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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와 모라비안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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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8 22:48 조회2,9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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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와 모라비안 교도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가 미국으로 가려고 탄 배가 항해 중 침몰직전의 위급한 상황을 만납니다. 그때 미국 인디안에게 선교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가는 자신은, 지금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데, 한 쪽 구석에서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찬송을 부르고, 평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모라비안 교도였습니다. 

 

    웨슬리는 미국선교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모라비안에게 많은 영적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모라비안은 진젠돌프 백작이 이끌었는데, 다양한 교파적 배경을 초월하여, 하나 된 교회생활을 시도했고, 적극적으로 선교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그들의 찬송이 매우 깊은 영성과 품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와 모라비안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요? 그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웨슬리는 신대륙의 조지아(Georgia) 주에서 선교사역을 하기 위하여, 1735년 10월에 런던을 떠났다. 대서양을 횡단하던 웨슬리는 미국에 도착하기 약 10일 전인, 1736년 1월 25일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됐다. 이때 웨슬리는 그런 형편에서도 변함없이 평안히 기도와 찬송을 하면서, 배 안에 있는 궂은 일을 불평없이 감당하는 무리를 보았는데, 그들이 바로 영국을 출발할 때부터 함께 하였던 모라비안 교도들이었다. 

 

    웨슬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으며, 동시에 그와는 달리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서 큰 충격을 받았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독일의 경건주의 전통을 따르는 이들로서, 독일을 떠나 웨슬리처럼 조지아 주로 가고 있었다. 웨슬리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들 안에 있는 깊은 신앙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들이 신학적으로 영국국교회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모라비안(Moravian)운동은 교회사에서 잘 알려진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그들은 최초의 프로테스탄트라는 점과, 현대 선교운동의 선구자라는 점과, 교회연합을 강조하였다는 점등 이다. 특히 그 운동의 지도자 진젠도르프의 신앙과 열심, 그리고 헌신은 그리스도교 지도자의 훌륭한 모델로서 비쳐지고 있다. 모라비안 운동이 교회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영향이 지역적으로 유럽의 여러 지역과 세계에 널리 미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날드 녹스(Ronald Knox)는 모라비안 운동의 그런 점을 가리켜 "유럽선교에 활력 있는 누룩"이라 하였고, 비숍 하세(Bishop Hasse)는 말하기를 "모라비안의 영향은 초기 영국의 부흥의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죠지아에서 그들의 활동은 좋은 반응을 보였고, 마침내 더 많은 선교사를 죠지아로 파송하도록 결정하였다. 1737년 8월, 26명이 헤른후트를 떠나 런던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런던에서 죠지아로 가는 배를 잡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시몬즈(Simmonds)라는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게 되었다. 그 배에는 당시 죠지아 총독 오글톱의 초청을 받고 죠지아로 가는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도 승선을 했는데, 바로 이 사건이 18세기 영국교회의 부흥운동을 가져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배에는 영국인 벤자민 잉함(Benjamin Ingham)과 찰스 델라모트(Charles Delamotte)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후에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방법은 우연한 만님인 것 같은 사건을 통하여, 사람을 예정된 축복의 도구로 삼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웨슬레가 그 후에 모라비안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웨슬리의 부흥운동에 연결되는 것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3개월이란 긴 항해를 통하여,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였다. 잉함 목사는 후에 미국에 돌아와서, 형제단의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어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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