬프매 내가 슬펐고 저이가 굶주림에 내가 기운이 없었고 저이가 방황함에 내 마음이 붙은 데 없구나.

내 배가 고픔은 저이를 위함이요 , 내 심신이 피로함도 저이를 위함이로다 . 오 형제여 , 자매여 , 너희로 인하여 주리고 너희로 인하여 헐벗은 나의 영의 움직임을 너희는 아느냐 모르느냐 . 너희는 나를 믿으라 . 나의 사랑을 알고 나의 뜻을 배우라 .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리라 .

너희는 무엇을 위하여 방황하며 무엇을 위하여 분주하느뇨 . 의를 모르고 진리를 모르고 사람을 모르고 무엇을 위하여 분주방황 하는고 . 이는 오로지 너희의 정욕과 물욕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잡기 ( 雜技 ) 나 외도 ( 外道 ) 가 아니뇨?

오 형제여 , 너희는 내 말을 듣고 회개하라 . 천국은 너희 곧 앞에 있을 것이니라.

내 말을 믿는 자는 나를 보낸 아버지를 믿는 자요 , 나를 배우지 않는 자는 진리와 생명과 참된 도를 알지 못할 자이니라.

나는 이렇듯 한 주의 성성 ( 聖聲 ) 을 식탁 후에 들었습니다 . 아 , 그러나 나는 저희를 인하여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으며 곤욕을 당치 않았습니다 . 나는 얼마나 평안하고 호의호식하며 안일한 생활을 합니까 . 그런 중에도 얼마나 마음이 돌과 같이 굳고 , 단단합니까 . 저희의 굶주림을 보면서도 나는 배불리 먹어 감사를 올리고 돌아설 뿐이며 저희는 헐벗었으되 그를 보면서도 나는 나의 몸이 헐벗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만 생각하여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설 뿐이 아니었습니까 . 아 , 나에게 저주가 있으리로다 . 네가 불행히 감사의 말을 배웠도다 . 감사할 줄을 앎으로 너희는 망하는 것이었구나 .

오 주여 , 나를 긍휼히 여기옵소서 . 나로 하여금 나의 의식 ( 衣食 ) 을 얻어서 감사하는 자가 되지 않고 차라리 죄송을 느끼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그리하여 내가 먹을 때 먹는 나를 기뻐하여 감사하지 않고 먹지 못하는 친구들과 슬퍼하여 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 주여 , 나에게는 이러한 울음이 없습니다 . 그런 유 ( 類 ) 의 눈물은 본래부터 말랐던 것입니다 . 오 주여 , 나에게 새 눈물을 선사하옵소서 .

아 , 내가 주를 따라가는 증거가 어디 있나이까 . 내가 예수를 나의 주로 하여 30 년 . 아 , 적지 않은 세월 .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나의 주를 본받았는고 . 무엇을 하노라고 30 년을 지내었던고 . 아 , 슬프도다 . 나의 30 평생이여 . 아 , 괴롭다 . 지금 내 나이 서른하고도 또 두 살이 아닌가 .

오 주여 , 나에게 당신의 영이 없습니다 . 당신의 사랑이 나의 안에 없습니다 . 당신의 피는 어디 흐르고 말랐나이까 . 나의 심장에서 당신의 피가 끓어 오르게 하옵소서.

오 주여 , 당신을 따라가노라고 하면서도 갈수록 당신에게서 먼 것만이 나타나오니 나는 어느 때에나 당신의 옷자락을 만져보며 당신의 신들메에 나마 접하여 보오리이까.

오 주여 , 저희들은 괴로워 자지 못하고 태질을 하며 또 설상 ( 雪霜 ) 아래 몸이 방황하는데도 나는 무심히 침상에 누워있어 만족을 느끼는 자가 아니오니까.

오 주여 , 나에게 어디 사랑이 있사옵나이까 . 내가 주를 믿는 , 주를 따르는 사랑이 어디에 있나이까.

나는 저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저희의 사정이 나에게 와서는 관계가 없습니다 . 저희의 아픔도 내게 관계가 없고 저희의 번민이나 고통이 도무지 내게 관계가 없나이다.

어찌하여 저희의 아픔이 내게 관계가 없을 것입니까 . 나의 사랑하는 자들인데 왜 그들의 눈물과 슬픔이 내게 상관이 없다 합니까?

아 주여 , 나는 주를 따르는 자가 아니올시다 . 혹 주를 예찬하는 자라고 하지만 내게 대하여는 이 이름만으로도 과분한 대접이 되겠나이다 . 아 , 정말 나는 주를 따르지 못하는 자식이로소이다 . 나는 어찌하여 주를 믿고 따르노라고 공공연하게 입을 벌리었던 것입니까.

오 , 그러나 주님이시여 , 내가 주를 본받으려는 마음은 없는 것이 아니올시다 . 주를 따르고자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올시다 .

주여 , 나의 작은 영의 움직임을 긍휼이 보시고 당신을 믿고 당신을 본받게 하옵소서 . 당신을 완전히 따라가게 하옵소서 . 세상의 모든 껍데기를 다 벗어 던지고 프랜시스처럼 발가벗은 몸으로 오직 주님만 따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세상의 모든 치례가 다 나에게는 나를 죽이는 구속이 되었나이다 . 오 주여 , 이 치례의 구속에서 나를 해방해주시옵소서 . 그리고 자유롭게 주를 따라갈 수 있게 하옵소서 . 이것만이 나의 생명을 내걸고 바라는 나의 소원이 아닙니까 . 아 , 그러나 이 소원을 가진지 해를 세어 몇 해였습니까 . 그래도 아직 이루지를 못하였으니 이러다가 해는 서산에 걸리고 향로 ( 香爐 ) 에 불조차 꺼지면 , 아 , 나는 그냥 그 소원에서 나의 생명을 다하고 말 것입니다 .

이루지 못하는 소원 . 생각만 하여도 얼마나 가여운 일입니까 . 그러나 이루지는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주를 따르는 이 소원 , 이 소원 하나를 소유하였다는 일만은 얼마나 큰 일입니까 . 내게 있어서는 이로써만도 천국에 오를 듯한 기쁨을 가질 일입니다 . 아 , 그러나 언제까지든지 다만 이런 소원자로만 있어 어찌 그런지 마음이 무척 애연합니다 . 오 주여 , 나의 그릇이 당치를 않아 당신이 이루어 주시지 않을 셈치고라도 나는 그냥 이 기도를 담아 향을 피우기를 내 일생에 그치지 않을 작정이올시다 . 아 , 이 향로의 연기가 심히 가늘다고 할지라도 나의 생명이 땅에 떨어지기까지는 그것이 끊어지지 않으리다.

가령 나중까지 당신이 불응하신다고 해도 나는 낙심이나 원망을 하지 않으렵니다 . 이루어 주시고 안 주시는 것은 당신의 일이옵고 기도를 올리고 향을 피우는 일은 나의 일이오매 나는 언제까지든지 나의 일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이 기원을 올리고 있을 것인가 하면 다시금 마음은 끝없이 애연해요 . 그래도 그만 두라면 나의 영은 더 견딜 수가 없습니다 . 이것이 나를 영원히 기도자로 있게 하는 까닭이 아닙니까 .

오 나의 주여 , 사랑의 주님이시여 , 내가 기원의 눈을 뜰 때에 당신의 전체는 보지 못한다고 해도 다만 옷자락만이라도 안개와 같이 고요히 드리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 그것이 꿈이라고 해도 나는 거기에 입맞춤을 얻어 만세의 질고 ( 疾故 ) 와 천고 ( 天苦 ) 의 원한을 세척하고도 남음이 있겠습니다 .

 

나도 모르게 붓대는 한참 달리었습니다 . 보실 수 없거들랑 두었다가 이 다음에 다시 내게 주시오 . 그렇지 않으면 김예진 형 보고 좀 보라든지 . 그 형이 내 망필 ( 芒筆 ) 을 해석하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

 

7 월 29 일

 

21) 송창근 (1898~1950): 만우 ( 晩雨 ). 장로교 목사 . 민족운동가 . 미국 Denver 대학교 신학박사 .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 . 조선신학교장 . 6 • 25 사변 때 납북

 

 

『 신앙생활 』7 월호

 ① 대중과 개인

나는 대중을 위하여 있는 자가 아니로다. 

다만 개인을 위하여 살려고 하노라. 

대중은 나의 대상이 아니요

개인만이 나의 진실한 대상이로다.

 

나는 개인보다 대중을 더 중시치 아니하며 

개인보다 대중을 더 두려워하지 않노라. 

나는 대중을 위한 일의 허명 ( 虛名 ) 을 버리고 

한 사람을 위한 진실에 돌아가려 하노라.

 

저 예수는 한 사람을 위하여 있는 자요

대중을 위하여 있는 자 아님을 나는 찾았노라.

대중을 대하였을 때에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어 

그 정지를 긍휼이 여기시었도다.

 

한 사람의 주림을 통찰치 못하고는 

대중의 주림을 살필 수 없느니라.

나는 대중을 위하여 크게 이름 있게 살지 않겠노라.

다만 한 사람을 위하여 작게 이름 없게 살려 하노라.

 

“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를 대접한 것이 곧 나를 대접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를 푸대접한 것이 나를 푸대접한 것이니라 ”  하고 주 ( 主 ) 는 신자들로 하여금 소자 하나를 주와 같이 대접할 것을 가르쳤도다.

 

 ② 진리를 알자

진리를 알자 . 그리고 생명의 불이 붙자 .

아는 것만은 신앙이 아니라 그 진리에 생명이 더해져야 한다. 

진리를 알기 위하여 남의 설교를 듣자.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자. 

알기 위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 앎을 생명화하기 위하여 예수를 믿으라.

 

진리를 아는 것보다 더 상쾌한 정신적 쾌락은 없을 것이다 . 영적 생활의 진리는 여기 있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통 속에서 그의 숙고하던 진리를 발견하고 거리로 뛰어 다니면서 “ 유레카 , 유레카 ”( 나는 찾았다 . 나는 찾았다 ) 하고 부르짖었다 . 과연 우주와 인생의 근본 진리를 찾는데 인생의 최고미가 있는 것이요 , 생의 의미가 있다 . 인생의 정신은 진리 탐구에서 대성하는 것이다 .

진정한 정신은 결국 소득 ( 所得 ) 의 문명이 아니라 공헌 ( 貢獻 ) 의 문명이다 . 개인에 한하여 말하면 , 수득 ( 受得 ) 의 생활이 정신 생활이 아니라 희생과 공헌의 생활이 정신적 생활이다 . 곧 정신적 생활은 받는 생활이란 것보다 주는 생활이다 . 이것이 참 생활의 진리다 .

 

 ③ 십자가를 지자

예수는 지금 천국을 애모하는 많은 사람을 가졌다 . 그러나 그들 중에서 저의 십자가를 지는 자는 적다 . 그는 자기의 위안을 구하는 많은 사람을 가졌다 . 그러나 고난을 바라는 자는 심히 적다 .

모든 사람은 저와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란다 . 그러나 저를 위하여 또 저와 같은 어떠한 일이든지 견디려는 자는 적다.

많은 무리는 빵을 얻기 위하여 저의 뒤를 따른다 . 그러나 저의 고난의 잔을 마시려고 따르는 자는 그 몇 사람이나 있는지 . 저의 이적을 예찬자는 많이 있을는지 모른다 . 그러나 저의 십자가의 치욕에 열복 ( 悅服 ) 하는 자는 적다 . (Thomas a Kempis)

나는 아직 예수 , 나의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그 정도를 알지 못하는 자로다 . 주여 ,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 그러나 얼마나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내가 나의 일을 알 수 없는 미련한 자입니다.

오 주여 ,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주소서 . 물론 그 정도가 낮은 것만은 사실이겠지요 . 내가 주를 사랑하는 정도를 나에게 알게 해주시고 내가 어떻게 주를 더욱더 사랑할는지도 또 가르쳐주소서 . 주를 제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 온 천하보다도 내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 주님의 성적 ( 聖蹟 ) 을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난 지 해를 세어 거듭거듭 몇 해 였던고 . 세월은 가고 사람은 쇠하는데 돌아보니 걸은 길이 많지 않아라 . 앞으로 가고 가서 겟세마네에도 골고다에도 울고 엎드리고 서서 피 흘린 곳 낱낱이 참배함이 있고자 하나 , 이 걸음 어이 이리도 지지 ( 遲遲 ) 한고 . 이러다가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고 그나마도 다리에 힘조차 말라 버리면 어찌할 건고 . 그러나 걸음은 떠도 마음은 급합니다 .

내 걸음이 뜬 까닭은 안과 밖으로 거리끼는 막대기와 가로질린 돌이 수없이 많은 까닭이올시다 .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주여 인도하소서 . 아멘 .

 

 ④ 일 ( 一 ) 에서 만 ( 萬 ) 에

하루에서 천 년을 살자 .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사외다 .

한 사람에서 만인 ( 萬人 ) 을 위하자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일사일사 ( 一事一事 ) 를 당하여 만사 ( 萬事 ) 에 면 ( 面 ) 하자 .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큰 일을 다하는 자다.

 

 

 

 이종현 씨에게

 

인왕산 뒷골에 처사 ( 處士 ) 같이 자리를 정하고 소란한 도시의 인연을 끊으니 일종 수도원 생활의 감이 없지 않소이다 . 산 좋고 물 좋고 또 돌도 좋고 예배당도 좋으니 친애하는 형제와 자매들과 그 속에서 같이 하고 싶으외다. 예진 형 댁이 이제쯤은 옮기어졌을 터이고 『 신앙생활 』 사무실도 어디로 이전이 되었을 모양인데.

정처 없이 ‘ 이리저리 ’ 가 우리의 육적 생활이고 정처 없이 ‘ 여기서 저기서 ’ 가 우리의 일이었는가 . 그렇다 . 아무데로 가든지 주의 집에 산다는 사실만은 변함 없을 것이요 , 어디서 일하든지 ‘ 주와 같이 주의 품 안에서 …… ’ 가 우리의 일이었느니라 .

예진 형이 신암교회 ( 新岩敎會 ) 에서 시무하시는지 ? 저를 버리는 곳은 어디며 또 남이 버리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그 누구인고 ?  전자는 무슨 마음이며 후자는 또 무슨 심정인고 ? 하여간 버림을 받아 서러워할 것도 없고 영접을 받아 기뻐할 것도 없을 일이니 ,  다만 오나 가나 성의에만 살아 족할 것이었느니라.

바람 한번 지난 후 바다는 조용하지 않았고 우리 형제들의 움직임이 있는 곳에 교회는 무사치 않았구나.

성신의 동풍이 한번 일어나매 죽은 듯이 잠들었던 심령은 깨어 일어나 바다 같이 들끓었구나.

사람아 , 네 어디로 가느냐 ? 이 바람의 방향대로 네가 가려느냐 ? 네 길이 순탄할지어다 . 이 바람을 거슬려 네 가는 곳이 어디였느냐 ? 역류역풍 (逆流逆風 ) 의 네 영의 작은 배야 . 성신을 거슬려 네 영의 평화가 있을까. 이 바람을 뜻 있어 받을 자는 받을지어다 .  이 바람은 곧 심령을 들추어 놓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나니 , 이 말을 귀 있어 듣는 자는 들을지어다 .

이제 나는 형제에게 권하노니 , 너는 아무것도 되려 하지 말지어다 . 네가 무엇이 되어 필요할지 , 아니 무엇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세우지 말지어다 . 하나님은 벌써 너에게 대한 충분한 설계와 심산 ( 心算 ) 이 있었나니 , 너는 다만 전체를 그에게 맡기고 다만 그가 끊임없이 너에게서 일하시기만 기다릴 것이었느니라. 

주께서 충분히 주무르시어 , 무엇이든지 너는 되지 아니치 못하리니 , 그때에 무슨 이름이 명명될지 알 자가 없었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될지 알지도 못하는 흙덩이를 갖다 놓고 스스로 이름을 지어 부쳐 가지고 나는 이것이 되겠다 하는 자여 ,  네 얼마나 어리석은 자임을 알지 못하겠는가 . 너는 될 대로 되리라 . 무엇이든지 하나 되리라.

주께 완전히 맡겼으면 주의 ( 主意 ), 그 정신을 나타낼 무슨 그릇 하나는 분명히 될 것이니라 . 혹 목사 , 장사꾼 , 직공 , 걸인 , 미치광이 전도자 , 아무개 아버지 혹 아무개 어머니 , 최 권능 , 염병 같은 놈 , 무교회주의자 , 이단자 , 죽일 놈 …… . 그 외에 많은 이름 .

무엇이든지 주께로부터 너에게 오는 이름 하나를 허락하시고 그 이름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

그런고로 너는 아직 무엇이 될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것이었느니라. 지금에 너는 무엇이 되려고도 말고 무엇을 바라지도 말라 . 다만 전체를 주께 맡길 따름이니라 . 그리고 끊임없이 주의 손의 가공을 받아 묘할 것이었느니라.

주의 작품은 한 모양이 아니나 , 그러나 주의 뜻이 ( 크거나 작거나 ) 그 속에 잠기어 있음은 한결같으니 고로 무엇에서든지 주의 성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니라.

만가지 합동하여 주의 세계를 빛나게 꾸미고 그를 영광스럽게 하여 족하도다 . 그러나 형제들이여 , 형제들이 무엇이 되든지 ‘ 주의 것 ’ 이 될 것만은 지금부터 확실히 믿어 족하니라 . ( 전체를 주께 맡겼으면 )

미치광이라도 주의 것이요 , 장사꾼 , 농사꾼이라도 주의 것이요 , 목사요 , 또 이단자라는 별명을 들어도 너는 주의 것일 것이요 , 무 교회주의자 , 위험분자 라는 홍패 ( 紅牌 ) 를 찼어도 너는 주의 것일지니라 .

무슨 이름이든지 다 좋다 . ‘ 주의 것 ’ 이라는 등록표만 붙어있다면 !

오 , 할렐루야 찬송하세 . ‘ 주의 것 ’ 들이여 , 별 것들이 다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떠들고 왔다 갔다 하누나 . 굿중패 같고 남사당패 같다 할지라도 속은 다 ‘ 주의 것 ’ 들인가 . 무엇이든지 다 모여 오라 하라 . 같이 춤출 자면 , 같이 기도할 자면 , 같이 찬송하고 같이 전도할 자면 .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다 . 상인도 좋고 농인도 좋다 . 학생도 좋고 선생도 좋다 . 양인도 청인도 왜인도 좋다 . 광인도 좋고 병인도 좋다 . 장로교인도 좋고 성결교인이나 감리교인도 좋다.

이단자 ,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는 명패를 차고 제사장 아문에서 쫓겨 나가던 이가 , 오 , 그 이가 우리의 왕이시요 , 대장이시다 .

다 오너라 . ‘ 주의 것 ’ 이거든 . 주의 것 ! 주의 것 ! 오 , 주의 것들이여 ! 그러나 종종 껍데기에는 ‘ 주의 것 ’ 이라는 표를 붙여가지고 시장에 나왔지만 ‘ 주의 것 ’ 의 진위를 아는 자에게는 당장에 그 위조품이 곧 발견되누나 . 그와 반대로 껍데기는 이단자 , 무교회주의자 , 광인 , 위험분자라는 도장이 찍히어 쓰레기통 옆에 가서 천대를 받는다만 그래도 그 속에는 ‘ 주의 것 ’ 의 화인 ( 火印 ) 을 맞아가지고 있는 자가 있었구나 . 아 , 주의 화인 맞은 자여.

주의 화인 맞은 자 다 오라 . 또 주의 것 되기 원하는 자 다 나와 엎드리게 하라 . 그리하여 주의 손이 와서 일하기를 충분히 기다리게 하라 .

땅 위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형제들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 내게 누가 있겠는가 . 그러나 나는 동심 ( 童心 ) 과 같이 발작하는 마음을 때로 기도 에 담아 위로 올리면서 참아버린다 . 아 , 나는 언제나 완전히 주의 자취를 따를 것인고 . 나는 날마다 무엇을 하고 있는고 .

 

7 월 22 일

시무언

 

 

 

 원탄실 ( 元彈實 ) 씨에게

 

세상이 다 탄실이를 몰라주어도 나야 알지 . 그 가련한 정지 ( 情地 ) 를 내 왜 모르겠는고 .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러워 마소 .

하늘이 알아주어 족하지 않는가 . 세상의 오해를 두려 마소 . 그리고 굳센 자신으로 사오 . 군 ( 君 ) 은 결단코 스스로 약하지 마소 . 

자약 ( 自弱 ) 은 자멸이오 . 자약하여 사람의 망평 ( 妄評 ) 에 울지 말고 확신에 입각하여 앞으로 돌진하소 .

사람을 약하게 하는 벌레 둘이 있소 . 무엇인지 아오 ? 그 놈에게 심령이 먹히어 버리면 허깨비에게도 끌려 갈만한 약자가 되고 마오 . 충실한 심령을 먹는 벌레 , 고상한 지조를 쏘는 좀 , 그것은 고독과 비애라는 무골충 (無骨 蟲 ) 이오 .

고독과 비애가 심령 안에 잠입하여 기 ( 氣 ) 를 상하게 하고 뜻을 무너뜨려 거기에는 눈물이 흐르고 한숨이 터지오 . 이때에 저는 세상 일의 무상을 원망하고 인간의 무정을 욕하오 . 그러나 저는 세상 일을 아주 버리고 인정을 아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자처럼 세상 일을 다시 탐하고 인정을 새로 구하는 일을 마지 못하오 . 거기에 영원이 없음을 이미 경험으로써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또 속아보려고 울면서 그 길을 걷는 것이오 . 그것은 저가 그 이상의 길이 있음을 알지 못한 까닭이오 . 만일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았을진대 저는 이미 속은 길을 다시 걷지 않고 전심으로 새 길을 향하여 돌진할 것이오.

새 길 . 신도 ( 新道 • 神道 ) 라고 해도 좋으오 . 혹은 천도 ( 天道 ). 땅에 있으면서 세상에 있으면서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 하늘의 도를 , 신도를 걷는 일이니 곧 이 길을 신앙의 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오 . 전자를 정욕의 길 , 후자를 신앙의 길이라고 하오.

고독과 비애에 포로가 되어 있을 때 인정과 세상 일을 의지하여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으려고 애쓰는 자가 많소 . 그러나 저들은 대개 더욱더 참담한 비애 , 황막한 고독의 벌판에서 헤매게 되고 그리하여 한 평생 흡족과 위로를 모르고 그냥 죽고 마는 것이오.

그렇지만 비애와 고독이 뒤덮여 올 때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다만 신에게 전 운명을 맡기고 하늘의 평안과 영의 위로를 간구한다면 그런 사람은 백이면 백 다 신천신지 ( 新天新地 ) 를 얻어 만족해하나니 이는 곧 천국을 소유한 것이오 . 자매여 , 군은 군의 가련한 정지를 신께 전부 맡기어 버리시오 . 자력으로나 인력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우매를 버리고 다만 신으로써 , 신의 능력과 그 사랑에 끌리어 살라!

자매여 , 나는 아노라 . 군이 그 동안 얼마나 약한 자가 되어 울고 있었는가를 . 어떤 자가 쥐고 흔들든지 마음대로 흔들릴 그런 연약한 지경에 있는 줄을 마귀도 알았던 것이오 . 그러므로 적에게 약점을 보인 군은 불가불 그의 침략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오.

정애 ( 情愛 ) 에 일찍 패배를 당하여 비애와 고독의 감방 속에 울고 있는 군의 심령을 마귀는 다시 인간의 정과 애로써 군을 구출할 뜻을 군에게 보였던 것이오 . 군은 마귀에게 사로잡히도록 그렇게 무지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놈의 농락에 좌우되리 만큼은 약하여 있는 것은 사실이오 . 그 농락을 받는 동안 다시 그만큼은 새로운 고독과 비애 . 그 위에 공포를 더하여 군의 심령은 아주 가련해졌던 것이오 . 자매여 , 모든 문제를 하늘에 맡기고 다만 신에게 나아갈 것뿐이요 . 다시 권하오니 과거를 슬퍼하지도 말고 현재에 울지도 마소 . 세상 일에 의지하지도 말고 사람을 믿지도 말고 동시에 사람을 두려워할 것도 없소 . 다만 군에게는 주님이 있을 따름임을 대각 ( 大覺 ) 하라 . 속히 보기를 원하노라 . 속히 상경하소 .

나는 7 월 6 일 아침 자평양래 ( 自平壤來 ) 가내무고 ( 家內無故 ) 감사천은이 ( 感 謝天恩耳 )

 

8 월 7 일

시무언

 

 

 

 안성결 ( 安聖潔 ) 씨에게 22)

 

“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같이 있느니라 .” 이는 주님의 말씀이외다 . 우리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는 이는 주님뿐이외다 . 어버이가 자녀를 사랑하되 항상 같이 있지 못하고 친구가 그 친구를 사랑하되 늘 동거치 못하나니 이 어찌 서운한 일이 아니리요.

고로 사람을 친하여 결국 눈물로 작별할 수밖에 없으되 주님을 친하여 한 방울의 유감의 눈물도 있을 수 없소이다 . 장로님과 성결을 두고 내 영이 민망을 느끼면서 길을 떠났소이다 . 늘 기도하면서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바랍니다.

 

8 월 21 일

시무언

 

22) 안성결 : 도산 ( 島山 ) 안창호의 질녀 ( 姪女 )

 

 

 

 이호빈 씨에게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는

하나님이여 , 하나님이여 하고 울고 부르짖으며

복을 달라고 , 사랑하여 달라고 , 외치는 것이었지만 목전에 나타날 때에는 

마귀 취급하듯 해버리었구나

 

이적을 행하심에

바알세불이 들린 놈. 

설교를 하심에

백성을 미혹하러 다니는 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심에 

정신이상 들린 놈.

 

나는 내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을 한다 함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 함에 

참람 ( 僭濫 ) 한 놈 .

십자가를 지고 말없이 피눈물을 쏟으시매

 

못난 놈 하여

저희의 하나님을 버리었구나.

 

이적을 행하심은 저희를 사랑하심이요 

설교를 베푸심도 저희를 사랑하심이요 

눈물로 기도하심은 저희를 사랑하심이요 

십자가를 지심도 저희를 사랑하심이었건만

 

이적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설교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눈물을 보아도 기도를 들어도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구나.

 

인자 ( 人子 ) 라 해도 믿지 않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라 해도 믿지 않고

나는 죄인의 친구로다 하여도 믿지 않았구나.

 

일간두옥 ( 一間斗屋 ) 도 가지지 않으심은 저희를 사랑하심이요 , 굶주리고 헐벗음도 저희를 사랑하심이요 , 산과 들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심도 저희를 사랑하심이었건만 그래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았구나 . 내가 너희를 암탉이 병 아리를 날개아래 품어 들이 듯 여러 번 너희를 사랑으로 싸 안으려 했으나 너희가 원치 않았구나.

 

아 , 나는 사랑하고자 하나 사람이 원치 않는다 ( 嗚呼 , 我欲愛而人不願 )

 

9 월 16 일

 

 

 

 안성결 씨에게

 

친애하는 자매의 신앙고백문과 같은 귀한 글을 당진 ( 唐津 ) 으로부터 경성으로 오는 차 중에서 읽고 나는 매우 감사하였노라 . 그대는 그곳을 떠나고 나는 이곳을 떠나 주님 영전에 시립 ( 侍立 ) 한 듯 매우 친근하여짐을 느끼었노라.

자매의 얼굴을 몇 번이나 나의 기도 중에 보았노라.

하늘을 향하여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아 바치고 있는 그 경건한 태도 , 조선에 처음으로 있을 성녀 ( 聖女 ) 인가 하였노라 . 그러나 때로는 오르락 내리락 마음이 균형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저울추 같음을 보고 다시금 주님께 구하였노라.

“ 주님이시여 , 저를 완전히 사로잡으시옵소서 . 당신의 품속에 깊이 감추어 두시옵소서 . 주의 품은 저가 피난할 유일의 피난처가 아니오니까 . 주의 품을 떠나 저가 어디 가서 저의 난 ( 亂 ) 을 피하오리까 . 주의 품을 떠난 저는 가장 가련할 자이옵고 주의 품에 안긴 저는 가장 축복 받은 성녀일 것입니다 . 주여 , 저가 성미가 조급하나이다 . 그러므로 나갈 때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여 장족 ( 長足 ) 의 진보도 볼 수 있을 것이오나 때로는 실족하는 일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 주여 , 손을 길게 펴사 그를 붙들어 주옵소서 . 

조급한 저를 침착한 주의 품에 깊이 품어 주시옵소서 . 고요한 품 , 무언의 사랑이 흐르는 그 품 , 그곳에 저를 품어 길이 쉬며 돌보심을 받게 하옵소서 . 아멘.”

자매를 생각할 때 마음이 슬퍼 눈물에 있을 때도 있고 또 내 마음이 기뻐 하늘에 오를 듯 작약 ( 雀躍 ) 하는 때도 있었나니 전자에 있어서는 주와의 관계에서 멀어진 성결 ( 聖潔 ) 을 봄이요 , 후자에 있어서는 주의 신부로서의 그대를 봄이었노라.

자매여 , 그대는 영원히 주님의 신부이니라 . 주께서 그대를 얻었으니 곧 눈물과 피를 내어놓고 얻으셨느니라 . 저 십자가는 그대를 얻으신 주님의 승전비요 또 영원히 있을 기념비니라.

그대 하나를 취하기 위하여 그대의 주님의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그 정지의 혹 만분지일을 생각할 수 있을까 ? 그대는 주야로 염념사지 ( 念念思之 ) 하여 주님의 사랑을 찾고 찾으라 . 그리하여 저 깊은 사랑의 내전에까지 찾아 들어가라 . 그곳은 한번 들어간 자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사랑의 지성소니라 . 거기서 그대는 주의 정체 ( 正體 ) 를 포옹하리라 . 그리고 천국을 노래하며 그 귀한 영광을 얻은 그대의 눈에는 감사의 눈물 , 진주와 같이 솟아날 것이니라.

게달의 장막 같은 너는 솔로몬의 휘장같이 빛나고 고울 것이니 주 그 휘장 안에 계셔 사랑을 노래하실 것이니라.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말을 적게 하고 고요히 그 품 안으로만 기어들어 가시라 하노라 . 사람을 두려워 말라 . 또 사람을 미워도 말고 업신여기지도 말지어다 . 누구든지 존경하고 긍휼히 여겨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선을 베풀지어다 . 상대자의 가치를 판정해 놓고 그만큼만 위해 줄 것이 아니라 , 누구든지 그대는 그대의 최선을 다하여 사랑을 베풀 것이니라.

성결 네 가정에 성결로 말미암아 거룩한 열매가 많을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노라 . 벌써 기쁨과 감사의 열매가 온 가족의 심령 위에 맺힌 줄 아노라 . 이번 당진 집회에서는 신기한 능력이 많이 나타났었는데 , ‘ 성결이가 있었더라면 …… ’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오 .

과연 지금은 은혜 주실 때 ,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크게 권고하시는 때임을 의심치 않노라 . 누구든지 주 앞에 엎드리는 자마다 은혜를 풍성히 받게 되니 어찌 주께 나가기를 게을리하랴.

지금은 시내 광희문교회 집회 중 . 이만 .

 

9 월 24 일 아침 

회당에서 밤을 지내고

시무언

 

 

 

 안성결 씨에게

 

예수와 그의 사랑 , 또 그의 능력을 아는 대로 굳세게 증거하라 .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 앞에 겸비하라 . 그러면 이로써 예수의 제자인 줄 알리라.

더욱더 예수의 사랑을 아는 가운데 영의 성장이 있기를 힘쓰라 . 아멘 .

 

9 월 25 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시무언

 

 

 

 김인서 씨에게

 

대보산 ( 大寶山 ) 을 떠나 내외금강 ( 內外金剛 ), 북창 ( 北倉 ), 온정리 ( 溫井里 ), 고성 ( 高城 ), 원산 , 영흥 ( 永興 ) 을 휘돌아 여기까지 왔소이다 . 이번 여름 전도여행에는 특히 주의 은총을 많이 입었습니다 . 총회 ( 總會 ) 물결에 형매들이 부딪칠 것을 생각하고 비희교지 ( 悲喜交至 ) 하는 중 . 주의 특은 ( 特恩 ) 을 입어 더욱 십자가의 길로 돌진함이 있기를 바라옵니다.

나의 소식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말하소서 . 다음은 경성 광희문교회 . 원산 정형 ( 情形 ) 은 저의 작은 지식으로나 부족한 경험으로는 시비를 판정할 수 없고 하여간 이쪽저쪽으로 저는 얻은 바 적지 않았소이다 . ‘ 선악이 개오사 ( 改悟師 ) 라 .’ 원래 나는 배울 자요 , 가르치며 비판을 내릴 학자나 논객이 못되오매 , 그냥 그 중에서 거둘 바만을 거두고 나머지는 나보다 더 지혜로우시고 더 능하신 누님께 맡기었나이다 . < 중략 >

형이여 , 붓대에만 주력하지 말고 밀실 영음 ( 靈音 ) 에 귀를 기울이소서 . 그래서 영의 감전 ( 感電 ) 이 있는 때 그대로 붓을 날리소서 . 구성산 ( 九成山 ) 을 못 보았으나 대보산 별장을 샀으면 합니다.

 

9 월 22 일 

충남 당진군 상거리 ( 上巨里 ) 교회

시무언

 

 

 

 옥어진 ( 玉於眞 ) 씨에게

 

주 , 인간을 크게 권고하시며 그 은총을 입는 자 날로 그 수가 더하도다 . 하늘에 속한 자는 그 영 ( 靈 ) 을 기뻐하고 땅에 속한 자는 물 ( 物 ) 을 좋아하도 다 . 영의 사람은 내용에 살고 육의 사람은 외화 ( 外華 ) 에 사는구나 . 주같이 하시사 만사 복 되기를 …… .

 

9 월 23 일

 

 

 



<3 부 : 1932 년 >

 

제 4 장

 

 

 이천농 씨에게

 

북진 와서 웅기읍 ( 雄基邑 ) 목사에게 편지를 쓰고 지금 형님에게 또 이 글을 씁니다 . 웅기는 내년 1 월 하순 이후가 아니면 안될 듯 합니다 . 기양 ( 岐陽 ), 평양 , 숙천 ( 肅川 ) 등지에서 23 명이 혹은 도보로 혹은 도중소승 ( 途中小乘 ) 하면서 200 여 리를 부르튼 발을 끌고 어제 밤 이곳 도착하는 모양을 보니 꼭 중세기의 순례자들을 방불할 듯하외다.

광산지대라 , 아 , 단장 ( 斷腸 ) 의 애화 ( 哀話 ) 는 마음의 아픔을 참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 10 월 7 일 평양노회에서는 나의 금족령이 내렸고 만일 당 ( 當 ) 노회 경내에서 나를 청하는 교회가 있으면 상당한 벌을 한다고 한 것은 지난번 소식과 같거니와 형제들은 딴 집회소를 준비하겠다고 야단들이나 어찌 될는지 . 대보산 별장도 1,000 여 원이면 살듯한데 어찌될는지 . 하여간 일은 확대되는 모양이외다.

그러나 우리는 직권행사 ( 우리에게 없지만 ) 가 우리 일이 아니요 , 이론투쟁이 우리 일이 아니요 , 자금모집이 우리 일이 아니요 ,  다만 예수의 마음으로 삶에 우리 일이 있었으니 이마에 돌이 박히도록 주의 마음만을 살 것이었습니다 . 소곳하고 그러나 굳세게 주의 마음을 살 것입니다 .

머리에 돌 박히기까지 주를 따라 나갈 것인데 우리가 약하구나 . 그저 기도합시다 . 기도의 불이 살아있는 유일의 증거구려 . 욕을 먹으면서라도 기도합시다 . 쫓겨나서도 기도합시다 . 최후에 승리는 기도자들에게 있을 것이니 …… .

마귀는 자멸이외다 . 누가 멸망시켜서가 아니라 저의 하는 일이 결국은 멸망에 빠질 일인 것이외다 . 처음에는 승리 같으나 종말은 멸망이외다 .

불의는 선승후패 ( 先勝後敗 ) 라 먼저 이겨가지고 패하는 것이요 , 의는 선패후승 ( 先敗後勝 ) 이라 져가지고 이기는 것이외다 . 대중에게서는 실패를 당하나 한 사람에게서 승리를 얻는 것이외다 . 공회 ( 公會 ) 에서는 실패이나 한 사람 앞에서는 완전한 승리를 얻습니다 . 그런고로 저희들은 공회적 , 법적 승리를 기대하여 거기서 만족을 얻으려 하였으나 각 사람을 상대해서는 함구( 含垢 ) 패배이었던 것입니다 . 공회의 마음[ 意 ] 은 얻었으나 결국은 한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한 것이요 , 주님은 한 사람의 마음을 얻으므로 결국 만인의 영을 얻습니다.

나는 대중이 나의 상대가 아니요 , 다만 한 사람이 나의 최선의 상대이었으니 대중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리지 못하나 한 사람을 위하여는 나의 전체를 희생에 바치기 원하는 것이외다 . 회중 ( 會中 ) 에서 실패 , 인전 ( 人前 ) 에서 승리 , 이것이 우리에게 있을 바 일이구려 . 우리가 회 ( 會 ) 를 위하여 충의와 사랑을 다하지 못하나 한 사람을 위하여는 생명을 아끼지 말 것이외다. 이미 안주 방면에서 도보로 오신 분이 20 여명인데 , 어젯밤에 또 근 20 여명이 밤을 새워 왔구려 . 밤새도록 걸어서 오늘 아침에 또 지팡이를 집고 왔구려 . 난리 난 세상같이 거리에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 벌써 40 여명이 모였으니 본 교인보다 다수가 될 듯 . 내게는 큰 걱정이외다 . 그러나 염려 없소 . 내가 맡은 사람이요 ? 주가 맡은 사람이지 ! 오 주여 , 저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시옵소서.

이곳 집회는 어찌될는지 . 성의가 있겠지 . 이런 변은 처음 봅니다 . 안주 교회가 통틀어 온 모양이니 아마 목사님들이 좀 얼떨떨할 듯하외다 . 북진교회에서도 어쩐 영문인지 몰라 놀라고 있는 모양이외다 . 200 여 리가 아마 문턱 같은 모양이지 . 늙은이 , 아이 모두 다 섰으니 . 천국에는 원근도 없고 주야도 없는 것이외다 . 아 , 말세의 인간들이여 , 깰지어다 . 주가 가까웠나니 . 나의 가는 곳마다 나를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올려주시오 .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뒤에서 기도로 , 나는 앞에서 전위대로 싸워볼 일이외다 , 머리에 돌 박히기까지.

싸움은 크게 벌어졌소이다.

10 월 15 일

 

 

 

 이호빈 씨에게

 

순회 일정

10.3~10.9 안주읍

10.13~10.19 운산 북진 최창신 ( 崔昌信 ) 목사 

10.23~10.28 해주 전희철 ( 田熙哲 ) 목사 

10.31~11.6 자교교회

11.10~11.16 수안읍 ( 遂安邑 )

11.20~11.26 월계리 ( 月溪里 ) ( 경성시외 ) 

11.28~12.2 중앙전도관

12.4~12.10 왕십리 ( 往十里 )

12.11~12.18 원익상 목사 구역

12.19~12.25 의정부 ( 議政府 ) 

12.28~1.6 홍천읍 ( 洪川邑 ) 교회

 

안주읍 집회 성화 ( 聖火 ) 강림 . 시무언 가부론자 ( 可否論者 ) 대립하여 세력을 쓰던 중에 소자를 세워 주 승리하셨으니 손을 들어 만세 , 만세 . 2 일을 더 연기하여 집회하였습니다 . 개천읍 ( 介川邑 ) 황구학 목사도 하루 와서 참석하더니 돌아가서 장로와 청년들을 데리고 나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10 월 7 일 평양노회에서는 시무언은 노회지경 안에 일체 들이지 말기로 39 대 52 로 가결 통과 . 평양 성내 교중 ( 敎衆 ) 들은 술렁술렁 . 안주를 마치고 11 일 밤차로 입평 ( 入平 ) 하여 몇 사람 만나니 , 부인들은 울고 남자들은 쓴웃음 . 지금은 북진 행차 중 . ( 오전 9 시반 평양발 )

“ 이용도는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설교함에 진리는 있다 . 고로 진리를 먹으려면 그를 청해야겠다 . 그러나 그를 청하면 그와 같이 못하는 그 교회 목사가 푸대접을 받게 되므로 그를 청하지 말아야겠다 ” 가 가편론자 ( 可便論者 ) 의 한 이유 . 그 외에는 무근지설 ( 無根之說 ) 로 책 잡으려던 것이더라고 . 김예진 형이 의자에 돌립 ( 突立 ) 하여 “ 노회원들아 , 너희가 마땅히 회개할 것이거늘 어느 때까지나 진리를 거역하겠느냐 . 이용도면 어떠냐 , 진리면 받을 것이지 ” 대성대질 ( 大聲大叱 ) 하고 3~4 인에게 붙들려 앉힘을 당하는 등 굉장히 활극 연출 . 김영선 형은 성령에게 이끌려 봉천 ( 奉天 ) 행 . 가족 다 버리고 . 기도단 죽일 놈 살릴 놈 해도 그래도 노방 전도자와 사경 ( 死境 ) 에 용감히 들어가는 [ 躍入 ] 결사적 전도자는 그들 중에 있음을 어쩌오 . 평양에서는 적극적으로 공회적 ( 公會的 ) 으로 핍박 대두 . 나와 교통도 엄금한다나요 . 앞으로는 막 책벌 , 축출이 속출할 듯 . 그러므로 저희들은 벌써 집회장소 고안 중이더이다.

도산 ( 島山 ) 의 질녀 , 곧 안치오 장로의 딸 . 그 여성도는 8 년 고질을 고침 받고 그 영도 중생 , 대보산에도 따라왔었고 원산도 왔었고 안주도 왔었고 또 북진도 동행 중 . 두 번이나 안주서 간증했는데 천만인 중에도 자기는 나를 위하여 증거하겠다고 . 아주 열렬한 급행열차식 ( 式 ). 그는 비관 자살을 도모하다가 미수 . 독약까지 먹었으나 죽어지지 않았다고 . 이제는 영육 신생 . 원산서 귀로에 도산에게 장문으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이제부터는 자기는 예수의 종이 되었다고 작은아버지도 기도 많이 하고 예수에게 위로 받고 구원 얻으라고 전도.

 

10 월 

경의 차 중 안주역에서 시무언

 

 

 

 김영선 씨에게

 

친애하는 영선 형제여,

나는 안주와 운산 북진 집회를 마치고 평양으로 들려서 해주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는 중입니다.

북진서 , 숙천서 , 안주서 , 그 외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왔습니다 . 700~800 리 먼 곳에서 학생과 부인들이 발이 부어터져 피를 흘리면서 주야 불구하고 기어드는 정지를 보면 목석 같은 마음에도 눈물이 고입니다 . 심령의 기갈은 심하여 말라 죽게 된 이때 오 하나님이여 , 은혜의 비를 내리시옵소서.

일전 평양에 들려 50~60 명이 신행상회 다락방에 모여 뜨거운 눈물로 기도를 올리었습니다.

평양에는 이용도와 ○○○를 노회지경 안에 용납하지 말자는 결의가 있은 후 일반 교인들은 웅성웅성하며 모여서는 울며 기도하며 말세가 되었다고 “ 주여 ,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 하고 야단 들입니다 .

안주에는 큰 불이 떨어졌소이다 . 나를 반대하여 청하지 말자고 하던 사람들이 모두 울며 자복하고 또 이번 평양노회에서 가 ( 可 )  표를 써넣은 연화동 ( 蓮花洞 ) 교회 황 장로님이 안주 집회에 하루 밤과 새벽 한 번 참례하고는 울면서 하나님께 자복하고 또 그곳  ( 안주 ) 교회 목사님께 가서 사람들의 말만 듣고서 경솔히 가결하여 죄를 얻었다고 후회하더랍니다 . 안주서 북진은 230 여리인데  남녀 40 여명이 도보로 따라왔었답니다 .

한 켠에서는 청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는데 또 한 켠에서는 너무 안 온다고 야단이오 . 나중에는 700~800 리라도 따라 다니는 무리들까지 있으니 모든 것이 다 나에게는 죄송한 것뿐이올시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 주의 염려가 인간 가운데 크게 나타나시는 때올시다. 순종하는 자 적어서 염려될 뿐이올시다 . 소제는 주를 봉사한다고 하여도 아직 법에 끌리어 노는 자식이요 , 성신에 끌려 사는 자식이 되지 못한 것을 깨달을 때마다 근심이요 슬픔이올시다.

그러나 주 이것을 버리시지 않고 용납하여두시니 , 더욱 죄송만만이올시다 . 성신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소서 . 집안은 다 주님께 맡기고 . 종을 치는구려.

 

10 월 26 일 

황해도 해주 남본정 ( 南本町 ) 교회 이용도

 

 

 

 이종현 씨에게

 

신앙은 일년초가 아닌지라 그 해 성장의 형 ( 形 ) 과 질 ( 質 ) 로써 완성을 볼 수 없으외다 . 또 10 년이나 20 년 성장하면 완성을 볼 수 있다는 그런 것도 아니올시다 . 영원을 기약하고 성장 발달할 성질을 가진 생명이올시다 . 거기에는 춘풍추우 ( 春風秋雨 ), 감로한설 ( 甘露寒雪 ) 의 시련이 꼬리를 이어 닥치고 있는 , 아 ! 이 오묘의 도정 ( 途程 ) 을 누가 일일이 알아 그 길에서 실패 없기를 기약하리오.

다만 공심 ( 空心 ) 의 겸비한 자와 기도의 열심자와 무언의 침묵자만이 겨우 그 오묘를 엿볼진대 변심 ( 變心 ) 이냐 , 진전 ( 進展 ) 이냐 . 물론 예전 상태와 다른 어떤 상태가 심령의 동산에 일어날 때에 그것을 변화라 하겠으나 쇠락할 변화도 있었고 향상할 성장 곧 진전도 있었느니라 . 변화는 변화지만 , 후퇴하는 변화 , 전진하는 변화도 있으니 , 퇴변진변 ( 退變進變 )! 그 오묘를 누가 다 알리오.

영원한 또 절대무위 ( 絶對無違 ) 의 판단자 , 심판자는 오직 한 분뿐이시니 , 네 누구인데 사람의 일에 경솔한 단언을 내릴 수 있으랴. 네 , 옳소이다 . 나의 모든 판단을.

주 , 삼키시옵소서 . 나는 그냥 두고 보겠나이다 .

화 ( 禍 ) 라 하여 안지비복호 ( 安知非福乎 ). 만사에 움직이는 촛불 같은 인생들아 , 영원히 혁혁한 생명의 등불이 되어라 . 작은 일에 소란 [ 騷然 ] 치 말고 영원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기다려 보자 . 나의 영혼아 . 

수안행이 변경되어 신계로 갑니다.

11 월 11 일 

신막 • 신계 가는 길에 시무언

 

 

 

 강정숙 ( 姜貞淑 ) 씨에게

 

친애하는 자매에게

“ 황혼이면 길을 걷지 못하였습니다 . 너무도 눈물이 앞을 가리어서요 .” 이 한마디 속에 나타난 가련한 자매의 정체 ( 正體 ) 는 해주역을 떠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의 심령 위에서 배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몇 번이나 하나님의 제단 위에 자매를 올려 놓고 촛불을 켜고 향불을 피우곤 하였습니다 . “ 이 가련한 고아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고 “ 이 가련한 사막의 여행자를 돌보아 주소서 ” 하고 .

○○를 떠나서는 함남지방에서 10 여 일을 지내고 본도 ( 本道 ) 신계읍 ( 新溪 邑 ) 으로 어제 왔습니다 . 1 주간 이곳에서 집회를 인도할 양으로요 . 차 중에서 자매의 글을 읽었습니다 . 기도와 눈물로 읽었습니다 . 친애하는 자매여 당신은 지금 그 자리에서 떠나야겠습니다 . 이는 공간적 의미는 아니올시다 . 자매의 심령의 현상태에서 해방을 받으셔야 할 것을 의미하는 말이올시다. 자매의 심령은 그 무엇에게 포로를 당하여 비애와 고독의 감방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날과 날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 소용돌이치는 비애의 와권 (渦卷 )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다가 정신을 상실한 고령 ( 孤靈 ). 그리고 지금은 어째서 휘둘리는지 알지 못하고 휘둘려 돌아가며 까닭 모르는 눈물을 흘리는,

오 가련한 심령의 소유자여 . 자매는 한 가닥 정신을 가다듬어 비애의 와권 속에 휩쓸려 들어가 번민과 고통의 희고 푸른 물결 위에 여지 없이 부딪치게 되는 그 처음을 생각할 수가 있겠나이까 . 오 , 가애로운 자매여 , 자매의 생의 일기 , 그 처음 장에서부터 청장 ( 淸帳 ) 할 수 있겠나이까 . 그대의 구원은 완전한 과거 청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올시다.

다 버리소서 . 모두 끊어 버리소서 . 자매의 모든 이상 , 모든 포부 ( 抱負 ) 로부터 모든 인간적 설계와 방침까지를 다 버리소서 . 모든 지식 , 자기의 심령 하나를 구할 능력이 없는 그 지식도 버리고 물질 , 인물들까지도 다 마음에서 끊어버리어 있으나 없는 자와 같이 가지지 못한 자와 같이 되소서 . 어리 석은 자가 되소서 . 예수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 예수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빈자 , 성령의 지시 외에는 모든 설계와 수단을 베풀 수 없는 백치가 되소서 . 그리하여 예수의 사랑과 그 진리가 자매의 영과 육 , 또 그 생활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될 때 자매는 ‘ 아 , 이 경계가 천국이었던가 ’ 하여 자매 스스로 서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유정천 ( 有頂天 ) 이 되어 환희의 대 ( 臺 ) 위에서 춤을 추고 감사의 동산에서 노래하리다 . 자매여 , 자매는 그대의 심령을 상하도록 너무 영리하였소이다 . 그대의 심령을 죄에 물들이도록 너무 명민 ( 明敏 ) 하였소이다 . 그대는 그대의 영을 비애의 속에 집어 넣도록 너무 묘계백출 ( 妙計百出 ) 이요 , 수완기발 ( 手腕奇拔 ) 이었소이다 . 자매의 가련한 상태를 시인할 수 있다면 이는 오로지 자매의 지식 수완 , 또 그 영리 , 그 모든 자가 ( 自家 ) 자랑이 그 큰 원인을 이루었던 것을 승인치 아니치 못하리다.

고로 그런 자기의 심령을 구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런 지식과 정신을 다 버리고 그런 설계와 수완도 다 버리고 그런 물질과 인물에서 온전히 초월하고 주 예수의 내용 그것으로 나의 내용을 삼고 주의 지식으로 나의 지식을 삼고 주의 사랑과 진리로 나의 생활과 방법과 수단을 삼아 전체가 그로 말미암아서 움직이고 조용하며 살고 죽어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하기 위한 노력 , 이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 신앙은 인간의 본업이었나이다 . 이를 부업같이 취급하여 성취할 수 있는 바 아니올시다 . 부업에 실패하여도 본업에만 성공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승리를 얻은 자이외다 . 이 신앙에 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기도 ,  그것이외다 . 그러므로 ‘ 신앙 곧 기도 , 기도 곧 신앙 ’ 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 신앙 곧 생활 , 기도 곧 생활 ’ 이라고도 불려 옳은 것이외다 . 우리의 생활은 곧 신앙이라야 합니다 . 곧 기도생활 , 여기에 신앙생활의 의미는 있는 것이외다 . ‘ 생각보다 기도 , 연구보다 신앙 !’ 이것을 ‘ 모토 ’ 로 하고 그냥 믿을 것이외다 . 믿고 부르짖는 거기에 영적 광명은 나타나는 것이요 , 심적 해방은 성취되는  것이외다.

 

11 월 12 일 

신계에서 용도

 

 

 

   길 잃은 이 몸 (283)

1.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나 구원 못 받았네

 

    오 사랑의 구주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2. 미련한 이 내 인생은 주의 사랑을 모르고 

    그 뜨거운 사막 가운데 늘 헤매고 다녔네

 

3. 홍포를 입은 구주님 가시 면류관 쓰시고 

    저 십자가에 높이 달리사 그 아픔을 참았네

 

4. 죄악에 죽을 인생을 심히 불쌍히 여기사 

    주 천당의 영광 버리고 이 누지 ( 陋地 ) 에 오셨나

 

   주 너를 지킨다 (274)

1.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킨다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품는다

 

    주 너를 지킨다 아무 때나 어디든지

    주 너를 지킨다 늘 지켜 주신다

 

2. 어려워 낙심될 때 주 너를 지킨다 

    슬픈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킨다 

 

3. 네 쓸 것 미리 아시어 주 너를 돕는다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돕는다

 

4. 괴로운 시험 당하나 주 너를 지킨다 

    주님의 품에 거하라 그 사랑의 품에

 

 

 

 변종호 씨에게

 

오래간만이로다 . 오락가락 심신이 어지간히 분망 ( 奔忙 ) 하였을지라 . 형제의 마음은 정향 ( 定向 ) 이 없이 움직이는가 하여 자못 염려 깊노라 . 형제의 푯대는 오직 주님인 것을 잊으면 그대는 가장 가련한 자일지라 . 무엇을 하든지 , 어디를 가든지 , 주 그대의 영에 앉게 하라 . 그리하여 주와 더불어 모든 일을 의논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스러울 것인고 . 범사에 참고 견디라 . 주 그대를 보호하사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기를 바라노라.

○○은 그간 봄부터 폐병으로 와석부동 ( 臥席不動 ) 이더니 8 월에 나 원산 다녀온 후로부터 기거를 자유로 하고 , 심신이 건전하여 날마다 더 깊은 신앙의 묘경 ( 妙境 ) 으로 진입하니 위희만천 ( 慰喜萬千 ) 이로다 신영리 집은 다시 현저동으로 옮겼다고 어제 영철 ( 永哲 ) 편지에 …… .

 

11 월 16 일 

신계읍교회 시무언

 

 

 

 옥어진 씨에게

 

사랑하는 자매여 , 세상이 다 자매를 버리고 각각 제 길로 간다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자매가 극도의 고독에 빠진다 할지라도 가련한 자매여 , 주님이 자매와 같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 , 자매를 완전히 소유하려고 세상에 붙어 있던 줄을 다 끊어 버리려는 성의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시나이까 . 부모나 형제나 친구 사랑으로는 도저히 가련한 심령이 생명의 광휘 ( 光輝 ) 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 오직 주님의 사랑 . 자기가 버림을 당하며 자기 편의 불리를 보면서도 그래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그 천적애 ( 天的愛 ), 그 무한애 ( 無限愛 ), 그 성애 ( 聖愛 )에 목욕하여서만 가련한 인간의 심령은 생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 이 성애를 완전히 체득할 자 , 저는 속된 인간애의 그물에서 벗어져 나온 자 , 혹은 거기서 버림을 당한 자가 아니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 주는 당신의 무한애의 궁전에 안식하시려고 눈물을 흘리시고 피땀을 쏟으신 것입니다. 지적애 ( 地的愛 ), 인간애 ( 人間愛 ), 조건부적애 ( 條件附的愛 ) 에서 완전히 독립한 자가 아니면 천적애 , 성애 , 무한애에 목욕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 중 특히 인간애의 실패를 본 자 중에는 용감하게 그 속된 세상에서 해방을 받으려고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나서 성애의 세계로 돌진하는 자도 있었고 또는 그런 신앙의 용력이 없는 자들 중에는 불가불 세상에게 버림을 받게 될 때 , 주 ( 主 ) 그 기회를 이용하사 저를 건지시게 되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 곧 세상을 자기가 버리고 성애에 돌진하는 자도 있었고 , 세상의 저버림을 당하여 성애를 득할 자도 있었습니다 . 오 친애하는 자매여 , 주는 자매를 크게 사랑하시나이다 . 

성애의 세상에 살게 하시려고 자매을 위하여는 비상한 노력을 경주하고 계시나이다 . 곧 자매가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게도 하셨고, 끊어버릴 수 없는 것은 끊어버림을 당하게도 만드신 일입니다 . 오 친애하는 자매여 , 성의의 내용을 자매가 알지 못하여 근심함이 있을 것이나 그러나 전체가 자매를 사랑하사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 성애에 근거된 주의 계획적 수단인 것만을 깊이 음미하소서 . 그러면 모든 멸시와 비난이 도리어 주와 친히 되어 그 성애의 세계에 영생함에 있어서 일조가 됨을 발견함이 있으리다 . 그때에는 원망으로나 불평으로 이것을 불가부당 ( 不可不當 ) 할 것이 아니라 , 감사와 소망과 인내와 겸비로써 감수하게 될 것입니다 . 이 말은 그리 값있는 말이 아니올시다 . 흰 종이와 한가지로 한 번 읽고 내 버리소서 . 그리고 주의 성애의 세계로 돌진하소서 . 모든 거리끼는 것을 용감히 벗어 버리고.

오 자매여 , 그대의 가련함을 나는 심중으로 엿보고 자매와 같이 애태우고 근심하나이다 . 형제에게서 버림을 받고 친구에게서 버림을 받고 또 누구누구 세상 모든 것에서 버림을 받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된 자매의 정지를 아는 내가 어찌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오리까.

그러나 나는 큰 위로와 큰 힘이 반드시 자매에게 아침 빛과 같이 나타날 날이 멀지 않은 것을 바라보고 기뻐함이니 , 그것은 자매가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버림을 받게 되는 그날 , 곧 성애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가는 그날일 것이니 이날은 자매의 앞에 있어 멀지 않사외다 . 충분히 기뻐하소서 . 버림을 당하는 것을 . 주 더욱 자매를 사랑하시나이다 .

 

11 월

 

 

 

『 신앙생활 』 11 월호

 

예수보다 더 귀한 존재는 나에게 있지 아니합니다 . 나의 이름이나 소유나 나의 고난이나 평안이 다 예수를 위하여서만 필요하였고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죽거나 살거나 내 평생 사랑할 이는 예수뿐입니다.

어찌하여 예수를 사랑하느냐 ? 나는 예수를 믿어 병 나음을 얻었고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 나는 중한 폐병으로 절망의 죽음만 기다리다가 기도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무서운 난치병이 나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입니다 . 남들이야 이적이 있다든지 , 없다든지 , 잘 믿는다든지 , 못 믿는다든지 , 나는 이적을 믿습니다 . 나는 또한 극빈한 가정에 태어나서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스러움도 맛보았고 이 시대를 만나 감옥살이도 해보는 동안에 갖은 고생을 맛보았습니다 .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고통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기었습니다.

또한 나는 일의 실패와 성문제와 인생문제의 번민에 접하여 극도의 고민을 견디지 못하여 한 때에는 자살하려고까지 한 일이 있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예수를 믿어 이 모든 인간고를 해결하였습니다 . 그런즉 나의 하나님은 나의 육신도 구원하시고 내 마음과 영혼도 구원하시었습니다 . 나의 생활 전체를 통하여 예수는 나의 구주입니다 . 그래서 나는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내가 지금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폐병을 고쳐주었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함도 아니요 , 모든 슬픈 문제를 해결하여 주었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함도 아니요 , 또한 나를 천당에 보내 주시겠는 고로 예수를 사랑함도 아니라 , 아무 조건도 없이 그저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유하든지 , 평안하든지 , 칭찬을 받든지 , 우리 생활에 예수가 없으면 이는 지옥 생활이요 , 병 나든지 , 고생하든지 , 핍박을 당하더라도 우리 생활에 예수만이 함께 하시면 이는 천국생활입니다 .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곧 천국의 기쁨입니다 .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가 또 예수를 사랑한다 . 이 사랑은 가치 판단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무조건으로 사랑하시니 우리도 또한 무조건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 , 순전한 사랑 !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예수의 완전한 사랑 ! 하늘의 사랑 !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사랑할까 ? 우리 신자는 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 번번히 주리시던 주님을 생각하여야겠고 , 따스한 방에 누울 때 머리 둘 곳도 없으시던 주님을 기억해야 하겠으며 ,  좋은 의복을 얻을 때 수의 한 벌도 없이 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시던 것을 생각지 않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신자들이여 , 우리 주님의 예전 생활을 기억하여 받은 음식상과 입은 의복에 눈물 떨어질 때가 있지 아니한가 . 우리는 이제 의복과 음식을 주님께 드리고 싶으나 , ‘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있지 않다 ( 子欲養而親不在 )’ 란 말과 같이 주님 이미 하늘에 오르셨음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이올시다 . 그리고 또 이런 것들은 주님에게 직접 필요치도 아니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드리고 싶은 그 의복을 불쌍한 형제에게 나눠주고 주님께 대접하고 싶은 그 음식을 거지에게 나눠 먹이어 이로써 예수를 사랑하고 싶은 애끓는 정을 표하는 것이올시다.

예수께서 일찍이 가르치시기를 “ 너희들이 나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는 것은 곧 나에게 행함이니라 ” 고 하셨습니다 . 

예수를 사랑하려면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을 섬길 것입니다 . 형제를 사랑치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열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사랑하라 . 내가 선을 행한다 , 의를 행한다 하는 계획조차 없이 사랑하라 .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사랑하라 . 이런 형제의 사랑이야말로 참 봉사 , 하늘의 사랑일지니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이 하늘의 사랑을 실행하여야겠습니다 .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신 ( 神 ) 이요 , 그리스도의 신은 곧 사랑의 신이올시다 . 그러면 성령은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또한 사랑의 신이심으로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천적애를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 “ 성령이 오시면 사람을 가르치시리라” 고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타고나길 인간들은 사랑의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 오직 그리스도의 신이 내 속에 오셔야만 사람이 참된 사랑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간판으로의 사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으로의 사랑에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선행 ( 朱善行 ) 씨에게 23)

 

자매여 나를 위하여 우는 자매여 

어서 그 눈물을 걷으려무나

그리고 너와 너의 동포를 위하여 

크게 울어라 통곡 하여라

 

오 나의 자매여 나의 사랑하는 자여 

나 위하여 울기를 그만 그치라

그리고 너희 성자와 성녀의 울음 모아 

울고 또 울고 울기 다하여

청산의 고골 ( 枯骨 ) 들을 적시어 보렴

울어라 성자 ( 聖子 ) 야 울어라 성녀 ( 聖女 ) 야 

겟세마네는 어디 있어 나의 피눈물을 기다리누

 

차고치고 침 뱉었던 가야바의 아문은 어디 있으며

가시관에 홍포 ( 紅布 ) 를 입히던 빌라도의 법정은 어디 있어 

나를 기다리는고

 

엎어지며 쓰러지며 십자가를 등에 지고 

멸시천대 비소 중에 우리 주님 걸어가던 

오 너 예루살렘의 거리야

너는 어디서 또 나를 기다리고 있느냐 

때가 되거든 외쳐 부르라 

그 길 밟을 내 여기 있으니

 

성자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고

그의 선혈을 마시던 오 너 골고다여 

너는 어디서 또 나를 기다리느냐 

수 많은 성자의 피를 마시고도 

아직도 네 배는 차지 않았는가

 

오 나를 위하여 홍포를 깁는 자여 어디 있는가 

가시관을 엮는 자여 어디 있는가 

지었거든 가져다 나를 입히라

우리 주님 입으셨던 그 홍포이니 

엮었거든 가져다 내게 씌우라 

우리 주님 쓰시던 그것이니

 

아 나의 골고다는 가까웠는데 

그래도 아직 보이지 않누나 

제사장의 무리여 나를 차거라

빌라도의 무리여 내게 채찍을 하여라

그리하여 어서 속히 나로 하여금 

나의 완성을 선언케 하라

 

내 살과 내 피를 마신 후에야

내가 어디로부터 왔었는지 너희가 알리라 

나를 땅 위에 보내신 자는 

오직 내 아버지이심으로 

그때에야 너희가 알지니라

 

“ 오 나는 다 이루었다 ”

어서 이날이 올지어다

이는 나의 피가 땅에 떨어지는 

그 거룩한 골고다의 날일지로다

주의 음성 들은 이 몸 지금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누나 

주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나의 자취 

어느 지경까지라도 주의 뒤를 따라가누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너와 나의 죄 위하여 

피땀 흘려 비시던 주의 뒤를 따라가누나 

밝은 해도 빛을 잃은 십자가의 중한 고초 

견디시고 피를 흘린 주의 뒤를 따라가누나

 

가자 가자 어서 가 나의 갈 길 바쁘구나 

배고파서 이삭 따던 그 빈들은 어디이며 

눈물 뿌려 비시던 겟세마네 어디던고 

아 주림은 어느 황야에서 나를 기다리며 

지금은 울 때다 크게 울 때다

먹지 말고 울어라 자지 말고 울어라 

크고 큰 환난의 날이 가까웠나니

너희 일은 오직 울음에 있을 따름이다

 

시편 57 편 3 편 , 4 편을 읽으소서 .

겨울

 

23) 주선행 : 안주교회 집사 . 예수교회 복음사 . 6 • 25 사변 순교

 

 

 

 김경숙 씨에게 

 

경숙 자매에게

주는 언제나 미쁘시고 신실하신지라 . 그를 바라고 의지하는 자 , 사랑과 은혜를 잃지 아니하리로다 . 우리가 눈물로 불러 아뢸 때 귀를 기울이시고 , 머리를 들어 찾을 때에 사랑의 손을 주시는 이시로다.

주 외에 나를 알 자가 어디 있으며 주 외에 나를 긍휼히 여길 자가 어디 있으리요 . 오직 주님만이 나의 위로요 , 나의 힘이요 , 또 나의 기쁨이로다 . 주가 있어 나의 존재가 의미 있고 주가 있어 나의 먹고 잠도 뜻이 있었도다 . 주께서 나의 중심에 계심에 혹은 눈물로 , 혹은 노래로 , 나의 생활을 향기롭게 하고 또 윤택하게 하는도다.

주 계심에 먹어 좋았고 또 굶주려 슬픔도 없었구나 . 옷을 잘 입었다고 하여 그것이 나의 자랑도 아니요 , 남루를 걸쳤다 하여 그것이 또 나를 부끄럽게 못하누나.

남이 나를 칭찬한다 하여 흥이 날 것도 없고 남이 나를 욕한다 하여 그것이 나를 분하게도 못하누나 . 다만 주님 계시어 만사가 은혜요 , 기쁨이로다 . 주님 안 계시어 모든 일이 저주요 , 슬픔일 것이니 내 생활의 맛이 오직 주님께만 있었도다.

오 , 나의 생의 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시여 ,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 병들든지 성하든지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 욕을 받거나 칭찬을 듣거나 주님만 계셔주시옵소서 . 고생스럽거나 편안하거나 주님만 계셔 주시옵소서 . 살거나 죽거나 주님만 계셔주시옵소서 .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의미 있고 생명이 있겠나이다.

세상으로 더불어 웃는 생활보다 주님으로 더불어 우는 생활이 , 그 눈물이 오히려 맛이 있나이다 . 세상으로 더불어 잘 먹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있어 굶고 주림이 오히려 저희에게 복이 되옵고.

세상과 친하여 비단 옷에 싸여 사는 것보다 주님과 같이 베옷과 헌 옷을 입어 오히려 이것이 영광이로소이다.

오 주여 , 당신만이 나의 구주이시니 주 외에 달리 무엇을 구하오리까 . 주님 한 분을 얻어서 나는 모든 것을 얻었사오니 주님은 곧 나의 총재산이시며 모든 것의 모든 것이로소이다 . 아멘 .

 

주는 사랑이시니 자매와 영원히 같이하시리로다 . 주를 더욱 친밀히 영접하소서 . 하늘이 기이한 영광으로 입히시리다 . 자매의 마음이 주를 사모하여 목마른 사슴과 같이 주의 사랑의 생수를 주야로 찾아 마시고 마실지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로다 . 아멘 .

 

11 월 24 일 

양주군 월계리

이용도

 

 

 

 김인서 씨에게

 

무모무지 ( 無謀無知 ) 를 나에게서 발견한 형의 정견 ( 正見 ) 과 달관 ( 達觀 ) 에 접하여 소제 ( 小弟 ) 배운 바 적지 않소이다 . 보지 못하는 어두움이 여기 있었으니 보는 밝음이 거기 있기를 원하나이다 . 그리고 나는 고요히 요한복음 10 장 39~40 절이 활동사진의 자막같이 나의 영 위로 얼른 지나감에 접 ( 接 ) 하나이다 . 나의 입을 향하여 나의 영은 침상침묵 ( 沈想沈默 ) 하고 속삭였나이다 . 그리고 다시 ‘ 시무언 ’( 是無言 ) 을 부르짖었나이다 .

오 나의 입술아 , 너는 삼가 자중하라 . 가벼이 사람을 이름 짓지 말자 . 주 일찍이 누구를 헤아려 이름 짓지 아니 하였느니라 . 오 나의 혼아 , 네 누구인데 사람을 판단하느냐 . 완전한 판단자는 다만 한 분이 계실 뿐이니라 . “ 나는 죄인이라 정죄하려 온 자가 아니요 붙들어 구원하려고 왔었고 또 올 것이라 .” 저희를 정죄하고 또 의롭다 할 것이요 , 하나님이 최후의 판결을 내리시리니 , 오 나의 영아 , 너는 나로 더불어 잠잠하자 . 인간의 심판은 작시금비 ( 昨是今非 ) 요 , 금시명비 ( 今是明非 ) 니 , 너는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를 빼앗지 말지니라 . 오 주여 , 당신은 계시옵나이다 . 아멘 . 

이사야서 42 장 18~35

 

11 월 23 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월계리교회

용도( 容道 )

 

 

 

 김인서 씨에게

 

형이 나를 사랑하는 줄을 소제도 모르는 바 아니외다 . 나를 사랑하는 자 중에 가장 정당히 사랑하는 자 중의 하나임을 내가 압니다.

형이 나를 사랑함은 나의 작전계획의 묘 ( 妙 ) 에 있는 것도 아니요 , 전법 ( 戰法 ) 의 기 ( 技 ) 나 승산의 모 ( 謀 ) 등에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니 , 소제는 본래 어떤 작전계획에서부터 움직인 것도 아니요 , 어떠한 승산을 가지고 이렇다 할 전법에서 출발하였던 것도 아님을 오형 ( 吾兄 ) 은 잘 아시리이다 . 

나는 무모무법 ( 無謀無法 ) 의 한 노예이었으니 , 다만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만이 나의 일일 뿐이었나이다 . 나는 과거도 그러하였거니와 현재도 그러하고 또 미래에 있어서도 별 도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 사실이올시다 . 그런고로 실상 일하는 자는 위에 있는 자요 , 나는 그의 종일 뿐이외다 .

나에게는 내년도 , 내일도 다 없고 늘 오늘뿐인 것 같으외다 . 세상 법대로 말하자면 소제는 변통 없는 못난이 일 것이외다 . 나는 되기를 그런 일을 감당하게 되지 못하는가 하옵니다.

형은 혹 형의 모계 ( 謀計 ) 대로 진행하여 왔다고 할까 , 모르거니와 나는 그저 아무 계책이 없이 그저 그날그날 순간순간의 지시에 따라 왔을 뿐이니 , 금년의 일은 작년에 꿈도 못 꾸던 일이요 , 금일의 일은 어제는 마음먹지도 못하던 사건이곤 하였나이다 . 주님의 계획은 벌써 있었고 승산은 벌써 위에 있었나이다 . 그것의 전체를 알고 나서 비로소 출전할 내가 못 됩니다 . 모든 것이 다 그의 전법과 묘계 ( 妙計 ) 에서 되지 않는 것이 없는 줄 믿고 그냥 그날그날 시키는 대로 나는 그에게 순종할 뿐이외다 . 이번 모든 일도 다 주의 전법 중에 들지 아님이 없는 줄 아나이다 . 어떤 때 혹 후퇴하고 실기하고 패전하는 것 같으나 결코 아니외다 . 후퇴 같으나 

전진이요 , 패배 같으나 승리이었나이다.

원컨대 , 오형 ( 吾兄 ) 은 안심하소서 . 작년에 일하신 주님이 금년에 일하시었고 금년에 일하신 주님이 또 내년에 일하실 것이외다. 내일 염려는 다 주께 맡기소서 . 오늘 염려로서 오늘에 족한 것이었나이다 .

 

제 1 신을 보고 .

소제의 무모 ( 無謀 ) 와 또 암매 ( 暗昧 ) 를 들어 충고하심에 , 두려운 마음으로 나의 가슴에 손을 대고 “ 오 주여 , 나는 과연 무모한 하졸 ( 下拙 ) 이요 , 암매한 우부 ( 愚夫 ) 로소이다 ” 하니 , 홀연 위로부터 “ 소자야 , 안심하라 ” 가 들리어 조금 두렵던 마음은 안정 [ 靜 ] 을 얻었나이다 .

오형 ( 吾兄 ), 나는 나의 무모와 또 어두움에 눈이 뜬지 오래였습니다 . 언제든지 나는 그런 자임을 내가 알아왔습니다 . 그러나 그것은 나 자신이나 혹 사람이 고쳐주지를 못하고 , 늘 주 나에게 손을 대어 가르치셨나이다 . 이제 주께서 오형을 선생 삼아 소제를 가르치심이 있기를 바래 마지 않나이다. 

“ 하늘에 계신 주님이 전체요 ,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가장 가까운 주님이었나이다 ” 라고 하신  형의 이 말은 진리외다 . 나의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또 나의 심중에 계셨나이다 . 나의 심중에 내재 ( 內在 ) 하사 진리가 되고 말씀이 되고 판단이 되고 혹 예언이 되었나이다 . 고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내 말로 듣지 않고 주님의 말씀으로 받았나이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은 또 각 사람의 심중에 계신 주님이었나이다 . 남자의 속에도 내재하시고 또 여자의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 구름 속에도 당나귀 속에도 내재하셨나이다 . 나는 그때 그 당나귀가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책망하고 나를 권고한다면 물론 나는 그 앞에 엎드려 “ 오 주여 , 나를 가르치시옵소서 ” 하겠나이다 .

그리한다고 하여 날보고 저놈은 당나귀 앞에 엎드려 당나귀 보고 주님이라고 한다고 욕할 자가 있을 것이나 , 나의 주님은 곧 그 말씀 곧 그 진리임을 나는 앎에 나는 그 말씀의 본체를 주님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 나는 아이 속에서도 주님을 발견하고 혹 도적과 음부의 속에서도 주님을 발견하였으니 주는 그들 중에서도 내재하시사 진리를 언표 ( 言表 ) 할 수 있었음이외다 . 그렇지만 또 목사의 입에서 , 선생의 입에서 , 주의 사도의 입에서도 마귀를 발견하였으니 이는 마귀도 그 중에 내재할 수 있었음이외다.

원래 인간에게는 진리가 없는지라 . 있다면 , 누구에게든지 그것은 주에게서 나온 것일지라 . 나는 ‘ 스 씨 ’(Swedenborg 氏 ) 의 것이라 하여 그냥 버리는 자도 아니요 , ‘ 내촌 씨 ’( 內村鑑三 氏 ) 의 것이라 하여 그냥 침 뱉는 자는 아니요 , 여자의 것이라 하여 다 천시하지도 못하나이다 . 진리면 나는 다 주의 것으로 받아왔나이다.

 

1932 년 11 월 24 일 

양주 제 4 일 한 형제의 편지를 받고

 

 

 

 김인서 씨에게

 

나는 그리스도를 얻어 나의 우준 ( 愚蠢 ) 함과 진리에 어두움을 알되 , 너희는 그리스도를 얻어 너희가 스스로 지혜로움과 진리에 밝은 자임을 찾았구나.

“ 형제여 , 스스로 속지 말지어다 . 너희들이 진실로 지혜가 있는 자가 되려거든 우준한 자가 되어라 ”( 바울 ). 너희에게서 우준함을 발견치 못할 때까지 너희는 그리스도 앞에 머리를 수그릴 수 없을지라 . 왜 그런고 하니 너희 스스로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 슬프다 , 인간들이여 . 너희 중에 지혜가 있다 하는 자 , 그 누구냐 . 기록하였으되 “ 내가 지혜 있는 사람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사람의 총명을 폐하리라 ” 하였으니 너희 중에 지혜 있는 자가 누구며 , 학자가 어디 있으며 , 변사 ( 辯士 ) 가 어디 있느냐 . 너희의 지혜라고 하는 것이 곧 우둔이 아니었느냐 . “ 대개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 ” 이라 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승인하느냐 . 성경에 일렀으되 ( 욥 ) “ 지혜 있다 하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 꾀에 빠지게 하시는 주라 ” 하셨고 또 일렀으되 “ 주께서 지혜가 있다 하는 자의 생각을 헛된 것으로 아신다 ” 하셨으니 너희들은 삼가 너희의 인간적 지혜와 너희의 좁은 생각과 그 꾀에 빠지지 말라 . 대개 하나님의 신비하신 성의의 일은 인간들이 자기 지혜로는 알지 못하는 고로 세상이 미련하다 하는 자로 당신의 사랑과 권능을 나타내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었느니라 . 일찍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 참된 진리를 권능으로 증거한 천적 ( 天的 ) 진리의 사도 중에 너희 인간들이 ‘ 미련한 놈 ’, ‘ 어리석은 놈 ’, ‘ 백성을 미혹하는 놈 ’, 그 외 여러 가지 악명을 붙여 놓지 않았던 자가 어디 있었느냐 . 그러나 하나님과 저를 아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 미련하다 ’ 고 , ‘ 어리석다’ 고 지목 받는 그 일은 곧 하나님의 권능이요 , 진리이어서 저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었느니라 . 그런고로 진리란 받을 수 있는 자에게 한하여서만 생명이 되는 것이요 , 받지 못할 자에게 있어서는 미련함이 되고 또 거리끼는 돌이 되는 것이니라 . 태양의 빛과 열은 어떤 것에게는 접하여 성장발달을 이루어주되 어떤 것에게는 부패사멸 ( 腐敗死滅 ) 을 이룸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신이신 고로 너희보다 신비로우시고 오묘하시니라 . 하나님의 일 중에는 일찍이 너희 인간들의 두뇌로 생각도 못하여 본 일을 가지고 계시며 너희 귀로 듣지도 못하고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던 일을 가지고 신비하신 경륜 중에서 일하고 계시었느니라 . 이 하나님의 신의 일은 신령한 성신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육에 죽지 않고 혈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가 도리어 미련하게 여김이요 , 또 깨닫지도 못할지니 , 이러한 일은 사랑의 성신을 받아서만 분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니라 . 생명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분별하고 또 자기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자탄하고 참회하지만 , 혈육에 속한 자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그 우준함으로 진비 ( 眞非 ) 를 판단치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교만과 자긍 가운데 숨어있는 고로 패망할 자기를 발견치 못하느니라.

오 , ‘ 지혜 있다 ’ 하는 자여 , ‘ 모든 것을 잃었다 ’ 하여 벌써 경솔한 단 안을 내리어 놓고 있는 자여 , 너는 벌써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웠고 주보다 더 기묘하였구나 ! 아 , 슬프다 . 누가 주의 마음을 앎으로 그의 뜻을 가르치며 그의 일을 판단하겠느냐 . 다만 주의 신이 있어 우리 중에서 행할 따름이니라.

 

형제들아 , 내가 너희에게 말할 때에 영에 속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같이 할 수 없으며 혈육에 속한 자에게 말한 것같이 하였으니 , 이는 너희가 주안에 있어도 영의 일에 대하여는 어린 아이와 같음이니라 . 내가 지금까지는 너희를 젖으로 먹이었고 밥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젖도 겨우 담당하였음이니라 . 그러나 세상은 너희가 먹어 피와 살 즉 , 생명을 얻을 수 있던 그 젖마저도 소화하지 못해서 뱃속이 불편하게 들끓다가 다 설사를 하였던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 앞에 굳은 음식물 [ 食物 ] 이 제공되었구나 . 이것을 어 [ 咀嚼 ] 소화시킬 수 있었던들 너희는 이 진미로 새 생명의 피를 얻어 너희 영은 더 건전하고 안온하여 하늘의 활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을 …… . 애석하다 . 물론 그 가운데 포함된 찌꺼기와 살되지 못할 부분은 한편으로 고요히 소문 날 사이 없이 ( 배탈나서 설사하는 자와 같이 소란을 피우지 않고도 ) 고요히 너희가 배설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의 영적 소화기가 든든하였던들 가시와 같은 마른 북어 쪽과 마른 나무 개비 같은 산채라도 배탈 없이 소화시켰을 것이니라 . 그러나 벌써 너희는 탈난 자로구나 . 설사를 하여 얻었던 핏방울과 살점까지 쪽 빠지고 다시 빠들빠들 샛노랗게 말라 빠져버리고 대신에 불평과 짜증과 원망만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있으니 어떻게 너희들을 다시 회복하게 한다는 말이냐 . 원상을 회복하는 노력이 있고도 또 완성에까지 갈 제 3 단에 오르게 될 때에는 다시 그런 시련에 접하여 승리를 얻지 않고는 아니 될 것이니 , 아 , 너희의 앞 길이 아득하구나.

너희가 지금도 혈육에 속한 자로다 . 능욕 ( 凌辱 ), 포학 ( 暴虐 ), 우어 ( 愚語 ), 자긍 ( 自矜 ), 분쟁 ( 紛爭 ), 결당 ( 結黨 ) 이 있으니 어찌 사욕에 속한 세인과 같이 행함이 아니리오 ( 바울 ).

 

너희들은 나의 호언 ( 豪言 ) 을 잠깐 용납하여 바울 사도의 말로써 나의 말을 대신케 하라.

“ 너희들은 마땅히 나를 주의 종이요 ,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내가 너희에게나 세인에게 논단을 받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길 뿐더러 그것으로써 나의 심령 곧 하나님의 성전을 소란케 하여 주를 불안케 하기를 원치 않노라 . 너희 세인들은 나를 놓고 크게 논란하는구나 . 그러나 나에게는 그 논란이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 내가 자책할 것을 깨닫지 못하나 그렇다고 하여 어찌 내가 의롭다 함을 얻으리오 . 다만 나의 시비를 정당히 논단하실 이는 오직 주 한 분이 계실 따름이니라.

그런고로 때가 이르기까지는 아무 일도 논단하지 말고 다만 주께서 강림하시기를 기다리라 . 저가 어두운 가운데 숨긴 것을 밝히 비추어보게 하실 것이요 , 나를 논단하는 너희들과 너희들에게 논단을 받는 나의 마음을 다 들어 내시리니 , 그때에야 각 사람의 옳고 그름이 분간될지니라 .

내가 헤아리건대 ,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된 나를 모든 사람 중의 끝에 두시고 죽이기로 작정하여 대하시매 나와 나에게 속한 자는 모든 사람에게 구경거리요 , 비방거리가 되었노라 .

나는 주로 인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었고 너희는 기독교인이 되어 지혜로운 자가 되었구나 . 나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였구나 . 너희는 고상하였고 나는 비천에 떨어졌구나 . 이때까지 나는 주리고 목마르고 남루 ( 襤褸 ) 를 입고 매를 맞으며 거처도 없고 후욕 ( ?辱 ) 을 당할 때엔 감사를 올리고 핍박을 당할 때엔 참고 묵묵함으로 주를 생각하였고 멸시와 저주를 받을 때엔 눈물로써 저들을 위하여 빌고 말이 없었노라 . 내가 지금까지는 세상에 있어 먼지와 같이 천하게 밟히었고 돌과 같이 멸시를 받아 여기 저기서 버림을 당하였느니라 . 그러나 내가 알기는 나의 심한 핍박의 날이 아직도 지난 때보다 더 가혹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나니 내가 다만 주만 (Only) 믿고 의지하고 골고다의 통로를 향하여 돌진하리로다.

 

형제들아 , 너희들이 일찍이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일을 보았느냐 . 나의 눈물을 통하여 그의 눈물을 보았으며 나의 이마와 등에 흘러 떨어지는 피땀을 보아 그리스도의 그것을 더 깨달을 수 있었느냐 . 나의 불면불휴 ( 不眠不休 ) 의 노력을 보아 그리스도의 수고를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느냐. 나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의 성훈 ( 聖訓 ) 에 접할 수 있었느냐 . 나를 보아 . 특히 내가 오해와 핍박과 멸시를 당함을 보아 자고로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심을 받았던 선지자와 사도들의 생활과 그에 대한 세인의 태도와 교권자 , 유식자들의 태도를 알 수 있었느냐 ? 나는 과거에 왔던 그들과 앞으로 올 선지자와 성자 혹은 진리의 사도의 작은 표본이었느니라.

너희가 일찍이 너희 교회에서 너희를 가르치던 인도자들에게서 배우지 못하였던 진리를 나에게 접하여 새로 얻은 바 있느냐 ? 또 너희가 너희 목자들에게서 접해 보지 못하던 생명의 움직임을 나에게서 보고 너희의 영이 생명의 주사를 맞아 열렬한 눈물 , 기도 , 환희에 넘치는 감사를 노래하며 큰 힘과 용기의 체험을 가져보았느냐 ? 못 가져 보았느냐 ? 너희는 그것을 마귀의 일로 알았었느냐. 이단의 일로 알았느냐 . ○○할 물건들의 말과 같이 최면술객의 혹세사민 ( 惑世斯民 ) 인 줄 알았더냐 . 너희는 너희의 영의 지나온 자취를 찾아보아 너희를 판단하라.

내가 너희의 전에 말과 같이 진리의 사도냐 ? 주의 종이냐 ? 그렇다고 하면 , 이는 허언이 아니요 , 망발이 아니로다 . 너희가 과거에 나의 말을 듣고 생명에 접한 자이면 , 이제도 나의 말을 듣고 생명을 얻으라 . 나의 말은 진리니 , 이는 나의 말이 아니요 , 곧 위에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었느니라 . 나는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었으니 , 누가 나를 가르쳤느냐 . 나에게 주께서 어떻게 직접 역사하신 것과 또 어떠한 기묘로써 보이시고 일러주신 것의 일부분만이라도 너희가 접할 수 있었던들 함부로 나를 논란할 수도 없었을 것이요 , 무죄한 사람을 정죄할 수 없었을 것이니라 . 너희는 나의 자랑을 용납하라 . 그러나 나의 자랑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로다 . 예전에 나의 속에서 일하여 너희를 책망하고 권고하고 위로하고 가르쳤던 그 신은 아직도 나의 속에 살아 있어 여전히 일을 계속하고 있나니 너희는 겸비함으로 귀를 기울이라 . 성신이 하시는 말씀을 귀 있어 듣는 자는 들을지어다 .

내가 제풀에 질려 의기저상 ( 意氣沮喪 ) 되어 다시는 너희에게 나가지 못할 줄로 아는 , 스스로 교만한 자가 너희 중에 있을까 하노라 .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가 이 교만한 자들을 알아보려 하노니 , 이는 너희와 너희의 논란하는 그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 그의 심령상태 (사랑 ? 긍휼 ? 평화 ? 안정 ? 시기 ? 불안 ? 혈기 ? 방황 ? 공포 ?) 와 그 권능을 알아볼지라 . 대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 , 그리고 영의 일과 생명의 일은 말에 있지 않고 다만 권능에 있어 사람의 심령을 신생케 함이 있느니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 내가 너희를 때리고 부수며 책망할 지팡이를 가지고 가랴 ?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마음을 안위하고 긍휼이 여길 사랑의 눈물과 불타는 기도의 간절함을 가지고 가랴?

내가 진실로 몸으로는 너희에게 있지 아니하나 , 영으로는 어느 때나 너희의 위에 있어 눈물로 혹은 사랑의 말로 , 진리의 설교로 너희의 가련한 영을 싸고돌리라.

 

11 월 28 일 ( 월 ) 

양주 ( 楊州 ) 로부터 귀경하여 평양에서 온 편지를 접하고

 

 

 

 김인서 씨에게

 

< 전략 >

교회를 사랑하여 사람을 죽이는 모순 ! 열렬한 신자에게서 종종 나타나고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여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취할 바입니다.

형은 타인의 신앙경험을 비판하여 싸우는 자만 되고 스스로 영으로 사는 신앙의 인으로서는 실패할까 두려워하소서 . < 중략 >

혹은 주님께서 누구에게 이상한 이름을 지어 부쳐 놓아가지고 욕을 해낼 권세를 가지셨다고 할지라도 나는 아무도 논란하거나 욕할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고 혹은 주님이 악신접 ( 惡神接 ) 한 자들을 교회 안에서 책벌하고 죄인들 , 특히 사람에게 버림을 당한 자들을 쫓아내는 권세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나는 누가 악신접을 했다 하여 , 또는 내 경험과 다르다 하여 , 혹은 죄인으로서의 버림을 받았다 하여 그를 책벌하고 쫓아낼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 형 , 주께서 그리하시지 못하셨음이니다 .

나는 김성실파 ( 派 ) 도 아닌 동시에 인서파나 태용파도 아니요 , 마찬가지로 , 남주파나 , 준명파도 아니올시다 .

태용 ( 泰鎔 ) 이 세상에서 버림을 당할 때에 나의 마음이 그를 향하여 간절하였고 , 성실 ( 誠實 ) 이 버림을 당할 때도 나의 마음은 역시 그리하였고 , 내가 그들의 주의를 찬동해서가 아니요 …… , 그들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도 …… .

남주 ( 南柱 ), 준명 ( 俊明 ) 이가 축출과 멸시를 당하여 나는 또 그들에게 대한 나의 간절한 열정의 정도가 올라가는구려 . 나는 일전에 가서 저를 위로하고 왔습니다 . 그들은 한 점의 근심이나 공포가 없이 절대 안심 중에서 모든 것은 성의에 맡기고 경건하게 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래고 왔습니다 . 그들의 입에서 누구를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을 토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 나는 그들의 영적 안정상태가 퍽 존경되었습니다 . < 중략 >

그러나 혹 후일에 불행히 악신접하였다 하여 축출을 당하든지 죽어야 될 놈이라는 악명을 쓰고 피할 곳이 없거든 그때에는 나에게로 오시오 . 나는 그 때에는 형과 같이 욕을 먹으면서 형을 먹이고 입히기 원합니다 . < 중략 > 

나는 욕을 먹고 쫓겨남을 받아 마땅한 자로 압니다 . 욕을 먹고 축출을 당하는 자들을 애호 ( 愛護 ) 하고 싶으니깐 . 더욱이 예수의 이름으로 욕먹는 자라면.

성실 ( 誠實 ) 씨 , 태용 ( 泰鎔 ) 씨 , 국주 ( 國柱 ) 씨 , 교신 ( 敎臣 ) 씨 , 물론 그들을 내가 잘 알지 못해도 . 아마 그 중에는 성실 씨와 가장 친교가 깊다고 하겠지요 . 성실 씨의 간곡한 글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 나는 늘 배울 자로 있어서만 만족입니다 . 남을 가르치고 비판하려고 하여 벌써 마음의 불안을 느끼는 것을 보아 나는 영원히 학생심의 소유자로 있어 그것이 나의 최상의 축복인가 합니다 . < 중략 >

나는 원래 내가 누구를 인도할 무슨 능력이나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님을 이미 깨닫고 다만 성의에 끌려 그 사명에만 미성 ( 微誠 ) 의 순종을 드렸을 뿐입니다.

나는 내가 신앙에 살고 영에 삶이 나의 첫째 일이요 , 또 마지막 일입니다 . 남을 인도하거나 누구를 바르게 돌이키려 함은 원래 나의 소임이 못 됩니다 . 혹은 나의 신앙생활의 서광이 흘러 누구에게 보여져 그가 생명의 빛을 찾았다 하면 이는 주 나를 이용하셔 그를 건지심이요 , 주의 사랑이 그를 정도에 서게 하심이지 결코 나의 노력이나 공이 아님을 나는 압니다.

혹 나에게 있는 바가 진리라 하여 보여달라고 주께 간구하는 자에게는 주 나를 보내어 면담케 할 것이요 , 나를 비 ( 非 ) 진리라 , 악마라 하여 버리는 자에게는 내 변명하여가며 들어가서 그를 바르게 돌이켜보겠다는 그런 자력적 열심이나 사업욕을 나는 갖지 못한 자입니다.

 

 

12 월 17 일

 

 

 

 

 주선행 씨에게

 

의 ( 義 )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름같이 하는 자는 필경 배부를 것입니다 . 의와 진리의 한 조각을 얻어 즐겨 하는 자 , 저는 영의 사람이요 , 물질과 명예를 얻어 만족하는 자 , 저는 육의 사람이니라 . 의와 진리는 영원한 것으로 천국에 속한 것이요 , 물질과 명예는 땅 위에 속한 것으로 변하고 쇠하나니 . 의와 진리를 기뻐하는 자는 세상에서 벌써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천국을 경험하는 자요 , 물질을 탐하고 명예에 취한 자는 세상에서 벌써 지옥의 암흑과 사망을 맛보는 자니라.

대개 영의 사람은 진리를 그 생명의 첫 조건으로 하고 움직이는 자이매 가난하나 부하나 병약하거나 건강하거나 영광이 돌아오거나 치욕이 돌아오거나 그 중에서 하늘이 지시하시는 한 점의 진리를 찾아 저는 천국의 한 편을 소유한 자 같이 즐겨 날뛴다.

육의 사람은 그 생명의 절대 조건을 물질만으로 삼아 움직이는 자이매 자기의 욕심만을 만족시킬 어떠한 물질이나 명망을 얻지 못하면 초조하여 금방 그 환경을 지옥화하여 놓고 스스로 그 불평과 짜증의 불에 타나니 이는 곧 영원한 지옥의 한 부분이니라.

인간은 물질로써만은 만족할 수 없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을 풍부히 가지고 식( 食 ), 색 ( 色 ), 의 (衣) 의 전당 안에서 화려한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번민과 고통 , 불안과 불평 , 근심과 걱정 , 이 모든 것이 불꽃과 같이 피어올라 , 그 심령을 태우고 있음을 경험할지니 , 그때에 저는 “ 아이고 속탄다 ”, “ 아 , 속상한다 ”, “ 화가 나서 죽겠다 ” 하는 비통한 소리로 세상과 자기의 생명을 저주하며 하늘을 원망하기에 이르는 것이니라.

무엇으로 그 불을 끌 수가 있는가 . 영의 화재 ( 火災 ) 는 진리의 단비로써만 이를 끄고 그 심령의 상처는 영적 사랑의 기름으로써만 소생케 할 수 있느니라 . 이는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는 사실이니라 .

예수는 진리 ( 義 ) 와 사랑 ( 恩惠 ) 을 그 내용으로 하신 이시매 그 진리로 인간에게 역사하여 모든 죄악의 화염을 꺼버리고 그 사랑으로 역사하여 상한 심령을 신생케 하시었느니라.

 

진리는 강하여 초달 ( 楚撻 ) 같고 

사랑은 유 ( 柔 ) 하여 눈물 같으니라 . 

진리의 일은 쓴 약 같고

사랑의 일은 단 꿀 같으니라.

고로 진리의 사도는 세상을 책망하고 

사랑의 사도는 사람을 위로하느니라.

한 사도일지라도 진리의 신의 움직임을 받을 때 

저는 채찍같이 나타나고

사랑의 신의 움직임을 받을 때 

저는 눈물로서 나타나느니라.

 

하나님의 한 면은 의 ( 진리 ) 요 , 한 면은 사랑 ( 은혜 ) 이시매 인간에게 나타나실 때 혹시 어떤 때는 의로 , 어떤 자에게는 사랑으로 나타내시어 완전히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셨느니라 . 그러면 어떤 시대 어떤 사람에게는 공의로 나타나시고 또 어떤 시대 어떤 사람에게는 인애 ( 仁愛 ) 로 나타나시는고 ? 

곧 죄악이 관영한 시대와 교만해졌을 때에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와 선지자들을 보라 . 히브리 종교시대 말년에 아모스 , 호세아 , 예레미아 , 이사야 등을 보고 또 유대종교 말년에 세례 요한같이 엄격한 사도의 출현을 보라 . 저희들은 다 무서운 의의 사도요 , 진리의 사도였느니라 . 지금은 악한 시대요 , 교만한 인간이 전횡하는 시대이매 의의 사도 , 진리의 사도의 출현을 볼 때가 아닌가.

아 , 그러나 어찌하여 이 악한 세대를 책망하여 그 악을 알게 할 의의 사도가 나지 아니하며 교만한 인간을 초달 ( 楚撻 ) 하여 그 잘못을 회개케 할 진리의 사도가 나오지를 아니하는가.

이는 하나님의 현대 인간을 버리심인가 , 그렇지 않으면 인간들이 너무 교만하여 그의 권고를 저버림인가 . 채찍으로 임하사 죄를 책망하시고 그 죄악의 불을 꺼버리신 후에는 사랑과 눈물로 나타나시사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상한 심령을 위로하사 기쁨과 평안을 주실 것이다.

오 주님이시여 , 의로 치시며 진리로 책망하시며 또 사랑으로 거두시고 눈물로 위로해 주셔야만 할 현대올시다 . 이 현대가 너무 악하오매 당신의 천둥 같은 진리의 부르짖음이 아니면 깨지 못하겠사옵고 이 인간이 너무 가련하오매 당신의 사랑과 자비가 아니면 위로와 기쁨을 얻을 곳이 없습니다. 오 주여 , 어서 어시옵소서 . 막대기로 오시고 또 눈물로 오시옵소서 .

오 주여 , 주의 사도를 보내어 주옵소서 . 구복 ( 口腹 ) 을 위하여 오는 자 말고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오는 자 말고 다만 의와 진리를 위하여 오는 자를 바라옵니다.

지금은 과연 먹을 것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요 , 마실 것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 다만 진리가 없어서 기갈이로소이다 . 이 강산의 모든 영들은 충분히 말랐습니다 . 청산고골 ( 靑山枯骨 ) 과 같사옵니다 . 무엇으로써 이 마른 뼈다귀들을 적실 수 있사오리까? 

아 , 진리의 갈증의 심함이여

진리의 칼을 든 지 해를 세어 몇 년이옵나이까.

칠년대한 ( 七年大旱 ) 인가요 , 십년불우 ( 十年不雨 ) 인가요 .

아 , 이 조선 교회의 영들을 살펴주소서 . 머리 속에 교리와 신조만이 생명 없는 고목같이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저희들의 심령은 생명을 잃어 화석이 되었으니 저의 교리가 어찌 저희를 구원하며 저희의 몸이 교회에 출입한들 그 영이 어찌 무슨 힘과 기쁨을 얻을 수 있사오리까?

교회 표면에 쳐 놓은 신성의 막 ( 幕 ), 평화의 포장을 걷어치우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쟁 , 시기 , 냉정 , 탐리의 마가 횡행하오니 그 속에서 어찌 천국을 찾아보며 또 신성을 보겠나이까 . 어서 주의 신령한 손이 일하여 주시고 진리와 사랑의 성신이 충만하게 임하여 주옵소서 . 아멘 .

 

진실한 자매여 , 사람을 자랑하지 마소서 .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려다가는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기 어렵고 주를 자랑하여서만 영광을 받으리다 . 더구나 나 같은 천한 종을 어디 자랑할 여지가 있으리까 . 누구에게나 나를 말하지 아니함이 지혜로운 일인가 합니다.

나는 다만 불충불초 ( 不忠不肖 ) 한 죄인으로서 주의 크신 사랑을 힘입어 그의 천한 종으로 겨우 말석의 한자리를 얻었을 따름이올시다 . 혹 내게서 무슨 은혜를 받으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이 자매를 긍휼히 여겨 주신 것인즉 , 주께만 영광을 돌려 마땅할 것이로소이다 .

댁내에 신령한 은혜로 말미암은 평화와 기쁨이 있기를 바라옵고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형매들에게 기도의 생활이 실현되기를 중심으로 빌고 바라옵니다 . 아멘 .

 

1932 년 12 월

 

 

 

 김진영 씨에게

 

친애하는 모매님들이여 , 나의 말을 짐으로 생각하여 무거움이 될까 , 내 마음이 민망합니다.

나를 위해서 옷을 해주시려고 하여 혹은 어려운 문제가 있어 모매님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여서는 안되겠습니다 . 무슨 물질로 보다 모매님들의 믿음과 사랑이 있어 족한 줄 압니다.

지금 내 때가 가까웠으니 아버지께서 아들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올시다 . 내 마음이 심히 민망하오니 무슨 말을 하리오. 이제는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미 받은 바 은혜를 터로 삼고 더욱더 새로운 은사를 기다리소서 . 나는 아버지 뜻대로 그 나라로 향하여 가려니와 …… . 오 아버지여 ,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 나를 버리사 죽일 자와 같이 끌려감을 놓아두시고 내가 버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되겠사옵거든 뜻대로 하옵소서 . 아멘 .

 

1932 년 12 월 20 일

용도

 

 

 

 김진영 씨에게

 

사랑의 어머니여,

12 월 17 일에 보낸 편지가 오늘 (24 일) 돌아왔는데 꼬리표 다섯 장을 달고 왔습니다 . 이상한 일이올시다 .

어머니께서 내 편지를 기다리실 것이 사실인데 , 어찌하여 도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체부들이 안주 읍내 김진영 씨를 찾지 못한 모양이에요.

진리와 의가 마른 시대 , 사랑이 식은 시대를 말세라 합니다 . 아 , 내 마음이 심히 민망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 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옵니다 . 지금 주는 슬퍼하시고 민망해 하십니다 . 아 , 내 무슨 말을 하리오 .

속히 어머니를 뵈옵기 원합니다 . 그리고 어서 주님의 음성을 찾아 듣고 그의 뜻대로 행해야겠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소리 들으셨습니까 . 들으셨거든 오십시오 . 때는 가까워옵니다 . 어서 하늘의 길을 준비해야겠습니다 .

오 주여 , 어서 오시옵소서 . 내 몸과 내 마음 심히 피곤하오니 주의 나라 높은 곳에 나를 데려 가소서 . 나를 데려 가소서 .

 

12 월 24 일 

용도 상서

 

 

 

 옥어진 씨에게

 

오 사랑하는 자매여 , 자매 슬퍼할 때 주 슬퍼하시고 자매 욕을 당할 때 주 먼저 욕을 당하고 계십니다 . 주 말씀이 있어 가라사대 , “ 너희 원수 앞에 사랑과 겸비와 인내를 잊지 마라 . 이 셋은 너희의 무기임에 빼앗기지를 말아라.”

오 , 자매여 , 자매의 편지를 접할 때 내 마음 슬퍼서 217 장 찬송가를 거듭거듭 부르며 눈물지었습니다 . 의로우신 주님께서 받으신 모든 이름을 생각하고 우리 받는 이름을 비교하면 아직도 우리의 것이 영광스러운 것인가 합니다.

내가 욕을 먹어도 주를 위해서요 , 아편쟁이 , 광인의 천대를 받아도 이는 주의 이름을 인함이오니 축복이올시다 . 그러나 주는 의로우사 그러하셨고 나는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골고다의 길 ! 이 길이 나의 길이었으나 나는 아직 초학입덕지문 ( 初學入德之門 ) 에 있는 자입니다 . 어서 의에 돌진하여 욕과 죽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 친애하는 자매여 , 세상에 버림을 당할 때에 영접할 이 있으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소서 . 세상이 다 몰라 주어도 알아줄 이 또한 없지 않으니 위로 얻고 힘을 얻으소서 . 의가 오고 새 빛이 나타날 때는 멀지 않았습니다 . 살아계신 주님에게만 몸과 마음 , 모든 재주 , 소유 , 다 바칩시다 .

쫓겨나는 형매들이여 , 주님 깃발 아래 사랑으로 모일지어다 . 어두운 밤은 물러가고 광명한 아침은 돌아 오리이다 . 그가 오기를 바라고 기다림은 우리의 신앙의 일이올시다.

 

12 월 30 일

 

 

 

 이천농 씨에게

 

< 전략 >

‘ 기독신보 ’ 보셨겠지요 . 12 월 19 일 경성지방 교역자회에서 이용도는 이세벨의 무리 중 하나라는 기사를 증거로 조사위원 3 인 신○○ , 김○준 , 이○갑 씨 등이 1 시부터 8 시까지 상의하였고 내가 증거도 하였습니다 . 그 외에 홍○○○ , 김○변 , 원○상 제씨 ( 諸氏 ) 도 참석 .  그 다음날 나는 사임원을 감리사님에게 드리었더니 불 ( 不 ) 수리되어 그냥 왔소이다 . 퇴회 ( 退會 ) 는 멀지 않은 일일 것 같소이다.

내지 ( 內地 ) 에는 대소란 ! 조사 , 책벌 , 공회결의 등 교계에는 풍운불식 ( 風雲 不息 )!

화자 ( 花子 ) 일은 하여간 이화여전에 입학시켜 놓고 나 서울 있는 동안에 집에서 숙식하지 그 외에 별도리가 없어요 . 내가 어디 교섭해 볼 데 조차 다 끊어졌으니깐 . 사방에서 핍박과 멸시가 조수같이 밀려들어와 나는 거리를 걸을 용기조차 잃는 때가 있구려 . 마음이 민망한 때도 있고 . 그래도 주님 도우심으로 이겨 나갑니다 . 쓸 말이 없는 것 같구려 .

 

12 월 30 일

 

 

 

 이종현 씨에게

 

이름 없이 지구의 한 귀퉁이 [ 一角 ] 를 밟고 가 ! 

샤론의 들꽃 같이!

피는 줄 , 지는 줄 세상이 다 모르되 ,

다만 하늘만이 빈들에 속삭이는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소문 없이 퍼지는 그 향기에 하늘이 웃음 웃고 자취 없이 눈감을 때

적막한 밤 작은 별의 무리들이 조상 ( 弔喪 ) 을 해 ! 

이것이 값없는 야화 ( 野花 ) 의 무상 ( 無上 ) 의 영광이다 . 

평생 소원이었던 것이구려.

 

아 , 그러나 저를 낸 조물주는 여기에 가공 ( 加工 ) 을 하여 옮겨놓으니 ,

아 , 요란한 대로변 가시밭에 한 송이 백합화가 되었구려 !

 

고요히 이름 없이 지나갈 고독한 야화! 

이제는 소문 놓고 노방 ( 路傍 ) 에 찢길 ,

이름 좋은 , 그러나 역시 고독한 백합화로구나 .

 

날마다 기다리는 것은 형제들의 소식 . 앙천축원 ( 仰天祝願 ) 은 1 일이라도 속히 몰아내주소서.

그러나 ‘ 성의대로만 이루소서 ’ 한마디로 종결을 짓곤 하는구려 .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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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 : 1933 년 >

 

제 1 장

 

 

 이영철 ( 李永哲 ) 씨에게 24)

 

영철아,

주님 보호 중에 무사히 갔을 줄은 안다만 그래도 소식이 없으니 궁금하구나 . 할아버지 , 할머니 이하 온 집안 어른들의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려다오 . 더욱이 할머니 병환이 어떠하신지 곧 알게 해라.

할아버지 위하여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고 오너라 . 공연히 의미 없이 날뛰며 놀다 오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은혜의 생활을 하다가 오기를 바란다.

나는 서울서 5 일간 경성지방 직원 사경회와 기도회를 인도하고 1 월 1 일 인천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중이다 . 8 일이나 9 일에는 상경하겠다 .

할 수 있는 대로 기도의 생활을 하고 오너라 . 죄 많은 집안에 주의 은혜 풍성하도록 주께 간구할 것이다.

서울집에는 나 내려 올 때까지 별일 없었다.

 

1 월 5 일 

인천 내리교회 

부평서( 父平書 )

 

24) 이영철 : 이용도 목사의 장남

 

 

 

 PYH 씨에게

 

2 월 3 일부터 평양에서 성회가 열리겠습니다 . 주 친히 깃발을 드시고 행군입성하사 승리 얻으시기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해주소서.

 

2 월 2 일 

평양 가는 아침 서울서 용도

 

 

 

 강정숙 씨에게

 

평양과 안주를 돌아 황해도 김천 ( 金川 ) 에 왔습니다 . 시변리까지 갔다가 귀경하겠고 , 머지 않아 해주행의 길이 열릴 것 같습니다. 다시 서울로 편지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진리에 기갈이 들린 무리의 소동은 미국 백악궁 ( 白堊宮 ) 마당에 빈민의 기아 행렬의 소동만 못하지 않음을 평양과 안주에서 보았나이다 . 어서 진리의 샘이 터져야겠고 사랑의 ‘ 만나 ’ 는 하늘로부터 눈 내리듯 쏟아져야겠습니다.

그곳 속장님의 간곡한 엽서를 평양서 받았습니다 . 그런데 분주 통에 그 편지를 잃어서 지금 편지 회답을 쓰려다가 주소 , 씨명 ( 氏名 ) 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여 불가불 못쓰고 누님께 말씀 드리오니 말씀 전하여 주시고 해주 한번 가겠다고 말씀하여 주소서.

 

2 월 18 일 

금교역 ( 金郊驛 ) 전에서 용도

 

 

 

 김희학 ( 金熙鶴 ) 씨에게 25)

 

하나님의 진리의 심판을 모르는 자 있는가 . 그러면 저로 하여금 ‘ 시대나 알라 ’ 고 하여라 .

시대는 하나님 버금가는 재판관이니라 . 하나님도 모르고 때도 모르는 자이거든 1 년을 지내고 또 1 년을 지내 , 이렇게 10 년을 지내고 20 년을 지내 보아라 . 그러면 알 일이 있을 것이니 .

이렇게 하나님도 모르고 때도 모르는 인간들아 , 너 왜 가벼이 입을 여느냐 . 하나님이 운전하시는 때는 가고 오나니 그 중에 모든 일이 다 그 순서대로 되는 것이니라.

 

2 월 20 일

 

25) 김희학 : 안주교회 장로 . 평양기도단원 . 예수교회 복음사

 

 

 

 이조근 ( 李肇根 ) 씨에게 26)

 

산돌 ! 형제들은 이 산돌의 의미를 아시는가 ? 보는 눈도 없고 듣는 귀도 없고 말하는 입도 없는 돌 . 제 임의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발조차도 가지지 못하고 세우고 문 여는 손도 가지고 나지 못한 돌 . 이 돌은 누가 굴려야 굴러가고 무엇이 와서 그 위에 떨어지거나 누가 이것을 저것의 위에 던져야 비로소 깨어지든 부서지든 접촉이 있을 수 있는 돌 . 그러나 이 돌은 살아 있는 돌 . 장인들이 차 굴리는 대로 굴러다니면서 깨지고 부수어 승리를 얻고 있는 산돌 . 우리는 돌이로다 . 생명을 가지고 구르는 산돌이어라 . 보아도 못본 듯 , 들어도 못 들은 듯 , 입이 있어도 말이 없는 듯이 그냥 굴러라 . 그리고 무엇이든지 와서 부딪치기만 하라 . 깨질 건 깨지고 남을 것은 남을지니라 . 망할 부분은 망할 것이요 , 흥할 부분은 흥할지니라 .

 

2 월 20 일

 

26) 이조근 : 평양 교회 집사 . 평양기도단원 . 예수교회 경리국장

 

 

 

 김희학 씨에게 25)

 

< 전략 >

매사에 조급이 있을까 염려됨이 많습니다 . 주가 손을 드시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 , 인위 ( 人爲 ) 의 열심이 앞서 일하게 되면 실패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 충분히 기도하시고 지시대로만 하시기 바랍니다.

아 , 나의 이름이 새 교회 관리자로 들림의 아픔이여 . 나를 찌르는 가시로다 . 나는 땅 위에 이름을 남기기 원치 않았더니 , 이 어인 모순인고 . 이것도 또한 주가 주시는 가시관이었던가 . 주는 나에게 평안과 기쁨도 많이 주시고 또 아픔과 괴로움도 많이 주시도다 . 주 주시는 것이면 음부와 사망의 고통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으니 , 이것은 한 포로 ( 捕虜 ) 인 것인가 . 그리하여 포교소 ( 布敎所 ) 관리자의 가시관도 결국 받아쓰고 마는가 . 오 주여 , 할 수만 있으면 이 잔과 이 관을 나에게서 떠나게 해주시옵소서 . 오 그러나 주여 ,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성의대로만 하시옵소서 . 아멘 . 아멘 .

담임자를 주께서 보내실 줄 압니다 . 급하나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 간도에서 이미 쫓겨나온 전도사도 한 분 지금 청진서 성의를 기다리고 있고 또 성결교회에서 밀려나온 전도사도 역시 청진에서 지시만 기다리는 자이고 또 호 목사도 머지않아 축출을 당할 모양이니 저희들을 기르신 주님이 장차 누구를 어디로든지 보내실 것입니다 . 우리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주의 뜻 안에서 다 이루어질 줄 압니다.

 

3 월

 

25) 김희학 : 안주교회 장로 . 평양기도단원 . 예수교회 복음사

 

 

 

 이영은 ( 李永恩 ) 씨에게 27)

 

사랑하는 ○○ 어머니를 통하여 친애하는 모매님들에게 문안합니다.

평양 들어갔다가 그날로 나왔습니다 . 그 밤 막차를 타니 그 이튿날 곧 주일 새벽에 서울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 ○○에 불은 떨어졌습니다 . 이 불을 겸비하게 받는 자는 복이 크려니와 , 이를 물리치고 주를 핍박하는 자는 장차 심판에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때는 마지막을 재촉하는데 , 성도들아 , 왜 잠만 자는고 . 주께서 문전에 오셨는데 , 왜 일어나 영접하지 않는고 . 너희들의 그 지식으로 , 그 권세로 , 그 재물로 , 그 언변으로 , 그 사업으로 , 그 간판으로 구원을 얻을 줄 아느냐 . 

그것들은 다 자취 없이 망할 것이다 .  그것들만 의지하다가 그것 망할 때 너희들도 망하겠구나 . 다만 주님을 붙들라 . 주밖에 우리를 구원하실 이 없으니 주만 영접하라. 영접할 준비가 되었느냐 , 그 은혜를 받았느냐 , 주님 영접할 준비로 성신을 영접하는 은혜를 그대가 받았느냐 . 그럴진대 죽어도 그 은혜를 놓치지 말라 . 잃어버리지 말라 . 욕을 먹어도 쫓겨나도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 그것이 장차 주님을 모실 자가 예비

적으로 받는 기름이니라 . 더욱더 열심으로 기도하라 . 간절히 기도하라 . 기도 안 하면 빼앗긴다 . 원수의 손에 녹는다 .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힘쓰라 . 모이기를 게을리 말라.

화를 면하려면 입에 자갈을 물리라 . 너희들은 원래 입이 가볍기 쉽고 또 오래 참지 못하느니라 . 성경은 요한복음을 많이 읽으라 .  이는 말세의 복음이니라 . 지금부터 요한복음을 열심으로 읽으라 . 그리고 시편 , 이사야 , 아모스 , 예레미아 다 좋으니라 . 기회 있는 대로 시편과 이사야를 잘 읽으라 . 이는 말세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권고하시는 말씀이니라.

 

○은 어머니 , 사랑으로 주신 편지와 귀한 선물은 다 일일이 받아놓고 여기 모인 권속들이 모두 기뻐하며 감사와 영광을 주께 돌립니다.

그 집은 주님께서 늘 성도들을 모아놓고 역사하실 거룩한 집입니다 . 기도의 집입니다 . 다락방입니다 . 그 집에 큰 서기 ( 瑞氣 ) 가 뻗칩니다 . 그 안에 엎드리는 성도들에게 은혜가 풍성하리이다 . 어머니 , 강하고 담대하소서 . 그러나 사랑과 겸비와 인내를 잃지 마소서 . 오는 자마다 틈 없이 사랑과 겸비로 영접하소서 . 시험하러 오는 자라도 .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놓고 새벽마다 모이소서 . 초저녁 말 많은 때는 주무시고 고요한 새벽 세시로부터 혹 네시나 다섯 시까지에는 일어나서 기도회를 보시옵소서 . 남의 기도 비평은 일절 말고 . 그 외에 다른 말이라도 남의 말은 일절 하지 않을 일입니다 . 모이면 은혜의 간증이나 찬송이나 기도나 성경을 보거나 할 것입니다 . 이것은 그곳에 모이는 모매님들에게 모두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 아무 염려 마십시오 . 주께서 결국 다 이기실 것이니 . 그저 속으로 기도하십시오 . 주님 늘 그곳에 같이하셔 계속하여 늘 일해주시기 바라고 이만 끝이나이다.

 

3 월 10 일

 

27) 이영은 : 해주감리교회 교인

 

 

 

 이덕흥 씨에게

 

부주전 ( 父主前 ) 상서

평생 불초하던 소자는 아버지 회갑생신에도 뵈옵지 못하게 되오니 죄송함을 비길 데 없나이다 . 그러나 아버지 , 모든 시험과 환란 중에서라도 주님이 특별히 보호하시니 환란 중에서라도 감사할 일이올시다.

소자는 연회에 문제가 많아 목사직을 내놓게 되었으며 월급은 벌써 양력 2 월부터 끊어졌습니다 . 마귀는 저를 크게 시험하나 주님은 늘 넉넉한 은혜로 더욱 더 보호하십니다 . 또 소자 근일은 몸이 매우 피곤한 중에 있어 사람들은 걱정하오나 주 또한 지켜주시니 염려 말아야 하겠습니다 . 영철은 18 일 날 졸업했사오며 , 내일부터 모래까지 이틀 동안 배재고보 입학시험을 치르겠습니다 . 혹 평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평양 가서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 < 중략 >

늘 기도하고 늘 감사하고 오래 참으십시다 . 혹 다른 교역자나 교인을 만나면 사랑과 정성으로 대접할 것이고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줄 것이며 조금이라도 걱정이나 염려나 원망은 마시옵소서 . 인간으로서의 자랑을 하나님이 없게 하시고 겸손히 말없이 기도와 감사로 지낼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3 월 19 일

 

 

 

 이우원 씨에게

 

수차 형님의 편지에 위로와 감사도 많았고 민망 비창한 때도 없지 않았습니 다.

아우 그 동안 대명 ( 大命 ) 을 받아 평양 , 안주 , 해주 등지에 복음을 전하고 지금은 몸이 피곤하여 병석에 누워 정양 중이올시다 . 그러나 큰 염려는 없고 다만 주 나를 고요히 두고 쉬라 하심이니 이 기회를 감사와 침묵으로 보낼 따름이올시다.

연회 ( 年會 ) 에서는 상당히 내부적으로 아우에 대하여 시비가 많은 모양이더니 결국 휴직 처분을 내리셨구만요 . 벌써 목사 뗀지도 오래고 월급 잘린 지도 어제가 아니니까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 순서대로 되어가는 일만 감사할 뿐.

평양서는 아마 버림 받은 무리들이 네 회중교회 집에 모이어 ‘ 예수교회 ’ 라는 간판을 걸고 수백 명의 무리가 밤낮으로 새 은사에 목욕하고 있는 모양이올시다 . 물론 예수교회란 이름도 주님이 주신 것이겠지요 . 앞으로 어찌될지 . 작지 않은 일이 벌어져 놓았으니까 , 야단났습니다 . 평양서야 교내 , 교외에서 큰 이야기 거리가 되어있겠지요 . 앓은 자도 많고 , 나서서 심술을 부리는 자도 많고.

○○에는 근자 조선에서 볼 수 없는 큰 기이한 역사가 생기었던 만큼 마귀의 역사도 굉장하여 어린 양들이 막 ○○에게 유린을 당한 모양이나 , 주 결국 이기실 줄 믿습니다.

화자 문제가 큰 일이올시다 . 내 이름 , 내 얼굴로는 현 기관 어느 곳을 물론하고 손을 써볼 수 없는 형편이 되었구먼요 ......

체부동교회에서도 원하고 , 주도 원하시는 일이건만 인의 ( 人意 ) 가 성의를 앞서 일하는 현대인즉 좀 운동이 있어야 될 것을 그것도 어디 내가 누구에게 입을 벌리게 되었어야지요 . 연회에는 통 참예도 못하고 .

모든 경영은 다 실패로 돌아가고 주의 성도들은 발 붙일 곳도 없어지는 듯하나 , 그러나 만세 결국은 승리외다 . 주 우리 편이시니깐. 더욱더 용기를 냅시다 . 끝까지 돌진합시다 .

 

이 땅에 마귀 꽉 차서 성도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싸워라 진리가 이기리로다

명예와 지위와 생명과 재물을 마귀가 취한들 

상관이 무어냐 내 주께 있으리로다

 

순례 ( 順禮 ) 는 그간 승천하였고 신인 ( 新人 ) 선이도 24 일만에 영광에 싸여 가 버렸고 본향 부모형제들은 날로 은혜가 깊어가 환란 중에서도 감사와 찬송과 기도로 더욱 주 앞에 가까이 나가는 모양이고 모두 영적으로는 빛을 받는 중에 있습니다.

형님 , 그저 소곳하고 지시대로만 매진합시다 .

영철 군은 18 일에 협성 졸업하고 22 일에 배재 입학되었소이다 . 그러나 어찌될지.

 

3 월 26 일

 

 

 

<4 부 :1933 년 >

 

제 2 장

 

 

 이종현 씨에게

 

형의 소식은 병중의 나를 얼마나 위로했는지!

그러나 오형 ( 吾兄 ) 이 베드로와 야고보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주님을 따르는 모든 무리 , 그 개개의 배역을 할 자들을 나는 더듬어 보고 추상 ( 推想 ) 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오 , 현대의 조선천지에 있어 주님의 역할을 할 자 그 누구인고 . 또 어디 있노 . 유다의 일을 하는 유다류 ( 流 ) 도 있고 베드로의 역( 役 ) 을 하는 자도 있고 혹 막달라 마리아의 역을 할 자도 없지 않은데 , ‘ 주님 자신의 역을 할 자 누구인고 ?’ 함에 이르러서는 큰 소리로 “ 없구나 , 없구나 ” 하고 통곡이 나왔나이다.

‘ 주의 역 ’ 곧 ‘ 주가 당하신 일 ’, 누가 주의 일을 할 자이냐 ? 아 , 누구 이냐 ? 모두 ‘ 주의 일 ’,    ‘ 주의 일 ’ 하여 다 ‘ 주의 일 ’ 을 한다는 자들이지만 , 그러나 정말 누가 주의 역을 맡을 자이냐 ?

아 , 우리는 벌써 베드로를 연상하고 야곱을 이해할 만한 베드로 역자 ( 役者 ) 와 야곱 역을 하는 자를 본 것이 아니냐 .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을 알 만큼 그들의 역을 연출할 명배우들을 볼 수 있지 않느냐 . 그리고 유다를 연상할 수 있도록 그 역을 담당하여 묘기를 연출함을 또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아이구 , 오주 ( 吾主 ) 를 알릴 수 있도록 , 이해시키도록 예수의 일을 맡아 하는 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구나 . 아 , 조선의 양들은 누구를 보고 주를 생각할 수 있나요 . 누구의 생활을 통하여 주를 이해하게 될 수 있을까요 ?  아 ,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 주의 일을 할 자 어디 있느냐 ? 어서 나오라 . 어서 나오라 .

오 주여 , 나는 무슨 역을 할까요 ? 나는 나의 적임처를 압니다 . ‘ 해 저물 때에 많은 병자들이 몰려와 음식 잡수실 겨를도 없더니 ’ 하는 자막과 같이 뒤를 이어 나올 병자 중에 하나 , 그 중 가장 빼빼 마르고 백지장같이 하얀 얼굴에 올퉁한 눈을 그려가지고 주의 은총을 좀 입어 보겠다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막 뚫고 들어가려는 그 병든 사람.

그렇지 않고 만일 나의 최고의 원이라 하여 용납하실 수 있다면 , 허리 꾸부러진 말라깽이 할아버지 . 밤낮 성전을 감돌며 메시아를 만날까 하여 들락날락 . 혹은 눈물 , 혹은 기도로 “ 오 주여 , 언제 오시려나이까 , 어서 오시옵소서 ” 하고 겉옷자락으로 더운 눈물의 뺨을 씻어 내리는 그 장면의 시므온의 짧은 역할을 혹 맡기시지 않으실지.

아 주여 , 당신의 영을 받아 당신의 일을 할 자가 생겨야 하겠나이다 .

 

평양에서 마른 나무개비 같은 고골 병신의 이 꼴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나 스스로 두려움과 아픔을 중심에 느끼지 않을 수 없구려. 나 지금은 음식을 잘 먹고 대개 기분도 맑은 때가 많으나 기침은 그냥이고 따라서 행보가 그리 여의치를 못합니다 . 움직이면 기침이 더 나곤 하니깐 . 내 벌써 몇 번 평양을 향하여 자리에서는 떠났었답니다 . 그리하여 마음만 가서 한 번 돌아오면 몸은 그냥 아랫목에 누워있곤 하는구려.

 

4 월 4 일

이용도

 

 

 

 김영선 씨에게

 

누워서 쓰신 글 누워서 들었습니다 . 그러나 편지 읽는 소리를 듣는 동안에 나의 영은 형님의 손을 가만히 그러나 힘있게 쥐면서 눈물지었습니다. 형님도 병든 몸 , 나도 병든 몸 . 다 은혜로운 일이올시다 . 고요히 한 방에 뉘여 두시고 주 지키시니 그 중에 다 오묘한 성의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몰아내어 외치게도 하시고 끌어들여 잠잠케도 하시니 그 중에 주의 일이 있었나이다.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영혼은 늘 편하다 

주 명령을 기뻐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이 세상은 늘 변하고 인간들은 말 많으나 

주 은혜만 생각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친애하는 형제여 , 내 맘이 늘 형제를 위하여 간절함은 고생과 수고 중에서 주의 뜻을 따라 참고 기쁨으로 형제가 주를 증거함이로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핍박을 살피건대 무리한 반대도 많고 억울한 말도 많이 들으나 그러나 우리가 잠잠히 참고 기쁨으로 받을 것은 대개 주님은 우리보다 더 무리한 핍박을 받으시고 더 억울한 누명과 누설을 받으신 것을 생각함이니이다 . 주어서 형제를 용사같이 일으키시기를 비나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 정신을 차리고 달음질해야겠습니다 . 주를 얻는 일은 세상과 육을 다 빼앗기는 일이올시다.

아 , 이제 우리는 거의 다 빼앗겼습니다 . 좋은 명예 다 잃어버리고 재물 다 잃어버리고 식구들과 친구들 다 잃어버리고 이제는 육체의 건강까지 잃었으니 거의 다 되었는가 하여 다시 기쁘외다 . 다 잃고 영만 주와 합하면 얼마나 기쁜 일이옵니까.

오 주여 , 주의 종에게 힘을 주소서 . 연약한 처자들을 먹이고 입혀 길러주소서.

 

내 이즈음 주님 은혜와 형매들의 지성스러운 간호로 새 힘을 많이 얻었나이다 . 언제든지 주 나를 일으키시는 날에는 곧 평양으로 가서 친애하는 부모 형제자매들을 만나겠나이다.

 

5 월 1 일

원산 이용도

 

 

 

 변종호 씨에게

 

편지 없어도 대강 소식 알 줄 아오.

입맛 달아 밥 잘 먹고 , 마음 편해 잠 잘 자고 , 날마다 누워 안식이니 내 평생에 이런 호운 ( 好運 ) 쉽지 않소 . 주 날 사랑하사 독자같이 아끼시고 , 용사같이 먹이시니 채찍 얹어 몰아내시는 날이 있을지라 . 내 그날을 기다리고 피를 모으니 최후의 일성을 외치고 갈진저. 

내 이제 백골이라 그냥 갈까 염려마소.

 

5 월 1 일 

원산 시무언

 

 

 

 주선행 씨에게

 

사랑하는 자여 , 네가 과연 네 몸을 드리어 나의 몸이 당하는 바를 대신하며 네 생명을 드리어 죽을 나의 생명을 대신하고자 하느뇨.

오 나의 사랑하는 자여 , 네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느냐 ? 그러할진대 너는 이제 나를 대신하여 무고히 병석에 눕기를 원치 말고 오직 너의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기까지 그리하여 마침내 병들기까지 생명이 땅 위에 떨어질 때까지 진리를 외치고 핍박을 받으며 기도를 올리고 멸시를 받으라 . 나는 너의 몸과 생명이 공연히 병과 죽음으로 나를 따르는 일이나 , 대신한다는 일을 기뻐할 수 없노라. 오직 진리로 나를 따르고 십자가로 나를 대신하여 나서기를 바라노라.

시편 109 편 25~29, 시편 118 편 1~29

내가 저희의 욕지거리가 되니 저희가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들도다 . 하나님 여호와여 , 나를 도우사 주의 자비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사 저희들로 하여금 이것이 주의 손으로 행하신 것인 줄을 알게 하옵소서 . 여호와 주께서 행하신 것이로소이다.

저희는 저주를 하나 주는 복을 주시고 

저희는 일어날 때에 부끄러움을 주나 

오직 주의 종은 기뻐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경책 ( 警責 ) 하셨으나

그러나 나를 사망에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내가 죽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아있어 

여호와의 행하심을 전파하리로다 . 아멘 .

 

 

5 월 12 일

병석에 누워서 주의 종 용도

 

 

 

 부모님께

 

불초한 자식은 부모님의 염려를 더하고 있을 뿐이올시다 . 대보산에 있다가 삼방 약수포 ( 藥水浦 ) 로 가는 길에 서울 잠깐 내려 이 글을 올립니다 . 몸은 날마다 차도가 있어 힘을 얻는 중이옵고 지금은 설사도 안하고 음식도 많이는 먹지 못하나 이것저것 궁금하여 구미가 돌아오는 모양이올시다 . 집 안에 여러 가지 곤란이 있는 줄 압니다 . 죄 많은 세상을 주를 믿는 은혜로써 참아갑시다 . 봉애 하고 둘이 갑니다 . 가서 또 편지 올리겠습니다 .

 

 

7 월 27 일 목요일 아침 

경성역전에서 용도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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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부 : 받은편지 >

 

제 1 장

1929 년

 

 

 박재봉 ( 朴在奉 ) 씨로부터 28)

 

이 더운 여름철에 형님 은총 중 기체대안 ( 氣體大安 ) 하심을 기도하옵니다 . 

하기학교를 위하여 순회하시며 주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영들을 구하십니까 . 위험한 심정 ( 深井 ) 에 있던 저도 그때 형님의 혜서 ( 惠書 ) 를 받고 , 아 , 나의 구주를 다시 찾아 그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날마다 봅니다.

그 중에서 제일로 느낀 것은 , ‘ 사람은 예수에게 모든 판단을 받으므로 완전히 자기를 부정하고 완전히 순종할지어다 . 내가 있은즉 하나님이 반드시 계시니 나는 사람이요 , 하나님은 조물 ( 造物 ) 의 신이시라 ’ 는 것이며 또 느낀 것은 ‘ 영을 살리기 위하여 강적 ( 强敵 ) 인 육을 죽이라 ’ 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오래 다녔으나 철저히 느끼는 바 없었습니다 . 까닭에 지금 내 영혼은 말하되 교회로서 정말 기독교회라고 승인될 것이 없다 하며 알아보니 ( 주의 계시를 보니 ) 교회가 없고 교직이 없고 모든 의식이 없어도 영이 있는 곳 , 즉 영적 생명이 있는 곳에 기독교가 있다고 합니다 .

“ 하나님 나라는 보이는 것으로 오지 아니하여 여기 있다 , 저기 있다 못하리니 대개 하나님 나라가 너의 안에 있느니라.”

알고 보니 기독교와 소위 ( 所謂 ) 기독교와는 크게 달라요 . 소위 기독교란 신경 ( 信經 ), 집합 , 회의 , 결의 이런 것들이더이다 . 이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온다기보다 보이는 것으로 와요 . 이는 사람 속 깊은 곳에서 행하는 생활이기보다 껍데기의 회합 의식뿐이더이다.

아우가 느끼는 기독교는 이런 껍데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있어 이 모든 것을 다스려 정복할 때에 그 참된 의의 ( 意義 ) 가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 세상 문화나 경제나 다 육의 것이지요 . 고로 그것들은 불신의 것입니다 . 교회와는 딴 성질의 것이지요 . 교회가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공급되는 위대한 영력 ( 靈力 ) 으로써 문화나 경제를 다스려 복종시켜 그것을 영화 ( 靈化 ) 시킬 때 비로소 문화도 경제도 인류에게 유익한 것이 되지요 . 그래서 교회의 정의 ( 正義 ) 의 일부를 저는 이렇게 느낍니다 . 교회는 문화를 이기는 이김이라고 . 이 이김은 곧 성령의 충만입니다 . 이점으로 보아 금일의 교회가 문화 경제 등을 이기어서 성령의 충만함을 나타내고 있는가 ? 신앙은 주님을 소유하는 일이지요 . 고로 시작 , 도중 , 종국 이는 다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될 것이고 신앙하는 자는 그 일을 보기 전에 반드시 있을 종국의 영광에 참여하여 즐거워할 것입니다 . 고로 신앙은 위대한 용기를 띠에 차고 환란과 역경과도 기뻐 싸우지요 . 신앙의 용 ( 勇 ) 에는 전세계도 대항하지 못하지요.

아 , 위대하도다 . 주님을 소유하는 신앙 . 이 신앙의 활동은 아 , 두려워요 . 그러면서 시원하기도 합니다 . 이를 보아 철저히 느껴지는 것은 오늘의 교회 강단을 청결케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 강단에서는 자는 성령의 충만을 그 자격으로 가진 자라야 하겠어요 . 까닭은 성령에 충만한 자의 말만이 영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외다 . 그런데 금일의 교회가 많은 사람을 끌어 붙이기 위하여 그 술책으로 신앙을 모르는 자에게 강단을 맡기어 이 불신이 단상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그것으로 청중의 환심을 사려고 하니, 아, 이 결과가 그 무엇을 가져올 것입니까 ? 아무리 인간의 기교로써 환심을 사서 끌어 붙인대도 그 소득을 뿌린 씨에서 난 그것뿐이지요 . 팥을 심은 자 팥밖에 더 거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하나님을 소유한 신앙을 누가 알리요 . 지금까지 교회 강단에서 불신들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거기는 아무 빛도 능력도 없음을 보았나이다 .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그 자격으로 가진 자는 푸른 하늘의 밝은 별같이 고요하면서도 빛을 주더이다 . 우리의 교는 이 일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장룡포 ( 長龍浦 ) 에서 벽산 ( 碧山 ) 으로 와있습니다 . 이런 느낌 속에서 저는 이제야 정말 살아났습니다 . 주를 위해 죽기보다 살기가 얼마나 더 어려운 것임을 발견하였습니다 . 기회 있는 대로 가끔 느낌을 써 보내겠습니다 .

 

1929 년 여름 

아우 신파 ( 信波 ) 박재봉 배상

 

28) 박재봉 : 이용도 목사가 담임한 통천교회 교인 . 감리교 전도사 . 예수교회 목사

 

 

 

<5 부 : 받은편지 >

 

제 2 장

1930 년

 

 

 박정수 씨로부터

 

오 주여 , 감사하옵니다 . 주께서 저를 특별히 사랑하여 주신 은혜로 오랫동안 그리고 흠망 ( 欽望 ) 하던 하나님의 사랑 , 예수의 모형을 이제야 만났습니다 . 아득한 미로에서 방황하던 어린 영이 찾고 찾아도 제 손을 붙잡고 주께로 인도하여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예배당에 다녔습니다 . 많은 사람의 설교도 들었습니다 . 그러나 저의 영은 언제나 기갈의 불만을 고칠 길이 없었습니다 . 희미한 길에 홀로 서서 어디로 , 어떻게 주님을 찾아갈까 방황하며 이 사람 저 사람 주 따라 가는 이를 찾았습니다 . 생각하면 물론 제가 부족하여 직접 주님을 바라보며 따라가지 못하는 영의 약자인 까닭이었을 줄 생각되나이다.

이와 같이 부족하고 변변치 않은 것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 생각지 못한 때에 과연 주님의 자취를 꼭 그대로 따르시는 당신의 종을 만나게 해주신 그 은혜 , 진정으로 감사 , 감사할 뿐이로소이다 . 허위와 가면의 탈을 쓰고 주를 따라가는 체하는 많은 속인 중에서 참 주의 사도인 그를 통하여 저도 주님의 형상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 주님의 음성도 듣게 되었습니다 . 저의 걸어나갈 앞길도 눈앞에 밝히 전개되었습니다 .

 

오 주여 , 갑니다 . 갑니다 . 저도 갑니다 . 

그가 걸어가는 주의 발자취 , 저도 따라서 

세상의 부귀 , 영화 , 명예 , 체면 모두 버리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향하신 

그의 자취를 밟아서 저도 갑니다.

선생님 , 그래도 저는 부족합니다 . 힘 없고 약합니다 . 미련하고 둔합니다 . 

철 모르는 어린아이입니다.

선생님 , 괴로우셔도 , 귀찮으셔도 이것을 붙잡아주세요 . 끌어주세요 . 선생님께서 가시는 주의 자취 , 저도 따를 수 있도록 .

주를 따르려는 저의 앞길에는 많은 장애와 구속이 있습니다 . 그래도 지금은 주의 손을 잡았습니다 .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어디든지 가려 하나이다 . 주께서 두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머물려 합니다 . 기쁨으로 , 족한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다 주께 맡기고.

오 주님 , 부족한 이것을 받아 주세요 .

지난 14 일 선편에 선생님께서 주신 글을 받고 처음에는 반가웠습니다 . 한 페이지 , 두 페이지 읽어갈 때 감격에 넘치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어요 . 선생님 , 이 변변치 않은 것을 위하여 지옥에까지라도 들어갈 용기를 가지시고 험악한 풍랑에 많은 고생을 달게 여기시고 이 궁벽한 섬까지 찾아오시었던 그 사랑은 과연 우리 주님께서 천당 영광 버리시고 죽을 죄인을 살리시려고 이 누추하고 험악한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바치신 그 희생적 사랑임을 다시 한 번 더 느끼며 감격한 눈물을 흘리나이다.

주님의 사랑을 통하여 나타내신 선생님의 사랑은 과연 저에게 새 힘을 주었나이다 . 새 마음을 주었나이다 . 오 , 주님의 사랑 ! 남을 위하여 , 더구나 죄인을 위하여 귀하신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신 희생적 사랑 , 열정의 사랑 . 아 , 어떻게 하면 저도 이 사랑의 자취를 따를 수 있을까요 .

선생님 , 저는 늘 ‘ 내 몸이 이 궁벽한 섬 가운데 와서 밥이나 먹고 옷이나 입고 그럭저럭 살다가 썩어지고 마는 것이 내가 세상에 온 본의인가 ’ 생각할 때마다 남 모르는 불평이 떠날 때가 없었습니다 . 그러나 이즈음에 와서는 아니다 , 호화로운 도회지에서 죄악의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적 한 섬 속에서 영육으로 가련한 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위하여 조금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이것이 도리어 자타의 복이 되고 주께서 나를 이 섬에 보내신 뜻인지도 알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 웬일인지 저 망망한 바다 , 구비치는 물결 , 월야의 산천 ,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비감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선생님께서 주신 글을 읽고 난 뒤로는 이상하게도 전날에 늘 보던 그 산천이 새로이 반갑습니다 . 요새 며칠 동안은 진동 큰 집에 와서 있게 되었으므로 새벽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반쯤 이지러진 새벽달이 동쪽 하늘에 솟아 오를 때 찬 서리는 달빛에 비취어 은가루같이 반짝입니다 . 앞바다 잔잔한 물결 위에는 월광이 반사되어 금빛 비단을 펴놓은 것 같습니다 . 고요한 새벽 , 은은한 달빛아래 소나무 밑으로 하나님을 뵈옵고자 걸어가는 제 마음은 과연 어떻다고 글이 부족하여 형용할 문구가 없으리만치 감격과 환희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 알 수 없는 신비의 낙원으로 몸과 마음이 일체로 실려갑니다.

오 주님 , 주께서 이러한 아름다운 낙원에서 저를 기다리신지 오래지만 이 미련한 것은 그 답답한 속계 ( 俗界 ) 에 묻혀서 괴로운 꿈만 꾸고 있었지요 . 주님 용서하세요 . 이 신비한 낙원에서 주를 만나 뵈려고 덕적 ( 德積 ) 으로 부르셨음을 모르고 도리어 저는 항상 불평을 품었었습니다.

선생님 , 과연 주가 함께 계신 곳이면 산이든지 , 바다든지 , 감옥이든지 , 대궐이든지 , 그 어느 곳임을 물론하고 낙원이겠지요 . 주님 , 이 낙원에서 영원히 떠나지 말게 해주세요.

22 일에 또 다시 선생님이 주신 글을 받았소이다 .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저의 마음까지 불안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 과연 악마의 무리들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여서 자기 부하를 만들어가지고 성도의 가슴에 화살을 박습니다 . 험악한 고해의 흉흉한 파도는 무섭게도 우리의 영에 부딪히고 씻깁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괴로우심은 도리어 영광입니다 . 자기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남의 멸시와 모욕과 구박과 천대를 받는 비열한 인간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선생님은 주를 위하여 주님을 따라가시기 때문에 당하시는 고통이오니 이야말로 광영의 고통인 줄 생각되오매 저는 도리어 부러워하나이다 . < 중략 >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강변에서 베드로에게 “ 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나의 어린 양을 먹이라 ” 고 하신 말씀 , 선생님께서 평양 중앙교회에서 하시던 것 아직도 제가 기억합니다.

선생님 , 이 덕적의 어린 양들은 주님께서 선생님에게 맡기신 양떼 중에 한 무리로 생각하시고 잊지 마시고 기도로써라도 돌보아주심을 바라나이다 . 선생님 다녀가신 결과 , 주님의 새 생명을 얻은 이가 퍽 많습니다 . 동리마다 산에서 기도 소리가 힘있게 울려옵니다 . 주 안에서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이 덕적을 선생님께서도 잊지 않으실 줄로 아옵니다 .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늘 안영 ( 安靈 ) 하옵시기 축원하나이다 .

 

1930 년 여름 

박정수 배상

 

 

 

 <5 부 : 받은편지 >

 

제 3 장

1931 년

 

 

 김예진 씨로부터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사랑하시는 이 목사님께 권능을 내려 덮으시기를 원하나이다 . 목사님께서 작년 봄 중앙교회에 오셨을 때에 우리를 미치게 해 주신 은혜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 그 후 금일까지 우리 평양 교회에 서는 주님께서 허락하시사 이 목사님께서 한 번 다시 평양 오시어서 우리에게 큰 은혜가 내리게 해주시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로 계획도 많이 했습니다 . 지난 추기 부흥회에도 이 목사님을 모시려고 했으나 뜻대로 안되고 , 또 지난번 산정현교회에서도 심히 원하였사오나 주님의 뜻이 아니신지 우리가 은혜 받은 그릇이 못되어서인지 결국 모셔오지 못하였습니다 . 

지금 우리들은 목사님을 한번 뵈옵게 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중이오며 우리밖에도 평양 각 교회에서 이 목사님과 같이 은혜 받게 되기를 갈망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분이 많습니다 . 지난 가을 황해도 오셨을 때에도 평양서 여러분이 나갔던 것을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목사님을 갈망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 지금 이렇게 애원하는 우리 몇 사람은 지난 봄에 특별한 은혜를 받은 후 각각 깊은 찔림을 받고서 우리 일생을 주를 위해서 희생하기로 작정하였나이다 . 그러나 함께 모일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가 수 삭 ( 朔 ) 전부터 우리 몇 사람은 같이 모여 기도하는 믿음의 동무가 되었습니다 . 같이 은혜 받고 같이 할 일을 의논하면서 서로 붙들어주며 주를 위해 일하기로 작정하고 나오는 중이올시다.

시간을 작정하고 새벽마다 모여서 기도하던 중 이 목사님 한 번 청하여 같이 은혜 받기를 원하기로 하였습니다 . 지금 목사님께서 주일학교 연합회 일에 매이어 몸을 자유롭게 쓰시기 어려운 사정도 잘 알고 있사오나 주님이 허락하시면 한번 오시게 될 줄 믿고 다른 일 다 제쳐놓고 한번 오시기를 앙청합니다 . 사정이 허락하시면 여러 날 집회를 하였으면 좋겠사오나 갑자기 그런 큰 은혜를 받을 기회는 얻기 어려울 듯하오므로 부득이 주일날 하루만 왔다 가시기를 간청하옵니다 . 2 월 1 일 , 2 월 8 일 , 2 월 15 일 , 이 세 주일날 중 어느 날이든지 하루만이라도 와주실 수 있사오면 우리 몇 사람과 평양 각 교회에 큰 은혜가 미칠 줄 확신합니다 . 오시게 되면 세 번은 말씀해 주실 예정하시고 토요일 저녁에 왔다가 월요일 아침에 가시기로 하시고 한번 꼭 오시기 바랍니다 . 특별히 힘 쓰시사 우리 평양 각 교회에 큰 은혜를 내리게 해주시옵소서 . 속히 회답해 주심을 바라옵고 회답을 좌기 처소로 보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 몇 교회 목사들과도 의논한 바가 있었습니다 . 

‘ 평양부 신양리 159 의 8 김예진 ’ 

주일 예배 산정현 , 일요강화 서문밖 , 저녁예배 장대현 ( 章臺峴 ) 으로 되겠습니다.

 

믿음의 벗 , 김익선 , 이조근 , 김지영 ( 金志永 ), 김영선 , 김용진 ( 金龍鎭 ), 김예진 올립니다. 

 

1931 년 1 월 23 일

 

 

 

 원○서 씨로부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으신 나의 사랑하는 목사님께 문안하옵고 주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가 더욱더 충만하심을 성심으로 비나이다 . 아멘 , 아멘이지요 .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의 은총을 감사합니다 . 우리가 피차에 알게 된 것은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의 무한한 은혜인 것을 저는 압니다 . 육의 일이 아니요 , 사람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영의 일이로소이다.

예수여 , 이제 이 부족한 심령 , 쇠약한 심령 위에 성령의 불을 주세요 . 그러지 아니하면 나는 당신의 뒤를 따르지 못하여 불쌍한 영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이 가련한 영을 주여 , 돌보아주세요 . 긍휼히 보아주세요 . 그리고 당신의 거룩한 피바다에 잠기어 주옵소서.

이 몸은 내 것이 아니올시다 . 주의 것이요 , 주의 물건이로소이다 . 나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어주시고 다만 당신만이 살아계시기 바라나이다 . 나는 당신의 제단 앞에 제물이 되고자 하옵나이다 . 나의 바라는 것은 다만 이것뿐이요 , 기도의 제목도 이것이로소이다 . 

오 , 나의 바라는 것은 , 오 , 나의 참 사모하는 것은 

구주 예수뿐이로소이다.

예수여 , 인제 이 마음 속에 오심을 비옵나이다 . 

약한 심령 위에 오심을 바라나이다.

예수만 내게 있으면 근심걱정이 없으리이다. 

오 , 내가 정말 바라는 예수여 !

오 , 나의 바라는 것은 나의 참 사모하는 것은 

성령의 불길을 나에게 주심이로소이다. 

그저 주시는 그 불 사라짐 없는 그 불 

그 불을 부족한 이 자식에게 주신다면 

악령은 성령으로 변할 것이옵고 

이 몸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되오리다.

 

1931 년 2 월 8 일

 

 

 

 한○복 씨로부터

 

주여 , 주께서 사랑으로 허락하시사 이 부족한 죄인으로 하여금 주의 채찍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하여 육신으로 괴로운 병석에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종 나의 선생님께 붓을 들 때에 오직 당신의 뜻대로만 쓰게 하옵소서 . 아멘 . 

참 주의 사랑은 이상하게도 베푸시는 줄 믿어집니다 . 나로 하여금 이 육신에 괴로운 사랑을 주셔야 될 경우임으로 지금 괴로운 병상에 눕게 하사 여기에서 주를 더 의지하게 하셨으니 주의 은혜는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 저는 말할 수 없이 연약하여 이 처지에서도 어떤 때는 주께 감사를 올리되 흔히는 주를 떠날 때가 많습니다 . 이렇게 약하여 주를 항상 섭섭하게 하는 이 죄인이건만 그래도 주께서는 버리지 않으심을 생각할 때 말할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나이다.

주께서는 이 죄인을 위하여 몸까지 바치셨지만 이 죄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주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의 피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보시기에 너무도 답답하고 괴로워서 나의 육신의 더러운 피를 입으로 빼어버리게 하시고 당신의 생명의 피를 억지로 주사 놓으시는 것이었습니다 . 오 주여 , 감사하옵니다 .

오 주여 , 나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고생을 당사신 당신을 따라가려는 이 부족하고 어린 죄인을 버리시지 마소서 . 날마다 주께 향하여 기도는 한다고 하며 죽든지 살든지 주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는 하면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주의 뜻에 복종한 때가 없었습니다.

오 주여 , 나로 하여금 당신의 부름을 듣게 하시고 나의 주 당신의 뜻에 복종할 마음을 주시사 , 당신의 크신 힘을 빌어 앞에 닥쳐오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따라가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주여 , 지금 용정에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양떼들이 사방으로 헤어져 다니며 외로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신께서 허락하신 귀한 성전 문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주여 , 저들로 어느 때까지나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게 하시겠나이까 . 어서 속히 당신의 노하심이 오셔야 하겠나이다 . 주여 , 당신은 우리 죄의 무리들을 향하여 언제까지나 괴로워하시겠나이까 . 이 부족한 죄인은 당신을 쳐다 볼 적마다 답답하고 괴로워 못 견디겠습니다 . 그러나 이 죄인은 말뿐이지 정말 당신을 위하여 한 번도 안타까이 괴로워 해본 적은 없었나이다 . 주여 , 이 부족한 죄인을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동전 한 푼을 보아도 당신보다 낫게 여기며 육신에 적은 기쁨이 와도 당신을 잊어버리는 이 죄인을 주여 그래도 당신은 이것을 불쌍히 보아 주시려나이까 ? 오 주여 , 이 육신을 죽이든지 살리든지 어서 당신의 뜻대로 처분하여 주옵소서.

이 죄의 몸을 생각할 때 눈물뿐이지 , 나의 수단이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나이다.

주여 , 어서 이 몸을 당신께 좀 미치게 하여주옵소서 . 지금은 너무도 이 세상에만 정신이 말똥말똥하여 큰일 났습니다 . 당신께 좀 미쳐서 육신에 괴로움과 핍박과 갖은 고생을 다 당하여보아 이 육신이라는 것은 다 잊어버릴 수 있게 하옵소서 . 너머도 정신이 똑똑해서 조금 괴로워도 이것이 괴롭다고 깨달아지며 조금 부끄러워도 이것이 부끄럽다고 깨달아지는 이 육신의 맑은 정신을 깨쳐버려 주옵소서 . 사람 앞에서 부끄럽다고 내놓고 ‘ 주여 ’ 소리 한마디도 못하는 이것을 무엇 하겠습니까.

어서 성신의 불이 내 정신 속에 들어와 모든 것을 태워 버려주셔야 되겠습니다 . 그리하고 지금까지 죽었던 심령을 살리시사 전에 듣지 못하던 당신의 음성을 내 귀로 듣게 하옵시며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심령의 눈으로 당신을 보게 하시며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하던 이 몸을 일으켜서 당신을 위하여 당신이 당하신 십자가 고생 좀 맛보게 하옵소서 . 이것이 다 나의 생각이나 수단으로 되지 말게 하시고 오직 당신의 뜻과 힘에만 의하여 되어지게 하옵소서.

당신의 종에게 항상 당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오며 그 종을 통하여 우리 조선교회에 새 광명이 비취어질 날이 있기를 바라나이다 . 아멘 .

 

1931 년 6 월 11 일 새벽 

육신이 괴로운 병석에 누워서

 

 

김○순 씨로부터

 

목사님,

내려주신 권면사는 고맙게 받았나이다 . 그리고 신앙생활의 큰 힘과 빛을 얻었나이다 . 그리고 또 주와 같이 살기를 약속하며 전부를 주께 맡기고자 간구하는 중이올시다 . 내 소유도 내 마음도 내 계획도 다 내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간절히 원하는 중이올시다 . 그러나 원래 너무 자아 중심의 생활만 하던 인간인 고로 적지 않은 괴로움을 느끼나이다.

목사님 , 어떻게 이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주의 손에 다 남김 없이 드릴 수가 있을까요 . 드릴 수 있다면 그때에는 참 안심이 있으며 안식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 전적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참 생명이 움직일 수 없을 터인데 저는 아직 일부분의 운동만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올시다 . 목사님 , 그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없습니다마는 자유롭고 순전하게 주의 삶이 내 삶이요 , 주의 죽음이 내 죽음이라고 할 심각한 지경에 들어가지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누구의 구속이나 절제를 받고 있지 않는데도 진정한 자유를 가진 것 같지 않아요 . 그래서 손과 발이 말을 안들 때도 있고 생각이 순종치 않을 때도 있어 이것이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의 생활과 같은 느낌이 있어요. 목사님 , 나는 이 경계선이 무엇인지 어서 속히 이 자리에서 뛰어나오고 싶습니다 . 그리하여 자유롭게 순진하게 가볍게 주의 여비 ( 女婢 ) 가 되고 싶습니다.

목사님 , 부디 좀더 밝은 성신의 등대가 되어주소서 . 우리 조선의 종교는 침체하여 옛날의 그 초대 교회를 부러워할 뿐이고 현재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활동도 응답도 없으신 것처럼 고요하였나이다.

그러한 이때에 나타나신 목사님의 생활은 살아계신 예수의 현현 ( 現顯 ) 활동을 증명하신 것이올시다.

목사님 , 저의 한 영혼에도 큰 불이 일어나게 되었사오며 따라서 전국적으로도 큰 운동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나이다 . 목사님 , 언제 또 우리 재령에 오시겠나이까.

 

1931 년 7 월 3 일

김○순

 

 

 

 김○선 씨로부터

 

하나님의 음성과 주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시는 이 목사님 , 저는 이번에 심히 민망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사모하고 기다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주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이 목사님과 항상 같이 가고 같이 먹고 같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 그리고 제 생각에는 언제든지 이 목사님께서 평양오시기만 하시면 전도도 , 먹는 것도 , 자는 것도, 다 그만두고 목사님을 따라가 하나님의 제단에다가 이 몸을 받쳐서 베드로가 받은 것 같이 나도 성신을 받기 원하오며 주님께서 정신을 한량 없이 받은 것 같이 나도 받고야 말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육이 소유를 버리고 영의 소유를 얻고 흑암의 세계를 버리고 광명한 빛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였나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나의 계획은 다 공상이 되고 말았소이다 . 사경회가 나의 은혜의 길을 막는다고 나의 마음은 괴로움이요 , 성탄이 나의 은혜 길을 막는다고 나는 괴롭고 본 교회 집사 장립식이 또 나의 은혜 길을 막는다고 괴로움을 여러 가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집사 장립식이 끝난 후 다과회가 있었습니다 . 나는 다과고 뭐고 다 시원치 않다고 나의 영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다과회를 열어놓은 후에 제일 노인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용도 목사는 신이더라는 말을 꺼내더이다 . 그러니 어느 유력한 집사는 이 목사는 사람의 심령을 뒤집어 놓는다고 하였소 . 또 신학교수 한 분은 하시는 말이 이 목사는 세례 요한의 성품을 가졌더라고 . 또 다른 목사는 이 목사는 꼭 예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더이다.

거기 모인 모든 목사 , 장로 , 집사님과 일반 청년들이다 “ 이 목사는 육에 서 떠난 분이라 ” 고 말하더이다 . “ 또 신의 말이요 , 신의 기도요 , 신의 동작이라 ” 고 하더이다 . 그때에야 제 마음에 괴로움이 풀리고 기쁨이 생겼습니다 . 이때부터 내 귀에는 목사님의 설교가 들리는 것 같고 나의 피가 동하고 나의 영은 산 기운을 발하기 시작하였나이다.

저는 저녁 강설을 10 일만 하고는 곧 목사님에게로 가겠나이다 . 은혜 세계로 들어갈 길을 가르쳐 주세요 . 주님 품에 안기어 살수 있는 말씀을 들려 주세요 . 나의 기도는 주님을 괴롭게 하는 것뿐이요 , 나의 편지는 이 목사님을 괴롭게 하는 것뿐일 줄 아나이다.

상기 나는 은혜의 비만 맞으러 다닙니다 . 그래서 은혜의 비가 내려오지 않을 때에는 나는 고통을 느끼고 참말로 은혜의 기갈이 심해서 죽겠습니다. 은혜의 깊고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깊이 잠기어서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소서 . 시간이 급하여서 더 못씁니다 .

 

1931 년 7 월

김○선

 

 

 

 이○선 씨로부터

 

목사님 전상서

지금은 가장 고요한 아침입니다 . 인생의 갖은 죄악에 아직 물들지 않은 맑은 공기는 하나님의 위대한 자연의 신비로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에게 이와 같이 아름다운 우주를 맡기셨습니다 . 이 거룩한 하나님의 동산에서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뛰놀고 있는 우리야말로 행복스러운 자들이로소이다 . 옛적 아담과 하와가 살던 그 낙원이 지금도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사랑 속에 묻혀 사는 우리이지만 우리는 철없고 연약하여 육신에 약간의 고통이나 기쁨이 닥쳐올 때에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가 일생 사는 동안에는 예수를 은과 바꾼 가롯 유다는 몇 번 될 것이오며 닭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한 베드로도 몇 번 될 것입니다 . 그때마다 베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그 비분에 젖은 예수의 눈동자가 우리를 향하실 것입니다 . 또 1900 년 전에 못 박히셨던 그 흔적에서 다시 검붉은 피가 솟아 흐를 것입니다.

오 , 그러나 사랑 많으신 주님은 버리시지 않을 줄 믿습니다 . 주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 길을 떠나서 다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사오매. 그러나 의를 알고 악을 행하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 오 , 두렵습니다.

이 죄인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판대가 왔다 갔다 합니다 . 그 심판대에 미처 가기도 전에 입에서 토하심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 나는 덮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미지근한 자입니다 . 어찌하겠습니까 .

주님께서는 나의 영이 자라나기를 퍽 기대하실 것입니다 . 그러나 나의 가슴은 차고 차서 겨울과 같습니다 . 그러므로 아무 것도 소생치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 그렇지만은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사 신학교에 두신지 1 년이 넘는 오늘까지 중생하기를 기다리실 것입니다마는 이 몸은 육신에 속한 갖은 악을 다 행하고 있습니다 . 나는 교만하고 , 무정하고 , 더러운 입술을 가졌고 , 노를 발하고, 남을 시기하고 , 남을 헐뜯으려 하는 악인이로소이다 . 주께서 나를 벌 주시사 생명을 쳐도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 나의 머리는 아직도 마귀의 운동장입니다 . 아직도 회개하지 못하였습니다 . 옛날 바울이 다메섹 가는 길에 일시에 눈이 멀어지던 그런 벼락같은 불이 언제 나에게 떨어질런지요.

주님께서는 나를 회개시키려고 이런 기회 저런 기회를 주셨습니다 . 특별히 나 한 사람을 실습으로 이곳에 보낸 것도 주의 뜻이며 다시 공부할 길을 막으신 것도 나에게 깨달을 기회를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아주 소망이 없는 자가 되겠습니다 . 오 , 나는 어찌하리이까.

거듭나지 못한 자는 천국을 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 나는 천국을 보지 못합니다 . 순행을 마치고서 곧 참기와 설사를 겸하게 되어 지금은 방바닥 신세를 무한히 지고 있습니다 . 또한 이 병 가운데도 가르치시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 꼴사나운 모양으로 예배당에 가도 그냥 냉랭한 그대로 돌아오게 될 때마다 나는 무한히 슬픔을 느끼나이다.

목사님 , 저는 은혜 받을 소망이 없지요 . 내가 이렇게 안타까워할 때에 주님께서 거룩한 글을 내게 보내주셨습니다 . 목사님께서 주신 그 글입니다 . 내가 만일 영의 귀가 열렸고 영의 눈이 떴다면 나에게 친히 들려주시고 보여 주시련마는 내가 그렇지 못함에 목사님을 통하여서 나에게 권고와 책망과 기대를 내려 주셨나이다.

 

① 네가 몸이 평안하면 나의 몸소 받은 고생을 맛보지 못할까 하노라. 

② 나는 너의 영이 자라기를 기다리노라.

③ 너는 사람으로부터 가까이 하는 그만큼 나를 가까이 하라.

④ 사람과 사귀는 데는 말과 돈이 필요하되 하나님과 사귀는 데는 겸비한 태도와 열정 있는 기도가 필요하니라.

⑤ 너는 네가 배우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말라.

⑥ 내가 너를 인도자로 보낸 것이 아니라 배움이 있기 위하여 보내었노라. 

⑦ 너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나오게 하는 것을 승리라 하지 말고 너의 심중에 새로운 경험이 생기는 것을 기쁘게 알라.

⑧ 너는 남을 권고할 생각을 그만두고 먼저 동정적으로 고요히 그의 말을 들어 네게 오는 교훈을 밝히 깨닫고 붙잡으라.

⑨ 말로 권면하는 것보다 짧고 간절한 기도 한마디가 생명이 되는 줄 알아라.

⑩ 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라.

 

오 , 이것이 어찌 주님의 말씀이 아니오리까 ? 이것은 분명히 목사님의 손으로 쓰신 것이나 사실은 목사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받아 쓰신 것이라고 믿고 감격하오며 황공하옵니다 . 이번 떠나셨던 순행에도 많은 은혜가 내리신 줄 알고 감사하옵니다.

오 주여 , 나는 당신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곳으로 오기는 하였사오나 할 바가 무엇인지 몰라 그저 앉아있기만 하나이다.

주여 , 자비로우신 손으로 일으켜 세워 인도하여 주소서 . 이 두 달 동안에 주께서 주시는 맑은 공기와 햇빛과 아름다운 식물만 훔쳐먹고 달아나는 도적이 될까 두렵소이다.

오 주여 , 당신의 기대하시는 바 뜻을 조금이라도 이루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소원이로소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시 당신의 사자를 통하여서 무거운 책망의 채찍을 내려 주시기 원하나이다 . 아멘 .

 

1931 년 7 월

이○선

 

 

 

 박○신 씨로부터

 

경애하는 선생님 전상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는 없는 곳이 없으매 지금 여러 선생님들이 계신 그곳에도 있을 줄 믿습니다 . 여러분께서 지금 우거진 수풀 사이로 자연을 노래 하는 새의 음악과 끝없이 흘러가는 시내의 행진곡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찾아 노래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그 자태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전도자도 있으며 희생자도 있으며 예술가도 있으며 음악가도 있고 신앙가도 있을 줄 압니다 . 여러분들 다 자연 앞에 같이 머리를 숙이고 애통하며 내 사정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감사하며 노래 부르는 자가 되고 다같이 하나님의 특은을 풍족히 받으시기를 위하여 기도 드리나이다 . 이 부족한 자식도 이곳에서 한 가지로 머리를 수그려 간구하옵나니 , 주님을 찾으려고 삼방 ( 三防 ) 에 모여서 눈물로 간구하는 지도자들에게 주님의 성신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비옵나이다 . 그리고 이 부족한 종의 마음도 그곳에 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 < 중략 >

오 주님이시여 , 이 예술이 내 마음에 깊이 깊이 그려져 있어지이다 하고 묵도할 때에 시계의 두 시 치는 소리가 들려오더이다.

바람에 날려 내방에 춤추는 나무 그림자를 보며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 얼마를 지난 후에 어느 곳에선지 기도 소리가 내 고막에 부딪힘이 있더이다 . 그래 여기가 삼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를 잊었었습니다 . 조심 조심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우리니 성결교회의 새벽기도 소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한참 동안 창 앞에 서서 나를 잊고 있다가 나도 머리를 숙여 그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다시 침대에 오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일어나라는 종소리가 아래층으로부터 울려오더이다 . 이리하여 그 밤이 새니 밝은 날이 또 오더이다 . 이날을 또 어떻게 하면 주님을 슬프시게 안 할까 하고 생각될 때마다 내게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리 만치 마음이 민망하고 무거움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 원하옵는 바는 , 이 연약한 종을 위하여 기도 많이 해주시기 바라나이다 . 나의 신앙은 점점 식어가고 나의 생활은 허수아비의 생활로 되어가나이다 . 선생님 , 많이 기도하여 주옵소서 . 저도 이 식어가는 신앙을 뜨겁게 해보려고 곤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애를 쓰며 주님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는 것이올시다 . < 하략 >

 

1931 년 8 월 20 일

박○신 올림

 

 

 

 주선행 씨로부터

 

은혜가 풍부하신 목사님,

목사님 , 주 은혜 가운데 언제나 편안하심을 앙축 ( 仰祝 ) 하나이다 . 크신 은혜 가운데 댁내 안녕하심을 심히 듣고자 원하옵나이다 .  그간 목사님께서 가신 곳마다 은혜가 풍부하게 내리시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겠지요 . 이르시는 곳마다 진리의 소낙비가 내리었을 줄 믿습니다 . 오 목사님 , 이곳 있는 뭇 영들은 다 죽어 송장 내가 나는데 어찌하여 돌아보지 않으시나이까 ? 이 곳에 있는 뭇 영들은 목사님을 통하여 큰 은혜가 내린다는 말씀을 들은 그 시간부터 이 목사님 기다리기를 부모 잃은 아이가 부모를 찾아 애타는 것과도 같사옵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과도 같아서 그 그리워하는 광경은 차마 보기가 끔찍합니다 . 목사님의 말씀을 간접으로 듣고도 이와 같이 사모하는 것을 보니 이제 목사님을 직접 만나 교훈을 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상상키 어려운 큰 기쁨이 가득 찰 줄 믿습니다 . 지나간 여름에 제가 목사님을 사모하던 중 평양 명촌교회와 신암교회에서 목사님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사온바 받은 바 은혜를 감추지 못하고 자연히 위에 세운 성과 같이 드러나게 되오매 저의 집안과 이미 은혜를 갈망하던 남녀 신도들이 스스로 사모하며 목사님 오시기를 고대하게 되었나이다 . 그러다가 이곳 동 ? 서 두 교회에서 합의하여 또 제 직회와 당회까지 열고 목사님을 한번 모셔다가 부흥회를 여는 것이 좋겠다고 작정을 하였습니다 . 그리고 목사님 계신 곳만 알면 이곳서 전임 사람이 가서라도 모시어 오자고 작정까지 하였으나 목사님 계신 곳을 분명히 몰라 이때껏 우리 안주교회와 교인들이 애가 타서 죽어가는 중이올시다 . 기양교회에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그리로 제가 편지 하려다가 그만 평양으로 오셨다고도 하고 대보산에 계시다고도 하기로 태평 교회로 편지를 하였더니 이틀 만에 돌아오고 말았어요 . 그래서 그때 경성 댁으로 또 보내었습니다 . 그 편지는 돌아오지는 않았어도 지금까지 종무소식 ( 終無消息 ) 이올시다 . 그때는 부흥회 할 작정이 완전히 되지는 않았으나 될 줄 믿고 기다리

던 중 이제는 원대로 결정이 되었나이다 . 그 후 이곳 동 교회의 한 목사가 이 목사님께 편지를 두 번 보냈어도 답이 없고 감리사에게 목사님 보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사정 편지를 보냈어도 소식이 없다고 이제는 또 편지할 용기가 없다고 합니다 . 그러므로 다시 운동을 일으켜 본 교회 집사 김희학 씨와 최지화 목사와 동 • 서 양 ( 兩 ) 교회가 협동하여 양 교회 도장까지 쳐서 편지하면 회답이 있을까 등 여러 가지로 밤이 깊도록 의론도 하고 기도도 하였습니다 .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는 이미 은혜 받은 자와 은혜를 갈망하는 자들이 각각 개인으로 애원하기로 생각들이 되었습니다 . 그래서 이 부족한 자식도 붓을 들었습니다 .

그때 목사님을 뵈었다가 떠난 후 육으로는 나뉘어있지마는 저의 영은 늘 목사님을 따르고 있나이다 . 그리고 기회 있는 대로 집에서나 예배당에서나 혹은 산에 가서 밤을 새면서 기도하옵는바 언제든지 하나님께 조르기를 , “ 오 주여 , 당신의 종 이 목사를 안주교회로 보내시사 당신의 뭇 양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소개해주게 하옵소서 . 오 주여 , 가련하고 불쌍한 저의 영들은 주의 뒤를 따른다고 하여도 전부가 병들었사오며 당신을 끝까지 따라갈 기운이 없사오며 이 부족한 계집 종도 청산의 해골 모양이 되었나이다 . 오 주여 , 이 병신과 이 해골들의 신음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우리사 들으시고 당신의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에게 산 피와 생기를 넣어주시옵소서. 

그리고는 은혜 길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이 철없는 것들에게 밝은 길을 보여주고 그리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이것들이 바른 길을 찾지 못하여 끝없는 벌판에서 한없이 헤매다가 죽고 말겠나이다 . 오 주여 , 당신의 종을 이 곳에 보내주시옵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 아멘 .” 목사님 계신 곳 좀 알려주소서.

 

1931 년 9 월 23 일

주선행

 

 

 

 변종호 씨로부터

 

나의 경외하는 유일의 형님에게,

방금 형님의 글을 받았나이다 . 언언구구 ( 言言句句 ) 그 어느 것에서나 피 묻은 순교자의 절창 ( 絶唱 ) 이 아님이 없음을 느꼈나이다 . 걱정 마십시오 . 아우도 이제는 정말 깨달았습니다 . 몽롱한 초승달 아래서 끄덕끄덕 졸고 있는 기독신자가 아니고 ,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를 비통히 부르짖고 고개 숙여 운명하시는 예수를 원판에 찍어 현상인화까지 해놓은 사람입니다 . 이를 악물고 땅을 두세 번 친 사람입니다.

아우는 신을 보았습니다 . 이것은 어떤 특수 모형의 하나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니요 , 예수 자신이 남기고 가신 유혈의 자취를 문자 그대로 전승한 , 형식의 옷은 벗기어 낸 , 정통 기독교를 발견 체득하였다는 것입니다 .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 구원이란 “ 하나님 , 하나님 “ 하며 통곡하는 것도 아니요 , 사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황금길 천당에 가는 것도 아니라 , 예수의 인격적 감화로 말미암아 얻는 새로운 자각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사람의 인격적 개조가 즉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 밝은 양심의 참된 명령이 즉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또 그 양심을 슬프게 하지 않을 각오가 있으므로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자신합니다. 

‘ 사람 용도 ’ 란 안경을 통하여 예수를 보고 ‘ 독생자 예수 ’ 란 창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모를 보고 또 뛰어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은 ‘ 나 ’ 라고 믿습니다.

그날 밤 형님을 작별하고 오면서 차 중에서 아우는 얼마나 애를 썼는지요.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하시며 있는 의복 중에서 좋은 옷을 골라 입혀주시고 손에 돈을 한 줌 쥐여주시는 그 심경을 어떻게 하면 나도 붙잡을 수 있을까 해서요 . 그러던 차에 이곳 와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얻었으니 『 기독교의 신 건설 』 이란 것이었습니다 . 아우는 이 책 한 권에서 28 년간 의운 ( 疑雲 ) 가운데 헤매던 기독관을 참으로 통쾌하게 정해각득 ( 正解覺得 ) 하였습니다 . 형님께서 사람을 이 세상 누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애로 대접하시는 것 

이 부지중에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는 것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의미를 오늘 날 형님을 보고서야 정말 깨달았단 말입니다.

형님께서 아우 한 사람을 얻으신 것이 밤잠 안자고 울며 야단치는 기분에 춤추는 일시적 (?) 신자 여러 사람을 얻는 것보다 못하지않은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믿고 싶습니다.

나의 피는 지금부터 끓기 시작합니다 . 예수교가 미신적 우롱 ( 愚弄 ) 으로만 생각이 들 때에는 예수라는 두 자만도 끔찍이 내 눈에 귀찮은 존재이더니 한번 ‘ 이것이었구나 !’ 하는 생각이 들어올 때는 마태복음 전편을 앉은 자리에서 2 시간여에 독파할 수 있었으므로 봐서 내가 좀더 수양정진하고 주님께서 나를 불러 일으키신다면 내 믿음 그것도 절대적으로 고정강화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일에 내 몸을 바칠 수도 있으리라고 확신되나이다 . 형님 , 아현사건 , 그것의 내용을 아우는 잘 모릅니다마는 형님의 장래가 이리이리 되리라는 것을 저는 옛적에 미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형님이 피를 토하고 거꾸러지는 그 순간은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자식을 필요한 데 기용하려는 순간인 줄로 믿고 대기 중이올시다 . 만사에 염려 마십시오 . 오직 이 한마디로 저의 품은 바 포부와 각오를 대표해 두겠습니다 .

형님 , 당분간 진리의 소개를 좀 절약하시고 사람을 지도하실 때 좀 조심하시기를 바라나이다 . 때가 이르기까지요 . 진리에 인공 ( 人工 ) 을 가 ( 加 ) 하라는 것이 아니요 ,  산 송장들에게 가유 ( 訶諛 )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 더 큰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내 명을 좀더 연장시킬 필요도 없지 않을 듯 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병순의 병세가 시원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또 형님의 아현사건을 들은 나의 피는 몹시 끓습니다 . < 중략 >

아우를 위하여 더욱더 기도하여주시고 병순이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 많이 하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 근작 시 몇 편을 좌에 씁니다 . 

 

1931 년 10 월 4 일

 

 

기울어진 나무

모진 남풍 많이 부는 지방에 선 나무라 

아주 북편 쪽으로 기울어졌네 

나무야 곧게 서기 싫었으랴마는 

그 바람의 세력에 어쩔 수 없어!

 

어찌 노하랴

쌀밥 값 준 밥 속에 조밥 섞일 때 

나는 분개하였다 . 노하려 했다 . 

그러나 안 섞으려 고심했어도

안 섞지 못한 주부의 심중 살피고

감루 ( 感淚 ) 로써 목축이며 나는 먹었다 . 

조밥 먹고 젓패 우는 젊은이 보고

미안한 얼굴로써 내 밥 주고 가 

돌아앉아 조밥 먹는 노파를 보고.

 

어떤 기독신자

나는 어떤 기독신자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은 참된 양심은 

예배당 지하실에 맡겨두고

최신식 양심상회 ( 良心商會 ) 에서 사왔다는 

‘ 인조양심 ’ 을

100 여 원짜리 양복 속에 조심스러이

싸가지고 다니는 독신자 ( 篤信者 ) 를 보았어요 .

 

그 사람이 예배당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따라 가보았습니다.

들어가서 그 사람은 여러 신자들에게

제 양심을 구경시키고 또 설명까지 해주더이다 

그러자 지하실에 ‘ 양심 ’ 던지는 소리가 

소낙비 내리는 소리 같고

회당에서 없어진 신자들은 전부 

그 양심상회로 달려가더이다.

 

그래 나는 또 그들을 따라 양심상회에 가니 

저마다 먼저 사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이때에 내 귀에 들려오는 두 소리가 있었으니 

하나님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 

사탄의 손뼉 치는 소리!

 

시장 속의 예수

나는 잠이 안 올 때에는 일어나서

서울의 거리를 밤새도록 돌아다닙니다 

어느 날 밤에는 새벽 3 시경에 나는

‘ 게다 ’ 가 다 잠든 남대문 통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디선지 닭의 울음 소리가 내 귀에 들렸습니다 

이 빤빤한 콩크리트 울에 무엇을 먹고 살려고 

 

닭이 집을 지었을까 하고 나는 놀랬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알았습니다

그 닭이 남대문시장에 팔려와서 

죽기를 고대하는 닭이라는 것을!

잠깐 후에 내 눈물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 우는 닭이여 ,

너는 너를 죽이려는 칼을 품은 자에게 향해서도 

일어날 때라고 때를 알려주는구나!

죽는 순간까지 너는 네 직책을 다하여!

 

오 주님이시여 , 우는 닭이여 , 

나는 당신의 울음 속에서

‘ 원수를 사랑하라 !’ 는 예수의 목소리를 들었나이다 .

 

떨어지렵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내 마음도 떨어지렵니다

떨어지려는 내 마음을 붙잡아보려고 

나는 예배당으로 갑니다

희미한 내 그림자를 밟으며

먼지 섞인 모진 바람을 안고......

 

회개

‘ 회개 ’ 란 성냥을 그어 내 마음에 대니 

내 마음에 든 가연성의 물질이 모두 탑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금이라고 여러 번 싸두었던 것이 타고 

곱게 싸두었던 다른 보물도 타요!

 

나는 아깝고 원통하여 울었습니다 

울다가 그 불을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보물을 다 태워버리면 밥을 굶을 듯하여 

나는 그 불을 꺼버렸습니다.

 

타는 대로 모두 태워버렸으면 

성인 ( 聖人 ) 이 될 것을 

굶어 죽을까봐 속 ( 俗 ) 을

채 벋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 , 내 영

정열과 직감이란 살은 다 떨어지고

이지 ( 理智 ) 와 비판안 ( 批判眼 ) 의 싸늘한 뼈만 남은 

꼴사납고 열 없는 나의 영을 살필 때

가긍 ( 可矜 ) 하고 불쌍해서 나로서도 웁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마귀를 불러오고 

마귀가 찾아오면 하나님께 달려가 

하나님과 마귀를 좌우에다 놓고서

이 말에도 저 말에도 나는 안 속는다고 

하나님의 말 듣고 마귀께 평구 ( 評求 ) 하고 

마귀가 유혹하면 신께 보고만 하여 

이 말도 내겐 무용 저 말도 안 믿겠다 

아무런 말이라도 들어 믿을 염 ( 念 ) 않고 

천군 나팔 불어도 달려갈 열심 없고 

마귀 눈짓하여도 가볼 생각 안하고 

손에다 저울대만 쥐고 앉아있어서 

달아 보기만 하는 얄미운 내 영이라!

 

하나님이 책하시면 마귀 뒤에 가서 숨고 

마귀가 삼키려면 신께 구조 청하는

여기 붙고 저기 붙는 박쥐와도 같은 영

천 ( 天 ) 에서도 지 ( 地 ) 에서도 다 살려는 양서류 ( 兩棲類 ) 

하나님을 조롱하고 마귀를 코웃음 해 

여기서도 저기서도 몰려 쫓기는 내 영!

 

아무 짓을 다 한대도 지금이야 뭘 하랴마는 

세월이 흘러가서 이 육신이 죽어져 

천당과 지옥이란 어느 한 집 속으로 

안 들어 가면 안 될 그때가 이른다면 

어디서나 내밀치는 뭇 접할 곳 없는 영! 

얄밉고 가증하고 요망하던 내 영은 

누구 찾아갈까요 어디 찾아갈까요

눈 오고 하늬바람 혹혹 부는 그 밤에!

 

잘못인 줄 몰라서 그러기나 했다면

그래도 어느 신이 가석 ( 可惜 ) 히 볼지나 

정신이 말똥말똥 눈이 올농 하여서 

가장 똑똑하다면서 이 모양으로 사니 

내 영을 어떻게 해요 알고 망하는 이 영 

이 영을 어찌해요 오 , 그날 그때에 !

 

거룩한 희생자

조반을 먹으며 나는 한 거룩한 물건을 보았습니다 . 꿰진 빗자루 ! 

그는 내 집에 와서 더러운 먼지와 

지저분한 모든 것을 치워주느라고

살이 떨어지고 배가 꿰지고 뼈가 부스러져

내 집에 들어올 때의 성성하던 그 모양은 없어지고 

꼴사나운 뭉수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 , 너 , 거룩한 희생자 !

진실한 봉사자 ! 꿰진 빗자루 !

 

주여 , 나를 한 개 빗자루로 만들어주소서

그리하여 마귀가 뿌리는 악독한 먼지를 이 지상에서 쓸어내는 일에 참가하게 하소서

그 일에 내 몸이 꿰지고 달아져 청결통에나 벽 아궁에 들어갈 때까지 

나의 사명을 완전히 다할 수 있는 충직한 빗자루로 만들어주소서!

 

직책

전주는 언제든지 서있어서 제 직분을 다하고 

레일은 언제든지 누어있어 제 사명을 다하더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인생으로서의 

직책을 다하겠습니까?

 

결심

동무들끼리 모여 앉아 죽은 동무의 옛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에게는 한 가지 결심이 굳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원망이나 욕설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겠다는 결심 ! 그 결심 말이에요 !

 

나의 기도

목사 강도 들으며 예배할 때도 내 마음은 해변가에 물 구경하고 

새벽기도 한다고 회당 가서도 하나님 한 번 찾고는 후에는 딴 생각 

전후와 좌우에서 높아 가건만 신 앞에 참회하는 통곡의 소리

내 마음은 더욱더욱 딴 길로 들어 ! 이 속에 시재료 ( 詩才料 ) 나 하나 없을까 ! 

예배에도 기도에도 막 침입하는 시상이란 이것이 사탄일까요! 

오 , 두렵소이다 사탄이라면 나는 어찌 이것을 버려볼는지 ! 

내 믿음 내 힘으론 못 버릴 듯해요 오 주여 , 이 몸을 돌아보소서 

주의 일을 한대도 나는 시로써 마의 종이 된대도 나는 시로써! 

나에게는 아무 물건 아무 힘 없소 변변치 못한 범속 ( 凡俗 ) 의 시상 

이것이 나의 힘의 전부이외다 이것이 내 소유의 전부이에요! 

오 주여 , 이 몸을 불러주소서 오 주여 , 이 혼을 감시하시사

한 구절 한마디가 모두 주 뜻에 어그러짐이 없고 신성 ( 神聲 ) 이 되어

말라가는 이 강산 주린 영들께 일시반 ( 一匙飯 ) 일적수 ( 一滴水 ) 가 되게 하여 

주소서.

 

성신의 불에

우리는 청려 ( 淸麗 ) 한 자기 ( 磁器 ) 에 흔히 정한 음식을 담아 먹습니다

그러나 불에 구어내기 전의 자기 , 즉 토 ( 土 ) 물질로 빚어만 놓았을 때의 그릇에 담아주면 먹겠습니까 ? 

담을 수조차 없지 않아요 !

 

우리들의 이 속진 ( 俗塵 ) 에 꽉 묻힌 몸은 흙으로 빚어만 놓은 토괴 ( 土塊 ) 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고의 불 성신의 불로 완전히 구어 내어야

완전하고 정하고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늘에서 내리는 복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을 담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OZK 씨로부터

 

목사님 , 한창 때에는 목사님더러 기도해 달라고 조르며 산밑으로 산꼭대기로 헤매더니 오늘은 목사님을 두고 내 마음이 이다지도 아픕니다 . 이 아픔을 목사님 말씀처럼 그대로 나타낼 수 있으면 좋을 번 하였습니다 . < 중략 > 

목사님 , 너무 기가 막혀 옛 일을 회고하며 되지 않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 다.

 

은혜가 사무친 골방에 만난 목사님 3 일 종소리 들릴 때 하도 기쁘더니 

기도의 힘으로 쌓아두고 가시던 목사님

한 시간의 설교는 진리로 꿀로 오묘로 천만년이나 기억하게 할 듯이 새겨주고 가시던 목사님

 

같이 맞던 장마비 같이 빠졌던 항수물 같이 베어 잡았던 그 나뭇가지! 

그냥 맞았던들 그냥 빠졌던들 그냥 잡고 갔던들

이 같이 속된 세계로 또 와 속다운 소문 중에 살지 않을 것을!

 

해금강의 짠 바다 물은 밀려들어올 때의 용기와 뒤집어 씌울 때의 결심은 다 어디로 쓰러져버리고 돌만 해변가에 밀어놓고 그만 물러갔단 말인고! 주머니에 넣고 온 조개 껍질은 오 , 속되다 속될 뿐이로다

하나님의 사랑 , 주님의 품 , 성신의 뜨거움 , 기도의 끄는 힘 , 십자가 , 희생 , 훼방!

남들도 나같이 생각하는지 ! 잘사는 재미도 좋기는 하지만 위험한 걸음도 이 삶이러라

 

오 , 목사님 , 제 가슴 속에 흐르는 슬픔을 목사님 아십니까 ? 허무한 세상 뜬 세상 변하는 세상에 살아온 고개고개 지긋지긋하여 몸서리치더니 지금 가는 이 고개는 또 어디로 갑니까 ? 차디찬 태산이요 , 안개 낀 준령이외다 . 그래서 춥고 떨리는 이 고개건만 내가 나선 길이라 가고 있습니다 . 오 주여 , 보호하소서 . 오 , 목사님이시여 , 인도하소서 !    < 하략 >

 

1931 년 11 월 10 일

 

 

 

 

 김성실 ( 金誠實 ) 씨로부터 29)

 

< 전략 >

오 주여 , 당신은 외로운 주님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 이제 이것이 당신 발 앞에 엎드렸사오니 당신의 눈물과 땀을 나에게 주옵시고 당신의 피를 내 심장에 부어 넣어주옵소서 . 그리하여 그 피가 내 심장에서 돌아 그 활력으로 내가 활동케 하옵소서 . 그리고 또 진실로 진실로 주를 동정하며 주를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 당신의 피가 움직이고 당신의 땀과 눈물이 흐르매 나에게는 사랑이 있고 담력과 용기와 열심이 생길 것이었나이다.

오 주여 , 이것이 참으로 가련한 물건이올시다 . 쓸데없는 이것을 위하여 수고와 애타심을 그만두고 괴로워하심을 중지하소서 . 그리고 그저 이것을 당신의 전체로 화하여 주옵소서 . 이것이 만일 당신을 위로하지 못하고 당신을 사랑치 않고 괴롭게 하거든 주여 이것을 죽여주옵소서 . 이 땅과 이 백성에는 죄악이 가득 차서 의인의 피를 구하고 있사오니 오 주여 , 주님이 지시던 그 십자가를 지고 이 땅에 ○○○ 의인을 보내어주시옵소서 . 아멘 .

 

오랫동안 육으로 서로 먼 곳에 있음으로 인하여 소식도 알지 못하고 있었나이다 . 많은 꿈 가운데서는 목사님의 사랑스러운 회색 두루마기 날개가 저를 덮어주고 안아주심이 있더이다 . 감사하올시다 . 이 미천한 자식으로서 목사님을 그렇게 잊지 못하는 것과 목사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을 본 저는 무엇이라고 감격할지 말도 없고 눈물도 없을 뿐이올시다.

주의 뒤를 따르는 무리에게는 멸시와 천대와 조롱뿐이 있을 것이었나이다. 그러나 목사님의 마음 속에는 성령의 기쁨이 계심에 아무런 모욕이나 고통도 능히 견디실 줄 믿습니다 . 고통 중에도 고통 어려움 중에도 가장 어려운 일이 주를 따르는 일인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언제나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 하옵나이다 . 오 , 목사님 ! 할렐루야를 노래하면서 영원히 주를 찬양하십시다 . 아멘 .

 

1931 년 11 월

김○실

 

29) 김성실 : 강원도 고성의 수도자

 

 

 

 김성실 씨로부터

 

형님의 열혈을 주가 잡아 쓰시사 당신의 영광의 향기를 전 조선에 드러냄 [ 顯現 ] 을 나는 앉아있으면서도 사방으로부터 오는 소식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 며칠 전 여행 중에도 나는 형님을 경성서 보았으나 , 주가 허락하지 않는 것 같으므로 인사하지 않고 남행하여 청주까지 갔다가 어제 돌아와 보니 반가운 형의 편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더이다 . 반가이 뜯어본 나의 영은 말할 수 없는 성열 ( 聖悅 ) 에 젖어 감사를 올리었고 또한 다대한 충동을 받았나이다.

아 , 오묘하신 주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지로다 . 감사하리로다 ! 복이 있을지어다 ! 조선아 , 네게서 영과 생명의 운동이 맹렬히 일어나려는 것을 보았으니 , 아 , 나는 대만족이로다 . 주님의 크신 복이 이 민족에게 속히 임하실 줄을 확신하나이다.

형님은 현대 목사 중 한 사람이었으나 그들과 같은 목사가 되지 않게 하시고 그 중에서 특별히 선택하시어 현대 교회 중에 사로잡혔던 하나님의 뭇 자녀들을 구해내는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 이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요 , 주님의 오묘하신 섭리이었나이다 . 주님이 하시는 일은 마땅히 측량하지 못할지로다 . 그저 찬송하고 그저 감사할 뿐이로소이다 . < 중략 >

사탄의 세상에 진리를 전파하였으니 어찌 핍박이 없으리이까 . 그는 당연한 일이었으니 형이 사방에서 더 큰 박해를 받는 진리의 사자이기를 나는 간절히 원하나이다 . 환영을 물리치고 핍박을 찾아가서 박해를 당하여 죽으시오 . 진리를 전하고 사랑의 피를 쏟고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었나이다.

이 인생들은 우리의 입으로 나오는 복음의 소리만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피가 예수의 피와 같이 십자가에 흘려주기를 갈망하고 있나이다.

형이여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게 삼키어져서 우리의 모든 것이 예수화 ( 化 ) 하여야 하겠나이다 . 예수가 우리 내적 생활의 원리원칙이 되고 우리 육의 생활의 원리가 되는 데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나이다 . < 하략 >

 

1931 년 11 월 16 일

 

 

 

 김○○ 씨로부터

 

존경하옵는 목사님 전

오래오래 사모하오나 선생님의 안부나 그 무엇을 듣지 못하여 우울하기 끝없더니 오늘 안우 ( 安友 ) 를 만나 세세한 사연 듣사오니 반갑기 끝없으면서도 한편으로 인정을 통하여 쏟아진 눈물도 적지 않습니다.

선생님 , 저는 지금 깊은 밤을 당하여 음부에 거하면서 동천 ( 東天 ) 이 오기만을 고대하옵고 지난 1 년의 모든 일을 통하여 주님의 오묘하신 지도를 기다리고 고요히 묻혀있나이다 . 지금 이 자리는 바울의 3 년 광야로 아옵고 고요히 주님과 같이하나이다 . 사랑하던 내 집 , 단란하던 내 교회 지금 어디 있는지 . 나의 전신에는 상처가 가득하여 마른 눈이 젖어 있을 뿐입니다 . 오 , 꽃이 피려는데 비바람이 무슨 일이며 가을 달이 맑으려는데 운하 ( 雲霞 ) 는 웬일인고 . 지금 저는 고독으로 벗을 삼고 조소로 집을 삼아 소일하고 있사오니 이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며 생명의 첫 걸음이었던가요?

오 주님 , 암만해도 어서 오셔야겠습니다 . 주님의 이름이 너무 천하여지고 더러워지고 욕을 보았으니 어서 주님은 오셔야겠습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어서 오셔야겠습니다 .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이 억울한 도탄에 빠졌으니 주님은 어서 오셔야만 하겠습니다 . 오 주여 , 어서 속히 오시옵소서 . 진리를 사모하는 당신의 무리들이 암흑 중에 헤매오니 주 님은 어서 오셔야만 하겠습니다 . 이 땅 위에 거친 파도를 꾸짖으시고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심히 바라는 바이올시다.

목사님 , 언제나 만나오리까 ? 언제나 시원한 길을 걸으오리까 ? 목사님 , 저 훼방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하오리까 ? 바라옵나니 나의 사랑하는 목사님께서는 이미 가지셨던 주의 ( 主義 ) 와 신앙을 폭포가 내려 붓듯 대중에게 부어주소서 . 그리고 현재 불완전한 교회 제도만한 세력으로 띠나운쓰를 해주세요 . 오 , 나에게는 그런 신앙과 주의를 가짐이 없기 때문에 저들을 원망도 못하고 혼자서 마음과 육신을 썩힐 뿐입니다.

목사님 , 어서 좀더 용감하여 목사님이 본 그 예수를 설교하시고 전파해주소서 . 그러고서 몇이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생활을 하는가 봅시다 . 또 저 불완전한 교회의 트집난 곳을 바로잡아 기워봅시다 . 목사님이 이런 주의에서 나가신다면 저는 한번 뼈를 갈아서라도 이런 인물의 후원을 해드리고 싶 습니다 . < 하략 >

 

1931 년 12 월 27 일 밤

김○○ 상서

 

 

 

<5 부 : 받은편지 >

 

제 4 장

1932 년

 

 

 박 SC 씨로부터

 

주여 , 이것은 아직도 육 ( 肉 ) 에 속한 것이로소이다 . 혈기에 속함을 면치 못하겠나이다 . 범사에 감사하라 , 항상 기뻐하라 하신 성훈 ( 聖訓 )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떠한 경우와 때를 따라서는 섭섭이라 , 불쾌라 , 불평이라 , 이러한 분자가 어느 구석에 숨어있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나옴을 당하게 되오니 이 어찌 육에 속한 것임을 증명함이 아니겠습니까 . 아픔에도 편함에도 만남에도 떠남에도 삶에도 죽음에도 항상 기뻐만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 불쌍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이 육에 속한 것을 아주 죽여주시옵소서.

주님 , 이 육정이란 구속에서 아주 놓임을 받지 못한 이것을 자비로 보시옵소서 . 간절히 비옵나니 영으로서만 살 수 있는 것 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 주께서 보내셨다가 주께서 데려가시는 사람사람의 이별보다 우리들의 영이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지나 않을까. 주께서 나와 또 교회 모든 부모형제들에게서 멀리 떠나가시면 어떻게 할까 . 이것을 위하여만 염려하고 눈물 흘리게 하옵소서 . 오 주여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우리를 떠날지라도 오직 당신만이 떠나시지 말아주옵소서 . 영원히 ! 영원히 !

삶 , 명예 , 지위 , 부귀 , 영화 …… . 그 무엇 다 떠나갈지라도 오직 주님만이 나와 같이 계시면 나는 가장 행복스럽고 가장 기쁘고 가장 만족한 생을 맛볼 수 있는 큰 성공자가 되겠나이다 . 하오나 이 못생기고 변변치 않고 누추한 이 자식이 감히 주와 함께 하기를 요구하는 것부터 너무도 황공하고 부끄러운 일임이 느껴지나이다 . 그저 이것이 제 마음에 있는 간절한 소원임을 아뢰는 바이오며 주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힘입어 감히 원하는 바이올시다. 

선생님 , 우리의 생활은 전부가 다 주님의 섭리라고 믿는 가운데서 이번 선생님께서 인천 오신 것은 더구나 하나님 아버지의 경륜이었음을 감사하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성신께서 주의 종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신 결과로 시들어 죽어가는 모든 가련한 영들에게서 새 생명의 움이 돋기 시작하였음은 참으로 기쁜 일이오며 너무도 감사한 일이올시다 . 요새 부흥회에 한 번이라도 참석하였던 사람은 누구나 물론하고 그 마음에 이상스럽게 움직여지는 힘이 일게 되었사오니 이 어찌 성신의 역사가 아니겠나이까 . 예배당에도 다니지 않고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앎은 고사하고 기독교를 크게 반대하고 있던 여자야학 선생 중 청년 형제 한 분이 학생들을 앞에 놓고 부흥회에서 얻은 감상을 이야기하며 예수께서 누구이심을 지금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을 증거하면서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것같이 이야기함을 밖에서 듣는 저는 감격에 넘쳐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오 주여 , 당신의 종을 통하여 저희들에게 내리신 은사를 생각하오니 그저 감사한 눈물이 흐를 뿐이로소이다 . 주여 , 어디든지 그가 이르는 곳마다 성령의 불길을 내리시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 새 인간들이 뒤를 이어 수없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 아멘 .

목사님 가신 그 이튿날 새벽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소리는 그 전날보다 더욱 열렬하였습니다 . 매일 새벽 계속하여 모입니다 . 총총 ( 悤悤 ) 하여 긴 말씀 드리지 못하옵나이다 .

 

1932 년 1 월

박CS

 

 

 

 장○성녀 씨로부터 30)

 

사랑하는 주님에게,

어느 때든지 심히 그리운 나의 주님을 어느 때나 만나 볼 수가 있으리오. 이 게으른 , 이 여식 ( 女息 ) 에게 축복의 손길이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 그리하여 이 축복의 손길로써 이 조선강산 , 시들고 마르고 죽은 이 강산에 새 움이 돋아 다시 자라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게하옵소서 . 가장 주님을 아노라고 못하고 가장 기도를 열렬히 못하는 이 여식이오나 주님께서는 항상 나의 중심에 와계시옵소서 . 외양으로나 형식으로 아무리 주를 부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오 나의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 당신은 언제나 항상 나의 중심에 계시어 주옵소서 . 이 여식은 육의 양식을 얻으려고는 산과 들로 허덕 거리며 다녔으나 영의 양식을 찾기 위해서는 손발 한

번도 꼼짝하지 않았나이다 . 그리고 세상 지식을 얻으려고 학교에 매일매일 다녔사오나 아버지를 알기 위하여는 적은 노력도 하여 본 일이 없었나이다 . 오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 이제부터는 모든 것 다 버리고 다만 주님의 지식과 총명을 얻기 위하여 애쓰게 하여 주옵소서 . 남이야 미쳤다고 하든지 바보라고 하든지 나는 주님을 향하는 마음 더욱더욱 뜨겁게 하시옵고 미쳤다면 더욱더욱 힘을 내어 주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오 주여 , 남이 보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 가장 고요한 중에서 주님을 찾아보아야만 하겠습니다 . 사람 보게 남을 도와주는 것도 형식외양이올시다 . 은밀한 중에 남모르게 구제하여야만 하겠습니다 . 가장 잘 지켜야 할 계명은 순종하는 것이오니 아무 사람에게든지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오 주여 ,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던들 우리의 생명은 다 없어졌을 것이로소이다 . 당신은 세상에 오실 때에 말구유에 나시었고 당신의 일생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주시는 데 허비하셨습니다 . 우리를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피땀을 흘리시면서 애통하고 슬퍼하실 때 바위를 주님의 기도상으로 삼고 손으로 두드려서 손에서 붉은 피가 흐르셨지요 . 험한 산길을 밤중에 다니실 때 옷이 찢기고 살이 떨어진 적이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 주님의 그 고생 , 그 사랑 , 그 기도에서 우리의 생명은 얻었습니다 . 참으로 우리의 생명은 거기서 얻어진 것이올시다.

그러나 메시아 오기를 기다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던 그 자식들도 마지막에는 모다귀와 망치로 예수의 손발을 십자가 형틀에 못박고 말았습니 다 . 얼굴에 침을 맞으며 온몸을 창으로 찔릴 때 얼마나 억울하고 아팠겠습니까 . 그러나 주님은 그 고생과 멸시를 참고 이기시어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그러하오매 나는 주를 따라가야만 하겠습니다 . 산이든지 , 들이든지 , 불 속이든지 , 물 속이든지 , 주를 향하여 나가는 길이라면 나는 용감히 나가야겠습니다 . 오 주여 , 나는 아직까지 모다귀와 망치를 들고 있습니다 . 나는 이것을 언제나 버릴 수가 있을는지요 . 나를 적은 먼지 하나로 만들어서라도 주님 계신 모퉁이에 두어주시옵소서 . 죄 중에 헤매는 이 여식으로 하여금 고요한 중에서 고요히 주님만 찾아보게 하여주시옵소서.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 다니면서라도 만족을 얻어보고 싶습니다 . 주님은 어느 곳에 계십니까 ? 주님 계신 곳 찾아가겠어요 . 주님의 사도 어디 있습니까 ? 그 사도를 여기 오게 하여주옵소서 .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버림을 당하는 주의 사도를 , 오 주여 , 보호하고 붙들어주소서.

나도 지금 버림 받는 여식 되게 하옵소서 . 미움을 받는 여식 되게 하옵소서 . 도적 , 살인 , 강도질 한 사람의 죄도 다 내게 입혀주옵소서 .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싸우는 사람의 죄도 다 내게 입히게 하여주소서. 나는 가장 멸시와 버림을 받게 하옵소서 . 

남에게 짓밟히고 채여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더라도 오직 주님만은 찾아볼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은 산에도 뜰에도 바다에도 죄인에게도 다 나타나시지 않습니까 . 나도 한 틈에서 그 사랑 받을 수 있게 하옵시고 주님 은혜 만만분지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게 하옵소서 . 나는 소금의 직분과 등불의 직분을 영원토록 잘하게 하옵소서.

오 주님의 얼굴 , 주님의 음성 , 당신 모양이 심히 그립습니다 . 언제나 당신의 모양을 볼 수가 있사오리까 . 어서 속히 속속히 오시옵소서 . 이 어린 자식 버리시지 마시고 주님을 만나는 길 빨리 가게 하여주옵소서 . 주님의 공로 의지하여 기도 드리나이다 . 아멘 .

 

1932 년 오늘까지도 올라가신 주시여 , 왜 안 옵니까

날마다 밤낮으로 보고 싶어서 우리 주님 계신 곳 가고 싶어요 

나 주님을 뵌 지 너무 오래서 사랑하는 주 얼굴 심히 그립소 

이 밤이 지나가고 해가 뜰 때면 사랑하는 내 주님 돌아옵니까 

보고파요 보고파요 늘 보고파요 나의 신랑 예수님 늘 보고파요 

예수님 내 예수님 언제 옵니까 예수님 내 예수님 언제 오세요.

 

목사님이여!

목사님 , 주님 은혜 중에 평안하신지요 나의 그리운 목사님 언제나 만나보오리까.

 

우리 다시 만난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가는 데마다 보호하며 지켜주시기를 바라네 

오 주여,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위태한 것 면하게 하고 품어주시기를 바라네 

오 주여,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세상에서 떠날 때에 영접하시기를 바라네

 

목사님 이것 보시고 회답하여주시옵소서 . 나의 목사님 , 꼭 회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나이다 . 그리고 주님의 힘이 목사님이 가시는 그 험한 길을 무사히 걸어가게 해주시기 비옵나이다 . 아멘 . 오 보고 싶은 목사님 , 언제 우리 안주에 또 오시겠습니까 .

 

1932 년 3 월 

장칠○녀 상서

 

30) 보통학교 5 학년생이 보낸 편지

 

 

 

 이호빈 씨로부터

 

용도 , 종호 두 분 보시오 .

용도 군의 편지는 3 월 28 일에 용정에서 보았고 변 선생님의 편지는 오늘에야 받았소이다 . 박 군과 동행하여 3 월 30 일 아침 용정을 떠나 4 월 1 일에 이 곳에 도착하여 3 일부터 사경회를 보는 중입니다 . 한국보 ( 韓國輔 ) 전도사와 3 인이 교사가 되어 진행하는데 은혜가 많습니다 . 혼춘 ( 琿春 ) 서도 오고 동만 ( 東滿 ) 에서도 많이 왔소이다 . 이 흉년에 아사 ( 餓死 ) 도 불구하고 모인 이 무리들에게 크신 은혜가 내려야겠습니다.

오는 11 일까지 마치고 13 일 출발하여 혼춘성 ( 90 리 ) 으로 가서 15 일부터 개최 되는 주교 ( 主校 ) 강습에 참석하려고 합니다 .  김준옥 ( 金俊玉 ) 목사와 박인덕 , 이효덕 , 양 ( 兩 ) 여사가 들어오신다고 합니다 . 모두 감사한 일입니다 . 그런데 나의 사면 문제도 그때에 완결될 것이외다 . 배 감리사님 31) 이 그때에 오셔서 결정지을 것이외다 . 늦어도 9 월까지는 사면될 것이외다 . 그래서 50 원짜리 집 한 채를 샀습니다 . 집에서 학생 하숙이나 해볼까 해서 , 몸채 6 간 , 사랑채 2 간 집을 50 원에 샀습니다 . 가족들도 다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 이제부터 나도 고생 맛을 좀 보아야겠습니다 . 우리 주님께서 ,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당하신 그 고생의 일부를 나도 좀 당해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변 선생께서 대판 ( 大阪 ) 에 사진관을 차리시고 거기에 자리를 잡으시겠다니 나의 길이 열리는가 하여 기대됨이 큼이올시다 . 선생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으시면 나도 그리로 가서 성경연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 대판에 못 가게 되면 서울 방면으로라도 가야겠지만 , 다 되지 않으면 신 ? 구약을 싸지고 산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이것이 원칙이겠지요 .

변 선생 , 대판 가기 전에 용도 군과 함께 한번 입간 ( 入間 ) 하소서 . 아니면 내가 나가서라도 의논을 좀 하고 싶습니다 . 나의 퇴임은 이번 가을까지는 꼭 결말이 지어질 것이오니 기도하여 주소서 . 식구들의 처지가 무겁사오나 주님의 섭리에 맡기고 안심합니다 . 대판이냐 , 서울이냐 , 심산 ( 深山 ) 이냐 , 어디로 가게 될는지 오직 주님의 뜻대로만 될 것이오매 지시만 기다릴 뿐이외다 . 혼춘성 서산외 ( 西山外 ) 감리교회로 회신해주십시오 . 22 일까지는 거기 있겠습니다.

 

1932 년 4 월 5 일 

경신향 ( 敬信鄕 ) 구사평교회 간도 형

 

31) 배형식 ( 裵亨湜 )(1874~1955): 동만 ( 東滿 ) 지방 감리사 . 독립운동가 . 1918 년부터 만주선교

 

 

 

 송창근 씨로부터 

 

시무언 아우님 전

전번 평양 오는 길에는 너무 바쁘기도 하고 만났대야 조용히 이야기하거나 함께 기도할 시간도 없겠기로 봉애와 영철이만 보고 왔소 . 우리는 이곳까지 잘 왔소 . 와서 여섯 식구가 한간 반 방을 얻어서 살아가는 중이외다 . 집은 좀 좁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렇게 좁고 더러운 방에도 주님께서 함께 계신 줄 믿으니 마음이 기쁘고 즐겁기 한이 없습니다.

부임하는 벽두에 3 일을 계속하여 장례식을 치르고 그 외에는 교우의 집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 가는 데마다 거의 다 “ 아 , 선생님이 이용도 목사님의 형님이시라지요 ” 하면서 나를 기쁘게 영접하는 것이 , 곧 아우님이 남기신 신앙의 높고 아름다운 덕이외다 . 아우님은 크외다 . 나보다 훨씬 크외다 . 까닭은 아우님의 마음속에 크신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곳 와서 기도하시는 형제자매들을 많이 만나보았소이다 . 세상이 저들을 시비하고 누르고 메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도맡아놓고 받는 저들임을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 복이 이르시옵소서 . ‘ 어리석다 ’ 하고 , ‘ 약하다 ’ 하고 , ‘ 무식하다 ’ 하는 저들에게 복이 오시옵소서 . 아멘 . 아멘 .

언제 한번 정 보고 싶으면 서울로 가겠나이다 . 이 다음에 시간의 틈 있는 때를 알게 하여주소서.

우리 있는 데 와서 몇 날 쉬어 가라고 하고 싶은데 이곳 형제와 자매들의 너무 기다리는 모양이 , 오기만 하면 나는 아우님을 구경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한번 가서 전후사 ( 前後事 ) 를 의논하고 이후부터는 좀더 쓸 데 있는 전도인이 되고 싶으외다.

 

1932 년 4 월 15 일 

평양에서 만우( 晩雨 )

 

 

 

 김인서 씨로부터

 

주님의 진리와 은혜 중에 평안하시옵소서 . 형님 , 우리는 수난 중에 있습니다 . 그리고 나는 실수도 하였습니다 . 평양노회는 기도를 제한하는 악법을 통과하였고 저는 거기 대하여 애 ( 愛 ) 를 전 ( 全 ) 치 못한 일이 있습니다 . 형제 들도 한때는 격분하였으나 지금은 차차 안정되어집니다 . 원하옵기는 , 형님이 쉬이 한번 오시어서 형제들과 저를 위로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평양노회에서 통과된 악법

① 타교파 강사 제한 ( 형님을 상대 ) 

② 조용히 기도하고 떠들지 말 것

③ 무인가 단체 해산 ( 우리들 기도의 동지 모임 상대 ) 

이것은 채필근 학사 , 남궁혁 ( 南宮爀 ) 박사의 안 ( 案 ) 입니다 .

형님 , 교회가 이렇게 몹시 망할 줄은 몰랐습니다 . 형님 평양에 속히 한번 오시옵소서.

 

1932 년 4 월 17 일

 

 

 

 이호운 ( 李浩雲 ) 씨로부터 32)

 

목사님 , 이번 길에 주님께서 큰 불을 내리실 것을 믿습니다 . 육신편 ( 便 ) 으로는 대단히 곤고한 일이지만 신령상 은혜로 볼 때 많은 영을 구하실 기회를 또 허락하심을 주께 감사하오며 목사님의 육체와 이번 부흥회를 위하여 기도하옵니다 . 이왕 시작하신 바에는 이번에 그 결단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 주께서 목사님을 통하여 이번 기회에 들어내고자 하시는 바를 충분히 다 들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육에 속한 몸인 고로 염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 더위에 밤을 새우시느라고 땀은 얼마나 나시며 몸은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 의복이 땀에 빠져 살에 들러붙었을 것이 잘 상상됩니다 . 육신으로는 목사님은 충분히 가련한 사람이올시다 . 아주 다 죽은 사람이지요 . 그러나 ‘ 요단 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 아 , 우리의 기쁨 , 우리의 승리는 요단 건너편에 있습니다.

저도 주님을 위하여 몸 바치기를 원합니다 . 평안과 영광과 칭찬을 요구하지 않사오며 주께서 지고 가는 십자가를 요구합니다 . 골고다까지라도 가기를 원합니다 . 옛 성도들이 졌던 십자가 , 지금 목사님이 지신 십자가를 저도 지려고 하옵니다 . 오로지 저도 주님 위하여 몸 바칩니다 . 주님 위하여 살고 일하고 죽기를 원합니다 . 주께서 저의 약함을 담당하사 주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나를 붙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학교 일은 바로 되었습니다 . 학생 전체가 다 그냥 공부하게 되었고 , 박 양은 최리 선생이 도와주고 오분야 ( 吳粉也 ) 양은 1 년간 자비로 되고 저는 교비로 되었습니다 . 주께서 저를 택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 그리고 신영리에서는 벌써 도배 다하여놓고 이사해 나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속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어느 날 오시겠습니까?

 

1932 년 6 월 25 일 

경성부 현저동 산 12 의 15 송봉애 방 , 이호운 상

 

32) 이호운 (1911~1969): 협성신학교 학생 . 감리교신학대학 교수 . 목원대학교 학장 . 

                                     이호빈 목사의 4 촌 동생

 

 

 

 원○서 씨로부터

 

경배하는 오빠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넘치는 은혜와 평강이 믿음으로 얻으신 사랑하는 오빠에게 충만하시기 원하나이다 . 우리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왜 그렇게도 험하옵나이까?

내가 처음으로 멋도 모르고 주를 따르기 시작할 때에는 예수님 가신 그 길은 평안하고 호화롭고 좋은 길인 줄로 알았더니 이제 알고 보니 고생의 잔, 죽음의 잔을 붙들고 가는 길인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실망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다시 원기를 내어서 약하고 추한 이 몸이나마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였나이다 . 왜 그런고 하니 비록 고생과 수고와 핍박환란은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 뒤에는 생명에 넘치는 평화와 사랑과 영생이 있는 까닭이로소이다.

내 어찌 썩을 생명을 아껴 참 생명을 구하지 않으며 찾지 않겠나이까 . 이제 나의 생명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바꿔지고 나의 불의가 예수님의 의로 바꿔지고 나의 더러운 것이 주님의 정하신 것으로 바꿔지고 나의 피가 주님의 보혈로 바꿔지는 역사가 생기어 예수님의 가신 그 길로 따라 나갈 수 있기 진실로 원하는 바이올시다.

주님이 가신 길은 외로움의 길 , 눈물의 길 , 슬픔의 길 , 땀 흘림의 길 , 피 흘림의 길 , 주님이 가신 길은 능욕의 길 , 머리 둘 곳도 없는 길 , 영접하지 도 안는 길 , 핍박의 길 , 악마와 더불어 싸우는 길이었나이다 .

이 길 ! 주께서 터벅터벅 걸어가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가려 하나이다 . 따라가고 싶어요!

 

오 주님이시여 ,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두려워하는 자이옵고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무서워하는 자식이옵고 사람들의 입술을 두려워하는 자식이옵고 사람이 나를 칭찬할 때에는 은근히 마음의 상쾌를 느끼는 자식이로소이다. 그리고 또 자아를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악한 자식이로소이다 . 나를 들어내려고 함은 죄악을 들어내려고 함이요 , 나를 숨기고자 할 때에 은혜가 임하는 것임을 깨달았나이다.

오 ,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 나를 당신의 겸비의 끈으로 매어주시고 은혜의 사슬로 매어주시옵소서 . 그리고 당신께서 어디로든지 끄시옵소서 . 이 못난 것은 그저 끄시는 대로 끌리어 가려고 하노이다 . 그리고 또 나의 육의 전부를 죽여주시고 나의 영이 주님으로 더불어만 교통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떠나도 당신만이 나의 소유가 된다면 이것이 나에게 만족이 되겠나이다 . 우리의 기도의 제목은 예수님을 알려 함에 있어 족합니다 . 이 목사님 , 주 안에서 거룩함을 이루소서 . 아멘 .

 

1932 년 7 월 3 일 주일

원○서 상

 

 

 

 김광우 씨로부터

 

오 , 나의 형님이시여 ,

나는 지금 주의 은혜의 샘 앞에 앉았소이다 . 진리의 빛 아래 엎드렸소이다 . 과거에 있어서 맛보지 못하던 무한의 환희 , 무한의 광명이 나를 휩쓸 때 나는 이때의 광경과 심경을 무슨 말로 형언할는지 아마도 지상에서는 형용사를 찾기가 어려울 줄 압니다 . 나는 지금 감격과 환희에 넘쳐 나의 가슴은 나도 모르게 뛰놀고 나의 맥박은 몹시 빠름을 느끼나이다 . 이 감격 , 이 환희를 나는 내 힘으로 얻은 것도 아니요 , 또 지상의 무엇이 준 것도 아니요 , 오직 주께서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힘임을 알아 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엎드려 감사하는 바이올시다 . 그런데 내가 이럴 때마다 이 지상에도 나의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을 내가 발견할 수 있으니 ,  나의 신앙생활 과정에 있어서 하늘을 향하여서는 주님께 나의 사정을 고백하는 동시에 의논하고 이 지상에 있어서는 그를 향하여서 내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 그는 곧 형님이올시다 .

나는 2, 3 일 전에 옛날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오늘 어거스틴전 ( 傳 ) 을 읽다가 또다시 나는 옛날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암흑에 헤매면서도 광명의 세계에 있는 줄로 알던 그때 . 죄악의 심연 ( 深淵 ) 으로 기어들어 가면서도 생명의 길에 있는 줄로 알던 그때 . 죽음의 길에서 생의 길인 줄로 알던 그때 . 사회주의자로서 일생을 바치려고 마르크스 경제학과 유물 변증법적 철학 속에 머리를 파묻고 주야로 머리를 썩히던 그때 . 자기가 배워야 할 많은 무지를 들고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우롱하던 그때 . 반종교적 사상에 끌려서 생명의 길을 찾아가는 어린이들을 그 길에서 끊어주던 그 때 . 소위 신 ( 新 ) 도덕이란 관념 아래서 자기방탕을 변호하면서 양심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장한 척하던 그때 . 하늘의 은혜 아래 있으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저주하고 멸시하고 희죄 ( 戱罪 ) 하던 그때 . 무신론 , 유물론이 아니면 학문으로 알지 않고 세상에 제일 어리석고 미련하고 가면을 쓴 인간은 종교가라고 조소하던 그때 . 무한한 내적 모순과 상처와 죄악을 내포하면서도 체면 좋게 교육자라는 미명 아래서 교육의 근본주의를 그르치고 있던 그때 . ‘Sweet Home’ 의 꿈에 끌리어 까딱했으면 큰일 낼뻔 하던 그때 . 소년시대를 거쳐서 성 ( 性 ) 에 눈이 뜨이기 시작한 후 사자 같은 충동에 끌리어 철없이 날뛰던 그때 . 그러면서도 사람 앞에서는 가장 순결한 자의 반 ( 班 ) 에 있었고 또 그렇게 자처하던 그 냄새나고 가증스럽고 교활하던 그때 . 아 ,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장면이 나의 영의 앞에서 활동사진같이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상의 법률 아래 있어서는 선인의 행세를 하여왔습니다. 벌써부터 나는 하나님 앞에서는 허언자 ( 虛言者 ), 절도반역자 , 부도덕한 ( 漢 ), 극악한 ( 極惡漢 ) 이었나이다 . 나의 죄악의 양이나 질로 보아 나는 벌써 이 세상에 있을 물건이 못됩니다 .  벌써 죽음의 다스림 아래에 있어야 할 물건입니다 . 그런데 지금의 나는 지하의 물건으로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존재로 이것을 쓰고 있는 것을 자인하게 되오니 , 이는 놀라운 일이올시다 . 아주 위대한 기적이올시다 . 하나님의 크신 은혜올시다 . 넓으신 사랑의 덕이올시다 . 이 일을 생각할 때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쳐서 그 은혜를 찬송하며 보답하오리까.

나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자못 감격에 넘치는 감사와 눈물에 젖은 찬송 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합니다 .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요 , 둘째는 ( 용서하십시오 ) 형님에게올시다 . 그 이유는 기갈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 생명수를 마셔야 할 터인데 , 그 생명샘을 알지 못하여 빈사의 지경에 있을 때 생명샘의 길로 인도하여 그 생명수를 먹여준 자가 있다면 ,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생명샘과 그 인도자 , 그 둘의 은혜가 꼭 같이 크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올시다 . 주는 생명의 원천이요 , 진리의 주체시요 , 은혜의 빛이시었나니 이제 그것을 찾지 못하여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인도하여 그 생명 , 그 진리 , 그 은혜 , 그 사랑에 접함을 얻어 이제 새 생명의 지음을 받았습니다 . 첫째로 주님 , 둘째로 사람 ( 형님 ) 이란 말에 무슨 모순이 있을 것입니까 . - 이 말에도 형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

 

나는 수 년 전의 그날 밤을 아직도 명백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 강단에선 목사가 “ 형님은 왜 손 안 드시오 ?” 라고 나에게 묻던 그 말이 아직도 나의 귀에 쟁쟁하면서 나는 “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두시오 ” 하고 대답하던 그것까지도 명백히 기억되어 있습니다 . “ 왜 손을 안 드느냐 ?” 이 말은 “ 왜 생명수로써 너의 기갈을 풀고 살려 하지 않느냐 ?”, “ 왜 암흑에서 벗어나서 광명에 살려 하지 않느냐 ?”, “ 왜 죽음의 길을 버리고 살 길을 취하지 않느냐 ?”, “ 왜 죽을 지경에 빠져 있으면서 이 구조선에 오르려 하지 않느냐 ?” 라는  하늘의 소리가 아니었나이까 . 그러나 나는 “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두시오 ” 하니 그 얼마나 처참한 소리였습니까 . “ 나의 죽음은 나에게 맡기시오 ” 하며 그대로 죽을 곳을 향하여 달음질 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장한 척하며 일어서던 그 나를 내려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며 나의 뒷모양을 바라보시는 형님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리까.

그 후 나는 계속적으로 마르크스 자본론 , 사적 ( 史的 ) 유물론 , 기타 정치경 제학설에 심취하여 연구와 사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 학자로서의 영예 , 정치가로서의 출세 , 사회개조운동가로서의 입신 , 이러한 만만한 야심이 나를 휩싸고 있어 거기에서 최대의 행복과 만족을 구하려던 야욕이 나를 충동하고 있었던 고로 지금 생각하면 그 얼마나 모순이며 가소로운 일이었는지 나는 고소 ( 苦笑 )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자기 자신을 개조하지 못하고 조종하지 못하면서 대중이니 사회니 하면서 철없이 날뛰면서 붙들지도 못할 것을 붙잡아보려고 애쓰던 나 자신을 상상하여 볼 때 내 스스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앞에서 방탕아요 , 반역자요 , 불순종자인 나를 당신의 은혜 아래에 두시고자 오래 참으셨으며 그 사랑 아래 품으시었습니다 . 때는 가고 때는 다시 왔습니다 . 하나님은 최후의 시련으로 나에게 다시 큰 시험을 하시었습니다 . 나는 소위 행복의 꿈이란 무한히 쓴 것이요 , 무한히 괴롭고 아픈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 모순은 탄로 되고야 마는 것이었나니 , 하루아침에 나의 명예 , 나의 분신 , 그 행복의 꿈을 모두 삼켜버리고 나를 발가벗겨서 외로이 이 냉혹한 지상에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 이때에도 이것을 자기 모순과 죄악으로 깨닫고 자아 청산에 돌아가려 하지 않고 도리어 변호의 여지를 찾아 신도덕관 , 신윤리관의 세계를 찾아 온몸의 상처를 안고 더듬거렸습니다 . 그러나 하늘의 시험이었으매 그렇게 용이하게 극복할 것이 아니었나이다 . 지상에서 나의 앞에 열렸던 모든 길은 다하여 버렸나이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으로 열린 길만을 열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 < 중략 >

감격과 감사보다 조소의 생각으로 대했던 형님의 서신 , 엽서 2 매를 펼쳐 들고 나는 다시 읽었던 것이었나이다 . 이때에 나는 소위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이냐 , 지식 철학의 전분야에 대하여도 다시 음미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 나는 인생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으며 지식이나 철학이 인생과 어떠한 관계로 존재하여야 될지 그 영역을 희미하게나마 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성서의 안에서 인생을 알고 또 진리의 주체를 발견한 톨스토이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열정이 나의 가슴에 용솟음쳤던 것이었습니다 . 감격 , 눈물 , 통회 , 이런 것으로 뭉쳐진 나의 참회의 글 몇 줄이 형님께 드려진 줄로 아나이다. 나는 지금 그때에 내가 어떻게 썼었는지 모릅니다.

이러이러한 과거의 계단을 통하여 현재의 은혜 아래서 다스림을 받고 진리의 광산에서 가끔 캐어내는 진리의 덩어리가 나의 앞에 축적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나는 이 기적적인 사실에 경탄을 금하지 못합니다 . 감격 , 감탄 , 감사 . 아 ,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 아 , 그때 그와의 기록 ( 機綠 ) 이 아니었다면 . 오직 이렇게 밖에 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

 

아 , 형님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빼어놓은 것이 있으니 곧 나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려고 무한히 애쓰던 인물 한 분에 대해서 조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그것입니다 . 그는 형님도 아시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올시다 . 그는 세상이 다 나를 몰랐을 때 나를 알았던 사람이요 , 세상이 다 나를 동정하지 않을 때 그는 나를 동정했던 사람이올시다 . 나의 앞길을 위하여 가장 많이 애쓰고 기도해주는 분이올시다 . 지상에 있어서나 또 하늘에 있어서도 나의 기억에서 떠나지 못할 인물이올시다 . 언제 조용한 기회가 있으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나이다.

은혜의 생명샘 가에 앉아 문득 추억되는 과거의 한 부분을 쓴다는 것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 이 여름은 나에게 있어서 대단히 기쁜 여름이었습니다 . 어거스틴을 알 기회를 이 여름에 가진 것을 무한히 기뻐하나이다.

특별히 이 여름이 나에게 의미 있다고 하는 것은 어느 날 새벽에 특별한 주님의 묵시 , 꿈같으면서 꿈이 아닌 기적적 사실을 통하여 주님의 사명을 확실히 받은 증거를 얻게 된 것이올시다 .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무한한 새 기쁨을 갖게 되었습니다 . < 하략 >

우리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 아래에 항상 계실 것을 믿사오며 …… . 

 

1932 년 8 월 22 일 밤 고등 ( 孤燈 ) 하에서

김광우

 

 

 

 안성결 씨로부터

 

주님의 보혈의 힘으로 나를 구원해주신 내 구주 이 목사님에게,

목사님 , 무슨 말씀을 먼저 드리리까 ? 너무도 드릴 말씀이 쌓이고 덮였으매 어떻게 선후를 써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 목사님을 떠난 지가 적어도 삼천 년 이상 된 것으로 생각되오며 이 머리에는 목사님의 생각만 진정으로 꼭 들어찼습니다 . 그 동안 얼마나 손꼽아가며 눈이 빠지도록 나의 유일의 구주 되시는 경애하옵는 목사님의 편지를 기다렸는지요 . 기다려도 기다려도 영 소식이 없으시기에 오늘 아침에는 또다시 편지를 드리려고 펜을 들고 앉았다가 하여간 오늘 9 시 반까지만 기다려보자 라고 생각하고 대야에 물을 떠다 발을 씻는데 문밖에서 “ 편지요 ” 하는 배달부의 반가운 음성 ! 너무 반가워서 “ 예 , 뭐요 ? 어서 주시오 ” 하며 급히 받으니 평양 

, 경성 , 원산 등지에서 오는 반가운 편지들인데 눈에 띈 첫 편지는 틀림없이 내가 말할 수 없이 바라고 기다리던 나의 유일의 경애하옵는 목사님의 것이겠지요! 

너무도 반갑고 기뻐서 편지 봉투를 뜯던 그 찰나는 참으로 내가 세상에서 받은 어떤 봉투를 뜯을 때에 맛보지 못한 기쁨과 감격이 있었고 내 일생에 아무런 생활이나 일에서 그런 환희와 쾌락을 경험해보지 못하였나이다 . 편지를 손에 들고 읽으니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욱 보고 싶어서 수 차를 읽고 또 읽을 때 아버님 , 어머님께서 들어오지요 . 그래서 목사님에게서 편지가 왔다고 하니까 “ 응 ? 목사님이 편지를 하셨어 ?” 너무 반가워 야단하시면서 “ 어서 읽어라 . 어서 읽어라 ” 하시기에 시원시원히 읽어 드렸더니 반가워하시고 기뻐하시고 감격해 하시는 모양은 참으로 보기가 황송하였나이다.

부모님이 이렇게 기뻐하심을 또 처음으로 보았사오매 목사님으로 인하여 효녀 되었음을 또한 감사하나이다 . 어머님께서는 어제 밤에 꿈이 퍽 좋기에 목사님에게서 편지 오실 줄 알았다고 하십니다 . 너무도 기쁘고 감사하여 목사님의 편지를 받고서는 기도하고 보고 , 보고 기도하곤 합니다 . 편지의 말씀은 꼭 주님의 말씀이오매 제가 이 편지를 올리는데도 웬일인지 손이 몹시 떨리나이다 . 하여간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에만은 내 양심을 그려내는 것이니까 . 이 글을 보시면 더욱 나의 마음의 전체 내 중심의 전부를 목사님께서 분명히 보실 줄 아나이다 . 이제 솔직한 고백으로 이 양심을 가림 없이 사진 찍나이다 . < 중략 >

목사님 , 이제는 나를 이 죄악에서 , 이 죽음에서 건져내셨으니 목사님은 나의 구주로소이다 . 내 구주 되시는 목사님께서 이것을 건져만 주시고 길이 돌보아주시지 않으면 또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사오니 동서를 분별치 못하는 이 어린아이를 끝까지 긍휼과 사랑으로 완전하게 주의 사람되어 앞서 가시는 내 주님 , 목사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다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나의 주여 , 목사님이여 , 나는 목사님을 주님으로 믿사오니 주여 , 이 몸을 뜻대로 하시사 골고다까지 인도하여주소서.

‘ 그만 쓰자 , 그만 쓰자 ’ 하면서도 이렇게 자꾸만 펜이 가서 이렇게 길게 되었나이다 . 이것이 모두 내 중심 내 진심에서 폭발된 것이오니 용서하시고 보아주시옵소서.

오 주여 , 감사합니다 . 주님 , 주님 , 다시금 감사의 노래가 터져나옵나이다 .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받은 주의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1932 년 9 월 25 일 밤 사과 밭에서

안성결 올림

 

 

 

 

 이호빈 씨로부터

 

모든 일이 오직 주님께 있었으니 사람이 무엇을 의논하리오 . 우리는 명령을 따라 행진할 뿐이오 . 성패의 역사는 우리와 무관하외다. 주 하고자 하심에 불탄 지팡이도 들어 쓰시고 주 허락하지 않으시매 전 우주가 다 달려 붙어도 불가능일 것이외다 . 북선 ( 北鮮 ) 의 문을 열어주시는 일도 오직 주께 있을 뿐.

 

구사평 자매들의 소식

매일 여전히 불은 붙고 있소이다 . 사람 수는 점점 늘어가고 . 반면에 적군의 세력도 점차 강력 [ 漸强 ]. 세상의 권력 밑에 압박을 당하고 있는 저들의 정경 ( 情景 ) 은 세간의 안목으로는 실패하는 것 같으나 영안으로 본다면 승리를 얻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외다.

가정에서 욕을 먹고 매를 맞고 동네의 험구 ( 險口 ) 는 다 받으면서 천치 모양으로 , 바보 모양으로 , 무골충 모양으로 , 새벽마다 밤마다 그대로 나와 엎드리는 일을 계속하며 , 남이야 웃거나 말거나 욕하거나 말거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성통곡 , 발광 , 마루를 두드리고 , 심지어는 교회에서까지 견책함을 듣지만 아무 변명도 없이 수그리고 나오는 어린 저들 앞에서 나는 울 때가 많소이다.

저들은 미친 자들이외다 .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자들이외다 . 성경 읽다가 울고 , 찬송하다가 울고 울며 , 기도하다가 울며 찬송하고 , 꼭 미친 자들이외다 . 문 창구멍으로 구경꾼이 둘러서 보는 것도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미친 일을 계속!

20 내외의 어린이들이라 애처로운 불길들이외다 . 어쩔 줄 모르고 애쓰는 정경 , 천지가 아울러 긍휼히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12 세 된 여학생 박의순 ( 朴義淳 ) 은 몇 달째 계속하여 밤 , 새벽마다 나와 조르는데 수년간 낙심되었던 조모님 , 어머님이 단단히 매를 맞아 불이 붙게 되었고 , 지금은 또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조르는 모양인데 아주 맹렬하외다 . 울며 아버지 손목을 붙들고 예배당 가야 산다고 애원합니다 . 머지않아 뿌리가 빠질 것이외다 . 9 세 된 그 동생도 나오는데 그들의 기도 소리는 보통이 아니외다 . 당장 주님을 앞에 모시어놓고 드리는 말 소리외다 . 옆에서 듣노 라면 소름이 쭉쭉 끼치게 됩니다 . < 하략 >

 

1932 년 10 월 6 일

이호빈

 

 

 

 송창근 씨로부터

 

아우님,

주님과 함께 일하다가 주님과 함께 오시오 . 오나가나 내 마음이 늘 아우님의 뒤를 따르는 줄 알고 계시오 . 세상이 용도를 ‘ 성자 ’ 라고 , ‘ 은총의 사자 ’ 라고 높이고 , ‘ 친하다 ’ 고 , ‘ 사랑한다 ’ 고 …… . 내 보고듣기에는 다 우스운 일이요 , 믿지 않소 . 그 사람들을 믿지 않소 . 다 사람들이오 . 다 이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작은 사랑과 신뢰가 있고 인정이 있어서 용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생각하는 사람이 나인 것을 나는 아직 믿소 . 할말이야 적지 않지만 더 쓰지 않소 .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인간들을 위하여 크게 노력하고 오시오 . 오는 길에 집에 들리오 .

 

1932 년 10 월 19 일 아침

송창근

 

 

 

 PRH 씨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 생명을 내어놓은 하나님의 충복이시여 , 사랑하는 나의 형님이시여 ,

걸어가소서 . 위에서 움직여 주는 그대로 . 당신의 신앙경험 그대로 . 걸어가소서 . 사람들은 사람의 지식경험에 교만해져서 사람의 지식 이전에 존재하던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니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매 저희들은 인간 이후의 지식경험 사실에 비춰보아 그 경험적 척도로서 난측 ( 難測 ) 되는 물건이면 뱉어버리고 또 마귀의 역사라고 , 허위적 독단이라고 ! 비과학적이라고 , 비진리적이라고 , 마술적이라고 하여 매장해버리기에 분주한 것이었으니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러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나 예언자는 모두 그 시대의 인간적 경험사실보다 모두 위대한 사실을 말하였었으니 그들이 그때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당연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때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는 신앙 경험보다 오묘하고 엄청난 것을 말하셨으니 그때 사람의 지적 경험이 그 진리를 소화하기에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를 ‘ 바알세불이 들린 자 ’ 라고 , ‘ 무교회주의자 ’ 라고 , ‘ 죄인과 함께하는 자 ’ 라고 갖은 명비 ( 名碑 ) 를 다 어깨에 지워서 골고다로 보내기를 힘썼던 것이외다 . 그리하여 그가 말씀하신 그 진리와 생명과 빛을 소유하여 자기의 물건을 삼아 그  생명과 진리와 빛 속에서 살라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 아닙니까.

옳습니다 . 현대는 신앙상으로 보아 말세적 세기를 당한 때이오니 저들은 현재 자기네들의 소유한 바 , 신조 , 교리 , 신앙경험 사실 그것이 절대 완전한 것으로 알아 만족하여있습니다 . 그것도 실상 그리스도의 것이 아님은 물론 입니다 . 그리고 그 형과 외의 신앙 척도는 나타나는 진리의 사실을 도량함에는 완전무결할 척도의 행세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실상은 저들이 실 ( 實 ) 을 소유하기 위하여 허 ( 虛 ) 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호언 장담하나 허를 얻기 위하여 실을 파괴하는 것이었으며 진 ( 眞 ) 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 ( 詐 ) 를 치는 것이라고 하나 허에서 만족하기 위하여 실을 매장하기에 급급한 저들이 아니었나이까.

오호 ( 嗚呼 )! 통재 ( 痛哉 )! 의인의 눈에서 눈물을 금하기 어려우며 뜻있는 자의 가슴에서 피가 용솟음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의 ○○란 진리자의 집단체가 아니요 , 진리자를 매장하기 위하여 존재한 ○○의 책원지 ( 策源地 ) 가 아닙니까 . 교회를 시장화하여가지고 진리를 상품화하여 철없는 신도들을 고객으로 ‘ 그 상품화된 진리 ’ 를 팔아 그것으로 자기네들의 구복 ( 口腹 ) 을 채우려는 것이었으니 정당한 입장에서 보는 자 , 어찌 ‘ 종교는 아편이라 ’ 는 단안을 내리기에 주저하리이까 .

저들은 적은 것에 걸리어 큰 것을 삼키지 못하여 고민하는 과정에 있사오니 조그마한 사실을 의논하기 위하여 큰 진리를 그르치는 것이올시다.

그리스도의 사랑 , 생명 , 진리 . 이것을 위하여 저희들의 존재적 가치를 느끼고 그것을 먹고 마시어 그 생명에서 살며 그것을 전하여야겠다는 참된 사명감에 움직인다면 저희들이 어찌 그렇게 조그마한 사실들에 걸리어 - 그 사실을 용인하고 남음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에서 벗어나는 일을 감행하고 있으니이까.

아 , 저들은 빛보다 어두움 , 넓은 것보다 좁은 것 , 사랑보다 미움 , 화목보다 투쟁 , 진리보다 허위 , 이것들을 소유해야 만족하려 하며 또한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며칠 전 형님을 찾아 뵈옵고 돌아온 후 이 붓을 드는 것입니다 . 무슨 말을 먼저 썼으면 좋을지 ? 붓을 들기는 들었고 또 쓰기는 여기까지 써왔으나 나 역시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형님 앞에서 그 모든 사실을 듣고 앉아있을 때 감격 , 아픔 , 쓰림 , 안타까움 , 눈물 , 울음 , 이 모든 분위기에 싸여있었소이다 . 중심에 움직이는 말이 많았으되 나는 무언으로 앉아있었던 것이요 , 기도할 때 내가 기도하고 싶은 말 - 곧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은 바가 많지 않음이 아니었으되 무언 그대로 지났던 것이외다 . 또 한 가지 형님의 기도 그것은 모두 나의 기도 , 그것이었으므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 그런 사실을 알고 - 기도 한다면 형님의 기도 그것으로 넉넉하였든 것이올시다.

형님 , 나는 아직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의 지극히 적은 부분의 한 토막도 소유할 듯 말 듯한 아주 보잘것없는 상태에 있는 자요 , 그 전체를 만져보지도 못한 자이오니 , 어찌 그 진리 전반에 대한 말을 감히 할 수 있으며 현대 교회의 안과 밖에 대하여 또는 그 역사적 과정이라든가 , 현실적 진행에 대한 관찰의 지식이 전무한 터이오니 , 어찌 교회에 대한 비판이나 그 지도자 층 - 종교가 - 에 대한 비판을 감언 ( 敢言 ) 할 수 있사오리까 . 나는 아직 현대 교회의 의식 , 교리 , 신조에 순복 ( 順服 ) 하여 당분간 만족하려 하는 자요 , 그 도정에서 무언의 탐구자로서 진리와 생명을 캐어 그것으로 나의 생명을 삼아 그 생명에서의 생활 그 자체를 동경하며 만족하려는 자이올시다.

그러나 형님 , 주위가 너무도 시끄럽고 분분하오매 무언을 깨뜨리고 이렇게 유언의 탈을 쓰고 나서게 되는 것이올시다 . 무언의 필요를 느끼면서 유언치 않을 수 없는 나의 고민은 적은 것이 아니올시다 . 그러나 형님 , 이것을 보시어 과히 나무라지는 마시옵소서.

형님 , 나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차츰차츰 찾아 들어갈수록 그 진리는 참된 생명이요 , 사랑의 빛인 것을 알게 되나이다 . 그러나 그 진리를 담아가지고 있다는 현대 교회와 그 진리를 전한다는 현대의 다수의 종교가들에게서는 생명과 사랑의 진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나의 놀람은 날마다 그 도가 높아간다 해도 거짓말이 아니올시다 . < 중략 >

우리의 생활의 외양을 본다면 우리는 벌써 천사가 되었을 것이올시다 . 찬송 , 기도 , 설교 , 복음의 해석 , 모든 것이 모두 예수의 진리를 중심으로 날마다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이 살과 이 피 , 이 생명 전체가 벌써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 마땅한 것이 아니오니까 . 그러나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움직이는 자를 찾을 수 없사오니 이것이 큰 모순이 아니고 그 무엇이오리까 . 모두 다 진리와 생명과 빛과 사랑과 그리고 봉사 , 희생들을 말합니다 .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 그러나 아무도 그 일들을 하는 자 없고 그렇게 해보려는 자도 없사옵니다 . 나는 다른 사람을 보아 그렇게 아는 것보다도 나를 보아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은 생명적 신앙에서 떠나 기계적 신앙 , 간판적 신앙 , 직업적 신앙에 떨어져 있사오니 나는 신앙하여 내 생명이 그 신앙 생활 위에서 살려고 하는 것보다 그 신앙이란 간판 아래서 진리를 상품화하고 전도를 직업화하여 장래나 육적 생명의 직업적 고민을 제거하려는 야욕이 중심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나이다.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또 하고 싶으나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 위에서 살지 않고 다만 ‘ 그것이 무엇인가 , 예수는 그런 사람이요 , 그 진리와 무저항주의란 이런 것이다 ’ 를 의논만 하고 구경만 함에 그치고 있사오니 그 변명이 무슨 효과가 있사오리까.

형님 , 나는 신앙을 의논만 하여 만족하지 못하며 진리를 말로만 하고 전하여 조금도 위로나 만족을 얻지 못하나이다 . 그래서 늘 고민이올시다 . 이 고 민 때문에 내가 늘 책상머리나 자리에 누어서 눈물질 때가 많은 것이었나이다 . 내가 며칠 전 형님을 만나서 흘린 눈물도 그 반은 이러한 의미의 눈물이었다고 생각하나이다.

형님 , 나는 그날 다시 새로운 생명에 감촉 ( 感觸 ) 됨이 있었던 것이올시다 . 나에게는 다시 어떠한 당겨짐이 있었던 것입니다 . 새로운 각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 형님 , 나는 이제 내 뜻대로 살려는 생활에서 속히 떠나기를 원하나이다 . 다만 주께서 나의 중심을 통하여 움직여 주시며 내가 거기에 절대로 복종할 수 있는 그 순종만이 내게 있어지기를 원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내가 디디고 있는 이 지대 , 내가 나타내야 할 이 시대 , 이러한 환경에 처하여 주께서는 나에게 무슨 명령을 내리시려는지 모릅니다 . 나는 고요히 그 명령을 기다리며 그 생명과 진리를 먹고 마시어 그것으로 내가 살쪄지기를 원하올 뿐이올시다.

나는 근자 인생의 생 ( 生 ), 애 ( 愛 ), 사 ( 死 ), 고 ( 苦 ) 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이 느낀 바가 있어 주께 감사하고 있는 바이올시다 . 나는 거기서 기독교란 종교는 생의 전부요 , 애의 전부임을 깨달아 나는 이 생과 애의 진리를 위하여 나의 생의 전부를 바칠 것을 생각할 때 그 감격을 무어라고 말할 길이 없습니다.

형님 ,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만이 아니요 , 기사나 이적만의 종교도 아님을 나는 확실히 알았나이다 . 그런데 세인은 기독교를 신비나 기사 , 이적만의 종교로 알아 이것을 의논하고 이것을 가지고 시비곡직을 판단키 위하여 참된 생명과 진리에서 떠나는 것을 봅니다 . 현대 종교가들은 “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 “ 원수를 사랑하라 ”, “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 등등의 위대한 진리는 뒤에다 딱 돌려세워놓고,

종교적 신비를 말한다 하여 어떠한 초인적 황홀의 경을 말한다 하여 , 기사나 이적을 말한다 하여 - 조그맣게 나타나는 지극히 적은 일들을 확대하여 가지고 시비를 논하다가 당파를 만들고 분쟁을 일으키어 결국에는 기독교회의 추태를 세인에게까지 보여주는 형편 , 아 , 주께서 눈물 흘리고 계신 현대가 아니오니까.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 주님께서는 무슨 기사나 이적만을 위하여 오셨던 어른이 아니요 , 신비적 황홀경만을 노래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으니 주께서는 인간과 함께 먹고 마시고 쉬어가면서 다만 하늘의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말씀하시어 천국이 하늘 위에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하여 인간의 완성을 위하여 피땀을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그는 진리를 말씀하셨으며 사랑을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그 진리와 사랑을 이해치 못하고 다만 기사와 이적만을 구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이 아니오니까? 너무도 그들이 간절히 원함으로 주께서 어떤 때는 기사도 보여주셨고 이적도 행하시어 그들에게 권능을 보여주시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 그러나 그때마다 경고를 하시었고 또 당신의 사명이 거기에 전혀 있지 않으심을 명백히 말씀하시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 - 예수를 이해하였다는 사람들 - 중에도 예수는 이적을 행하러 온 사람으로만 알아 그것에만 포착 ( 捕捉 ) 되었고 예수를 모르는 사람도 그 이적에만 막히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예수를 핍박하기에 분주 하였던 것이 아니오니까 . 그와 마찬가지로 현대 기독교회들도 가장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고 신앙한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으로서 이 기사이적이라는데 신경과민이 되어 있습니다 . 그 위대하신 진리인 생명과 사랑을 의논하는 일은 모두 제쳐놓고 밤낮 의논하고 싸우는 일이 모두 이적기사가 아니오니까 . 형님께서 말씀하시던 그러한 일들의 중심 문제란 것도 - 물론 근본적 결함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계기로 한 일종의 부수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모두 조그마한 기사에 막혀서 그런 것 하나를 소화할 수 없어서 껄떡이고 있는 것이다.

통재 ( 痛哉 ) 라 ! 현대의 신앙가들이여 , 티끌보다도 작은 기사나 이적만을 붙들고 붙들어야 할 진리와 생명의 전체를 놓쳤으니 어찌 너희들에게서 사랑을 찾을 수 있으랴 . 주먹을 든다 . 몽둥이를 든다 . 욕을 토하고 발길을 내댄다 . 모두 종교가로서는 못할 짓이다 . 아 , 참 너희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와 사랑을 소유치 못한 자들이니 종교가라고 부르기는 하나 사실은 종교가랄 것이 되지 못한다 . 그런고로 비종교가로서나 할 수 있는 발길 질이나 주먹질이나 몽둥이질이나 욕질을 하는 것이니라.

아 , 그러나 그대들이여 , 고요히 그대들은 그대들의 중심을 살핌이 있고 그 리스도의 신앙의 근본 의 ( 義 ) 가 어디 있는가를 깨달으라 . 진리를 옹호한다고 하면서도 그 진리를 매장하기에 급급한 현대 종교가들아 , 너희가 하늘에 오를 듯싶으냐 . 음부에 떨어지리라 . 너희들의 권세가 세상을 판단할 듯싶으나 너희의 그 권세가 하나님의 권능 아래 꺾일 날이 있을 것을 깨달으라. 너희들은 너희의 위에 아무도 없는 줄을 아느냐 . 아 , 가증한 무리들아 너희 위에서 찰나 ( 刹那 ) 도 쉼 없이 주의 눈이 살피고 있음을 깨달으라 .

형님 , 나도 느끼나이다 . 이제 저들은 설교나 기도로써 가르쳐 먹일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나이다 . 저들을 가르칠 유력할 재료는 오직 눈물 , 피 , 죽음인 줄을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형님 , 형님 , 이미 그것을 깨달으셨으니 그리고 준비하셨으니 그냥 그대로 눈물을 뿌리소서 . 눈물을 뿌리었다 하거든 피를 뿌리소서 . 피를 뿌려도 안 되거든 죽음을 내주소서 . 그리하여도 저들이 깨닫지 못하거든 그대로 주 앞으로 기쁘게 가시옵소서. 

그 뒤에 내가 서리이다.

나에게도 눈물 , 피 , 죽음 , 모두 있소이다 . 나는 이미 이것을 각오하여 여러 번 주께 이 생명을 그렇게 받아주시기를 원하여 기도하였나이다.

그대로 나아갑시다 . 주께서 이미 십자가를 지셔서야 그 진리를 인간들에게 전하실 수 있었으니 이제 이 지대에서는 저들도 의인의 피를 마시어야만 그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소화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느낍니다 . -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에서 살아 무한의 기쁨이 있으며 그것을 위하여 이 생명이 죽어야 무상의 영광임을 - 그러나 이 생명은 아직까지 그 같은 생명 속에서 살지 못하고 그 외에서 헤매고 있음을 한 ( 恨 ) 하여 눈물 지우나이다 . 그러나 주께서 나를 이미 받으셨으니 나를 버리시지 않으실 것을 확실히 믿어 다만 그에게 순복할 것을 준비하고 있나이다.

형님 , 나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와 사랑 안에 있어 신비와 이적을 말하고 싶습니다 . 그러나 그것을 떠나 아무것도 용납할 수 없사오며 또는 하기가 싫습니다 . 종교적 이론 , 의식 , 제도 , 신조 , 교리 - 철학적 지식 , 역사적 사실 등 아무것도 소유하여 만족되지 않으므로 그 소유를 원치 않나이다. 다만 그 생명 , 그 사랑 , 그 진리를 소유하여 내가 그 자체가 되어서 살아 움직이어 설교보다도 기도보다도 아무런 전도보다도 나의 생활 , 그것이 그 전부를 말하여 주는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 주께서는 진리는 이런 것이다 . 생명은 이렇다 . 빛은 이래야 된다 . 말씀 하시지 않고 “ 나는 곧 진리로 , 생명이요 , 빛이니 …… .”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리고 주께서는 당신만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동시에 그보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으므로 나에게 가장 큰 괴로움과 슬픔은 여기까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올시다.

나는 내게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고 다만 그 진리 , 그 생명 , 그 사랑만을 찾을 수 있어 세상 사람이 내게 와서 구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 수 없으되 그 진리 , 그 생명 , 그 사랑만을 줄 수 있어 무한히 기쁜 것이었으며 최고의 행복이 되겠나이다.

아 , 어느 때에나 내게 이때가 오리까?

끝으로 나의 간증을 형님께 드리오니 - 아니 간증이라기보다 나의 호소로 말씀 드리오니 우리는 예수와 함께만 가십시다 . 바울의 파 ( 派 ) 도 되지 말고 프란시스 , 어거스틴파에도 가담치 말고 루터나 웨슬레나 내촌감삼 , 칼빈 , 스베덴보리 등 아무 파에도 가입하지 말고 오직 예수파의 사람으로서 이 조선 도상에서 일하여 주사이다.

그리고 또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를 맹세합시다 . 이 말은 형님의 하시던 말씀 중에서도 들은 바이오나 그러나 나도 이미 이것을 느끼어 위에 말한 사람들의 글을 읽어도 보았고 또 읽기를 원하는 것도 있으되 나의 중심은 벌써 그것을 느꼈나이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 그러나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겠사오 나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 것만은 느끼면서 이 붓을 멈추려 하나이다 . 사랑으로써 황언난필 ( 荒言亂筆 ) 을 용서하소서 .

 

1932 년 10 월

평양에서

PRH

 

 

 

 PCS 씨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였으나 주의 풍성하신 은혜 가운데서 목사님과 형님 그 외 온 댁내가 다 안녕하실 줄 믿고 그대로 늘 기도하나이다. 날이 지나고 달이 갈수록 깊고 또 깊으신 주의 자비하신 사랑과 그 신비하신 섭리를 이렇게 부족한 저로서는 어떻다고도 무지 헤아려 알 길이 없습니다 . 그저 황송할 것밖에 그저 감사할 것밖에 무엇이 또 있사오리까 .

지나간 여름 동안 저는 병 중에서 좀 괴롭게 지냈습니다 . 의사의 말이 폐도 좀 약하고 심장도 좀 약해서 일을 계속해 하기는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 제 생각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 거기 따르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이 많은 중에 또 겸해서 여러 가지 다른 괴로운 문제까지 생겨서 고해의 맛이 어떤 것을 한번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야말로 과연 사람 , 물건 , 건강 ,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이 오직 십자가만을 붙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 주여 ,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사는 것도 주의 뜻 , 죽는 것도 주의 뜻 , 괴로움도 주의 섭리 , 즐거움도 주의 섭리 . 오직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 이 몸은 제 것이 아니요 , 오직 주의 물건입니다 . 주의 뜻을 거슬려 주를 욕되게 하는 물건만이 되지 않게 하여주세요 . 저는 일하고 못하는 것도 모릅니다 . 병 나고 안 난 것도 모릅니다 . 저로 인하여 주께 수치가 돌아가고 주의 사업에 방해되는 일만 없게 해주소서.

 

이렇게 한 여름 지내는 동안 모든 일이 합동하여 유익되게 하여 주시는 자비하신 주님은 이렇게 부족한 저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풍성히 주셨습니다.

언젠가 형님 편지에 하신 말씀과 같이 저 흉흉한 바다 가운데 청파백파( 靑波白波 ) 가 들어 덮일지라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태연자약하게 서있는 바위와 같이 주의 친절하신 팔에 안긴 우리 영은,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이는 주께서 나와 같이 계심이라 . 주의 지팡이와 주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하는 찬송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지금 저는 주 안에서 전일에 체험치 못한 참 기쁨과 평안을 얻어서 육신까지도 건강한 중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은혜를 느끼고 또 받아 감사한 마음을 금치 못하나이다. 

목사님 , 세상은 하나님의 독생자 , 메시아를 몰라보고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 더구나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 마찬가지로 오늘 날도 주께서 보내신 참 주의 일꾼을 세상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 세상보다도 교회 안에서 , 교회가 아니라 교역자들이 . 그래도 다는 아니겠지만 참 기가 막힙니다 . 주께서 하신 말씀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함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연고라 ” 의 뜻을 저는 늘 생각하며 주 앞에 기도합니다 .

주여 , 이 무리들을 긍휼히 보시사 참 목자의 지도를 받게 해주시옵소서 . 저들로 하여금 참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옵소서.

참 주의 일꾼으로 하여금 더욱더 큰 능력을 얻어 이 모든 가련한 무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에 방해됨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조선을 위하여 보낸 주의 사자를 방방곡곡에 길을 열어주사 당신의 뜻을 바로 전하여 저들로 살길을 찾게 하여주옵소서 . 아멘 . 

총총하여 몇 말씀으로 아뢰었습니다.

 

1932 년 10 월 27 일

PCS

 

 

 

 박○감 씨로부터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당신의 크고도 넓은 은혜를 생각할수록 감사한 것뿐이로소이다 . 당신의 광명은 햇빛처럼 세계를 빛내되 몽매한 인생들은 깨닫지 못하나이다.

주여 , 당신의 깊고도 넓은 지혜를 누가 가히 측량하오리까 ? 주의 마음을 알 자 누구며 함께 의논할 자 누구오리까 ? 오 주여 , 종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전하려 할진대 우리 조선을 긍휼히 여기사 스데반이나 바울 같은 사자들을 많이 보내주시옵소서 . 이 세상은 악마의 세상이오매 당신의 참된 복음을 전하는 이를 이단이라고 떠들며 몰아내나이다.

오 주여 , 그러나 당신의 능력으로서 무엇을 못하시오리까 . 나의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 간절히 간절히 원하옵고 비옵나니 우리 동포를 위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사자 이 목사님의 앞 길을 열어주사 그가 가시는 곳마다 성령의 불을 내리시사 죽어가는 영들을 다 살려주시기 바라나이다.

다시 구하옵는 것은 사도 이 목사님에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내려주사 삼위 성신께서 같이 하사 권능과 이적을 나타내주시며 그 마음 가운데 진리가 샘 솟는 듯하여 시들어가는 모든 영을 살려 주시옵기 바라나이다 . 이 우매하고 미련한 자식은 죄가 가리우고 또 가리워서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당신의 말씀을 들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죄악 중에 있어 불의한 행동 만하여 당신을 괴롭게 하던 자식이었으나 이같이 사랑하사 당신의 사랑하는 사자 이 목사님의 전해주시는 복음을 통하여 시들고 말라 죽어가던 이 영이 이렇게 당신 앞에 일어서게 된 것만을 생각하여도 무엇이라고 감사드릴 말씀이 없나이다 . < 중략 >

죽든지 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고 나가야만 되겠다는 것을 이 자식은 이제야 겨우 깨달았나이다 . 그러하오니 이 연약한 자식을 위하여 축복하여 주시오며 약한 대로 두시지 마시고 강철같이 굳은 믿음을 주시사 당신만 바라보고 나가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바라나이다.

또 다시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구하오니 가증된 사탄과 같은 무리들을 속속히 회개시키든지 물리치시든지 하신 후 속히 이 목사님의 앞길을 열어 주시사 이 ○○교회 강단 위에 한번 세우시사 뭇 사람의 심령을 감화시켜주시기를 고대하오며 심히 바라고 또 원하나이다.

나의 사랑하는 주님이시여 , 이 목사님에게 은혜를 빗발같이 내려주시는 가운데 끝까지 보호하여주시고 더욱 사랑하여주심을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 아멘 . 

 

1932 년 11 월

박○감

 

 

 

 주율루 ( 朱律壘• 주 Lulu) 씨로부터 34)

 

새 생명을 소개해주신 경애하는 목사님께 두어 자 문안 드리나이다.

이즈음 주님 은총 중 강건하심으로 가시는 곳마다 해골 같은 심령들에게 새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주께서 주신 새 생명의 움직이심을 따라 용매도에 가서 1 주일간 집회를 열었사온바 제게 내리신 성신의 역사가 형언할 수 없이 컸습니다 . 전에는 사경회를 시킬 때에는 준비하느라고 여러 가지로 애를 많이 썼사오나 이번에는 그저 기도 드리는 것밖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너무도 크신 성신의 역사가 나타나 간증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이 교회가 선지 22 년 만에 처음 보는 이적이라고 하더이다 .

참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선교사 빨로 부인도 조선의 죽을 생명들을 조선 사람으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주께서 보내시면 어디든지 가겠느냐고 하기에 골고다까지 가기로 결심하였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 주님께서는 먼지와 재를 가지고도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심을 이번에 깨달았사오며 주님의 역사가 항상 저를 지켜주시기를 위하여 기도 중에 있습니다.

나의 비결이 되시고 , 지남침이 되시고 , 지팡이가 되시는 목사님 . 마음 비 ( 碑 ) 에 새겨둘 말씀 한마디만 들려주시어서 저를 길러 주시고 지켜주시기 바라나이다 . 영에 기갈을 당하여 집을 버리고 목사님을 따라가겠다는 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 이곳에서 여러분이 목사님을 찾아간 모양이온데 만나셨나요 ? 드릴 말씀 많사오나 이만 그치나이다 .

 

1932 년 12 월 2 일 

해주 북욱정 ( 北旭町 ) 260 주율루 상서

 

34) 주율루 : 해주읍교회 전도부인

 

 

 

 PCS 씨로부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화를 돌려보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평안할지어다 . 천사들이 전하는 복된 소식은 또다시 쓸쓸한 이 대지에 크게 울렸소이다.

1932 년 성탄을 얼마나 기쁨으로 맞이하셨습니까 . 저는 예년에 없던 큰 기쁨을 느꼈나이다.

형님 저는 요새 특별히 ‘ 샤론의 들꽃 ’ 과 ‘ 골짜기의 백합화 ’ 를 생각하고 부러워하나이다.

세상이야 알든지 모르든지 사람이야 보든지 말든지 누구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 누구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 그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곱게 피어서 아름다운 향내를 발하는 오직 생의 본능으로서만 사는 백합화가 부러워요!

세상이야 오해를 하든 말든 사회야 인증하든 부정하든 간에 “ 안심하라 . 내가 온 세상을 이기었노라 . 너희는 나를 힘입어 평안함을 얻으리라 ” 고 하신 주의 생명의 위대한 힘이 심중에서 움직이는 그대로 살아가기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형님 ,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애외다 .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 앞서 가시니 길을 좀 가르쳐주소서 . 며칠 전 기독신보에서 목사님께 관한 기사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자세한 일은 알 수 없으나 덮어놓고 제 생각에는 유대의 소위 종교가들이 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같이 오늘날도 소위 교회 안에서 주의 진실한 종을 박대함이 아닌가 생각할 때 마음이 괴로워 못 견디겠음을 느꼈나이다.

사람이 무엇을 알리요 . 참과 거짓은 오직 주께서만 아시는 것이 아닙니까 . 세상이 다 어떻게 알든지 저는 목사님을 통하여 나의 생명이 되시는 , 새 생명이 되시는 구주를 찾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어찌 저뿐이오리까 . 전에도 많았을 것이요 , 앞으로도 많을 줄 확실히 믿습니다 . 총총하여 긴 말씀 못 드리나이다.

 

1932 년 12 월 31 일

 

 

 

<5 부 : 받은편지 >

 

제 5 장

1933 년

 

 

 PSC 씨로부터

 

주여 , 웬일입니까 . 어찌하여 저들이 그를 배척합니까 . 웬일로 그렇게까지 할 이유와 조건이 무엇이 있습니까 . 저는 암만해도 모르겠어요 . 설혹 약간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잘잘못간에 그의 생활 전부는 오직 주를 위하여서 만이 아닙니까.

주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뜻대로만 이용하시는 당신의 기계가 아닙니까 . 자기라는 존재를 부인한지 벌써 오랜 그가 아닙니까 . 사람은 모르나 주께서는 잘 아시겠지요 .

아무 흠이 없는 주님을 채찍으로 때리고 아무 죄가 없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던 이스라엘의 말로와 같이 이 사회 , 이 민중의 장래가 그렇게 되면 어찌하겠습니까.

주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고 모든 악하다 하는 거짓말로 비방을 받으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사오매 주와 같이 욕을 당하고 주와 같이 십자가를 지는 자 또한 주와 같이 영광을 받을 줄 믿습니다마는 이 백성들이 입술로는 주를 공경하나 마음으로는 주를 멀리하며 주의 보내신 이를 괄시하오니 먼저 받는 사람들의 진노가 어찌 저들에게 임하지 않겠습니까.

주여 , 긍휼히 여기사 회개시켜 주시옵소서 . 조선 사람의 유전성 ( 遺傳性 ), 승기자 ( 勝己者 ) 를 꺼꾸러트리라는 악마로부터 받은 유전성을 멸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 오 주여 , 용서하시고 저희들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여 참 구원에 이르게 하여주세요 . 당신께서 보내신 이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더욱더 밝히 나타내주세요.

오늘 새벽은 별로 이런 기도만 자꾸 나와서 답답한 사정을 주께 아뢰고 방에 들어와서 한참 앉았는데 목사님이 보내주신 편지가 와서 받았습니다 . 비록 짧은 말씀이오나 제게는 무한한 감사와 기쁨과 용기를 일으키는 힘이 되나이다 . 시편을 찾아 몇 번 몇 번 거듭 읽으면서 ,

 

세상에 가장 행복스러운 자 누구냐?

주와 같이 하는 자.

세상에 가장 불행한 자 누구냐? 

주를 멀리 하는 자.

 

이러한 절실한 느낌을 얻으면서 신비한 은혜를 무한하게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 진정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무덤 문을 깨치고 죽음을 이기사 부활하신 주께서 같이하시는 목사님께 악마의 권세를 깨치시고 승리의 깃발을 날리는 날이 있을 줄을 분명히 믿고 기도하나이다.

 

1933 년 1 월 19 일

 

 

 

 

백○선 씨로부터

 

그리스도의 종이시여 , 이는 목사님의 최고의 영예의 이름이겠지요 .

폐허에 새로운 고함 ( 高喊 ) 소리는 벌써 울리었어도 일어나는 자는 없으니 주의 종의 목은 갈 ( 渴 ) 하고 터지고 말았습니다 . 이제는 찢어지고 부스러진 그대로 외칠 수밖에 없으니 그 소리에 선잠 깬 간난아기 몇이 비틀걸음으로 그 사도의 뒤를 겨우 따르고 있나이다.

한 간 ( 間 ) 밖에서도 들리지 않는 쉬고 쉰 목소리가 땅 위에 널리 퍼짐은 주의 목소리인 연고요 , 보기에도 딱한 창백한 얼굴과 파리한 몸이 굴곡이 많은 험로 위에서 고단한 빛 없이 쉬지 않고 나아감도 또한 주의 몸인 까닭이 올시다.

주의 상처가 덫이 나매 주의 종의 괴로움도 끝일 길 없음을 깨달았나이다. 이도 주의 무한한 사랑인가 하매 , 감사와 눈물뿐이로소이다 .

저는 보기 좋은 고등 거지의 명색을 띠고 빛나는 십자가만을 내 심장 속 깊이 감춘 후 금일 새벽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 눈에 보이는 것 , 귀에 들 리는 것 , 모두 마음을 혼란케 할 뿐입니다마는 주의 골방 문은 주의 허락 없이 열 수 없으니 다 주께 부탁하고 믿을 뿐입니다.

영철의 입학 문제와 평양이주 문제 어찌되었습니까 ? 궁금합니다 . 저의 문제는 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우리 주 안에 있는 자에게 삶과 이김이 저희의 차지가 될 것을 믿사옵고 목사님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1933 년 3 월 23 일

댓글목록

반석서님의 댓글

반석서 작성일

너무나 읽고 싶은데 비밀번호가 걸려있네요...받아서 읽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mapocmc11님의 댓글

mapocmc11 댓글의 댓글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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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님의 댓글

순종 작성일

이용도 목사님 전집이 절판이라 너무 안타까웠는데..
귀한 글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ㅜㅜ
한 자 한 자 영혼에 새기길 원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안녕하세요? 혹시 올려주신 pdf 파일을 읽을 수 있도록 암호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좋은 글을 이렇게 공개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mapocmc님의 댓글

mapocmc 댓글의 댓글 작성일

안녕하세요. 메일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댓글의 댓글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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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님의 댓글

나무 작성일

아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근데 비번이 걸려있어서...
혹시 비밀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mapocmc님의 댓글

mapocmc 댓글의 댓글 작성일

메일로 답변 보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 댓글의 댓글 작성일

아 답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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