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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교파와 뚜렷이 대비되는 '감리교의 교리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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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8 23:32 조회2,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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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교파와 뚜렷이 대비되는 '감리교의 교리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타교파, 특히 장로교의 칼빈주의와 대비되는 감리교의 교리적 특징을 들라면 대략 세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철저히 구원집중적인 웨슬리 신학의 근저에는 '하나님 은총의 낙관주의'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신학은 하나의 기독교 체계를 세우는 조직신학적 작업도, 기독교를 멸시하는 문화적 교양인에게 기독교 진리를 변호하는 변증론도 아닙니다. 단지 어떻게 하면 바르게 구원받아 성결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실천적 영성(practical divinity)의 문제였습니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회개→의인→신생→성화→기독자의 완전'에 이르는 '구원의 길'(via salutis), 혹은 '구원의 순서'(ordo salutis)에 천착했습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웨슬리의 구원론은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정초한 결정주의를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속론의 네 가지 주제들-"전적인 타락, 은총으로 주어진 구원, 인간의 책임, 만인 구원 가능성"- 중에서 칼빈주의는 예정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앞의 두 가지만 붙들어 구원의 범위를 제한시킨 반면, 웨슬리는 모든 사람에게 우주적이며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선행 은총과 하나님의 자발적인 은혜로 회복된 자유의지를 모두 강조하여 인간의 공로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감리교 신학은 의인화뿐만 아니라 성화를 강조합니다. 칼빈주의 역시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인간 편에서의 성결 노력을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그 지배적인 초점은 언제나 의인화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웨슬리는 '오직 믿음으로'(faith alone)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는 칼빈과 머리터럭 하나의 차이도 없었지만 의인화 못지 않게 성화, 즉 '성결의 삶'(holy living)을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달랐습니다. 웨슬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gift)인 동시에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완성에 인간 편에서 동참하도록 재촉하는 '요구'(demand)입니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일"(의인화)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성화)을 구분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랜디 매닥스가 잘 표현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총 없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우리의 참여(은총으로 능력이 부여되지만 결코 강압적이지 않은 바) 없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웨슬리 신학은 이처럼 루터-칼빈주의에서 나타나는 개신교 특유의 반율법주의적 약점을 보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웨슬리의 감리교 신학은 '오직 믿음만으로'라는 개신교적 대주제를 철두철미 붙들었다는 점에서는 프로테스탄트적인 동시에 '성결의 삶'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가톨릭적이며, 개신교적 신앙지상주의와 가톨릭의 율법적 공로주의를 다 넘어서며 이른바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갈 5: 6)으로 양자를 창조적으로 통합하는 쾌거를 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 웨슬리 신학은 양극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화해의 신학을 지향합니다. 웨슬리는 머리와 가슴, 자연과 은총, 의인과 성화, 믿음과 선행, 신학과 교회, 텍스트와 콘텍스트, 가톨릭주의와 개신교주의 등 모든 대립되는 요소들을 화해시키는 접속의 신학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아우틀러가 제시한 감리교 신학의 표준, 즉 성서와 전통, 이성과 경험의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는 '사변형의 신학'(quadrilateral)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감리교 신학은 성경의 우선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가톨릭과 같이 전통과 교리를 절대화하려는 시도를 막아줄 수 있으며, 전통은 과거의 유산을 돌아보아 오늘의 신앙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에서 개신교적 뿌리 없음을 보완해줄 수 있으며, 이성은 무분별한 열광신비주의나 미신주의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으며, 체험은 극단적 이성맹신주의로부터 뜨거운 가슴의 종교를 지지해줄 수 있습니다. 결국 감리교 신학은 우리가 빠질 수 모든 편향적/극단적 경향성으로부터 벗어나 '이성적 열광주의자'(reasonable enthusiast)로서 중용과 조화, 일치의 신학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교파간의 특징을 말할 때 어떤 우월감이나 배타주의는 반드시 배제해야 합니다. 사실 웨슬리는 1725년 영국 국교회의 사제로 안수 받은 이후 결코 의도적으로 국교회를 떠나 독립된 교파를 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몸담고 있던 교단이 침체하고 부패했기에 '교회 안에서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로서 갱신운동을 하다 보니 감리교는 '저절로'(spontaneously) 생겨났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메도디스트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했던 것을 한시도 잊어서 안 될 것입니다.

"나는 메도디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단지 능력 없는 종교의 형식만을 갖고 있는 죽은 단체로서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만약에 메도디스트들이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그 교리와 정신, 그리고 훈련을 다같이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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