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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 목사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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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8 22:46 조회1,8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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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 목사의 일생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03년 19명의 형제 가운데 15번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목사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로 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 후 25세의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면서 대학 내의“홀리(Holy)클럽”의 지도자가 되어,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Holy클럽이란 그 동생 찰스 웨슬리가 창설한 것으로, 저녁에 함께 모여 3시간 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와 금식을 통한 경건생활에 힘쓰는 클럽이었습니다. 따라서 주위로부터“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별명 을 얻었는데, 이것은“규칙쟁이, 엄격주의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바로 감리교회의 이름이 유래된 것입니다.

 

    18세기 웨슬리가 활동하던 당시의 영국 국교회의 구원관은 마틴 루터가 주장한 것과 같이“오직 믿음만으로”가 아니라“인간의 선행을 통하여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종교적 선행과 도덕적 선행”을 통하여, 조금씩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부모님도 영국교회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자선, 구제는 물론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을 조금도 어김없이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그는 1735년 미국 조지아주의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3년간의 선교활동은 완전히 실패하고,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738년 귀국 후 2월 모라비안 교도인 피터 뵐러 목사를 만나면서, 그는 영국교회의 잘못된 시각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라비안 교도의 신앙은 “인간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뵐러 목사와 그 동안의 편견을 배제하고, 새로운 눈으로 성경을 읽으면서“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에 대한 참 된, 산 믿음을 통해서만 죄의 용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웨슬리의 결정적인 회심은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이루어집니다. 웨슬리는 올드 스케이트 거리에서 열린 한 모라비안 교도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저녁 8시45분경 한 사람이 루터의“로마서을 위한 서문”을 읽는 것을 듣던 중“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내용을 통해서,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후 웨슬리는“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해서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교회에서“믿음에 의한 구원”은 이단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에, 웨슬리의 설교는 배척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여 20만명에게 전도하였고, 1791년 88세의 나이에 성경을 손에 쥔 채 소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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