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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메모 - 루터의 교훈(탁상담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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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2-18 22:39 조회3,0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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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교 저자 플리니우스(Pliny. 제20권 1장)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약은 속히 죽는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죽음을 무시하고 위험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죽음의 공포를 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번에 죽는 게 낫다.’ 이교도로서는 품어봄직한 기개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신 치료방법을 사용하면서 자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가볍고 쉬운 일입니다. 단, 죽음이 하나님의 진노가 아님을 아는 한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는다는 생각이 있을 경우 죽음 자체보다 그 사실이 더 큰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이교도는 편안하게 죽습니다. 그는 죽음을 하나님의 진노로 느끼지 않고 단지 생명의 소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는 “죽음이란 모진 순간을 하나 더 견디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합니다.
  선하고 거룩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미워하시는구나. 악인들에게 임하시어 그들을 응징하시려고 정직하고 의로운 자들을 데려가시는구나’그런 생각이 들자 몹시 두려웠습니다. 나는 죽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나는 교황의 저주와 파문을 받아놓은 상태이며, 그에게 마귀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으므로 그가 나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코부르크에 머물 때 내 묘지를 쓸 땅이 있을까 나가 찾아보았습니다. 한 때는 교회 성찬대 밑에 묻힐 생각도 해 보았으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내 머리는 칼과 같은데 이젠 칼날이 완전히 무뎌져서 그냥 쇳덩어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쇳덩어리는 아무것도 자르지 못합니다. 지금 내 머리가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주 하나님, 저는 땅에 오래 거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주 앞으로 가는 행복한 순간을 제게 허락하옵소서. 저는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 빈켄티우스(St. Vincent)에 관한 글을 읽습니다. 그는 죽을 때 발앞에 죽음이 당도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죽음이여! 무슨 짓을 하려고 왔느냐?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얻을 게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인인 줄 너는 모르느냐?” 우리도 그와 같이 죽음을 무시하고 조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 마르탱(St. Martin)의 전기에도, 그가 죽음 앞에 섰을 때 마귀가 침상 발치에 서 있는 것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흉칙한 짐승아, 너 왜 거기 서 있느냐?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말은 신자가 믿음으로 정당하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성인들의 전기에서는 이러한 내용만 추려 간직하고, 교황주의자들이 공들여 간직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이야기들은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에 머물 때 심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가련한 이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의 죄와 죽음과 멸망에 관해 생각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습니까? 속히 눈을 돌려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사도신경은] 주님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시고 음부로 내리셨으며, 사흗날에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당신은 이런 일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죄와 죽음에 대해서 자신을 위로하십시오. 두려워할 것도 위축될 것도 없습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죽음을 당하셨고, 당신을 위로하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이기셨으며,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 몸에 지체들이 많은 만큼 우리는 많은 죽음을 당합니다. 죽음이 우리의 팔다리 하나하나를 엿봅니다. 죽음의 원인 제공자이자 지배자인 마귀는 우리의 원수로서 우리의 생명을 노립니다. 그는 우리를 죽이기로 맹세했고, 우리는 죽음을 당할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신자들을 죽인다고 해도 그다지 얻는 것이 없습니다. 빈 땅콩 껍질을 으스러뜨리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꺼이 죽어주어 마귀에게 쉴 기회를 줍시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배나 죽어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나는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그 일이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둘째로 나는 마귀의 손에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거짓과 살인 위에 수립된 그의 나라를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와 자비에 힘입어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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