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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 이용도와 함께 하는 묵상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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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16 17:39 조회2,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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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 이용도와 함께 하는 묵 상 기 도

 

 

엮은이: 최흥욱 목사(서부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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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언 이용도 목사 

 

 

감리교 목사이며 전국적인 부흥사였던 이용도(李容道)의 본관은 안악이고, 호는 시무언(是無言)이다. 그는 1901년 4월 6일 황해도 금천군에서 아버지 덕흥(德興)과 어머니 양(梁)마리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변리 교회의 전도 부인으로 활약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시무언은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15년 개성의 한영서원에 입학하였다.

 

그는 3·1 만세운동에 참여해 2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20년 2월에는 기원절(紀元節)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복역했다. 출옥한 후 고향인 시변리의 신영(信永)학교에서 얼마간 교사로 봉직했으나 12월에 조선독립 주비단 사건으로 신계 경찰서에 검거됐다. 이듬해 11월 워싱턴 군비 감축회의 개최 당일에 동맹 휴교와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시무언은 다시 체포돼 6개월간 복역했다. 

 

그의 재능을 아낀 왓슨(A.W. Wasson) 선교사의 추천으로 1924년 2월 시무언은 협성신학교 영문과에 입학했고 이호빈, 이환신 등과 깊이 교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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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목사 부부(오른쪽이 부인 송봉애 사모)

 

 

1925년 11월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고민하던 그는 휴양차 이환신의 고향인 평남 강동에 내려갔다가 그곳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시무언은 기도로 밤을 밝히고 새벽에 강단에 섰으며 그가 행한 설교와 기도는 눈물과 감동으로 가득 찼다. 그는 심각한 병이 든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외치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감격과 기쁨으로 한 주일을 보냈고, 인근의 다른 교회에서도 부흥회를 인도했다.

 

신학교에 돌아온 그는 주일학교 교육을 통한 교육 계몽운동에 몰두하는 한편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가극 ‘춘풍(1927)’, ‘공주와 꽃팔이(1927)’, ‘십자가를 지는 이들(1927)’을 발표했다. 또 성극 ‘애굽의 이스라엘(1928)’, ‘믿음으로 사는 화공(1928)’ 등을 연출했고 때로는 주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시무언은 1928년 1월 28일 협성신학교를 14회로 졸업, 다음날로 강원도 통천교회에 파송받아 전도사로 부임했다. 부임 후 1년이 지날 무렵 시무언은 박재봉이라는 청년과 함께 금강산 기슭의 백정봉에 올라가 10일간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이후 시무언은 틈만 나면 눈물로 기도하는 열정적인 기도의 사람으로 변모했으며, 1928년 12월 24일 새벽에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영적 전쟁을 경험했다. 또 1929년 1월 4일 새벽에는 창세기 17장을 읽은 뒤 자신에게서 죄가 떠나감을 느끼고 “주의 손목을 붙잡자 큰 불이 내림”을 체험했으며, 성화(聖火)를 입으로 불어서 죄인들로 이루어진 빨간 군대를 불태워 죽이는 꿈을 꾸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종교체험을 계기로 시무언은 통천 부근 20여개 교회의 부흥집회를 적극 인도했다. 당시 시무언은 눈물로 설교했는데 불과 5분도 못되어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영적 능력이 넘치는 부흥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 시무언은 장로교와 성결교 등에서도 초빙 받아 전국적 부흥회를 4년간 100여회나 인도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눈물어린 기도와 열광적인 설교로써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1930년 새해에 시무언은 “고(苦)는 나의 선생, 빈(貧)은 나의 애처, 비(卑)는 나의 궁전, 예수는 나의 구주, 자연은 나의 친구”라는 생활훈을 세웠다. 나아가 그는 “나는 주님의 신부요, 주는 나의 신랑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성전은 나의 애인, 주님을 조용히 만나는 면회실. 나는 거기서 내 신랑 예수님 품에 내 전신을 맡기노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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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0월 경상남도 사천에서의 집회 광경 

마당에 차양을 치고, 음향장치나 마이크도 없이 멍석을 깔았는데도 

불이 떨어지는 집회에 목마른 영혼들은 운집했다. 

 

 

특히 그는 1930년 2월 평양 중앙감리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피의 설교’라는 제목으로 7시간 동안이나 설교해 많은 사람을 감명시켰다. 이 집회에 참석했던 청년 7인이 서문밖 교회 지하실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후일 ‘평양 기도단’으로 지칭되었다.

 

한편 시무언은 1930년 9월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10월에는 전국 주일학교 연합회 간사로 파송 받고 상경하여 활동했다. 또 그는 1931년 5월 경성지방 순회목사로 특별파송을 받아 신앙 부흥운동에 헌신했다. 당시 그는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는 하늘의 사랑”을 강조했으며, “주님은 나에게 끌리시고 나는 주님에게 끌리어 하나를 이루어 결국 나는 주의 사랑 안에 있고 주는 나의 신앙 안에 있게 되는 합일”의 경지를 체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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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기도단원과 함께 

뒷줄 왼쪽부터 김지영, 김익선, 이용도, 김영선, 김예진

앞줄 왼쪽부터 김은실, 이 기, 송봉애(이 목사의 부인), 그 옆 두 사람은 미상

 

 

1931년 7월부터 시무언은 이호빈과 함께 원산을 방문하여 원산의 수도자들로 알려진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 등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그 후 9월에 그가 삼방 약수터에서 요양하던 중 다시 이들의 방문을 받고 집회를 가졌으며 예수의 고난과 신비적 사랑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1932년 시무언은 서울, 인천, 강원도, 평양, 평남, 충남, 황해도 등 전국 곳곳에 성령의 불길을 지펴나갔다. 이러한 그의 부흥운동은 이전의 성서 사경회 중심을 벗어나 성령중심의 체험적 신앙으로 변모시켰다. 따라서 그가 가는 곳마다 영적 감격과 회개의 눈물 기도가 넘쳐났고, 그들이 받은 은혜의 체험들을 함께 나누는 기도 모임이 생겨났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전한 서구신학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기존의 목사들과는 달리 그는 조선식 도포차림으로 우리네 정서에 맞는 언어로 회개와 신앙을 부르짖었으며 성령 체험을 강조하는 ‘민족적 신비주의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예수를 유일 최대의 애인으로 삼고, 언제든지 그만을 사랑하다가 그를 위해 이 생명을 바치고 싶어요.”라고 노래한 시무언의 부흥운동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31년 10월 장로교 황해노회에서는 “시무언의 여신도와의 잦은 서신 거래, 소등(消燈) 기도, 교역자 공격, 무교회주의자”라는 등의 문제를 제기해 그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또 1932년 4월에는 평양노회가 평양 기도단에 활동 제한조치를 가해 규제했다. 이때부터 시무언의 부흥운동이 교권적 질서와 신앙전통을 파괴하는 것이며 특히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이라는 이유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분자들’로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감리교 중부연회는 1933년 3월 그에게 휴직처분을 결정했다.

 

시무언을 이단으로 낙인찍은 교회에서는 그를 따르는 자생적인 기도모임에 참가한 교인들마저 출교했다. 쫓겨난 무리들은 계속 기도하면서 새 교단 설립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에 따라 1933년 6월 3일 평양에서 이호빈, 백남주, 한준명, 박계주 등 90여명의 교인이 모인 가운데 ‘예수교회’가 창립 선언을 할 때 시무언은 발기인 대표였으며, 6일에 열린 창립공의회 때는 초대 선도감(宣道監)으로 선출되어 공식적으로 예수교회의 창설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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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신학산에서 이용도 목사가 소천하기 한달 전 

그는 죽어 이 교회 뒷편 양지 바른 언덕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무언은 지병인 폐결핵으로 고생하다가 10월 2일 원산 광석동에서 가족과 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33세의 젊은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시무언은 학창 시절 나라와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에 투신해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애국 청년이었다. 또한 그는 가야금을 사랑한 예술가이자 가극, 연극, 시, 편지, 일기를 남긴 문필가였다. 무엇보다도 시무언은 1930년대 정체성과 역동성을 잃고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교회에 열정적인 성령 부흥운동으로 활력을 불어넣었고 회개와 기도와 사랑을 선포한 ‘광야의 소리’였으며, 오직 예수만을 위해 미친 듯이 살았던 ‘신앙의 활화산’이자 ‘거룩한 열정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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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도 목사와 그의 표어 

예수교회에서 펴낸 잡지 「예수」 창간호(1934년)

 

 

나아가 그는 무(無), 공(空), 자연, 그리움, 한, 느낌 등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영성을 강조하여 토착적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초교파적 활동에 헌신한 선지자였다.

 

특히 시무언은 성령에 의한 거듭남과 주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신비적 신앙을 강조해 한국교회에 ‘혁명의 수술’과 ‘부흥의 치료’를 감행한 목회자였으며 민족의 영적 구원을 외쳤던 ‘한국의 예레미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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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 안에 있는 이용도 목사 시비

 

 

님의 조각품

나는 다시 나를 주께 드리나이다. 맡기나이다.

주께서 마음대로 주무르시옵소서.

주무르시는 대로 주물림을 받을 점토(粘土)와도 같습니다.

무엇을 만들든지 성의(聖意)대로 만들으시옵소서.

나는 온전히 주의 피조물인 것뿐이로소이다.

주는 나의 창조주시며 나는 주의 작품이로소이다.

나의 존재는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능(能)을 또 그 애(愛)와 대지(大智)를 증거하고 있는 조각품이로소이다.

 

 

1. 예수

 

예수다! 우리의 신앙의 초점은 예수다!

소망에도 예수요 인내에도 예수요

기도에도 예수요 찬송에도 예수다

떠들어도 예수요 잠잠하여도 그저 예수뿐이다

생시에도 예수! 꿈에도 예수! 그리고 잠꼬대에도 예수다!

먹어도 예수요 입어도 예수다!

그저 우리 생활의 중심 초점은 예수뿐이다.

오- 예수는 곧 우리 모든 것의 모든 것이요 또 우리의 생명이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이 생명을 잃어버리면 아무 이익도 없게 되는 것이다.

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어 우리는 살지 못합니다.

오- 우리의 진리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 우리의 길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어 우리는 행할 수 없습니다.

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여!

영원히 우리와 같이하여 주옵소서.

 

  

2. 주님은 사랑이니라

 

나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매여

자매는 복스러워 주님의 성애와

그 신지(神智)를 얻을 바 귀한 기회 가운데 있나이다.

살림이 가난하여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세상이 어려워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나라는 망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사회는 소란하여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배울 길은 막혀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사람들이 욕하고 비웃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몸은 병들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육신은 죽어도 주님은 사랑이니이다.

 

 

3.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오! 나의 생의 맛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여!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병들든지 성하든지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욕을 먹거나 칭찬을 듣거나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고생스럽거나 편안하거나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살거나 죽거나 주님만 계셔주옵소서.

그러면 모든 것은 의미 있고 생명이 있겠나이다.

세상과 더불어 웃는 생활보다

주님과 더불어 우는 생활이

그 눈물이 오히려 맛이 있나이다.

세상과 더불어 잘 먹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있어 굶고 주림이

오히려 제게 복이 되고,

세상과 친하여 비단 옷에 싸여 사는 것보다

주님과 같이 베옷과 헌옷을 입어

오히려 이것이 영광이로소이다.

오! 주여 당신만이 나의 구주시오니

주 외에 달리 무엇을 구하오리까?

주님 한 분을 얻어서

나의 모든 것을 얻었사오니

주님은 곧 나의 총재산이며

모든 것의 모든 것이로소이다.

 

 

4. 나의 좌우명(座右銘)

 

“기도로 살다 기도록 죽어.” 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본업이요, 그 외의 것은 다 부업입니다. 본업에 실패한 자 부업만을 가지고 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비하므로 순종하며

말없이 늘 주님을 묵상하고

땀이 흐르도록 노동할 것

이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1. 고(苦)는 나의 선생(先生). 고통이 올 때 그것에서 배우는 것이 평안할 때보다 더 배우는 것이 많으며 또 참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2. 빈(貧)은 나의 애처(愛妻). 가난함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 같이 나를 떠나지 않나니 나는 건방진 부보다 착한 가난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비(卑)는 나의 궁전(宮殿). 나는 높은 데 처해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은 늘 겸비하 여 낮은 데 처하여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비천은 늘 내가 처해 있을 궁전이 됩니다. 고와 빈과 비를 좋아하게 되면 다 되는 때입니다.

4. 예수는 나의 구주. 다른 사람이나 돈이나 학식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다 나를 구원하지 못하되 예수만 나를 구원하시는 구주가 됩니다.

5. 자연(自然)은 나의 친구(親舊). 믿을 사람도 없고 사귈 사람도 없을 때 하늘, 산, 흐르는 물, 공중의 별, 밤과 산과 들, 초목, 곤충, 새들 이는 다 자연에 속한 것으로 나의 친구가 되나니 나는 늘 이 친구를 보려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

  

 

5. 눈물을 주소서

 

눈물을 주소서

오늘의 우리는 눈물이 다 말랐습니다.

눈물 없는 곳에

되지 못한 것들만 무성하여 있습니다.

눈물은 살균력이 있습니다.

원망 불평 이기 등은 전염병과 같아서

자신을 죽이고 또 남의 가슴에

살촉을 박아 죽게 하는 악독한 병균입니다.

이 모든 균들은 눈물로서 죽일 수가 있습니다.

동정의 눈물이 쏟아질 때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쏟아질 때

남을 원망하는 것이나

시기 불평 이기행위 같은

모든 불선(不善)의 병균은 다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따스하고 온유하고 이쁜 새 마음을 내어줍니다.

마치

상처를 소독한 후에 새 살이 돋아 나오듯이!

 

 

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대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어떠한 나를 사랑하느냐

어떠한 자가 너의 사랑하던 주였던지

나는 알고자 하노라!

영광의 주! 부요의 주! 권세의 주!

장수의 주! 화락한 가정의 호주로서의 주!

어떠한 주님을 너는 사랑하느냐!

나에게는 일찍 영광도 없었으며

권세도 없었으며 부요도 없었고

처자와 가정도 없었고, 건강도 없었던 것 아니냐

장수! 그것도 내게는 물론 없었다.

너는 나의 무엇을 보고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어떻게 알았느냐

무엇을 알았느냐

만일 이상의 것을 나의 것으로 알아

그것으로 인하여 나를 사랑하였다고 하면

너는 나를 충분히 오해하였느니라!

나는 천동으로 태어나서 빈궁의 사람

무식의 노동자, 무명의 종교가

무의무가한 한 고아로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자리삼아

남들의 반생을 겨우 일생으로 살고

마침내 외의, 내의조차 빼앗기고 참형으로 종신한 내가 아니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러한 나를 진실로 사랑하느냐

나의 빈천, 나의 무명, 나의 수욕

나의 고독, 나의 단생, 나의 갖은 육고

이것을 네가 진실로 사랑하느냐

  

 

7. 예루살렘 다락방

 

예루살렘 다락방, 웨슬리 외에 몇 사람이 든 그 밀실-이는 세계에 불을 던진 성화(聖火)의 발화원(發火源)이요, 죄악의 성을 폭파한 성령의 폭탄 제조소이었습니다. 다락방에서 만들어진 첫 폭탄은 스데반이었습니다. 원컨대 우리 교회는 그때의 그 다락방이 되게 하소서. 이곳-조선의 교회 안에 장난하고 있는 악마의 계획을 폭파할 폭탄 제조소가 되게 하소서. 온 조선, 온 세계에 날아가는 폭탄의 불의 발화지(發火地)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제 1탄이 내가 되게 해 주시면 그런 광영은 없겠나이다.

폭탄은 물론 나가서 자체를 깨치는 것입니다. 불을 던지고는 자신은 깨어집니다. 스데반은 깨어졌습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되, 제 육신은 멸하였습니다.

 

  

8. 샤론의 들꽃

 

이름 없이 지구의 일각을 밟고 가! 샤론의 들꽃 같이! 피는 줄, 지는 줄 세상이 다 모르되, 다만 하늘만이 빈들에 속삭이는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소문 없이 퍼지는 그 향기에 하늘이 웃음 웃고, 자취 없이 눈 감을 때 적막한 밤 작은 별의 무리들이 조상을 해-이것이 값없는 야화의 무상의 영광. 평생 발원이었던 것이로다. 아, 그러나 저를 낸 조물주는 여기에 가공을 하여 옮겨 놓으니, 요란한 대로변 가시밭에 한 송이 백합화가 되었구려!

고요히 이름 없이 지나갈 고독한 야화! 이제는 소문 놓고 노방(路傍)에 찢길 이름 좋은, 그러나 역시 고독한 백합화구나!

  

 

9. 기도

 

웅변은 사람의 마음을 동케 한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동케 한다.

웅변은 금전을 나오게 한다.

그러나 기도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은혜를 내리게 한다.

이 은혜가 없이는 거만(巨萬)의 부(富)도 무익하다.

밀실의 부흥 후에 나오는 신앙과 열정의 기도는

만인이 칭찬하는 천회(千回)의 웅변보다 어떤 목적을 달하는데 더 유력하다.

 

  

10. 기도가 없을 때

 

기도가 없을 때, 나의 영이 마르는 때입니다. 가뭄이 오래면 논과 밭 그 바닥은 째지고 터지는 것처럼 기도의 가뭄이 오랠수록 나의 마음 밭은 폴삭폴삭 먼지가 일뿐 아니라 갈라지고 찢어져 나의 영은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기도로만 나의 영이 윤택하여지고 은혜의 비에 젖게 되는 까닭입니다. 기도가 없을 때 나의 영은 괴로운 때입니다.

밥이 없어 괴로움이 아니요, 옷이 없어 괴로움이 아닙니다. 다만 기도가 없는 그것만이 나의 괴로움입니다. 왜 그러하냐면 기도 그것이 나의 기쁨인 까닭입니다. 기도가 있는 때 나의 영은 생의 기쁨을 맛보는 때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을 때 나의 영은 죽음의 쓴 잔을 마시는 때입니다.

기도는 곧 나의 기쁨이요, 나의 의미요, 나의 생명이요, 나의 일이외다. 기도가 없어 나의 기쁨도 없고 나의 존재도 의미도 없고 나의 생명도 없고 나의 일도 없습니다. 기도는 곧 나의 생명이요 나의 운동이올시다. 기도보다 더 큰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종종 기도를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 기도 못하는 나의 슬픔!

아! 기도 없는 나의 영의 가련함!

밥을 굶는 것보다 더 가련하고

옷을 벗는 꼴보다 더 불쌍한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에게 기도를 주시옵소서.

기도할 영의 힘을 주시고 기도할 말을 주시옵소서. 나의 중심에 기도가 없으매 나의 영은 신랑과 맛나는 밀실을 같이 못하고 쫓겨난 신부와 같습니다.

오! 주여, 이 마귀의 간계를 타파하고 나를 구원하여주소서.

기도! 기도! 아! 그리운 기도. 아! 그리운 기도! 내 생명이 떠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기도를 주옵소서. 기도는 나의 알파요 오메가가 되어지이다. 나의 생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게 하여주옵소서. 아멘.

 

 

11.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깎아버리고

치레의 옷도 벗어버리고!

그것은 세상의 자랑이요 호사는 되되

주님께는 거리낌이 되니까요.

나는 굴갓을 씁니다.

먹물 든 장삼을 입고 새끼띠를 띱니다.

이제 갑니다.

홀로 향하여 가는 곳

남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다만 골고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

주께서 울으셨으매

나도 그 눈물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나의 눈물이 주님의 그것같이

뜨겁지는 못하여도!

주께서 탄식하셨으매

나도 거리를 내려다보고 탄식합니다.

오, 주의 모든 것은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지이다.

 

  

12. 세상의 외로운 사람들아

 

세상의 외로운 사람들아

너희는 주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이로다.

형제들이여, 외로워 마옵소서.

세상이 다

우리를 몰라주어도

주님이 우리를 알아주시나이다.

세상이 다 우리를 버려도

주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나이다.

우리는 흠뻑 외로워집시다.

세상에서 눈물로 외로워지고

웃음으로 주의 품에 안기웁시다.

  

 

13. 인세(人世)

 

희끗한 시선(視線) 독(毒)하게 던지고

십년(十年)의 친우(親友) 일조(一朝)에 가도다

“마도(魔徒) 사탄을 주(主)여 멸(滅)하소서.”는

“목사님 목사님” 하던 성도(聖徒)의 음성(音聲)

면직(免職)되고 득병(得病)하니 찾는 자(者) 없도다

병(病)들고 돈 없으니 다음 올 운명(運命)은?

버림받는 자(者)에게 가을은 쓸쓸하고

병(病)들어 누운 몸은 겨울밤을 울린다

오- 주여

 

 

* 이 시는 원산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 뒷면에 쓴 것이다.

그는 이 해 1933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났다.

  

 

14. 다 주고 가렵니다

 

제가 만일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제 생명이 다할 때에 벌거벗은

몸으로 지하에 돌아가게 하시고,

저의 소유라고는 살아생전에

다 주님을 위하여

무(無)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저를 위하여

무(無)가 되었사오니

저도 주를 위하여

무(無)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께서는 세상을 떠날 때에

속옷까지 원수에게 주셨는데,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수의를 입고 세상을 떠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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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 흥 욱

그는

엎드리기만 하였습니다

그는

울기만 하였습니다

그는

사랑하기만 하였습니다

아, 그는 그는 그는

예수만 높였습니다

시무언 이용도 목사님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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