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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순교자 열전, 최인규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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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2:04 조회1,8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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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순교자 열전, 최인규 권사


 

 최인규는 1881년 11월 15일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북평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감리교인이 되었고, 속장, 유사, 권사로, 교회학교 교장으로 봉사하였고, 1932년 천곡교회를 권화선 속장과 함께 개척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에서 본처 전도인의 역할을 감당했다. 또 자기의 전 재산인 밭 539평과 논 1,369평을 천곡교회 대지로 헌납하였고, 자신이 직접 재목을 운반하다가, 초가 8칸의 예배당을 건축하여, 1933년에 천곡교회 예배당을 주님께 봉헌하였다. 그리고 재목을 다루는 솜씨도 좋아서 강대상을 3개 만들어 옥계, 천곡, 북평교회에 봉헌하였다. 이 같은 헌신적인 신앙생활로 감리교 총리원에서 선정한 모범신자에 선정이 되어, 1938년 10월 표창을 받았다. 최인규는 창씨개명과 일본말 사용과 황국식민서사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자였고, 철저한 복음주의자답게 당시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1940년 5월 일경에 체포되어 심각한 박해를 받았으나, 최인규는 오히려 그런 고난당하는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이라고 기뻐하였다. 함흥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때에는, 놀랍게도 재판관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일본천황도 하나님께서 내신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일로 징역2년을 선고 받았는데, 최인규는 감옥에서도 늘 기쁘게 찬송 부르고, 전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1년 10월 주로 항일투사, 사상범들이 수용되어 있는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고, 그곳에서 가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병을 얻어 갇힌 지 3년이 되던 1942년 12월 16일 대전형무소에서 순교하였다. 최인규의 마지막 유언은 "형제 여러분 믿음위에 굳게 서서 주의 일 하시오. 나중 천국에서 우리 만납시다."였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는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해방 후 1946년 3월 유골을 천곡교회로 옮겼고, 동년 12월 16일에는 순교 4주기를 맞아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해지방에서 정성을 모아 순교비를 건립했다. 순교한지 40년이 되던 1982년 8월 최인규 권사가 섬기던 천곡교회 마당에 순교기념탑이 세워졌다.  

예전에 조선에는 ‘불효, 겁탈, 절도’를 저지른 죄인에게 '북'(똥통)을 지게 하는 관습이 있는데, 일본경찰은 최인규에게 '북'을 지게 하여 망신을 주어 회유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가운데 북을 짊어지고 동리를 돌게 했지만, 최인규는 경찰이 미리 준비한 똥통을 지고 일본 사람들이 시킨 대로 "송정리 사람들아! 나는 바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최인규요."하고 소리치자 군중 속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잘했소! 옳소!" "최인규 대장부!" "최인규 조선인!""최인규 만세!"하고, 최인규를 부르는 고함소리가 골목골목을 누비자 경찰은 오히려 겁이나 사라지고 말았고 '북'을 지우자고 의견을 냈던 애송이 형사는 시골로 좌천되고, 다음 달로 옷을 벗었다. "조센징 형사에게 삼척 경찰서 고등계가 놀아났다"는 소문이 그 때 전국경찰서에 나돌았다고 한다. 최인규는 오히려 그들의 회유전술에 맞대응을 함으로 오히려 그들을 망신을 준 것이다. 일제는 이런 최권사를 매로 다스리려고 허구한 날 고문실로 끌어내어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해라. 그리고 신사에 절하라"하면서 손톱 밑에 대꼬챙이를 박고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고 하루에 5차례나 두들겨 팼다. 최권사가 매맞아 죽는다는 소문을 듣고 최권사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는 송정리 사람들이 삼척경찰서로 몰려가 매를 맞아 정신이 돈것 같으니 치료하게 내달라고 하는 주민들에게 경찰서장은 노발대발하며 "이 쓰레기 같은 족속들 같으니라고 비록 조센징이긴 하지만 예수를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어야 돼. 죽이지 않을테니 돌아가 다 유치장에 집어넣기 전에..,"라고 했다고 한다. 최인규는 간수들이 아무리 말려도 아침저녁으로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다. 그가 부르는 찬송소리는 경찰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신앙을 어루만지는 효과가 있었고, 때로는 죄수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찬송을 따라불러 형무소 예배시간을 방불케 했다

 

 

- 서당교육

- 북평교회출석

- 속장, 유사, 권사 

- 주일학교 부장, 장로역할

- 논과 밭 사재를 털어 천곡교회를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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