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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순교자 열전, 류정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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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1:49 조회1,8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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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순교자 열전, 류정철 목사

 

 

  류정철은 1903년 12월 25일 황해도 안악군 대해연 새근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유년시절에는 유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읽었고, 청소년기에는 아버지의 배려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숭실중학교에 진학을 해서, 공부를 하는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의료 선교사인 허길례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남감리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인 송도고보로 1920년에 전학을 해서, 공부하고는 1923년에 송도고보를 졸업을 했다. 송도고보를 졸업하고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서울로 유학을 와서는 영어를 공부하던 중, 전국영어웅변대회에서 영예의 1등상을 받기도 했던, 열심파요 매사에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미 학교를 다닐 때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모교인 송도고보에 부름을 받고 잠시 동안 송도고보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두막에서 참외를 먹다가, 갑작스럽게 떨어진 낙뢰로 말미암아 류정철의 두 친구가 순간적으로 즉사하는 것을 보고는, 류정철은 크게 충격을 받고,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경윤을 분명하게 깨닫고, 회심을 한다. 회심을 한 류정철은 1930년에 서울협성신학교에 진학을 하여, 1933년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는, 일본 고오베에 있는 중앙신학교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는 1937년에 고오베 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을 했다. 

     귀국 후에는, 장연읍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다가, 1938년 함흥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함흥 영흥교회와 함흥 중앙교회에 시무했다. 이 때에 류정철 목사는 함경도 지역교회는 물론 만주지역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성령충만한 부흥사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부흥운동의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다가 숭실학교 동창회에 참석하여 애국가를 부른 사건에 연루가 되어서, 해주감옥에서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고, 출옥 뒤에도 함흥 영생학교의 이사를 겸직했고, 1943년 중앙교회를 떠나서 기림리교회를 담임하면서는 평양신학교에 강사로 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크신 섭리로 일제가 망하고, 조국이 해방되자, 진남포 비석리교회에 부임을 해서 목회하면서, 평서노회를 설립하고, 고등성경학교 교장을 겸임하면서, 전국적으로 부흥사경회를 인도하고, 또 농촌교회의 교역자양성과 훈련에 힘을 기울였으며, 교역에서 은퇴한 교역자의 노후생활 대책 사업에 매진하여 상당한 진척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의 허수아비로 소련군대를 힘입고,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을 접수한 공산당은,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양욱 목사를 앞세워,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조직하고는 그 조직을 통하여 수많은 목회자들을 회유하고, 포섭을 했지만, 류정철 목사는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기를 끝까지 거부하고, 묵묵히 교회를 지키면서, 복음적으로 목회하는 일과 복음적인 교역자를 양성하고 훈련하는 일에만 전념을 하였다. 공산당은 6.25 전쟁이 발발하기 2일전인, 1950년 6월23일에 공산당에 비우호적인 우익인사나 종교인들을 대거 체포하여, 진남포 형무소에 수감했다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퇴각하면서, 급해지자 진남포 형무소에 불을 질러서, 류정철 목사도 함께 구금되어 있던 동료목사들이 함께 순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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