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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2:40 조회1,7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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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중흥의 아버지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농촌운동가들과 신학자들이 그 이름을 외치고 있는 인물이다. 1783년 9월8일 덴마크의 우드비에서 태어난 그룬트비는 “힘이 아니라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외치며 국민 성격개조 운동과 농촌부흥운동을 벌여 오늘의 선진 낙농국가인 덴마크의 기초를 마련했다. 덴마크라고 하면 지금은 누구나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 부유한 나라를 떠올리지만 그룬트비가 살던 19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대륙 북부의 곡창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을 넘겨준 상태였다. 남겨진 스칸디나비아 땅은 북해와 발트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리며 돌과 모래,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였다. 국가 경제는 당연히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중앙은행이 파산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덴마크 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다. 어두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늘어났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는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하는 의식개혁운동을 주창했다. 그 바탕은 루터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이념이었다. 그룬트비는 또 덴마크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룬트비는 ‘국민의식 구조가 개혁돼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덴마크 역사상 최초의 성인기숙교육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이것이 국민고등학교다. 기숙학교는 자발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생활을 통해 소극적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갖도록 가르쳤다. 국민고등학교는 덴마크 전역으로 확산돼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국민고등학교를 마친 사람들의 삶을 목격한 덴마크 국민 사이에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룬트비가 내세운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3애(三愛)정신은 곧 덴마크 국민의 구호가 됐다. 그 정신은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다. 기적도 없고 요행도 없다. 오로지 노력하는 사람만이 거둘 수 있다는 자연의 진리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에게 깨우쳐준 것이다. 그룬트비는 낙농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전국의 목사들을 먼저 설득했다. 그룬트비는 목사들이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전령이 돼야 한다며 3애정신과 함께 낙농기술을 가르쳤다. 각 지역의 교회는 낙농기술을 가르치는 주민센터가 됐다. 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운동이 확산됐다. 덴마크의 위대한 중흥이 시작됐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도 그룬트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새마을운동의 초기 주창자들은 그룬트비의 사상과 그의 실천적인 성인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활용했다. 새마을운동의 의식개혁 및 품종개량 운동 등이 모두 그룬트비의 활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도 그룬트비의 3애정신과 비슷한 구호를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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