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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Knox, Ro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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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6-10-03 23:00 조회1,9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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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 1888-1959  

한국명 노라복.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미국 태생으로서 1906년 미국 남장로회 해외 선교부의 파송으로 내한하여 광주선교부와 목포선교부에 소속되어 전남지방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부인인 버든은 1907년 처녀로 내한하여 1909년 그와 결혼하여 은퇴할 때까지 활동하였고 , 이 부부선교사도 다른 선교사들처럼 신사참배와 미.일전쟁으로 강제 퇴거당하여 본국에 귀임한 후 일본패전으로 다시 1948년 내한하였다.

  전남노회가 창립된 다음해인 1918년 제 2회 정기노회가 강진군 고군면 병영교회당에서 개최될 때 부회장으로 피선되었고, 1919년 9월 제 4회 정기노회에서 노회장으로 피선되었다. 노회가 창립될 때는 회계로서 회에 봉사하였다. 목포에 도착한 후 농촌에 교회를 개척하는 일과 선교사나 그 지역사람들이 세운 교회를 돌보는 일이 그의 전부였다. 그래서 함평군 월봉리 교회를 비롯, 무안군 성암리교회, 화순군 화순읍 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1910년에는 보성군 문양리 교회를 조사 배경수와 같이 전도하고 예배당을 신축했다.역시 같은해 세워졌던 함평군 향교리 교회를 신축하는 데 재정을 지원하였고, 함평군 수호리교회에서도 시무했다.

  1912년 화순군 품평리교회 1916년 프레스톤선교사의 후임으로 함평군 순성교회를 돌보았다. 역시 같은해 나주군 대안리교회를 당시 상촌교회 교인 조경주외 70여명이 분립하여 세울 때에 공헌하였다. 무안군 성남리교회, 1919년에는 광양군 학동교회를 구경지. 박노주와 같이 전도하여 3간짜리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20년 화순군 원리 교회를 조사 최원감과 같이 개척하고 예배를 인도했다. 광양군 조사리교회도 전도인 박회원.정자삼. 장현중등을 파송하여 함께 교회를 세웠다. 또 광양군 대인도 교회, 금호도교회에도 협력하는 한편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1921년 화순군 학천리교회를 조사 최원감과 함께 개척 설립하였다. 또 광양군 원당리교회도 전도인 정자삼. 정영호. 박희원 등과 함께 세웠다. 한편 부인은 스와인하트 장로와 같이 확장주일학교에 힘써서 어린이 선교에 공을 세웠으며, 광주수피아여학교와 광주이일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았다. 해방후 부인과 함께 다시 입국한 그는 광주고등성경학교와 이일성경학교에서 활동하였고. 정년 퇴직이 되던 해인 1952년에 귀국하여 1959년에 세상을 떠났다.  

 

1. 전남의 농촌벽지에 전도하여 교회를 세운 녹스
노라복 선교사는 (녹스 Knox, Robert) 1888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Knox, Robert 이다 노라복 은 한국식이름으로 노라복이다 노라복 선교사는 1906년 미국 남장로회 해외 선교부의 파송으로 조선에 입국하여 목포선교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여 광주선교부에 소속되어 1919년에 전남노회 노회장으로 피선되여 전남지방의 강진군 화순군 보성군 함평군 등의 선교활동을 하며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노라복 선교사는 순천노회가 설립 되기전에 광양지역의 도서벽지를 순회하여 1919년 광양 진상면에 학동교회를 를 설립하였, 1920년 화순군 원리 교회를 조사 최원감과 같이 개척하고 예배를 인도으며. 1920년에는 광양최초 1904년에 웅동교회를 설립한 3인방중 진상신황리교회 박희원장로와 방자삼. 장현중.등 전도대를 진월면 오추골에 파송하여 전도하게 한후 장로박희원 을 조사(전도사)로 시무 하게하여 오사리교회를 설립하고 동년 골약면 태인도 주민에게 전도를하여 진상면 신황리교회 교인들의 래조와 1904년.광양최초 웅동교회설립 3인방중 진상 웅동교회 장로 서병준 조사(전도사)를 2년간 시무하게 한후 태인교회를 설립였다.

2. 전남동부 도서벽지에 금호교회를 설립한 녹스
1920년, 노라복 선교사는 태인교회 시무 하게하여 태인교회를 설립하고 태인교회의 전도사 서병준조사 로 하여금 골약면 금호도를 방문하여 도촌 주민중 유지급인 김성수시와 강학천씨를 전도 하게하여 우리 금호교회를 설립하여 예배를 인도하고 맨먼저 김성수씨와 강학천씨 삼형제 에게 세례를 베풀고 강학천씨를 집사로 임명하여 우리 금호교회를 인도하게 한 초대 당회장이다. 그의 부인인 버든은 1907년 처녀로 내한하여 1909년 그와 조선에서 결혼하여 은퇴할 때까지 저남지방을 위하여 선교활동을 활동하였다,

3.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출국 당한 녹스
노라복선교사와 그의 부인 버 든 선교사도 다른 선교사들처럼 일제 강점기에 일본신궁의 신사들을 우상숭배로 인정하고 신사참배 거부로 인하여 일본에 의하여 조선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노라복선교사는 그동안 눈물로 뿌려진 전라도를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보며 하나님께 간절하게 간구하기를 조선지 전라도에 눈물로 뿌려진 복음이 주여! 빨리 일본이 패망하여 전라도의 복음이 조선에 꽃이되여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속히 오게 하소서 라고 하나님전에 간절히 기도하며 1940년 본국으로 강제로 귀국 조치를 당하여 그는 아쉽지만 핳수없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4. 일본이 망하자 조선에 다시 입국한 노라복선교사
노라복 선교사는 본국에 귀임한 후 조선을위하여 기도하던 그는 미국에 의아여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하여 일본천황의 황복과 일본 패전으로 다시 1948년 내한하여 다시 선교활동을 재개하였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함평 무안 화순 나주 보성 광양 등 도서벽지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아 낙후한 전남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세운 예수의참 제자로서 본분을 다한 선교사이다 1948년에는 광주 고등성경 학교에서 교수로 교회 전도사 교육과 지도자 양성에 헌신을 다하였다 광주 고등성경 학교는 현재 호남신학 대학교로 발전 하였다 노라복선교사 부인 버든선교사도 어린이 선교와전도 선교 교육사업과 수피아 여고에서 한국의여성 지도자 교육양성에 헌신하였다 노라복선교사 부부는 1952년 한국에서 은퇴하고 본국으로 귀국하여 1959년 미국에서 별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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