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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메모 - 김흥호 목사의 신앙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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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7-24 12:56 조회3,7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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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35세 되는 해는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다. 일일일식을 하여 몸은 해골처럼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풍부한 해였다. 죄에서 사함 받고, 십자가를 믿게 되었고, 죽음에서 해방되어 부활을 믿게 되었다. 오랜 고민이 없어지고,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것이 나의 예수체험이다.

    신앙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에 체험 없이는 신앙이라는 것이 싹이 안 튼다. 그런데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믿는대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1:17). 복음이야말로 신앙의 핵심이며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를 복음에서 잡는다

   예수체험이란 결국 복음체험이며 복음체험이란 한 마디로 성령체험이며 성령체험이란 결국 거듭남의 체험이다. 거듭남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 5:17).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내가 죽어 버리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부활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산다(2:20). 이것이 예수체험일 것이다. 이런 체험은 대개 30대에 일어난다. 예수도 바울도 어거스틴도 루터도 존 웨슬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체험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세계나 다 마찬가지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바울을 택했고, 유대 사람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한 것이며 이 세상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이다.

    모두 은총이요 하나님의 섭리이지 인간이 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체험은 비밀에 부쳐 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예수체험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사랑하신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당신의 소중한 그릇으로 택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세계복음화의 거점으로 삼으셨다. 21세기에 우리나라는 복음화의 기수가 되고 22세기는 한국이 세계복음화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섭리 때문에 한국인의 한 사람인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 되었다. 이것이 나의 예수체험이다. 나보다 먼저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가 예수체험을 한 것이다. 그것이 8.15 해방이요, 6.25동란이요, 앞으로 있을 남북의 통일이다.

   나의 첫 번째 예수체험은 일곱 살 때 일이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나는 하나님의 다리를 얼싸안았다. 하나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 환상은 내 일생을 통해서 절대로 잊혀지지를 않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녔다. 주일학교 선생님은 72세의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분의 무릎에 앉아서 예수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 분이었다. 그때 교회생활은 참 재미있었다. 더욱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낮 예배에는 노래도 부르고 성경 구절도 따라 외우고 밤에는 크리스마스 연극을 하였다. 이러한 준비는 한 달이 걸렸다. 전등도 없고 풍금도 없고 의자도 없는 시골 교회였으나 그때처럼 재미있는 시절도 없었다. 시골에서 평양은 170리 가량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 있는 중학교엘 가게 되어서 평양에 있는 남산현감리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중학생이라고 소년부에 들어갔고 아침에는 유치부 반사 조교가 되었다. 주일 낮, , 삼일 예배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주일 오후에는 장로교 서문밖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그때는 주일예배를 감리교는 오전에 장로교는 오후에 드렸다), 부흥회가 있을 때에는 어디나 따라다녔다. 가면 언제나 설교를 필기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시골 교회로 돌아갔다. 주일학교 선생이 되어 동화도 하고 아동 설교도 하였다. 겨울방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2학년 여름방학 때는 어른 예배에도 설교를 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필기해온 설교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담임목사는 네 곳의 교회를 맡았기 때문에 목사님 설교는 한 달에 한 번만 들을 수 있었다. 그 밖의 예배는 교회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인도했다. 그런데 제직 가운데 중학교에 간 사람이 없었다. 그때 우리 면에서 중학생은 세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제일 높은 지식계급이 되어서 시골에 가면 모든 설교는 내가 맡게 되었다. 대학에 가서는 동경 제2감리교회의 담임자가 되었다. 나는 주일이면 아침에는 주일학교, 낮에는 예배 인도, 오후에는 심방, 밤에는 저녁예배 인도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방학 때가 되면 성경연구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일본에는 성경연구 강의집이 많이 나와 있었다. [내촌전집], [등정전집], [반상전집], 그 밖의 많은 책들이 내 마음을 끌었다. 성경 강의의 핵심은 속죄와 구령이었다. 아무리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를 하고 교회를 섬겨도 내 속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죄와 육의 문제였다.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남이 보면 내가 제일 잘 믿는 사람인데 나는 안 믿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했지만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해도 믿음이 안 생기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죄 사함을 받아야겠는데 죄는 여전히 남아 있고 육은 여전히 강하여 아무리 공격해도 철벽같이 우뚝 솟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교회를 담임했지만 십자가와 부활은 여전히 나와 상관이 없다. 이남으로 피난해 왔다. 나는 수없이 많은 부흥회에 참석하였고 밤을 새우며 기도했으나 나의 가슴에 박혀 있는 죄의 얼음은 녹지를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종로 YMCA에서 성경 강의를 하시는 유영모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한학자요 동양철학자이며 진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도 16살에 세례를 받았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38년 만에 믿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처음으로 믿음에 들어간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경 강의는 나에게 한없는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그분은 성경을 다시 자기식으로 번역하는 방법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자기 것이 되도록 성경을 푸는 것이다. 마치 성경 말씀을 밥이나 고기처럼 씹고 또 씹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는다. 나는 성경을 여러 번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특히 신약은 로마서와 요한복음을 중점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십자가와 부활은 믿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을 만난 지도 6년이 지나갔다. 나는 절망과 슬픔에 좌절하여 선생님을 떠나게 되었다.  

    암흑 속을 헤매기를 백날, 내가 35살 되는 해 317일 오전 95, 나는 하나님의 빛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순간에 나의 죄는 흰 눈처럼 녹아 버리고 나는 나의 과거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시간이 단절되고 만 것이다. 시간 속에 영원히 들어오고 만 것이다. 처음으로 계시를 받게 되었고 처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십자가는 없어지고 말았다. 십자가를 믿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을 받으면 저절로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게 되었다. 십자가는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워진다. 속죄를 믿는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가 사해지면 속죄는 저절로 믿어진다. 이것이 나의 예수체험이다. 십자가는 체험되는 것이지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은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보려고 애쓴 것이 결국 나를 절망으로 빠뜨려 버렸다. 결국 나는 허무에 빠진 뒤에야 하나님의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나의 진짜 주님이 되었고 나는 그의 종이 되었다. 나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 그 시간부터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동반자가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있어 그리스도와 나는 일체가 되었다. 나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12년 동안 고행에 들어갔다. 고행의 내용은 네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일일일식이다. 일 년도 가기 전에 나는 해골처럼 피골이 상접했다. '내일이면 죽는다는 날이 온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고 죽느냐 밥을 먹고 사느냐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죽어도 일식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날 밤을 잔다. 다시는 못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나 그 다음날도 깨어났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그 해 65, 또 한 번 계시를 받는다. 부활에 관한 계시다. 이 계시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죽음이 없어지고 만다. 죽을 수 없는 생명,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부활을 믿어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고 보니 그것이 부활의 생명이다. 믿음이 있어서 체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있어서 믿음이 있다. 내가 있어서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있어서 내가 있다. 성령의 체험은 나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버렸다. 죄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되었다. 그 해 1212, 나는 또 한 번 성령을 받았다. 이 체험을 통해서 나는 승천을 믿게 되었다.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된 것이다. 나의 모든 욕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40이 넘어 미국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뒤 45살에 목사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교목이 되고 55살에는 이화여고 대학교회를 담임하고 10년 동안 목회했다. 그 후에도 지금까지 대학교회 성경 강의는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신학대학 선생이지만 나에게는 대학교회의 성경반이 더 소중하다. 나에게 있어서 35살 되는 해는 참 이상한 해다. 세 번씩이나 성령체험을 하게 된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믿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세 번이나 빛을 비추어 주셨던 것이다. 그 해 어느 날 수녀가 찾아왔다. 이화여대 앞에서 노고산을 돌아가서 서강대학교로 가는 도중에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와서 그 빛을 따라가 보니 그 빛이 이화여대 후문 쪽으로 내려와 우리 집으로 들어오더라고 했다. 나는 수녀를 보고 옛날 동방박사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목요일 아침 연세대학교에 회의가 있어 나가려고 하는데 대학생 5,6명이 찾아왔다. 나는 연대 학생인 줄 알고 토요일에 올 것을 부탁하고 학교로 향하였다. 토요일 두 학생이 찾아왔다. 한 학생은 성균관대학교 3학년, 한 명은 서울공대 2학년, 이 두 학생은 모두 정릉감리교회 주일학교 선생이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느지의 의문을 품고 고민하다가 북한산에 들어가서 금식 기도를 시작했다. 두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성균관대 학생 홍군이 하늘에 나타난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 다른 골짜기에서 기도하고 있는 서울대 학생에게 알리러 가서 둘이서 무지개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홍군의 팔을 잡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끌려가보니 다시 자기가 있던 골짜기였다. 자기를 끌고 온 분이 자기의 손을 잡고 성경책을 펴서 마태복음 1020절을 자기 손가락으로 꼭 짚어 주더란다. 그 말씀은 네 속에서 역사하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을 믿고 산을 내려와 학교 안에 있는 깡패들을 전도하기 시작해 대 여섯 명의 친구를 얻어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목요일 우리 집에 왔던 사람이 그들이다. 홍군이 교회 나가서 새벽 기도를 하는 데 똑같은 계시를 받았다. 어떤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그 사람을 향해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옷은 곤색양복이고 더블 단추의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성령의 지시로 그 사람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이름이 김 아무개인데 이름은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들은 며칠 동안을 기도 중에 나타난 사람을 찾았다. 수요일, 신촌에 와서 우리 집 앞 구멍가게에서 김 선생집을 물으니 가게 뒤에 있는 김형석 선생집을 가르쳐 주어서 그 집을 찾아갔더니 기도 중에 본 사람이 아니었다. 목요일 다시 와서 또 물으니 우리 집을 가르쳐 주는 데 기도 속에서 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곤색 더블 단추 양복저고리를 찾았다. 옷장에서 꺼내 보여 주었더니 그 옷이라고 한다. '정릉감리교회에 가서 기도 속에 나타난 나는 누구일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나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심리학자 윤태림 선생에게 분석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내가 35세 되는 해는 여러 가지로 이상한 일이 많았다. 일식을 하여 몸은 해골처럼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풍부한 해였다. 죄에서 사함 받고, 십자가를 믿게 되었고, 죽음에서 해방되어 부활을 믿게 되었다. 오랜 고민이 없어지고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되었다. 기쁨을 전하는 것이 복음임을 알게 되었다. 성경 강의가 그대로 기쁨이 되었다. 무슨 강의든지 궁극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것이 나의 예수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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