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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예수를 일찍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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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21 11:59 조회1,9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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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찍어 6명의 일가족을 죽인 살인마 고재봉 간증수기

이 간증수기는 내가 본 고재봉의 수기로 안국선목사님(한길교회)​이 기록한 간증수기입니다.​

 

거듭난 자의 노래

 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서 이덕주 중령 일가족 6명을 도끼로 몰살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고재봉 사건이다.

 각 신문들은 대문짝만 한 기사를 냈고, 이 충격적 보도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당시 교회 서리 집사로서 대한성서공회의 권서(성경을 전하는 전도인)일을 하고 있었다. 신문의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옆에 달린 강도를 보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순간, 나도 모르게, "주님! 저에게도 힘을 주시옵소서. 세상이 모두 깜짝 놀라는 이 엄청난 강도를 제가 구원하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 후부터 나는 새벽 기도 때마다 입버릇처럼 기도했다. "주여! 그 강도를 제가 구원하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되뇌이면서 고재봉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살인마 고재봉을 전도하는 일이 꼭 나에게 부여된 사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토록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그도 필시 인간일진대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을망정 한 자락의 양심 정도는 남아 있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그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았다. 그러는 중에 서울 구치소의 담당 검찰관의 배려로 그를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집에서부터 구치소로 가는 동안 줄곧 고재봉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으나 도무지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구치소에 도착하여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5000" 이란 수인번호를 단 죄수가 여덟 명이 간수에게 호위되어 따라 들어왔다.

 "새벽마다 너를 위해 기도해준 분이시다. 좋은 말씀 많이 듣고 깨닫는 바 있기 바란다." 라고 말하면서 검찰관은 나를 고재봉에게 소개했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갑자기 소름이 끼쳤으며 눈에는 살기가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그도 나의 손을 붙잡았다.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피 묻은 손, 살기가 감도는 차가운 손으로만 알았는데 그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교도소 전도였기 때문에 약간 당황한 감은 느끼면서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기로 마음먹고 가방에서 성경을 꺼냈다.

 "자, 요한복음 3장 16절을 폅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1절까지 큰 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나서 무엇인가 이 말씀에 대한 설교를 해야 할 텐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가 나도 모르게 "형제여!"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형제여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하고 외쳤다. 나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무슨 말인가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주님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토록 나오지 않던 말들이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불쌍한 죄인을 위하여 나의 입을 사용하신 것이다.

 설교를 마치고 불쌍한 죄인을 구원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자 고재봉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가 갑자기 얼굴을 쳐드는 바람에 주위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긴장되었다. 흉악무도한 살인마가 수갑을 푼 채로 나왔으니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제일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구치소장이었다. 구치소장과 고재봉과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구치소장이 고재봉이 수감되어있는 방을 들여다보았는데, 살인마 고재봉이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바람에 구치소장의 안경이 깨지면서 질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재봉의 손가락에 의해 안경이 깨지는 순간, 구치소장은 눈알이 달아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던 다음부터 고재봉의 방 앞으로는 아무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간에서 고재봉을 가리켜 "눈깔 파먹는 지옥의 염라대왕"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장된 얼굴로 "뭐냐?" 라고 묻는 검찰관의 물음에 고재봉은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내려뜨리면서 "검찰관님, 이제 모든 것을 자백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체포된 이후로 고재봉은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수사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고재봉이 스스로 이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진술에 의하면, 고재봉은 부대에서 부대장인 박중령의 사택에 자주 사역을 갔다고 한다. 주로 물을 긷거나 장작을 패는 일, 또는 청소를 하는 일과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날도 고재봉은 박중령 사택으로 가서 청소와 장작 패는 일 등을 끝내고 박중령의 서재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시발은 작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견물생심이라고나 할까 고재봉은 서재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집어가지고 나왔다. 그때 이것을 가정부가 본 것이다. 가정부는 길길이 뛰면서 야단을 쳤다. 저번에 박중령 군화도 훔쳐간 도둑놈이라고 외치며 고재봉을 몰아붙였다. 졸지에 고재봉은 박중령 집안의 모든 도난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다.

 화가 난 고재봉은 순간 옆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까불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재봉은 살인미수로 7개월간 육군 형무소에 복역하면서 박중령에 대해 이를 갈았다.

 7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고재봉은 원수 박중령을 죽이겠다고 결심을 하고 예전에 박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박중령이 다른 곳으로 전속을 가고 그 사택에는 이덕주 중령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와 같은 끔찍한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오로지 박중령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고재봉은 무작정 박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가서 도끼를 휘둘렀던 것이다. 이 바람에 어이없게도 박중령이 아닌 이덕주 중령이 가족들과 함께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고재봉은 이러한 전말을 털어 놓으면서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동안 그처럼 묵비권을 행사해 온 것은 수사가 지연되는 동안에 기회를 보아 탈출하여 기어이 박중령을 살해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관이 묻는 질문에 모두 답변하였다. 나는 이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불쌍한 종을 회개하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다.

 그 후부터 나는 끊이지 않고 고재봉에 대해서 기도하고 틈만 있으면 면회를 갔다. 사형을 언도받은 고재봉은 공소를 포기했다. 왜 공소를 포기하였느냐는 질문에, "또다시 공판정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시 공판정에 선다는 것은 한마디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공소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왜 그라고 해서 삶에 대한 애착심이 없을까마는 그가 공소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같은 놈은 빨리 죽어야 합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저에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매일 제가 받아먹는 4등급의 급식도 제 마음 같아서는 저 담밖에서 배를 곯고 있는 거지들에게 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이 공기 한줌마저도 저같은 쓰레기에게는 차마 아까운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후에도 나는 자주 면회를 갔다.

 하루는 일찍 면회를 갔으나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하루 종일 떨고 있어야만 했다. 연말이 가까운 겨울이라고 날씨는 혹독할 정도로 추웠다. 면회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에야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재봉!"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고재봉씨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이렇게 시작하는 간수의 질문은 상당히 번거롭게 계속되었다. 고향은 어디며 나이는 몇이며 부대에서 함께 있었냐는 등등, 아마 내가 혹시 공범이라도 되지 않나 하고 심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꾹 참고 끝까지 간수의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을 하였다. 질문이 다 끝나니 간수는, "면회 거절합니다."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항의를 하였다. 그러자 간수는 고재봉이 면회를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다음에 오기로 하고 준비해 간 포켓용 신약전서 한 권을 간수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좀 전해 주십시오"

 간수는 성경을 받더니 "여기에 아무것도 안 씌어 있지요?" 하면서 이리저리 뒤적거려 보았다. 나는 태연하게 간수를 보면서 아무것도 안 썼으니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신약전서는 곧 고재봉의 손에 전해졌다. 독방에 홀로 있던 고재봉은 심심하면 할 일 없이 성경책을 뒤적거리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까지 읽던 고재봉은 생각했다. "아니, 이 구절은 지난번 왔던 어떤 목사님이 읽어 준 말이 아니냐!" 고재봉은 약간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까지 읽고 나서 또 생각했다. "맞다. 그때 그 목사가 나에게 읽어 준 바로 그 말씀이다. 그때 그 목사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너도 나도 모두 죄인이고 세상 사람 다 죄인이고 예수 십자가 한쪽 편 강도...너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하였는데 그 말이 정말이긴 정말인 모양이구나..."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는 그때부터 신약전서를 읽기 시작했다. 성경의 글씨들이 차츰 살아있는 말씀으로 고재봉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은 결과 그는 거절했던 면담을 청했고 내가 근무하는 대한성서공회로 연락이 왔다. 나는 기대를 안고 다시 구치소로 향했다. 일반 면회와는 달리 시간제한이 없이 자유스럽게 만난다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고재봉은 나를 보자 대뜸 "지난번에 면회를 거절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며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저, 지난번에 책을 드렸는데 받아 보았습니까?" 하고 서두를 꺼냈다.

 "예, 이것 말씀이시지요? 잘 받았습니다." 고재봉은 바지 주머니에서 성경을 꺼내었다. 나는 반색을 하면서 물었다.

 "그 책 몇 장이나 읽어보셨나요?"

 그러자 고재봉은 우물쭈물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한 다섯 번쯤."

 나는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짧은 동안에 다섯 번이나 읽었다니,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저, 이것 말고 큰 책 있지요?"

 "이거 말이오? 지난번에 드린 것은 신약전서이고 이 큰 책은 신약과 구약을 합본한 성경전서이지요. 내가 다시 사드리겠습니다."

 다음날 나는 성경과 찬송가를 사서 고재봉에게 건네주었다. 고재봉은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고재봉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읽었다.

시간이 이처럼 아까운 것인지를 새삼 느낀 것이다. 급식을 갖다 주어도 고재봉은 성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읽던 곳을 끝까지 읽은 연후에 밥을 바라보았고 밥먹는 것보다는 성경을 더 좋아했다고 하니 고재봉의 바뀌어진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내가 면회를 갈 때마다 고재봉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 성경이 얼마나 귀한 책인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진작 이 책을 보았더라면 아마 제 인생도 변했을 것입니다." 하고 감격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새벽이면 단정히 일어나 앉아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호로 하여 찬송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고재봉의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도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나에게 예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 아니냐! 교회가, 교회가..." 고재봉은 안타까운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자기 자신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큰 힘에 이끌려서 무어라고 씨부렁거리듯 한참을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된 고재봉은 깜짝 놀랐다. 일본말도 아니요, 중국말도 아닌, 그렇다고 미국말이나 우리 한국말도 더더욱 아닌 이상한 말들이 자기의 입을 통하여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한동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퍽 포근하고 기쁨이 몸 전체를 감싸는 것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또 이런 체험도 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며 마치 고압선에 감전된 것처럼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몸이 마비된 듯 이성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힘이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을 운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기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자기 자신의 생각까지도 모두 누군가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차츰 어떤 새로운 힘이 자신 속에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새로운 힘이 그의 내부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그 목사님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거야." 순간 고재봉의 얼굴에는 끝없는 행복감과 기쁨이 넘쳐흘렀다. "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고재봉은 이렇게 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고재봉은 자기의 심경 변화와 전도의 목적을 교무과에 알렸다. 구치소의 배려로 고재봉은 드디어 다른 방으로 이감된 것이다.

 감방마다 자상, 실장, 감방장 같은 계급이 있고, 신입생은 신고식을 갖게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법적일 수가 없으며, 죄수들이 비밀리에 그렇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다.

 신입생의 신고식은 옷을 벗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발가벗겨진 채로 거꾸로 매달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한다. 그때 만약 신입생이 반항을 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벌칙이 주어지거나 즉석 심판이 행해져서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신입생 신고식에서 또 한가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 신입생의 보호자를 통하여 사식과 간식을 들여보내게 하여 한동안 포식을 하는 일이다.

 고재봉이 들어왔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신고할 기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자상은 드디어 호통을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랬더니 '5000'번을 달고 있는 살인강도 고재봉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상은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고재봉의 행동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묵상을 하고 있던 고재봉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성경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자세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피로를 느낄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고재봉이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고재봉은 찬송이 끝나갈 무렵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렇게 맑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을까?

 고재봉이 오면서부터 이 방안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시끄러움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새벽녘이 되면 으레 모두 일어나 교회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신호로 찬송을 불렀다. 찬송이 끝나면 고재봉은 성경을 펼쳐들고 큰소리로 읽곤 하였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가 이 방안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으며 돌아가면서 성경퀴즈도 하게 되었다.

 고재봉의 성경봉독과 전도의 여파는 철장을 타고 옆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에는 교도소 안이 온통 찬송가 소리에 묻히게 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이곳 서울 구치소에 강하게 역사하신 것이다. 서울 구치소 측은 고재봉을 마치 무슨 전도사처럼 생각하였다. 고재봉은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고재봉은 틈만 있으면 기도를 하였다. 그의 눈물의 기도는 확실히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예수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고재봉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차츰 성경에 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으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사형 날짜가 가까워 옴에 따라 더욱 자주 면회를 갔다. 하루는 고재봉이 이런 말을 했다. "전도사님, 나 어제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재봉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소리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어디선가 다시 '재봉아, 이 밧줄을 받아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위를 보니 밧줄은 보이지 않고 웬 거미줄 같은 것이 한가닥 있었는데 그 거미줄을 꽉 잡으니 끊어지지 않고 동동 매달려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올라갈수록 깜깜한 암흑세계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이상한 아우성이 들리고 해골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것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옆의 아저씨에게 물으니 그는 여기에 온지가 꼭 3년 째 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못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밥을 못 먹으니 죽어야 할텐데 아무리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의 아주머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교회 종소리가 나면 늘 교회에 가면서도 자기한테는 한번도 교회에 가자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어떤 때는 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병이 들어 이제나마 교회에 가려고 했으나 그 아주머니가 텃세를 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을 때 오지 않고 있다가 늙고 병든 후에야 왜 오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무슨 염치로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느냐고 하면서 우리 교회가 무슨 송장 치워주는 곳인 줄 아느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억지로라도 갔더라면 이곳으로 온 것만큼은 면했을텐데 결국 용기가 없어서 교회에 가지 못하여 여기에 오게 된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다른 곳을 갔습니다. 이번에는 눈이 부시고 화려한 가운데 공기가 맑고 상쾌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생명수 물가에는 과일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황금길 저 멀리 열두 진주 대문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옆에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지금도 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못 박혔던 손자국을 어루만지며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주위에는 천군천사들이 함께 화답하고 꽃들이 사방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 좀 해몽해 주세요."

 나는 고재봉에게 그것은 참으로 성령이 임하사 형제에게 천당과 지옥이 있음을 증거해준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거미줄 같은 밧줄은 주님께서 내려주신 생명줄이니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얼마 후 면회를 갔다. 그날이 마지막 면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약간 착잡했다. 다음 날이 주일이요, 월요일에는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

 고재봉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그날 새벽에 그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재봉아! 너는 56일이면 죽는다." 준엄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었다는 것이었다.

 "전도사님, 성경에는 날짜를 어떻게 풀이 합니까?" 고재봉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제여, 그것은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직 아버지만 그날과 기한을 아신다고 하셨는데 어찌 내가 성경의 날짜를 풀이합니까?"

 그랬더니 고재봉은 약간 누그러지는 기색을 보이며, "안 전도사님을 만난 지도 56일이 지났고, 성령의 체험을 받은 날도 지났고 세례 받은 날도 지났으니 이제부터 56일 후도 아닐 것이요, 이제부터 내 집행 날짜가 길면 100일정도 일 것이요, 짧으면  2, 3일밖에 안 될 텐데" 하며 힘없이 56일, 56일 하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혹시 56시간?" 이 말을 들은 나와 간수는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을 것이요." 간수가 나직하게 위로해 주었다. 나는 그를 위하여 무엇인가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죽음에 대하여 그다지도 미련이 많습니까? 그 문제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늘 죽는다, 죽는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죽고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있는 것인데 왜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고재봉은 눈을 껌뻑거리면서 듣고 있었다.

 "형제여! 내가 예전에 한 말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대답해 주시오" 고재봉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서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박중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나요?"

 "전도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됐어요. 이제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한같은 것은 없겠지요." 고재봉은 나의 팔을 꽉 잡았다.

 "오늘은 시간도 많이 갔고 하니 이만하지요." 간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간수는 사형 집행일이 언제인지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드디어 붙잡은 손을 놓고 떨어졌다.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서며 자꾸만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고재봉은 문 앞까지 갔다. 

그리고 문을 막 나서려다가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전도사님!" 힘 있는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전도사님, 용기를 내세요! 천당에 가서 다시 만나요!" 그가 오히려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이 이후로 나는 고재봉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가 없었다.

 집행일이 되었다. 물론 고재봉은 그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고재봉은 새벽에 일어나서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방안의 모든 사람들을 차례로 붙잡고 위로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격려의 말을 건넬 때마다 같은 방의 일동은 한결같이 고재봉에게 감사의 뜻을 말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앉아서 성경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재봉! 전방" 전방이란 방을 옮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고재봉은 이미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고재봉은 마치 면회 온 사람을 만나러 갈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뚜벅뚜벅 복도를 걸어갔다. 철장 안에서는 "고형!"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고재봉은 철장 앞에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격려를 해주었다.

 "예수 잘 믿어! 나가서 교회 꼭 다니고."

 "고형, 잘 가요"

 구치소 안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평소에 가끔 재판정이나 검찰청에 갈 때 타고 갔던 차와는 다른 군대 병원차가 고재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간수도 같이 탔지만 차안은 아주 조용했다. 어디로 달리는지 고재봉을 실은 차는 상당히 흔들리면서 자꾸만 달리고 있었다.

 고재봉의 머리 속에는 아마 주님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가 생각났을 것이다.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한참 동안 달리던 차가 멈추었다. 어느 군부대 뒷산이었다. 많은 간수들과 군목, 검찰관 그리고 총을 가진 9명의 헌병들이 미리 와서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간수 두 사람이 고재봉을 양 옆에서 부축하고 가서 말뚝에 기대게 하고 밧줄로 가볍게 묶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고재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고재봉의 목소리는 한적한 주위 공간을 울렸다.
 "또 할 말 있는가?"
 "검찰관님, 제가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겨주세요" 고재봉은 침착했다. 그리고는 소리를 높여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차마 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총을 겨눈 헌병들에게 죽어 가는 순간까지 '예수'를 전하던 그가 "주여 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을 부를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으로... 방아쇠가 당겨지고 말았다.
 살인마 고재봉은 갔다. 이 세상의 온갖 근심을 다 털어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뭉쳐진 영혼의 알맹이만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고재봉이 주님을 영접한 후에 구치소에서 전도한 숫자는 무려 1,800명이 넘는다. 그의 죽음을 현장에서 지켜본 간수들과 헌병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재봉의 마지막 광경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천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고재봉이 남긴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내가 일찍이 예수를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이 말은 아직도 내 가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주님의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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