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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지혜

은파 한은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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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16 22:11 조회3,2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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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 한은우 목사님

  

 

아, 독바위골의 성자여

당신은 아십니까?

당신은 들어보셨습니까?

한국의 독바위골의 성자에 대하여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모여 사는

불광동 북한산 자락 독바위골에

천사처럼 나타나 스물여섯 해 동안

헤매는 양들을 찾아서 침과 주사 놓아주고

교회 안에 공짜 진료소 열어

가난한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일자리 마련해주고

집 없는 사람들 교회에서 살게 하고

그들과 함께 울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난을 나누며 기뻐했던 님

 

가난한 교역자들이 사정하면 눈물 흘리면서

그 달 생활비 다 내주고

가락지 패물 손에 쥐어주고

적금 통장 찾아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이 와서 손 내밀면

입고 있던 양복 벗어주며

잘 살아보라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던 님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거지를 사랑방에 데려와

손수 가래침을 닦아주고 약 사다 먹이고

주사 놓으며 돌봐주다가 장례까지 잘 치러준 님

 

강화 교동에 열두 교회가 세워지는데

그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어

교동섬의 걸어다니는 사도행전

교동섬의 믿음의 아버지

‘믿어보자 한은우’ ‘강화 예수’라 불리는

나라 안에 스무 교회 나라 밖에 네 교회

모두 스물 네 교회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님

 

일평생 집 한 채 자기 이름으로 갖지 않고

은퇴금도 주택도 다 교회에 바쳐 버리고

성역 38년 동안 겨우 감리사 한번 해 본 것이

전부인데 그것도 나중엔 공연히 죄만 지었다고

회개할 정도로 낮은 자의 삶을 살아갔던 님

그 이름 은파 한은우 목사님

조선 소나무 같으신 여든 여섯 살의 영원한 청년

 

아, 오늘 같은 영혼의 깊은 밤중엔

독바위골의 성자 그 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님과 같은 이는 볼 수 없어

거슬러 거슬러 영혼으로 님을 찾아 나섭니다

 

 

   

 


 

걸어다니는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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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 지하도에서 1,000여명의 노숙인 형제들에게

예수 사랑을 전하고 있는 한은우 목사님(2006. 4. 17)
 

 

   강화도에서 더 배타고 가는 작은 섬에 부잣집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은 딸만 여섯인 가정에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나서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19살 청년시절에 폐병이 깊어져 음식을 입에 떠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절망에 빠졌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병실에서 신약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중 마가복음 10장에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부르짖는 대목에서 깊은 충격을 받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믿음의 불이 붙었습니다. 
사경을 헤매면서도 이런 기도문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습니다.

“이팔청춘 꽃다운 몸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진대 한 번만 살려주옵소서! 그리하면 이 몸을 주 앞에 바쳐 죽도록 충성을 다하리라. 불가불 죽어야만 된다면 지옥에 보내지 마옵시고 천당에 보내시옵소서! 아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을 줄 알았던 그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확실한 체험이 있은 후부터 그는 성령의 불길에 온전히 휩싸여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받들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은 지금까지 나라 안에 20교회, 해외에 4교회, 모두 24교회를 세워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고향인 강화군에 지석교회, 이강리교회, 중앙교회, 인사교회, 서한교회, 양갑교회, 무학교회, 고구리교회, 화동교회를 세웠으며, 그밖에 동산교회, 도천교회, 춘당교회, 우천교회, 횡성제일교회, 임천교회, 은파교회, 은천교회, 은광교회, 서부동산교회, 남부동산교회를 세웠고, 나라 밖으로 미국 나성동산교회, 영국 런던 벳새다동산교회, 미국 시카고 임마누엘교회, 멕시코 동산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가 바로 은파 한은우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교동섬의 믿음의 아버지로서 교동섬과 강화 사람들은 그를 ‘걸어다니는 사도행전’, ‘믿어보자 한은우’, ‘강화 예수’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한 어린이의 서원기도

 

서해 외딴 섬에 10살 초등학교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외아들이기에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장로였습니다. 어느 날 이 어린이가 급체로 병이 나서 정신이 혼미해져 쓰러져 있었습니다. 열은 40도 가까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강촌이라 병원도 의사도 약국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유의 역사를 체험한 장로였기에 사태가 다급해지자 그 교회 전도사님을 모셔다가 기도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 어린이는 주일학교 모범생이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이 오셔서 이 어린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치료의 주, 창조의 주, 권능의 주님, 손 한 번 대주셔서 이 어린이를 지금 고쳐주옵소서! 아멘.”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열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병은 기적적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그 어린이는 신유의 체험을 하고 그 자리에서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도 앞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저 전도사님처럼 병든 사람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어린이는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어린이가 최흥욱 목사이고 그 전도사님이 한은우 목사님이십니다. 또 그 아버지가 최원철 장로이고 그 섬이 교동섬이며, 그 교회가 교동중앙교회입니다.

 

“오, 주여, 그때 그 일 때문에 제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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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동사교회에서 축도하시는 한은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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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최흥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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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교동 보리밭에서 최흥욱 목사와 함께하신 한은우 목사님
 

 

당신이 오신다기에

당신이 오신다기에 

전 아무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전 오늘도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별빛도 당신 얼굴 

달빛도 당신 얼굴 

앞마당에 피어있는 살구꽃 앵두꽃도 

모두 당신 얼굴뿐입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살구꽃 앵두꽃 다 지기 전에 

어서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올 당신 오신다는 생각에 

오늘도 전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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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교회 앞에 선 한은우 목사님과 신순녀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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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동산교회 마당 기념돌 앞에 선 한은우 목사님과 신순녀 사모님
 

 

LA 한은우 목사님께

부족한 것 천지요 철부지 같던 이 종을 선한 목자의 길로 인도해 주신 제 인생의 영원한 믿음의 아버지이신 은파 한은우 목사님!

전 목사님 같은 아버지 계시기에 눈물겹도록 감사하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두 눈을 씻고 살펴봐도 목사님 같으신 사랑의 목자 찾아볼 수 없기에 오늘도 목사님 그리워하며 감격하여 울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 가을에 강건하십시오. 늘 이맘때면 찾아뵙고 인사드렸는데 용서하십시오. 생신 축하합니다. 그리고 목사님, 사랑합니다.

 

2007. 9. 10

믿음의 아들 최흥욱 드림

 

 

LA 신순녀 사모님께

 신순녀 사모님을 

 생각하면 감격의 눈물이 
흐르곤 합니다.
 
가시밭 길 목양의 길
 
어진 소처럼 말없이
 
십자가 지시고 그저 우시면서
 
기도하시던 사모님의 모습이
 
어느새 저희들의 가슴까지
 
스며들어 저희들은 오늘
 
이리도 감격해 하면서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외에게 목양의 길
 
사모의 길을 몸으로 삶으로 보여
 
주셨던 마리아와 같으신 어머니
 
신순녀 사모님!
 
건강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어머니의 교훈 받고 이 땅에 수많은
 

믿음의 자녀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2008. 5. 8 어버이날에


최흥욱ㆍ박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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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기도원에서 기도하시는 한은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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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최초의 기도원인 용문산 기도원 정문에서

최흥욱 목사와 함께 하신 한은우 목사님

 


예수님, 왜 차에서 내리세요? 
 


2008년 5월 미국에서 오신 한은우 목사님을 모시고 경상도에 내려갔습니다. 
기독교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박용배 목사님은 승합차를 몰고, 난 목사님 곁에 앉아서 말 상대가 되어 드리고 그날 그날 유적지 안내와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일은 여든 다섯살이신 목사님이 차에서 내리실 때마다 차 밑에 디딤대를 놓아드리고 손을 꼭 붙잡아 드려서 편하게 내리시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북 김천 용문산 기도원을 찾은 날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신학교 때 은혜 받았던 마음의 고향과 같은 용문산 기도원 대성전 앞에 차가 섰습니다. 차에서 내리시는 목사님을 위해 디딤대를 놓아드리고 손을 붙잡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차에서 흰 옷을 입으신 예수님이 활짝 웃으시면서 내 손을 잡고 내려오고 계셨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난 “예수님, 왜 차에서 내리세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네가 하는 일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내가 내려오고 있구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예수님이 사라지셨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어디 가셨어요!” 내가 외쳤으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대신 한은우 목사님의 따스한 손이 내 손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난 허리를 숙인채 너무 감격하여 울어버렸습니다. 
“아, 예수님이 정말 찾아오셨구나!” 그리고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목사님, 저 한평생 목사님의 디딤대 놓아드리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조국에 자주 오십시오, 목사님! 제게 예수님 뵈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목사님!”

 

“오, 주님, 평생 허리 숙여 디딤대 놓아드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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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앉은 이가 어머니 이중호 집사님

뒷줄 신순녀 사모님, 한은우 목사님

(고향 땅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에서)
 

 

숨은 성자

우리 겨레 가장 어두웠던 시절
가르침 받을 스승도 많지 않고
따라갈 목자도 보이지 않을 때
후미진 섬 강화 교동에서 은총 입어
키 작은 겸손으로
삼심팔년을 하루같이
가난한 사람들 먹여주고
병든 사람들 상처를 싸매주고
우는 사람들 눈물 닦아주고
복음이 안 들어간 곳에 예배당 세워
겨레를 기름지게 하고는
자신은 평생 집 한 채 은퇴금 한 푼도 없이
한 없이 작게 낮게 없는 듯이 살아간
겨레의 참 스승 어지신 목자
세상에 자신 이름 석자가 드러나는 걸

도무지 원하지 않고
오직 예수 하나만 붙들고
미친 듯이 전하며 달려오신
불광동 독바위골의 숨은 성자라고
이제야 조심스레 불러보고 싶은
지금은 양치는 일에서 물러나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면서
만인이 형제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은파 한은우 목사님
아, 우린 당신이 계시기만 해도
이리도 행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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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동산교회 마당 기념돌 앞에서

최흥욱 목사와 함께 하신 한은우 목사님

 

 

 

그분의 축복

 

내 어린 시절에

한은우 전도사님이

우리 집에 심방 오셔서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한경직 목사님 같은

사랑의 종 되게 하시고

빌리 그레이엄 같은

능력의 종 되게 하소서”

하고 수백번은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다

 

이제 그분은 은퇴하시고

내가 목사가 되어

어린이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하고 있다

“한경직 손양원 이용도

목사님처럼 사랑 가득하고

 

빌리 그레이엄 디엘 무디

찰스 피니처럼 성령충만한

능력의 종 되게 하소서”

“조만식 장기려 정규만

유계준 문창모 유경실

장로님처럼 작은 예수되어

세상을 섬기게 하소서”

 

참 신기한 일이다

그분의 축복이

나의 축복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내게서 축복 받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 어느 날엔가

내가 축복하듯이

또 다른 아이들을

사랑스레 축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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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동산교회에서 최흥욱 목사 내외와 함께 하신

한은우 목사님과 신순녀 사모님

 

 

9만 8천원짜리 사랑의 주사

 

여러 해 전에 나를 목회자로 키워주신 한은우 목사님께서 우리 집까지 차를 몰고 오셨습니다. 나를 차에 타라고 하시면서 꼭 함께 가야할 곳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냐고 여쭈었더니 병원엘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병원엔 왜 가야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최 목사님, 요새 얼마나 허리가 많이 아픈가? 기도 많이 하는 주의 종들이 당하는 고통이지. 허리 치료를 위해 병원에 함께 갑시다. 미국에서 개발한 주사제인데 한번만 맞으면 효험을 볼걸세. 나도 한방 맞고 치료 받았다네” 일전에 목사님께 전화드리면서 요사이 허리가 좀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마음에 꼭 두셨다가 나를 데리러 오신 것입니다.
“내가 강화에서 목회할 때 아버지 최 장로님은 내게 좋은 동역자이셨지. 지금 최 목사님은 부모님들 모두 세상에 안 계시기에 고아와 같은 신세이지. 내가 아버지 노릇해야 하지 않겠나? 아무 생각 말고 이번 치료는 천국에 계신 아버지 최 장로님이 내려오셔서 주사 놓아주시는 것으로 알게나” 하고 목사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느 병원까지 사실은 끌려가다시피한 것입니다. 병원에 이르자 목사님은 내 의료보험증과 치료비를 손수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허리 주사 한 방 맞는데 9만 8천원이었습니다. 난 평생 처음 이런 값비싼 주사를 맞아보았습니다. 이건 의사의 주사를 맞은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사랑의 주사를 맞은 것입니다. 난 평생 9만 8천원짜리 목사님의 사랑의 수액을 간직한 빚진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그날 그 주사 맞고 아픈 허리가 나았습니다.
그날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가슴 속엔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이 귀한 사랑의 본보기, 나도 약한 이웃들을 위해 베풀며 살리라고 한 없이 행복해하였던 그 날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오, 주님, 난 9만 8천원짜리 사랑의 주사를 맞아본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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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동산교회 목양실에서

한은우 목사님과 신순녀 사모님


  

아버지의 사랑

우리 교회가 성전을 건축할 때 경매에 넘어갈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땅을 사들인 뒤 1년 안에 성전을 짓지 않았으므로 구청에서 7천만원 중과세를 내라고 강요하였는데 내지 못하니 경매에 붙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건축비도 없어서 공사를 쉬고 있는 터에 이걸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구청 세무과에 수십차례 불려가 시달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실 성전건축 공사로 탈진하고 지쳐있는 때에 교회를 경매하겠다는 구청의 통보는 그야말로 절망선언이었습니다.

더 이상 해결할 방법도 없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던 때 난 마지막으로 한은우 목사님께 전화드렸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를 저 구청 나쁜 사람들이 경매처분 하겠대요. 절 보고 구청에 들어오래요”

결코 가고 싶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 구청에 들어갔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세무과 직원들을 또 보아야겠지 하고 문을 열었는데 거기 한은우 목사님이 앉아계셨습니다. “최 목사님, 걱정하지 말아. 주님이 손들어 주실거야”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셧습니다. 나는 목사님을 뵙자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길 없어 속으로 한없이 울었습니다. 내 사정이 어렵고 힘들어서 운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 옆에 계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 감격해서 운 것입니다.

한은우 목사님과 신순녀 사모님은 우리 교회가 가장 어려웠던 성전 건축기에 한푼 한푼 모은 돈 1,500만원을 헌금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기적의 씨앗이 되어 성전이 다 지어졌습니다.

내 삶의 정서 속에는 한은우 목사님이 항상 자리잡고 계십니다. 한은우 목사님, 그분은 분명 우리 교회의 아버지시며 오늘의 나를 나되게 하신 믿음의 아버지이십니다.

 

“오, 주여, 옆에 계시기만 해도 행복한 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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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기도하시는 한은우 목사님

  

 

 

아, 우리 한은우 목사님

 

침 햇살처럼 따스하게

리들 가슴 속에 늘 머무르시면서 
(이)상 세계 이상향 꿈의 나라로 
 없이 넓으신 가슴으로 우릴 품어주신 
혜의 바다 같으신 어지신 목자시여 
리들 방황하는 영혼들을 마음껏 축복해주신 
사님, 아, 우리 한은우 목사님 
랑을 온 몸으로 숨쉬며 살아오신 
이시여, 참 사랑의 아버지시여 연년세세 강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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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나되게 하신 믿음의 아버지

 

한은우 목사님과 나와의 만남은 아마도 숙명적인 만남의 관계라 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럴만한 선명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은 6ㆍ25를 만나 연백군 연백읍에서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로 내려와 사는 중에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 나이 두 살이었는데 인가귀도의 축복이 목사님을 통해 임한 것입니다.

그 후로 목사님께서 서울로 올라오시기 전까지 줄곧 우리 아버님은 장로로서, 어머님 속장으로서 사명을 받아 교회를 받들어 왔습니다. 목사님 밑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믿음의 지도를 받게 된 것입니다.

내가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된 것도 목사님의 기도의 열매로 된 것입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몸에 열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져 있을 때에 목사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실 때 열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정신도 깨끗이 돌아오는 신기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도 앞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한은우 목사님처럼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명감이 넘쳐서 주께서 가라고 하시면 어디든지 가리라고 목회 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 나를 경기도 이천군 설성면 제요리에 보내주셨습니다. 시골 밭에다 15평 천막을 치고 교회 개척을 시작하였는데 이 교회가 이천 남지방 은광교회요, 이것이 내 목회의 첫 시작이 되었습니다.

은광교회에서 6년, 교회와 목사관을 세우고 사역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목사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미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교회도 개척하려고 하는데 그동안 동산교회를 맡아 부목사로 일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년 동안 부목 아닌 담임(?) 역할이나 마찬가지인 위치에서 동산교회를 돌보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목사님께서는 그동안 충성을 많이 했다고 하시며 은평구 증산동에 동산교회의 한 속회를 떼어주시면서 교회를 시작하게 해주셨습니다. 7가정 12명의 성도가 중심이 되어 30여 평의 건물을 얻어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서부동산교회입니다.

이렇듯 내 삶의 정서 속에는 목사님이 항상 자리 잡고 계십니다. 한은우 목사님, 그분은 분명히 오늘의 나를 나되게 하신 믿음의 아버지이십니다. 지금까지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목사님을 모시고 지켜보면서 몇 가지 지울 수 없는 사실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목사님은 어진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한평생 예수와 교회 그리고 양들밖에는 모르는 전형적인 목자이십니다. “목사는 죽더라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되네. 성전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녹을 먹고 살아가야지, 다른 일을 해서도 안 되지.”하는 말씀 속에서 목자로서의 모습을 봅니다. 그분은 성역 38년 가운데 오늘의 동산교회 한 교회에서만 26년을 섬기신 오직 한 길의 목자이십니다.

인자한 모습, 평화스러운 얼굴, 인정어린 다정다감한 말씀, 누구를 대하든지 거리감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친근감을 주는 목사님은 의지 없는 내게 있어서는 언덕이요, 피신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양 하나하나의 영혼을 아끼고 걱정하며 가족처럼 오순도순한 교회를 돌보면서 양들의 불행을 보면 당신의 살이라도 깎아주려고 안간 힘을 쓰기도 하셨습니다.

둘째로 목사님은 뜨거운 전도자이십니다. 그분의 호인 은파(恩波)가 말해주듯이 그는 은혜의 물결에 온전히 휩싸여 역사하는 성령 충만한 전도자이십니다. 19세 때 폐병에 걸려 21세 때 사형선고를 받고는 병상에서 신약성경을 읽다가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되는 대목에서 주님의 빛에 얻어맞고 거듭나는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기도 만능주의자 차득련 전도사님을 만나 사랑방에서 단둘이 기도하다가 사랑방을 떼굴떼굴 구르며 부르짖는 이른바 성령의 강한 불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확실한 체험이 있은 후부터 목사님은 성령의 불길에 온전히 휩싸여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받들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은 지금까지 나라 안에 20교회, 해외에 4교회, 모두 24교회를 세워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고향인 강화군에 지석교회, 이강리교회, 중앙교회, 인사교회, 서한교회, 양갑교회, 무학교회, 고구리교회, 화동교회를 세웠으며 그밖에 동산교회, 도천교회, 춘당교회, 우천교회, 횡성제일교회, 임천교회, 은파교회, 은천교회, 은광교회, 서부동산교회, 남부동산교회를 세웠고, 나라 밖으로 미국 나성동산교회, 영국 런던 벳새다동산교회, 미국 시카고 임마누엘교회, 멕시코 동산교회를 세웠습니다.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오늘도 제자들의 교회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목사님은 분명 영원한 전도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목사님은 청빈한 그리스도의 종이십니다. 목사님은 일평생 집 한 채, 교회 하나 자신의 이름으로 가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교단 정치에서도 겨우 감리사 한 번 해본 것이 전부인데 그것도 나중엔 공연히 죄만 짓게 되었다고 후회할 정도로 낮은 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무슨 단체, 기관을 만들어서 총재니, 회장이니 하는 감투를 많이 차지하고 지낸 명예광이 아닙니다. 전국 제일, 아시아 최고, 세계 최대 등 크고 우람하고 화려한 것만 바라는 출세주의자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너무 작아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소자들을 소중히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으려 애쓰시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가 지금도 농어촌, 산촌의 교회 교역자들에 대해 기도와 염려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넷째로 목사님은 진지한 구도자이십니다. 목사님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학문과 씨름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공부란 졸업이 없이 평생 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그는 율곡을 통해서 예언자적 통찰력을, 맹자를 통해서는 철학적 관점을, 공자를 통해서는 도덕의 진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잔 다르크 전기를 읽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은 후 그분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몇 권의 책들이 있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의 생애와 전기는 그에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삶에 대해서, 우찌무라 간조의 구안록에서는 평안 얻는 비결을, 이용도 목사의 서간집에서는 열광적인 기도에 대하여, 찰스 피니의 글들은 성령의 불의 중요성을 그분께 깨우쳐주었습니다.
그토록 바쁜 목회 와중에서도 지금까지 연세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목회자 신학세미나에 9번이나 참석하셨고, 59세에는 미국에 건너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International Bible College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아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였습니다.

다섯째로 목사님은 민중의 사제이십니다. 목사님의 교회 표어는 1동에 1교회를 세워 이 땅에서 가난을 물리치고 이상향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그의 이런 사상은 목회에 그대로 나타나 평생 헐벗고 가난한 이웃을 벗 삼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강화에서 서울에 올라와 개척을 시작할 때 지금의 불광동 독박골을 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리라 짐작됩니다.

목사님은 고도성장의 물결을 타고 급성장하고 급변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소외당하고 착취당하여 변두리 독바위골(독박골)에 몰려온 헐벗고 굶주린 방황하는 양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민중들과 함께 울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난을 나누며 산 민중의 사제였습니다.

침과 주사 놓는 법을 배워 병든 이를 찾아다니며 치료해 주었고 교회 안에 무료 진료소를 열어 가난한 민중들의 상처를 싸매주셨습니다. 목사님은 민중들의 고난과 아픔을 주 예수님과 함께 나누면서 절망 속에 있는 영혼을 하늘을 향하게 하고 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 동산교회가 지역사회로부터 그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섯째로 목사님은 꿈을 심어준 큰 스승이십니다. 목사님은 꿈을 먹고 사는 지도자요 스승이었습니다. 그분은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꿈은 마침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에게서 꿈을 받아먹은 수많은 젊은이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사명을 발견하고 목회를 지망하게 되었고 지금 초교파적으로 헌신적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목회자들이 되어 우리 한국 영계에 큰 사단이 되어 놀랍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큰 가르침 밑에서 51명의 목사와 14명의 전도사가 배출되어 뜨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목사로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고희집 한명수 김영상 안태민 박용식 한기익 한기형 최흥욱 한영식 권혁구 민승 윤송현 김형기 김옥렬 홍중양 차경식 백승억 이창순 박수웅 전종욱 한성현 김웅태 김홍진 안병선 한성대 문문찬 신광섭 양우석 권원택 지일권 임성열 박철주 고홍기 최남순 유장춘 황창진 김영진 이종환(A) 이종환(B) 곽성자 정관교 고은기 정봉기 윤경식 남순우 남관우 이광보 황재환 전영배 정명기 박승학 등이 있으며, 전도사로 일하는 이들은 박명숙 이희철 민대순 이순임 허순녀 정병기 권민철 윤경숙 안창훈 홍종혁 강도화 김정옥 이영선 남준우 등입니다.

일곱째로 목사님은 사랑의 사도이십니다. 목사님은 예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였고, 한국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씨알)을 사랑하였고,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셨습니다. 날마다 아침에는 삼각산을 드나들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기도하고 명상하는 골방이요, 하나님과 사귀는 밀실입니다. 
예수님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사귀었던 그의 신앙체험은 곧 사람들 사이에 정의와 사랑을 행하는 실천으로 나타났습니다.

목사님은 무차별 이웃 사랑을 실천한 어른이십니다. 강화 사람들은 이런 그를 두고 “믿어보자 한은우” 또는 “강화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황해도 가랫멀에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55세의 거지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을 설득하여 사랑방에 그를 두고 죽을 때까지 손수 가래침을 청소해주고, 약 사다 먹이고 그 당시 지석교회의 유사였던 최원철 장로(필자의 선친)는 그 거지에게 주사를 놓아주며 돌봐주었습니다.

원주 동부교회(김옥렬 목사 담임)가 개척될 때 그는 자신과 사모님의 가락지와 패물 일체를 김 목사님에게 주고, 그 달 받은 생활비를 다 주고, 사모님의 적금 통장을 찾아 전부 주어 교회 대지를 살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찾아와 구걸하면 입고 있던 양복을 벗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랑의 행적은 시무언 이용도 목사의 무차별 사랑을 연상케 합니다. 그의 이러한 사랑의 인격이 많은 사람들을 그 주변에 모이게 했던 것입니다.

한은우 목사님, 그분은 이제 목회일선에서 물러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계십니다. 이제부터는 전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가 터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3헐 목사님이십니다. 성경을 너무 많이 읽어서 성경책이 헐고, 기도에 미쳐서 무릎이 헐고, 양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셔서 구두가 헐어버린 3헐 목사님이십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고, 듣고 배운 것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영원히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펼쳐지는 목사님의 삶 위에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후 1995. 4. 16. 부활절 새벽에

                                                                                                                         최흥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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