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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순교자 열전, 배덕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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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1:47 조회2,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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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순교자 열전, 배덕영 목사

 

 

    배덕영은 1901년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 죽원리에서 배선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송도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5년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고, 1927년에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진학했다. 재학 중에는 고량포 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는, 총리원 간사 및 주일학교 전국연합회 간사 역할까지 겸직을 했다. 하지만 배덕영 목사는 더 공부해야 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깨랫 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을 했다. 배덕영 목사가 종교교육을 전공한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예수 정신으로 교육하여, 인간개조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배덕영 목사는 당시 일꾼이 부족한 조선에 들어와서 주일학교운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구연동화로 주일학교 학생들을 교육할 때, 배더덕영 목사는 이미 시청각교육을 끌고 들어왔고, 주입식 교육 방법이 자리를 잡고 있던 당시 교육환경에 경험적인 교육을 역설해서 주목을 받았다. 배덕영은 전국을 돌아치며 주일학교 교사 강습회를 인도했는데, 그런 이유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통해서 조선에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을 활성화시킨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교회는 배덕영 목사가 주일학교 운동만 하도록 버려두지를 않았다. 일제가 신사참배의 덫을 놓고 조선교회를 극도로 탄압할 때,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에서는 그를 교장으로 초빙을 했는데, 배덕영은 기꺼히 교장에 취임을 했다. 당시 여자고등성경학교라면, 농촌교회 여교역자 양성소였고, 그러니 배덕영은 그들을 통해서 교육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41년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배덕영은 해방될 때까지 5년간 교장으로 일을 하면서, 학교 이름을 성화여자성경학교로 개명을 했는데, 이유는 장로교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와 구별을 하기 위함이었다. 해방이 되자 조선에 있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 것이라는 미명하에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결국은  남북교회의 교류가 끊어지자, 서울에 있는 성화신학교만 믿고, 신학교육을 중단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배덕영은 당시 평양에 있던 박대선, 송정근 목사와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고, 기도한 후에, 평양에 성화신학교를 세우고, 배덕영 목사가 성화신학교의 교장직을 맡았다. 시련이 많으면 은혜도 많다고, 학생들은 구름떼처럼 몰려와 한 학년이 200명씩 강의실은 빽빽히 찼다. 하지만 당시에 배덕영을 가장 괴롭힌 사안은, 강양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고 있는 ‘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라는 압력이었다. ‘기독교도연맹’의 사이비성을 이미 눈으로 보고 있던 배덕영 목사로서는 강양욱 목사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1949년 12월 16일 성화신학교는 600명의 학생들이 채플에 모여 2학기 종강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배덕영 목사가 사도행전 20:25절을 읽고 말씀을 전할 때에, 그 자리에 있던 성화신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은 깜짝 놀랐고, 모두 울었다. 공산당의 신학교 탄압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배덕영 목사는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배덕영 목사는 당신이 예견한대로 1949년 성탄절에 남산현감리교회에서 성탄설교를 마치고 나오다가,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돼 끌려갔다. 배덕영 목사는 정치보위부원에게 끌려가서 여러 가지로 성화신학교를 폐교하도록 강요를 받았지만, 거절을 하고, 숱하게 고문을 당하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서 얼마나 심하게 구타를 당했던지, 나중에는 말하는 능력까지도 잃어버렸다. 이듬해 1950년에 6.25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나서,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해서, 평양을 점령하는 날, 평양형무소 뜰에서 퇴각하는 인민군의 총에  총살형으로 순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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