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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메모 – 말씀에 대하여 (루터의 탁상담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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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8-08-27 13:11 조회2,9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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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계명의 의미를 철저히 깨닫기 위해서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십계명 서문에 기록된 “나는 -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나는’이라는 한 단어에 압도당해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한 단어를 앞에 놓고 그 단어를 가지고 설교하지 못한다면 참된 설교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비록 보잘것없는 지식인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며, 내가 가진 적은 지식을 불평하지 않으려고 주의합니다.

    나는 설교를 할 때 성경의 문자적 의미에 토대를 둡니다. 나의 이 방식이 좋으면 따라서 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 모세와 성경의 모든 위인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단 한 구절이라도 수없이 상고하지 않고서, 그 근본적인 뜻을 단번에 깨달았을까요? 시편은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147:5) 하고 말합니다. 물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논할 수 있지만, 실천은 별개입니다. 실천에 관한 한 우리는 늘 책상물림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콜라 신학자들이 적절한 예를 들었습니다. 탁자에 지구의(地球儀)가 있다고 합시다. 지구의가 탁자에 닿는 것은 한 지점뿐이지만, 지구의를 떠받치는 것은 탁자 전체입니다. 나는 나이 지긋한 신학박사이지만 이 날까지 어린 이들이 배우는 범위 一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ᅳ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내 나이라면 잘 알아야 할 내용인데 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날마다 내 아들 요한과 딸 막달렌을 데리고 공부하고 기도하는데도 그렇습니다. 만약 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기도문의 첫 구절을 충분히 깨닫고,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이심을 정말로 믿는다면, 나도 하늘과 땅의 작은 주인이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형님이시고, 가브리엘이 나의 종이고, 라파엘이 나의 마부이고, 모든 천사들이 나를 섬기고 내 길을 지키어 부지중에 내 발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시종들이라는 결론을 확고하게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믿음에 더욱 굳게 세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지하 감옥에도 던져 넣으시고 물에 빠뜨리시는 수고를 하십니다. 이런 일을 겪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우리가 얼마나 약한 사람들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일을 겪어봐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정도나 참된지 과연 누가 온전히 알겠는가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거나 말씀이 곡해되어 더 이상 순수하고 명쾌하게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만큼 그리스도인에게 큰 불행이 없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그런 재앙을 당하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순수하고 명쾌한 말씀을 갖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다 조금 마음을 놓으면 이내 게을러지고 헛된 안전감에 속아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언제까지나 그럴 줄로 생각하고서 더 이상 예민하게 자신의 처지를 성찰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비틀어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데도 깨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란 마치 여행자가 대로를 지나는 동안 안일하게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깊은 숲이나 오솔길로 들어가게 되어 이쪽으로 가야 할지 저쪽으로 가야 할지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와 같습니다.
   세상의 위인들과 박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비천한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알려집니다. 구주께서 마태복음 11:25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성경이 코끼리가 헤엄칠 정도로 깊으면서도 어린 양도 실족하지 않고 걸어 건널 수 있는 시냇물과 같다고 적절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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