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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메모 -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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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8-17 13:04 조회3,0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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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경주자”- (살전 1:3-4) : “여러분의 믿음의 활동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꾸준한 희망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믿음이란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소망이란 부활과 영생과 다가올 하나님의 왕국을 바라는 소망입니다. 사랑이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바로 이 세 가지입니다. 오래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견디면서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달려 가고자하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십니다.”(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대속의 양이 된 예수의 사랑” (요한일서4:9-10) :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권능을 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에게도 그것을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원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조롱을 받으시던 때에도 그에게 하늘에서 천군천사를 불러 원수를 멸할 권능을 주시지 않았다. 예수는 고난을 받으셨으나 스스로 겸비하여서 입을 열지 않고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않으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때에 크나큰 사랑을 그에게 쏟아 부어 주셨다.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부르짖게 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에게는 자신을 구원할 능력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사랑밖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던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다” (The important thing was to love rather than to be loved)


   “성령과 능력의 역사” (시편16:8-9) : “야훼여, 언제나 내 옆에 모시오니 내 옆에 당신 계시면 흔들릴 것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넋이 기쁘고 즐거워, 육신마저 걱정 없이 살 것입니다.” - 이 나약한 육체,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느냐? 이 죄악 된 사회, 또한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느냐? 이런 육체를 의뢰하고, 이런 사회를 의지하고 있다가는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에게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서 그분의 큰 권능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울 수가 있다. 그는 또한 불과 성령으로, 하늘의 이적과 땅의 기사로써 나를 도우신다. 내게는 이런 안과 밖에서 오는 도움이 있으므로 나 혼자서 전 세계를 맞상대한다 해도 두려운 마음을 조금도 품지 않는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위력” (고전 2:11-12) :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마음만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성령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 나는 모세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예수와 바울 같은 분들이 주장하여 왔던 낡고 오래된 유일신교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엔 또한 임마누엘이라고 불리며, 인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데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다. 우주를 지으시고, 그 위에 계시고, 그 가운데로 내려가셔서 그것을 보육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자연신교가 말하듯이, 높은데 초연하게 앉아 있으면서, 우주와 인생 사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무정하고 무감각한 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안에 갇혀 있어 자연 이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신도 아니다.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셨지만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다. 우주를 가지고 서서히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다. 그분의 의지가 인생의 길이다. 인생은, 우주를 통하여 하나님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는 바가 있지만, 그분의 의지는 우리가 그분과 직접 연결될 때에만 알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을 초원 하는 임마누엘의 평안을 주신다.”


   “마르다의 심정을 원하심” (시편51:16-17) : “하나님은 제물을 즐기지 아니하시며, 번제를 드려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찢어진 영혼입니다. 하나님은 찢어지고 터진 심령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 사업이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감사의 헌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업보다 더 귀한 헌물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이것이 바로 깨어진 마음, 어린이와 같은 마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다. 그대가 지금 사업을 하나님께 바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의 마음을 바쳐라. 하나님이 그대를 병들게 하심은 아마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그대는 베다니의 마르다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려고 애쓰며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눅 10:41)"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대에게 마리아의 마음을 주시기 위하여 그대는 지금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성도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시편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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