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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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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8 22:51 조회2,1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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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의 신학

 

1. 요한 웨슬레의 신학형성의 배경과 그 운동의 특징 

 

1) 18세기 신학적 영국 국교회의 상황 

  18세기엔 칼빈주의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으나, 말엽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관계 면에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만민을 위한 것이나, 개인의 구원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곧 믿음을 하나의 선행으로 보았다. 웨슬레 부모의 신학 역시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선행이라고 생각하여, 인간행위로 보았다. 

 

2) 종교적, 도덕적 상황 

   웨슬레 당시, 18세기 신앙은 자연신론이 성행하여 하나님은 창조주일 뿐, 세상의 과정에는 관심 갖지 않고, 우주와 세상은 자체의 운명에 맡겨져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 같은 초월적인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초자연적 요소는 제거하고, 신앙을 이성에 예속시키는 일을 강조했다. 18세기 도덕적 상황은 한마디로 부패 자체였다. 문학은 저속하고 철학은 이성의 장난처럼 되어 버렸다. 교회도 부패해 있어 성직이 뇌물에 의해 좌우되는 일도 잦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게 되었다. 흑인노예의 판매가 크게 행해지고 있었던 것을 들어, 지금의 인신매매와 비교할 수 있다면, 음주향락, 폭행이 심한 것이 현재의 한국 형편과 흡사하다. 

 

3) 웨슬레의 신앙 체험 

   웨슬레는 엄격한 경건의 훈련을 받으며 자라났다. 웨슬레의 부모는 엄한규율에 의해 자식들을 양육한다. 기독교는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종교라고 가르쳤으므로, 웨슬레 신학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도덕적 영적노력과 천국을 위한 행함의 자세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의 청년시절의 신앙이 인간중심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은 선행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신성 클럽 활동과 미국 조지아 주의 선교도 결국 자기 영혼의 구원과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다. 후에 그는 이 시기를 아들로서가 아니라 노예로서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런 인본적인 신앙이 1738년 5월 24일 복음적 신앙체험을 기점으로 하나님중심의 신앙으로 완전히 변화된다. 

 

4) 웨슬레 신앙운동의 특징 

   웨슬레 신앙운동은 자신의 복음적 회심체험 및 성경적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즉 성경적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려는 운동이었다. 구원을 위한 인간 스스로의 노력은 큰 좌절만 가져다주는 것을 웨슬레는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모든 일에 있어 성경적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어디에 있든지 있는 힘을 다해서, 분명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설교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면에 있어서는 웨슬레의 신앙운동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동기와 비슷하다. 

 

      웨슬레 신앙운동의 특징은 (1) 정화운동에 있다. 웨슬레의 신앙운동은 당시 도덕적 타락과 부패로 편만해 있던 개인과 교회를 정화시키고자 일어난 운동이다. 당시의 영국교회는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능했었다. 사회의 고위층은 종교에 대해 냉소적이었고 대중은 교회의 영향권밖에 있었다. 국가지도층의 부패와 사회에 온갖 범죄가 난무한 상태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회복시키고, 교회의 정신을 가져오게 하는 책임과 부담감을 느꼈다. 그는 계속해서 동역자에게 구한다.“여러분의 한 일은 한가지일 뿐입니다. 곧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웨슬레 운동은 처음부터 당시 영국에 있던 순수 기독교를 소멸시키고 있던 외식주의와 형식주의에 반항하는 운동이었다. 

 

    웨슬레 신앙운동의 특징은 (2) 창의적 종합에 있다. 웨슬레 신앙은 신약성경에 있는 중요한 요소에, 한 학파의 장점들을 창의적으로 종합한대, 그 특징과 공헌이 있다.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신약성경에 나타난 주요한 요소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러면서 교회의 각 전통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결합시키곤 하였다. 웨슬레는 성결의 개념을 로마 카톨릭의 강조에서 가져왔고,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만으로 라는 종교개혁자들의 강조를 채택했다. 웨슬레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와 경건주의자들이 강조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개념을 창의적으로 종합하여 기독자 완전의 성경적 교리를 수립한 것이다. 

 

2. 웨슬레의 신학 

 

1) 웨슬레 신학은 성경 

   웨슬레는 자신을 한 책(성경)의 사람이라고 자칭했고, 신앙 체험을 중시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의 신학적인 글이나 교리적인 글의 원천적인 자료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경은 신학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최고 권위였다. 웨슬레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책이고, 그릇됨이 없다."고 믿었다. 또한 웨슬레는 구원받기에 필요한 진리가 성경 안에 충족히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한 것도 곧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해 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바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셔서 친히 하늘에서 이 땅위에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하고, 지금은 그것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웨슬레 신학의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지금까지 상고한 대로 웨슬레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함에 있어 전통적인 개신교의 입장인-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권위이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의 강조점을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이해- 창의적으로 종합했다. 

 

2) 웨슬레 신학에서의 체험 

   웨슬레는 신학을 성경에서 시작하여 늘 신앙체험에 호소한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체험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호응하는 것으로서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말하는 체험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총에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성을 존중하고 경험을 고립된 것으로 보기보다 성도의 교제 속에서-교회에서의- 경험을 존중했다. 

 

3) 구원론 

   웨슬레 신학에서는 구원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웨슬레의 신학은 전도와 설교의 현장에서 수립되었다. - 그리고 그의 설교의 강조점이 성결에 있듯이, 그의 구원론이 성결론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웨슬레는 구원이라는 말을 두 의미로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구원과 궁극적인 구원을 포함하여, 이를 본연의 그리스도의 구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웨슬레는 흔히 이 구원을 현재의 구원에 국한시켜 의인과 성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성화에 강조점을 두어 구원론을 전개하였다. 또한 구원을 넓은 의미에서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포함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런 구원은 선행적 은총으로부터 시작하여 영화의 사건으로 종결된다. 그는 죄를 질병에 비유하고, 구원을 치유에 비유하였다. 구원의 관계를 죄문제와 연결시켜 이해할 때, 웨슬레의 구원론을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가) 원죄로 인한 죄책은 하나님께서 감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행적 은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무조건적인 공로로 해결된다. 그러므로 선행적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은, 원죄의 부패성만을 지니고 있다. 이 부패성 때문에 실존적 인간은 죄를 짓게 된다. 

 

나) 죄로 인한 죄책은 의인에서 용서를 받아야 한다. 

 

다) 누적된 죄의 부패성은 성화의 과정에서 씻음을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웨슬레는 성화가 신생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부분적 씻음)성화의 과정에서 완전한 성화(완전히 씻음)로 그 성장이 계속되어, 마침내 영화로 완결된다고 보았다. 이 영화의 사건에서는 죄로 인한 모든 흔적, 곧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에서도 해방을 받는다고 보았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웨슬레의 중요한 관심은, 현재의 구원에 있었다. 의인은 곧 죄책에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로 회복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의인의 은혜 받기 위한 조건은, "회개하고 믿는 것이다." 웨슬레는 믿음의 중요한 요소를 분명한 신뢰와 신임에 두었다. 그리고 사람이 의롭게 되고,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신생이 있다. 이를 중생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신생을 성화의 과정에서 볼 때, 성화의 시작이다. 신생의 표적으로는 설교"신생의 표적"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들고 있다. 

 

4) 성화관 

   웨슬레의 성화관은 당시의 여러 학파들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종합 되어 독특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첫째) 당시 모라비안파의 극단적인 것을 지양하는 점진적인 성장개념이다. 우리의 신앙은 사람이 출생한 후 성장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것은 웨슬레는 인간의 선악에서나 믿음에서나 또는 성경에 있어서 모두 단계가 있다고 보았고, 인간은 거듭난 후에도 아직 내적인 죄가 남았다고 보았다. 

 

둘째) 웨슬레에게 있어서 점진적인 성장의 개념은 순간적인 요소가 종합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칼빈주의자의 성화론과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셋째) 웨슬레는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서 순간에 보다 고차적으로 끌어올리는 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웨슬레가 주장한 성화과정에서의 성장은 독특한 것으로, 

가) 회개와 믿음으로 거듭남과 함께 성화가 시작되고, 

나) 신자로서의 회개와 믿음으로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지고,

다) 마침내는 영화하는 순간적인 단계에 이른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로서의 성화는 종말론적인 목표를 향하여 계속 상승하는 것이다. 웨슬레가 성화과정에 순간적인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성화가 인간의 수양으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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