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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후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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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2:27 조회1,8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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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후쓰

 

보헤미야의 종교개혁 지도자

 

 드디어 수도원 독방에서 연금된 지 수개월 후 1415년 4월부터 심문을 거듭하다가 6월 5일에 종교회의 앞에 불려져 나갔다. 이때는 후쓰를 체포했던 교황 23세도 그곳에서 도주했다가 죄수의 몸으로 다시 붙잡혀 온 때였다. 이때 종교회의 지도자들은 요한처럼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정통신학을 수호하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쓰가 종교회의에 순종과 이단사상을 철회한다고만 하면 방면해 주겠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후쓰는 회의 앞에 쇠사슬로 결박당한 채 서 있으면서 자기가 이단 사상을 철회한다고 하면 자기가 과거에 이단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결과가 됨으로 이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들 앞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을 길이 없을을 알고 후쓰는 담담하게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공의로우시며 유일한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항소하리라. 나는 그분의 손에 처분을 맡긴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 증인들이나 오류에 가득 찬 회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와 공의 위에서 모든 개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쓰는 다시 감옥으로 보내졌다. 많은 이들이 후쓰를 따라가며 회의의 권위만 인정하면 방면될 것이므로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였다. 하지만 후쓰는 이를 거절했고, 그 결과 77월 6일 성당으로 다시 끌려왔다. 그의 몸에 사제복을 입혔다가 형리들이 사제복을 사정없이 찢어놓았다. 그리고 후쓰의 머리를 삭발시키고, 그 머리에다 악마의 그림을 그린 종이관을 뒤집어 씌웠다. 후쓰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자기 저작들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후쓰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시편을 낭송하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들었다.

후쓰는 마지막으로 기도하기를, "주 예수님, 바로 당신을 위하여 이처럼 잔인한 죽음을 아무런 불평없이 감당합니다. 부디 나의 적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 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후쓰는 1515년 소위 콘스탄스 종교회의 운동자들에 의해서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하고 말았다. 사형집행관들은 후쓰를 화형한 재를 모아서 호수에 뿌려버림으로 이단의 훈적을 남기지 못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몇몇의 체코인들은 후쓰가 사망했선 자리의 약간의 훍을 파 가지고 체코롤 돌아가 콘스탄스가 행한 죄악을 기념했다. 아울러 보헤미아 모든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콘스탄스종교회의를 거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452명의 보헤미아 귀족들이 모여 자기들은 후쓰의 신앙에 동조할 것을 엄숙하게 맹세한다. 그리고 후쓰가 주장한 대로 자격이 없는 교황에게는 복종할 필요가 없음을 선포하였다. 이렇게 하여 후쓰의 순교는 전 보헤미아 국민들을 똘똘 뭉쳐 저항케하는 커다란 개혁혼을 불어넣어 주었다. 보헤미아 지방은 후쓰파로 일색이 되었다. 후쓰파는 두 파가 있었다. 하나는 온건파인 '호렙파들'(Horebites)이 있고, 또다른 극단파인 '타볼파'(Taborites)가 있다. '타볼파'는 프라하 남쪽 '타볼'(Tabor)고원을 그들 근거지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타볼파라고 하였다. 이때 보헤미아 국왕 '원체슬라스'(Wenceslas)가 죽었다. 그의 뒤를 이은 합법적 후계자는 콘스탄스에서 후쓰를 저버렸던 독일황제 지기스문트였다. 보헤미아인들은 지기스문트에게 4개 헌장으로 구성된 신앙의 자유를 요구했다. 이에 지기스문트 군대는 프라하 인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타볼파'의 지휘자인 '존 지스카'(John Zizka)는독일 군대를 대파시켰다. 두번째 전투에서 지기스문트 잔류병력은 완전히 궤멸당하였다. 1년 후에 지기스문트는 10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다시 보헤미아를 공격했으나 다시 패배하고 만다. 1년 후 다시 쳐들어온 군대도 물리치고, 1427년 1431년에 황제와 교회의 연합군들이 보헤미아를 쳐들어갔다가 다 패하고 만다. 보헤미아인을 무력으로 정복할 수 없으므로 바젤회의에서 회의주의자들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수습한다. 보헤미아인들은 그 후에도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이들의 정신적 유산은 종교개혁과 모라비안 형제단으로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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