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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구원론(2) - 성화와 완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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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8 23:14 조회1,7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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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에 의미가 있다면 성화는 성장함에 의미가 있습니다. 중생한 자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가장 중요한 특색을 가집니다. '완전 성화'는 구원의 완성이요 구원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a) 웨슬리 성화 사상의 신학적 배경

 웨슬리의 성화 사상은 수 많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로 크리소스톰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과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호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선행이 의로워진 그리스도인의 자동적 열매라는 루터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신앙 지상주의, 도덕 무용론 등을 비판하고 선행은 인간의 의지가 동반된 신인 협력적인 일로 보았습니다. 율법의 역할에 대해 루터는 죄를 깨닫게 하는데 그치지만 칼빈은 선행과 성화의 선행 또는 채찍질과 자극을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입장은 칼빈과 비슷하나 칼빈이 성화가 성령으로부터만 나온다고 믿은 반면에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간 의지의 책임적 응답에 의한 성화'를 강조했고, 칼빈과 달리 이 세상에서 완전 성화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 받아 성화가 믿음을 기초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선행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중세 수도원의 속세를 등지고, 금욕 생활을 하며,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고행적 수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전통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네덜란드 신학자 아르미니우스(Arminius,1560-1645)에 의해 시작된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영향을 받아 신학적 골격을 아므미니안주의에 입각해 세웠고, '신인협력설'(synergism)을 주장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칼빈주의자들과는 달리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자유의지로 받아들여 믿어 구원 받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구원 받은 사람도 자유의지로 타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b) 성화 사상의 본질과 특성

'성결'이란 말은 '거룩'과 관련이 있는데 거룩은 히브리어 '카도쉬'(kadosh)로 분리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 말은 하나님이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장소가 하나님과 관련지어질 때에도 거룩하다고 불리며, 어떤 객체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성결'이라고 하고, '거룩하다'와 '성결하다'는 같은 의미로 쓰여집니다. 그러나 성결과 성화는 다른데 '성결'은 영어로 'holiness' 또는 'being holy'로 표시되는데 반해 '성화'는 영어로 'sanctification' 또는 'becoming holy'로 표기됩니다. '성화'는 죄에서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체험적 의미가 강한데 비해, '성결'은 성화를 통해 거룩해진 결과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소극적으로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결'을 의미하지만 적극적으로는 세상에 사랑과 선행을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사랑'을 성령의 최고의 열매이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준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란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고, 구원의 최종 조건으로 간주했습니다.

 

인간이 서로 욕하고 미워하며 자신도 사랑하지 않아 학대하는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전파하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교우를 친 형제 자매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늘 계명이자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마태 22/32~36)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루터의 믿음에 의한 '신앙 의인'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믿음과 행위를 대립시켜 신앙만을 찬양하고 선행을 경시하는 것을 사탄적인 일로 보면서 "신앙에 아무런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가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행위가 믿음을 온전케하고 증명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선행과 복음 사역을 할 때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것을 보면 믿음과 행함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화는 성결을 목표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성령'이며, 성화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화는 스스로 이룰 수 없으며 성령을 통해 끊임 없는 하나님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즉 성화는 온전한 진리와 믿음의 바탕 위에 성령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c) 성화의 단계

1. 초기의 성화 (initial sanctification)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사함으로 중생될 때 성화가 시작되는데 이를 '초기의 성화'라고 합니다. 칭의와 중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관계적 성화'라고도 합니다. 관계적 성화는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적인 변화이며 내 과거의 죄를 용서 받은 상태입니다. 관계적 성화를 이룬 사람은 영적 성장을 거쳐 온전한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점진적 성화 (gradual or progressive sanctification)

어린 아이가 태아나면 젖을 먹고 성장해야 하듯 내 영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로 성장해야 합니다. 점진적 성화 기간동안 주님을 믿고 의지해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시험·유혹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인간은 죄사함을 받았어도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의 유혹이 있는 순간마다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또한 내 스스로 육신을 이길 수 없으므로 자아를 버리고 주님 뜻에 맡겨 성령이 작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3. 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된 상태이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됨을 말하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초기 성화는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는 순간적인 체험이라면, 온전한 성화는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일소하고 주님과 하나되 경건하고 깨끗해지는 체험입니다.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를 '제 2의 축복', '두 번째 변화', '온전한 구원', '그리스도의 완전',이라고 불렀고, 그 본질을 '온전한 사랑',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나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 웨슬리는 점진적 성화가 계속 되다 보면 죽기 전에도 어느 순간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4. 영화 (glorification)

영화는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천국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흠 없이 완전하고 거룩한 영적 인격의 완성 내지는 성취입니다. 영화는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이며, 그는 죽음과 함께 영화에 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온전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한 구원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는 것을 명심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d) 웨슬리 성화(완전) 사상의 성경적 근거

 마태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히브리서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고후 13/9 ‘우리가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골로새서 2/10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요한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로마서 8/29-30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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