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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메모 – 루터의 탁상담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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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8-21 13:23 조회3,0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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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링거(Bullinger, 1504-1575. 스위스의 츠벙글리파 개혁자)는 자신은 분파들과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지나치게 고집하는 자들을 혐오한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가 분파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만 강조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경시하기 때문이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지나치게 고집하는 자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마치 유대인들이 언약궤를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을 제약하는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 한두 집단 사이에서 중용을 견지하면 말씀과 성례의 용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불링거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그러한 오류로써 말씀을 성령과 구분하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분들을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과 구분하고, 세례를 베푸는 목회자들을 세례를 명하는 하나님과 구분하고 있군요. 당신은 성령께서 말씀 없이 부어지시고 역사하시며, 말씀은 이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고 계신 성령을 발견할 수 있는 영원한 표와 흔적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당신의 주장에 따르면, 만약 말씀이 성령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힌 사람만 발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셈이며, 따라서 말씀을 규명하고 확정할 때 그것을 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에 따라 하는 셈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평안과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불신자들 속에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당신은 외적인 말씀이 어떤 것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대상 혹은 표상이라고 가르칩니다. 당신은 말씀의 용도를 오직 인간이 평가하는 가치에 따라서 평가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께서 그것을 통해 역사하셔서 당신의 사역을 완수하며, 의혹은 칭의를 향한 시작을 준비하는 수단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악인들과 위선자들과 불신자들에게 전해지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경건하고 올곧은 그리스도인에게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것과, 참된 교회가 선인들과 악인들이 섞여 있는 죄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확고히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열매를 맺든 맺지 않든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은 불신자들도 틀림없이 심판할 것입니다(요12:48).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불신자들이 애당초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데 장애가 있었으므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받을 수 없었을 테니 어찌 그 일로 정죄를 당할 수 있겠느냐는 구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자의 말과 사면과 성례는 그의 말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씻으시고 사죄하시고 매어주시는 일임을 나는 분명히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쓰시는 수단 혹은 조수일 뿐입니다. 당신은 말하기를, 마음을 씻어 주시고 사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가르치고 책망하고 사면하고 위로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치고 경고하고 책망하고 경성케 하고 위로하고 사죄하고 성례가 거행되게 합니다. 이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나의 말을 듣는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나는 설교를 하거나 성경을 낭독하기 위해서 강단에 오를 때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내 말이 아니며, 시편 저자가 그랬듯이 내 혀는 준비된 저자의 펜임을 거듭 확인하고 다짐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사도 베드로의 교훈처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연적 이성과 이해에 따라 하나님과 사람을 나누거나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내가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듣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산다면 자신을 땅 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 많은 사도인 바울도 늘 그렇게 살지 못한 까닭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롬7:23) 하고 탄식했습니다. 말씀아 우리 안에서 항상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서 말씀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까? 태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여 얻는 것은 아무렇게나 해도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사람 마음에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루터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듣던 불링거는 마침내 무릎을 꿇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서 택하신 그릇인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들었으니 나는 참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책망과 바로잡음을 받았으니, 이제 내가 품어온 잘못된 생각과 견해를 다 버립니다’ 그런 뒤 일어나서는 루터의 목을 끌어안았고, 두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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