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뉴톤 > 믿음과 지혜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믿음과 지혜

존 뉴톤

페이지 정보

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2:22 조회1,699회 댓글0건

본문

존 뉴톤

 

탕자처럼 돌아온 존 뉴톤

 

 존 뉴톤은 1725년 경건하고 체험있는 그리스도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뉴톤의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들교육에 드렸습니다. 많은 기도와 눈물로 아들을 돌보며, 그를 목사로 기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뉴톤이 여섯 살 때 어머니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뱃사람이었고 뉴톤의 어머니가 죽자 그 다음해에 곧바로 재혼을 했습니다. 이후부터 뉴톤의 행실이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뉴톤은 열 한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항해를 하게 되었고, 신앙생활에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그래서 아주 나쁜 영향을 받았다. 한 번은 친구와 같이 군함에 승선을 하기로 했는데, 뉴톤이 약속시간에 너무 늦게 나가서, 승선을 못했고, 예정대로 떠난 배는 먼 바다에 나가서 전복이 되어 친구와 많은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뉴톤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 후부터 뉴톤은 경건한 생활을 하고자 노력했다. 뉴톤은 자주 금식하고, 채식을 하고, 많은 시간을 성경 읽기와 묵상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길지 못했고, 뉴톤은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창기들과 어울렸고, 항해 중에는 못된 선원들과 어울리며 악행을 일삼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뉴톤은 군인이 되어 군함에 승선케 되었고, 사악한 행동을 낙과 습관으로 삼았다. 한 때에 그는 탈영을 했다가 붙잡혀 중범죄자가 되기도 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도 그는 죄를 지었으며, 다른 사람까지 유혹하고 타락시켰다. 뿐만 아니라 15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노예무역상의 일꾼으로 일했다.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저버린 행동, 타락한 삶을 살던 그는 포로생활 기간동안에 겪은 굶주림과 헐벗음 그리고 마치 노예와 같은 비천한 삶으로 말미암아 많이 겸손해졌다. 그 때부터 뉴톤은 다시 여가 시간을 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주님께 자비와 지도를 간구하는데 보냈고, 신약성경을 통독하면서 몇몇 구절들로 인해 큰 감동을 받는다. 특히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너무나도 자신을 예시(豫示)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탕자를 받아들인 아버지의 선하심, 아들을 맞으러 달려 나가는 모습은 뉴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뉴톤은 계속하여 많은 기도를 드렸고, 자신이 신자(信者)로 죽을 수만 있다면 먹을 것이 없어 죽는 것까지도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복음의 진리와 복음의 적합성에 관하여 만족할만한 증거를 얻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고 육체로 나타나셨다."는 지고(至高)한 원리를 확신한다. 뉴톤은 고백하기를, "주님은 한 놀라운 일을 이루셨고 나는 더 이상 불신자가 아닙니다. 나는 즐거이 과거의 불경(不敬)을 버렸고, 진지하고 기꺼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제 뉴톤은 잘못 보낸 과거의 삶을 뉘우쳤고,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었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생활은 쉽게 변화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헛되고 어리석은 말이었고, 자주 마음속에서 갈등이 있으면, 급히 타락의 길로 떨어져 하나님을 모독하는 점은 과거와 거의 다름이 없이 악했다. 그는 끔찍한 욕설꾼으로 매일 새로운 욕설을 만들어냈다. 더우기 노예선에서 노예와 같이 일했던 그가, 이제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노예를 사고 팔았다. 하지만 뉴톤에게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다. 뉴톤은 노예무역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폭풍우를 만나서, 배가 파선될 지경에 달했다. 그 때 뉴톤은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라고 기도했고, 임박한 죽음 앞에서 성경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의 영혼의 종말에 대해서 두려워했다. 그리고 뉴톤은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을 기다렸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치 못하는 뉴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고, 뉴톤의 배는 폭풍우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뉴톤은 이를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로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톤은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없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그의 기도는 까마귀 울음소리 같았지만,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배가 파선된지 4주만에, 뉴톤과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었다. 이 일을 통해 뉴톤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뉴톤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고, 뉴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뉴톤은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내가 수원(水源)으로부터 신선한 능력과 은혜를 계속 공급받지 않는 한, 나 스스로는 한 시간도 서 있을 수 없는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일깨워주셨다."라고 했다. 마침내 그는 노예사업을 포기하고 1750년 2월 어머니의 친구의 딸인 메리 케틀렛과 결혼을 한다. 뉴톤은 결혼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합당한 때-주께서 뉴톤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후-이루진 것으로 믿었다. 후에 뉴톤은 리버풀에서 조수(潮水) 측량사로 임명되었는데, 측량기사 자리는 그가 원하던 자리였고, 그 자리는 뉴톤에게 많은 여가와 자유를 주었다. 뉴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이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을 하곤, 이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이런 목적에 맞추려고, 신약과 그리이스어 역(譯) 구약성경(SeBt-uagint)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이스어를 충분히 배웠다. 어느 정도 헬라어에 진보를 이루자, 뉴톤은 히브리어를 배웠고, 히브리어를 배운지 2년 후에는 시리아어 공부를 시작하여 성경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렇게 해서 뉴톤은 라틴어, 영어, 그리고 배에 있을 때 혼자서 배운 불어로 신학서적을 계속 읽어 나갔고, 2∼3년 후에는 주로 글을 쓰는데 시간을 보내서, 성경 외의 다른 책들을 많이 읽을 시간은 갖지 못했다. 뉴톤은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라는 갈라디아서 1:23∼24절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공중 앞에서 증거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이 희망 때문에 성경을 계속적으로 연구했다. 그리고 뉴톤은 좀더 광범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목사가 되라고 희망하는 많은 이의 요청에 따라 1758년 요크의 대감독에게 목사안수 받기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후 1764년에, 뉴톤은 오올리의 목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고 오올리 교구의 목사가 되어 15년간 목회사역을 감당하였고, 자신의 마지막 일에 대한 감회를 말하기를, "가장 무지하고 가장 비천하고 가장 무참히 버려진 노예 중의 하나인 내가, 아프리카 연안의 참혹한 생활로부터 건지워져 마침내 세계의 도시 중에서도 으뜸 가는 교구 목사로 지명된 것은 여기서 그런 은혜를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 은혜의 특이한 실증과 기념으로 서기 위함이요, 역사 설교 그리고 저술을 통하여 널리 세계에 그 은혜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것은 결코 내가 자격이 있어서 되었다고는 평가할 수 없는 사건이다." 라고 했다. 실제로 이런 감회는 그의 생각 가운데 너무도 깊이 들어 있어서 단 하루도 그 기이한 사건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는 법이 없었다. 1780년 그는 런던의 성 메리울노쓰 교회로 옮겨서 생을 마칠 때까지 28년간을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목회를 하는 동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성도에게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였다. 뉴톤이 팔십이 넘자 그의 친구들 중에서는 그가 공중 사역을 너무 오래 계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 "그만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라고 물을 때 그는 음성을 높여 단호하게 말하기를, ‘나는 멈출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옛 아프리카의 신성모독자가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입을 다물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했다.
뉴톤은 죽기 한달전인 1807년 12월 21일에 말하기를, "죽는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육체와 마음이 쇠할 때 우리 마음의 힘이요, 우리의 기업으로써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나는 내가 의뢰한 분을 알며 그 분이 내가 그에게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후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니 그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입니다."라고 했다. 뉴톤은 1807년 12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121-812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2-43 / TEL : 02-716-0202 FAX : 02-712-3694
Copyright © leeyongdo.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