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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휫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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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2:26 조회1,7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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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휫필드

 

탁월한 옥외 설교가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 는 1714년 12월 16일 글로스터에 있는 벨이라는 여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부친을 여의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젊은이가 빠지기 쉬운 모든 죄를 범했다고 했다. 그의 예민한 양심은 죄책을 느꼈고, 결국은 일하던 술집을 나와 옥스퍼드로 갔다. 18세에 옥스퍼드의 팸브록 칼리지에 근로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수학하면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를 만났고, 엄격한 생활방식(method) 때문에 Methodists라고 불렸던 경건한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옥스퍼드에는 신앙적으로 열심이 있는 학생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경벌레들', '성경꾼들', '성찬증시자들', '형식주의자들', '홀리클럽'등으로 불렸다. 

그 모임에 속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긴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을 실천했다. 그 모임의 한 사람인 찰스 웨슬리가 휫필드의 신앙적으로 열심히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이것이 두 사람이 우정을 갖게된 단초이다. 홀리 클럽의 영향 아래서 휫필드는 그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책 한 권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사람 헨리 스쿠걸이 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책이다. 그때까지 휫필드는 '중생'의 기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그는 선행으로서 천국의 도상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휫필드는 지금까지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1735년에 회심하고 1736년부터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했다. 1736년은 그의 부흥운동에서 중요한 해로, 6월 20일 그의 나이 21세에 글로스터의 감독 벤슨으로부터 안수를 받고, 일주일 후 6월 27일에 성모 마리아 크립트 교회에서 처음으로 설교하였다. 8월에는 런던의 비셥스게이트에서 큰 군중을 모아 놓고 집회를 열었고, 런던타워 예배당의 대리목사로 봉직하였다. 두 달 후 햄프셔에서 교구목사로 일하기 시작하였고, 죤 웨슬리의 영향을 받아 죠지아 선교에 대한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31년 1월 브리스톨에서 첫설교를 하고 1737년 5월까지 이곳에서 야외설교를 계속했다. 휫필드는 광부 등 가난한 자녀를 위해서 존 웨슬리와 함께 킹스우드 학교를 설립했고, 웨일즈 장로교회로 불리는 칼빈적 메도디스트 교회의 지도자가되었다. 그는 1743년에 이 교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의 영향은 스코틀랜드를 거쳐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1740년 이후 휫필드가 미국 교회에 끼친 영향은 1735년 제1차 대각성운동을 능가하는 제2차 대각성운동이었다. 그는 미국을 일곱차례 방문하였으며 대서양을 일곱 번이나 건너는 선교의 열정은 그가 34년간 18,000회 이상의 설교를 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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