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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형제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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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15 22:38 조회2,5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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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형제

 

 

글쓴이 : 최흥욱 목사(서부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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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을 받은 성 프란치스코 

 

 

책 머리에

 

 돈 많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는 늘 눈부신 갑옷에 싸여 번쩍이는 칼을 치켜들고 늠름하게 말을 달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거지가 되어 친구도 없이 쓸쓸하게 사는 나병 환자들, 거지들, 고아들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눈부신 갑옷 대신 누덕누덕 기운 옷을, 번쩍이는 칼 대신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늠름한 말 대신 헐어빠진 짚신을 신고도 그리도 행복해 하며 살아간 바보 성자였습니다.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살아간 행복한 예수꾼이었습니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 그는 청빈과 형제애를 온 몸으로 보여준 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돈을 받지 말 것이며,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자신이 먼저 그렇게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서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사랑은 나환자 등 그 당시 차별받던 사람들은 물론 동물과 무생물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는 새들에게 설교했고, 길가에 벌레가 발에 밟힐까 옮겨 놓았으며, 나무를 벨 때에는 다시 싹이 틀 수 있도록 통째로 자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대들에게 오는 이는, 그가 친구든 원수든 강도든 도둑이든 형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쳤고 또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는 온 인류가 사랑 안에서 한 형제됨을 그렇게도 꿈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세종 이현필 방애인 선생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프란치스코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일어나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야 말로 이들 영맥의 아버지와 같은 위치라는 것을 깨닫고는 내 마음 속에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와 감사와 감격이 넘쳐 이 책을 써서 펴내게 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를 닮고자 하는 마음으로 평생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과 한 형제가 되어 살아갔던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작은 책 속에서 맑은 영성의 샘물을 퍼 마시고는 프란치스코의 형제되어 혼탁한 세상을 새롭게 하는 향기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글쓴이  최흥욱 목사

 

  

  만인의 형제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기독교 전 역사를 통하여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여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본 받으려한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는 나사렛 예수의 거울이었다. 그의 전기를 쓴 적이 있는 체스타톤은 이렇게 말했다. “달이 태양의 거울이듯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거울이다. 달은 태양보다 훨씬 작으나 우리에게는 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태양같이 활활 타지는 않으나 훨씬 보기가 쉽다. 프란치스코는 우리와 가깝다. 먼 곳에서 생긴 일을 가까이서 생긴 일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글자 그대로 지키며 살았다. 마하트마 간디는 “백년마다 한 번씩만 프란치스코와 같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다면 인류의 구원은 보장되고도 남을 것이다.”하고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만 노래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했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일생 동안 가난을 아내로 삼고 벌거벗은 몸으로 살았다. 그는 새들을 향하여 설교했는가 하면 늑대를 설복시켜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나환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고, 두 손에 막대기를 들고 바이올린을 켜는 흉내를 내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기도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너무나 하나님 가까이로 날아 올랐기에 몸이 여러 번이나 공중으로 둥둥 떠 올랐다고 한다.

 키는 작고 얼굴은 못났으나 누구나 한번 그의 갈색 눈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위로는 교황으로부터 아래로는 도둑놈과 늑대, 새, 곤충들까지 그의 감화를 받았고 그를 사랑했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화신이었다. 프란치스코는 800년 동안 인종, 시대, 종파를 뛰어 넘어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치고 있다.

 

  

내 친구 나환자 

   

   프란치스코는 1182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전원 도시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이던 아버지 베르나르도네와 경건한 믿음의 어머니 피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성격은 매우 활발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방종하기가 일쑤였다. 동네 청년들로부터 두목으로 지목되었고, 돈을 물같이 낭비하며 제 멋대로 놀아났다. 프란치스코는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1202년에 포로가 되어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다. 많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으며 다시 회복한 뒤로는 마음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마을에 있는 다미아노 성당과 어둠컴컴한 동굴은 이제 프란치스코의 집처럼 되었다. 그는 그곳에 가서 몇 시간씩 기도하였다.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지금부터 그는 부자건 가난뱅이건 친절하건 고약하건 따지지 않고 누구나 다 사랑하고 싶어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서 모든 사람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에 프란치스코는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옆 길가에 나환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멀찍이 서서 동전을 몇 개 꺼냈다. 그리고 그 거지에게 동전을 막 던져 주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저 가엾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인데, 우린 모두 하나님의 자녀니까 저 사람도 내 형제야.” 프란치스코는 말 안장을 꽉 잡고 말에서 내려 그 나환자에게로 갔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발이 안 떨어졌고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만 같은 것을 겨우 참았다.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용기를 내어 나환자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있는 돈을 다 꺼내어 주고 자기 옷을 벗어 그의 누더기 옷 위에 걸쳐 주었다. 그리고는 친한 친구나 되듯이 어깨를 얼싸안고 입을 맞추었다. 프란치스코는 너무나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 교회를 수리하라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무너져가는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상 앞에서 기도하였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저는 준비가 되었으니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려 주십시오.” 그때 제단 위 십자가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내 교회를 수리하라.” 드디어 프란치스코는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 그는 수리해야 할 집이 다미아노 성당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집에 가서 귀중품을 팔아서 그 돈을 성당의 책임자에게 내 놓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아버지는 그를 작은 방에 가둘 정도로 분노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이 사건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아버지는 그를 아주 내쫓으려고 주교 앞으로 끌고 갔다. “주교님, 이 청년은 창피스런 행동으로 우리 가문을 더럽혔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더 이상 그를 제 아들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제게서 가져간 모든 것을 모두 돌려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동전 지갑을 책상 위에 놓더니, 그 다음엔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서 자기 아버지 앞에 갖다 놓았다. “여기에 다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것을 돌려드립니다. 저는 오늘까지는 베르나르도네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이제부터는 오로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모시겠습니다. 진심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요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꺼이 응하며 입었던 옷까지 모두 벗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알몸이 되었다. “내 교회를 수리하라.”는 말씀은 다미아노 성당을 새로 지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침체하고 무너져 가는 기독교를 재건하라는 명령이었다.

 

   

임금님의 사신 

 

   프란치스코는 이때부터 재산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아무것도 갖기를 원하지 않고 꼭 필요한 의복도 되도록 허름한 것을 걸쳤다. 프란치스코가 걸어가던 한적한 산길이 갑자기 소란해지더니 도둑떼가 불쑥 나타나 달려왔다. 그들은 굽비오로 가고있던 프란치스코에게 칼을 들이댔다. “넌 누구냐?” 두목이 물었다. “난 임금님의 사신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대답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둑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이 사람을 보고 킬킬 웃어댔다. 프란치스코는 낡아빠진 정원사의 겉옷을 걸치고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에 맨발이었던 것이다. “임금님의 사신이라고? 어느 임금님이 너 같은 놈을 자기 부하라고 하겠느냐?” 도둑들은 애처롭게 보이는 그 젊은 가난뱅이를 보고 껄껄 웃어댔다. 두목이 신호를 보내자 산적 네 명이 프란치스코 앞으로 다가왔다. 각 사람이 프란치스코의 팔 다리를 움켜쥐더니 높이 들어 올려 눈더미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더 부자 손님을 찾아 떠나면서 소리쳤다.

 “시원하시겠습니다요, 임금님의 사신님!” 프란치스코는 눈더미 속을 헤치고 나와서 쑤시는 팔 다리를 문질렀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노래 부르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새끼띠를 띠고 

 

   1209년 2월 24일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성당에 가서 예배드리고 있었다. 그날 예배를 인도하는 사제는 마 10:9-10 말씀을 읽고 있었다. “여러분은 전대에 금도 은도 동전도 지니지 마시오. 길을 떠날 때에 속옷 두 벌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시오.” 그는 이 말씀을 그날 예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내리시는 계시로 받아 들였다. 감격한 프란치스코는 당장 그 자리에서 그 말씀대로 실천했다. 부잣집 아들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농부들이 입는 자루옷을 입고 교회 마당에 굴러다니는 새끼줄을 주워 허리에 띠로 묶고 구두를 벗어 던지고 맨 발로 나섰다. 감격스러운 마음에 밖에 나가 아시시 성문에 이르러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두 손을 들고 외쳤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평안을 주시길 빕니다.” 그러자 거기 모인 사람들 가운데 큰 감동이 일어나 몇 사람이 프란치스코를 따라 나섰다. 세 사람의 첫 제자가 생겼다. 젊은 귀족 베르나르도와 에지디오다는 순박한 이요, 베드로 카타니에라는 총명한 변호사였다. 그들은 마리아 성당 근처에 작은 흙벽돌 집을 짓고 살았다. 형제들은 프란치스코를 원장님 또는 사부님이라고 불렀고, 그는 아버지처럼 형제들을 돌보며 지도했다.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중심하여 ‘작은 형제회’를 시작하였는데 이 때가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이리하여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생겨났고 오늘까지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 운동은 나사렛 예수를 본받는 운동이었다.

 수도원이란 세상을 버리고 사막이나 깊은 산에 숨어서 자급자족하며 수행하는 곳이다. 프란시스코는 전의 수도사들 처럼 세상을 버리고 숨어서 수도원을 세우고 살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탁발수행을 하였다. 그래서 그의 수도단체를 탁발(걸식)교단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복음의 정신을 따라 세상에서는 이방인과 순례자로 살며,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 청빈생활을 엄격히 실천하였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나병 환자로 찾아오셨습니까?

 

 교단을 만들고 초기에 프란치스코는 제자들과 함께 리보 도르또 오두막에 거하며 거기서 5리나 되는 아시시 뒷산 스바지오 산 동굴 속에 들어가 통회의 기도와 눈물을 흘렸다. 그는 동굴에 들어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다가 어느날 고후 5:13-15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의 강권하는 체험을 하였다. 그 사랑이 너무도 강렬하여 미칠 것 같아서 그는 기도하던 동굴에서 나와 아시시 거리를 누비며 소리쳐 통곡하였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측은히 여겨 “어찌하여 울고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못 견디게 합니다. 우리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져 나와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너무도 흐느껴 우는 그의 모습에 감동되어 지나가던 사람도 함께 울었다. 

   비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어느날 밤, 허름한 차림의 거지가 프란치스코의 오두막으로 찾아왔다. “너무 배가 고프고 추우니 먹을 것과 잠자리를 좀 마련해 주세요.” 프란치스코는 얼른 그 거지를 데리고 들어와서 불빛에 비춰보니 그 거지는 얼굴과 코가 문드러진 나환자였다. 그는 서둘러 음식을 준비해서 정성껏 대접한 뒤 자기의 잠자리를 그에게 내 주었다. 침대에 들어간 거지는 잠시 후, 추워서 견딜 수 없으니 당신의 몸으로 자기의 몸을 데워달라고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그가 요구하는 대로 더러운 몸에 자기 몸을 비벼 그의 몸을 데워주었다. 잠이 든 거지를 보고 프란치스코도 그 옆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기도 시간이 되어 일어나 보니 침대에서 자던 거지는 간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피고름이 흐르던 그 나환자의 몸을 감싸고 잤는데도 프란치스코의 몸과 침대에는 그 더러운 피고름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프란치스코는 곧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병 환자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주님과 함께 잤으니, 이 죄인의 기쁨을 무엇으로 다 표현하리오!” 

 프란치스코가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거리에 내려가 빵과 포도주를 탁발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때 수도원은 안젤로라는 형제가 지키고 있었다. 세 사람의 유명한 강도가 들어왔다. “먹을 것 내놓아!” 강도들은 거칠게 말했다. 안젤로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날강도들아! 수도원에 무슨 먹을 게 있다고 찾아와 행패냐?” “먹을 것 내어놓으라는데 무슨 잔소리냐? 수도원 식구들은 안 먹고 산단 말이냐?” “이 고약한 놈들 봤나? 너희 놈들은 빈둥빈둥 놀면서 남이 일해 벌어놓은 것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수도원에까지 들어와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형제들에게 돌아온 선물까지 빼앗으려 하니 참 나쁜 놈들이구나! 썩 물러가거라. 땀을 흘려 먹을 것을 마련해라!” 강도들은 욕을 하면서 돌아가 버렸다. 

 얼마 후 프란치스코와 제자들이 돌아왔다. 손에는 이 날 얻은 빵과 포도주가 들려 있었다. 안젤로는 강도들이 들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꾸짖어 보냈다는 말을 듣고 있던 프란치스코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책망하며 말하였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옳고 정직한 사람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형제 안젤로여! 빨리 먹을 것을 갖고 가서 그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들을 찾거든 곧 소리 지르시오. ‘여보시오! 강도 형제들! 이리 와서 형제 프란치스코가 여러분을 대접하라고 보낸 음식을 잡수십시오!’ 라고 하시오. 이렇게 해서 강도들이 오면 보자기를 땅에 펴 놓고 이 빵과 포도주를 차려놓고 거기에 계란과 치즈도 곁들여 놓으시오. 그리고는 겸손하고 쾌활하게 이 불행한 사람들이 만족해 할 때까지 곁에서 시중을 드시오.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그들에게 이젠 강도질을 해서 남을 속이지 말라고 설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들이 하고 있는 나쁜 짓보다 훨씬 쉽다고 말해 주시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반드시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회개할 것입니다.” 

 안젤로는 스승이 시킨 대로 순종하였다. 정말 그들은 얼마 뒤 회개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마음을 돌이키고 형제들에 필요한 땔감 나무를 산에서 베어 어깨에 메고 와 날마다 수도원에 대었다. 더구나 그뒤로부터 그들은 몸소 노동하며 살 뿐 아니라 결국 세 사람 모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가 같은 형제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새로 탄생한 프란시스코회 가족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그들은 병원에서 일하고 나환자들을 돌보며 하나님의 가난한 자들로 기쁘게 살았다. 그리고 일한 대가로 빵을 받았다. 빵이 부족한 날은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였다. 한번은 프란치스코가 형제들과 함께 나병원을 찾아갔다. 한 험상궂게 일그러진 나환자를 보고 말을 건넸다. “사랑하는 형제여,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평화를 주시길 빕니다.” “난 썩은 고기요 고통의 덩어리일 뿐이다. 평화 따위가 어디 있어?” 하고 그 나환자가 대답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그에게 고통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참으면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도대체 무슨 재주로 밤낮 쉬지않고 주어지는 이 고통을 참으라는 거냐. 더구나 그것만이 아니다! 자네가 여기 보내주는 수도사들은 한 놈도 나를 친절하게 간호해 주지 않았단 말이야.”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포자기한 나환자는 무조건 불만과 욕설만 퍼부었다. 그때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아, 그래요, 좋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의 시중을 들어 드리지요.” “그래도 좋지. 그러나 자네는 그놈들보다 뭘 더 잘하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해 드리지요.” “그렇다면 됐네. 우선 내 몸을 좀 씻어 주게. 이젠 썩어 냄새가 고약해서 나 자신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단 말이야.” 프란치스코는 물을 따스하게 데워 그 속에 향기좋은 약초를 섞었다. 그리고는 나환자의 온몸을 벗기고 함께 간 다른 형제가 환자의 몸에 향기나는 물을 끼얹어 주는 동안 프란치스코는 천천히 때를 밀었다. 때보다 곪아서 흐르는 진물을 씻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물이 끼얹어지고 프란치스코의 손이 닿는 곳마다 그 나병의 환부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갔다. 더 놀라운 기적은 자기 몸이 나아가는 것을 본 그 포악한 환자가 통회하며 프란치스코의 발 앞에 고꾸라져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나환자는 심하게 통곡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형제들을 때린 죄를 용서해 달라고 자복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자기 손바닥으로 나환자의 피부를 어루만지는 순간 “아, 이것이 사랑이다!”하고 몸소 체험했던 것이다.

 

 

가난 양과 결혼하고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가난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가난을 여성화하여 ‘가난 양’(lady poverty)이라 부르고, 자기 아내는 ‘귀부인 가난’이라고 하였다.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마음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의 향기와 빛을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이 있음을...” 그는 청빈(淸貧)을 성빈(聖貧)으로, 성빈을 신빈(神貧)으로 승화시켰다.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은 무소유, 전적 가난을 실천한 나머지 비바람 가리울 집도 침대도 없었고 기도할 교회도 없는 완전한 거지떼들이었다. 삶에 꼭 필요한 입고 먹는 것 말고 그 밖에 가지는 것을 절대로 금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버리고 산 속에 숨어있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의식주 문제를 탁발로 해결하였다. 이런 삶 속에서도 그들은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프란시스코는 제자들에게 돈은 똥과 같은 것이니 만지지도 말라고 하였다. 어느 날 부자가 돈 주머니를 예배실에 몰래 던져 넣었다. 제자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주워서 창문가에 올려놓고 프란치스코에게 보고했다. “이 사람아! 돈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왜 손댔어? 그 벌로 다시 가서 그 돈 주머니를 입으로 물어다 큰 길에 나가 말똥위에 놓고 오너라.”고 하였다.

 가난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프란치스코는 매우 간단히 대답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입니다.” 그에게 가난은 복음서 안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가난한 삶이며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 속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가난이다. 그에게 가난의 동기는 가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가난은 완성에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기 앞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결과이다. 그가 살아가는 가난이란 가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충실성인 것이다.

 

  

새 자매와 이리 형제

 

   프란시스코는 신학자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평신도였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고 통곡하고, 자연과 산천초목과 굴속 곤충까지 사랑하고 모든 인종을 사랑하였다. 태양을 형님이라 부르고, 달을 누님이라 불렀다. 풀섶에 우는 귀뚜라미도 누님이었다. 불은 가장 아롱진 형제라고 부르고, 물은 누님이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흘린 세숫물도 밟지 않았다. 말년에 죽음이 가까워 오자 기뻐서 “내 누님 죽음!”이라고 불렀다. 범신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주 만물속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프란치스코가 맛세오 수사와 안젤로 수사를 데리고 마을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두 수사는 프란치스코가 길섶의 숲으로 들어가는걸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큰 아름드리 나무들 속에서 그는 더욱 작게 보였다. 그때 그는 그 숲을 끌어 안기라도 할 듯이 팔을 높이 벌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의 자매인 새들이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여라!” 그러자 수백 마리의 새들이 찬란한 빛깔의 조화를 이루며 날아와 프란치스코 주위에 모였다. 새들은 그의 어깨에 팔뚝에 손바닥에 그리고 허름한 갈색 수도복 고깔 속에도 앉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작은 새들은 모두 가만히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계속 새들에게 설교하였다. “자매인 새들이여, 감사하여라. 너희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너희를 먹여 주시니까. 너희는 어디든지 훨훨 날 수도 있고, 달콤한 노랫소리며 또 그 옷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우냐. 이 모든 것을 너희 창조주께서 주셨다. 그분을 찬양하여라. 너희가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저 높은 나무들을 주심을 감사하여라. 좋으신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너희에게 주신 선물에 대해 항상 감사하여라.”

 새들은 그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다는 듯이 날개짓을 했다. 새들은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모두 알아들은 것 같았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크나큰 사랑을 느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모든 것을 하나님의 훌륭한 가족으로 소중히 생각하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었다. 그래서 그는 진심으로 모든 피조물을 형제 또는 자매라고 부를 수 있었다. 

    한번은 굽비오라는 이웃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와서는 프란치스코의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리 한 마리가 나타나 온 마을을 악탈 했는데 가축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했던 것이다. 마을에서 가장 용감하다는 사람까지도 그 이리에게는 맞설 엄두도 못 내었다. 자그마한 프란치스코는 맨발로 깊은 숲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걱정스런 얼굴로 창문으로 내다 보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프란치스코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차분하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이리를 불렀다. “형제인 이리여! 이리 오너라!” 그러자 커다란 회색 동물이 혼자 서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어슬렁 어슬렁 다가왔다. 프란치스코는 다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리 형제여! 난 우리의 형제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한테 간곡히 전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란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네가 마을로 내려와서 다정하게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원하고 있거든. 만일 네가 마을로 내려오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너를 극진히 대접하여 주겠다고 했단다. 앞으로 너는 이집 저집을 다니도록 해라. 이 마을 사람 모두가 널 먹여 줄 것이고 모두들 다시 평화롭게 살게 될 것이다. 자, 네 생각은 어떠냐? 나하고 약속하지 않으련?”

 그런 다음 프란치스코는 이리를 향하여 손을 내밀었다. 이때 이리의 이글거리던 눈빛은 사라지고 마치 순한 양처럼 다가와 안심하는 눈길로 프란치스코가 내민 손에 자기의 앞 발 하나를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프란치스코의 마음, 그것은 사람들은 물론 모든 짐승들까지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었다. 이런 사랑이 그후로도 많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리는 곧 프란치스코를 따라 굽비오 마을로 내려와서 그 후 2년 동안이나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그 이리는 저녁을 주문하러 이집 저집 문 앞에 나타났고 굽비오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왔다.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상처가

 

 1224년 가을, 프란치스코가 43세 되던 어느 날이었다. 프란치스코는 특별한 목적을 세우고 산에 들어가 기도하였다. 라 베르나산 동굴에 들어가 40일 동안 특별 기도를 하였다. 사람의 몇 길이나 되는 바위 산 절벽 굴에서 제자들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두 가지 제목을 두고 기도하였다.  

 “주여, 제가 세상 떠나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첫째는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을 제 영혼과 육체도 맛보게 해 주소서. 둘째는 주님이 저를 사랑하신 그 불타는 사랑을 저도 주님을 향해 품을 수 있게 해 주소서.” 

 바로 그때였다.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가 프란치스코 앞에 나타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받았던 상처와 꼭 같은 상처들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프란치스코, 이런 상처를 너도 받고 싶단 말이지?” “맞습니다. 바로 그런 상처들입니다. 그런 상처들을 저도 받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너도 이 상처들을 네 몸에 받도록 하여라.” 천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프란치스코의 몸에서 마치 불덩어리를 댄 것같은 고통이 일어나 그는 그만 까무러쳐 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 시간에 그 근처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라 베르나산 봉우리가 빨간 불길에 싸여 밤인데도 대낮처럼 밝아진 것을 보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벌써 아침이 밝아온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새에 짐을 꾸려 싣기도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두 시간 이상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점점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자 곧 두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 프란치스코는 무척 놀랐다. 자기 양쪽 손발과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두 손과 두 발은 못으로 꿰뚫은 듯 손바닥과 발잔등에 둥글고 검은 빛의 살점이 못 머리처럼 돋아났고, 손잔등과 발바닥에는 박아넣은 뾰족한 못끝이 구부러진 채 살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거기다 또 오른편 옆구리에는 마치 창에 찔린 것 같은 상처가 생겨서 거기서 때때로 피가 흘러 속옷과 겉옷까지 적셨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가 받은 오상이었다. 그는 이 상처들을 감추려 했으나 얼마 안되어 형제들 사이에 알려지고 말았다. 거룩한 상처에서 거침없이 피가 흘렀기 때문이다.

 

   

태양의 노래

 

   오상은 프란치스코에게 큰 은총의 선물이었으나 심한 고통의 시련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도 그는 설교를 계속하였고 몸은 날로 쇠약해졌다. 다섯 개의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소화가 안 되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그는 믿음의 딸이요 수도의 동반자 클라라의 간호를 받았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과 똑같이 여겼기에 그의 간호하는 태도는 눈물겹기까지 하였다. 어느날 프란치스코는 너무 고통스러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왜 나를 버리십니까?” 바로 이때 그에게 큰 음성이 들려왔다. “프란치스코야, 네가 장차 받게 될 영광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그쯤의 고통을 어찌 참을 수 없단 말이냐?” 순간 그의 가슴에 햇살같은 밝은 빛줄기가 뻗쳐 들어왔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리석은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프란치스코는 자매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자매들이여, 만일 황제가 내게 전 로마제국을 준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내게 천국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도 우린 그런 일을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만 우리의 본분으로 삼도록 합시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자주 가까운 숲속을 거닐었다. 어느 날 해질 무렵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움막 밖에 앉아서 클라라에게 말했다. 

 “아, 자매님! 이곳 다미아노 성당은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고, 그분의 명령을 듣고서 허물어져 가는 성당을 내 손으로 다 수리했지요. 집에서 도망쳐 나와서는 또 이곳에서 숨어 지냈고, 얼마 후에는 여기서부터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매님을 이곳으로 데려다가 살도록 했을 때는 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 아름다운 추억들이 담겨 있는 곳인데 지금 나는 그 아무 것도 눈으로 볼 수가 없군요.” 클라라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장차 하늘나라에 이르면 여기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 프란치스코가 깊은 명상에 잠기면서 말했다. “자매여, 지금 내게서 참으로 아름다운 노랫말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서 받아 적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는 전에 없던 환한 목소리로 노랫말을 불렀다. ‘태양의 노래’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그 유명한 노래는 그렇게 지어졌던 것이다.

 

  

 

주여, 찬미 받으소서 

영광과 찬미와 영예와 축복은 

모두 주님 것이옵니다 

보시옵소서. 우리 형제, 저 우람한 태양의 찬송을... 

온누리 대낮을 다스리는 태양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를 통해 우리를 비추고 계시는 것 

오! 태양은 너무도 눈부셔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지요 

지극히 높으신 주여 

태양이야말로 

바로 주님의 모습이니이다

 

 누구보다도 이 ‘태양의 노래’를 먼저 들었던 클라라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주신 특별한 은총이었다고 하였다. 이 노래 때문에 프란치스코는 중세 음악의 성자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이 노래는 곧 곡이 붙여져 형제들과 자매들에게서 예배 때 꼭 불려졌고 특히 전도여행 때면 형제들은 가는 데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 프란치스코가 ‘태양의 노래’를 지었던 때는 눈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선 가장 불행했던 때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그토록 태양처럼 찬란한 노래가 나왔던 것이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면 모두가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다 한 가족이기에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보는 모든 창조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여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서는 자연스레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양하라’는 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자매 죽음이여, 어서 오너라

 

 1226년 9월 프란치스코는 자신에게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예감하면서 머물고 있던 아시시에서 포르지움꿀라에 옮겨주기를 부탁하였다. 그곳에 도착한지 얼마 후인 10월 3일 저녁 무렵 그는 자신을 맨땅에 누여주길 요구 하였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한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예수 수난에 관한 성경말씀을 읽게 하고 그것이 끝나자 시편 141편을 읊었다. 그리고 그가 지은 ‘태양의 노래’를 외우며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이어서 죽음을 찬양하도록 하였고 하나님께 인도해 줄 죽음을 초대하면서 기쁘게 맞이하였다. “주여, 우리의 자매인 죽음, 육신의 죽음으로부터 찬미 받으소서.”

 날이 저물었고 밤이 조용히 다가왔다. 어둠침침한 성당 안에는 프란치스코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그는 들릴락말락하는 목소리로 시편 142편의 끝 구절을 숨을 몰아 쉬며 읊었다. “이 감옥에서 나를 살려내 주소서. 주님 이름 불러 감사 노래 부르리이다. 내게 입혀 주신 주님 은덕으로 이 몸이 의인들에게 둘러싸이리이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 나의 자매 죽음이여!” 1226년 10월 3일, 그의 나이 44세 되던 해였다. 그가 참회한지 꼭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일생의 표어는 “내 주여 나의 전부여”(Deus meus, et omnia)였다. 그는 한평생 예수를 본받으려고 갈망하였다. 이런 그의 갈망은 만인에 대한 사랑과 만인의 형제됨으로 나타났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다 마땅히 섬겨야 할 주인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나환자나 버림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들이었다. 그에겐 모든 사람이 다 아버지요 어머니였고 형제요 자매였다. 그가 보기에는 산적 같은 흉악한 사람들도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고, 이슬람 교인들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었으며, 이단자들도 하나님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사랑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의 사랑은 삼라만상을 향해 두루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초창기부터 제자들에게 우주적인 사랑을 느끼도록 자기 몸으로 그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새들을 사랑했고 짐승들을 사랑했다. 풀과 나무들을 사랑하고 온갖 꽃들을 사랑하였다. 그는 태양을 사랑하고 달과 별들을 사랑했다. 또 물을 사랑하고 불을 사랑하고 심지어 고통을 사랑하고 죽음까지도 자매로서 사랑했다.

 그에게 있어서 만물은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러기에 그에겐 벌레 한 마리도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물 소리와 바람 소리까지도 진리를 들려주었다. 심지어 귀찮은 쥐떼까지도 그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천상의 행복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눈 앞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존재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형제요 자매로서 사랑했던 것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는 분명 만인의 형제였다.

 프란치스코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고 단순하고 가난한 길로 나를 이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에서 바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것은 이런 종류의 영적 지혜의 길입니다.”

 

 

주여, 

나를 주님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갈라짐이 있는 곳에 하나됨을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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