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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메모 - 무정념(apatheia)의 상태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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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6-30 23:10 조회3,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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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컵의 먼지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이상 외부로부터 컵에 충격을 주거나 물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한동안 놓아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물속의 먼지들이 진정되듯 마음 속의 활동들도 진정될 수 있는데 바로 외부로부터 마음의 충격을 받지 않기 위해 영성가들은 사람들을 떠나 광야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4세기 이집트 사막의 독거 수도자였던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또는 Evagrius the Solitary, c. 344 또는 345-99)에 의하면 수도자는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도 내면의 생각들에 의해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의 근원은 자기 사랑인데 이러한 자기 사랑으로부터 여덟 가지의 악한 생각들이 형성된다. 이 여덟 가지의 생각들은 식욕(gluttony), 육욕(fornication), 탐욕(love of money), 노염(anger), 낙담(depression), 게으름(listlessness), 자만(vainglory), 그리고 교만(pride)인데 이 여덟 가지 죄악은 에바그리우스의 제자였던 존 카씨안(John Cassian)에 의해 서방교회에 전파되어 후에 서방교회에서 일곱 가지 죄악의 목록으로 정착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생각의 활동에 의해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에바그리우스의 견해는 바울의 가르침과도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바울은 “너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이렇게 강조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깨어있는 시간 생각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다. 이 생각의 힘은 참으로 집요해서 심지어 잠자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배하기도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꿈들을 숙고해보면 그것은 우리의 잠재의식들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생각의 활동들의 주된 요소들인 욕심, 근심, 잡념, 그리고 과거의 기억의 활동들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집중된 기도를 드리기가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에바그리우스는 기도를 무정념이 극복된 상태에서 드리는 순수한 사고의 활동으로 이해한다. 즉, 에바그리우스에게 있어서 기도란 지성과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다시 말해 생각의 활동들로부터 자유한 순수한 지성이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에바그리우스는 묻는다. “그렇다면, 지성이 기울어짐이 없이 주님을 향해 팔을 뻗으며 매개물이 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려면 어떤 상태가 필요합니까?” 이에 대한 대답이 무정념이다. 무정념에 대하여 그래서 존 카씨안은 간략하게 마음의 순수함(purity of heart)이라고 정의한다.

   이 무정념의 상태에 대하여 에바그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정념의 상태를 획득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순수한 기도를 성취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먼 곳에 붙들어 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성이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의 세계에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 그리고 비록 그러한 관상은 비록 정념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해도 피조물에 대한 관상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형태를 지성에게 새기며 지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게 만듭니다.” 따라서 무정념의 상태란 기도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여덟 가지의 악한 생각들과의 싸움 끝에 이르게 되는 내면의 고요와 평정(stillness and calmness of mind)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 고요의 상태는 참된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관상을 위한 전제 조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정념은 내면의 정적을 경험하기 원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영적 훈련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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