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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지혜

순교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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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0:43 조회1,7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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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이야기

 

1. 스데반

 

 사도행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한 최초의 크리스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사도들에 의해 다른 여섯 사람과 함께 집사로 선출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도왔고, 사람들에게 힘 있는 설교를 하여 유대인들을 설복시키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어, 재판관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것을 결정하였다. 이 순간 스데반을 하늘로부터 하나의 환상을 보았고, 환희에 차서 “보라 내가 하늘이 열린 것과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라고 외쳤다. 그 때 유대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그를 그 성에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이 장면을 바울이 보게 된다.

 

 

2. 야고보

 

 사도인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로서 갈릴리 사람이었고, 장로였으며 사도 요한의 형이었다. 그와 동생 요한이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의 제자로 부르셨다. 그들은 그 부름에 기꺼이 응하여 그들의 아버지를 떠나 주님을 따랐다.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주후 44년에 헤롯왕에게 첫 번째로 순교당한 사람이다. 야고보가 죽게 되어 끌려 나왔을 때, 그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한 사람이 그와 함께 형 집행 장소까지 함께 걸어가면서, 죽음에 임한 야고보가 틀림없이 얼굴이 창백하게 되고 두려운 빛을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큰 전쟁을 이긴 승리자처럼 밝고 기쁜 표정을 하고 있는 야고보를 보았다. 이것을 본 거짓 증언을 한 사람은 크게 놀라, 야고보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그 즉시 기독교에 전향하여 야고보와 함께 정죄를 받고 죽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칼로 목 베임을 당하였다. 

 

 

3. 빌립 

 

 사도인 갈릴리 지방에 있는 벳새다에서 출생했다. 그는 아시아 지방에서 설교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었다. 거기서 사도직을 열심히 수행하면서 시간을 내어 브리기아로 여행하였다. 히에라볼리에서 그 지방 주민들이 큰 뱀을 우상화하여 예배하는 것을 보고,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우상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일로 미신으로 돈을 버는 이들에게 미움을 받아 고소당하여 순교 당하게 된다. 순교당하기 전에 투옥되었으며, 지독하게 채찍질 당한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 당했다. 그의 친구 바돌로메가 그 몸을 끌어내려 장사지냈다. 

 

 

4. 마태

 

 마태는 갈릴리 지방에 있는 나사렛에서 출생하였으나 직업이 세리이기 때문에 생활은 주로 가버나움에서 하였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유대지방을 떠나면서 그가 복음을 전파였던 유대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그의 복음서를 히브리말로 기록하였다. 그것은 후에 야고보(더 작은 자)에 의하여 헬라어로 번역되었다. 설교자들을 안수하고 교회를 세우며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는 후에 파르디아로 갔는데 서기 60년경에 거기서 칼로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했다.

 

 

5. 마가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 마가복음의 저자다. 상당한 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추측되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이 있었다. 예수께서 잡혀가실 때 베 홑이불을 쓰고 따라가다가 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을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을 했으며, 베드로와 바벨론에 가서 전도했다. 초대교부의 전설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를 늘 보좌했는데, 특히 베드로의 저술을 도왔고, 베드로의 전도 여행 때 보좌하기 위하여 동행을 했다. 마가는 로마에서 개종자들이 베드로가 한 말을 책으로 쓸 것을 부탁하자, 동의를 하고 복음서를 기술하였다. 마가는 베드로가 순교한 주후 64에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그 후 리비아로 가서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마가는 붙잡힌 후 발이 함께 묶인 채 거리로 끌려 다녔다. 그로 인해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온 밤을 더러운 곳에서 피를 흘렸다. 다음날 마가는 화형에 처해졌다. 4월 25일은 마가의 기념일이다.

 

6. 야고보
 

 이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다(막6:3) 예수의 부활 때부터 믿기 시작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는 주께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교회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개종자들을 위하여 야고보서를 썼는데, 당시에 믿기만 하면 행동이야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그릇된 믿음을 바로 잡기 위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 하여, 그리스도인의 행위의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에게 분개해서 야고보에게 복수할 것을 결정하고, 대중을 선동하여 야고보를 공격하도록 서동하자, 무리가 거리에서 야고보를 습격하여 넘어뜨리고, 돌로 쳐 죽였다.

 

7. 맛디아
 

 맛디아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스승을 배반한 유다의 공석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먼저 돌로 맞은 후 목 베임을 당해 순교하였다.

 

8. 안드레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헬라에 있는 파트레이서 지방 총독은 안드레가 자기가 예배하는 우상을 공격하는 설교를 했기 때문에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안드레는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길이가 똑같은 두 조각의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 끝은 땅에 고정시켜졌다. 안드레는 천천히 죽도록 하기 위하여 못으로 박지를 않고 줄로 묶이어졌다. 안드레는 삼일 동안 내내 십자가에 달려서 무서운 고통을 당하였으나, 계속해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말을 믿기 시작하였고, 총독에게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놓자고 하였다. 그래서 명하여 밧줄을 끊게 하였으나, 마지막 줄이 떨어질 때 그의 몸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9. 베드로
 

 갈릴리 벳세다에서 출생한 베드로는 어부로, 예수님으로부터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진 게바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더욱 가중되어 베드로를  포함한 몇 사도를 죽이려고 했는데, 사도들은 오히려 이 고난을 인내로 참고, 구속자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게여겼다. 헤롯 아그립바가 야고보를 죽이자, 유대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헤롯은 베드로를 죽이려고 투옥시켰다. 하지만 천사가 밤에 와서 베드로를 풀어주고 옥문을 열어 나가게 하자, 헤롯은 베드로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화가 나서 감옥을 지킨 간수들을 사형에 처했다. 그 후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로마교회를 개척하고, 이끌었다. 네로의 박해 때에 9개월 동안 투옥된 후, 재판을 받고, 머리를 거꾸로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과 같은 방법으로 고난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처럼 스스로 고통스 러운 자세를 택하였다고 한다.  

 

10. 바울 

 

 바울은 베냐민 지파출신이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였다. 개종하기 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기독교인을 핍박하는데 앞장을 섰다. 그 후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개종하여 기독교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3차에 걸쳐서 전도여행을 하였고, 그 결과 기독교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는데, 기초를 닦았다.   마지막 로마에 와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네로의 박해 때에 9개월 동안 투옥되었다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1. 유다(야고보의 형제)

 사도요 순교자인 유다는 야고보의 형제인데 보통 다대오라고 부른다. 유다서를 쓴 사람이다. 그는 페르시아에 가서 많은 기적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개종하게 했고, 결국은 권력자들의 미움을 받아서 주후 72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12. 바돌로메
 

 사도요 순교자인 바돌로메는 여러 나라에서 전도하였고, 많은 병고치는이적을 행하였다. 그는 마태의 복음서를 이방 나라의 말로 번역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가 우상숭배자의 칼에 살해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방망이로 맞아죽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13. 도마
 

 사도 가운데 한 사람.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못 믿어 직접 못 자국을 만져 본 사람이다. 파르디아와 인도에서 전도하였다. 그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개종시킨 후, 이방 제사장에게   미움을 받아 창에 찔려 순교했다.

 

14. 누가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다. 바울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역자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가서 많은 전도를 하였다. 바울이 순교할 때 그와 함께 있었으나(딤후4:11) 누가가 자연사를 했는지 아니면 순교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네로 황제의 박해 이후 (주후 64년)

 

○ 마게도니아 사람 아리스타커스 : 아리스타커스는 데살로니가의 토박이다. 그는 바울에 의하여 개종한 후 은장이 데메트리오가 에베소에서 소동을 일으켰을 때도, 바울과 함께 있었다. 그는 바울을 따라 에베소에서 그리스로 갔다. 그들은 거기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확신시켰다. 그들은 선교를 위하여 아시아 여러 곳을 여행하였고, 유다에도 얼마 동안 머물면서,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이후에 아리스타커스는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다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붙잡혀 바울과 같이 고통을 당하다가 네로에게 참수를 당하였다.

 

○ 트로피모 : 트로피모는 에베소에서 태어나 바울에게 전도를 받아 개종을 했다. 바울을 따라서 선교여행에 참여하였다.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 동행했는데, 그 때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 트로피모를 성전에 데려왔다고 오해를 해서, 바울을 죽이려는 소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예루살렘의 치안을 맡았던 천부장 루시아의 개입으로 바울은 생명을 건졌다. 그 뒤에 트로피모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에 갔다가 전도를 위하여 스페인으로 갔다. 바울은 그를 스페인 지역의 감독으로 삼아 아를 시에 남겨두었다. 약 1 년 후 트로피모는 아시아에 있는 바울을 다시 방문하고,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바울이 순교당하는 장면을 보고, 그것을 자신의 죽음의 전주로 여겼다. 트로피모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붙잡혀서, 네로에게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 고린도의 출납 공무원 에라스도 ; 에라스도도 바울에 의하여 개종을 했다. 그는 개종과 동시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바울을 따랐다. 그래서 에라스도는 개종 이후부터 마케도니아교회를 위하여 머물 때까지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참하였다. 마케도니아에서 에라스도는  교인들에 의해서 마케도니야 지방의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에 에라스도는 빌립보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방인들에게 진진한 핍박을 받고, 결국 그곳에서 순교했다. 
 

 

○ 요셉 : 요셉은 보통으로 발사바스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가롯 유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한 사도를 뽑을 때, 사도들은 요셉과 맛디아를 두고 제비를 뽑았고, 맛디아가 뽑혔다. 그 후에 요셉은 유대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결국 요셉은 유다에서 자신이 개종시킨 많은 교인들과 함께 핍박을 받다가 순교하였다. 
 

 

○ 다마스커스의 감독 아나니아 : 사도행전에 의하면 아나니아는 바울이 개종할 때에, 바울에게 비친 밝은 빛으로 인하여 바리새인 사울이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주님의   명을 따라서 사울을 찾아가서 기도해줌으로써, 다시보게해준 사람으로, 다마스커스 지역에 잇는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알려진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도자였다. 아나니아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 그룹 가운데 70인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다마스커스 시에서 순교를 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다마스커스의 교회당이, 아나니야의 매장지 곧 무덤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은 그 후 회교(터키)사원으로 바뀌었다.  

 

 

○ 에베소 감독 디모데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에베소의 감독인 디모데는 소아시아에 있는 루스드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방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복음의 교훈대로 가르침을   받았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도착하자마자 디모데를 안수하여 자기 일의 동역자로 삼았다. 그는 디모데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말하였고, 또 그는 마음으로나 정신으로 그에게만큼 참되게 연합된 사람을 아무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 마케도니아로 가서 시라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전력하였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로 가자, 디모데는 혼자 남아서 이미 개종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견디어 갈 수 있게 하였으며, 또 다른 사람들을 참된 신앙으로 인도하였다. 사도 바울은 결국 사람을 보내어 디모데를 아테네로 오라고 하였고, 그 다음은 데살로니가로 오라고 하였다. 그것은 만연되어 있던 무서운 박해 기간 동안에 고통받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신앙을 붙잡아 주기 위해서였다.
디모데는 그의 임무를 이행하고 아테네로 돌아와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쓰는데 도왔다. 그리고 그는 사도 바울을 따라 고린도와 예루살렘과 에베소로 갔다. 디모데는 열심과 능력을 다하여 그가 맡은 목회의 일을 이행하고 사도 바울을 따라 여러 곳으로 여행한 후 겨우 30의 나이로 에베소 감독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두 개의 놀라운 편지에서 그의 행동에 적당한 지침을 주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된 동안 그는 디모데가 자기에게 올 것을 바랐다. 그는 후에 에베소로 돌아와서 97년까지 교회를 관리하였다. 그 때 이방인은 한 축제를 거행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 축제의 주요 축하 행사는 사람들이 손에 지팡이를 들고 마스크를 쓰고 그들의 신상을 들고 거리로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디모데는 그 행렬을 만났을 때,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비방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화가 나서 막대기로 그를 넘어뜨리고 무섭게 내리쳐 이틀 후 그는 그 상처 때문에 죽었다.

 

○ 예루살렘 감독 시모온과 다른 순교자들
 

예수의 일로 고통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 예루살렘 감독 시모온과 로마 원로원의 딸 플라비아가 있었다. 시모온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플라비아는 폰도로 추방되었다.
도미시안 황제가 통치할 때 로마에서 뛰어났던 크리스천인 니고데모는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봉사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였고, 감금된 자들을 방문하였다. 이 일 때문에 그는 크리스천으로 붙잡혀 언도를 받고 매맞아 죽었다. 프로타시오와 게르바시오는 밀란에서 순교를 당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트라얀 황제의 제 3차 박해(주후 108년)


○ 포카스와 다른 사람들의 잔인한 고문 : 본도의 감독인 포카스는 그리스도인이 넵튠신에게 제사드릴 것을 거절했다고, 신자들을 처음에는 끓고 있는 석회 굽는 솥 속으로 던져졌다가 거기서 꺼내서 끓는 물통에 다시 던졌다. 안디옥 감독인 이그나시우스도 역시 같은 때에 사형을 당했다. 이그나시우스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그리스도의 팔에 인도되어, 제자들에게 무흠하고 겸손한 본이 된 사람이라는 전승이 있다. 이그나시우스는 사도 요한에게서 복음을 받았고, 대단히 진지하게 목회를 하고, 복음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 앞에서 그리스도교 믿음을 담대히 변호하였고, 그것 때문에 투옥이 되어,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잔인하게 매를 맞은 후에 기름적신 나무에 묶이어 화형을 당했다. 그리고도 그의 몸은 도구로 난도질을 당했고, 버려져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다. 이그나시우스는 자신이 순교할 것을 예측을 했는지, 서머나의 감독 풀리갑에게 편지하기를, “나는 하나님께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짐승에게 와서, 그들이 큰 입을 벌리고 와, 지체 없이 나를 삼키는 것에 준비가 되도록 기도한다.”라고 했다.

 

○ 한 과부와 그녀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함. : 심포로사라는 과부는 그녀의 일곱 아들과 함께 트라얀 황제에게서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이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절하자, 황제가 화가 나서, 여인을 헐큘리스의 신전으로 끌어다 놓고는, 거기서 그녀는 심하게 매를 맞고, 얼마동안 그녀의 머리털로 묶이어 매달렸다. 그런 후에 큰 돌 하나를 그녀의 목에 매달아서 강물 속으로 던져서 죽였다. 그녀의 아들들은 일곱 장대에 묶이어 밧줄과 도르래로 끌어올려졌기 때문에 그들의 수족은 탈골이 되고,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무서운 고문도 그들의 믿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국 아들들은, 장자 크레센티오는 목을 단도로 찔려서 죽었고, 둘째 아들 유리안은 가슴에, 셋째아들 네메시오는 심장에, 넷째 아들 프리미티오는 복부에, 다섯째 아들 욱스티스는 등에, 여섯째 아들 스탁테우스는 옆구리를 각각 단도로 찔려서 죽었다. 가장 나이 어린 아들인 유게니우스까지도 톱질을 당해서 죽었다.  

 

 

○ 로마의 감독 알렉산더와 다른 사람들 : 로마의 감독 알렉산더는 직임을 10 년 동안 감당한 후에 순교했다. 그리고 알렉산더를 보좌했던 두 집사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순교했다. 로마의 장군 유스타키오는 황제에게서 우상숭배의 제사에 참여하여, 승전한 것을 축하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그는 그런 황제의 명을 거절했다. 황제는 그가 복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화가 나서, 그토록 용감하고 유능한 장군을 지난날 그가 봉사한 것은 기억하지 않고, 장군과 그의 전  가족을 함께 처형했다. 그리고 파우스테니스와 요비타라고 부르는 두 형제가   순교를 당할 때에, 그들은 수많은 고문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자, 외교인인 칼로세리오가 감격하여,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위대하시도다!”라고 외쳤고, 그것 때문에 칼로세리오는 그리스도인이 죽임을 당하는 현장에 구경을 하러 모였던 무리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 하드리안 황제 때의 박해


 트라얀 황제가 죽고 하드리안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에, 아테네의 감독 콰드라토는 그리스도인을 집요한 박해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하드리안 황제에게 자비를 호소하게 되었는데, 하드리안은 콰드라토 감독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는 것을 경청한 후에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중지시켰다. 하드리안은 어떤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종교나 신앙적인 가치관 때문에 처형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공포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세력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여러 가지 거짓 증거를 끌어 모아서는, 신앙을 공격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은 국가나 시민의 권한에 반대한다는 죄목으로 신자들을 고소하고, 박해를하였다. 후에 로마의 감독이 된, 아니세토와의 사이에서 엘류테리오라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을 혼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한,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 여인 안티아도, 오히려 하드리안 황제 때에 아들과 함께 의연하게 믿음을 지키다가 박해자들에게 참수형을 당했고, 유스도와 파스토르라는 형제도 스페인의 한 도시에서 같은 운명을 당했다. 하여간 하드리안 황제는 죽기 수년 전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도록 명령하고 138년에 죽었다.

 

○ 안토니누스 피우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하드리안 황제의 뒤를 이은 황제였다. 그는 좋은 군주였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덕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피우스는 즉위하자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나는 칙령을 내렸다. “이제 이후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 이외에 다른 죄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풀려날 것이고, 고소한 자들은 벌을 받을 것이다.” 이 직령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중지시켰고, 그리스도인은 피우스 황제가 통치하는 동안, 고통을 당하지 않고, 잠시 동안의 평안을 누렸다. 그러나 원수들은 기회만 있으면 그리스도인을 해치려고 하였다. 피우스 황제는 수천의 원수를 벌하기 보다는 차라리 죄 없는 한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할만큼, 경건했고, 선정을 베풀었다.

 

○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
 

아테네의 한 극장에서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좀 늦게 극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초만원이라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 때   두리번거리고 서 있는 노인을 본 아테네인들은, 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여기저기서 수군댔다. 하지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이는 없었다. 노인은 천천히 외국인석으로 다가갔는데, 그러자 스파르타인들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리를 내주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박수를 쳤더니, 노인이 말하기를, “아테네인들도 선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 선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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