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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묵상집

가장 따뜻했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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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pocmc 작성일17-07-17 00:01 조회5,3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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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회는 1928년 11월 금강산에서 있었던 이후로 계속되었다. 원산 지방을 휩쓴 성령의 역사는 그 후 2년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1930년 10월에 시무언은 조선주일학교연합회의 간사로서 경성에 오게 되었다. 당시 연합회에서 발간한 유익한 자료의 많은 부분은 시무언이 만들었다. 그는 표현력이 뛰어나고 감수성이 독특했다.

   그러나 사무실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그의 역할 중 일부였다. 전국 각지의 주일학교 기관들은 그를 계속 강사로 불러 세웠고 이것은 상당한 노동이었다. 그가 이런 기관들에서 강습회를 열면 항상 부흥회로 바뀌었다. 일반 교인들은 그의 교재를 열면서 자신들의 경건치 못한 마음도 열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교육을 받으러 왔다가 남아서 기도를 했다.

   더욱 놀랍고 독특한 일들은 말없이 뒤에서 일어났다. 이런 일들 중의 하나가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있었다.

   시무언은 내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저녁에 같이 기도할 때에 그는 예사롭지 않게 감동된 모습이었다. 그는 울면서 자신의 이기심과 나태함, 교만, 자기도취, 인색함을 고백하였다. 누구도 그에게 이런 죄가 있다고 욕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피 흘리는 듯한 깊고 떨리는 목소리로 산 제물로 고난에 참예하고 싶다고 외쳤다.

   나는 상당히 부끄러웠다. 나는 이 다음에 무엇을 기도할 수 있을까? 그가 간구하는 천한 곳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남들이 감당하는 빈곤과 추위와 박해와 고통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고 주께 고백하는 것뿐이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완악한 마음에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8장에 기록된 말씀이 나를 위로하였다. 우리가 너무 약하여 구하지 못하는 것들을 성령이 아버지께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우리는 따뜻한 바닥에 드러누워 쉬었다.

   그날 밤은 무척 추웠으나 따뜻환 이불은 촉감이 좋았다. 자정 무렵 잠을 자려고 할 때 시무언은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내가 놀라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나는 나가서 구유 앞에 머리 숙인 목자들을 만나야겠소."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의미 있는 말을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 같은 영혼이 무딘 사람에게는 수수께끼처럼 알듯 말듯했다. 말뜻은 분명하게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 영의 실상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고 단지 나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만 부탁했다.

   어둠 속에서 그는 거의 나갈 채비를 마쳤다. 나도 주님을 만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목자니, 구유니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러면서 이런 혹한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논리의 근거를 마땅히 찾지 못환 상태에서 불안하지만 추위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주님은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

   "나도 같이 갈까?"

   슬며시 물었다.

   그는 기뻐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가면 은혜를 받을 게요."

   우리 들 다 준비가 되었을 때 그는 이불 몇 개를 집어 들고 말했다.

   "그 애가 추울지 몰라서."

   그날 밤 시무언은 교회로 가는 도중에 만난 한 순진한 어린 남자아이에 대해 얘기했다. 그 아이는 거지들이 가지고 다니는 찌그러진 뚜껑이 없는 깡통을 차고 있었는데 얘기를 해보니 그 아이는 불구자인 형을 위해 구걸을 했고 그 형밖에는 아무 친척도 없었디고 한다. 그들은 다른 불구자들과 함께 미국 영사관 담 아래의 구덩이에서 살고 있었다. 바로 그곳이 그기스도로 비유된 그 아이를 만난 구유였던 것이다.

   시무언은 이무도 없는 거리를 달리면서 숨차게 뒤따라오는 나를 돌아보며 "목자들도 어린 그리스도를 보기 위하여 달려갔다"(눅2:16)는 사실을 나에게 되새겨 주었다.

   영사관의 높은 회색 돌 담장 뒤에는 풀 둔덕과 녹슨 깡통이 발에 채였다. 한쪽 끝의 바닥은 패여서 두세 발자국 정도 꺼져 있었다. 좁은 입구에서 몸을 구부리면서 시무언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문이 열리자 그 안으로부터 희미한 초롱불이 비치어 그 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연약하나마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떼를 지어 붙어 있었다.

   한 나이 먹은 아이가 일어나 앉으면서 자기가 형이라고 대꾸했다. 어린 아이도 일어나 앉았는데 이 아이는 눈을 껌뻑거리며 졸린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무언은 간단히 자기가 누구인지 얘기하고 가져온 이불을 전달했다. 아주 정중하게 검사하면서 그것을 받은 그 형제는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오래된 담장 가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이 불쌍한 영혼들이 우리가 방문한 이유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발견하기를 기도했다. 돌아오면서 시무언은 낚시를 가는 어린 학생처럼 깡총깡총 뛰었다, 그는 따뜻한 방에서 편히 쉬면서는 고통스러워했지만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영하의 추운 거리를 걸으면서는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고통의 신음과 멍에는 사라졌다. 그는 참으로 이상한 방법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집에 와서 나에게 누가복음 2장 20절과 29절을 읽으라고 했다. ㅡ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그리고는 그는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경험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이전 사역지인 통천에서 그는 한 거지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거지들은 전에도 종종 와서 문전에서 찬밥을 얻어가곤 했지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주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문전에 서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밥 한 사발만을 주어서 그를 문전에서 돌려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내에게 "다음에 오는 거지는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깨끗한 사발과 수저를 주고 천사가 방문한 것처럼 대하자"고 말했다.

   하루는 식사를 하려고 할 때 한 거지가 왔다가 대문을 나가는 소리를 듣고는 달려나가 그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 불쌍한 거지는 너무 당황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권면하므로 그는 마침내 죄송해하며 들어왔다. 시무언은 그의 앞에 그의 밥그릇과 수저를 놓았다. 그는 놀랐다. 그가 보통 열 집을 돌아다녀야 얻을 수 있는 것을 한 집에서 다 얻었다. 그때 시무언은 이전에는 몰랐던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12월의 이른 아침 조용한 시간, 다시 광채가 비쳤다. 참으로 그는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이상한 존재였다.

   "오늘 밤 나는 구유의 아기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는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행복에 넘쳐 말했다. 나도 그가 정말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같이 자신을 잊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당시 시무언은 구유의 아기 예수와 보좌의 왕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루하루를 빌려서 사는 처지이면서도 이상하게 그는 죽음을 정복했고 삶에는 풍성함이 넘쳤다. 그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의 음식은 하나님의 뜻과 연관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의 하루가 완료되고 그의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내일이 되면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시 빌려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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