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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리교회는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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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8 23:32 조회1,8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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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리교회는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나요?

   초대교회의 탄생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부터라고 본다면 감리교회의 시작은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올더스게이트 집회에서 종교적 회심을 체험한 1738년 5월 24일로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존 웨슬리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경건훈련을 받고 자랐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준재였습니다. 영국 성공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모교 옥스퍼드 대학 교수가 된 그는 동생 찰스와 함께 신성클럽(Holy Club)의 지도자가 되어 성경공부, 금식기도, 구제 등의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그들의 경건생활이 얼마나 엄격하고 규칙적이었는지 '매소디스트'(Methodist: 규칙쟁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도 없이 모든 신앙의 문제들을 이성적으로만 해결하려던 그의 영적 갈등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신대륙에 건설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원주민 선교사로 지금의 조지아 주, 사바나에 갔던 웨슬리는 크게 실패하여 영국으로 돌아왔고, 자신감을 잃은 채 심적 번민에 빠졌습니다. 이런 웨슬리에게 올더스게이트의 뜨거운 체험은 그를 다시 태어나게 했고 영국 사회에 성령의 불길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39년 1월 1일, 웨슬리와 동료들은 런던의 페더레인(Fetter Lane)에서 기도회를 갖던 중 새벽 3시경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하는 체험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웨슬리의 사역 중에서도 그의 설교는 단순하면서도 열정적이었고 직설적이어서 회중들의 감정을 사로잡아 즉각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9년 웨슬리는 브리스톨(Bristol)시 외곽에 위치한 킹스우드(Kingswood) 광산촌에서 노동에 시달리는 광부들에게 처음으로 옥외설교를 하여 수많은 광부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형식화된 영국 국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일반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을 때 웨슬리가 전한 가슴을 뜨겁게 하는 복음적 설교는 영국사회에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18세기의 영국사회는 급격한 산업혁명으로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기업주에 의한 노동자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으며, 사치와 허영으로 사회악이 만연해 감옥마다 죄수들로 넘쳐 났습니다. 당시 귀족화된 영국교회는 이런 사회 현상은 외면한 채 신학적 논쟁만을 일삼으며 생명력을 잃은 무미건조한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이런 교회를 새롭게 개혁하고자 노력했으나 영국국교회는 그에게 강단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떠나거나 분리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웨슬리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선포하며 시장이나 광산촌이나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했고, 이것이 감리교회 운동의 시작입니다.

회심한 성도들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신도회(Society), 속회(Class meeting), 반(Band)을 조직하여 성경연구, 기도, 경건훈련, 구제활동에 힘쓰게 하였으며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여 도박, 음주, 마약 등 사회악을 조성하는 습관들을 철저히 금지시켰습니다. 웨슬리는 정부나 영국 교회가 외면한 사회의 소외계층에 큰 관심을 갖고 어린이 노동법, 노예매매, 극빈자들의 처우개선 등을 펼치면서, 아래로부터 피의 혁명 없이 영국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1744년 웨슬리 형제와 4명의 성공회 성직자, 그리고 4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여 처음으로 연회(Annual Conference)를 조직하였고, 이 연회 조직은 오늘까지 전 세계 감리교회의 기본조직이 되었습니다. 1760년대에 이르러 거듭난 감리교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신도회를 조직하게 되자 웨슬리는 1769년 감리교회 교역자들을 미국에 파송하였습니다.

1784년 성탄절, 볼티모어에서 첫 연회를 열어 웨슬리가 파송한 토마스 콕을 초대 감리사로 추대하고 순회설교자인 프랜시스 애즈버리를 첫 감독으로 선출하여 미국 감리교회가 태동하였습니다. 아니 영국에서 태어난 감리교회 운동이 미국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입어 교회 명칭을 '감리교회'(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라 부르는 첫 번째 교단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감리교회는 이민자의 증가는 물론 지역의 벽을 넘어서는 빠른 개척시기를 따라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천막집회'(Camp Meeting)와 같은 생동력 넘치는 부흥운동의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의 열기를 타고 미국과 영국감리교회는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감리교회를 전세계로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1885년 아펜젤러 내외가 첫 선교사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감리교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감리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웨슬리의 영적운동은 비록 교파는 달라도 세계 곳곳에 7천만 명 이상의 웨슬리안을 배출했습니다. 앞으로도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온 인류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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