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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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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1:13 조회1,7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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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

 

'예수 천당! 예수 천당!' 이라고 외치며, 1900년대의 평양의 새벽 거리를 요란한 소리로 깨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최 권능 목사다. 30이 넘어 예수를 영접한 그는 예수 사랑에 취해 밤낮으로 이같이 외치며 돌아다녔다. 무지와 놀음과 술, 우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일깨우기 위해서 그는 새벽이고 밤이고 없이 부지런히 ‘예수 천당’을 외쳤다. '목사님, 밤낮 예수 천당만 외치지 마시고 다른 말씀도 좀 하셔요.'하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줄곧 예수 천당만 외쳤다.
   본명은 최봉석(崔鳳奭). 권능(權能)은 전도 열정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1869년 평남 강동에서 태어났다. 부친 최상린은 미곡창장(곡물 창고 관리인)으로 생활은 넉넉한 편이었다. 여섯 살에 한학을 공부하여 4서5경을 떼었고, 16 세 때에는 평양 감영 관찰사의 통인(잔심부름꾼)으로 일하였다. 그는 성품이 착하고 강직하여 억울한 사람의 송사를 잘 도와주었으며, 관찰사로부터도 신임을 얻었다. 23 세 때에 그의 아버지가 현감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한 일로 현감이 장형으로 다스리자, 성격이 괄괄한 최봉석은 분개하여 “현감이면 다냐?” 하면서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러 현감을 구타하는 사건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최봉석은 30세 때 국고금 3만 냥을 횡령하였다는 죄로 6개월 간 투옥된 후, 평북 삭주로 귀양을 갔는데, 평양감사의 배려로 정부의 광산을 관리하는 별장직을 맡아서, 어려움 없이 지내던 중 그곳 좌수 김석유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술도가 전매로 돈을 모으려 하였으나 남이 손을 대지 못하도록 독점하는 데 반발한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 난장판을 벌여서, 할 수 없이 30리 길을 뛰어 야반도주하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광 사업마저 실패하여, 빚이 늘어나 어쩔 수 없이 부인과 두 아들을 이끌고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 산후조리를 못해서 고생하는 아내의 약을 지으러 삭주의 유명한 백유계 한의원에 갔다가 백유계로부터 전도를 받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모든 사람의 죄를 씻어 주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믿을 수 있을까요?' '아무렴요. 되고말고요.' 하지만 최봉석은 바로 믿지 못하고, 사업 실패로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중 감리교 선교사 노블(W.A.Noble.魯普乙) 목사에게 붙잡혀서 반나절이나 전도를 받고 나서 믿기로 결심한 후, 3일 밤을 골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다. 그는 불덩이가 가슴에 떨어져 타죽는 꿈을 꾸고는 곧바로 노블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전도하였다. 그가 삭주로 돌아갔을 때는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뀌어 예수에 미친 사람처럼 된 뒤였다. 그는 가정이나 처자도 버려두고 교회와 전도에만 열중하였다. 보다 못한 장인이 권고하였으나 소용이 없었고 마침내는 아내와 생이별을 하였다. 두 아들은 하나씩 나누어 맡기로 하였다. 얼마 후 아들을 돌볼 사람이 있어야겠기에, 그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부득불 과수 조봉주 집사와 재혼하여 4 남매를 두게 되었다. 최봉석은 1905년 삭주교회의 집사가 되었고, 그해 후에 33인 중 한 사람이 되는 양전백의 추천으로 매서인(전도하면서 책을 파는 사람. 권서(勸書)라고도 함)이 되어 벽동, 강계, 위원, 초산, 자성, 창성과 압록강 건너 통화현까지 각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성경, 찬송가, 기독서적을 팔면서 전도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져 4년 동안 7 고을에 30여 교회가 세워졌다. 평북 일대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907년, 최봉석은 예수를 믿은 지 5년 만에 벽동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전력을 다하는 성격인지라 전심으로 헌신하였다. 특히 교인들의 성결을 주장하여 금주는 물론, 담뱃대를 모아 꺾어 버리고, 상투를 강제로 자르고, 주일성수를 못하는 사람은 세례를 주지 않았으며, 첩을 둔 자는 원입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고, 우상 제물을 금지하는 등 철저한 성결 생활을 강조하였다.
   최권능은 1908년 40세 때에 목사가 되고자 마펫(Moffett 馬布三悅)이 교장으로 있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너무나 전도에 열심해서 공부를 하지 못해 2년을 유급하고, 7년 만에 졸업하였다. 그래서 ‘시험에는 성령도 쩔쩔 매더라.’라는 말을 남겼다. 1927년 최봉석은 평양 산정현교회 전도목사로 부임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수안, 곡산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하였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전도하였고, 한편 서문 밖 교회 옆에 있는 인덕서관 2층에 전도관을 차리고 전도운동을 펼쳤다.

1938년 9월, 장로회총회는 일제의 강압을 못이겨 신사참배를 결정하였다. 이 때에 최봉석 목사 또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말하기를, '신사참배는 죄요. 교회는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일본의 태양신은 하나님의 원수요. 신사참배를 가결한 총회는 사탄의 집단이다.', '내가 앞장서지요. 매는 몽땅 내가 혼자 맡아서 맞을 테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최 목사를 일제가 놓아둘리가 없다. 경찰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최권능은 평북 선천군 신미도로 피신해서는, 거기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하다가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그에 대한 죄목은 독립운동, 일본천황 무시와 하나님 찬양, 미국인 선교사와 비밀공작,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 임함 강조, 교인 선동과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민심소란 죄 등이었다. 그는 주기철, 채정민, 한상동, 이기선, 고흥봉, 최덕지, 안이숙, 주남선 등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신사참배 반대운동자들과 함께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어 6년간 옥고를 치루면서 옥중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취조를 당할 때에도 '예수 천당!'을 외쳤으며, 같은 감방 안의 일반 죄수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치면서 전도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75 세였다.
   1944년 3.1절을 기해 최 목사는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금식이 끝나는 날, 고문의 후유증과 쇠약함으로 인하여 쓰러졌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평양 기독교 연합병원에 입원하여 장기려 박사에게 치료를 받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1944년 4월 15일 별세하였다. 유해는 돌박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하였다. 해방 후 1946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하였다.
   황해도 곡산군에서 화전민을 찾아갔더니 집들은 드문드문하고 사람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양지 바른 산비탈에 뒹굴면서 소리쳤다. '아이구 배야. 사람 살려!', 최봉석의 목청이 워낙 큰지라,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들었다. '여러분, 사실은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여러분이 앞으로 지옥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서 한번 해본 소리요. 여러분, 제발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뭐? 예수 믿으라구? 별 떡대가리 같은 소리 다 듣겠네.'하면서 욕을 해댔다. 최 목사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옳은 말씀이외다. 예수가 바로 떡대가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입니다. 떡 중의 떡이지요. 그 떡 중에 제일 머리가 되는 떡대가리입니다. 이 예수를 믿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차츰 최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동경대학 출신으로 설교 잘 하고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채필근 목사가 평양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이를 본 최봉석 목사가 얼른 뒤로 다가가서 '예수 천당!'하고 외쳤다. 채 목사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최 목사였다. 최 목사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 '목사님, 저 채필근 목사올시다.', '누가 채필근 목사인 줄 모르나? 목사는 목사인데 벙어리 목사지.'하고 책망하였다. 최 목사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벙어리라고 책망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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