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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삼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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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2:43 조회1,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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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삼(趙德三, 1867-1919)장로

 

유광학교 세우고 교회사랑, 나라사랑, 자는 德元, 漢陽 趙씨 良節公派 23대 손으로, 1867년 금산에서 태어났다. 당시 행정구역으로 김제군(金堤郡) 수류면(水流面) 금산리(金山里)에는 몇 개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팥정리 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을 두정리(荳亭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금산리 마을에는 갑부로 알려진 조덕삼(趙德三, 1867~1919)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 조정문(趙政文)은 평안도 평양(平壤)에 살았으며, 그의 아버지 조종인(趙鍾仁)때 비로소 금산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조덕삼의 5대 할아버지는 평양(平壤)을 근거로 해서 중국 동북부지방을 무대로 삼고 무역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그의 아버지는 많은 유산을 안고 금광업을 해야 한다면서 아들 조덕삼을 이끌고 전라도 땅 김제군, 금광이 많고 사금(沙金)이 많이 나온다는 금산(金山)에 자리를 잡고 이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 금광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한편 중국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했던 집안답게 김제를 중심으로 완주(完州), 정읍(井邑), 태인(泰仁), 익산(益山), 부안(扶安), 고창(高敞), 전주(全州) 등을 무대로 사업을 하여 더 많은 돈을 모았던 집안이다. 그 많은 돈으로 김제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여 농사로 기반을 내렸다. 김제 지역에서는 내노라 하고 큰 소리를 하고 지낸 집안이다. 조덕삼은 젊었을 적부터 성격이 호탕하고 붙임성이 좋아 지나가는 나그네도 하룻밤을 자고 가자하면, 사랑채에 재우며 배불리 얻어먹고 떠났던 나그네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김제는 원래부터 땅이 넓고, 금광으로 유명해서 전국에서는 내 노라하고 큰 소리 쳤던 사람들이 자연히 금산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여기에 래세지향적(來世指向的)인 미륵(彌勒) 불교의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금산사(金山寺)가 있어서 자연히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더욱이 미륵의 화신으로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이루기 위해서 왔다는 강일순이라는 고부(古阜) 사람이 이곳으로 와서, 천지개벽을 일으켜야 백성이 살수 있다면서 증산교(甑山敎)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강일순이 1909년 사망하자, 그를 따랐던 증산교 신도들이 제각기 여러 갈래로 나뉘어 졌다. 그 분파가, 지금도 금산교회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보천교를 비롯해서 태을교, 용화교, 삼성교, 태극도, 인천교, 무을교, 임무교, 선도교, 금강도 등 100여개가 넘는 신흥종교 단지를 이루었다. 이런 현상 때문에 금산리 일대는 흡사 한국의 종교전시장(宗敎展示場) 같은 고장이 되었다. 이러한 때를 만났던 조덕삼은 원래 유교 집안이었지만 워낙 개성이 강하고 또 개혁적인 성품을 가졌던 사람인지라 이 고장을 지나다니던 서양선교사와 대담하게 어울리게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테이트 (Lewis B. Tate)선교사다. 그는 전도를 위해 전주(全州)에서 정읍(井邑)으로 말을 타고 왕래하다가 중간지점인 금산리에서 기식(寄食)도 하였는데, 그 때 그가 마방에 말을 맡기고 묵은 집이 바로 조덕삼 댁이다. 그러다가 1904년 어느 날, 자기 말 방에 말을 맡기기 위해 찾아온 이 서양 선교사를 멀리서 지켜보며 조덕삼은 좋은 기회가 왔다며 그의 앞에 다가서서 말을 건네었다. “저는 팥정리에 사는 조덕삼이라는 사람입니다. 선교사님께서 이곳 마방에 드나들 때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왠지 자꾸만 선교사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테이트 선교사는 너무 반가웠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교의 고장에 교회의 씨를 뿌리고 싶었는데 다름 아닌 이 고장의 제일가는 유력자가 이렇게 스스로 다가오다니---

“아, 그 일은 하나님께서 조덕삼 선생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는 이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교회를 설립해 달라고 수없이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이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하던 중 하루는 테이트 선교사가 즉시 그 자리에서 조덕삼씨의 손목을 잡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었던지 조덕삼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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